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국근대사 연구 (독서>책소개) 471

조선 청년이여 황국 신민이 되어라

책소개 식민지근대화론을 반박하는 강력한 근거, '강제 징용 뉴라이트는 일본 식민지 시절 우리역사를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설명했다. 착취는 당했으나 발전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은 '착취'보다는 '발전'에 초점을 맞춘다. 어쨌든 경제발전을 했고 근대로 이행하지 않았냐는 설명이다. 과연 일본에 강제로 징용당한 군인과 노동자에게도 이러한 설명이 가능할까. 일본은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며 방대한 규모로 조선인을 강제로 동원했다. 강제 동원으로 끌려간 곳에서 감시와 차별, 학대를 견디지 못하고 죽은 이들도 많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중에 석연치 않은 이유로 죽은 이들도 많았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일제의 폭력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건이다. 우키시마호 폭침사건은 일본에서 미군의 수뢰 때문에 벌어진 우..

일제의 흔적을 걷다

책소개 뜻밖에 마주친 일제의 유산,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 알면 보이고 모르면 지나치는 역사의 현장, 우리 땅 곳곳에 숨은 일제의 흔적을 다시 찾다 일제 강점기는 우리가 두 번 다시 겪지 않아야 할 불행한 역사이자 뼈아픈 기억이다. 그 과거를 잊지 않기 위해 지금도 많은 영화와 연극, 소설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아물지만 역사는 잊어버리면 또다시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일제 강점기를 기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일제가 남긴 흔적들을 직접 둘러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해방 후 70여 년이 지나면서 조선총독부 등 일본의 지배를 상징하는 건물들은 파괴되거나 철거되었다.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시설들은 뜻밖의 장소에 모습을 감춘 채 여전히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한적한 시골길이나 섬마..

전봉준, 혁명의기록

민중역사학자 이이화가 '발견'해 재조명한 전봉준 평전이다. 저자는 지난 1994년에 조직된 '동학농민전쟁 100주년 기념 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봉준을 새롭게 만났고 이 책의 집필을 계획했다. 그러나 한 인간의 삶을 재조명하기에 문자로 남은 단편 기록은 자료로서 불충분했고, 구전되는 기록은 사실관계를 증명하기 어려웠다. 특히 민간에 전해지는 기록의 경우 '영웅'을 바랐던 민중의 바람이 개입돼 내용이 미화되기 일쑤였고, '역적'으로 몰려 죽은 탓에 조선 지배세력은 전봉준의 좋은 주장도 나쁘게, 바른 행동도 그르게 그렸을 뿐 아니라 아예 배제하곤 했다. 이런 탓에 전봉준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나름의 해석을 내려 자기 주장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

청일전쟁 : 근대 동아시아 문제의기원

각 나라 간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해해야 한다. 그리고 청일전쟁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큰 사건 중의 하나다. 하나하나 쌓여온 이 흐름이 지금, 가까운 나라에도 먼 나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청일전쟁은 청국(중국)과 일본만의 일이었는가. 타자의 영역으로 분리되던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어떤 중대한 의미를 갖는지 살펴보는 일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과 그 의미 역시도 묻는다. 목차 프롤로그 - 일본의 전쟁 DNA와 ‘승리 중독’ 1. 서구에 굴복하고 조선을 정복하라 2. 청국과 일본은 대등하다 3. 청국과 일본 틈새의 조선 4. 청일 양국군, 조선에서 물러나다 5. 조선과 청국은 나쁜 친구: 일본의 전쟁 논리 6. 조..

한국 근대사 산책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며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수많은 사건을 큰 그림으로 그린다. 아울러 당시 역사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편견 없이 보여줌으로써 ‘교과서’가 지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역사 인식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전문 지식의 대중화에 앞장서며 수많은 화제를 불러온 강준만 교수는 이를 위해 전문 학자는 물론 당대 신문기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망라하였다. 서구 열강의 침략과 일제의 폭압적 통치에 맞선 조선에도 다양한 삶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역사에 대한 성찰과 함께 한국 사회의 그림자가 형성된 과정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목차 한국 근대사 산책 (전10권) 개화기편 1권: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2권: 개신교 입국에서 을미사변까지 3권: 아관파천에서 하와이 이민까지..

