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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대제국의 통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황제의 사생활부터 공적 생활까지
메리 비어드가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한 로마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부터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 300여 년에 걸쳐 로마제국을 통치했던 통치자 30여 명을 조명한다. 비어드는 단순히 한 황제의 일대기가 아니라 한 집단으로서 황제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은 괴물 네로, 미친 칼리굴라,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로마 통치자에 대한 전형적인 통념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살펴본다. 황제가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잠을 잤고 어떻게 여행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추구했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며 그들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돕는다. 흥미로운 일화, 날카로운 통찰, 풍성한 시각 자료가 담긴 이 책은 새로운 로마 역사를 만나고 싶은 독자에게 더 없는 만족감을 선사할 것이다.
목차
주요 등장인물
머리말
프롤로그: 엘라가발루스와의 식사
1. 1인 통치의 기초
2. 다음 차례는? 승계의 기술
3. 실력자들의 식사
4. 궁궐 안에 있는 것?
5. 궁궐 사람들: 궁정의 황제
6. 일하는 황제
7. 여가 시간에는?
8. 해외로 나간 황제
9. 얼굴과 얼굴
10. ‘나는 신이 되어가는 것 같아’
에필로그: 한 시대의 종말
머리말
프롤로그: 엘라가발루스와의 식사
1. 1인 통치의 기초
2. 다음 차례는? 승계의 기술
3. 실력자들의 식사
4. 궁궐 안에 있는 것?
5. 궁궐 사람들: 궁정의 황제
6. 일하는 황제
7. 여가 시간에는?
8. 해외로 나간 황제
9. 얼굴과 얼굴
10. ‘나는 신이 되어가는 것 같아’
에필로그: 한 시대의 종말
저자 소개
저 : 메리 비어드 (Mary Beard)
나는 다른 각도에서 로마 황제들(자비롭고 나이 든 정치인이든 어린 폭군이든, 철학자를 지망 하는 사람이든 검투사가 되려는 사람이든, 유명하든 잊혔든)을 조명하려 하고, 왜 그들 가운데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엘라가발루스처럼 결국 자객의 칼날이나 독이 든 버섯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는지와 같은 기본적인 문제를 직면하려고 한다. 이런 종류의 탐험에서 고대의 과장, 허구, 거짓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들이 통치자의 이미지를 구축하고, 그들을 판단하고, 전제군주 권력의 성격을 논의하고, ‘그들’과 ‘우리’ 사이의 거리를 표시하는 데 사용한 도구함에는 언제나 공상, 한담, 중상, 떠도는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마찬가지로 중요했던 것이 로마의 영토가 늘어나면서 공화국 정부의 권력 공유 구조에 가해진 압박이었다. 전통적으로 함께 선출된 관리는 도시의 내부 업무와 외부 문제를 동시에 담당했다. 전방의 전쟁에서 레기오(군단)를 지휘하거나, ‘평화 유지’를 하거나, 분쟁을 해결했다. 로마는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정복한 땅에 실제로 간여해서 직접 통치를 하려 하지 않았다. (…)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은 공유되었고 일시적이며 해마다 바뀌는 관리라는 틀 안에 수용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1년 임기의 관리가 로마에서 나라의 끄트머리에 있는 문제 지역으로 가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을 것이다. 로마인들도 이를 알았고, 이에 대응해 여러 가지를 조정했다. (…) 예컨대 지중해의 ‘해적’(고대인들에게는 ‘테러리스트’ 정도의 느낌이 들게 하는 명칭)을 소탕하고자 하면 한 지휘관에게 권한과 자원을 주고 장기간 맡을 수 있게 해야 했는데, 이는 일시적이고 권력을 공유하는 전통적인 로마의 관직 임명 원칙에 위배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서 큰 땅덩이는 점차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던 정부 구조를 파괴해 1인 통치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제국이 황제를 만들어낸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1. 1인 통치의 기초」중에서
