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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장의 동력이 추락의 날개가 된 1940년 체제의 진실
전후에도 살아남은 전시체제가 부흥의 공신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
“1940년 체제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일본 경제의 멍에?입니다.”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를 옥죄고 있는 대동원체제의 실체 분석
무너져가는 나라에 바친 노 경제학자의 충고
- 일본 경제의 부흥과 몰락을 직접 겪은 관료-경제학자의 내부적 시선
- 도쿄 대공습부터 헤이세이 시대까지, 일본 경제사의 총결산
- 고도성장, 부동산 거품, 장기 침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분석
일본 경제의 번영과 몰락에 얽힌 서사는 너무도 극적이었던 나머지 한국인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친숙해져 있다. 그래서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질 때마다 한국 경제의 거울로서 일본 경제가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한 나라의 경제적 부침에는 여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기에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완전히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쇠락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원인과 경과를 반추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 중요한 기회다.
특히 이 책은 일본 현지에서도 불편하게 여겨졌을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한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부침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적절하다. 저자 노구치 유키오는 일본이 성장 일로를 걷던 1964년부터 대장성에서 일한 경제 관료이자 오랜 세월 일본 경제를 연구한 굴지의 경제학자다. 저자는 보기 드문 관료-경제학자로서의 경험에 기반하여 일본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얽힌 복잡한 맥락을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성공한다.
도쿄 대공습 시점부터 지금의 헤이세이 시대까지, 일본 경제의 기나긴 굴곡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개의 눈’과 ‘새의 눈’이라는 두 시점을 책의 뼈대로 삼는다. ‘개의 눈’은 ‘지상으로부터의 시점’이며 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회와 경제의 변천사, 즉 ‘자서전적 연대기’를 구축한다. ‘새의 눈’은 반대로 ‘하늘로부터의 시점’이자 사회와 경제를 내려다보는 부감도俯瞰圖다. 특히 저자가 택한 ‘새의 눈’은 ‘전후의 민주화와 경제?사회 개혁이 기존 체제를 끝내고 일본을 부흥시켰다’는 통설적 사관史觀에 반하여 ‘전후에도 살아남은 전시체제가 부흥의 공신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는 ‘1940년 체제 사관’이다. 이 차별적인 시선을 통해, 저자는 근현대 일본 경제의 발목을 몰래 붙잡아온 강력한 멍에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다.
전후에도 살아남은 전시체제가 부흥의 공신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
“1940년 체제야말로 모든 문제의 근원이자 일본 경제의 멍에?입니다.”
일본의 정치·경제·사회를 옥죄고 있는 대동원체제의 실체 분석
무너져가는 나라에 바친 노 경제학자의 충고
- 일본 경제의 부흥과 몰락을 직접 겪은 관료-경제학자의 내부적 시선
- 도쿄 대공습부터 헤이세이 시대까지, 일본 경제사의 총결산
- 고도성장, 부동산 거품, 장기 침체를 아우르는 포괄적인 분석
일본 경제의 번영과 몰락에 얽힌 서사는 너무도 극적이었던 나머지 한국인들에게도 이미 어느 정도 친숙해져 있다. 그래서 경제 전망에 대한 우려가 커질 때마다 한국 경제의 거울로서 일본 경제가 언급되기도 한다. 물론 한 나라의 경제적 부침에는 여러 복잡한 맥락이 얽혀 있기에 한국 경제가 일본 경제를 완전히 답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쇠락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원인과 경과를 반추해볼 수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분명 중요한 기회다.
특히 이 책은 일본 현지에서도 불편하게 여겨졌을 정도로 날카롭고 정확한 분석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본 경제의 부침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더없이 적절하다. 저자 노구치 유키오는 일본이 성장 일로를 걷던 1964년부터 대장성에서 일한 경제 관료이자 오랜 세월 일본 경제를 연구한 굴지의 경제학자다. 저자는 보기 드문 관료-경제학자로서의 경험에 기반하여 일본 경제의 성장과 침체에 얽힌 복잡한 맥락을 다방면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하는 데 성공한다.
