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한반도평화 연구 (박사전공>책소개)/2.북한탐구

나는 오늘도 국경을 만들고 허문다

동방박사님 2022. 9. 12. 21:55
728x90

책소개

단둥에서 국경을 생활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네 집단인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그리고 한국사람의 생활 현장을 밀착 조사한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둥에 가보지 못한 독자를 위한 여행서로 재구성한 책이다. 문화인류학자이자 실제로 관광가이드이기도 한 저자는 단둥의 네 집단과 오랫동안 친분을 쌓아가면서 그들 고유의 관계 맺음과 이로 인해 이뤄지는 특수한 생활방식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책은 국경무역과 국경관광을 생업으로 하는 네 집단 사람들이 각자가 속해 있는 국가(북한·한국·중국)의 정세를 의식하며 일터에서 ‘국경 만들기’를 시도하면서도, 이러한 정세가 자아내는 긴장 관계의 이면에는 서로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존재가 되어버린 각 집단의 구성원이 물리적·상징적 ‘국경 허물기’를 실천한 교류의 역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본격적인 현장연구에 들어가기 전 단둥 현지인과 아무런 연이 없던 저자가 단둥에 대해 이것저것 묻자 “안기부에서 왔습니까?”라고 질문을 받거나 화장실에서 연구 내용을 기록했던 쉬이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비롯해, 분단이라는 비극으로 인해 공식적으로는 서로를 챙겨주지 못하지만 식당에서 조용히 술값을 계산해주거나 경조사를 북한화교, 조선족 등을 통해 대신 챙기는 한국·북한사람 간의 잔잔한 모습 등 저자는 근 10년간 애착을 가지고 바라본 단둥의 네 집단이 만들어가는 복잡다단한 풍경 속에서 국경 연구와 통일의 현주소를 되묻는다.

목차

책머리에
제1장 인류학자, 국경도시 단둥을 읽다
제2장 현장 속으로
제3장 네 집단 이야기: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
제4장 단둥, 삼국 무역의 중심지
제5장 중조 국경의 두 가지 코드, 경계 혹은 공유
제6장 네 집단, 한국어를 공유하다: 국민·민족 정체성의 지형도
제7장 단둥, 삼국의 과거·현재·미래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강주원
 
서울대 인류학과 대학원에서 석·박사학위(2012)를 받았다. 2000년부터 중국 단둥과 중·조 국경지역(두만강·압록강)을 찾아가고 있다. 그곳에 살고 있는 북한사람·북한화교·조선족·한국사람과 관계맺음을 하며 국경에 기대어 사는 이들의 삶을 기록하고 있다. 북한과 한국 사회를 낯설게 보고 만나는 노력을 하고 한반도의 평화·공존에 대한 고민을 업으로 하는 인류학자의 길을 걸어가는 꿈을 키우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
 

출판사 리뷰

국경도시 단둥은
중국·북한·한국의 역학관계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국경을 삶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단둥의 네 집단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그리고 한국사람
분단의 아픔과 시시각각 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그들이 맺어온 친밀하고 내밀한 20년 교류의 역사를 말하다

서울에서 약 420킬로미터, 평양에서 약 220킬로미터 떨어진 중국 랴오닝성의 국경도시 단둥. 어느 언론의 보도내용에 따르면 5만 명의 중국사람이 국경절 연휴를 맞아 단둥의 대표적인 관광지역인 압록강변을 찾았다고 한다. 이는 기존의 단둥 방문 일일 관광객 수 최다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비단 중국 관광객뿐만 아니라 단둥을 찾는 사람 가운데에는 한국 관광객이 부쩍 늘고 있다. 한편 뉴스나 다큐멘터리 등을 통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인 단둥은 북중 무역의 거점이자 한국 언론사가 간접적으로 북한 관련 소식을 많이 얻어가는 곳이기도 하다. 오늘날 단둥은 왜 주목받고 있는가?
1990년대를 분기점으로 각자의 꿈을 위해 단둥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국과 북한의 경계선인 ‘중조 국경’을 활용한 국경무역과 국경관광으로 자신의 경제적 욕망을 실현하는 네 집단은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다. 저자는 각 집단이 스스로 지향하는 바에 따라 달리 활용하는 나라 간 국경의 현실과 의미에 주안점을 두면서, 네 집단의 생활 전략을 ‘국경 만들기’와 ‘국경 허물기’라는 행위로 설명한다.
1953년 7월 27일 한국전쟁 정전 협정이 발효되면서 생긴 휴전선은 국경을 통해 삼엄한 이미지가 생산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러나 이후 판문점과 임진각, 남북정상회담,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등은 휴전선을 넘나들 수 있는 국경으로 인식케 했다. 아울러 FTA와 관련해 “경제 영토가 넓어지고 있다”라는 카피가 등장한 한 방송광고의 예는 국가 간 경제활동과 교류가 국경을 허물고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처럼 국경은 사회적 맥락과 그 변화상에 따라 늘 다른 의미를 지녀왔다. 국경은 국민·민족 정체성의 기준이자 때론 생활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는데, 단둥에 위치한 중조 국경은 대표적인 예다.