입양은 처음부터 1인 통치 체제에 내재되어 있었다. 최초의 로마 황제 가문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누이의 손자 옥타비아누스를 입양함으로써 시작됐고, 아우구스투스는 불운한 여러 조카, 손자, 기타 공자 들을 입양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도록 지정했다. 200여 년 뒤에 엘라가발루스는 분명 조언을 받고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가문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사촌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입양했다(그는 ‘새 아버지’보다 겨우 네 살 정도 어렸다). 다시 말해 입양은 통치 황제의 친아들이 아닌 가까운 친척과 친지들을 승계 후보로 점찍어 핵심 집단의 잠재적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두기 위해 자주 이용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193년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잡은 뒤 이 과정을 완전히 뒤집었을 때 논리적이면서도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제위에 대한 권리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뒤늦게 자신이 10여 년 전에 죽은 전전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양자라고 선언했다. 이 ‘자가 입양’에 대해 어떤 사람은 재치 있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내놓았다. “카이사르여, 아버지를 찾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2. 다음 차례는? 승계의 기술」중에서
비슷한 성격의 다른 이야기들은 황제들이 ‘초대자로서’ 권력을 남용한 것을 야만스럽게 드러냄으로써 권력의 적절한 한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칼리굴라는 어느 공개 연회에서 시중든 노예를 가학적으로 처벌해 비난을 받았다. 이 노예는 어느 소파에서 은 조각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황제는 처벌로 그의 두 손을 자르고 목에 줄을 매어 손님들 사이에 끌려 다니도록 했다. 그의 목에는 범죄를 설명하는 팻말을 걸었다. 로마 세계에서 잔인성의 경계는 매우 다양했고, 고대의 일부 통상적인 처벌과 응징의 형태는 현대적 기준으로 볼 때 충격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한계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괴기 공상물에 가까운 이런 식사 자리의 이야기들은 황제가 적법하게 정말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한 방법이었다. 절대권력은 제한을 가하거나 적어도 숨겨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3. 실력자들의 식사」중에서
궁궐은 또한 황제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살해된 것은 거의 이례적인 일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암살된 황제는 궁궐에서 살해됐다. 이곳은 음식에 몰래 독을 탈 수 있고, 단검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칼리굴라는 궁궐 안에서 이동하던 중에 불만을 품고 달려든 근위병 두 명에게 살해되었고, 도미티아누스와 페르티낙스도 궁궐에서 칼에 찔렸다. 콤모두스는 192년 자신의 목욕탕에서(다른 기록에는 침대에서) 그의 개인 훈련사에게 교살당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211년 게타의 피살이었다. 고대의 작가들은 끔찍한 이야기를 전한다. 궁궐을 나누어 차지하는 방식이 결국 무너진 뒤 카라칼라가 병사들을 시켜 동생을 찔러 죽이게 했다는 것이다. 동생은 안전을 위해 팔라티노의 어머니 처소에서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 사건은 궁궐이 황제에게 화려한 새장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프롤로그」중에서
마찬가지로 중요했던 것이 로마의 영토가 늘어나면서 공화국 정부의 권력 공유 구조에 가해진 압박이었다. 전통적으로 함께 선출된 관리는 도시의 내부 업무와 외부 문제를 동시에 담당했다. 전방의 전쟁에서 레기오(군단)를 지휘하거나, ‘평화 유지’를 하거나, 분쟁을 해결했다. 로마는 적어도 처음에는 자신들이 정복한 땅에 실제로 간여해서 직접 통치를 하려 하지 않았다. (…) 그렇다 하더라도 여러 가지 서로 다른 역할은 공유되었고 일시적이며 해마다 바뀌는 관리라는 틀 안에 수용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1년 임기의 관리가 로마에서 나라의 끄트머리에 있는 문제 지역으로 가는 데만도 몇 달이 걸렸을 것이다. 로마인들도 이를 알았고, 이에 대응해 여러 가지를 조정했다. (…) 예컨대 지중해의 ‘해적’(고대인들에게는 ‘테러리스트’ 정도의 느낌이 들게 하는 명칭)을 소탕하고자 하면 한 지휘관에게 권한과 자원을 주고 장기간 맡을 수 있게 해야 했는데, 이는 일시적이고 권력을 공유하는 전통적인 로마의 관직 임명 원칙에 위배되는 방식이었다. 다시 말해서 큰 땅덩이는 점차 이 나라를 떠받치고 있던 정부 구조를 파괴해 1인 통치로 가는 길을 열어놓았다. 제국이 황제를 만들어낸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었다.
