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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디지털 전환 시대,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노동은 어떤 모습을 띠는가?
사회안전망은 왜 이들을 보호하는 데 실패하는가?
불안정노동에 대한 정교한 연구 노트
지난 몇십 년간 노동의 형태가 변하면서, ‘노동자 계급’이나 ‘프롤레타리아트’와 같은 전통적인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의 일이 등장했다. 외주화된 청소노동자, 콜센터 노동자, 아픈 노동자, 해고 노동자, 불안정한 청년노동자, 하청노동자, 프리랜서, 플랫폼노동자, 새벽 배달노동자,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와 가짜 자영업자 등이 그 예다. 주목할 점은 불안정노동이 단순히 직종, 성별, 연령대 등에 의한 분류가 아니라 일의 특성에 따른 새로운 분류라는 것이다. 불안정노동자는 비정규직, 일일 노동자, 단기계약자뿐 아니라 유튜버, 크리에이터, 플랫폼노동자 등 신종 직종으로 그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독립적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로 보이며,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노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속에서 쉼없이 일하며 적절한 소득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기술 발전에 따른 플랫폼경제와 첨단산업 발전이라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왜 노동자들의 권리는 발맞추어 확장되지 못하는가? 왜 우리의 노동은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력으로 취급받는가?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을 비롯한 전통적 의미의 불안정노동자뿐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에 밀착해, 이들이 겪는 모순적 노동을 적확한 사회학적 용어로 개념화하고, 그 삶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사회보장제도를 제안한다. 국내외에서 노동 연구로 주목받아온 중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승윤의 첫 책으로 영미권에서 선출간된 『불안정노동의 다양성Varieties of Precarity』을 국내판에는 최초로 수록해 ‘액화노동’ 연구를 살필 수 있다. 노동 연구자로서 학문적 성실함과 윤리적 태도를 겸비한 그의 연구와 관점은 이 사회 노동의 ‘실재’를 파악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목차
ㆍ책머리에
불안정노동자들의 삶을 좇다, 그 유동하는 세계를 해부하다
1부 격랑의 노동현장, 준비되지 않은 사회
1. 시간과 돈, 모두 부족한 이중빈곤자
2. 새벽노동, 퇴행적 혁신
3. 산재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
4. 화물연대 파업과 ‘가짜 자영업자’
2부 노동자가 쓰러진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5. 아프니까 가난이다
6. 공업도시 울산으로
7. 해고, 추락의 시작
8. 아이들이 먹는 밥이 누군가의 삶을 담보로 한다면
3부 청년노동, 누가 무엇을 말하는가?
9. 청년과 ‘MZ’ 사이
10. 매우 불안정한 삶 vs. 불안정하지 않은 삶
11. 청년 담론에서 ‘계급’이 지워질 때
12. ‘시그니처 정책’이라는 주문
4부 경계에서의 고민
13. 학자는 왜 무지한가
14. 한국에서 여성 연구자로 산다는 것
15. 연구자의 쓸모
16. 주류 학자집단에 속한다는 것
17. 연구 대상자와 연구자 사이
연구 노트: 불안정노동의 다양성과 액화노동
저자 소개
저 : 이승윤
중앙대학교 사회복지학부 교수.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사회정책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주요 관심 영역은 비교 사회정책, 동아시아 복지국가 및 노동시장, 여성 노동시장, 불안정 노동과 소득 보장 제도, 제도주의와 비교 연구 방법론이다. 역사적·질적 비교연구, 퍼지 집합 분석 등을 활용한 국가 간 복지국가 비교 연구와 불안정 노동, 소득 보장제와 관련해 심도 있는 연구를 진행하며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집필했다. 지...
책 속으로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의 궁극적 목적은 단순히 경제성장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이 여전히 가난하고 불안정하다는 익숙한 서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일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불안정성이 어떻게 그 모습을 드러내는지, 그리고 불안정노동자를 둘러싼 제도적 노력이 어느 부분에서 실패하는지, 무엇보다 불안정노동과 사회정책을 내가 어떻게 연구하며, 무엇을 배웠는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동시에 많은 나를 포함한 연구자, 정책 입안자, 정치인, 그리고 행정가들이 이러한 현실과 얼마나 괴리되어 있는지도 반성적으로 살피고자 했다.
