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동양철학의 이해 (독서>책소개)/1.동양철학사상

이탁오 평전

동방박사님 2022. 7. 4.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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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분서』(焚書)의 저자이자, 중국 사상사 최대의 이단아 이탁오는 교조화된 주자학 외에는 어떤 학문과 사유의 존재도 일체 인정하지 않았던 명나라 말기의 사상계에서 정신의 절대자유를 추구했던 역대 중국의 어느 철학자보다도 철학적으로나 인간적으로 지극히 매력적인 인물.

이 책은 기성의 지식을 전복하고 통쾌하게 지식인의 위선을 까발린 이탁오의 사상과 그의 비극적인 생애를 총체적으로 조망해 들어가며, 사회적 억압 기제가 성찰 없이 계속 받아들여지고 있는 21세기의 한국에, 정해진 궤도만을 뒤쫓아가는 우리의 두려움과 비겁과 자기 방어에, 더없이 분방하고 자유롭고 당당한 이 지식인의 모습은 스스로를 되비쳐보는 명경이 될 것이다.

목차

시작하며

제1장 관직을 사퇴하다
빈천할지언정 꿀릴 것 없이 뜻대로 살자 / 지금 세상에서 누가 탁오를 이해할까 / 일세의 인물이 되긴 싫다

제2장 벗을 찾아 황안으로
천하에 지기는 있는가 / 너는 가짜다 / 삭풍이 불기 시작하여 머물지 못하리

제3장 이단의 가시관을 쓰다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쓰라 / 차라리 이단이 되리라

제4장 용담에서의 생활
처음 호숫가에 거주하다 / 초담집 / 관음문 / 분서 / 동심설

제5장 무창에서 겪은 봉변
황학루 풍파 / 『수호전』에 정붙이다

제6장 용담에서의 고투
반가운 삼원의 방문 / 삼매에서 유희하고 중니를 희롱하다 / 한밤중 기러기 소리 / 미리 규약을 말하다

제7장 남북으로 전전하다
노인행 / 영경답문 / 감추지 않은 『장서』 / 마테오 리치와의 만남

제8장 마성에서 쫓겨나다
불전을 불사르다

제9장 통주에서 유랑하다
속장서 / 유언

제10장 옥중에서 자결하다
열반에 든 봉황

마치며
영원히 사는 노인

저자 후기 / 역자 후기 / 이탁오 연표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예리에산
1982년 북경사범대학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편집과 평론에 종사했다. 현재 중국 《남방일보》 그룹 최고 편집위원이며, 시사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2004년 『남방인물주간』(南方人物週刊)에서 선정한 중국에 영향을 준 지식인 50명 중 평론가 부문에 선정되었다. 『옌리에산 시사평론』 등 수필·잡문·평론집 15권이 있다.
저자 : 주지엔구오
문학 및 사회문화 평론가이자 수필가로, 각종 신문과 매체에 꾸준히 평론을 발표하고 있다. 중국 문단에 대한 강한 비판을 서슴치 않아서, 중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 위치우위(余秋雨)를 정면 비판하여,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역자 : 홍승직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 동대학원에서 중국 당대(唐代) 유종원(柳宗元)의 산문을 연구하여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순천향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유종원 산문의 문체별 연구」, 「식물의 분류학적 실체를 통한 『시경』의 새로운 이해」(공동 연구) 등의 논문을 발표했으며, 주요 역서로 『분서』, 『아버지 노릇』 등이 있다. 중국의 고전 및 문학을 우리말로 번역·소개하는 데 많은 노력을 ...
 

