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 360

[웹북] 환구단

환구단(圜丘壇)환구단종목 사적 제157호 / (1967년 7월 15일 지정) / 면적 3필지/4,278m2 / 보호구역 : 1필지 764.7m2 / 시대 대한제국(1897년) / 소유 한국관광공사 / 관리 서울특별시 중구위치서울 소공동(대한민국) /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 87-1번지*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환구단(圜丘壇)은 서울특별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천자(天子)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단(壇)이다. 예로부터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 하여 하늘에 제사지내는 단은 둥글게, 땅에 제사지내는 단은 모나게 쌓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사적 157호로 지정된 환구단은 고종 대에 있던 환구단 본단 터로, 일제가 헐어버리고 건축한 조선호텔 자리이다.유교권 황제국의 제단유교의 천자가 하늘인 상제(上..

[웹북] 덕수궁

덕수궁(德壽宮)덕수궁종목 사적 제124호 / (1963년 1월 18일 지정) / 면적 67,048m2 / 시대 조선, 대한제국 / 소유 국유위치덕수궁은(는) 서울특별시 안에 위치해 있다  덕수궁(서울특별시)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 99 (정동)*정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덕수궁(德壽宮)덕수궁(德壽宮)은 서울 중구 정동(貞洞)에 있는 조선과 대한제국의 궁궐이다.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으로, 아관파천 이후 환궁하여 법궁으로 사용되다가 순종 즉위 후 궁의 이름을 현재의 덕수궁으로 변경하였다. 현재의 영역 외에 선원전, 홍원, 중명전 영역도 덕수궁의 영역으로 모두 이어져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축소되었다.조선 초기 세조가 남편을 잃고 궁궐을 떠나는 맏며..

3.창덕궁 (낙선재) / 2024 -09-11 (수)

낙선재(樂善齋)는 헌종 13년(1847년)에 중건된 창덕궁의 건물로, 이 일대에는 숙종, 정조, 헌종 때에 지어진 소박한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낙선재는 창덕궁[깨진 링크(과거 내용 찾기)]의 동남쪽과 창경궁이 연결되는 부근에 자리 잡고 있는데, 궁궐지(宮闕志)에는 창경궁에 속한 건물로 기록되어 있다. 승정원일기와 낙선재 상량문(上樑文)에는 헌종 13년(1847년)에 낙선당 옛터에 건물을 세웠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낙선재는 헌종이 후궁이었던 경빈 김씨를 위해 지은 것으로 헌종은 낙선재에서 경빈김씨는 석복헌에 머물렀다고 지내진다. 여기서 낙선재의 의미는 선한일을 즐겨한다는 의미이고 석복헌은 복을 준다는 뜻으로 후사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계후인 순정효황후(윤황후)가 이..

2.창덕궁 (내전: 희정당.대조전.동궁.후원입구)

선정전(宣政殿)은 임금의 일상적인 집무 공간으로 쓰인 곳으로, 인정전 바로 동쪽에서 인정전과 나란히 남향하고 있다. 임금은 여기서 신하들과 나랏일을 의논하고 학문을 토론하며, 신하나 유생, 종친을 불러 시험을 치르기도 하였으며, 중국과 일본의 사신을 만나기도 하였다. 또 왕비나 왕족들과 크고 작은 연회를 열기도 하였다. 선정전은 인조 반정 때 불에 탄 뒤 인경궁의 편전인 광정전을 옮겨 지은 전각으로, 지붕은 푸른색 유리 기와를 덮었는데, 궁궐에 유일하게 현존하는 청기와 지붕이다.인정전과 같이 의식을 위한 공간을 '정전'이라 하고, 선정전처럼 일상 업무를 위한 공간을 편전(便殿)이라 하였다. 정전인 인정전에 비하여 선정전은 건물이나 마당의 규모가 매우 작다. 다만 지붕을 청기와로 덮어 다른 건물과 구분했을..

1.창덕궁 (입구.외전: 돈화문.금천교.진선문.인정문)

돈화문(敦化門)은 창덕궁의 정문이다. 조선 태종 12년(1412년)에 처음 세워졌으며, 지금의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타버린 것을 선조 40년(1607년)에 재건하여 광해군 원년에 완공한 것이다. 이때의 모습이 현재까지 남아있어, 돈화문은 현존하는 궁궐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된 문으로 유일하게 정면이 5칸 규모로 되어 있다. 1963년에 대한민국의 보물 제383호로 지정되었다. 돈화문은 궁궐의 정문이나 창덕궁 서남쪽 모서리에 있는데, 그 이유는 산자락에 자리잡은 창덕궁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궁궐 정면에는 북악의 매봉이 연결되어 있고, 이곳에는 조선의 가장 신성한 공간인 종묘가 있어 창덕궁의 정문이 들어설 수 없었다.또 정궁인 경복궁과 위치상 가까우며, 예부터 대문에서 내당이 직접 보이지 않도록 배치하..

