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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장과 번영이라는 약속으로 정치권력과 대중을 사로잡고
전 세계를 장악한 문제적 경제학자들!
그 모험과 패배의 40년 역사를 파헤친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
이 책은 경제학설사보다는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은 시장 자유주의를 내세운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정치인들을 현혹시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정책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버린 ‘경제학자들의 반란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경제학자는 스스로 정책 입안자, 중앙은행 수장,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자신들의 이론에 따라 세계를 재주조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성장을 약속했고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그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동시에 무너졌다. 그들은 자유 시장의 성공한 혁명가였을까, 거짓 예언자였을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동부터 패배까지의 40년을 정밀 지도처럼 입체 추적한 이 책은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이며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흥미진진한 역사서이다.
전 세계를 장악한 문제적 경제학자들!
그 모험과 패배의 40년 역사를 파헤친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
이 책은 경제학설사보다는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은 시장 자유주의를 내세운 일군의 경제학자들이 정치인들을 현혹시켜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정책과 전 세계 경제 시스템을 완전히 바꿔 버린 ‘경제학자들의 반란의 시대’였다.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경제학자는 스스로 정책 입안자, 중앙은행 수장, 미국 재무장관이 되어 자신들의 이론에 따라 세계를 재주조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학자들은 성장을 약속했고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그들이 쌓아 올린 바벨탑은 동시에 무너졌다. 그들은 자유 시장의 성공한 혁명가였을까, 거짓 예언자였을까?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태동부터 패배까지의 40년을 정밀 지도처럼 입체 추적한 이 책은 경제 저널리즘의 백미이며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흥미진진한 역사서이다.
목차
이 책에 대한 찬사 | 추천의 말
들어가는 말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보수주의적 반혁명의 선지자, 프리드먼 | 지적 정치적 동반자, 로즈 디렉터 | 정부가 걸림돌이다 | 자유 시장을 부르짖는 외로운 사도들 | 병역은 직업이다 | 월터 오이의 전쟁 | 징병제 폐지의 경제학 | “나는 저 방향으로 가고 싶소” | 노예 부대 용병 교수 | ‘누가 싸울 것인가’에서 ‘누가 신경 쓸 것인가’로 | 병역 의무가 사라지면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
경제학자의 쓸모 | “다 가져가지 않는 걸 고맙게 여겨야 해” | 상아탑 대통령 | 헬러의 감세 정책 | 감세, 지출 확대, 재분배 | 어느 빛나는 순간 이후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 문제는 통화량 |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법 | 프리드먼의 유산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인플레이션에서 통화 정책 | 케인스주의 시대의 몰락 | 케인스주의는 헛소리 | 1달러는 39센트 | 볼커 혁명 |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 | (무)절제 | 제로 인플레이션을 향한 공세 | 때이른 축배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
먼델의 감세론 | 공급중시 운동의 나팔수 | 이제는 세금을 내릴 때 | 공급중시론자의 탄생 | 리블린과 컴퓨터 프로그램은 케인스주의자 | “난 분노로 미칠 지경이야” | 주류로 진입한 공급중시론 | 기상도가 변했다 | 레이거노믹스 | 감세의 효과는 어디에? | 공급중시론이 남긴 유산 | 최고 세율 인하로 깊어진 불평등 | 증세안 통과 | 클린턴 행정부의 긴축 정책 | 처음에 성공하지 못하면 | 효과가 없어도 다시 한 번 | 경제는 무너져도 정치적 승리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
미국의 첫 반독점법 |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이 아니다 | 경제학자는 기술자 | 시장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 | 시장의 부패를 우려한 스티글러 | 경쟁은 강인한 잡초 | 법률 사상가가 된 경제학자 아론 디렉터 | ‘정의’ 대신 ‘효율’ | 반독점 규제 완화의 목소리 | 사법부의 반독점법 무력화 | 친독점 | 포스너, 백스터, 보크 | 경쟁자는 친구고 소비자는 적이다 | “반독점은 이미 죽었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6장 규제로부터의 자유
시장을 믿으시라 | 하늘을 개방하라 | 소비자를 위해서도 기업을 위해서도 | 해로운 경쟁에서 매우 필요한 경쟁으로 | 우선 항공 산업 규제 완화부터 | ‘공정’에서 ‘효율성’으로 | 규제의 초점을 돌리다 | 항공업 규제 기관이 사라질 때 | 결함이 있더라도 시장을 | 규제 완화의 첫걸음은 민영화 | 근시안적인 소비자중심주의 | 규제가 없는 시장은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
고통의 무게 | 군에서 경제학자들의 자리 | 규제 기관은 비용을 무시하라 | “이보세요, 제정신입니까” | 비용 편익 분석의 확대 | 생명의 가치 | 누가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 경쟁이 가장 유능한 규제 기관 | 규제 기관을 규제하다 | 대안이 무엇인가요 | 생명의 가치는 얼마인가 | 비용과 상관없이 |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혁명 | 규제 기준은 ‘예방 원칙’
8장 돈, 골칫덩어리
생산을 희생하면서 소비로 | 지킬 수 없는 약속, 브레턴우즈 체제 | 시장에 기대어 vs 시장은 존재하지 않아 | 너도나도 평가절하 | 시장과의 동맹 | 국제 통화 체제의 붕괴 | 경제 민족주의 | 이제 무슨 일부터 할까요 | 6개월짜리 협정 | 모두가 틀린 변동 환율제 | 변화와 충격 | 모두 달러를 썼기 때문에 | 시장이 통화 가치를 결정합니다 | 사적 이익과 공적 구제의 시작 | 통화가 제조업을 집어삼키다 | 차이메리카 | 승자는 절대 보상하지 않는다 | “당신의 문제는 상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 단일 통화를 향하여 | 유럽 단일 통화의 탄생 | 잃어버린 10년을 겪었지만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타이완