일종의 워밍업 성격을 띤 이상의 내용이 1장 「인류학자, 국경도시 단둥을 읽다」를 통해 소개된다면, 2장 「현장 속으로」에서는 단둥을 박사논문의 연구지로 택한 뒤 일어난 저자의 좌충우돌 경험기를 들어가기, 인연 쌓기, 현장연구의 심화, 정체성 고민하기, 마무리 등으로 재정리한다. 연구 초기 압록강, 신의주 강변, 단둥 시내가 한눈에 들어오는 고층 아파트 20층에 월세를 얻어 살다가 조선족이 운영하는 자칭 ‘호텔식 민박집’에 묵기도 한 저자는 연구상 수시로 변하는 현지 여건을 조율하다보니 이리저리 거처를 옮기며 단둥에서의 삶에 적응해나간다. 오전에는 중국어를 배우고 오후에는 사진기를 들고 단둥 시내와 압록강변을 기웃거리며 공간적 특성을 파악해간 그는 한 사람을 알면, 그 사람이 소개시켜주는 새로운 사람과 인맥을 쌓는 인류학의 라포rapport 방식을 적용하면서 점점 현지인과의 교분을 쌓아나간다. 이 과정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안기부에서 나왔습니까?”라는 농담 반 진담 반 섞인 질문을 받기도 하고, 단둥 한글학교 주말교사와 단둥 관광가이드의 한국 교육을 맡아 하는 등 점점 단둥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체험을 하게 된다. 저자는 여기서 스스로 각인하고 있는 연구자란 정체성 혹은 네 집단이 저자 본인에게 투사하고 있는 이미지(가령 안기부 요원 같은)에서 연유하는 정체성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기도 한다.

3장 「네 집단 이야기: 북한사람, 북한화교, 조선족, 한국사람」에서는 저자가 현장연구 과정에서 몸소 부대꼈던 네 집단이 어떻게 단둥을 찾게 되었는지 그리고 단둥을 향한 이주가 언제부터 급격하게 늘어났는지 마지막으로 네 집단이 단둥을 찾는 목표는 서로 같은지 또는 다른지 등을 서술하고 있다. 1990년대에 접어들어 3000명 정도이던 단둥 시내 조선족 인구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또 이 무렵 단순한 방문 성격이 아니라 단둥에서 생활을 이어나가는 북한사람, 북한화교, 한국사람이 본격적으로 늘어났다. 단둥사람은 “1992년 한중 수교 이전에도 홍콩을 통해 대북사업을 꿈꾸는 한국사람이 단둥을 찾아왔었다고 이야기한다. 나아가 한중 수교는 한국사람이 본격적으로 단둥을 방문하고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다.”(50쪽) 이뿐 아니라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상황이 역전되면서 생긴 북한화교의 단둥 이주, 한중 간 운행되는 단둥페리의 등장, 북한 식당과 외화벌이로 대변되는 북한사람의 경제활동, 국경무역을 염두에 둔 타 지역의 조선족과 한국사람의 단둥 이주 등이 집단 간 만남의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52~53쪽)
한편 북한사람은 “북한으로 물건을 수입하거나 취업을 해서 번 돈으로 다시 북한으로 돌아갈 때 물건에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선에서 보따리장사를 한다.”(63쪽) 한국사람은 “사업이든 선교든 북한과 관련된 일을 많이 한다. 그들은 중국에서의 삶보다는 통일과 선교 선구자의 꿈 혹은 자본주의의 흐름을 따라 마지막 남은 기회의 땅으로 인식되는 북한을 상상하면서 단둥으로 모여든다.”(64쪽) 이 두 집단은 특히 단둥을 경제적 재기의 발판으로 삼지만 일정한 목표를 이루거나 여의치 않은 경우 자신의 고국으로 돌아갈 준비를 마음에 품고 있다. 반면 조선족과 북한화교는 단둥이 곧 미래인 집단이다. 북한화교는 “단둥에서 살지만, 북한에 남아 있는 대방(사업 파트너)과 가족을 활용하여 국경무역을 하고 있다. 그들은 계속 국경을 넘나들고자 북한화교에서 중국 국민(공민)으로 신분을 바꾸지 않고 단둥에서 계속 살려는 경향을 보인다.”(71쪽) 마지막으로 단둥의 조선족은 단둥 토박이 조선족과 타 지역에 서 이주한 조선족 사이에 살아가는 방식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이 각각 있다. 무엇보다 이 두 조선족의 공통점에서 눈여겨볼 지점은 “북한이나 한국을 활용해 부를 축적하고 있다는 것이다.”(72쪽) 북한과 한국의 인맥을 활용해 단둥에서의 경제적 부를 꾀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조선족은 “출신국(한국)으로 재이주를 하는 방식을 택하기보다는 거주국(중국)에서 출신국인 북한과 한국의 특수성을 활용하는 삶의 방식을 택한다.”(73쪽)

