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일본학 연구 (학부전공>책소개)/7.일본전후사

두 번째 ‘전후’ (2060) - 1960~19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

동방박사님 2023. 3. 25.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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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60~1970년대 일본의 아시아관(觀) 보고서

일본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현상은 망각이다. 무너진 제국이 저지른 식민과 전쟁의 기억은 동서 냉전을 거치며 빠르게 사라졌다. 일본 정치인들의 잇따른 과거사 망언, 풀리지 않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 거기에 평화헌법 개정 움직임까지 일본의 전후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의 ‘전후’에는 아시아가 없다. 이제 우리는 ‘전후’를 둘러싼 일본과 아시아의 불협화음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식민의 잔상, 냉전의 정착’에서는 1960년대 초반 탈식민화의 과제가 냉전 구도에 수렴되는 국면을 다루었다. 2부 ‘교착하는 시선’에서는 일본과 일본을 둘러싼 주변이 서로를 응시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3부 ‘아시아라는 문제’에서는 당대 일본의 진보적 지식인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논리와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검토했다. 전후 시스템이 자리 잡으며 발생한 냉전적 모순과 갈등을 추적해낸 이 책은 오늘날 일본과 동아시아 간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이다.

목차

1부 | 식민의 잔상, 냉전의 정착
1장 ‘조선학/한국학’의 국교정상화: 한국학자들의 ‘조선학회’ 연차대회 참가와 아시아재단의 지원을 중심으로
2장 강박으로서의 식민(지), 금기로서의 제국을 넘어: 1960년대 한국 지식인들의 일본 상상과 최인훈 텍스트 겹쳐 읽기
3장 냉전기 일본 진보파 지식인의 한반도 인식: ≪세계≫의 북조선 귀국사업·한일회담 보도를 중심으로
2부 | 교착하는 시선
4장 두 개의 ‘전후’, 두 가지 ‘애도’: ‘전후’ 한국과 일본, 가난한 아이들의 일기를 둘러싼 해석들
5장 오키나와인과 재일조선인, 상호 응시의 ‘전후’사: 1950~1960년대 조국지향운동을 중심으로
6장 주변을 포섭하는 국가의 논리: 시마오 도시오의 ‘야포네시아론’

3부 | 아시아라는 문제
7장 여행하는 자와 세 개의 지도: 오다 마코토의 아시아·아프리카, 그리고 한국과 북한
8장 ‘원폭’을 둘러싼 상상력의 틀: 베트남전쟁과 ‘아시아’ 담론을 중심으로
9장 ‘아시아적 신체’의 각성과 전형: 일본 신좌익운동과 쓰무라 다카시

 

저자 소개

저 자 소 개
기획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학술총서는 인문한국(HK)사업으로 2007년부터 ‘문화로서의 아시아: 사상·제도·일상에서 아시아를 재구성하기’라는 어젠다로 기획·연구한 성과로 맺은 결실이다. 이 어젠다는 ‘사상과 학지(學知)의 연쇄’, ‘이동의 통제와 탈경계’, ‘감성과 장소의 문화정치’라는 세 가지 주제로 기획되어, 연구소 소속 연구자들은 물론 국내외 유수한 연구자들이 참여했다....
 

책 속으로

덴리대학에서 개최된 조선학회를 둘러싼 한·미·일의 입장은 각기 달랐다. 미국은 냉전 체제하 아시아 전략의 핵심적 현안으로 한일국교정상화를 추진하면서 한국의 쿠데타 정권에 이를 압박했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방침 속에서 민간 기구인 아시아재단 역시 학술 부문에서 적극적인 한일 교류를 유도하는 역할을 자임했으며, 일본 조선학회 연차 회의에 한국학자를 참가시키는 방안이 제안되었다. 아시아재단의 입장에서 보면, 한일 민간 학술 교류의 촉진은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에 부합하는 프로그램이었다. --- p.46