유치산업 보호와 사다리 걷어차기 | 환영 받지 못한 시카고보이즈 | 프리드먼의 처방은 ‘충격 요법’ | 산업화의 꿈을 접은 칠레 | 고삐 풀린 자본 통제 | 자유 시장의 표준 차림표대로 | 비교 우위대로 생산한다면 | 재분배를 혐오하다 |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 | 낡은 시장 경제 정책을 묵인하는 정치 | 세심하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한 공학 체계 | 37.5퍼센트 신부 | 대만 산업화의 지휘자 인중룽 | 메이드 인 타이완 | 산업의 체력을 키우고 나서 | 국가의 역할
10장 종이 물고기
은행 규제 완화와 파산 | 효율적 시장 가설의 함정 | 정부 지원을 받으며 정부를 혐오한 그램 박사 | “문제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습니다” | 의협심 넘치는 성 안 기사들의 야합 | “도대체 개인 진술이 얼마나 모여야 사실이 됩니까” | 금융 장벽을 허물며 등장한 그린스펀 | 적당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 | 1달러만 내면 살 수 있어요 | 가장 빠르게 팽창한 금융 시스템 | 종이 물고기 | 10년만에 9배로 | 신이시여! 아이슬란드를 굽어 살피소서
나오는 말
감사의 말 | 미주 | 찾아보기
들어가는 말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보수주의적 반혁명의 선지자, 프리드먼 | 지적 정치적 동반자, 로즈 디렉터 | 정부가 걸림돌이다 | 자유 시장을 부르짖는 외로운 사도들 | 병역은 직업이다 | 월터 오이의 전쟁 | 징병제 폐지의 경제학 | “나는 저 방향으로 가고 싶소” | 노예 부대 용병 교수 | ‘누가 싸울 것인가’에서 ‘누가 신경 쓸 것인가’로 | 병역 의무가 사라지면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
경제학자의 쓸모 | “다 가져가지 않는 걸 고맙게 여겨야 해” | 상아탑 대통령 | 헬러의 감세 정책 | 감세, 지출 확대, 재분배 | 어느 빛나는 순간 이후 |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대로 있어라 | 문제는 통화량 | 어둠을 헤치고 나아가는 법 | 프리드먼의 유산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인플레이션에서 통화 정책 | 케인스주의 시대의 몰락 | 케인스주의는 헛소리 | 1달러는 39센트 | 볼커 혁명 | 인플레이션과의 전쟁 | 인플레이션으로부터 자유 | (무)절제 | 제로 인플레이션을 향한 공세 | 때이른 축배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
먼델의 감세론 | 공급중시 운동의 나팔수 | 이제는 세금을 내릴 때 | 공급중시론자의 탄생 | 리블린과 컴퓨터 프로그램은 케인스주의자 | “난 분노로 미칠 지경이야” | 주류로 진입한 공급중시론 | 기상도가 변했다 | 레이거노믹스 | 감세의 효과는 어디에? | 공급중시론이 남긴 유산 | 최고 세율 인하로 깊어진 불평등 | 증세안 통과 | 클린턴 행정부의 긴축 정책 | 처음에 성공하지 못하면 | 효과가 없어도 다시 한 번 | 경제는 무너져도 정치적 승리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
미국의 첫 반독점법 | 경제적 효율성이 우선이 아니다 | 경제학자는 기술자 | 시장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 | 시장의 부패를 우려한 스티글러 | 경쟁은 강인한 잡초 | 법률 사상가가 된 경제학자 아론 디렉터 | ‘정의’ 대신 ‘효율’ | 반독점 규제 완화의 목소리 | 사법부의 반독점법 무력화 | 친독점 | 포스너, 백스터, 보크 | 경쟁자는 친구고 소비자는 적이다 | “반독점은 이미 죽었잖아요? 그렇지 않은가요?”
6장 규제로부터의 자유
시장을 믿으시라 | 하늘을 개방하라 | 소비자를 위해서도 기업을 위해서도 | 해로운 경쟁에서 매우 필요한 경쟁으로 | 우선 항공 산업 규제 완화부터 | ‘공정’에서 ‘효율성’으로 | 규제의 초점을 돌리다 | 항공업 규제 기관이 사라질 때 | 결함이 있더라도 시장을 | 규제 완화의 첫걸음은 민영화 | 근시안적인 소비자중심주의 | 규제가 없는 시장은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
고통의 무게 | 군에서 경제학자들의 자리 | 규제 기관은 비용을 무시하라 | “이보세요, 제정신입니까” | 비용 편익 분석의 확대 | 생명의 가치 | 누가 생명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 경쟁이 가장 유능한 규제 기관 | 규제 기관을 규제하다 | 대안이 무엇인가요 | 생명의 가치는 얼마인가 | 비용과 상관없이 | 아무도 알지 못하는 혁명 | 규제 기준은 ‘예방 원칙’
8장 돈, 골칫덩어리
생산을 희생하면서 소비로 | 지킬 수 없는 약속, 브레턴우즈 체제 | 시장에 기대어 vs 시장은 존재하지 않아 | 너도나도 평가절하 | 시장과의 동맹 | 국제 통화 체제의 붕괴 | 경제 민족주의 | 이제 무슨 일부터 할까요 | 6개월짜리 협정 | 모두가 틀린 변동 환율제 | 변화와 충격 | 모두 달러를 썼기 때문에 | 시장이 통화 가치를 결정합니다 | 사적 이익과 공적 구제의 시작 | 통화가 제조업을 집어삼키다 | 차이메리카 | 승자는 절대 보상하지 않는다 | “당신의 문제는 상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 단일 통화를 향하여 | 유럽 단일 통화의 탄생 | 잃어버린 10년을 겪었지만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타이완
유치산업 보호와 사다리 걷어차기 | 환영 받지 못한 시카고보이즈 | 프리드먼의 처방은 ‘충격 요법’ | 산업화의 꿈을 접은 칠레 | 고삐 풀린 자본 통제 | 자유 시장의 표준 차림표대로 | 비교 우위대로 생산한다면 | 재분배를 혐오하다 | 불평등에 대한 무관심 | 낡은 시장 경제 정책을 묵인하는 정치 | 세심하고 정교한 계획이 필요한 공학 체계 | 37.5퍼센트 신부 | 대만 산업화의 지휘자 인중룽 | 메이드 인 타이완 | 산업의 체력을 키우고 나서 | 국가의 역할
10장 종이 물고기
은행 규제 완화와 파산 | 효율적 시장 가설의 함정 | 정부 지원을 받으며 정부를 혐오한 그램 박사 | “문제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보지 못했습니다” | 의협심 넘치는 성 안 기사들의 야합 | “도대체 개인 진술이 얼마나 모여야 사실이 됩니까” | 금융 장벽을 허물며 등장한 그린스펀 | 적당히 아무것도 하지 않기 | 1달러만 내면 살 수 있어요 | 가장 빠르게 팽창한 금융 시스템 | 종이 물고기 | 10년만에 9배로 | 신이시여! 아이슬란드를 굽어 살피소서
나오는 말
감사의 말 | 미주 | 찾아보기
책 속으로
경제학자는 또한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1970년 경제학자 아서 F. 번스Arthur F. Burns가 마틴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면서 볼커를 비롯한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을 이끄는 시대가 열렸다. 2년 뒤인 1972년 조지 슐츠George Shultz가 경제학자로는 최초로 재무장관이 되었다. 한때 딜런이 앉았던 바로 그 자리였다. 미국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가 1950년대 중반 2000여 명에서 1970년대 말 6000여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경제학자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자료 이용도가 높아지면서 함께 커 갔다. 마치 콩 넝쿨이 옥수숫대를 휘감는 모습과 같았다. 근대 초기에 정부는 자신이 운영하는 국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인구가 얼마인지, 소득이 얼마인지, 자산이 얼마인지 어림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육군 참모총장인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William Westmoreland 장군은 자문위원회 활동이 육군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겼다. 육군은 병력 모집을 징병제에 의지하는 유일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용병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는 전망이 달갑지 않소이다”라고 웨스트모어랜드가 자문위원들에게 말했다. 프리드먼이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물었다. “그럼 장군님, 노예 부대를 지휘하시겠습니까?” “애국심으로 무장한 징집병을 노예라고 부르다니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소.” 웨스트모어랜드가 대답하자 프리드먼이 응수했다. “애국심이 투철한 지원병을 용병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저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같은 의미에서 저도 용병 교수입니다. 머리가 길면 용병 이발사가 깎고 몸이 아프면 용병 의사가 치료하고 법적 문제가 일어나면 용병 변호사가 다룹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장군님, 당신도 용병 장군입니다.”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중에서
