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마약의 사회사

동방박사님 2022. 5. 21.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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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마약의 사회사: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는 한국 사회 변화에 따라 마약이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통제되어간 과정을 탐구한 책이다. 국가의 통치술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시대별 마약 단속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마약의 해독이 인지되기 시작한 개항기부터 피해가 확대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쳐 군사정부의 집권으로 국가의 사회통제가 강화되는 와중에도 마약류 소비의 계층과 범위가 점차 다양해진 1980년대까지 사회에서 시대별로 마약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왔으며, 어떤 동력으로 규제되어왔는지, 어떤 상황에서 마약 사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는지를 살펴본다. 검찰청, 국과수, 형사정책연구원 등의 국가 기록과 민간인 구술 채록 등 양질의 자료를 바탕으로 읽는 재미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려져 있던 분야를 새롭게 조명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목차

들어가며

1부 조선, 아편과 만나다

1장 전통사회의 가정상비약
2장 일제강점기 아편 생산지가 된 조선
3장 모르핀의 등장

2부 해방과 정부수립, 마약문제의 현실

4장 해방과 함께 찾아온 보건 위기
5장 ‘비국민’이 된 마약중독자
6장 「마약법」의 탄생

3부 경제개발과 조국 근대화, ‘건강한 국민’이 되는 길

7장 정치적 악에서 경제적 악으로
8장 ‘메사돈 파동’과 사회악으로의 공식화
9장 청년, 대마초와 만나다
10장 대마초를 바라보는 국가의 눈

4부 경제 호황과 그 이면, 필로폰의 시대

11장 올림픽 유치와 필로폰 시대의 개막
12장 풍요 속의 빈곤: 유흥업의 성장과 필로폰 소비
13장 마약을 통해 사회를 장악하라

나가며
부록_ 한국에서 마약은 얼마나 연구되었나
감사의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조석연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사학과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전임연구원, 한국외국어대학교 초빙교수 등으로 일하며 한국사를 강의했고, 현재 신한대학교 교양교육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한국 근현대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 「한국 근현대 마약문제 연구」, 「해방 이후의 마약문제와 사회적 인식」, 「마약법 제정 이후 한국의 마약문제와 국가통...
 

책 속으로

전통사회에서 천연 마약을 자생적으로 재배하고 사용하는 것은 민간에서 누려온 자연스러운 권리였다. 당시 한국의 농가에서는 가정상비약이었던 아편을 채취하기 위해 양귀비를 재배하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화를 거치며 이러한 민간의 권리는 보건·후생이라는 명목 아래 국가의 권한으로 재설정되었다. 국민국가가 형성되고 민간이 ‘국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권리를 부여받게 되면서 이 같은 변화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농가의 아편 채취와 사용은 정부의 통제 대상이 되었고, 필요에 따라 양귀비를 재배하는 행위 역시 개인의 권리를 넘어선 ‘범죄’로 인식되었다.
--- p.8~9

1980년대까지는 권위주의적 정부의 엄벌주의에 입각해 마약문제에 강력한 처벌을 적용하는 공급 억제 정책을 실시하고 있었고, 예방과 치료를 담당하는 수요 억제 부문에서의 투자와 관심은 미비한 상황이었다. 이는 마약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책임보다 마약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는 국민의 의무가 더욱 강조되어왔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정부가 비로소 두 방향의 통제에 대한 균형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제도적 노력을 본격화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의 일이다.
--- p.13

모르핀은 중독성과 의존성이 매우 강해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다섯 번 정도의 투약 경험만 있어도 중독자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일제 당국은 일정한 의사 증명만 있으면 모르핀 사용을 자유롭게 허용했다. 이 시기 모르핀에 대한 인식이 관대했던 데에는 그 원료가 되는 아편을 일반 가정에서 큰 제약 없이 손쉽게 재배해 사용할 수 있었던 분위기도 한몫했다. 따라서 이 시기 마약류 중독의 성격을 ‘범죄’라는 현재적 개념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 p.47

