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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북] 권동진 (1861~1847)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권동진 / 權東鎭애당 권동진 선생애당 권동진 선생조선국 경상도 함안군 군수임기 1880년 4월 9일 ~ 1881년 5월 31일군주 고종 이형이름별명 아호(雅號)는 애당(愛堂), 우당(憂堂).도호(道號)는 실암(實菴).신상정보출생일 1861년 12월 15일출생지 조선 충청도 괴산군거주지 조선 충청도 괴산군 / 조선 경기도 포천군 / 조선 한성부 / 대한제국 한성부 / 일제강점기 경성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사망일 1947년 3월 9일(85세)사망지 미 군정 조선 서울특별자유시경력 독립운동가, 종교인, 정치인 신한민족당 총재 겸 대표최고위원한국독립당 고문 겸 대표최고위원정당 한국독립당배우자 채씨 부인자녀 권영직(아들), 권정숙(딸)종교 천도교 군사 경력복무 조선 육군복무기간 1881년 ~ 1882년근무 조선..

[웹북] 정춘수 (1875~1951) - 3.1운동 민족대표 33인(변절)

정춘수 鄭春洙당교회 前 경성 동대문교회 목사  정춘수 (1875)개인정보출생 1875년 2월 11일 조선 충청도 청주사망 1951년 10월 27일(76세)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교파 유교(성리학) → 개신교(감리회) → 천주교(세례명: 요셉)거주지 대한제국 충청북도 청원  / 대한제국 충청북도 청주 / 대한제국 함경남도 원산 / 대한제국 한성부 / 일제강점기 함경남도 원산 / 일제강점기 경성부 / 대한민국 충청북도 청주전직 신간회 사무위원 겸 기독교행정위원 / 조선공산당 당무위원 겸 전임위원학력 한성 협성신학교(현재, 감리교신학대학교)정춘수(鄭春洙, 일본식 이름: 가타니 슌주(禾谷春洙), 1875년 2월 11일 ~ 1951년 10월 27일)는 천주교 신자이며 파면된 감리교 목사이다. 친일 반민족 행적으로..

[웹북] 박희도 (1989~1952)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변절)

박희도朴熙道   박희도 (1889년) 본명 박희도로마자 표기 Park Hee-do출생 1889년 8월 11일사망 1952년 9월 25일국적 한국경력 3.1 운동 민족대표 33인직업 독립운동가, 기독교 목회자, 사상가, 언론인소속 동광종교 개신교박희도(朴熙道, 1889년 8월 11일 ~ 1952년 9월 25일)는 구한 말과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 기독교 목회자, 사상가였다. 일제강점기의 개신교 계열 인물로 언론인과 목회자로 활동했다. 1919년 3.1 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사람으로 이갑성과 함께 33인 중 최연소자였다. 3.1 운동으로 투옥됐다가 풀려난 이후 자치론 경향으로 흘러가 민족개량주의 노선으로 기울다 1934년 전후로 친일파로 변절. 월간 잡지 '동광'(동양지광)의 창립인, 주간 사장..

[웹북] 최린 (1878~1958) -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변절)

최린 崔麟 최린 총독부의 중추원 참의임기 1934년 4월 1일 ~ 1940년 4월 30일군주 히로히토 신상정보출생일 1878년 1월 25일출생지 조선 조선 함경도 함흥군사망일 1958년 12월 4일(80세)사망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안북도 선천군학력 일본 일본 메이지 대학교 법학과 학사정당 무소속종교 천도교최린(崔麟, 1878년 1월 25일 ~ 1958년 12월 4일)은 일제강점기의 친일파이다. 3.1 운동에 참여하여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다가 친일 인사로 변절했다. 호는 고우(古友) · 여암(如庵)이고 일본식 이름은 가야마 린(佳山 麟)이다. 생애생애 초기1878년 1월 25일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 한학을 배우다가 한성부로 상경하여 개화파 청년들과 교유하게 된다. ..

[웹북] 3.1운동 민족대표 33인

민족대표 33인(民族代表三十三人)은 1919년 3·1 운동 때 발표된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명을 가리킨다. 종교별로 나누어 대표를 선정하여 개신교 인사 16명, 천도교 인사 15명, 불교 인사 2명이다.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에 모이기로 했던 조선의 민족대표 33인은 오후 3시가 되어서야 기독교계 길선주, 유여대, 김병조, 정춘수를 제외한 29인이 태화관(서울시 종로구 인사동 소재)에 모였다. 그들은 조선이 독립국임을 선언하였고, 모든 행사가 끝난 때가 오후 4시 무렵이었다. 그들은 총독부 정무총감 야마가타 이자부로에게 전화를 걸어 독립선언 사실을 알렸다. 헌병과 순사들이 태화관에 들어닥쳐 민족대표를 남산 경무총감부와 지금의 중부경찰서로 연행하였다. 상하이로 망명해 체포를 피한 김병조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