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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 일본 열도는 ‘강한 일본’을 원한다!
3.11 이후 재편되고 있는 일본 지배이데올로기의 기원을 찾아서
현대 일본의 분기점이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이며, 다른 하나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전자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종결과 함께 ‘전후(戰後)’라는 현대 일본의 시작종을 울리는 사건이었고, 후자는 66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전후’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프레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3· 11 이후 일본 열도는 부활하고 있는 일본 내셔널리즘과 ‘강한 일본’ 이데올로기는 ‘평화롭고 약한 일본’이라는 ‘전후’ 이데올로기가 그러했듯이, 과거를 참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낼 것이다. 현대 일본을 작동시킨 ‘전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3.11 이후 재편되고 있는 일본 지배이데올로기의 기원을 찾아서
현대 일본의 분기점이 된 두 가지 사건이 있다. 하나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패전이며, 다른 하나는 2011년 3월 11일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던 지진과 후쿠시마 원전사고다. 전자는 일본 제국주의 시기의 종결과 함께 ‘전후(戰後)’라는 현대 일본의 시작종을 울리는 사건이었고, 후자는 66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전후’ 이데올로기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새로운 프레임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다. 3· 11 이후 일본 열도는 부활하고 있는 일본 내셔널리즘과 ‘강한 일본’ 이데올로기는 ‘평화롭고 약한 일본’이라는 ‘전후’ 이데올로기가 그러했듯이, 과거를 참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역사와 집단 기억을 만들어낼 것이다. 현대 일본을 작동시킨 ‘전후’ 이데올로기가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문 | 일본(어)의 8월
제1부 전후라는 프레임
제1장 고토쿠 슈스이와 평화적 팽창주의
‘고토쿠 슈스이’라는 고유명의 탄생 | 착종하는 ‘제국주의’ 개념 | 구성되는 평화주의와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
전쟁 책임론과 전후 책임론의 한계 | 비전 / 반전론의 원근법
제2장 [파계]에서의 ‘텍사스’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차별 해소법으로서의 식민론 | ‘평화적’ 팽창론의 전사
《사회주의》의 ‘이동’ 언설 | 일본의 식민지 ‘텍사스’
제2부 기억을 둘러싼 항쟁
제3장 전략으로서의 ‘조선’ 표상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의 번역 문제 | 제국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
조선어 미디어와 서적의 이동 | ‘조선인’은 피압박 민중인가 | 연대의 환상
제4장 식민지를 소비한다
전향과 식민지 작가의 조건 | 최승희와 장혁주의 대담 | ‘일제.국산’ 식민지 스타의 탄생
우리의 ‘조선’ | 이중 언어와 일본(어) 문학의 기원을 둘러싼 환상
제5장 총력전과 [파계]의 개정
다시 [파계]에 대하여 | ‘부락’과 ‘조선’의 교착 | 전국수평사의 운동 방침
총력전을 향하여 | ‘국민문학’으로 재생하는 [파계]
제3부 전후 신화의 노이즈
제6장 문학과 8월 15일
‘일본인’은 피압박 민족인가 | 김달수의 [현해탄]과 국민문학 | 8월 15일의 원근법 |《신일본문학》과 《민주조선》
제7장 ‘식민지 일본’이라는 신화
김달수와 허남기 | ‘저항’하는 주체의 편성 | 점령 정책과 《민주조선》
일본공산당의 이중적 태도 | ‘공투’의 함정
제8장 공투장에서의 여자들
메이데이 포스터 | 저항하는 ‘어머니’의 경계 | ‘팡팡(양공주)’이라는 신체
맺음말 | 성조기의 그늘 : 아베 가즈시게 『신세미아』와 점령의 기억
평화로운 닛폰에서 | ‘점령’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교착 | ‘9·11’과 독자의 위치 |폭력의 기억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다