다시 말해 36년간의 식민 통치에 대한 일본 정부 측의 정식 국가 배상이 아닌, 어디까지나 ‘독립 축하금’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협상의 조건들은 동시대인에게 일본을 화두로 좀 더 근본적인 차원의 질문을 던지게 만들었다. 실제로 질문의 프레임은 ‘일본이라는 국가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타자 규정의 문제에서 점차 타자를 통해 구성되는 주체의 문제 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었다. --- p.52

1950년대 중반이라는 시기는 전후 일본이 아시아와 전향적 관계를 구축할 가능성이 최종적으로 봉쇄되고 동아시아 냉전의 ‘외부’에서 냉전 체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던 결정적인 분기점이었다. 패권적 보수 정당인 자유민주당의 탄생으로 상징되는 이른바 ‘55년 체제’는 그러한 사태의 표상과도 같았다. 이 시기는 전후 탈식민화의 과제가 일본 사회에서 망각되고 은폐되는 ‘원형’에 해당하며, 그 후의 역사 전개는 최근까지도 그 ‘변주’에 불과하다. --- p.92~93

일본의 ‘전후’로부터 13년 후에 『니안짱』이, 한국의 ‘전후’로부터 11년 후에 『저 하늘에도 슬픔이』가 각각의 문화적 장에 떠올라 사회적 관심을 끈 것은 일본과 한국에서 ‘탈(脫)전후’ 체제 형성의 움직임이 등장한 것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삶의 비참을 비참으로 느끼고 경험하는 일은 살아남은 자들의 의식, 즉 생존 자체에 몰두하는 삶의 감각은 남아 있으나 그 삶을 관조할 수 있는 거리가 형성될 때 나타날 수 있다. 그렇다면 일본과 한국에서 『니안짱』과 『저 하늘에도 슬픔이』의 출현은 삶의 비참을 말할 수 있는 새로운 체제가 등장했음을 암시하는 것이 아닐까. --- p.134

박수남은 타인을 죽임으로써 스스로를 파괴하는 재일조선인 2세 이진우의 광기에서 그 옛날 해군비행 예과연습생(이하 예과련)을 동경하며 ‘떳떳한 일본인’이 되고 싶어 했던 친오빠의 광기와 자살을 겹쳐본다. 또한 전후에도 계속된 재일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 속에서 조선인도 아니고 일본인으로도 받아들여지지 못한 채 자아를 분열당한 ‘반발이=반일본인’으로서의 재일조선인 2세들의 비명을 듣는다. “반일본인 누구나 자기 안에 이진우를 가지고 있다”라고 그녀는 말한다. --- p.189

야포네시아는 일본을 지칭하는 라틴어 ‘야포니아(Japonia)’에 제도(諸島) 또는 군도(群島)를 뜻하는 ‘네시아(nesia)’를 합성해 시마오 도시오가 처음 만든 용어이다. 야포네시아는 시기별로 다소의 변화를 보이기는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홋카이도 및 지시마 열도를 포함한 동북 지방의 아이누 문화, 본토의 야마토 문화, 그리고 가고시마 현의 아마미오시마와 오키나와 군도를 포함한 류큐 문화를 모두 포섭해 일본을 문화적·역사적으로 재구성하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 p.198

전후 세대로서 오다 마코토가 강조한 것은 “거짓으로 성급하게 자기의 ‘범죄성’을 ‘고발’하기보다는 자신이 왜 ‘자기 안에 내화된 전쟁범죄’를 충분히 자기의 문제로 삼지 못하는지, 도리상으로는 판단한다 해도 왜 몸의 어딘가에 납득할 수 없는 부분이 남는지, 이런 의문을 지속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이 섣부른 자기 고발보다 중요한 이유는 “‘자기에게 내화된 전쟁범죄’를 몸으로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상황 자체가 ‘범죄’이며 이런 식으로 “과거의 ‘범죄’도 일어난 것이고 이 지점에서 나는 지금 ‘공범자’와 다름”없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252~253