점점 시장 가치를 지닌 병사가 시장 가치가 있는 도급자와 더불어 군 복무를 하고 전투에 임한다. 미군이 최근에 배치한 주요 주둔지인 발칸 반도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고용한 장병과 도급자는 수가 거의 비슷했다.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중에서
프리드먼은 1940년대 말 케인스의 유령과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논쟁 주제가 성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논쟁 주제는 같은 동전의 다른 면,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방안이었다.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중에서
1969년 12월 프리드먼은 [타임] 표지를 장식했다. 케인스가 표지에 실린지 4년 뒤의 일이었다. 1960년대 말 연방 경제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미국인의 일자리 보장에 여전히 초점을 뚜렷이 맞추었다. 1980년대 초 즈음 연방 경제 정책은 일자리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뚜렷이 맞추었다. 온 세계를 휩쓴 이 변화는 프리드먼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었다.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중에서
1970년대 중반 미국인도 스태그플레이션과 처음 맞닥뜨렸다. 1973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동맹국에 내린 석유 금수조치oil embargo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깊은 침체에 들어섰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는 매우 놀랍게도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반 상승했다. 양팔 저울에서 양쪽이 모두 동시에 위로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닉슨의 가격 통제 정책은 폐기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을 타일러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견해는 여전히 정치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중에서
벤 S. 버냉키Ben S. Bernanke가 2006년 그린스펀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었을 때 ‘대안정Great Moderation’에 들어섰다고 언명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인플레이션이 주축이 되어 보다 폭넓은 경제 안정을 이루는 새 시대를 일컬었다. 경제학자는 다시 한 번 경제학이 승리를 거두었다며 축배를 들었다.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중에서
1971년 4월, 세계의 유수한 경제학자와 은행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논의하기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로 모여들었다. 선진국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기존의 인플레이션 해결책은 실업률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고, 기존의 실업 해결책은 인플레이션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마음을 달랠 양으로 염주를 헤아리고 있을 때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Robert Mundell이 두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먼델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동시에 낮출 방법이 있다고 호언했다. 나아가 고통 없이 번영을 다시 누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먼델에 따르면 이 묘약의 주성분은 대대적인 감세였다.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중에서
감세안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경제학이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학자 450명이 이름을 내걸고 감세 반대 성명서를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로 실었다. 감세는 연방 정부 부채를 확대하겠지만 미국 경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이에 경제학자 250명이 감세 찬성 성명서로 맞대응했다. 경제는 확대하겠지만 적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중에서
스티글러 세대의 걸출한 지성 가운데 일부는 경제학이 인간 조건을 향상시킬 도구였기 때문에 끌렸다. 하지만 스티글러에게 경제학이 지닌 간결한 아름다움은 그런 노력이 다 부질없음을 확인시켜 준다는 데 있었다. 경제학자의 임무는 사회 진보를 향한 제도에 대해 “경제 논리에 따라 가혹한 평결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스티글러는 시장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믿었고, 정치인도 자선가도 오지랖 넓게 개입하려는 사람도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보았다.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중에서
기업 부문이 집중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결과 기업은 요구를 늘리고 보수를 줄일 수 있었다. 노동자는 다른 선택권이 점점 없어졌기 때문에 그 영향력도 약해졌다.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중에서
대처 정부는 민영화를 할 때 해당 기업의 주식을 으레 직원에게 팔았다. 다수의 보수주의자처럼 대처도 노동조합을 또 다른 독점 형태로 여겼고 그 힘을 무너뜨리는 데 주저 없이 무력을 동원했다. 정부가 영국의 광산 노동자와 격렬하게 충돌했을 때는 특히 무자비했다. 하지만 대처는 또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재편하여 그들을 일거에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소자본가로 변모시키려 했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영국의 공공 주택 상당수를 입주자에게 팔았다.