[웹북] 창덕궁

창덕궁   유네스코 세계유산영어명* Changdeokgung Palace Complex / 프랑스어명* Ensemble du palais de Changdeokgung / 등록 구분 문화유산 / 기준 Ⅱ, Ⅲ, Ⅳ / 지정번호 816 / 지역** 아시아·태평양지정 역사1997년 (21차 정부간위원회) / 웹사이트 창덕궁 공식 홈페이지 / * 세계유산목록에 따른 정식명칭. / ** 유네스코에 의해 구분된 지역.창덕궁 (昌德宮)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 / 종목 사적 제122호 / 면적 550,916m2 / 시대 조선시대 / 참고 1963년 1월 18일 지정위치창덕궁(대한민국) / 주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99 / 좌표 북위 37° 34′ 46.14″ 동경 126° 59′ 28.23″정보 국가유산청..

도심속 천년사찰 봉은사 탐방 (2024-09-02)

봉은사봉은사종파 조계종 / 건립년대 794년(원성왕 10)위치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봉은사(奉恩寺)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역사조선불교의 중흥도량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특별히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

[웹북] 경복궁

경복궁경복궁 景福宮 / Gyeongbokgung Palace / 대한민국의 기 대한민국의 사적종목 사적 제117호 (1963년 1월 21일 지정)  / 면적 432,703m  /시대 조선 태조 4년(1395) / 소유 대한민국 정부 (국가유산청) / 관리 국가유산청 경복궁관리소 / 참고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위치서울 종로구은(는) 서울특별시 안에 위치해 있다.서울 종로구서울 종로구 / 서울 종로구(서울특별시) / 주소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 161 (세종로, 경복궁) 경복궁(景福宮, 영어: Gyeongbokgung Palace)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사직로에 위치한 조선 왕조의 법궁(法宮, 정궁)이다. 1395년 창건되어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고, 1868년 ..

도심속 천년사찰 봉은사 소개

봉은사봉은사종파 조계종 / 건립년대 794년(원성왕 10)위치소재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봉은사(奉恩寺)는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수도산 기슭에 있는 사찰이다. 조계종 사찰이며, 신라 말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졌다.역사조선불교의 중흥도량봉은사(奉恩寺)는 신라시대의 고승 연회국사(緣會國師)가 794년(원성왕 10)에 견성암(見性庵)이란 이름으로 창건(創建)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연회국사는 영축산에 은거했던 고승으로 원성왕에 의해서 국사로 임명되었다.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왕위에 올랐지만 기행과 폭정을 일삼다가 이복동생이었던 진성대군의 반정으로 물러나고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바로 조선의 11대 임금인 중종이다. 중종의 계비였던 문정왕후는 특별히 봉은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

조선왕릉 전시관 (2024-06-07)

조선왕릉(朝鮮王陵)은 조선(1392~1897)과  대한제국(1897~1910) 시대에 조성된 왕과 왕비, 황제와 황후의 무덤이다.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왕조는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孝)와 예(禮)를 갖추어 정성을 다하였다. 왕릉을 조성할 때에는 풍수사상에 따라 최고의 명당을 선정하고, 최소한의 건조물을 설치하여 주변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왕릉 조성과 관련된 모든 절차와 관리실태는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모범으로 삼도록 하였고, 현재까지도 각 왕릉에서는 매년 왕릉제향을 지내면서 역사적 전통을 잇고 있다. 조선왕릉과 같이 500년 이상 이어진 한 왕조의 왕릉들이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예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이러한 역사적·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2..

조선왕릉 태강릉 (서울 태릉과 강릉) 2024-06-07

서울 태릉과 강릉 (서울 泰陵과 康陵)태릉홍살문과 정자각(2017년4월) /종목:사적 제201호(1970년5월26일지정)/면적;1,639,180m2 /시대:조선시대 /소유;문화재청 /주소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727 (공릉동)태릉(泰陵)은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의 능이고, 강릉(康陵)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두 능을 아울러 태강릉(泰康陵)이라고도 한다. 1970년 5월 26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01호로 지정되었다.태릉(泰陵)조선 왕조 제11대 임금인 중종(中宗)의 왕비(제3비)인 문정왕후 윤씨(文定王后 尹氏) (1501년∼1565년)의 능으로, 1565년에 조성되었다. 태릉은 왕비의 봉분(封墳) 1기만을 조성한 단릉(單陵)이다. 왕후는 중종의 제2비 장경왕후(章敬王后) 윤..

조선왕릉 화성 융릉 건릉 (2024 -05-25)

화성융릉 (華城隆陵)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조선후기 제21대 영조의 아들인 장조와 왕비 헌경왕후의 능.사적(1970년 05월 26일 지정) / 경기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안녕동)내용1970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장조(莊祖)와 그의 비 헌경왕후(獻敬王后)의 능이다. 근처에 위치한 건릉(健陵)과 함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장조는 1735년(영조 11) 창경궁에서 탄생해 그 이듬해에 세자에 책봉되고, 1762년 28세 때 창경궁에서 죽었는데, 영조가 뒤에 사도(思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 뒤 정조가 즉위하자 장헌세자(莊獻世子)라 하고 고종 때 장조로 추존되었다가 1899년 의황제(懿皇帝)로 다시 추존되었다.헌경왕후는 영의정 홍봉한(洪鳳漢)의 딸로서 1744년 세자빈에 간택되었다가 세자가 죽은 뒤 17..