도쿄 대공습 시점부터 지금의 헤이세이 시대까지, 일본 경제의 기나긴 굴곡을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개의 눈’과 ‘새의 눈’이라는 두 시점을 책의 뼈대로 삼는다. ‘개의 눈’은 ‘지상으로부터의 시점’이며 개인의 눈을 통해 바라본 사회와 경제의 변천사, 즉 ‘자서전적 연대기’를 구축한다. ‘새의 눈’은 반대로 ‘하늘로부터의 시점’이자 사회와 경제를 내려다보는 부감도俯瞰圖다. 특히 저자가 택한 ‘새의 눈’은 ‘전후의 민주화와 경제?사회 개혁이 기존 체제를 끝내고 일본을 부흥시켰다’는 통설적 사관史觀에 반하여 ‘전후에도 살아남은 전시체제가 부흥의 공신이자 몰락의 원인이었다’는 ‘1940년 체제 사관’이다. 이 차별적인 시선을 통해, 저자는 근현대 일본 경제의 발목을 몰래 붙잡아온 강력한 멍에를 백일하에 드러내고 있다.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제1장 전후에도 계속 살아남은 전시체제: 1945~1959
1. 폭격으로 불타버린 폐허로부터의 재출발
2. 경사생산방식과 인플레이션
3. 본격적인 경제성장으로의 도움닫기
4. “이제는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5. 일반적인 전후 사관과 ‘1940년 체제’ 사관
제2장 고도성장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1960~1970
1. 고도성장의 본격화
2. 대장성에서 목격한 ‘1940년 체제’의 실상
3. 고도성장의 메커니즘
4. 미국에서 본 일본의 진면목
제3장 일본 기업들, 석유파동을 이겨내다: 1971~1979
1. 닉슨 쇼크와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2.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경제 충격
3. 석유파동과 변동환율의 의미
제4장 도금 시대처럼 겉만 휘황찬란했던 호황기: 1980~1989
1. 재팬 애즈 넘버 원=세계 제일의 일본
2. 자유주의 사상의 복권
3. 거품 경제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4. 거품 경제는 ‘1940년 체제’의 마지막 발악
제5장 거품 경제도, ‘1940년 체제’도 붕괴: 1990~1999
1. “일본이 미국보다 강하다”는 착각
2. 금융기관의 거액 불량 채권 문제
3. 대혼란에 빠진 대장성
제6장 일본을 뒤에 두고 발전한 세계: 1980~
1. 독일 재통일, 그러나 오지 않은 독일의 시대
2. 중국이 공업화에 성공하다!
3. IT 혁명이 가져온 경제활동의 중대 변화
4. 1990년대 이후의 변화가 일본에게는 역풍
5. 1990년대 중반 정점을 찍은 일본이 장기 쇠퇴에 빠진 까닭
6. 역사의 걸음을 멈춘 21세기 일본
에필로그: 일본인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끝마치며: 일본인은 ‘1940년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고판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프롤로그
제1장 전후에도 계속 살아남은 전시체제: 1945~1959
1. 폭격으로 불타버린 폐허로부터의 재출발
2. 경사생산방식과 인플레이션
3. 본격적인 경제성장으로의 도움닫기
4. “이제는 더 이상 전후가 아니다”
5. 일반적인 전후 사관과 ‘1940년 체제’ 사관
제2장 고도성장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1960~1970
1. 고도성장의 본격화
2. 대장성에서 목격한 ‘1940년 체제’의 실상
3. 고도성장의 메커니즘
4. 미국에서 본 일본의 진면목
제3장 일본 기업들, 석유파동을 이겨내다: 1971~1979
1. 닉슨 쇼크와 변동환율제로의 이행
2. 석유파동으로 인한 세계경제 충격
3. 석유파동과 변동환율의 의미
제4장 도금 시대처럼 겉만 휘황찬란했던 호황기: 1980~1989
1. 재팬 애즈 넘버 원=세계 제일의 일본
2. 자유주의 사상의 복권
3. 거품 경제는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4. 거품 경제는 ‘1940년 체제’의 마지막 발악
제5장 거품 경제도, ‘1940년 체제’도 붕괴: 1990~1999
1. “일본이 미국보다 강하다”는 착각
2. 금융기관의 거액 불량 채권 문제
3. 대혼란에 빠진 대장성
제6장 일본을 뒤에 두고 발전한 세계: 1980~
1. 독일 재통일, 그러나 오지 않은 독일의 시대
2. 중국이 공업화에 성공하다!