---「1. 1인 통치의 기초」중에서
입양은 처음부터 1인 통치 체제에 내재되어 있었다. 최초의 로마 황제 가문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누이의 손자 옥타비아누스를 입양함으로써 시작됐고, 아우구스투스는 불운한 여러 조카, 손자, 기타 공자 들을 입양해 자신의 후계자로 삼도록 지정했다. 200여 년 뒤에 엘라가발루스는 분명 조언을 받고 정확하게 같은 방식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하고 가문의 연속성을 확보하고자 사촌 알렉산데르 세베루스를 입양했다(그는 ‘새 아버지’보다 겨우 네 살 정도 어렸다). 다시 말해 입양은 통치 황제의 친아들이 아닌 가까운 친척과 친지들을 승계 후보로 점찍어 핵심 집단의 잠재적 경쟁자들보다 우위에 두기 위해 자주 이용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193년 내전을 통해 권력을 잡은 뒤 이 과정을 완전히 뒤집었을 때 논리적이면서도 터무니없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는 자신의 제위에 대한 권리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뒤늦게 자신이 10여 년 전에 죽은 전전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양자라고 선언했다. 이 ‘자가 입양’에 대해 어떤 사람은 재치 있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내놓았다. “카이사르여, 아버지를 찾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2. 다음 차례는? 승계의 기술」중에서
비슷한 성격의 다른 이야기들은 황제들이 ‘초대자로서’ 권력을 남용한 것을 야만스럽게 드러냄으로써 권력의 적절한 한계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칼리굴라는 어느 공개 연회에서 시중든 노예를 가학적으로 처벌해 비난을 받았다. 이 노예는 어느 소파에서 은 조각을 훔쳤다는 혐의를 받았다. 황제는 처벌로 그의 두 손을 자르고 목에 줄을 매어 손님들 사이에 끌려 다니도록 했다. 그의 목에는 범죄를 설명하는 팻말을 걸었다. 로마 세계에서 잔인성의 경계는 매우 다양했고, 고대의 일부 통상적인 처벌과 응징의 형태는 현대적 기준으로 볼 때 충격적이다. 그러나 거기에 한계가 전혀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괴기 공상물에 가까운 이런 식사 자리의 이야기들은 황제가 적법하게 정말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한 방법이었다. 절대권력은 제한을 가하거나 적어도 숨겨지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3. 실력자들의 식사」중에서
궁궐은 또한 황제에게 가장 위험한 곳이기도 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원로원 회의에서 공개적으로 살해된 것은 거의 이례적인 일이었다. 거의 대다수의 암살된 황제는 궁궐에서 살해됐다. 이곳은 음식에 몰래 독을 탈 수 있고, 단검을 사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칼리굴라는 궁궐 안에서 이동하던 중에 불만을 품고 달려든 근위병 두 명에게 살해되었고, 도미티아누스와 페르티낙스도 궁궐에서 칼에 찔렸다. 콤모두스는 192년 자신의 목욕탕에서(다른 기록에는 침대에서) 그의 개인 훈련사에게 교살당했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211년 게타의 피살이었다. 고대의 작가들은 끔찍한 이야기를 전한다. 궁궐을 나누어 차지하는 방식이 결국 무너진 뒤 카라칼라가 병사들을 시켜 동생을 찔러 죽이게 했다는 것이다. 동생은 안전을 위해 팔라티노의 어머니 처소에서 어머니에게 매달려 있었다. 사실이든 아니든 이 사건은 궁궐이 황제에게 화려한 새장이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생명을 보장받을 수 없었다.