마약을 통제하기 위한 예산과 인력 투입이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면, 이제 정부는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한의 가시적 효과를 끌어낼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것은 마약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현재의 정치적·시대적 과제와 연결하는 것이었다. 정부는 마약을 단순한 개인위생과 공중보건의 문제가 아닌 ‘국민’의 의무와 역할, 그리고 ‘국가안보’라는 국가·사회적 차원의 문제로 설정하고자 했다. 그러면 마약은 한국 사회에서 새 정부의 수립·안착과 반공이라는 당대의 시대적 과제에 반하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자연스럽게 인식되면서 더욱 쉽게 금기시될 수 있었다.
--- p.89

군사정부는 ‘국민정신’을 손괴하는 마약과 ‘경제개발’이라는 키워드를 대치시켜나갔다. 그것은 경제개발을 통한 ‘먹고사는 문제의 해결’이라는 그들의 선명한 목표와 그 달성을 위해 이전 정부가 낳은 ‘사회악’을 제거한다는 새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동시에 홍보하는 것이었다. 군사정부로서 이러한 논리는 5·16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해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 p.117

대마초가 서구에서와 같이 한국의 청년들에게 기성세대와 정부에 대한 저항의 상징으로 확산될 수 있다면, 정부로서는 이를 어떤 형태로든 통제해야 했다. 그래서 제정된 것이 바로 「대마관리법」이었다. 대마초에 대한 유해성 여부는 이미 중요한 사항이 아니었다. 청년들이 모여 다른 생각을 실험하고 다른 삶의 방식을 꿈꾸는 데 함께하는 것이라면 이제 대마초도 ‘마약’이 되어야 했다.
--- p.151

1988년 서울 올림픽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과는 다르게 냉전 분위기 속에서 양 진영의 국가들이 모두 참여하는 국제행사로, 북한과 치열하게 체제 경쟁을 벌이던 남한으로서는 화려한 도시의 모습과 경제성장의 모습을 전 세계에 홍보함으로써 국제사회에 남한이 북한에 비해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인상을 각인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리고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역시 2년 후 있을 올림픽을 홍보하고 성공적 개최를 위한 준비 작업을 진행하는 데 더없이 좋은 예행연습이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한국의 활기차고 현대적인 모습을 홍보하기 위해 ‘향락’과 ‘퇴폐’ 등의 사회적 이미지로 음성화되어왔던 산업들을 정부가 포괄하는 범위 내로 양성화시키기 위해 다양한 조치를 시행했다.
--- p.186~187
 

출판사 리뷰

전통사회의 가정상비약은 어떻게 ‘망국의 병’이 되었나?
개항기부터 1980년대까지의 마약 인식과 사회악의 탄생


정치사에 편중된 한국 현대사에서 마약 문제라는 사회현상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현재 한국이 비교적 마약류를 잘 통제하고 있는 나라라고 생각하는 우리에게 마약은 가끔 정치적 필요에 따라 불거지는 연예계의 이슈 혹은 재벌가의 비행 정도일 뿐이다. 하지만 불과 1970년까지도 대마 흡입은 불법이 아니었다는 사실에서 보듯 우리가 지닌 ‘마약’의 역사는 그리 단순하지 않고, 또 그동안 제대로 다뤄지지도 않았다. 저자는 한국사회에서 마약이 의학 용어가 아닌 법률 용어였으며, 시대에 따라 무엇을 마약으로 규정하느냐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던 점을 포착해, ‘마약 단속’이라는 키워드로 한국 근현대사를 새롭게 쓰고자 한다.