이들 작품은 B29 폭격기로 히로시마·나가사키까지 세계에서 처음 원자폭탄을 운반한 승무원(조종사)인 주인공이 자신이 투하한 원폭 때문에 지상에 출현한 ‘지옥’ 같은 현실을 알게 됨으로써 고뇌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모습을, 이 나라 피폭자와의 관계를 통해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가해자가 피해자로, 피해자 또한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전쟁’의 가장 큰 비극과 역설이 솜씨 좋게 그려진다. --- p.271

화청투가 ‘억압 민족으로서의 일본’의 민족적 책임을 추구했다면 쓰무라 다카시는 민족적 책임을 ‘교통 형태의 문제’로 파악했다. 여기서 교통이라는 말은 결코 통하지 못하는 역사를 밝힌다는 역설을 함축하고 있다. 그러면서 일본과 아시아 사이의 분리를 두 가지 층위의 ‘교통사고’로 파악한다. 하나는 일상성에 각인된 역사의 낙차, 다른 하나는 이로부터 오는 투쟁 형태의 낙차이다. 이 두 가지를 근저에서 잇는 것이 재일아시아인의 존재였다.
--- p.308
 

출판사 리뷰

다시 일본을 주목한다

다시 일본이 심상치 않다. 아베 총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개헌을 통해 전후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를 갈아치우겠다는 야심을 공공연히 보여왔다. 일본의 상하원 격인 참의원과 중의원에서도 개헌에 찬성하는 의원들이 3분의 2를 넘은 상황이다. 이들은 오는 2020년까지 개헌을 달성해 자위대가 아닌 명실상부한 군대를 보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전쟁이 가능해지는 일본을 바라보는 아시아의 속내는 불안하다.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에 대한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 없이 일본은 급속도로 보통 국가를 꿈꾸고 있다. 무엇이 일본을 과거의 참상을 잊은 채 반성하지 않는 괴물로 만들었을까?
이 책을 만든 성공회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 ‘전후 일본 세미나팀’은 애초부터 이와 같은 문제의식을 공유하며 지속적으로 세미나를 진행해왔다. 그리하여 ‘전후’ 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미완의 탈식민화와 동아시아의 냉전 질서가 갖는 구조적 모순을 포착해냈다. 『두 번째 ‘전후’: 1960~1970년대 아시아와 마주친 일본』은 이 같은 공동 연구의 세 번째 성과물이다. 연구에 참여한 9명의 학자들의 전공은 경제사, 사회학, 문학 등으로 퍽 다양하다. 연구 참여자들의 다양한 지적 배경은 일본을 다양한 각도에서 조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저자들은 현대 일본을 이해하기 위해 1960~1970년대의 일본, 즉 태평양전쟁과 한국전쟁이 막 끝나고 전후 복구와 민주주의 정착에 매진할 무렵의 일본으로 돌아갔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두 번째 전후’는 미 군정이 종료된 뒤에 일본이 맞닥뜨린 시기를 가리킨다. 이 시기 일본에서는 재일조선인 귀국사업, 오키나와 조국복귀운동, 한일회담, 베트남 반전운동, 화청투 고발 등 다양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들, 재일조선인과 오키나와인들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봤는지, 더 넓게는 아시아와 일본이 어떻게 조우했는지 추적한다.