---「4. 궁궐 안에 있는 것?」중에서
출판사 리뷰
‘대제국의 통치자로 산다는 것에 대하여’
황제의 사생활부터 공적 생활까지
메리 비어드가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한 로마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로 불리는 메리 비어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SPQR)》에서 서기전 8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1000년에 걸친 로마의 역사를 다뤘던 비어드가 이번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시작해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 300여 년에 걸쳐 로마제국을 통치했던 통치자 30여 명을 조명한다. 비어드는 단순히 한 황제의 일대기가 아니라 한 집단으로서 황제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에서 비어드는 괴물 네로, 미친 칼리굴라,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로마 통치자에 대한 전형적인 통념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살펴본다. 황제가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잠을 잤고 어떻게 여행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추구했는지 등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황제를 둘러싼 소문, 음담패설, 한담, 풍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
“나는 왜 어떤 황제는 가학적인 괴물로 역사에서 폄훼되고, 어떤 황제는 최선을 다한 훌륭한 인물로 평가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너머로 로마의 전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기이한 연회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황제를 둘러싼 소문, 한담, 음담패설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에 기대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탐색한다. 엘라가발루스는 뚱뚱한 남자들을 초대해 그들이 한 소파에 앉을 수 없는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가난한 손님들에게 밀랍으로 된 가짜 음식을 내주는 악취미가 있었다. 로마가 불에 탔을 때 수금을 연주했다는 네로, 파리를 펜으로 찍어 누르며 권태를 달랬다는 도미티아누스, 콜로세움의 관중에게 화살을 난사했다는 콤모두스 등과 관련된 악명 높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전제정에 대한 신민들의 공포와 황제에 대한 인식이다.
황제의 기행과 잔혹함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는 제한 없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식당과 하인마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는 도미티아누스의 ‘검은색 식사’가 끝난 후 손님들은 이제 죽음만이 자신들을 기다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고, 카이사르가 책력을 바꾸었을 때 키케로는 그가 하늘의 별까지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한다는 냉소적인 농담을 던졌다.
화가 난 하드리아누스가 펜으로 노예의 눈을 찔렀다거나, 칼리굴라가 자신이 고개만 까딱하면 원로원 의원들의 목을 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졌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 출처가 어디이든 간에 로마인들이 황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황제의 잔인함과 사치, 방종에 관한 이야기들에 도사린 것은 황제의 통치에 대한 분명한 불안이다. 그것은 황제의 권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고, 황제는 언제 어떻게 돌변해 잔인한 모습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인식이었다.
“이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관한 이야기다”
황제의 일상에서 포착된 평범한 사람들
“나는 평생 동안 이 어렴풋하고 멀리 있지만 이상하게도 친숙한 통치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이런 황제들의 세계에 대한 탐험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로마 황제들은 최대 판도일 때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까지, 포르투갈에서 이라크까지 뻗어 있는 영토를 다스렸다. 황제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며 법을 만들고, 전쟁을 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분쟁을 중재하고, 건설과 오락을 후원했다. 비어드는 황제를 집에서, 여행지에서, 경기장에서,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추적하며 자극적인 이야기에 가려진 황제의 일상적 현실을 포착한다. 그 현실은 정치의 날카로움, 군사적 안전에 대한 요구, 제국을 통치하는 판에 박히고 단조로운 나날로 채워져 있었다.
어떤 황제이건 제국 전역의 일반 신민이나 시 의회로부터 온 요구와 청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수많은 문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황제가 이러한 문제들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신민들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평소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로마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창문에서 떨어진 요강으로 인해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귀족부터 적의 공격으로 암소를 잃게 된 여인까지 로마의 수많은 인민들은 청원을 위해 황제를 찾았다. 이들에게 황제는 끔찍한 전제군주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조정자였다.
