언더우드 (1859~1916)
언더우드는 한국기독교 선교의 개척자이다. 선교 초기 그의 흔적이 묻지 않은 곳이 없을 만큼 그는 한국 교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언더우드는 1885년 부활절에 26세의 나이로 한국에 들어 왔다. 당시 기독교 전파가 불법인 상황에서도 언더우드는 적극적인 선교활동을 펼쳤다. 언더우드는 8살 연상의 의료선교사 릴리아스 호튼 (1851~1921)과 서울에서 결혼 하였는데 이들은 신혼여행조차 전도여행으로 다녀왔다. 이들 신혼부부는 1600km이상을 여행 하엿고 600여명 이상을 치료 하였다. 언더우드는 미국으로 돌아간 안식년 기간 중에도 강연과 신학교방문 등을 통해서 에비슨, 무어,레이놀즈,테이트.리 등 후배 선교사들을 한국에 오게 했다.
언더우드는 초대 성경번역위원장을 맡아 세상을 떠날 때가지 위원장으로서의 그 책임을 다 하였다.
그는 영한사전, 한영사전, 한구어문법서를 직접 만들어 출판하기도 하였다. 또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최초의 장로교회인 새문안교회를 설립 했으며, 구세학당 (현 경신중고등학교) 과 연희전문학교 (현 연세대학교)를 설립하는등 우리나라 근대 교육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언더우드 2세(원한경)는 아버지를 이어 연희전문학교의 3대교장으로 학교의 발전에 공헌 하였고, 언더우드 가문의 3세인 원이한와 원요한도 각각 연세대학교와 호남신학교에서 교육선교사로 봉직하였다.
양화진에는 언더우드부부를 미롯해 원한경 부부, 원일한 부부등 4대에 갈쳐 모두7명이 안식하고 있으며, 언더우드 가족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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