출판사 리뷰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분서』

〔나는 어릴 적부터 성인의 가르침을 배웠지만, 정작 성인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공자를 존경하지만, 공자의 어디가 존경할 만한지 알지 못한다. 이것은 난쟁이가 사람들 틈에서 연극을 구경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잘한다는 소리에 덩달아 따라 하는 장단일 뿐이다. 나이 오십 이전의 나는 한 마리 개에 불과했다. 앞에 있는 개가 자기 그림자를 보고 짖으면 같이 따라서 짖었던 것이다. 만약 누군가 내가 짖은 까닭을 묻는다면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쑥스럽게 웃을 수밖에…….〕

“나는 개였다”라는 이탁오의 절절한 이 한마디는 한 사상가의 참회록이자 이 시대의 학문하는 이들에게 가하는 뼈아픈 일침이다.
송나라 이후 주희의 주석으로 고정된 유교 경전은 국가에서 인정하는 유일한 학문 체계였다. 공자를 비판하거나 경전의 절대적 진리성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로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동양의 중세인들은 그 누구도 공자와 유가 경전 자체의 진리성을 회의할 수 없었다. 아니, 회의한들 언어화할 수는 없었다.
양명학의 창시자인 왕수인(왕양명)조차도 감히 공개적으로는 주희의 오류를 바로잡지 못하고 고심 끝에 『주자만년정론』(朱子晩年定論)을 지어 자신이 창립한 ‘치양지’(致良知) 학문의 방패막이로 삼았지만, 사람들에게 꼬투리를 제공한 격이 되어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이탁오는 공자 자체를 비난한 것은 아니었다. 공자에 대해 자유로운 해석과 사상이 존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주희의 것만을 유일화하는 당시 도학자들의 행태에 반기를 든 것이다.

〔성인은 사람들에게 반드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춰야 한다고 책망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마다 모두 성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양명 선생은 ‘거리에 가득한 것이 모두 성인이다’라고 했고, 부처 역시 ‘마음이 곧 부처요, 사람마다 모두 부처이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성인이므로, 성인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멈출 수 없는 도리라는 것이 따로 없습니다. 밭 갈고 벼 심고 그릇 굽고 고기 잡는 사람들에게서도 취하지 못할 것이 없다면, 그 밖의 천만 성인과 현인의 선을 취하면 안 된다는 말입니까? 어찌하여 꼭 공자만을 배워야 바른 맥을 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유해 칭찬」(贊劉諧)이라는 글에서 이탁오는 유해라는 인물을 통해 공맹(孔孟)의 도에 부여된 신성한 권위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공자 또한 ‘지성선사’가 아니라 너도나도 ‘형’이라고 할 수 있는 평범한 무리라고 했다.

〔어느 도학자가 굽 높은 큰 신발을 신고 긴 소매에 넓은 띠를 두른 채 삼강오상이라는 모자에 인륜이라는 겉옷을 입고, 낡은 경전에서 한두 마디 주워 담고, 공자의 말에서 서너 마디 훔쳐내어 입에 담으면서 자기는 진정한 중니(仲尼)의 제자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그때 유해를 만났다. 유해는 총명한 인물인데, 그것을 보고 비웃으며, “이 사람은 아직 우리 중니 형님을 모르는구먼” 하고 말했다. 그 사람은 벌컥 화를 내며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말했다.
“하늘이 중니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지 않았다면 만고의 역사는 기나긴 밤과 같았을 것이다. 너는 어떤 자이기에 감히 중니를 형님이라고 부르느냐?”
유해가 말했다. “그러면 아마도 중니가 태어나기 전의 복희나 그 이전 성인들은 날이면 날마다 촛불을 밝혀 길을 다녔겠소이다!”〕

“하늘이 중니를 태어나게 하지 않았으면 만고의 역사는 기나긴 밤”이라는 말은 주자(주희)가 한 말이다. 이탁오는 단 한마디로 설파하여, 중니(공자)를 신격화하는 황당함과 가소로움을 조소했다. 훗날 이 글을 근거로 이탁오는 성인을 비난하고 법을 업신여겼다는 죄명을 쓰게 된다. 한 사람으로서, 고대의 한 사상가이자 교육자요 학자로서 이탁오는 공자를 존경했다. 공자의 도덕과 학문은 확실히 사람들이 마음으로 기뻐하고 진심으로 탄복하게 하는 점이 있었다. 하지만 그를 신성불가침의 우상으로 떠받들면서 살아 있는 천만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주술로 삼고, 중생의 성령을 조여 죽이는 법보로 삼는다면 이는 가증스러운 짓이다. 이탁오로서는 차라리 머리가 깨져서 피를 흘리는 한이 있어도 이런 행태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탁오가 공격한 공자는 춘추 시기의 공자가 아니라 ‘백가를 배척하고 오로지 유가의 학술만 존중하는’ 후대의 공자였던 것이다.