---「6장 규제로부터의 자유」중에서
정부가 규제를 확대해 나가자 기업은 경제학을 방패로 삼아 휘두르려 했다. 자동차 회사는 규제 기관이 달러로 환산한 편익이 규정 준수에 따른 비용을 초과한다고 증명해 내지 못하면 안전 규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라고 의회에 압박을 가했다.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중에서
하지만 비용-편익 분석이 여러 부문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경제학자는 점점 사거나 팔 수 없는 대상의 가격을 더욱 영리하게 추산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윽고 경제학자는 잘린 손이나 교통 체증으로 버린 시간, 산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의 가치에, 그리고 인간 생명의 가치에 얼마짜리 가격표를 붙여야 할지 안다고 주장했다.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중에서
칠레는 산업 지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 칠레 정부는 국가의 주요 구리 광산에 지분을 갖고 있었다. 국가 지원을 받는 공장에서 특히 칠레 자동차와 라디오와 냉장고를 빠르게 생산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알비온 패터슨과 시카고 대학과 미국 정부가 똘똘 뭉쳐 칠레가 절대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현재 칠레 국민의 평균 소득은 대만 국민의 평균 소득의 절반에 불과하다.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차이나」중에서
간단히 말하면 대만은 칠레가 다다를 수 없던 번영으로 도약했다. 일반적인 대만인은 조부모가 1950년대에 먹던 고기보다 2배를 더 먹고 사는 공간도 7배 더 넓다. 연령이 같은 미국인보다 기대수명도 상당히 더 길다. 대만은 이제 선진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대만이 경제학자들이 건네는 조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학자들이 20세기 후반 내내 대만의 경제 정책을 감독했다.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차이나」중에서
이후 20년 동안 아이슬란드는 어느 나라나 그랬던 것처럼 금융 규제 완화를 완전히 수용했다. 한 경제학자는 뒤따른 호황을 가리키며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팽창한 금융 체계”라고 표현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젖과 꿀이 흘러넘치던 이 7년 동안 아이슬란드 국민의 평균 실질 소득이 2배 가까이 늘어서 2017년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6만 1930달러였다. 그러고는 한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10장 종이 물고기」중에서
경제학자가 주름잡던 시대는 대침체Great Recession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마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오후 3시에 막을 내렸을 것이다. 미국 9개 대형 은행 최고책임자들이 호위를 받으며 금박을 두른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선 시각이었다. 정부는 공개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은행을 지원하려 했지만 시장은 이미 붕괴된 뒤였다.
---「나오는 말」중에서
연방 정부는 1938년 최저임금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인플레이션과 연계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인상은 의회의 자비에 달려 있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조정되면서 최저임금은 1968년 정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40퍼센트가 깎였다. 경제학자는 임금을 시장이 내리는 정확한 판단이라고 여겼다. 조지 W. 부시 집권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존 스노우John Snow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기업에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나오는 말」중에서
시장 경제는 가장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이다. 부를 낳는 강력한 기계다. 하지만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는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가장 윗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아니라 가장 아랫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 왔다. 이 때문에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선동을 일삼는 국수주의 정치가한테 그 생존을 시험당하고 있는 것이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경제학자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자료 이용도가 높아지면서 함께 커 갔다. 마치 콩 넝쿨이 옥수숫대를 휘감는 모습과 같았다. 근대 초기에 정부는 자신이 운영하는 국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인구가 얼마인지, 소득이 얼마인지, 자산이 얼마인지 어림만 잡고 있을 뿐이었다.
---「들어가는 말」중에서
육군 참모총장인 윌리엄 웨스트모어랜드William Westmoreland 장군은 자문위원회 활동이 육군에 대한 공격이라고 여겼다. 육군은 병력 모집을 징병제에 의지하는 유일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용병 군대를 지휘해야 한다는 전망이 달갑지 않소이다”라고 웨스트모어랜드가 자문위원들에게 말했다. 프리드먼이 약점을 잡았다고 판단하고 물었다. “그럼 장군님, 노예 부대를 지휘하시겠습니까?” “애국심으로 무장한 징집병을 노예라고 부르다니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소.” 웨스트모어랜드가 대답하자 프리드먼이 응수했다. “애국심이 투철한 지원병을 용병이라고 부르는 소리를 저도 듣고 싶지 않습니다. 어찌 되었든 같은 의미에서 저도 용병 교수입니다. 머리가 길면 용병 이발사가 깎고 몸이 아프면 용병 의사가 치료하고 법적 문제가 일어나면 용병 변호사가 다룹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장군님, 당신도 용병 장군입니다.”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중에서
점점 시장 가치를 지닌 병사가 시장 가치가 있는 도급자와 더불어 군 복무를 하고 전투에 임한다. 미군이 최근에 배치한 주요 주둔지인 발칸 반도와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고용한 장병과 도급자는 수가 거의 비슷했다.