후주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서문 | 일본(어)의 8월
제1부 전후라는 프레임
제1장 고토쿠 슈스이와 평화적 팽창주의
‘고토쿠 슈스이’라는 고유명의 탄생 | 착종하는 ‘제국주의’ 개념 | 구성되는 평화주의와 [20세기의 괴물 제국주의]
전쟁 책임론과 전후 책임론의 한계 | 비전 / 반전론의 원근법
제2장 [파계]에서의 ‘텍사스’
시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어떻게 읽을 것인가 | 차별 해소법으로서의 식민론 | ‘평화적’ 팽창론의 전사
《사회주의》의 ‘이동’ 언설 | 일본의 식민지 ‘텍사스’
제2부 기억을 둘러싼 항쟁
제3장 전략으로서의 ‘조선’ 표상
나카노 시게하루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의 번역 문제 | 제국 일본의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
조선어 미디어와 서적의 이동 | ‘조선인’은 피압박 민중인가 | 연대의 환상
제4장 식민지를 소비한다
전향과 식민지 작가의 조건 | 최승희와 장혁주의 대담 | ‘일제.국산’ 식민지 스타의 탄생
우리의 ‘조선’ | 이중 언어와 일본(어) 문학의 기원을 둘러싼 환상
제5장 총력전과 [파계]의 개정
다시 [파계]에 대하여 | ‘부락’과 ‘조선’의 교착 | 전국수평사의 운동 방침
총력전을 향하여 | ‘국민문학’으로 재생하는 [파계]
제3부 전후 신화의 노이즈
제6장 문학과 8월 15일
‘일본인’은 피압박 민족인가 | 김달수의 [현해탄]과 국민문학 | 8월 15일의 원근법 |《신일본문학》과 《민주조선》
제7장 ‘식민지 일본’이라는 신화
김달수와 허남기 | ‘저항’하는 주체의 편성 | 점령 정책과 《민주조선》
일본공산당의 이중적 태도 | ‘공투’의 함정
제8장 공투장에서의 여자들
메이데이 포스터 | 저항하는 ‘어머니’의 경계 | ‘팡팡(양공주)’이라는 신체
맺음말 | 성조기의 그늘 : 아베 가즈시게 『신세미아』와 점령의 기억
평화로운 닛폰에서 | ‘점령’이라는 공간과 시간의 교착 | ‘9·11’과 독자의 위치 |폭력의 기억을 보고 듣고 이야기하다
후주
옮긴이 후기
인명 찾아보기
출판사 리뷰
1945년 8월 15일 이후 일어난 기억의 재편성
‘전후’라는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현대 일본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연합군에 의한 7년간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전후(戰後)’란 말 그대로라면 전쟁 이후의 시기, 즉 일본에게는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제국의 해체와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점령을 아우르는 시간대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표제이자 화두인 ‘전후’는 단순한 시간적 지표가 아니라, 일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집단기억의 프레임’으로 제시된다. 일본은 패전 후 미국 성조기의 깃발 아래에서 ‘평화로운 일본’ ‘약한 일본’ 그리고 ‘피지배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제국 일본의 기억은 지워지고, 피해자로 스스로를 각인시킨 것이다. 따라서 ‘전후’란 현대 일본의 시작점을 알리는 종소리일 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이다.
일본은 패전과 점령 속에서 스스로를 피해자이자 피지배자 위치에 놓고 자신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 과정에서 일본제국 시기에 일으킨 전쟁 범죄와 식민지 착취의 기억은 상대화되거나 재구성되었다. 이 역사 쓰기에서 전쟁 전 혹은 전쟁 중에 있었던 진보적 사상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일본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평가되는 고토쿠 슈스이, [파계]의 사마자키 도손, 신일본문학의 선구자 나카노 시게하루의 이야기가 재등장했고, 식민지 조선의 최승희, 장혁주, 손기정, 김달수를 둘러싼 담론이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재구성된 것은 ‘전쟁’이라는 표상뿐이 아니었다. 냉전, 식민지, 지배-피지배, 조선, 일본문학, 공투, 여성 표상이 새로워진 프레임 안에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매끄럽게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밖에 없었고, 필연적으로 노이즈를 야기했다.