기존의 질서를 전복하는 거침없는 발언과 저술

이탁오는 거침없는 발언과 저술로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최고의 도학자로서 자처하던 경정향과의 10년 논전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공맹의 도로 질책하는 경정향에게 이탁오는 망설이거나 거리끼는 것 없이 붓을 들자마자 써내려갔다.
“세상 사람들은 대낮에 잠꼬대를 하는데, 공만 혼자 꿈속에서 대낮 얘기를 하니 항상 깨어 있다고 할 만하겠군요.”
경정향으로서는 참으로 수치와 분노에 떨게 하는 말이었다. 이탁오의 이러한 거침없는 태도는 사회적으로 심각한 반향을 일으켰으며 무수한 생명의 위협으로 이어졌다.

〔세상에서 명성을 좋아하는 자는 반드시 도학을 따진다. 도학이 명성을 일으키기 좋기 때문이다. 등용되지 않은 자는 반드시 도학을 따진다. 도학이 등용의 길을 열어주기 좋기 때문이다. 하늘과 사람을 속이는 자는 반드시 도학을 따진다. 도학이 그 속임수 계략을 팔아먹기 좋기 때문이다. 그 폐단이 오늘날까지 이르러 겉으로는 도학을 합네 하며 속으로는 부귀를 추구하고, 학문이 깊고 우아한 복장을 하였으되 하는 행실은 개돼지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이탁오는 『분서』, 『장서』, 『설서』 및 수많은 저작들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발표했다. 이탁오는 알고 있었다. 이 책들이 나오게 된다면 자신에게 미치게 될 화가 단지 지금까지의 비난 정도에서 멈추는 것이 아님을. 그러했기에 책의 이름도 ‘불태워버려야 할 책’(『분서』), ‘감추어야 할 책’(『장서』)이라고 붙였지만, 정작 그의 책은 불태워지지도 않았고 감춰질 수도 없었다.

유교 문화를 주체로 한 중국 문화는 줄곧 사회 질서를 강조하여, ‘개체’는 사회라는 거대한 기계의 나사 하나에 불과했다. 삼강오상이라는 윤리 관계 안에서 생활하면서 이 관계 준칙을 유지하고 보호하는 일이야말로 바로 천리에 맞는 사람의 일이었다. 하지만 이탁오는 당당하게 한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사람은 자기를 위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자기 길을 가는 데 힘쓴다.” 이는 당시 중국 사회로 볼 때 대역무도한 발언이었다.

〔만약 자기 길을 가지 않고 남의 길을 가면 비록 백이·숙제라도 마찬가지로 괴벽스러운 성벽이 되고, 자기를 위할 줄 모르고 오직 남을 위하는 데 힘쓰면 비록 요순이라도 마찬가지로 하잘것없는 티끌이나 쭉정이가 된다.〕

이탁오의 사상은 윤리 본위와 "사회 지향"의 유교 국가에서 부처와 노자보다 훨씬 파괴력을 지닌 이단이었다. 도학자들의 입장에서 볼 때, 이탁오의 이러한 사상이 전파되는 대로 내버려둔다면 2천 년 이어진 사유 양식과 가치 표준의 전통이 깨질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탁오의 이러한 광언(狂言)은 수많은 사람들이 말하고 싶어도 감히 말하지 못했던 것으로, 가짜 인의에 불만이고 인성을 속박하는 예교에 불만이던 사람들을 고무시켜 확실히 적지 않은 사람들을 선동하고 미혹했다. 이리하여 명교의 울타리에 가하는 이탁오의 충격과 명교의 전통을 수호하려는 도학자 사이의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마음을 존중하라

사상의 자유를 추구한 이탁오의 사상은 그의 ‘동심설’(童心說)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어린아이의 마음이야말로 인간의 참된 마음이며, 이 마음을 잃어버린다면 어떤 성인도 진실할 수 없다고 말한다.