--- 「책머리에」 중에서
높은 산업재해율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보험이 실질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불안정노동자들의 보호막이 없다는 점도 여러 연구들을 통해 나타난다. (...) 2020년 5월 기준 특수형태고용종사자의 16.84%만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산재보험에 가입된 경우라도 내가 연구를 통해 만난 많은 불안정노동자는 산재신청을 아예 포기하거나 공장주나 회사에서 사적으로 병원비를 일부 지원받는 등 공상처리로 끝내는 것이 다반사다. 산재신청의 지난한 과정에서 당장의 소득이 더 절박한 불안정노동자가 신청을 포기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 「산재사고 이후, 남겨진 사람들」 중에서
한국에서는 아픈 노동자가 가난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안전판이 현저히 부실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1940년대부터 무상의료가 도입된 영국에서는 아파서 가난해지는 경로를 막아주는 공공의료라는 안전판이 존재한다. 반면 한국에서는 현재까지도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이 문제되기 때문에 아픈 노동자가 가난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건강보험 혜택이 환자들의 병원비에 충분한 보탬이 되지 못한 결과, 중산층도 큰 병에 걸리면 빈곤층으로 떨어지게 된다는 의미다. 이른바 한국의 ‘재난적 의료비’에 관한 연구들은 과도한 의료비 부담으로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빈곤층으로 떨어지거나, 질병 탓에 빈곤층이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을 실증적으로 제시했다. 더욱이 대부분의 OECD 회원국과 달리, 한국에서는 정부에서 지원하는 ‘상병수당’이 존재하지 않는다.
--- 「아프니까 가난이다」 중에서
실업급여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 대부분의 응답자들은 구직과정에서 사적 관계에 많이 의존했으며 정부 고용센터에서 제공되는 직업 알선 또는 취업 서비스 등의 활용도 단기 소득활동 중단으로 인해 매우 낮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결국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인 빈곤층으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외부 노동시장을 전전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 「해고, 추락의 시작」, 104쪽
특정 세대를 표상하는 정체성 정치가 얼마나 쉽게 계급 정치를 지울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청년’이라는 단일한 범주로 묶인 집단 내에 계급에 따라 상이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데도, 이러한 차이는 ‘세대 갈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희석되었다. 더욱이 언론에서 단편적으로 드러난 청년세대의 표상은 실재를 드러내기에는 심각한 한계가 있었다. 소수의 목소리가 마치 전체 청년의 의견인 것처럼 확대 재생산되면서, 청년 내부의 다양성과 복잡성은 무시되었다. 이는 결과적으로 청년문제에 대한 사회적 이해를 왜곡하고, 실효성 있는 정책 수립을 방해하는 요인이 되었다.
--- 「청년과 ‘MZ’ 사이」 중에서
2002년 청년들 중에서는 ‘약간 불안정’한 상태로 일하고 있다고 분류된 집단의 규모가 가장 컸다. 그리고 중간층은 많아도 매우 불안정한 청년의 비율과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청년(안정)의 비율은 적었다. 하지만 2022년에는 그 양상이 달라졌다. 매우 불안정한 집단과 전혀 불안정하지 않은 집단, 다시 말해 양극단의 경험을 하는 청년의 비율이 각각 1.5배, 2배 가까이 높아졌다. 그리고 중간적 위치를 차지한 ‘약간 불안정한’ 집단에 속한 청년의 비율은 60%가량 줄었다. 아주 불안정한 청년들과 동시에 불안정하지 않은 청년들이 늘어나면서 심각한 양극화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매우 불안정한 삶 vs. 불안정하지 않은 삶」 중에서
학자는 자신의 계급적 위치성을 이해하고 연구 대상자를 타자화할 위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해야 한다. 현실 분석에 있어서도 이론 또는 통계적 수치로 보증되는 전문성에 대한 무조건적 신뢰를 경계하고 자신의 이해와 경험을 넘어서는 실재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 지식인의 ‘시대적 책임감’이라는 개념이 이제는 아득하고 좀처럼 사용되지 않는, 어쩌면 ‘위선’으로 비치기도 하는 시대인 것 같다. 하지만 학자가 가져야 할 ‘시대적 책임감’이라는 개념에 무작정 냉소를 던지는 것은 무지로 가는 길을 재촉할 뿐이다.
