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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의 이념대립, 승자는 (2025) - 대통령 탄핵을 중심으로

책소개보수우파와 진보좌파 이념 대립이 심하고, 더구나 40대는 진보좌파 일색이다. 그런데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념의 객관적 기준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헌법이다. 그런데 헌법에 바탕을 둔 이념적 논의가 보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려는 취지에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현재의 대통령의 계엄선포와 탄핵사태도 이념 대립의 산물이다. 비상계엄이란 극단적 조치를 한 것은 납득하기 어렵지만, 이를 ‘내란죄’라며 대중 선동을 일삼는 더불어민주당도 보기 딱하다. 대법원의 전원합의체판결에 의하면 2시간 동안 소수 병력이 국회를 통제한 것만으로는 ‘국헌문란의 시간적 요건’을 갖췄다고 보기 어렵다. 그러면 내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비상계엄 선포 이유가 합헌인지 논란의 여지가 많으나, 국회가 29차례 ..

국민이 먼저입니다 (2025) - 한동훈의 선택

책소개계엄의 바다를 건너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한동훈의 국민을 위한 ‘선택’과 ‘생각’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이 대한민국을 뒤흔든 그날 밤, 역사의 질문을 받은 한동훈은 ‘계엄 반대’를 선택했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바에 따라 행동했다. 정치인 한동훈의 첫 번째 단독 저서로서 그 의미가 큰 이번 책은 ‘한동훈의 선택’과 ‘한동훈의 생각’ 두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한동훈의 선택’에서는 비상계엄 반대, 계엄 해제 의결, 질서 있는 조기퇴진 시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그리고 당 대표 사퇴까지의 14일 300시간의 이야기가 다큐멘터리 영화를 보듯 생생하게 펼쳐진다. 아울러 대담형식으로 수록된 ‘한동훈의 생각’에서는 정치를 하는 이유, 공직자로서의 사명, 한동훈이 꿈꾸는 행복한 나라 등 그의 정치관..

구로베 저편의 목소리 (2023) - 구로베 협곡에 흐르는 조선인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

책소개일본인이 이야기하는 조선인 강제 노동의 실제!아름다운 구로베 협곡에 흐르는조선인의 피와 땀 그리고 눈물을 찾아 거슬러 가는 여정일본 도야마현에 위치한 구로베댐은 일본에서 가장 큰 규모와 높이로 유명한 곳이다. 4개 댐의 총 공사 기간만 무려 40년이 걸린 이 거대한 댐은 일본의 건축 기술을 집대성한 구조물로 손꼽히며, 매년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유명 관광지이다. 그러나 이렇게 아름답고 웅장한 풍경을 자랑하는 구로베댐 아래 조선인 강제 징용의 역사가 묻혀 있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지 않다. 저자 3인은 당시 조선인이 왜 바다 건너 구로베까지 와서 일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들의 존재가 어둠 속에 묻혀버린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바탕으로 구로베댐의 건설 과정, 특히 구로3과 구로4를 중심으로 추적한다.구로..

차의 역사 (2025)

책소개차는 수천 년 동안 세계사에서 단순히 음료로서의 역할 뿐만 동양과 서양을 오가며 의료, 정치, 예술, 문화, 종교 등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는 시인들에 의해 상징화되고, 영혼을 치유했으며, 배반과 폭력, 밀수, 아편, 국제적인 스파이행위, 노예, 그리고 혁명에 영향을 미쳤다. 2004년에 이미 세계 차 생산량은 320만 톤에 이르렀는데, 이것은 40년 전 생산량의 3배에 달한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매일 38억 잔의 차가 마셔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 세계 음료 시장의 60%이상을 차지하는 차는 커피와 함께 현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음료로 자리를 잡고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차에 대한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은 현대사뿐만 아니라 세계의 역사를 살펴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은 풍부한 역사적 사료들을..

독재 군주의 최후 (2025) - 나쁜 왕은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는가

책소개자기에 대한 과신, 빈약한 현실 인식, 도움이 안 되는 측근, 자화자찬으로 점철된 현실 도피, 뻔히 보이는 위협을 일삼던 우리 역사의 지도자들. 간혹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무책임하며 욕심에 찌든 인간이 왕이 될 때가 있었고, 우리는 이들을 폭군이라 부른다. 폭군은 나쁜 짓에만 매우 유능했고, 주변에 모여든 간신들도 자기 욕심 채우는 데 천재적이었으며, 이로써 세상은 도탄에 빠졌다. 그러나 나쁜 왕은 결국 쫓겨나 비참하게 죽고, 나라는 그를 희생시키며 다시금 부활했다. 실패한 왕은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목차서문 · 나쁜 왕은 어떻게 나라를 망가뜨리는가실패한 왕들처형당한 부여의 왕 | 비난당한 왕들 | 왕의 악덕 | 시대의 희생자인가, 자업자득인가[역사 속 몰락한 왕 1] 고려 의종 - 푸대접..