〔동심은 참된 마음이다. 만약 동심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한다면, 이는 참된 마음이 있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동심이란 거짓 없고 순수하고 참된 것으로, 최초 일념의 본심이다. 동심을 잃으면 참된 마음을 잃는 것이며, 참된 마음을 잃으면 참된 사람을 잃는 것이다. 사람이 참되지 않으면 최초의 본심은 더 이상 전혀 있지 않게 된다.〕

독서견문(讀書見聞)에 물들지 않은 아동의 맑고 깨끗한 마음을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보고, 도가적(道家的)인 자연 그대로의 인간의 마음이 존중되어야 하며 인간의 욕망은 가식 없이 그대로 긍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이탁오의 주장이다. 동심이 가로막히면 말을 한다 해도 그 말이 진심에서 나오지 않고, 정치에 참여한다 해도 그 사람이 펼치는 정사에 뿌리가 없고, 저술을 한다 해도 그 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 내적인 미(美)가 갖추어지지 않음으로써 소박하고 진지한 가운데 빛을 발하지 못하여 단 한마디라도 진리에 부합되는 말을 찾아보려고 해도 끝내 찾을 수 없다. 이탁오가 생각하기에, 사회 전체에 가짜 병이 만연한 것은 사람들의 동심이 막히고 본심을 잃어 사람으로서의 주체성이 이미 더 이상 있지 않게 됨으로써 밖에서 들어온 견문과 도리가 자기 마음이 되기 때문이었다. 이탁오는 친구 등석양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이러한 생각을 피력했다.

〔옷 입고 밥 먹는 것이 바로 인륜이요, 만물의 이치라네. 옷 입고 밥 먹는 것을 제외하면 인륜도 만물의 이치도 없네. 세상의 온갖 것이 모두 옷과 밥과 같은 부류일 뿐이지. 그러므로 옷과 밥을 들면 세상의 사람에게 필요한 온갖 것이 저절로 그 안에 포함되어 있고, 옷과 밥 이외에 백성과 전혀 무관하게 또 다른 갖가지 것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네.〕

진리는 인간의 외부에 현묘하고 초월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벽돌을 깨서 옥을 꺼내다 ―『이탁오 평전』

이 평전의 필자 옌리에산과 주지엔구오의 치밀한 글쓰기는, 글쓰기의 대상자인 이탁오만큼이나 철저하다. 이탁오의 저술뿐만 아니라 이탁오를 다루고 있는 당시의 책부터 후대인의 책까지 두루 섭렵하며, 대화 하나 인용문 하나에도 그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을 쓰면서 가졌던 큰 원칙을 두 가지 들고 있다.

1) 학술성의 원칙 견지
역사소설·전기·연의와 명확한 경계를 두어, 평전 주인공의 일생 사적과 사상 관점에 어떠한 허구도 허용하지 않으며 반드시 근거 있는 말을 해야 함을 원칙으로 삼았다. 문학적 형식을 취하거나 허구적 대화와 합리적 상상에 의하여 배경을 묘사하는 것을 피했다. 대화 하나하나마다 이탁오의 편지글, 문장 등에 기초하였다.

2) 봉건 전제에 반대했던 투사이자 사상 해방의 선구자로서 이탁오를 발굴
근대 이후 이탁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몇몇 학자들은 봉건사상을 철저하게 뛰어넘지 못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탁오는 모든 봉건사상 체계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유교 반도’가 아니라 문화의 전제[執一]를 반대한 사상 해방의 선구자였다. 그러므로 당대의 역사적 조건의 이해라는 관점을 잃고 오늘날의 시각만으로 과거의 사건과 인물의 행적을 재단하고 판단하는 일은 불합리하다. 이 평전은 정신의 자유에 대한 이탁오의 추구를 한 맥락으로 꿰뚫고, 봉건 전제라는 역사 조건 아래에서 이탁오 사상의 의의를 고찰함으로써, “벽돌을 깨서 옥을 꺼내는” 인물 평전의 진보적 의의를 선취한다.
 