--- 「한국에서 여성 연구자로 산다는 것」 중에서
노동이 기존의 표준화된 모습과는 다르게 변화하는 현상을 ‘액화노동’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노동의 개념을 전통적으로 구성하던 여러 경계가 녹아내리고 있는 이 현상은, 기존에 유지되어온 법 제도를 공부하면서 더 확연하게 관찰되었다. 액화노동은 비표준적non-standard이고 비정형적atypical인 노동 형태를 포괄한다. 여기에는 비정규직, 하청노동부터 근로자성 자체가 형해화된 프리랜서와 플랫폼노동, 긱노동, SNS 크리에이터, 그리고 ‘세분화된 일감을 맡는’ 다양한 형태의 크라우드노동crowd work까지 포함된다. 액화노동은 일반적으로 근로기준법에 규정된 일의 방식과 작업장의 범위 그리고 정해진 노동시간, 고용주와 노동자의 명확한 관계에서 벗어나 있다. 구직 방식, 계약 방식, 기술 습득 방식뿐 아니라 임금 산정 방식, 노동시간, 통제 방식까지도 달라진 것이다. 액화노동에서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종속성이 존재한다. 1인 자영업자나 특수고용 관계 노동자는 법적으로 일감을 제공하는 사람과 독립적인 계약 관계를 맺은 듯하지만, 사실은 일방적인 종속성을 띠거나 계약자가 통제받는 경우가 많다.
--- 「연구?노트:?불안정노동의?다양성과?액화노동」 중에서
추천평
종종 경이로웠다. 노동시장에 대한 정교한 분석과 엄밀한 논증을 하는 연구자가 이토록 뜨거울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그는 문제가 자신에게 다가오길 기다리는 연구자가 아니었다. 머리만큼이나 부지런한 발로 현장을 먼저 찾아간다. 새벽배송을 마친 노동자를 만나고, 조선소에서 일하다 동료를 잃은 하청노동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산업재해로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손을 잡는다. 자신은 그 자리에서 살아본 적 없는 대학교수이기에, 그 슬픔에 온전히 다가가기 어렵다고 언제 그 고통을 대상화할지 모른다고 인정하고 또 내내 의심하면서, 그는 전진한다. 자신의 빈곤을 증명해야 하는 빈곤층이 복지제도 앞에서 겪는 모멸감에 분노하고 낯선 연구자들을 만나 화물연대 노동자 파업에 연대를 호소하며, 지식인의 책임이라는 그 고루하고 빛바랜 이름을 기꺼이 자신의 몫으로 끌어안는다. ‘한쪽의 책임은 너무 가볍고, 다른 쪽은 너무 무거운’ 세상을 견딜 수 없는, ‘아이들이 먹는 밥이 누군가의 삶을 빼앗은 덕분이라면 그 밥은 맛있으면 안 된다’ 말하는 사람. 이승윤의 첫 책이다.
- 김승섭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아픔이 길이 되려면』저자)
빈곤과 불안정성에 관한 나의 연구는 회의와 무력감으로 길을 잃곤 했다. 삶의 안정성이 뿌리 뽑힌 시대에 정규직 교수라는 희귀종이 사회를 논하는 게 가당키나 한가? 내가 ‘위선’이란 두 글자 사이에 끼여 옴짝달싹 못하고 술만 축내던 사이, 어떤 이는 지독히도 성실히 살아 사회를 조금이라도 바꿔내고 있었다. 이 책의 저자 이승윤 교수다. 젊은 여성 연구자인 그에 대한 대한민국 주류 학계의 인정이 굼떴을 뿐, 이승윤은 불안정노동과 사회보장 연구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연구자다. 이번에 출간된 그의 연구 노트에는 모순을 직시하되 쉽게 냉소하지 않는 지식인의 건강함이 배어 있다. 우리가 잠시 안타까워하며 지나친 노동현장에서 새로운 형태의 불안정성을 포착하기. 고매한 학자가 발을 담그기 주저하는 정책 입안의 난장에서 고민과 통찰을 길어내기. 숫자와 그래프 너머 번잡한 삶을 기꺼이 마주하며 논쟁을 이어가기. 그가 경험으로 쓰고 내가 다짐으로 읽은 이 책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내며 연구하는, 연구하며 살아내는 모두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 조문영 (연세대학교?문화인류학과?교수,?『빈곤?과정』?저자)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35903369>
'31.사회학 연구 (독서>책소개) > 5.노동문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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