---「1장 시장은 어디에나 존재한다」중에서
프리드먼은 1940년대 말 케인스의 유령과 티격태격 싸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논쟁 주제가 성장을 높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무엇인가가 아니었다. 미국 경제가 탄탄하게 성장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논쟁 주제는 같은 동전의 다른 면, 인플레이션을 줄이는 방안이었다.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중에서
1969년 12월 프리드먼은 [타임] 표지를 장식했다. 케인스가 표지에 실린지 4년 뒤의 일이었다. 1960년대 말 연방 경제 정책은 인플레이션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미국인의 일자리 보장에 여전히 초점을 뚜렷이 맞추었다. 1980년대 초 즈음 연방 경제 정책은 일자리를 희생해 가면서까지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뚜렷이 맞추었다. 온 세계를 휩쓴 이 변화는 프리드먼이 남긴 가장 중요한 유산이었다.
---「2장 프리드먼 vs 케인스」중에서
1970년대 중반 미국인도 스태그플레이션과 처음 맞닥뜨렸다. 1973년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동맹국에 내린 석유 금수조치oil embargo의 충격으로 미국 경제는 대공황 이후 가장 깊은 침체에 들어섰다. 케인스주의 경제학자들에게는 매우 놀랍게도 실업과 인플레이션이 동반 상승했다. 양팔 저울에서 양쪽이 모두 동시에 위로 올라가는 형국이었다. 닉슨의 가격 통제 정책은 폐기되었지만 인플레이션을 타일러 무릎 꿇릴 수 있다는 견해는 여전히 정치인에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중에서
벤 S. 버냉키Ben S. Bernanke가 2006년 그린스펀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었을 때 ‘대안정Great Moderation’에 들어섰다고 언명했다.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는 인플레이션이 주축이 되어 보다 폭넓은 경제 안정을 이루는 새 시대를 일컬었다. 경제학자는 다시 한 번 경제학이 승리를 거두었다며 축배를 들었다.
---「3장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중에서
1971년 4월, 세계의 유수한 경제학자와 은행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을 논의하기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로 모여들었다. 선진국은 진퇴양난에 빠져 있었다. 기존의 인플레이션 해결책은 실업률을 높일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지고, 기존의 실업 해결책은 인플레이션을 올릴 가능성이 크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이 마음을 달랠 양으로 염주를 헤아리고 있을 때 시카고 대학 경제학자 로버트 먼델Robert Mundell이 두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먼델은 인플레이션과 실업률을 동시에 낮출 방법이 있다고 호언했다. 나아가 고통 없이 번영을 다시 누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먼델에 따르면 이 묘약의 주성분은 대대적인 감세였다.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중에서
감세안을 찬성하든 반대하든 모두 경제학이 자신들의 견해를 입증한다고 입을 모았다. 경제학자 450명이 이름을 내걸고 감세 반대 성명서를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로 실었다. 감세는 연방 정부 부채를 확대하겠지만 미국 경제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이에 경제학자 250명이 감세 찬성 성명서로 맞대응했다. 경제는 확대하겠지만 적자는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반대 입장을 취했다.
---「4장 감세, 효과 없어도 감세」중에서
스티글러 세대의 걸출한 지성 가운데 일부는 경제학이 인간 조건을 향상시킬 도구였기 때문에 끌렸다. 하지만 스티글러에게 경제학이 지닌 간결한 아름다움은 그런 노력이 다 부질없음을 확인시켜 준다는 데 있었다. 경제학자의 임무는 사회 진보를 향한 제도에 대해 “경제 논리에 따라 가혹한 평결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스티글러는 시장이 최상의 결과를 내놓는다고 믿었고, 정치인도 자선가도 오지랖 넓게 개입하려는 사람도 상황을 더 악화시킬 뿐이라고 보았다.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중에서
기업 부문이 집중하면서 고용주와 노동자 사이 힘의 균형추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 결과 기업은 요구를 늘리고 보수를 줄일 수 있었다. 노동자는 다른 선택권이 점점 없어졌기 때문에 그 영향력도 약해졌다.
---「5장 우리가 믿는 기업 품 안에서」중에서
대처 정부는 민영화를 할 때 해당 기업의 주식을 으레 직원에게 팔았다. 다수의 보수주의자처럼 대처도 노동조합을 또 다른 독점 형태로 여겼고 그 힘을 무너뜨리는 데 주저 없이 무력을 동원했다. 정부가 영국의 광산 노동자와 격렬하게 충돌했을 때는 특히 무자비했다. 하지만 대처는 또한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재편하여 그들을 일거에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소자본가로 변모시키려 했다. 마찬가지로 정부는 영국의 공공 주택 상당수를 입주자에게 팔았다.
---「6장 규제로부터의 자유」중에서
정부가 규제를 확대해 나가자 기업은 경제학을 방패로 삼아 휘두르려 했다. 자동차 회사는 규제 기관이 달러로 환산한 편익이 규정 준수에 따른 비용을 초과한다고 증명해 내지 못하면 안전 규정을 강요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라고 의회에 압박을 가했다.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중에서
하지만 비용-편익 분석이 여러 부문으로 확대되어 가면서 경제학자는 점점 사거나 팔 수 없는 대상의 가격을 더욱 영리하게 추산하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이윽고 경제학자는 잘린 손이나 교통 체증으로 버린 시간, 산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조망권의 가치에, 그리고 인간 생명의 가치에 얼마짜리 가격표를 붙여야 할지 안다고 주장했다.