『마약의 사회사: 가정상비약에서 사회악까지, 마약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는 한국 사회 변화에 따라 마약이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가고 통제되어간 과정을 탐구한 책이다. 국가의 통치술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며 시대별 마약 단속의 역사를 들여다본다. 마약의 해독이 인지되기 시작한 개항기부터 피해가 확대된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을 거쳐 군사정부의 집권으로 국가의 사회통제가 강화되는 와중에도 마약류 소비의 계층과 범위가 점차 다양해진 1980년대까지 사회에서 시대별로 마약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달라져왔으며, 어떤 동력으로 규제되어왔는지, 어떤 상황에서 마약 사용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왔는지를 살펴본다. 검찰청, 국과수, 형사정책연구원 등의 국가 기록과 민간인 구술 채록 등 양질의 자료를 바탕으로 읽는 재미와 함께,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려져 있던 분야를 새롭게 조명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마약은 시대마다 다르게 정의된다
근대화의 각 시기에 유행하던 마약이 보여주는 당대의 사회상


‘마약’이라는 용어는 현대사회가 규정한 법률상의 정의를 담고 있다. 1950년대의 아편, 1960년대의 메사돈(메타돈), 1970년대의 대마초, 1980년대의 필로폰 등 시대별로 유행하는 마약류가 달라져온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예컨대, ‘마약’이라는 용어와 그 정의가 존재하지 않았던 전통사회에서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를 재배하고 사용하는 일은 민간의 자연스러운 권리였고, 1970년대 초까지는 대마초 흡연도 법에 저촉되지 않았다. 하지만 근대화의 각 국면 속에서 민간이 ‘국민’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권리를 부여받게 되면서 이러한 관습은 금기로 재설정되어갔다. 한국 사회에서 드러난 마약 문제에는 각 시기의 사회상이 투영되어 있어 정부 당국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 때로는 보건 문제를 넘어 정치적인 문제로 부각되기도 했고, 때로는 경제 문제로 인식되기도 했으며, 사회 분위기에 따라서는 하나의 문화현상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마약이 어떻게 인식되고 통제되어왔는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해본다면 우리의 근현대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약중독자는 ‘비국민’이다?
해방 이후 본격적으로 사회문제가 된 아편


이 책에서 저자는 전통사회 조선에서 농가의 약재로 이해되던 아편이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시기를 개항기 무렵으로, 사회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한 계기를 일제강점기로 파악한다. 청국이 아편전쟁으로 인해 피해를 입는 모습을 지켜본 바 있는 조선은 외국과의 교류가 점점 더 빈번해지던 상황에서 외국과의 통상조약에 아편 수입을 금지하는 조항을 포함시켰고, 그 사용에 대한 국내 처벌 규정도 제정했다. 그럼에도 민간의 전통적 인식이 크게 바뀌지 않다가, 일제강점기에 일제의 아편 공급지가 된 조선에서는 수많은 아편중독자가 생겨났다. 또 일제가 패망해 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그들이 남기고 간 막대한 양의 생아편과 모르핀이 사회에 유통되며 마약중독자가 급증하는 등, 일제강점기에 생산된 아편은 해방 이후 한국 사회에 커다란 사회문제를 야기했다.

정부는 예산과 인력의 투입을 최소하면서도 그 효과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전략을 썼다. 정부는 마약을 친일 또는 공산주의와의 대결이라는 문제와 연결하면서 그 사용을 민족의 생존과 대치되는 문제로 치환시켰고, 마약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건강이나 다른 폐해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국민’의 의무이자 역할이라고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마약 관련자들은 ‘민족반역자’, ‘부일협의자’와 함께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제한받기에 이르렀고, 마약 사용은 친일만큼 반역적인 죄로 공표되었다. 또,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마약 문제가 더욱 심화되었다. 부상자의 진통제 사용에서 비롯한 경우뿐 아니라 한국에 주둔한 해외 병사들의 마약 사용과 그 주변 기지촌 여성들의 중독 문제도 부각되었다. 시내 곳곳에서 마약중독으로 인한 변사자들이 빈번히 출현하던 중 1957년 마침내 마약법이 제정되며 법적 기틀이 마련되었으나, 당장 실효를 거둔 것은 아니었다.