서울 의릉(조선 20대 경종과 두번째 왕비 선의왕후 어씨의 능) 2024-05-12

의릉 (懿陵)조선시대사 유적 문화재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의릉(懿陵)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있는 조선 제20대 경종과 선의왕후 어씨의 동원상하릉이다. 1724년에 경종의 능침을 조성하고, 1730년에 경종과 같은 언덕에 약 80자 정도 아래에 선의왕후의 능침을 마련하여 상하로 배치된 두 개의 봉분이 완성되었다. 1962년에 중앙정보부(지금의 국가정보원)가 의릉 경내에 자리 잡으면서 의릉의 정자각과 홍살문 사이에 연못을 만들고 정원으로 활용하였으나, 1995년 중앙정보부가 이전하고 능역의 복원이 이루어졌다.건립경위1724년 8월 25일에 경종(景宗, 1688~1724, 재위 1720~1724)이 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하였다. 산릉 터를 자세히 살핀 결과,..

정릉 (신덕왕후) - 2024-05-11

정릉 (신덕왕후) 서울 貞陵 / 종목 사적 제208호/(1970년 5월 26일 지정) / 면적 299,574m2  / 시대 : 조선시대 / 소유 : 문화재청 / 서울 정릉(대한민국) / 주소 :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2동 산87-16번지정릉(貞陵)은 조선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神德王后)의 능으로 원래 정동(貞洞) 영국대사관 자리에 있었던 것을 태종 9년에 옮겼다. 사적 제208호로 서울특별시 성북구 정릉동에 있다.정릉 (신덕왕후) 개요신덕왕후 강씨는 1356년에 상산부원군(象山府院君) 강윤성의 딸로 태어났다. 태조 원년(1392년) 조선의 개국으로 강씨는 음력 8월 7일 조선의 첫 왕비가 되어 현비(顯妃)에 봉해졌으며, 그 당시 이미 태조와의 사이에서 방번, 방석 두 왕자와 경순공주를 두고 있었다.태조..

여주 고달사지 (2024-04-18)

고달사지 (驪州 高達寺址) 종목 사적 제382호 / (1993년 7월 23일 지정) /면적 60,033m2/시대 남북국 시대 주소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 411-1번지 외 여주 고달사지(驪州 高達寺址)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신라의 고달사 터이다. 1993년 7월 23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382호로 지정되었다. 고달사지 개요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에 처음 세워진 후, 고려 광종 이후 역대 왕들의 보호를 받아 큰 절로 성장하였다. 고달사에는 석조 문화재들이 많이 남아 있는데, 모두 고달이라는 석공이 만들었다고 전한다. 고달은 가족들이 굶어 죽는 줄도 모르고 절을 이루는 데에 혼을 바쳤다고 하는데, 절을 다 이루고 나서는 스스로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었으며, 훗날 도를 이루..

원주 거돈사지 역사의 흔적 (2024-04-18)

원주 거돈사지(原州 居頓寺址) 사적 제168호 / (1968년 12월 19일 지정) / 면적25,339m2 /신라시대 /국유,사유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정산리 189 원주 거돈사지(原州 居頓寺址)는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부론면, 현계산 기슭의 작은 골짜기를 끼고 펼쳐진 곳에 있는 절터이다. 1968년 12월 19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168호로 지정되었다. 이 절터는 현재 남아있는 3층석탑(보물 제750호)으로 보아 신라시대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1탑식 가람 배치를 하고 있는 이 절터에는 높은 축대 위에 중문을 세운 자리가 있으며, 그 뒤로 3층석탑과 금당터, 강당터가 남아 있다. 금당은 절의 중심건물로, 규모가 전면 6칸, 측면 5칸으로 되어 있다. 이 안에는 2m 정도 높이의 화강..

원주 거돈사지 전시관 (2024-04-18)

고려에서 조선 초까지 왕사.국사제도는 신라때 국통(國統) 이라는 제도와 그 맥을 같이한다. 불교 법계를 정비하고 영향력있는 승려를 대우해 신앙적 믿음과 정치적 이념을 결부시켜 안녕적으로 국가를 통치하고 운영하고자 했다. 백성의 덕망을 얻은 고승을 총해 믿음을 돌보고 결합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이 제도는 고려 태조를 거쳐 광종대에 이르러 보다 정교하고 체게적으로 정립된다. 덕망이 높은 고승을 추대하여 국왕이 예를 갖춰 모셨다. 불교가 국교로서 많은 사람의 신앙으로 청착되어 있었으므로 님중이 정치에 참여 못하는 대신, 그들을 도덕으로 교화할 수 있는 정신적 지도자인 고승을 국사로 책봉함으로써나라의 안녕과 안정을 도모하였다. 왕사와 국사의 역할에는 그 기능에서 차이가 있다. 고려전기 왕사는 국왕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