---「7장 경제학이 계산한 생명의 가치」중에서
칠레는 산업 지반을 다지려고 노력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동안 칠레 정부는 국가의 주요 구리 광산에 지분을 갖고 있었다. 국가 지원을 받는 공장에서 특히 칠레 자동차와 라디오와 냉장고를 빠르게 생산해 내고 있었다. 하지만 알비온 패터슨과 시카고 대학과 미국 정부가 똘똘 뭉쳐 칠레가 절대 성공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현재 칠레 국민의 평균 소득은 대만 국민의 평균 소득의 절반에 불과하다.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차이나」중에서
간단히 말하면 대만은 칠레가 다다를 수 없던 번영으로 도약했다. 일반적인 대만인은 조부모가 1950년대에 먹던 고기보다 2배를 더 먹고 사는 공간도 7배 더 넓다. 연령이 같은 미국인보다 기대수명도 상당히 더 길다. 대만은 이제 선진국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한 가지 이유를 꼽자면 대만이 경제학자들이 건네는 조언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공학자들이 20세기 후반 내내 대만의 경제 정책을 감독했다.
---「9장 메이드 인 칠레 vs 메이드 인 차이나」중에서
이후 20년 동안 아이슬란드는 어느 나라나 그랬던 것처럼 금융 규제 완화를 완전히 수용했다. 한 경제학자는 뒤따른 호황을 가리키며 “인류 역사상 가장 빠르게 팽창한 금융 체계”라고 표현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젖과 꿀이 흘러넘치던 이 7년 동안 아이슬란드 국민의 평균 실질 소득이 2배 가까이 늘어서 2017년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6만 1930달러였다. 그러고는 한순간 와르르 무너졌다.
---「10장 종이 물고기」중에서
경제학자가 주름잡던 시대는 대침체Great Recession를 넘어서지 못했다. 아마 2008년 10월 13일 월요일 오후 3시에 막을 내렸을 것이다. 미국 9개 대형 은행 최고책임자들이 호위를 받으며 금박을 두른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선 시각이었다. 정부는 공개 시장에서 채권을 사들여 은행을 지원하려 했지만 시장은 이미 붕괴된 뒤였다.
---「나오는 말」중에서
연방 정부는 1938년 최저임금법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 법은 인플레이션과 연계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인상은 의회의 자비에 달려 있다. 인플레이션에 맞춰 조정되면서 최저임금은 1968년 정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40퍼센트가 깎였다. 경제학자는 임금을 시장이 내리는 정확한 판단이라고 여겼다. 조지 W. 부시 집권 시절 재무장관을 지낸 경제학자 존 스노우John Snow에 따르면 “사람은 자신이 기업에 얼마만 한 가치가 있느냐에 따라 임금을 받는다.”
---「나오는 말」중에서
시장 경제는 가장 놀라운 인간의 발명품이다. 부를 낳는 강력한 기계다. 하지만 한 사회를 평가하는 척도는 피라미드 계층 구조에서 가장 윗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 아니라 가장 아랫단에 속한 사람들의 삶의 질이다.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는 의도적으로 번영의 분배를 외면해 왔다. 이 때문에 지금 자유민주주의가 선동을 일삼는 국수주의 정치가한테 그 생존을 시험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는 말」중에서
출판사 리뷰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세계를 장악했나
혁명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닌 한 무리의 학자들이 불과 4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경제적 처지와 노동 조건, 사회복지와 생활상, 심지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심대하게 바꾸어 놓았다.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앞 세대 혹은 우리 세대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일대 격변이었다. 『경제학자의 시대』는 어떤 혁명보다 파장이 광범했고 어느 종교보다 사람들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 격동의 시대를 정밀하게 조명한 흥미롭고 역동적인 경제 역사서이다.
[뉴욕타임스] 경제 및 비즈니스 분야 주필이기도 한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Economists’ Hour)’라고 규정한다. 1969년은 닉슨 대통령이 보수파 경제학의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권고에 따라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지원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꾸린 해이다.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듯 시카고 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한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점차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여 세계를 뒤흔든다. 이로부터 40년 후인 2008년 10월 13일은 세계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미국 9개 대형 은행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서던 날이다.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설파하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백기투항일이었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정치권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그들이 약속했던 말은 어디까지 실현되었거나 실패했을까. 한마디로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경제학자의 시대』는 이 묵직하고 도저한 주제를 거침없이 파고든다.
왜 지난 40년(1969~2008)을 ‘경제학자의 시대’라 하는가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산업계, 법조계, 정치권과 공공 영역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경제학자는 각종 기관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나 만들어 내던 골방의 학자들에 불과했다.
미국의 중앙은행 수뇌부에는 은행가와 변호사, 하물며 아이오와주 양돈업자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연준 의장은 증권 중개인이었는데 경제학자라는 부류를 무척 낮잡아 보았다. 언젠가 한 방문객에게 말했다. “연준에는 계량 경제학자 50명이 우리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건물 지하에 있죠.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25쪽
그런데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이 같은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1965년 말 즈음부터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더니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것이다. 온도 조절 장치로 온도를 맞추듯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케인스주의의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니 통화 정책 외의 모든 것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주장이 점차 정부 운영에 자신감을 상실한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내내 케인스주의에 밀려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프리드먼은 대학에 둥지를 틀고 통화와 금융을 주제로 한 연수회를 25년간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신념을 계승할 통화주의자 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태동이다.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케인스의 이론이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넓게 나눈 번영”을 가져왔다며 칭찬했던 『타임』 지는 1969년 정반대의 이론을 개진하는 밀턴 프리드먼을 표지 인물로 올렸다. 이렇게 막이 오른 경제학자의 전성시대는 40년간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징병제를 폐지했다.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금지법을 적극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나아가 정부를 설득해 규제가 그만 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 생명을 달러 가치로 환산했다. (중략) 경제학자는 또한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1970년 경제학자 아서 F. 번스가 마틴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면서 볼커를 비롯한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을 이끄는 시대가 열렸다. 2년 뒤인 1972년 조지 슐츠가 경제학자로는 최초로 재무장관이 되었다. 미국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가 1950년대 중반 2000여 명에서 1970년대 말 6000여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 27쪽
프리드먼을 선두로 시장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는 정치인들을 설득하며 정치 권력을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했다. 그들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렸다. 기업과 시장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전 세계의 경제를 자신들의 신념대로 통합하고 변형시켰다. 또한 이들 경제학자는 제3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시카고 대학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쳤다. 시카고보이즈라고 불린 이 유학생들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에서 시카고학파의 경제 정책을 전파했다.