3. IT 혁명이 가져온 경제활동의 중대 변화
4. 1990년대 이후의 변화가 일본에게는 역풍
5. 1990년대 중반 정점을 찍은 일본이 장기 쇠퇴에 빠진 까닭
6. 역사의 걸음을 멈춘 21세기 일본
에필로그: 일본인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끝마치며: 일본인은 ‘1940년 체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문고판 후기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책 속으로
전시에 만들어진 이러한 경제체제는 전쟁이 발발하기 이전의 일본 경제 형태와는 이질적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저는 그 체제를 ‘1940년 체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결국 총력전을 위한 국가총동원 체제로 만들어진 ‘1940년 체제’는 종전에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살아남아 전후 일본 경제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 p.27
일본형 경영을 실행하는 기업은 ‘최고경영자부터 현장의 작업원까지, 전원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 협력한다’는 의미에서 군대와 같은 성격의 조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의 목적이란 최우선이 조직으로서의 생존이며, 그다음이 동종 업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회사에 강한 충성심을 갖고 일하는 일본 기업의 직원을 가리키는 이른바 ‘기업 전사’라는 말에는 비유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51
그 무렵 일본에서는 누구나 ‘일본의 미래는 지금보다 반드시 좋아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황금시대’라는 낱말이 있는데, 유럽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뜻하는 관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기묘한 느낌을 받았지요. 1960년대의 일본인이라면 누구든 당연하다는 듯이 ‘황금시대는 일본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25
총수부터 현장까지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치단결해 협력한다는 ‘1940년 체제’의 이념이 석유파동 위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 셈입니다. 그로 인해 일본은 석유파동 이후에도 경제 우등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 p.195
요컨대 “일본의 주가가 너무 높은데 이미 성층권까지 올라간 것은 아닐까?”라는 투자자의 불안에 대해 증권사 영업 사원은 “일본에 한해서는 주식시장에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뉴턴의 중력 법칙은 일본 주식시장에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 p.238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지가 상승은 일본 경제의 성장을 반영한 합리적인 현상이라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습니다. 제가 토론회 등에서 현재의 땅값은 거품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자 강한 반론이 되돌아왔습니다. 거품 경제가 최고로 진행되는 동안, 거품을 거품이라고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거품이라고 ‘지적’하기는 더 어렵고요.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 p.251
이렇게 시대가 크게 변했음에도 일본 기업은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원인은 “일본형 기업 조직은 ‘1940년 체제’에는 적합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탄생한 새로운 체제에는 부적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IT 혁명’이라는 엄청난 기술 진화의 혜택을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했습니다.
--- p.304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잘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단정 짓는 사람이 자꾸 나온다면, 그건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죠. 1980년대의 거품 경제 속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도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적으로 부가가치는 창출되지 않고, 폭탄 돌리기 게임이 계속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죠.
