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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현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민족주의적 법률가이자 정치가인 가인 김병로 평전. 일제 치하 때부터 1960년대 중반 별세때까지 일제 치하에서 민족주의적 변호사로 활동했고, 미 군정에서는 오늘날의 법무장관격인 사법부장관을 지냈고, 대한민국 제1공화정 때는 초대 대법원장으로 사법부의 기초를 닦은 가인 김병로의 삶을 통해 독립 운동사의 시각으로부터 그리고 보수 우파 세력 및 그 정당사의 시각으로부터 우리나라 정치사의 큰 흐름을 설명했다.
목차
1. 국권을 잃어가던 시기의 의병 투쟁 참여
2. 망국에 따른 일본 유학과 법률 전공
3. 법학 교수로서의 출발과 변호사로의 전환
4. 신간회 참여와 〈민족 변호사〉로서 독립 운동의 일선에 나서다
5. 신간회 제2기의 항일 투쟁
6. 신간회 제3기의 항일 투쟁
7. 신간회 해소 이후의 가인
8. 해방의 격동기에 좌우 합작을 추진하다
9. 미 군정 - 남조선 과도 정부의 사법부장
10. 제1공화정 대법원장의 초기
11. 전쟁의 상흔 속에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다
12. 4·19의 격랑 속에서 정치에 복귀하다
13. 민정의 길을 닦기 위한 노력
2. 망국에 따른 일본 유학과 법률 전공
3. 법학 교수로서의 출발과 변호사로의 전환
4. 신간회 참여와 〈민족 변호사〉로서 독립 운동의 일선에 나서다
5. 신간회 제2기의 항일 투쟁
6. 신간회 제3기의 항일 투쟁
7. 신간회 해소 이후의 가인
8. 해방의 격동기에 좌우 합작을 추진하다
9. 미 군정 - 남조선 과도 정부의 사법부장
10. 제1공화정 대법원장의 초기
11. 전쟁의 상흔 속에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다
12. 4·19의 격랑 속에서 정치에 복귀하다
13. 민정의 길을 닦기 위한 노력
책 속으로
1920년대에 변론을 통해 독립 운동을 도우면서 민족의 교육 기관과 언론 기관을 육성하는 일을 돕던 생활은 1930년대에도 변함없이 계속되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보성전문학교를 일으키는 일에 적극 참여한 일이다.
우리가 제3장에서 이미 살폈듯이, 가인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보성전문학교에서 강사로 봉직했었고 1922년에는 재단의 상임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었으며 학교에 분규가 생겼을 때는 변호사로 법정에 서기도 했었다. 그만큼 보전과의 관계가 깊었으며 보전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달랐다.
민족의 힘으로 세워진 국내 유일의 고등 교육 기관인 보성전문 학교는 그러나 분규에서 헤어나지를 못했고 재단의 힘도 약한 탓에 발전이 더디어 뜻 있는 인사드을 안타깝게 했다. 누군가 재력도 있으며 교육자로서의 양식을 가진 이가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인촌 김성수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했다. 마침 대학 설립에 뜻을 두고 유럽과 미국의 명무 대학들을 순방한 인촌이 1931년 8월 귀국하자 그들은 인촌에게 보전 인수를 권고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제3장에서 이미 살폈듯이, 가인은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뒤 보성전문학교에서 강사로 봉직했었고 1922년에는 재단의 상임 이사로 선출되기도 했었으며 학교에 분규가 생겼을 때는 변호사로 법정에 서기도 했었다. 그만큼 보전과의 관계가 깊었으며 보전에 대한 애정 역시 남달랐다.
민족의 힘으로 세워진 국내 유일의 고등 교육 기관인 보성전문 학교는 그러나 분규에서 헤어나지를 못했고 재단의 힘도 약한 탓에 발전이 더디어 뜻 있는 인사드을 안타깝게 했다. 누군가 재력도 있으며 교육자로서의 양식을 가진 이가 인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은 인촌 김성수가 그러한 역할을 수행해 주기를 기대했다. 마침 대학 설립에 뜻을 두고 유럽과 미국의 명무 대학들을 순방한 인촌이 1931년 8월 귀국하자 그들은 인촌에게 보전 인수를 권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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