또한 우리는 이 책에서 제국의 운영을 가능하게 만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황제의 궁궐에는 황제의 가족을 비롯해 노예와 해방노예, 아첨꾼, 참모가 있었다. 비어드는 궁궐 유적에서 발견된 낙서, 노예들의 비문, 돌에 새겨진 황제의 편지를 통해 궁궐의 노동을 책임졌지만 ‘계단 아래’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들을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황제를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파악하고자 했다. 이처럼 로마 황제의 일상과 로마제국의 보통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 사회의 전체적인 윤곽과 함께 새로운 로마 역사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풍성한 시각 자료와 함께 들여다보는 로마 황제의 일생
로마 황제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에는 사진과 그림, 도표, 지도 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고대 로마 사회의 풍경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책의 이야기에서도 적극적인 참고 자료로써 기능한다. 흥미로운 일화,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로마 황제의 일상을 만나보자.
승계 : 근대 유럽 군주들을 ‘장자 상속제’를 따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고대 로마의 승계에는 그런 고정된 원칙이 없었다. 무엇보다 ‘입양’ 제도가 제위 승계의 중심에 있었다.
식사 : 식사 자리는 황제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황제 통치의 긴장과 관대함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식탁이었다.
주거지 : 황제는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집’으로 불렀을까? ‘궁궐’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로마제국은 그의 궁궐이었고, 그의 궁궐은 곧 제국이었다.
궁궐 사람들 : 궁궐에는 황제와 그 가족은 물론 미용사와 청소부, 이득을 노리는 아첨꾼, 노예와 해방노예, 참모가 살고 있었다. 이들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으로서 황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업무 : 서신 보내는 사람, 정책 결정자, 행정가로서의 황제는 어떤 모습일까? 황제는 일상 행정 업무를 얼마나 직접 처리했을까? 어떤 종류의 문제가 그에게 전달됐을까?
여가 시간 : 고대 로마 사회의 관심은 검투사 경기, 전차 경주, 극장 공연 등의 대중오락에 크게 집중되었다. 황제는 여기에서 열렬한 애호가, 너그러운 주최자, 공연 참여자 역할을 오가며,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여행 : 황제들을 이탈리아 바깥으로 끌어들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제들은 군사적 영광과 전쟁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제국을 탐험하고 찬탄하기 위해 여행에 나섰다.
황제의 얼굴 : 로마 시민 대다수는 황제를 직접 보지 못했다. 오로지 로마제국에 흘러넘쳤던 조각상과 초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로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황제의 초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죽음 : 황제는 온갖 종류의 죽음을 맞았다. 자연사는 드물었고, 암살이 대부분이었다.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죽여야 했다. 황제의 장례식은 죽음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남은 사람의 이익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졌다.
황제의 사생활부터 공적 생활까지
메리 비어드가 새로운 방식으로 조명한 로마 이야기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고전학자’로 불리는 메리 비어드.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로마는 왜 위대해졌는가(SPQR)》에서 서기전 8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 1000년에 걸친 로마의 역사를 다뤘던 비어드가 이번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서 시작해 알렉산데르 세베루스까지 300여 년에 걸쳐 로마제국을 통치했던 통치자 30여 명을 조명한다. 비어드는 단순히 한 황제의 일대기가 아니라 한 집단으로서 황제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보고 싶었다고 말한다. 《로마 황제는 어떻게 살았는가》에서 비어드는 괴물 네로, 미친 칼리굴라, 철학자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로마 통치자에 대한 전형적인 통념을 뒤집고 새로운 방식으로 그들을 살펴본다. 황제가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와 잠을 잤고 어떻게 여행했는지, 왜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권력을 추구했는지 등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들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황제를 둘러싼 소문, 음담패설, 한담, 풍자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
“나는 왜 어떤 황제는 가학적인 괴물로 역사에서 폄훼되고, 어떤 황제는 최선을 다한 훌륭한 인물로 평가되는지에 관심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 너머로 로마의 전제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관한 더 큰 그림을 보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황제 엘라가발루스의 기이한 연회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 책은 황제를 둘러싼 소문, 한담, 음담패설과 같은 자극적인 이야기에 기대어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탐색한다. 엘라가발루스는 뚱뚱한 남자들을 초대해 그들이 한 소파에 앉을 수 없는 모습을 보고 폭소를 터뜨리는가 하면, 가난한 손님들에게 밀랍으로 된 가짜 음식을 내주는 악취미가 있었다. 로마가 불에 탔을 때 수금을 연주했다는 네로, 파리를 펜으로 찍어 누르며 권태를 달랬다는 도미티아누스, 콜로세움의 관중에게 화살을 난사했다는 콤모두스 등과 관련된 악명 높은 이야기는 모두 사실일까? 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에서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전제정에 대한 신민들의 공포와 황제에 대한 인식이다.