--- p.335
정치의 역할은 누가 혹은 어느 부문이 희생될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21세기 일본 정치는 그것을 결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향후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측되는데도 그것을 직시하는 정책을 펴려 하지 않고 일회성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만 하는데 어떻게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 p.27
일본형 경영을 실행하는 기업은 ‘최고경영자부터 현장의 작업원까지, 전원이 공통의 목적을 위해서 협력한다’는 의미에서 군대와 같은 성격의 조직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통의 목적이란 최우선이 조직으로서의 생존이며, 그다음이 동종 업계와의 경쟁에서 승리해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회사에 강한 충성심을 갖고 일하는 일본 기업의 직원을 가리키는 이른바 ‘기업 전사’라는 말에는 비유 이상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51
그 무렵 일본에서는 누구나 ‘일본의 미래는 지금보다 반드시 좋아진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황금시대’라는 낱말이 있는데, 유럽에서는 과거의 영광을 뜻하는 관용어로 쓰이고 있습니다. 그것을 알고 기묘한 느낌을 받았지요. 1960년대의 일본인이라면 누구든 당연하다는 듯이 ‘황금시대는 일본의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p.125
총수부터 현장까지 모두가 하나의 목적을 향해 일치단결해 협력한다는 ‘1940년 체제’의 이념이 석유파동 위기에서 그 진가를 발휘한 셈입니다. 그로 인해 일본은 석유파동 이후에도 경제 우등생이 될 수 있었습니다.
--- p.195
요컨대 “일본의 주가가 너무 높은데 이미 성층권까지 올라간 것은 아닐까?”라는 투자자의 불안에 대해 증권사 영업 사원은 “일본에 한해서는 주식시장에 중력의 법칙이 작용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뉴턴의 중력 법칙은 일본 주식시장에도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 p.238
신문이나 잡지에서도 지가 상승은 일본 경제의 성장을 반영한 합리적인 현상이라는 의견이 압도적 다수였습니다. 제가 토론회 등에서 현재의 땅값은 거품이라는 의견을 피력하자 강한 반론이 되돌아왔습니다. 거품 경제가 최고로 진행되는 동안, 거품을 거품이라고 ‘인정’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거품이라고 ‘지적’하기는 더 어렵고요. 누구도 이해해주지 않는 고독한 싸움입니다.
--- p.251
이렇게 시대가 크게 변했음에도 일본 기업은 대응할 수 없었습니다. 중요한 원인은 “일본형 기업 조직은 ‘1940년 체제’에는 적합했으나,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탄생한 새로운 체제에는 부적합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IT 혁명’이라는 엄청난 기술 진화의 혜택을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했습니다.
--- p.304
“일하지 않아도 풍요롭게 잘살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단정 짓는 사람이 자꾸 나온다면, 그건 세상이 잘못되고 있다는 증거죠. 1980년대의 거품 경제 속에서 이러한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 하지만 이런 상황은 오래갈 수 없습니다. 아무도 성실하게 일하지 않으면 경제 전체적으로 부가가치는 창출되지 않고, 폭탄 돌리기 게임이 계속될 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큰 손해를 보는 사람이 나타나기 마련이죠.