귀화를 넘어서 (2025) - 러시아로 간 한인 이야기

책소개러시아 한인의 다양한 이주 양상을 분석해 정체성 문제 심층 탐구이 책은 귀화라는 관점에서 20세기 초 러시아 한인들의 정착 과정과 삶을 조명한다. 기존 연구가 주로 독립운동사나 민족주의적 서술에 초점을 맞췄다면,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을 단순한 디아스포라(diaspora)를 넘어 초국적(transnational) 행위자로서 주목한다. 저자는 러시아 이주 한인이 생존을 위해 어떤 선택을 했으며, 국가권력과 어떻게 상호작용했는지를 실증적으로 분석한다. 이를 통해 그들이 고국과 거주국 사이에서 정체성을 형성하고, 생존과 정치적 입장을 조율한 과정을 보다 생동감 있게 설명하고자 한다. 다양한 사료를 활용하여 한인의 일상생활과 법적 지위, 노동 및 정치활동 등을 입체적으로 조망했다는 점도 돋보인다.목차프롤로그..

[교육]제23기 통일아카데미 수강생 모집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는 대학(원)생 및 시민들의 통일, 북한문제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높이고 통일한국을 이끌어 나갈 미래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2007년부터 통일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습니다.이번 학기에는 제23기 수강생을 다음과 같이 모집하오니 많은 관심과 지원 바랍니다.- 모집기간: 2025년 3월 3일(월) ~ 4월 2일(화)- 제출서류: 아래 첨부된 제23기 통일아카데미 지원서 1부- 접수처: 통일아카데미 담당자 메일 (tongil@snu.ac.kr)

DAK 인도적지원 • 난민 • 이주 분과_2025 정기 강좌 시리즈 참여자 모집

"DAK 인도적지원 • 난민 • 이주 분과" 2025 정기 강좌 시리즈 참여자를 모집합니다.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 대상: 인도적지원, 난민, 이주에 관심있는 활동가⊙ 참가비: 무료⊙ 참여방식: 온/오프라인 자율 참가 가능(오프라인 장소 구글 신청 링크에서 확인)⊙ 참가신청: QR 코드 접속하여 신청 자세한 내용은 포스터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130차 KIUS 포럼] 교류협력에서 기후, 생명 및 평화의 가치(3.26)

강원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에서 "교류협력에서 기후, 생명 및 평화의 가치"이라는 주제로 제130차 KIUS 포럼을 개최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 주제: 교류협력에서 기후, 생명 및 평화의 가치⊙ 강사: 정성헌 (한국DMZ평화생명동산)⊙ 일시: 2025년 3월 26일(수) 13:00⊙ 장소: 강원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1호관 103호자세한 내용은 포스터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제129차 KIUS 포럼_DMZ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3.19)

강원대학교 통일강원연구원에서 "DMZ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이라는 주제로 제129차 KIUS 포럼을 개최합니다. 많은 관심과 참여를 부탁 드립니다. ⊙ 주제: DMZ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강사: 이헌수 (남북강원도협력협회)⊙ 일시: 2025년 3월 19일(수) 14:00⊙ 장소: 강원대학교 동물생명과학대학 1호관 103호자세한 내용은 포스터를 참고해주시기 바랍니다.

[웹북] 한티 천주교 박해 (1868)

한티 천주교 박해1868년에 경상북도 칠곡군에 있는 신나무골과 한티에서 천주교인들이 순교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신유박해(1801년) 때 탄압을 피해 깊은 산골로 피신하여 생활하던 천주교인들이 을해박해(1815년)로 대거 대구 감영에 수감되었다. 그 가족들이 옥바라지를 하기 위해 대구 감영이 가깝고 숨어 살기에 알맞은 신나무골과 한티에 모여 살게되었다.정해박해(1827년) 이후에도 이어진 여러차례 박해사건 때마다 탄압을 피해 각지에서 피난 온 신자들이 한티에 와서 신자촌을 이루며 살았다. 이들은 옹기와 숯을 굽고 화전을 일구며 생계를 이어갔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한 다블뤼 주교와 1849년 입국한 최양업 신부가 1861년까지 12년 동안 경상도를 순회 전교할 때 한티와 신나무골을 방문했었다. 달레의 『..