동학운동.청일전쟁.러일전쟁.한일합방 :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대일항쟁의 역사

◈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대일항쟁기 역사 동학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 을사조약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 1894), 실패한 농민(農民) 무장봉기(武裝蜂起) 구한말(舊韓末)의 이씨조선(李氏朝鮮) 역사를 살필 때, 인접국(隣接國)의 상황을 동시적으로 살펴야 한다. 그러한 바는, 21세기 현재에도 별다르지 않다. 당시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Pyotr大帝, 1672~1725) 이후 급속한 근대화를 실현하여, 제국(帝國)의 반열에 올랐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1853~1877)을 통해 급속한 근대화를 실현했고, 역시 제국의 반열에 올랐다. 반면 청(淸)나라는, 태평천국(太平天國)의 난(1851), 아편전쟁(阿片戰爭, 1840, 1856) 등으로써 국운(國運)이 다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조선왕조(朝鮮王朝)은 상황..

탈아입구.정한론.임오군란.갑신정변 : 일제시대 대일항쟁기역사

◈ 일제시대 일제강점기 대일항쟁기 역사 탈아입구 정한론 임오군란 갑신정변 다쓰아뉴오(??入?),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 1835~1901) 인간존재(人間存在)가 체험적(體驗的)으로 역사(歷史)를 접할 수 있는 기간을 흔히 인생(人生)이라고 한다. 그 기간은 길어봐야, 100년이 되기 어렵다. 평균수명(平均壽命)이 많이 늘었다지만, 요새도 100살 가까워지면, 거의 활동이 어려운 상태에 처한다. 그러니 기껏해야, 80년쯤 직접적으로 체험한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인류사(人類史)는 말할 나위 없으며, 지구사(地球史)나 우주사(宇宙史)의 자연사(自然史)에 이르면, 80여 년의 인생(人生) 체험으로는 당최 알 수 없는, 장구(長久)한 시간(時間)의 차원이 되어버린다. 그러다보니 아주 막연하게, 역사(歷史)는..

근대조선과 일본 : 조선의 개항부터 대한제국 멸망까지

조선의 개항부터 대한제국의 멸망까지, 반세기에 걸친 통한의 한국 근대사 갑오농민전쟁 등 조선 민중사 연구로 유명한 재일 사학자 조경달 교수가 그간의 연구 결과를 집약해 서술한 통한의 한국 근대 통사. 19세기 중반 대원군 집권기부터 1910년 8월 29일 대한제국이 멸망하던 날까지 반세기에 걸친 역사를 정치 문화를 중심으로 통사적으로 기술하는 한편으로, 비교사적 차원에서 근대 한일 관계를 고찰하고 있다. 근대 조선의 역사는 [일국사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특히 일본과의 관계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을 [근대 조선사]가 아니라 [근대 조선과 일본]이라고 지은 이유다. 근대 조선은 어떤 연유로 일본과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는가? 근대 서구와 접촉하면서 비교적 원만하게 국민 국가로 ..

매국노 고종

‘비운의 개혁군주’라는 위선과 허상을 고발하다! 대한민국은 현재 분노와 좌절로 가득하다. 사라진 리더십, 붕괴된 경제, 폭증하는 세금, 방향을 잃은 외교…. 우리의 현 상황을 표현하는 말들이다. 그런 21세기 역사의 한복판에 고종이 소환되었다. 그 이유는 쇠락을 거듭하다가 종말을 맞이한 구한말의 상황과 현재의 대한민국이 오버랩되기 때문이다. ‘비운의 개혁군주’로 불리는 고종은 유독 평가가 극명하게 갈려 온 존재다. ‘진실의 역사만이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신념하에 감춰진 역사 발굴 작업을 이어온 박종인 기자가 고종의 실체를 파헤쳤다. 오랜 시간 취재를 통해 국내외 막대한 사료와 기록들을 고증한 결과, 그가 직면한 것은 우리가 배워온 고종의 모습이 전부 허상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오랜 역사의 조선이 ..

제국대한 조센징 : 대한민국 엘리트의 기원, 그들이 돌아와서 무었을 하였나

일본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 1,000여 명에 대한 최초의 기록 그들은 무엇이 되고자 떠났고, 무엇이 되어 돌아왔나? 친일 엘리트 양성소이자 조선 독립운동의 수원지, 제국대학 조선인 유학생들의 흔적을 추적한 집단 전기! 해방 이후 독립 국가를 세우는 데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그중 좌우를 막론하고 근대 일본의 엘리트 육성장치였던 일본 본토의 제국대학에서 유학했던 조선인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들은 상당수가 제국 일본의 관료로 복무하며 친일을 했거나, 제국의 첨단 지식과 관료 경험을 밑천으로 해방 후에도 남북한의 행정, 경제, 사법, 지식 체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물론 제국대학에 유학 갔던 이들이 모두 출세를 염원한 관료가 되지는 않았다. 급진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고 변혁운동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