--- p.335
정치의 역할은 누가 혹은 어느 부문이 희생될지를 결정하는 겁니다. 그런데 21세기 일본 정치는 그것을 결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향후 문제가 생길 것으로 예측되는데도 그것을 직시하는 정책을 펴려 하지 않고 일회성 대책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만 하는데 어떻게든 그럭저럭 견딜 수 있을 거라고만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을 영원히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 p.357~358
출판사 리뷰
1940년 체제의 탄생: 전쟁 수행을 위한 국가총동원 체제
‘1940년 체제’는 본질적으로 전시에 확립된 국가총동원 체제로, ‘국가에 의한 산업 통제’라는 이념하에 모든 사회 요소를 전쟁 수행이라는 목적에 종속시키려 했다. 이에 따라 전시 일본에서는 산업, 금융, 조세, 재정, 농지 등 전방위에서 개혁이 단행되었다. 산업을 위한 자금 흐름을 통제했고, 이를 위해 은행을 국가 목적에 봉사토록 만들었으며,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국가 중심으로 조세체계를 재구축하고, 생산력 향상을 위해 농지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사업을 국영화하고 언론도 전시 상황에 맞게 통?폐합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 전시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졌고, 미 점령군이 일본에 진주하여 전후 일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0년 체제는 거의 그대로 살아남아 이후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미 점령군이 일본의 시스템에 무지했기에 실질적으로 전시체제를 이끌며 경제정책을 주도하던 여러 부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일본의 전시 테크노크라트들은 부처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힘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은근히 점령군을 속이고 조종하여 일본의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로써 1940년 체제는 이후 반세기를 주름잡을 준비를 마쳤다. 1949년에 공포된 ‘외환법’을 근거로 통산성이 외화 흐름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금융 쇄국에 돌입했으며, ‘임시자금조정법’과 ‘임시금리조정법’을 근거로 일본은행이 민간은행의 개별적 융자를 통제하고 금리를 좌우하게 되었다. 모든 자원 배분을 국가가 주도하는 ‘통제적 할당 방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자원의 배분처를 국가가 결정함으로써 일본은 중화학공업화를 빠르게 실현하고 극적인 전후 부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한국전쟁 특수까지 더해져, 일본은 “전후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고도성장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부흥의 공신, 몰락의 원인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일본의 명목 GDP는 5년마다 2배라는 엄청난 증가세를 보였다. 농업사회는 급속도로 공업화되었고, 국민의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됨으로써 문화 면에서 아직까지 향수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쇼와 30년대’가 도래했다. 이 시기 일본은 철강 생산량이 미국을 거의 따라잡고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조성되기도 하는 등 산업의 다방면에서 세계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일본의 미래는 황금기일 것’이라 믿는, 번영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시대였다.
이 시기의 고도성장 역시 1940년 체제가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세계경제에서 첨단 분야는 중화학공업이었는데, 앞서 얘기했듯 1940년 체제 특유의 통제적 할당 방식이 중화학공업 육성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집단적 기업 문화도 중화학공업의 수직통합형 생산방식에 잘 어울렸던 것이다. 또한 정부는 대장성의 ‘재정투융자’ 제도를 통해 육성이 필요한 부문에 아주 낮은 금리로 융자를 내주기도 했다. 재정투융자는 정상적인 경제체제하에서는 존속될 수 없는 구조였으며, 일본 정부가 금리를 통제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1940년 체제 속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이 전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불러왔을 때도 일본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시련을 잘 극복해냈다. 무엇보다 전시에 형성된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가 큰 힘을 발휘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면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 기업이 경영 위기에 빠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1940년 체제의 이념하에 노동조합과 경영진이 하나 되어 임금 인상보다 회사의 존속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이는 큰 성과였지만, 저자는 이때 ‘1940년 체제라는 멍에’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1940년 체제가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을 성공으로 이끈 탓에 많은 사람이 이 체제를 ‘만능’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석유파동을 극복하는 데 1940년 체제가 큰 공헌을 함으로써 일본의 시스템에 대한 예찬론, 1940년 체제에 대한 예찬론이 일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맹신은 아직까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도금 시대와 거품 경제 그리고 끝없는 침체