이 책의 저자 고영란은 일본 니혼대학의 한국인 교수로서, 내셔널리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틀에서 벗어나 일본 문학과 역사 속에서 작동하는 ‘전후’라는 프레임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이 책은 문학과 역사가 하나의 ‘이야기(모노가타리’라는 인식을 근간으로 한다. 역사는 언제나 무언가를 전경화하는 교섭과 보편화의 산물이다. 그렇게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신화가 만들어지면 그 기원은 으레 지워진다. 역사화를 기도하는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을 지렛대 삼아 성립한다. 저자 고영란이 사용하는 ‘노이즈’이라는 말은 이런 역사관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전경화된 역사의 기원에 놓인 것들, 그러나 지금은 밀려나거나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이기도 하면서, 매끄러운 서사를 위해서는 희생되어야 할 잡음 혹은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가 탐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 * *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 3부는 각각 러일전쟁(1904~1905), 아시아 태평양전쟁(1941~1945), 그리고 연합군 점령기(1945~1952)의 통사적 흐름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각 부의 내용은 통사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차의 횡단’에 가깝다. 1945년부터 1955년 사이에 근대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확장된 ‘전후’라는 프레임 안에서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전쟁, 냉전 붕괴, 그리고 9· 11과 3· 11이라는 사건들과 마주치며 어떤 충돌과 재편을 반복하는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전후 일본의 역사 및 사상에 대한 연구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 혹은 앞으로 진행될 일본의 내일과도 마주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이고 변형적이다.
반제국주의로 신화화된 평화적 팽창주의
〈제1부 전후라는 프레임〉에서는 고토쿠 슈스이와 소설 사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통해 제국주의를 둘러싼 담론이 전후에 어떻게 ‘세계 평화’의 표상으로 유통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대국 일본’의 아시아 경제 침략에 관한 무비판적 자세를 드러내며 ‘평화로운 일본’이라는 신화의 베일을 벗긴다.
1장 고토쿠 슈스이와 평화적 팽창주의 | 일본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1871~1911)의 ‘평화적 팽창주의’가 1945년 이후 ‘반(反)제국주의’로 해석되며 전후 ‘평화로운 일본’의 건설을 위한 배경이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고토쿠 슈스이는 천황 암살 계획을 기도한 ‘대역사건’(1911)으로 처형당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901년 일본제국주의의 팽창을 우려하며 비전론(非戰論)을 내세우면서 주목받았는데,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반전(反戰)과 평화 언설의 기원을 찾고자 했던 일본문학계의 필요에 의해 무대 위에 등장한다.
2장 [파계]에서의 ‘텍사스’ | 사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의 대표적인 소설 [파계]를 평화적 팽창주의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사마자키 도손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파계]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된 1906년은 러일전쟁 직후였으며, 이 작품이 일본이 경계선을 확장하기 위해 이민보호법을 개정하고 도미붐(渡美-boom)이 일어나는 등 평화적 일본 팽창의 의미와 연관된다는 것을 주목한 연구는 이제껏 없었다.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을 기억하는 방법
〈2부 기억을 둘러싼 항쟁〉에서는 나카노 시게하루의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의 조선어 번역 문제와 최승희, 장혁주, 그리고 1부에서 다룬 소설 [파계]의 개정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에 대한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3장 전략으로서의 ‘조선’ 표상 | 민족을 초월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1902~1979)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을 재검토한다. 이 시는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에서 쫓겨나 고국으로 가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 시에 화답하여 임화(林和)가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를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장에서는 이 시가 처음 개제된 잡지 〈개조〉 1929년 2월호의 판본과 3개월 후에 조선인 발간 잡지인 〈무산자〉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의 이북만(李北滿)과 김두용(金斗鎔)이 번역해 실린 이 시의 조선어 번역 판본을 비교한다.