국가경제를 좀먹고 혁명과업을 방해하는 ‘망국의 병’
경제개발과 근대화 논리의 그늘


마약에 대한 정부의 통제 의지가 강력히 발현되기 시작한 것은 1961년 군사정부의 출범 이후였다. 군사정부는 국내 노동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해 자본화에 기여한다는 경제개발의 목표에 기초해 국민들을 국가가 필요로 하는 ‘건강한 국민’으로 재생산해내고자 했다. 이에 따라 마약은 ‘국민의 정신을 병들게 해’ 노동력을 저하시키므로 반드시 근절되어야 하는 대상이었다. 이 시기 마약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군사정변의 정당성을 확보하는 중요한 명분으로 기능했던 것이다. 공무원들의 부정부패가 사건을 키운 ‘메사돈 파동’ 당시에도 정부는 마약 척결이 ‘시대적 과제’라는 편리한 수사를 동원해 손쉬운 해결을 꾀했다.

정부는 마약을 통제하기 위해 마약의 ‘망국’의 프레임을 덧씌우기도 했고, 해당 정권이 당면한 목표와 과제를 위해 마약에 대해 이미 형성된 부정적인 인식을 이용하기도 했다. 1970년대의 ‘대마초 파동’에서도 정부가 정작 경계한 것은 마약 그 자체라기보다 청년들의 자기표현과 그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당시 주한미군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소비되던 대마는 그때부터 마약의 대명사로서의 위상을 갖게 되었고, ‘민족의 생존’과 ‘국가보위’를 위협하는 반국가, 반윤리, 반시국, 반사회의 표상이자 ‘공산당과의 결전을 앞둔 시점에 저지르는 심각한 망국행위’로 표현되면서 정치·경제뿐 아니라 국가안보 문제와도 연결되었다.

필로폰 사범에게 내려진 사형선고
엄벌주의 정책의 한계


1980년대 유행 마약이 필로폰으로 바뀐 이유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서 찾아볼 수 있다. 국가적 차원의 국제행사를 유치하게 된 정부는 주변국과의 관계 개선차 자국 내 필로폰 중독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일본 정부와 필로폰 밀매매 근절에 대한 협력 체제를 강화하기로 했고, 그 결과 일본 수출길이 막힌 한국 제조 필로폰은 국내로 유통되기 시작한 것이 일차적 원인이다. 저자는 이렇게 역유입된 필로폰이 확산된 데에는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을 앞두고 경기 호황과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둔 정부가 정책적으로 유흥업, 향락업을 장려하고 국내 소비 활성화를 꾀한 것이 한몫했다고 분석한다. 집권 초기부터 반독재·민주화 분위기에 맞서 강력한 사회통제의 필요를 절감했던 신군부 역시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사회장악을 합리화하는 명분으로 마약을 ‘사회악’으로 규정해 강력히 단속했고, 이 시기 처음으로 향정 사범에 대해 사형이 선고되기에 이르렀다.

각 시기의 마약과 관련한 사회상을 통해 우리는 예방 대책 및 재활 방안이 부재한 처벌 일변도의 정책은 언제나 한계를 드러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조·유통자에 대한 단속과 처벌에 그치지 않고 중독자 치료, 중독의 해독에 대한 교육·홍보 등 보다 근본적인 차원에서 예방을 목적으로 하는 정책이 도외시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마약은 국민 보건 측면에서의 관심보다는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되어온 경향이 크다.

근현대 한국에서 마약은 꾸준히 사회문제로 지목되어왔지만, 시대적 환경에 따라 이 문제를 사회문제로 생각하는 이유와 관점은 각기 달랐다. 마약은 국민의 건강과 위생의 문제보다는 정치·경제·사회적 현안들과 깊이 연동되어 이해되어왔다. 근대화 시기의 마약 인식에 대한 탐구를 통해 오늘날 마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점검해본다면, 마약과 관련해 새롭게 변화한 산업구조와 오남용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다가설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