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문
彰義門
시대 1396년 (태조5년) . 창의문은 인왕산과 백악산이 만나는 곳에 있는 문이다. 사소문 중 유일하게 조선시대에 지어진 문루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 문루는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741년(영조17)에 다시 세운 것으로, 문루를 새로 지으면서 인조반정 때 반정군이 이 문으로 도성에 들어온 것을 기념하기위해 공신들의 이름을 새긴 현판을 문루에 걸어 놓았다. 이 문 부근의 경치가 개경(開京)의 승경지(勝景地)인 자하동과 비슷하다고 하여 자하문이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창의문 彰義門
서울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4대문(四大門), 그 사이에 4소문(四小門)을 두었는데 창의문은 서대문과 북대문 사이의 북소문(北小門)으로 '올바른 것을 드러나게 하다' 는 뜻이 있다. 그러나 창의문은 북소문으로 불린 적은 없었고 이곳 계곡의 이름을 빌어 자하문(紫霞門)이라는 별칭으로 불려왔다. 태종13년(1413년)에 풍수학자 최양선(崔楊善)이 "창의문과 숙정문은 경복궁의 양팔과 같으므로 길을 내아 지맥을 상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건의한 것을 받아들여 두 문을 닫고 소나무를 심어 통행을 금지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창의문이 서울 성곽의 문루로서 제구실을 하게 되는 것은 영조17년(1741) 이곳을 수축할 때였다. 당시 훈련대장 구성임이 " 창의문은 인조반정91623년) 때 의군(義軍)이 진입한 곳이니 성문을 계수하면서 문루를 건축함이 좋을것" 이라고 건의한 것이 받아들여서 비로서 세워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1956년 창의문 보수공사 때 천장 부재에서 묵서로 된 기록으로 확인되엇고, 지금 창의문에는 인조반정때 공신들의 현판을 새겨놓은 현판이 걸려있다.
창의문형태는 전형적인 성곽 문루의 모습으로, 서울의4소문 중 유일하게 옛 모습응 간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수백년간 사람의 발길에 길들여진 막석이 윤기를 발하고 있다 특히 빗물 잘 흘러내리도록 문루 바깥쪽으로 설치돈 한 상의 누혈(漏血) 장식은 연잎 모양으로 맵시 있게 조각되어 이 성문의 건축 단장에 매력을 더해주고 있다. 그리고 성문 무지개모양 월단 (月團) 맨 위에 있는 봉황 한쌍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는데, 속설에 의하면 이는 닭 모양을 그린 것으로 창의문 밖 지형이 지네처럼 생겼으므로 지내의 천적이 닭을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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