황제의 기행과 잔혹함에 대한 과장된 이야기는 제한 없는 권력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식당과 하인마저 온통 검은색으로 칠하고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나누었다는 도미티아누스의 ‘검은색 식사’가 끝난 후 손님들은 이제 죽음만이 자신들을 기다릴 것이라는 두려움을 느꼈고, 카이사르가 책력을 바꾸었을 때 키케로는 그가 하늘의 별까지 자신에게 복종시키려 한다는 냉소적인 농담을 던졌다.
화가 난 하드리아누스가 펜으로 노예의 눈을 찔렀다거나, 칼리굴라가 자신이 고개만 까딱하면 원로원 의원들의 목을 칠 수 있다는 농담을 던졌다는 등의 이야기는 그 출처가 어디이든 간에 로마인들이 황제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황제의 잔인함과 사치, 방종에 관한 이야기들에 도사린 것은 황제의 통치에 대한 분명한 불안이다. 그것은 황제의 권력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고, 황제는 언제 어떻게 돌변해 잔인한 모습을 보여줄지 모른다는 인식이었다.
“이것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에 관한 이야기다”
황제의 일상에서 포착된 평범한 사람들
“나는 평생 동안 이 어렴풋하고 멀리 있지만 이상하게도 친숙한 통치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이 책에서 이런 황제들의 세계에 대한 탐험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로마 황제들은 최대 판도일 때 스코틀랜드에서 사하라까지, 포르투갈에서 이라크까지 뻗어 있는 영토를 다스렸다. 황제는 광대한 제국을 다스리며 법을 만들고, 전쟁을 하고, 세금을 부과하고, 분쟁을 중재하고, 건설과 오락을 후원했다. 비어드는 황제를 집에서, 여행지에서, 경기장에서, 심지어 장례식장에서 추적하며 자극적인 이야기에 가려진 황제의 일상적 현실을 포착한다. 그 현실은 정치의 날카로움, 군사적 안전에 대한 요구, 제국을 통치하는 판에 박히고 단조로운 나날로 채워져 있었다.
어떤 황제이건 제국 전역의 일반 신민이나 시 의회로부터 온 요구와 청원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고, 수많은 문서 업무를 처리해야 했다. 황제가 이러한 문제들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개입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신민들을 대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는 평소에는 주목하지 않았던 로마 사회의 평범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창문에서 떨어진 요강으로 인해 살인 혐의를 받게 된 귀족부터 적의 공격으로 암소를 잃게 된 여인까지 로마의 수많은 인민들은 청원을 위해 황제를 찾았다. 이들에게 황제는 끔찍한 전제군주가 아닌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줄 조정자였다.
또한 우리는 이 책에서 제국의 운영을 가능하게 만든 많은 사람을 만날 수 있다. 황제의 궁궐에는 황제의 가족을 비롯해 노예와 해방노예, 아첨꾼, 참모가 있었다. 비어드는 궁궐 유적에서 발견된 낙서, 노예들의 비문, 돌에 새겨진 황제의 편지를 통해 궁궐의 노동을 책임졌지만 ‘계단 아래’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존재들을 추적한다. 그럼으로써 황제를 한 인간으로서 온전히 파악하고자 했다. 이처럼 로마 황제의 일상과 로마제국의 보통 사람들을 따라가다 보면 로마 사회의 전체적인 윤곽과 함께 새로운 로마 역사를 그려볼 수 있을 것이다.
풍성한 시각 자료와 함께 들여다보는 로마 황제의 일생
로마 황제의 이야기를 전하는 이 책에는 사진과 그림, 도표, 지도 등 다채로운 시각 자료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들은 고대 로마 사회의 풍경을 실감나게 느낄 수 있도록 도울 뿐만 아니라, 책의 이야기에서도 적극적인 참고 자료로써 기능한다. 흥미로운 일화, 날카로운 통찰이 담긴 로마 황제의 일상을 만나보자.