4장 식민지를 소비한다 | 1930년대 일본을 무대로 활동한 조선인 소설가 장혁주(張赫宙)와 스타 무용수 최승희, 그리고 마라토너 손기정 등 식민지 스타들을 일본이 어떻게 소비했는지를 살펴본다. 장혁주의 소설은 상업자본인 개조사(改造社)와 프롤레타리아 문학 쪽의 각각의 입장에 따라 이리저리로 해석되고 소비되었다. 최승희 역시 일본에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일본에서는 최승희가 일본인 스승 이시이 바쿠로부터 배웠고 일본적인 여성의 춤이라고 묘사되며 “일제이고 완전히 국산이다”라고 소비되었다. 하지만 최승희 자신은 자신의 무용을 ‘아버지-오빠-남편’에 의해 인도받았으며 스스로를 ‘조선제-국산’이라고 밝히고, 조선에서는 최승희의 춤을 남성 젠더화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이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동아일보〉에 각각 달리 게재된 것에서도 일본에서 식민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5장 총력전과 [파계]의 개정 | 2장에서 살펴본 사마자키 도손의 소설 [파계]가 출판 직후에는 부상되지 않았던 ‘부락’ 표상 문제 때문에 10년간 절판되었다가 개정판이 간행되고(1939) 다시 초판이 복원되는(1953년) 등 50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소설의 출판 과정과 개정 과정 속에서 일본 근대문학 연구가 간과해온 ‘민족’을 둘러싼 싸움을 발견해낸다. 또 패전 후에 근대문학과 단절하려는 문학 운동 속에서 초판이 복원되면서 이 소설이 단일민족국가 ‘일본’의 ‘국민문학’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경위를 추적한다.
전후 신화의 노이즈, 식민지 지식인과 여성
〈3부 전후 신화의 노이즈〉에서는 패전 이후 새로운 일본의 역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한다. 하나는 조선인 지식인과 혁명가에 관해서이며, 또 하나는 여성의 이미지가 재현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6장 문학과 8월 15일 | 전후의 공간에서 일본 민주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한 진보적 문학가들과 재일조선인 문학가들이 사이에 8· 15를 둘러싸고 나타난 ‘차이’에 주목한다.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 박탈 문제에 대해 비판한다는 입장에서 두 잡지의 연대 관계만을 강조한 것에 반해,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연대 속 기억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주목한다. 나카노 시게하루를 대표로 한 일본 민주주의 문학운동에서는 8· 15를 제국주의 일본 대 식민지 조선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일본 ‘민족’을 ‘피압박 민족’으로 규정하고 전쟁 피해자의 위치에 ‘아시아 여러 민족’과 함께 ‘일본인’을 놓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8· 15를 일본의 침략적 식민지 획득의 시작과는 연관 짓지 않았다. 이는 8· 15를 일본의 식민지 침략의 기억을 소환하는 기호로 인식했던 조선인 문학가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7장 ‘식민지 일본’이라는 신화 | 1950년 전후로 조선인 소설가 김달수와 시인 허남기가 수용되는 맥락과 논쟁에 주목하면서 ‘연대’와 ‘공(동)투(쟁)’ 안의 균열점을 탐구한다. 또한 이 시기에 ‘조선인’을 둘러싼 의미에도 변화가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당시에 일본공산당이 일본에 있는 조선인 공산당원에게 일본공산당 운동 구성원의 입장을 우선시 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내셔널 아이덴티티는 인정한다는 이중적 입장을 방침으로 채택한다. 다시 말해, ‘공투’를 둘러싼 언설은 그때그때의 역사적 맥락에 의해, 서로의 의도와는 다른 형태로 변화를 되풀이해 왔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본인과 조선인의 공투라는 정형화된 에스닉 아이덴티티만 양산할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8장 공투장에서의 여성 | 1950년 전후 노동운동의 장에서 ‘민족’을 둘러싼 언설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었는지를 1950년 메이데이용 포스터의 여성 이미지에 주목해서 살핀다. 1950년 메이데이 전후에는 공산당뿐 아니라 노동운동 쪽도 복잡한 분열과 대립을 겪고 있었으며,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운동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사용된 포스터에는 유독 어머니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도상이 눈에 띈다. 탈진 상태의 어린아이를 안은 어머니 주위를 ‘전쟁 반대’ ‘식민지화 반대’ ‘민족 독립’ ‘전면 강화’ 같은 말이 둘러싼 이미지를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포스터들 속에서 에스닉, 계급, 젠더 등의 기호가 복잡하게 교착하면서 어떻게 어머니 표상 체계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추적하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남성 젠더화된 ‘민족’ ‘민족해방’, 그리고 계급적 관심 역시 이미 가부장적인 위계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심지어 총동원 체제에서의 젠더 전략과도 유사한 구도라는 것을 밝힌다.
