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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2010)근세

동방박사님 2023. 8. 25.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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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발견의 시대"라 불린 대항해 시대 속으로….

15세기 중엽부터 16세기 말 사이에 유럽인들이 다른 지역에 대해 갖고 있던 지식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1400년경 유럽 인들은 그들이 후세에 남긴 지도들이 잘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유럽 이외의 지역에 대해 매우 불분명하거나 사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후 150여 년동안 지구에 대한 유럽인들의 지식은 마치 배 속에서 윤곽이 불분명한 작은 핏덩어리에서 점차 모습을 갖추어 가는 태아처럼 빠르게 모습을 갖추어 갔고, 1600년경이 되면 현재 우리가 떠올리는 것과 얼추 비슷한 모습의 지구를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은 오랫동안 고립된 상태로 발전해 왔던 세계의 각 지역들은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계기로 서로 만나고 교류하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유럽인들의 발견과 탐험을 살피면서 역사적으로 주목 받지 못했던 대항해 시대를 재조명했다. 책을 통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순간으로 평가되는 '대항해 시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

목차

- 머리말ㅣ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1 유럽 인들은 왜 먼바다로 나가려고 했는가?
2 어떤 지식과 기술의 발전이 대항해를 가능하게 했는가?
3 포르투갈은 아시아를 정복하고 지배했는가?
4 에스파냐 정복은 포르투갈 정복과 어떻게 달랐는가?
5 아메리카의 정복자들은 누구이고 그들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6 대항해 시대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저자 소개
저 : 김원중
 
1958년 광주(光州)에서 태어나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근대 초 스페인 정치사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문으로 「16세기 스페인 제국의 재정 그리고 절대 왕정의 성격」, 「근대 초 스페인 제국의 흥기와 몰락」, 「근대 초 스페인 종교재판소와 유대인 문제」, 「16세기 카스티야 코르테스와 마드리드」, 「망각협정과 스페인의 과거청산」...

출판사 리뷰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 출간

▶ 우리의 관심으로 서양을 바라보다


『민음 지식의 정원』 시리즈 서양사편이 민음인에서 출간됐다. ‘시대를 뛰어넘는 삶의 근본적인 물음에 답한다’는 모토로 출간된 『민음 지식의 정원』은 인문학적 지식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인문 교양 문고 시리즈이다. 총 12권으로 구성된 서양사편 시리즈의 1차분으로 출간된 책은 『역사란 무엇인가』,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등 네 권이다. 기존의 서양사를 다룬 모든 책들이 단지 서양의 역사 연구를 소개하고 번역하는 데 그친 반면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은 우리의 현실과 관심에 맞게 새롭게 펴낸 서양사 시리즈라는 점에서 확연히 구분된다.
『민음 지식의 정원』 시리즈는 각 권의 제목들이 서양사의 시대별 핵심 주제에 대한 질문으로 구성되었으며 본문의 구성 또한 주입식 역사가 아니라 일상적인 물음에서 출발하는 서술 방식이다. 역사를 읽으면서도 다양한 물음을 통해 논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도록 기획되었다.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출신의 교수들로 구성된 저자들은 그동안 우리나라 서양사 학계에는 독자적인 연구 성과가 없었다는 데 문제의식을 같이한다. 지금까지 기계적으로 받아들인 서양의 연구를 소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시리즈는 우리의 시각에서 바라보고 자체적으로 해석한 서양사를 표방한다.
저자 정기문 교수(군산대 사학과)는 “서양의 연구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서양의 시각과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시리즈는 우리가 서양을 바라볼 때에 관심을 가질 만한 주제를 선정해 구성했다. 한국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서양사라는 측면에서 대중적인 관심 또한 크게 높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창적 관점으로 서양사의 핵심 주제를 관통하다

『민음 지식의 정원』 서양사편은 고대부터 근·현대에 이르기까지 서양사를 핵심 주제별로 관통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각 권을 통해 해당 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내용으로 서양사 전반에 대한 흐름을 짚고 이해를 넓힐 수 있어 독자들에게 이해의 폭과 깊이라는 두 가지 측면을 만족시켜 준다.
이 시리즈의 특징은 서명부터 각 장 제목까지 모두 하나의 질문에서부터 시작한 물음이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하는 구성에 있다. 특히 책의 서명은 이 시리즈가 주제 설정에서부터 기존의 서양사 연구의 관점을 답습하지 않았다는 것을 잘 드러내 준다.
예컨대, 서양사 연구의 고전으로 꼽히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비롯한 많은 로마사 관련 책들이 ‘로마는 왜 멸망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이 시리즈에서는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라고 묻는다.
또한 ‘중세 암흑기’라는 일상적인 표현에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면서 중세 사회가 봉건 제도와 교회의 속박으로 학문과 예술이 쇠퇴했던, 말 그대로 ‘암흑시대’였는지 비판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판단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얻는 역사서로서의 효용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잘 알지 못했던, 혹은 잘못 알고 있었던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재확인하고 평가하는 계기를 얻을 것이다.


▶책 속에서 발견하는 의외의 역사적 사실들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에도 잘못된 내용이 실려 있다?
중세 유럽 인들이 고기보다 더 비싼 ‘후추에 고기를 뿌려 먹은’ 이유는?