냉전이 집어삼킨 식민과 전쟁의 기억

1부 ‘식민의 잔상, 냉전의 정착’에서는 한일국교정상화가 이루어지기 전인 1960년대 초반 탈식민의 과제가 냉전의 역학에 수렴되어가는 국면을 다룬다. 먼저 1장에서는 해방 후 한일 간 첫 번째 공식 학술 교류의 장이었던 일본 ‘조선학회’의 활동에 주목해 한일 간 탈식민적 관계와 안보 전략의 과정을 밝히며, 2장에서는 최인훈의 텍스트를 통해 당시 한국사회가 ‘일본’이라는 키워드를 경유해 제기했던 모험적인 사유들을 읽어낸다. 그리고 3장에서는 전후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언론인 ≪세계≫의 북한 ‘귀국사업’과 한일회담 보도를 통해 식민지 지배 책임이라는 문제에 대해 일본 진보 지식인들이 보여준 인식의 결여를 지적한다.
2부 ‘교착하는 시선’에서는 일본과 아시아, 혹은 주변부가 ‘전후’ 시공간의 격차 속에서 상호 ‘응시’하는 순간들을 포착했다. 4장은 가난하고 비참한 삶을 사는 아동의 일기가 각각 한국과 일본에서 번역·영화화되어 대중적 동정 속에 문화적으로 전유되는 과정을 검토하면서 그 안에 내재한 정치-의미론적 맥락을 고찰한다. 5장에서는 오키나와와 조선이 각자의 정체성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주체적으로 선택해 외국군 철수를 통한 민족 해방을 이루고 제3세계 아시아 ‘인민’이 되고자 했음을 밝히며, 6장에서는 류큐와 아이누를 포함해 일본을 내부에서 파열시키려 했던 지리 공간적 개념인 시마오 도시오의 ‘야포네시아론’에 대해 심층 조명한다.
3부 ‘아시아라는 문제’에서는 일본 지식인들이 아시아와 마주치는 순간들을 포착하고 그 논리와 방식이 무엇이었는지를 검토한다. 7장에서는 일본의 대표적인 진보 지식인 오다 마코토의 한국, 북한 방문기를 전후 일본 지식인의 세계인식-자기인식-타자인식이라는 문제계에 놓고 독해하며, 8장에서는 1960년대 원폭 관련 작품에 나타난 ‘아시아 담론’을 베트남전쟁과 한일국교정상화와 함께 등장한 미군에 대한 기억, 그리고 식민지 지배의 기억이 복잡하게 얽히는 과정과 함께 읽어낸다. 마지막으로 9장에서는 1970년대 쓰무라 다카시의 출입국관리 반대투쟁과 반차별론을 중심으로 당시 일본에서 아시아 또는 제 3세계와의 만남이라는 과제가 어떤 논리 속에서 인식되었는지를 추적하고 있다.

전후 일본을 통해 현대 일본을 이해한다

전쟁이 끝나고 전후 복구 노력이 결실을 맺어가던 1960~1970년대 일본은 아시아와 화해하는 대신 미일동맹을 통해 동아시아의 냉전 질서를 강화하고 이용하는 길을 택했다. 전후의 패배감과 상실감은 일본 안에서 민족주의가 성장할 수 있는 좋은 토대가 되었다. 전후 잃어버린 옛 제국의 영역은 한반도처럼 의도적인 망각의 대상이 되거나, 류큐(오키나와)처럼 일본이 되찾아야 할 영토가 되었다. 특히 미군이 점령한 남방의 섬 오키나와는 일본인들에게 패전의 상처이자 일본 특유의 피해자 의식의 상징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책은 이러한 일본현대사의 중요 결절점인 ‘전후’시스템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냉전적·자본주의적 모순을 아시아 혹은 제3세계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분석함으로써 냉전체제 아래 형성된 일본의 국가적 성격을 규명하고 있다. 사실 이번 연구에서 급격히 보수화하는 일본을 상대로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한다는 등의 대안이나 방향 제시는 미약하다. 다만 우리의 현대사가 식민, 해방, 전쟁, 군사독재 등으로 왜곡된 만큼이나 일본의 아시아 인식도 왜곡되었음을 이 책은 밝혀낸다.
특히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 돋보인다. 어느 나라나 보수 세력, 더 심하게는 반동 세력까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보적이고 양심적인 세력이 건재한 나라라면 희망은 있다. 일본인들에게 막연한 도덕적 비난이나 책임을 지우기에 앞서 현대 일본 지식인들의 사상, 왜곡, 전향 등을 지켜보면서 일본 이해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 이 연구의 의의가 있다.
프랑스의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유물론’에서 서로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이 응고함으로써 역사가 형성된다고 보았다. 이 책에 등장하는 1960~1970년대 사건들 역시 서로의 우발적인 마주침의 흔적일 뿐이다. 그 흔적들이 우리에게 풍부한 역사를 제공했는지의 판단은 이제 독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