1980년대에 일본은 자동차, 반도체, 주가 지표 등등 여러 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어갔다. 게다가 1986년 ‘역 오일 쇼크’로 인한 유가 하락으로 인해 성장은 더욱더 가속되었다. 하지만 이 번영이 가져온 것은 ‘황금 시대’가 아니라 ‘도금 시대’일 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국가가 가진 힘에 비해 경제 지표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거품 경제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1980년대의 ‘재테크 열풍’이다. 금융이 자유화되던 시기였기에 여러 규제가 완화되었는데, 규제의 틈을 노리고 ‘전환사채’나 ‘워런트채’ 등 기형적인 방식으로 기업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 경제성장에 따라 도쿄가 아시아의 중심지가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지가도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여기에는 일본이 가진 힘, 즉 1940년 체제에 대한 맹신이 강하게 작용했다. 저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땅값 상승은 거품’이라고 주장했으나 사회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국력을 쌓아왔으므로 주가든 지가든 팽창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왜곡은 ‘이제 1940년 체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말하자면 거품 경제는 1940년 체제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이다. 1940~1950년대와는 국제적 환경이 전혀 달랐기에, 1980년대는 일본 경제가 변혁을 이뤄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3개 ‘장기신용은행’ 등 금융계가 모델 전환에 실패하고 투기로 부를 쌓기 시작하면서 변혁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자국을 예찬하는 데 빠져 ‘열심히 일해야 번영할 수 있다’는 관념을 잊고 불로소득과 투기에 매진하게 되었다. 일본이 강국이라는 믿음 때문에 비정상적인 경제 과열에 의심 없이 온몸을 던진 것이다. 1940년 체제의 지난 성공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영업 특금과 ‘도바시’, 불량 채권 은폐 등 금융계의 병폐가 결국 임계점을 넘어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다. 이로써 홋카이도척식은행, 야마이치증권, 일본장기신용은행 등 금융계의 대형 기업?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주가든 지가든 거품이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눈앞의 불을 껐고, 일본 경제는 스스로 체질을 개선할 기회를 잃었으며, 국가적 손실은 국민에게 그대로 전가되었다. 게다가 일본 경제를 좌우하던 대장성이 비리 스캔들로 해체되면서, 드디어 혹은 너무 늦게 1940년 체제가 막을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가 시작된 것이다.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후 일본은 과거의 고점에 다시 닿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거품 붕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원인으로, 저자는 1940년 체제의 점성 때문에 크게 뒤처져버린 일본의 산업구조와 경제체제를 꼬집는다. 먼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면 중국과는 다른 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어야만 했다. 또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는커녕 2004년 환율 개입으로 인한 ‘엔화 약세’가 마약처럼 작용해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무역 흑자에 사람들이 안주하게 됐다. 게다가 IT산업 등 ‘수평분업형’ 생산방식을 요구하는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인데도 일본 기업은 아직 1940~1950년대에 성립된 수직적, 집단적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실수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말 것, 세계적 변화에 민감할 것, 일하는 만큼 돌아온다는 원칙을 잊고 불로소득과 투기의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 것,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를 항상 생각할 것. 저자는 거대한 환상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와중에 홀로 위화감을 느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만약 저자처럼 예민한 사람이 좀더 많았다면 지금 일본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본의 1940년 체제처럼 한국 경제를 붙잡고 있는 멍에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경제에 어느 때보다 선명한 위기가 드리워진 지금,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얻을 통찰과 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해 보인다.
‘1940년 체제’는 본질적으로 전시에 확립된 국가총동원 체제로, ‘국가에 의한 산업 통제’라는 이념하에 모든 사회 요소를 전쟁 수행이라는 목적에 종속시키려 했다. 이에 따라 전시 일본에서는 산업, 금융, 조세, 재정, 농지 등 전방위에서 개혁이 단행되었다. 산업을 위한 자금 흐름을 통제했고, 이를 위해 은행을 국가 목적에 봉사토록 만들었으며, 전쟁 수행에 도움이 되도록 국가 중심으로 조세체계를 재구축하고, 생산력 향상을 위해 농지 개혁을 추진했다. 또한 여러 분야의 사업을 국영화하고 언론도 전시 상황에 맞게 통?폐합했다.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인해 전시체제를 유지할 필요성이 사라졌고, 미 점령군이 일본에 진주하여 전후 일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40년 체제는 거의 그대로 살아남아 이후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게 된다. 미 점령군이 일본의 시스템에 무지했기에 실질적으로 전시체제를 이끌며 경제정책을 주도하던 여러 부처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덕에 일본의 전시 테크노크라트들은 부처의 이름을 바꾸는 것만으로 힘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은근히 점령군을 속이고 조종하여 일본의 전후 복구를 위한 정책을 밀어붙이기도 했다.