① 고구려의 승려 담징이 일본에 건너가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
담징은 610년에 일본에 건너갔고 631년에 죽었다. 그런데 670년에 호류사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주요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금당 벽화가 그려져 있는 건물은 7세기 후반에 지어졌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담징은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릴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어떻게 생겨났을까?
최초로 담징이 호류사의 벽화를 그렸다는 것을 교과서에 실은 사람은 국사학자 이병도이다. 이병도가 한국 사학계에서 워낙 거물이었는지라 이병도의 진술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후 담징이 호류사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는 한국사를 다루는 거의 모든 책에서 그대로 채용되었다.
도대체 이병도는 왜 그렇게 주장했을까? 신빙성이 약하기는 하지만 일본의 구전을 담고 있는 몇몇 작품에 담징이 호류사의 금당 벽화를 그렸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아마도 애국심 때문에 이병도는 이 구전들을 사실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50~52쪽 참조.

② 백제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거느렸다?
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은 삼천 궁녀를 데리고 주색잡기에 빠졌고, 충신들을 벌하고 악신들을 가까이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꾷나 실은 삼천 궁녀라는 말은 삼국 시대를 다룬 어떤 역사책에도 나오지 않으며, 조선 중기의 한 시인이 지은 시에 등장한다. 이후 역사책에는 아무런 고증도 없이 이 시의 내용이 사실인양 서술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도덕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의자왕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사실을 왜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임금이 몇 번 연회를 베풀었다고 해서 망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백제가 멸망한 진짜 원인은 고구려와 손잡고 당에 맞섰기 때문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163~165쪽 참조.

③ 잔 다르크는 시대를 넘어선 프랑스의 진정한 영웅이다?
백 년 전쟁 당시 위기에 빠진 프랑스를 구한 잔 다르크는 교회의 재판에서 이단으로 판정받고 화형당하였다. 그녀의 도움으로 왕위에 오른 샤를 7세가 그녀를 복권시키기는 했지만 잔 다르크는 한동안 영웅으로 대접받지 못했다. 특히 계몽주의 시대에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을 철저하게 신봉했으며 종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따라서 천사를 만났다거나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잔 다르크는 경솔하고 무지한 존재일 뿐이었다.
잔 다르크를 영웅의 반열에 올려놓은 사람은 나폴레옹이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국민을 단합시키고 프랑스의 힘을 상징해 줄 인물이 필요했다. 특히 영국과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영국과 싸운 인물이 필요했다. 잔 다르크는 이 모든 조건을 훌륭하게 충족시켰다.
나폴레옹이 몰락한 후 민중이 새로운 역사의 주인이라는 생각이 등장하였다.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계승하여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다. 그런데 이들에게도 영웅이 필요했는데, 민중의 후손이면서 지배층에게 희생당한 사람이어야 했다. 잔 다르크는 이들의 요구를 훌륭하게 충족시켰다.
-『역사란 무엇인가?』 105~108쪽 참조.

④ 프롤레타리아는 마르크스가 최초로 만들어 낸 용어이다?
로마 시대의 군인들은 개인의 돈으로 병장기를 마련해야 했다. 즉 국가가 무기를 사 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 돈으로 무장하고 국가를 위해서 싸우도록 했다.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 그들은 스스로 무장할 능력이 없으므로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들을 프롤레타리아(proletaria)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는 라틴 어로 ‘아이를 낳는 자’라는 뜻으로 로마 제국 당시 군에 입대시킬 아들 이외에 부를 소유하지 못하는 계급을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 후 마르크스가 사회학적인 용어로 도입하여 현대 사회학에서는 노동력 이외에 생산 수단을 갖지 못한 노동자의 의미로 사용된다.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을까?』 34쪽, 134쪽 참조.

⑤ 명예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걸고 싸우는 것이 기사도 정신이다?
기사는 전투가 있으면 주군을 따라 싸움터에 나가 전투를 했다. 기사들이 벌이는 전투는 목숨을 걸고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그 자체가 이들의 소일거리이자 오락이었다. 대개 중세 초의 기사들은 싸움터에 나가는 목적이 전리품에 있었다. 농민을 약탈하고 기사들을 포로로 잡아 석방금을 받아 내는 것이 전투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기사들의 직업이 싸우는 것이고, 기사들로서도 일을 했으면 수입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
-『중세 유럽은 암흑시대였을까?』 40쪽 참조.

⑥ 중세 유럽에서는 상한 고기를 먹기 위해 후추를 사용했다?
중세 유럽 인들은 왜 비싼 향신료를 앞다퉈 찾았을까? 신선한 고기를 장기간 보관할 수 없었던 당시에 고기의 보관 기간을 늘리고, 신선하지 않은 고기의 퀴퀴한 냄새를 줄여 주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 설명이 대체로 부정되고 있다. 후추를 비롯한 향신료는 그런 용도로 사용하기에는 너무 비싼 물품이었다. 상한 고기의 냄새를 숨기기 위해 고기보다 더 비싼 후추를 듬뿍 뿌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 때문이었을까? 후추를 그토록 열정적으로 찾은 이유는 바로 유럽 인들이 매운맛 자체를 즐겼기 때문이며, 매운 음식일수록 고급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부와 권력을 과시하고 싶어 하는 지배층 사람들이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향신료를 찾았다는 것이다.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24쪽 참조.


▶ 각 권 소개

④ 근세 초 대항해 시대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인가? _ 김원중
오랫동안 고립된 상태로 발전해 왔던 세계의 각 지역들은 바스코 다 가마와 콜럼버스의 대항해를 계기로 서로 만나고 교류하게 되었다. 이 책은 15~16세기 대항해 시대를 주도한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중심으로 유럽 인들의 발견과 탐험을 살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세계 역사의 흐름을 바꾸어 놓은 결정적인 순간으로 평가되는 ‘대항해 시대’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