3· 11 이후 전후 프레임의 변화와 재구성되는 집단 기억
[전후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본에서 출간된 것은 2010년이다. 그리고 1년 후 ‘3·11’과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3· 11이 일본의 ‘전후’라는 프레임을 뒤흔들고 있다고 파악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3· 11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작동될(되고 있는) 어떤 ‘원근법’이다. 원근법이란 어떤 것은 전경화시키는 반면, 어떤 것은 전경화된 무언가의 이면에 감추어 놓는 효과를 가진다. 이 원근법이란 최근 일본 국가와 사회는 ‘강한 일본’이라는 수사를 통해 새로운 내부 결속의 언설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와 집단 기억을 만드는 특정 프레임은 과거를 참조하면서 끊임없이 현재를 재구성해간다. 이 책이 던져주는 ‘전후’ 기억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이유이다.
‘전후’라는 이데올로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현대 일본의 역사는 제2차 세계대전 패전과 연합군에 의한 7년간의 점령으로 시작되었다. ‘전후(戰後)’란 말 그대로라면 전쟁 이후의 시기, 즉 일본에게는 1945년 패전 이후 일본제국의 해체와 연합국최고사령부의 점령을 아우르는 시간대를 가리킬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표제이자 화두인 ‘전후’는 단순한 시간적 지표가 아니라, 일본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하나의 ‘이데올로기’ 혹은 ‘집단기억의 프레임’으로 제시된다. 일본은 패전 후 미국 성조기의 깃발 아래에서 ‘평화로운 일본’ ‘약한 일본’ 그리고 ‘피지배자’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제국 일본의 기억은 지워지고, 피해자로 스스로를 각인시킨 것이다. 따라서 ‘전후’란 현대 일본의 시작점을 알리는 종소리일 뿐만 아니라 현대 일본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이다.
일본은 패전과 점령 속에서 스스로를 피해자이자 피지배자 위치에 놓고 자신의 역사를 다시 썼다. 그 과정에서 일본제국 시기에 일으킨 전쟁 범죄와 식민지 착취의 기억은 상대화되거나 재구성되었다. 이 역사 쓰기에서 전쟁 전 혹은 전쟁 중에 있었던 진보적 사상가와 문학가들의 이야기가 다시 무대 위에 올랐다. 일본 사회주의의 아버지라 평가되는 고토쿠 슈스이, [파계]의 사마자키 도손, 신일본문학의 선구자 나카노 시게하루의 이야기가 재등장했고, 식민지 조선의 최승희, 장혁주, 손기정, 김달수를 둘러싼 담론이 퍼져나갔다. 이를 통해 재구성된 것은 ‘전쟁’이라는 표상뿐이 아니었다. 냉전, 식민지, 지배-피지배, 조선, 일본문학, 공투, 여성 표상이 새로워진 프레임 안에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런 시도는 매끄럽게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닐 수밖에 없었고, 필연적으로 노이즈를 야기했다.