추천평

고미숙 ― 그 치열한 열정에 경탄하며 낡고 노쇠한 우리 학문 풍토를 아파하다

“나이 오십 전까지는 나는 정말 한 마리 개와 같았다. 앞의 개가 그림자를 보고 짖어대자 따라서 짖어대는.” 유학의 지반을 탈주하여 새로운 앎의 세계로 나아갈 때의 이탁오의 변이다. 이 대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의 치열한 열정에 경탄함과 동시에 문득 우리 시대 학자들의 ‘조로증’을 아프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40대면 이미 지식에 대한 갈망을 포기한 채 자신을 지키기에 바쁘고, 50대면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간 원로가 되거나, 아니면 새로운 모색을 억압하기에 급급한 전투적(?) 기성세대가 되어버리는 우리 인문학의 풍토는 얼마나 낡고 노쇠한 것인지. 지식이란 피로하고 생기 없는 고행의 산물이라는 통념에 사로잡힌 이들은 이탁오를 읽으시라. 지식이란 본래 목마른 자가 마시는 한 모금의 물, 굶주린 뒤에 먹는 밥 한 술처럼 ‘꿀맛’ 같은 것임을 체험하게 될 터이니.
[고전문학연구자,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저자]

박노자 ― 이탁오의 가르침은 궁극적 자유를 향한 가파르고 험한 첩경

일흔여섯에 감옥에서 자살로 삶을 끝맺은 이탁오의 반역은 철저했다. 이탁오는 우상들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스스로 속박하는 일을 완전히 포기했으며, 우상 파괴 뒤 새로운 우상을 만들지 않았을 뿐 아니라 자신의 우상화조차 불가능하게 해놓았다.
이탁오의 가르침은 모든 가르침, 모든 언어, 모든 현상에 대한 지양이며, 궁극적 자유를 향한 가파르고 험한 첩경이다. 이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은 여태까지 가졌던 모든 것을 잃은 대가로 자기 자신을 얻을 것이며, 이 길을 끝내 가지 못한 사람은 임종의 순간에 아쉬움 없이 죽기가 힘들 것이다. 이탁오는, 세상의 모든 진리들을 회의하여 부정할 줄 알아야 한다는 궁극적인 진리로서 벼락·천둥처럼 우리 앞에 나타나고 우리의 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 오슬로 대학 한국학 교수, 『당신들의 대한민국』 저자]

강명관 ― 사유의 극한까지 나아갔던 거대한 인간의 통쾌한 일갈!

내가 믿고 있는, 나의 언어와 행위가 정당성의 근거로 삼고 있는 진리는 진리인가. 그것은 어떻게 나에게 진리가 되었던가. 이탁오는 말한다. “내가 믿는 진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나 밖의 세계가 만들어낸 ‘도리’와 ‘견문’이 나를 구성하면서 나를 명령하는 진리로 행세할 뿐이다.” 동아시아 사회에서 공자와 유교의 진리성은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탁오는 말한다. “그럼 공자가 태어나기 전의 세계는 암흑세계란 말인가?” 그리고 다시 덧붙인다. “논어를 위시한 경전은 위선적인 도학자들이 구실이고, 거짓을 늘어놓는 무리들의 소굴일 뿐이다.” 통쾌하구나! 인간 이탁오의 사유와 행동에는 유교와 불교, 노장의 경계가 없다. 오로지 진리를 향해, 사유의 극한까지 자신을 밀고 나가는 처절하고 거대한 인간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무한경쟁과 시장경제는 현재 내가 거부할 수 없는 진리다. 과연 이것은 언제부터 나에게 진리였던가. 탁오의 삶과 사유야말로 자본-테크놀로지에 포로가 된 우리를 깨우는 웅장한 종소리가 아닌가.
[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조선의 뒷골목 풍경』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