[웹북] 병인박해 (1866)

병인박해병인박해(丙寅迫害)는 1866년(고종 3년) 조선 말기 흥선대원군 정권에 의해 벌어진 대규모의 천주교 탄압을 말한다.병인사옥(丙寅邪獄)이라고도 하며, 1872년까지 6년간 진행된 탄압으로 당시 8,000여 명이상의 평신도와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 등이 처형되었다. 흥선대원군은 본래 천주교에 대한 반감이 없었기 때문에 탄압을 하려는 계획이 없었다.오히려 프랑스 선교사들을 통하여 프랑스의 도움을 이끌어 내어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막으려고까지 했었다. 그러나 대내외적인 변화로 인해 자신의 정치적인 입지가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천주교에 대한 박해 정책을 실시하였다.[4] 1866년 봄부터 시작된 박해는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년 8월), 병인양요(1866년 10월), 남연군 분묘 도..

[웹북] 경신박해 (1860)

경신박해1849년에 즉위한 철종은 성품이 온건하였고 당시의 집권세력인 안동김씨 가문도 유화정책을 썼으므로, 천주교는 점차 교세가 성장하였다. 한 해에 약 1,200명 이상의 새신자들이 입교하였고 전국의 신자수는 약 16,700명에 달하였다.그런데 기해박해(1839년, 헌종 4년)때 천주교도 색출에 공을 세운 금위대장 임성고의 아들인 좌포도장 김태영이 천주교에 대한 개인적인 반감으로 우포도장 신명순과 함께 천주교 박해를 자행하였다. 이들은 조정의 허락도 없이 서울과 지방의 교인촌을 급습하여 30여명의 신자들을 체포한후 서울로 압송했다. 그러나 포졸들이 천주교인들을 체포하는 과정에서 약탈, 방화, 부녀자 겁탈 등 불미스러운 만행이 벌어졌다. 이에 대한 비난의 소리가 높아졌고 천주교인들에 대한 동정의 여론이 ..

[웹북] 병오박해 (1846)

병오박해 병오박해(丙午迫害)란 1846년(헌종 12) 6월 5일부터 9월 20일까지 일어난 천주교 박해이다. 교회사 최초의 한국인 천주교 사제인 김대건 신부를 처형하였다. 배경 한국의 로마 가톨릭교회 문서를 참고하십시오.교황 그레고리오 16세(재위 1831~46년)가 1831년 9월 9일 천주교 조선대목구를 설정한 이후, 파리 외방전교회 선교사 피에르 모방 신부가 정하상을 비롯한 교우들의 보호를 받으며 입국했다.(1836년 1월 12일 (1835년 음력 11월 24일) 모방 신부에 이어서, 조선교구장으로서 파리 외방전교회의 로랑마리조제프 앵베르 주교가 입국(1836년 4월)하였고, 또한 파리 외방전교회의 자크 샤스탕 신부가 입국(1836년 말)하였다. 이들 파리 외방전교회 출신의 선교사들은 선교하는 지역..

[웹북] 기해박해 (1839)

기해박해 기해박해(己亥迫害)는 조선 후기 1839년(기해년, 헌종 5년)에 발생한 천주교 탄압을 말한다. 배경순조의 수렴청정을 행하던 정순왕후가 주도한 신유박해(1801년)로 천주교의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그러나 1805년 정순왕후가 죽은후 교세는 다시 회복되어갔다. 정권을 잡은 안동김씨 문중에는 천주교인이 많은 관계로 천주교에 대해 관대했기 때문이다.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1년 9월 9일 천주교 조선대목구를 설정하여 독립된 교구가 탄생하였다. 그리고, 서양인 천주교 신부로서는 처음으로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신부 피에르 모방(1836년)과 자크 샤스탕(1836년), 주교 로랑마리조제프 앵베르(1837년) 등이 들어와서 천주교의 교세가 회복되고 신도는 증가되어 갔다. 이에 놀란 조정에서는 다시..

[웹북] 정해박해 (1827)

정해박해1827년(순조27) 정해년에 전라도 곡성, 경상도 상주, 충청도, 서울의 일부 지역에서 천주교 박해가 있었다. 전라도 곡성의 한 교인촌에서 1827년 2월, 사소한 다툼이 일어나 곡성 현감에게 천주교도를 고발하는 밀고사건이 일어났고, 이를 빌미로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곡성에서 시작된 천주교인 검거는 차츰 전라도 전역으로 파급되었고, 240여 명의 교인들이 전주감영에 갇히게 되었다. 그해 4월 전주의 포졸들이 경상도 상주에서 신태보(愼太甫)를 체포하여 전주로 압송해 가면서 경상도에서도 천주교인들에 대한 검거선풍이 불어 많은 교인들이 체포되었다. 서울에서는 4월에 이경언(李景彦)이 체포되어 전주로 압송되었고, 충청도 단양에서는 경상도에서 박해를 피하여 이곳의 교인 집으로 숨어 들었던 ..