이 책의 저자 고영란은 일본 니혼대학의 한국인 교수로서, 내셔널리즘과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의 틀에서 벗어나 일본 문학과 역사 속에서 작동하는 ‘전후’라는 프레임을 섬세하게 탐구한다. 이 책은 문학과 역사가 하나의 ‘이야기(모노가타리’라는 인식을 근간으로 한다. 역사는 언제나 무언가를 전경화하는 교섭과 보편화의 산물이다. 그렇게 하나의 신화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신화가 만들어지면 그 기원은 으레 지워진다. 역사화를 기도하는 과정에서 주변으로 밀려나거나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보이지 않게 되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역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그것들을 지렛대 삼아 성립한다. 저자 고영란이 사용하는 ‘노이즈’이라는 말은 이런 역사관을 상징적으로 잘 보여준다. 그것은 전경화된 역사의 기원에 놓인 것들, 그러나 지금은 밀려나거나 보이지 않게 된 것들이기도 하면서, 매끄러운 서사를 위해서는 희생되어야 할 잡음 혹은 소음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가 탐구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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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와 2부, 3부는 각각 러일전쟁(1904~1905), 아시아 태평양전쟁(1941~1945), 그리고 연합군 점령기(1945~1952)의 통사적 흐름을 따르고 있다. 하지만 각 부의 내용은 통사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시차의 횡단’에 가깝다. 1945년부터 1955년 사이에 근대의 기억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그것이 시간적으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확장된 ‘전후’라는 프레임 안에서 한일국교정상화, 베트남전쟁, 냉전 붕괴, 그리고 9· 11과 3· 11이라는 사건들과 마주치며 어떤 충돌과 재편을 반복하는지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은 단순히 전후 일본의 역사 및 사상에 대한 연구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현재 혹은 앞으로 진행될 일본의 내일과도 마주치고 있다는 점에서 현재적이고 변형적이다.
반제국주의로 신화화된 평화적 팽창주의
〈제1부 전후라는 프레임〉에서는 고토쿠 슈스이와 소설 사마자키 도손의 [파계]를 통해 제국주의를 둘러싼 담론이 전후에 어떻게 ‘세계 평화’의 표상으로 유통되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 대국 일본’의 아시아 경제 침략에 관한 무비판적 자세를 드러내며 ‘평화로운 일본’이라는 신화의 베일을 벗긴다.
1장 고토쿠 슈스이와 평화적 팽창주의 | 일본 사회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고토쿠 슈스이(幸德秋水, 1871~1911)의 ‘평화적 팽창주의’가 1945년 이후 ‘반(反)제국주의’로 해석되며 전후 ‘평화로운 일본’의 건설을 위한 배경이 되었는가를 살펴본다. 고토쿠 슈스이는 천황 암살 계획을 기도한 ‘대역사건’(1911)으로 처형당한 것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1901년 일본제국주의의 팽창을 우려하며 비전론(非戰論)을 내세우면서 주목받았는데, 이것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후에 반전(反戰)과 평화 언설의 기원을 찾고자 했던 일본문학계의 필요에 의해 무대 위에 등장한다.
2장 [파계]에서의 ‘텍사스’ | 사마자키 도손(島崎藤村, 1872~1943)의 대표적인 소설 [파계]를 평화적 팽창주의의 맥락에서 해석한다. 사마자키 도손은 오늘날까지도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선구자로, [파계]는 일본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이 탄생된 1906년은 러일전쟁 직후였으며, 이 작품이 일본이 경계선을 확장하기 위해 이민보호법을 개정하고 도미붐(渡美-boom)이 일어나는 등 평화적 일본 팽창의 의미와 연관된다는 것을 주목한 연구는 이제껏 없었다.