(칠레의) 사회 보장 제도는 1980년대 초에 민영화되었다. 설계자였던 호세 피네라는 칠레의 2세대 자유 시장 경제학자였다. 그는 시카고보이즈에게 경제학을 배웠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피노체트 정부에 들어와서 정부가 지원하는 칠레의 연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피네라는 1981년 노동절에 새로운 연금 제도를 발표했다. (중략) 이 제도를 30개 이상의 나라에서 따라 했는데 대체로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들이었다. - 456~457쪽
후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전 세계의 거대한 변화는 이렇게 퍼져 나갔다.
논쟁과 모험, 행동과 사회 대변혁으로 이어진 거대한 역사
경제학자들의 활약상과 모험, 부침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이론서보다는 유장한 흐름의 역사서에 더 가깝다.
이 책은 무색의 경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학설사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 같은 책이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과 교조에 따라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마침내 코민테른을 통해 세계 혁명 운동을 장악해 나갔듯이, (중략) 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이 ‘과학으로서의 실증 경제학’을 내세우며 미국과 영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각종 사회 정책 전반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장 경제 전체를 장악해 나가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 홍기빈(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 추천사
1929년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백척간두에 선 자본주의를 구한 케인스주의 시대가 저물고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의 보수적 경제학이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 그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세계를 장악했지만 숱한 문제를 남기고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대결과 반전의 역사가 저널리스트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일화와 생생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조감하기 위한 필독서
종종 흥미로운 역사서나 대하 역사소설이 수많은 영웅호걸을 다루듯이 『경제학자의 시대』에는 보수주의 경제학계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예컨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해 조지 스티글러, 조지 슐츠, 아론 디렉터, 로버트 루카스 같은 보수파의 거두들부터 칵테일 냅킨에 아이디어를 그려 세금 감면을 보수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만든 아서 라퍼, 닉슨 대통령에게 군 징집 종식을 설득한 시각장애인 경제학자 월터 오이,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달러 가치로 평가한 토마스 셸링 등 숱한 자유 시장 경제학 전도사들이 그들이다.
영웅호걸의 활약상에 비견할 만한 이들 학자의 역할을 씨줄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날줄로 삼아 저자 애펠바움이 직조해 낸 40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상찬과는 거리가 멀다. 애펠바움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쌓여 한 시대가 만들어졌음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경제학자의 시대’가 이룬 성과와 함께 역사적 한계를 면밀하게 살핀다.
경제학자의 시대에 이루어진 정책 전환으로 미국은 경제적 진화를 앞당겼다. 하지만 그 편익을 소수 특권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쏟아 넣었다. 달러의 높은 가격과 인플레이션의 억제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정책으로 제조업의 쇠퇴를 더욱 재촉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일하지 않는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서 임금도 내려갔다. 확실한 균형추 역할을 하던 노동조합의 힘이 특권층이 느끼는 반감 때문에, 정부가 기업 집중에 베푸는 아량 때문에 더욱 약화되었다. 그 결과 협상력이 고용주 쪽으로 더 옮겨 갔다. (중략) 최저임금은 1968년 정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40퍼센트가 깎였다. (중략) 1971년 상위 10퍼센트 가구는 총소득의 31퍼센트를 벌었다. 2016년에는 상위 10퍼센트 가구가 48퍼센트를 가져갔다. - 542~544쪽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념적 태동부터 세계를 장악하고 몰락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시대가 남긴 유산과 한계를 세밀하게 살핀다는 점에서 『경제학자의 시대』는 신자유주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쪽 독자 모두에게 필독서가 될 책이다.
이 시대의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여전히 많은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비척비척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 그 모험과 도전의 역사를 때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혁명가도 종교 지도자도 아닌 한 무리의 학자들이 불과 40년의 짧은 기간 동안 전 세계 수십억 인류의 경제적 처지와 노동 조건, 사회복지와 생활상, 심지어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심대하게 바꾸어 놓았다. 아주 먼 과거의 일도 아니고 바로 우리 앞 세대 혹은 우리 세대에 벌어진 드라마틱한 일대 격변이었다. 『경제학자의 시대』는 어떤 혁명보다 파장이 광범했고 어느 종교보다 사람들의 의식에 깊은 영향을 미친 이 격동의 시대를 정밀하게 조명한 흥미롭고 역동적인 경제 역사서이다.
[뉴욕타임스] 경제 및 비즈니스 분야 주필이기도 한 저자 빈야민 애펠바움은 1969년부터 2008년까지의 40년을 ‘경제학자의 시대(Economists’ Hour)’라고 규정한다. 1969년은 닉슨 대통령이 보수파 경제학의 이론가인 밀턴 프리드먼의 권고에 따라 징병제를 폐지하고 완전지원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자문위원회를 꾸린 해이다. 그때까지 경제학의 주류였던 케인스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상징하듯 시카고 대학의 보수파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타임』 지의 표지를 장식한 해이기도 하다. 이를 기점으로 시카고학파의 경제학은 점차 새로운 주류로 등장하여 세계를 뒤흔든다. 이로부터 40년 후인 2008년 10월 13일은 세계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서 미국 9개 대형 은행의 책임자들이 줄줄이 재무부 회의실로 들어서던 날이다. 정부의 역할을 부인하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고 설파하던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의 백기투항일이었다.