[웹북] 을해박해 (1815)

을해박해을해박해는 을해년(1815년, 순조 15)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일어난 조선정부의 천주교 박해이다. 계기1801년 신유박해가 종결된 후 반포된 척사윤음(斥邪綸音)은 천주교 탄압의 법적 근거가 되어 이후 전국 각지에서 크고 작은 박해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교우들은 경상도와 강원도의 산골로 숨어 들어가 교우촌을 이루며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814년 전국에 기근이 들었다. 이 때 교우촌의 재산을 노린 일부 백성과 지방관이 중앙 정부의 지시없이 경상도와 강원도에서 박해가 시작되었다. 진행경상도1815년 4월, 청송의 노래산(老萊山)에서 고성운(高聖云)·고성대(高聖大) 형제 등 35명의 교우가 체포되어 경주진영로 압송되고,이 중 19명은 배교, 2명은 옥사하여 14명이 다시..

[웹북] 신유박해 (1801)

신유박해신유박해(辛酉迫害)는 1801년(순조 1년)에 발생한 조선 천주교 박해 사건이다. 시파·벽파의 정치 투쟁에서 시파 제거를 오랜 숙원으로 한 벽파가 천주교 탄압을 명분으로 일으킨 사건이다. 시대적 배경천주교 전래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받아들여진 천주교는 보유론(補儒論)적 관점에서 실학이라는 흐름과 맞물려 학인들의 탐구의 대상이 되었고 부패한 지배체제에 반발한 민중속으로 퍼져나갔다. 북경에서 조선 최초로 세례교인이 된 이승훈이 귀국한후 은밀히 신앙모임을 만들었으나 1785년에 형조에 적발되며 유생들의 거센반발이 있었다.(명례방 사건) 이 사건으로 김범우가 유배지에서 사망하고 모임을 이끌던 이벽이 문중의 압박에 못이겨 자진하면서 '명례방공동체'는 와해되었다. 곧 조직이 재건되어 교세가 성장했으나 제사금지..

[웹북] 정사박해 (1797년)

정사박해 주문모 신부 체포에 실패한 뒤, 조정에서는 천주교로 인해 정쟁이 일어나는 것을 피하고자 공식적인 박해는 피한채 은밀하게 주문모의 종적을 추적하며 체포작전을 진행했다. 그러던중 1797년 충청도 관찰사로 부임한 한용화(韓用和)가 도내의 수령들에게 천주교 신자의 체포와 박멸을 명하여 박해가 시작되었다. 한편 주문모 체포에 진전이 없자 정조는 후임 충청도 관찰사들에게도 천주교인에 대한 처벌을 비밀리에 명하였고 이로 인한 박해는 1799년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정충달에게 조화진(趙和鎭)이라는 사람을 소개한 다음, 조화진으로 하여금 왕의 밀지를 지니고 천주교 신자라고 거짓으로 일컬으며 충청도 일대의 신자들에게 접근하여 밀고하도록 하였다. 조화진은 행상으로 위장하여 신자들이 사는 집을 염탐한후 밀고하였고,..

[웹북] 을묘박해 (1795)

을묘박해을묘박해(乙卯迫害)사건이란 1795년(정조 19) 청(淸)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체포하려다 놓친후 일어난 천주교 박해사건을 말한다. 을묘실포사건(乙卯失捕事件)이라고도 불린다. 선교사가 한번도 방문한적이 없는 관계로 미교화국 상태에 놓여있던 조선에 이승훈의 주도하에 천주교회가 설립되었다.그러나 조선천주교회는 성직자 없이 한역서학서(漢譯西學書)의 자발적 탐구에 의존하여 개척된 무목자교회(無牧者敎會)였다.뒤늦게 가성직 제도하에 조직운영은 교회법에 위반된다는 사실을 인지한 천주교인들은 당시 담당교구였던 북경교회에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여 약속을 받아내었다. 선교사로 임명된 중국인 주문모 신부는 신해박해(1791년)이후 탄압이 심해진 상황이라 1795년이 되어서야 서울에 잠입하였다. 그의 은밀히 활동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