식민지 조선과 조선인을 기억하는 방법
〈2부 기억을 둘러싼 항쟁〉에서는 나카노 시게하루의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의 조선어 번역 문제와 최승희, 장혁주, 그리고 1부에서 다룬 소설 [파계]의 개정을 통해서 ‘식민지 조선’에 대한 기억이 형성되는 과정을 살펴본다.
3장 전략으로서의 ‘조선’ 표상 | 민족을 초월한 프롤레타리아 문학운동의 ‘연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나카노 시게하루(中野重治, 1902~1979)의 시 ?비 내리는 시나가와역?을 재검토한다. 이 시는 조선인 노동자가 일본에서 쫓겨나 고국으로 가는 장면을 그린 것으로, 이 시에 화답하여 임화(林和)가 ?우산 받은 요꼬하마의 부두?(1929)를 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장에서는 이 시가 처음 개제된 잡지 〈개조〉 1929년 2월호의 판본과 3개월 후에 조선인 발간 잡지인 〈무산자〉에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카프: KAPF)의 이북만(李北滿)과 김두용(金斗鎔)이 번역해 실린 이 시의 조선어 번역 판본을 비교한다.
4장 식민지를 소비한다 | 1930년대 일본을 무대로 활동한 조선인 소설가 장혁주(張赫宙)와 스타 무용수 최승희, 그리고 마라토너 손기정 등 식민지 스타들을 일본이 어떻게 소비했는지를 살펴본다. 장혁주의 소설은 상업자본인 개조사(改造社)와 프롤레타리아 문학 쪽의 각각의 입장에 따라 이리저리로 해석되고 소비되었다. 최승희 역시 일본에서 스타덤에 올랐는데, 일본에서는 최승희가 일본인 스승 이시이 바쿠로부터 배웠고 일본적인 여성의 춤이라고 묘사되며 “일제이고 완전히 국산이다”라고 소비되었다. 하지만 최승희 자신은 자신의 무용을 ‘아버지-오빠-남편’에 의해 인도받았으며 스스로를 ‘조선제-국산’이라고 밝히고, 조선에서는 최승희의 춤을 남성 젠더화한 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한 손기정의 사진이 〈오사카 아사히 신문〉과 〈동아일보〉에 각각 달리 게재된 것에서도 일본에서 식민지를 소비하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다.
5장 총력전과 [파계]의 개정 | 2장에서 살펴본 사마자키 도손의 소설 [파계]가 출판 직후에는 부상되지 않았던 ‘부락’ 표상 문제 때문에 10년간 절판되었다가 개정판이 간행되고(1939) 다시 초판이 복원되는(1953년) 등 50년간 우여곡절을 겪은 문제를 다룬다. 여기에서 저자는 이 소설의 출판 과정과 개정 과정 속에서 일본 근대문학 연구가 간과해온 ‘민족’을 둘러싼 싸움을 발견해낸다. 또 패전 후에 근대문학과 단절하려는 문학 운동 속에서 초판이 복원되면서 이 소설이 단일민족국가 ‘일본’의 ‘국민문학’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 경위를 추적한다.
전후 신화의 노이즈, 식민지 지식인과 여성
〈3부 전후 신화의 노이즈〉에서는 패전 이후 새로운 일본의 역사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들을 두 가지 차원에서 검토한다. 하나는 조선인 지식인과 혁명가에 관해서이며, 또 하나는 여성의 이미지가 재현되는 방식에 관한 것이다.