이로써 1940년 체제는 이후 반세기를 주름잡을 준비를 마쳤다. 1949년에 공포된 ‘외환법’을 근거로 통산성이 외화 흐름을 일괄적으로 관리하고 금융 쇄국에 돌입했으며, ‘임시자금조정법’과 ‘임시금리조정법’을 근거로 일본은행이 민간은행의 개별적 융자를 통제하고 금리를 좌우하게 되었다. 모든 자원 배분을 국가가 주도하는 ‘통제적 할당 방식’이 자리잡은 것이다. 이렇게 자원의 배분처를 국가가 결정함으로써 일본은 중화학공업화를 빠르게 실현하고 극적인 전후 부흥을 이뤄내는 데 성공했다. 거기에 한국전쟁 특수까지 더해져, 일본은 “전후는 끝났다”고 선언하며 고도성장기를 맞이할 수 있었다.
부흥의 공신, 몰락의 원인
1955년부터 1970년까지, 일본의 명목 GDP는 5년마다 2배라는 엄청난 증가세를 보였다. 농업사회는 급속도로 공업화되었고, 국민의 생활수준도 크게 개선됨으로써 문화 면에서 아직까지 향수의 대상이 되는 이른바 ‘쇼와 30년대’가 도래했다. 이 시기 일본은 철강 생산량이 미국을 거의 따라잡고 석유화학 콤비나트가 조성되기도 하는 등 산업의 다방면에서 세계 선진국으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일본의 미래는 황금기일 것’이라 믿는, 번영에 대한 기대로 가득한 시대였다.
이 시기의 고도성장 역시 1940년 체제가 주요 원인이었다. 당시 세계경제에서 첨단 분야는 중화학공업이었는데, 앞서 얘기했듯 1940년 체제 특유의 통제적 할당 방식이 중화학공업 육성에 유리하게 작용했으며 집단적 기업 문화도 중화학공업의 수직통합형 생산방식에 잘 어울렸던 것이다. 또한 정부는 대장성의 ‘재정투융자’ 제도를 통해 육성이 필요한 부문에 아주 낮은 금리로 융자를 내주기도 했다. 재정투융자는 정상적인 경제체제하에서는 존속될 수 없는 구조였으며, 일본 정부가 금리를 통제해야만 실현될 수 있는 1940년 체제 속 교묘한 시스템이었다.
1973년 발발한 제4차 중동전쟁이 전 세계적인 석유파동을 불러왔을 때도 일본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시련을 잘 극복해냈다. 무엇보다 전시에 형성된 일본 특유의 기업 문화가 큰 힘을 발휘했다. 유가 상승으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찾아오면 노동조합이 임금 인상을 요청하고 기업이 경영 위기에 빠져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의 악순환이 시작될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1940년 체제의 이념하에 노동조합과 경영진이 하나 되어 임금 인상보다 회사의 존속을 우선시했던 것이다.