네 집단이 단둥에서 펼치는 경제활동의 특수성과 그 주요 동기를 3장에서 살펴봤다면 4장 「단둥, 삼국 무역의 중심지」에서는 중국·북한·한국의 치열한 무역 전략이 펼쳐지는 곳이 바로 단둥임을 주목하면서 국경무역에서 발견되는 몇 가지 특성을 분석한다. 대표적으로 단둥 국경무역에서 세 나라의 국기는 “판매 물품과 판매자의 전략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실제로 여러 가게의 진열대 앞 또는 상점 간판을 보면, 북한, 중국, 한국의 국기가 함께 꽂혀 있거나 그려져 있다. 이것은 이 가게의 물건들이 세 나라 고객을 모두 상대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77쪽, 79쪽) 단동 내 국경무역은 북중 경제의 빈 여백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단둥에서 실천되는 국경무역의 상황과 현실을 고려할 때, 통계 자료에서 잡히지 않는 부분과 주체들이 있다면서, 특히 중조 무역의 수치를 만들어가는 주체는 북한사람과 함께 북한화교와 조선족(중국사람)으로만 여겨지고 있으나 단둥에서 중조 무역에 동참하는 또 하나의 주인공이자 주체는 한국사람이며, 그들이 포함될 때에만, 실질적으로 거래되는 중조 무역의 품목과 현황이 정확히 파악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의 내용이 단둥에서의 국경무역에 주안점을 두었다면, 5장 「중조 국경의 두 가지 코드, 경계 혹은 공유」에서는 단둥을 주 무대로 한 국경관광에서 발생하는 특수성이 언급된다. 가령 일보과는 철조망뿐만 아니라 압록강 지형을 이용하는 국경관광이 라는 요소가 두드러지는 대표적 관광지다. 일보과는 과거 한국사람이 북한 병사, 북한 주민과 짧은 담소를 나누었다는 무용담이 만들어지던 곳이기도 했다. 이곳은 그 당시만 해도 이곳은 징검다리가 있어서 일보과라는, 말 그대로 북한 땅을 한 발짝에 뛰어 건너갔다 올 수 있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자, 단둥사람과 북한사람 간 교류의 장으로 이용되었다. 그런데 사람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2005년 전후 호산장성이 관광지로 활성화되는 과정과 맞물리면서, 징검다리는 없어진 채 일보과에서의 경험은 달라졌다. 중조 국경지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고 있는 사람들에게 일상적인 교류 공간이었던 이곳은 국경 넘나들기를 특징으로 하는 국경 관광지의 색깔이 강해졌다(120쪽 참고). 일보과에서 저자가 겪은 일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보과에서 한국 관광객은 “배 타세요?” 혹은 “담배 사세요” 등의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중국 상인을 만나게 된다. 안내를 맡은 단둥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담배를 사지 않고 북한사람에게 돈을 주다가 중국 공안에게 혼쭐이 난 사연을 소개하며 중국 담배를 살 것을 제안한다. 이후 한국 관광객들은 1~2미터 개울 넘어 북땅이 있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다가 나룻배를 타기 전에 북한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 하자 공안에게 제지를 당한다. 그러나 중국 관광객이 사진을 찍을 때 공안은 딴 곳을 쳐다본다. 이내 한국 관광객이 슬그머니 담배포의 포장을 제거하려는 순간 옆에서 “온전히 주세요”라는 한국말이 들려온다. 나룻배에 올라탄 한국 관광객은 압록강 물에 손을 집어넣고는 약간 흥분된 모습을 보인다. 그러고 나서 관광객들은 나룻배가 좁은 압록강 지류의 한복판에 접어들자 보이기 시작하는 호산장성 밑의 중국 측 철조망을 보고는 자신이 “지금 국경을 넘었다”라는 말을 한다. 그들은 단둥에 거주하는 한국사람으로부터 “최대한 위험한 행동을 하지 말라” “한국말을 하지 말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서 얼굴이 점점 굳어진다. 나룻배를 움직이던 중국사람이 바로 강변에 배를 정박하고 준비해간 담배를 모래 위로 던지고는 “어디서 왔네, 저 사람들 어디 사람이야” “중국사람이다” “거짓말 마라, 조선말 할 줄 알던데” 등의 대화를 북한 군인들과 나눈다. 한국 관광객은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 한다. 잠시 머물던 배가 다시 방향을 틀어 출발지로 향하고 마음의 평화를 되찾은 한국 관광객은 아주 가까이에서 목격한 북한 군인의 모습을 언급하면서 각자의 느낌을 한국말로 크게 떠들기 시작한다. 저자는 일보과를 비롯해 단둥의 여러 국경관광지는 철조망이 없는 국경지역에 양 국가를 구분하는 국경 역할을 하고 있으며 더 나아가 경계의 성격도 계속 추가되는 중이라고 이야기한다.
6장 「네 집단, 한국어를 공유하다: 국민·민족 정체성의 지형도」에서 저자는 국경이 국민·민족 정체성의 기준이 된다는 맥락 아래 특히 삶의 도구이자 관계를 맺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되는 한국어의 의미 그리고 급변하는 국가 정세와 개인의 경제적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나타나는 정체성 드러내기, 감추기, 넘나들기, 확인하기를 네 집단의 일상생활을 통해 설명한다. 정체성 문제와 관련한 예를 살펴보면, “북한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이 부담스러울 때는, 중국말이 서툰 북한화교라는 신분으로 한국사람을 상대한다. 북한화교는 대북사업을 하는 한국사람에게 간혹 북한사람임을 강조하면서 대북사업의 적임자 역할을 자청한다. 간혹 중국 국민 신분으로 국경을 왕래해야 되는 조선족 역시 한국사람을 상대할 때 필요에 따라 북한화교처럼 북한사람으로 정체성을 넘나드는 것이 때로는 효과적임을 인식하고 있다. 정체성과 관련된 전략은 그들 정체성의 위치에 따라 단둥에서 사는 방식과 경제활동 범위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상황이 전개될 수 있는 조건은 중조 국경을 넘어 북한에 갈 수도 없고, 중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없는 한국사람이 존재하기에 가능하다. 또한 이는 대북사업 또는 단둥에 살기 위해서 세 집단의 도움과 역할이 필요한 한국사람이 그들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확인할 수 없는 한계로 작용한다.”(156~157쪽)