6장 문학과 8월 15일 | 전후의 공간에서 일본 민주주의 문학운동을 주도한 진보적 문학가들과 재일조선인 문학가들이 사이에 8· 15를 둘러싸고 나타난 ‘차이’에 주목한다. 기존의 연구들에서는 재일조선인의 일본 국적 박탈 문제에 대해 비판한다는 입장에서 두 잡지의 연대 관계만을 강조한 것에 반해, 이 책에서 저자는 이 연대 속 기억의 차이를 드러내는 데 주목한다. 나카노 시게하루를 대표로 한 일본 민주주의 문학운동에서는 8· 15를 제국주의 일본 대 식민지 조선의 지배-피지배 관계를 강조함으로써 일본 ‘민족’을 ‘피압박 민족’으로 규정하고 전쟁 피해자의 위치에 ‘아시아 여러 민족’과 함께 ‘일본인’을 놓는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8· 15를 일본의 침략적 식민지 획득의 시작과는 연관 짓지 않았다. 이는 8· 15를 일본의 식민지 침략의 기억을 소환하는 기호로 인식했던 조선인 문학가들의 인식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7장 ‘식민지 일본’이라는 신화 | 1950년 전후로 조선인 소설가 김달수와 시인 허남기가 수용되는 맥락과 논쟁에 주목하면서 ‘연대’와 ‘공(동)투(쟁)’ 안의 균열점을 탐구한다. 또한 이 시기에 ‘조선인’을 둘러싼 의미에도 변화가 보이는 것에 주목한다. 예를 들어 당시에 일본공산당이 일본에 있는 조선인 공산당원에게 일본공산당 운동 구성원의 입장을 우선시 할 것을 촉구하면서도, 내셔널 아이덴티티는 인정한다는 이중적 입장을 방침으로 채택한다. 다시 말해, ‘공투’를 둘러싼 언설은 그때그때의 역사적 맥락에 의해, 서로의 의도와는 다른 형태로 변화를 되풀이해 왔다. 이런 역사적 과정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일본인과 조선인의 공투라는 정형화된 에스닉 아이덴티티만 양산할 뿐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한다.
8장 공투장에서의 여성 | 1950년 전후 노동운동의 장에서 ‘민족’을 둘러싼 언설이 어떻게 유통되고 있었는지를 1950년 메이데이용 포스터의 여성 이미지에 주목해서 살핀다. 1950년 메이데이 전후에는 공산당뿐 아니라 노동운동 쪽도 복잡한 분열과 대립을 겪고 있었으며, 외부의 압력으로 인해 운동 붕괴의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때 사용된 포스터에는 유독 어머니의 이미지를 강조하는 도상이 눈에 띈다. 탈진 상태의 어린아이를 안은 어머니 주위를 ‘전쟁 반대’ ‘식민지화 반대’ ‘민족 독립’ ‘전면 강화’ 같은 말이 둘러싼 이미지를 주목한다. 그리고 이런 포스터들 속에서 에스닉, 계급, 젠더 등의 기호가 복잡하게 교착하면서 어떻게 어머니 표상 체계가 만들어지고 사용되며, 그 의미는 무엇인지 추적하고 비판한다. 여기에서 남성 젠더화된 ‘민족’ ‘민족해방’, 그리고 계급적 관심 역시 이미 가부장적인 위계 위에서 형성되었으며, 심지어 총동원 체제에서의 젠더 전략과도 유사한 구도라는 것을 밝힌다.
3· 11 이후 전후 프레임의 변화와 재구성되는 집단 기억
[전후라는 이데올로기]가 일본에서 출간된 것은 2010년이다. 그리고 1년 후 ‘3·11’과 일련의 상황이 전개되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볼 수 있듯이 저자는 3· 11이 일본의 ‘전후’라는 프레임을 뒤흔들고 있다고 파악한다. 저자가 우려하는 것은 3· 11이라는 프레임에 의해 작동될(되고 있는) 어떤 ‘원근법’이다. 원근법이란 어떤 것은 전경화시키는 반면, 어떤 것은 전경화된 무언가의 이면에 감추어 놓는 효과를 가진다. 이 원근법이란 최근 일본 국가와 사회는 ‘강한 일본’이라는 수사를 통해 새로운 내부 결속의 언설로 구축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와 집단 기억을 만드는 특정 프레임은 과거를 참조하면서 끊임없이 현재를 재구성해간다. 이 책이 던져주는 ‘전후’ 기억에 대한 새로운 목소리를 진지하게 경청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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