이는 큰 성과였지만, 저자는 이때 ‘1940년 체제라는 멍에’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1940년 체제가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일본을 성공으로 이끈 탓에 많은 사람이 이 체제를 ‘만능’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정적으로 석유파동을 극복하는 데 1940년 체제가 큰 공헌을 함으로써 일본의 시스템에 대한 예찬론, 1940년 체제에 대한 예찬론이 일본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맹신은 아직까지 일본의 경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도금 시대와 거품 경제 그리고 끝없는 침체
1980년대에 일본은 자동차, 반도체, 주가 지표 등등 여러 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어갔다. 게다가 1986년 ‘역 오일 쇼크’로 인한 유가 하락으로 인해 성장은 더욱더 가속되었다. 하지만 이 번영이 가져온 것은 ‘황금 시대’가 아니라 ‘도금 시대’일 뿐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실제로 국가가 가진 힘에 비해 경제 지표들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거품 경제의 가장 큰 원인은 바로 1980년대의 ‘재테크 열풍’이다. 금융이 자유화되던 시기였기에 여러 규제가 완화되었는데, 규제의 틈을 노리고 ‘전환사채’나 ‘워런트채’ 등 기형적인 방식으로 기업이 부를 축적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일본 경제성장에 따라 도쿄가 아시아의 중심지가 될 거라는 기대감 때문에 지가도 급격히 상승하게 된다. 여기에는 일본이 가진 힘, 즉 1940년 체제에 대한 맹신이 강하게 작용했다. 저자는 일본에서 처음으로 ‘땅값 상승은 거품’이라고 주장했으나 사회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만큼 국력을 쌓아왔으므로 주가든 지가든 팽창하는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왜곡은 ‘이제 1940년 체제가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인했다. 말하자면 거품 경제는 1940년 체제의 ‘마지막 발악’이었던 것이다. 1940~1950년대와는 국제적 환경이 전혀 달랐기에, 1980년대는 일본 경제가 변혁을 이뤄내야만 하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3개 ‘장기신용은행’ 등 금융계가 모델 전환에 실패하고 투기로 부를 쌓기 시작하면서 변혁의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본인들은 자국을 예찬하는 데 빠져 ‘열심히 일해야 번영할 수 있다’는 관념을 잊고 불로소득과 투기에 매진하게 되었다. 일본이 강국이라는 믿음 때문에 비정상적인 경제 과열에 의심 없이 온몸을 던진 것이다. 1940년 체제의 지난 성공이 드리운 짙은 그림자였다.
1990년대에 들어서자 영업 특금과 ‘도바시’, 불량 채권 은폐 등 금융계의 병폐가 결국 임계점을 넘어 만천하에 드러나버렸다. 이로써 홋카이도척식은행, 야마이치증권, 일본장기신용은행 등 금융계의 대형 기업?기관들이 줄줄이 파산하고 주가든 지가든 거품이 빠른 속도로 붕괴하기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공적 자금을 투입해 눈앞의 불을 껐고, 일본 경제는 스스로 체질을 개선할 기회를 잃었으며, 국가적 손실은 국민에게 그대로 전가되었다. 게다가 일본 경제를 좌우하던 대장성이 비리 스캔들로 해체되면서, 드디어 혹은 너무 늦게 1940년 체제가 막을 내렸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경기 침체가 시작된 것이다.
환상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이후 일본은 과거의 고점에 다시 닿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 거품 붕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한 원인으로, 저자는 1940년 체제의 점성 때문에 크게 뒤처져버린 일본의 산업구조와 경제체제를 꼬집는다. 먼저 중국의 부상에 대응하려면 중국과는 다른 산업을 육성하는 쪽으로 차별화를 시도했어야만 했다. 또한, 산업구조를 전환하기는커녕 2004년 환율 개입으로 인한 ‘엔화 약세’가 마약처럼 작용해 일시적이고 비정상적인 무역 흑자에 사람들이 안주하게 됐다. 게다가 IT산업 등 ‘수평분업형’ 생산방식을 요구하는 산업이 경쟁력을 가지는 시대인데도 일본 기업은 아직 1940~1950년대에 성립된 수직적, 집단적 문화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의 실수가 주는 교훈은 간단하면서도 어렵다. 과거의 영광에 취하지 말 것, 세계적 변화에 민감할 것, 일하는 만큼 돌아온다는 원칙을 잊고 불로소득과 투기의 허상에 사로잡히지 말 것, 역사 속에서 우리가 어디쯤 있는지를 항상 생각할 것. 저자는 거대한 환상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는 와중에 홀로 위화감을 느끼며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했다. 만약 저자처럼 예민한 사람이 좀더 많았다면 지금 일본이 어떻게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본의 1940년 체제처럼 한국 경제를 붙잡고 있는 멍에도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경제에 어느 때보다 선명한 위기가 드리워진 지금, 이 책을 일독함으로써 얻을 통찰과 지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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