승계 : 근대 유럽 군주들을 ‘장자 상속제’를 따르는 경향이 있는 반면, 고대 로마의 승계에는 그런 고정된 원칙이 없었다. 무엇보다 ‘입양’ 제도가 제위 승계의 중심에 있었다.
식사 : 식사 자리는 황제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황제 통치의 긴장과 관대함이 드러나는 곳이 바로 식탁이었다.
주거지 : 황제는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집’으로 불렀을까? ‘궁궐’이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겨났을까? 로마제국은 그의 궁궐이었고, 그의 궁궐은 곧 제국이었다.
궁궐 사람들 : 궁궐에는 황제와 그 가족은 물론 미용사와 청소부, 이득을 노리는 아첨꾼, 노예와 해방노예, 참모가 살고 있었다. 이들을 들여다보면 한 인간으로서 황제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
업무 : 서신 보내는 사람, 정책 결정자, 행정가로서의 황제는 어떤 모습일까? 황제는 일상 행정 업무를 얼마나 직접 처리했을까? 어떤 종류의 문제가 그에게 전달됐을까?
여가 시간 : 고대 로마 사회의 관심은 검투사 경기, 전차 경주, 극장 공연 등의 대중오락에 크게 집중되었다. 황제는 여기에서 열렬한 애호가, 너그러운 주최자, 공연 참여자 역할을 오가며, 대중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여행 : 황제들을 이탈리아 바깥으로 끌어들인 것은 무엇이었을까? 황제들은 군사적 영광과 전쟁의 이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제국을 탐험하고 찬탄하기 위해 여행에 나섰다.
황제의 얼굴 : 로마 시민 대다수는 황제를 직접 보지 못했다. 오로지 로마제국에 흘러넘쳤던 조각상과 초상화를 통해서만 볼 수 있었다. 로마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황제의 초상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
죽음 : 황제는 온갖 종류의 죽음을 맞았다. 자연사는 드물었고, 암살이 대부분이었다. 정권 교체를 원한다면 죽여야 했다. 황제의 장례식은 죽음의 상황에 따라, 그리고 남은 사람의 이익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졌다.
추천평
완벽한 이야기꾼인 비어드의 서사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대중적이어서 로마 제국에 관심 없는 완고한 독자조차 그녀의 주제에 호감을 갖게 한다.
- 제니퍼 스잘라이 (뉴욕 타임스)
- 제니퍼 스잘라이 (뉴욕 타임스)
고전학의 여왕이 돌아왔다! 학자와 교육자의 경계를 능수능란하게 넘나드는 비어드의 ‘로마 황제’ 이야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엄격하고 사려 깊은 작업에 감사하다.
- 메러디스 커밍스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 메러디스 커밍스 (피츠버그 포스트 가제트)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통치자의 삶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모르는 것을 다시 살펴보는 생생한 방법. 집단 초상화의 걸작이며, 친숙한 문명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되 경멸하지 않는 친절한 초대장이다.
- 카일 하퍼 (월스트리트 저널)
- 카일 하퍼 (월스트리트 저널)
모호하고 매혹적인 인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비어드는 로마인들이 어떻게 권력을 표현하고 행사했는지, 1인 통치가 어떻게 사회의 모든 계층에 반향을 일으켰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든다. 무엇보다 로마의 황제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 스테퍼니 매카터 (워싱턴 포스트)
- 스테퍼니 매카터 (워싱턴 포스트)
이 스릴 넘치는 책을 다 읽고 나면 황제의 눈을 똑바로 직시할 수 있을 것이다. 비어드는 거칠고 자극적인 이야기를 무시하는 대신 그 이야기들에 기대어 고대 로마 통치자들을 둘러싼 환상, 욕망, 투사(投射)의 소용돌이 속으로 우리를 이끈다.
- 캐스린 휴즈 (가디언)
- 캐스린 휴즈 (가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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