7장 「단둥, 삼국의 과거·현재·미래」에서는 첫째 한국 언론에 북한 소식을 제공하는 취재원 역할을 맡게 된 단둥사람들이 점점 그 역할에 부담을 느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언론에 소스를 제공하는 일을 비롯해, 둘째 단둥은 국경 너머 신의주와의 경제적 맞물림 속에서 존재하는 도시라는 지점이 단둥 개발 담론 속에서 간과되어서는 안 되며, 셋째 2012년 북한 핵실험 이후 시행된 5·24 대북 제재 조치 등을 통해 나타난 남북 무역 중단이 한국과 북한 사이의 전면적인 무역 중단이 아니라는 것을 단둥의 네 집단 간 국경무역이 보여주고 있음을 주 내용으로 담고 있다.
특히 한국 기자들은 최종적으로 단둥에 있는 북한사람을 소개해달라는 부탁을 세 집단 사람들에게 하는데, 세 집단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에 방해가 되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북한사람을 만나게 해주는 일은 드물다. 이때 한국 기자들은 북한사람으로 알고 만나고 있지만, 실제로 북한 사정을 알고 북한 말투를 사용하는 북한화교와 조선족이 북한사람으로 행동하고 인터뷰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네 집단은 한국 언론으로부터 자신들의 삶을 보호하고자 한다. 또한 한국 뉴스를 위성 방송을 통해 접하고 있는 그들은 한국 기자들이 원하는 내용에 맞춰 답변하기도 한다. 대부분 북한 사정이 어렵다는 대답이 반복되며, 이 과정에서 한국 기자들은 뉴스가 만들어지고 있는지 검증하지 못하고 그대로 보도한다(168쪽~169쪽 참고).
저자는 끝으로 개성공단 프로젝트와 별도로 단둥 국경지역에서 네 집단의 개인이 행하고 있는 국경 허물기 즉 인적·물적 교류가 20년간 꾸준히 진행되어오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이 개성에 거주하는 북한사람에게 한국의 초코파이와 라면 맛을 알게 해줬다면, 북한사람이 구매하는 한국산 전기밥솥을 두고 “분단 이후 북한사람과 한국사람이 많은 부분에서 이질적으로 변해왔지만, 최소한 밥맛은 통일되고 있다”(186쪽)라는 북한사람의 말을 원용하며 단동 내 국경무역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언급한다.
단둥의 네 집단은 오늘도 국경을 활용해 서로의 친밀하고 내밀한 교류에서 비롯된 국경지역 내 경제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이러한 실천은 “동북아 공동체 추구”라는 거시적 담론이 놓치고 있는 세 나라 간의 현실을 미시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이자, 통일의 현주소는 과연 무엇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문제적 지점일 것이다.

◎ 아케이드 프로젝트Arcade Project를 시작하며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한 편의 논문을 단행본 교양서로 펴내는 ‘원 페이퍼 원 북one paper one book’ 시리즈다. 대개 논문 한 편은 그 분량이나 주제의 측면에서 책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그런 고정관념을 깨고 잘된 논문의 깊이 있고 첨예한 문제의식을 경량화한 그릇에 담아 시대를 해석하고 대중과 소통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한다.
대학에 논문 중심의 업적평가제도가 자리잡으면서, 매년 수천 편의 논문이 다양한 지면을 통해 발표되고 있다.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가진 많은 연구자가 매년 한 편 이상의 논문을 써내며 엄청난 논문이 엄청난 속도로 쌓여가고 있지만, 정작 논문 생산에 쏟아붓는 에너지의 극히 일부조차 그것이 읽히고 담론화되는 것에는 쓰이지 않는 실정이다. 오늘날 한 편의 논문은 학술대회에서의 발표와 토론, 학술지 심사위원과의 토론과 수정 등 생산 프로세스에서 주고받는 의견 교환을 제외하면 대중에게 거의 노출되지 않고, 한 사회의 지식담론에 기여하는 통로가 철저히 차단되어 있다.

국가 주도의 학술지원 시스템이 문제라는 얘기는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지만 정작 해결책은 쉽사리 찾아지지 않는다. 논문에 대한 질적 평가제도 구축, 논문을 쓰는 데 더 많은 시간이 투여되어야 한다는 등의 주문과 모색은 시간이 지나도 쉽사리 현실화되지 않고 있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좋은 논문을 ‘쓴다’에만 시선을 기울인 것이지 그것이 읽히는 것과 공론화되는 문제는 전혀 논의조차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인문학 출판사들은 갈수록 어려운 글을 기피하는 대중과, 양질의 인문서를 집필할 시간이 없는 저자들 사이에서 엉거주춤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고 흥미롭게 파헤치는 책은 내기 힘들어지고, 여러 사람이 쓴 여러 관점의 글을 단순하게 묶어서 낼 수밖에 없는 현상이 되풀이되면서 학술 출판에 대한 대중의 외면과 출판인들 스스로의 자괴감은 깊어지고 있다. 국내 대부분의 인문학 출판사들은 국내 저자들의 저서를 통해 존립할 수 있는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이는 번역서에 대한 심화된 의존과 몇몇 유명 저자에 대한 쏠림 현상을 빚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의미 있는 문제의식을 가진 잠재적 저자군은 논문 쓰기에 지쳐가고, 몇몇 유명 저자의 인기몰이를 지켜보면서 상대적 박탈감마저 느낀다. 인문학 출판사들 또한 저자 확보에 대한 과도한 경쟁과 대중의 유행에 맞게 인문학에 알록달록 옷을 갈아입히면서 스스로 문사철의 결기를 흩어놓는 일에 빠져든다.
‘아케이드 프로젝트’는 이런 시스템적 불협화음에서 작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 인문학 부활을 시도하는 하나의 작은 노력이다. 학계의 주목할 만한 논문 한 편을 책 한 권에 담아 맛있게 내놓음으로써 학계와 독자 사이에 새로운 가교 역할을 해보고자 한다. 기존의 무겁고 어렵고 딱딱한 학술서 이미지를 탈피하고 가볍지만 날렵한 문제의식으로 유기적인 지식담론을 창출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논문 쓰기와 책 저술이 별개의 행위가 아니라는 인식을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 앞으로 ‘아케이드 프로젝트’가 고비용 저효율의 지식생산 시스템에 작은 작은 스파크로 작용해 우리 사회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문제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인문학의 동시대적 고민을 보다 집중력 있게 해나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글항아리 편집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