이 40년의 기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골방의 경제학자들은 어떻게 정치권과 세계를 사로잡았을까. 그들이 약속했던 말은 어디까지 실현되었거나 실패했을까. 한마디로 그들은 성공한 혁명가인가, 거짓 예언자인가. 『경제학자의 시대』는 이 묵직하고 도저한 주제를 거침없이 파고든다.
왜 지난 40년(1969~2008)을 ‘경제학자의 시대’라 하는가
지금은 경제학자들이 학계는 물론 기업과 산업계, 법조계, 정치권과 공공 영역 곳곳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상황이 달랐다. 경제학자는 각종 기관에서 정책 결정권자들의 의사결정을 뒷받침할 자료나 만들어 내던 골방의 학자들에 불과했다.
미국의 중앙은행 수뇌부에는 은행가와 변호사, 하물며 아이오와주 양돈업자도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제학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연준 의장은 증권 중개인이었는데 경제학자라는 부류를 무척 낮잡아 보았다. 언젠가 한 방문객에게 말했다. “연준에는 계량 경제학자 50명이 우리 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두 건물 지하에 있죠. 거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 25쪽
그런데 1960년대 후반이 되자 이 같은 분위기는 극적으로 변한다. 1965년 말 즈음부터 경기가 과열 양상을 보이더니 인플레이션이 치솟았던 것이다. 온도 조절 장치로 온도를 맞추듯 정부가 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하던 케인스주의의 위세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거꾸로 정부의 개입은 경제에 부작용만 일으킬 뿐이니 통화 정책 외의 모든 것을 시장에 완전히 맡기라는 주장이 점차 정부 운영에 자신감을 상실한 정치인들을 파고들었다.
이 흐름의 선두에 선 학자가 시카고 대학의 밀턴 프리드먼이었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내내 케인스주의에 밀려 자신의 견해를 제대로 펼치지 못하던 프리드먼은 대학에 둥지를 틀고 통화와 금융을 주제로 한 연수회를 25년간 운영하면서 자신의 경제적 신념을 계승할 통화주의자 군대를 육성하고 있었다. 이른바 시카고학파의 태동이다. 이들은 이제 거침없이 무대 위로 올라섰다. 불과 4년 전만 해도 케인스의 이론이 “역사상 가장 크고 가장 길고 가장 넓게 나눈 번영”을 가져왔다며 칭찬했던 『타임』 지는 1969년 정반대의 이론을 개진하는 밀턴 프리드먼을 표지 인물로 올렸다. 이렇게 막이 오른 경제학자의 전성시대는 40년간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이 시기에 경제학자는 과세와 공공 지출을 제한하고, 규모가 큰 경제 부문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계화를 향한 길을 마련해 나가는 데 중심 역할을 했다. 또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설득하여 징병제를 폐지했다. 연방 법원을 설득해 독점금지법을 적극 집행하지 못하도록 막았고, 나아가 정부를 설득해 규제가 그만 한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 알아내기 위해 인간 생명을 달러 가치로 환산했다. (중략) 경제학자는 또한 정책 입안자가 되었다. 1970년 경제학자 아서 F. 번스가 마틴에 이어 연준 의장이 되면서 볼커를 비롯한 경제학자가 중앙은행을 이끄는 시대가 열렸다. 2년 뒤인 1972년 조지 슐츠가 경제학자로는 최초로 재무장관이 되었다. 미국 정부가 임용한 경제학자 수가 1950년대 중반 2000여 명에서 1970년대 말 6000여 명 이상으로 크게 늘어났다. - 27쪽
프리드먼을 선두로 시장 자유주의와 보수적 신념으로 똘똘 뭉친 경제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에서 인플레이션에 골머리를 앓는 정치인들을 설득하며 정치 권력을 장악했고 이를 바탕으로 사회 정책 전반에 개입했다. 그들은 규제를 풀고 세금을 내렸다. 기업과 시장에는 무한한 자유를 주었다. 전 세계의 경제를 자신들의 신념대로 통합하고 변형시켰다. 또한 이들 경제학자는 제3세계 여러 나라의 학생들을 시카고 대학으로 불러들여 자신들의 경제 정책을 가르쳤다. 시카고보이즈라고 불린 이 유학생들은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에서 시카고학파의 경제 정책을 전파했다.
(칠레의) 사회 보장 제도는 1980년대 초에 민영화되었다. 설계자였던 호세 피네라는 칠레의 2세대 자유 시장 경제학자였다. 그는 시카고보이즈에게 경제학을 배웠고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피노체트 정부에 들어와서 정부가 지원하는 칠레의 연금 제도를 대대적으로 정비하는 임무를 맡았다. 피네라는 1981년 노동절에 새로운 연금 제도를 발표했다. (중략) 이 제도를 30개 이상의 나라에서 따라 했는데 대체로 남아메리카, 아시아, 동유럽의 개발도상국들이었다. - 456~457쪽
후일 신자유주의라고 명명된 전 세계의 거대한 변화는 이렇게 퍼져 나갔다.
논쟁과 모험, 행동과 사회 대변혁으로 이어진 거대한 역사
경제학자들의 활약상과 모험, 부침을 다루고 있지만 이 책은 경제 이론서보다는 유장한 흐름의 역사서에 더 가깝다.
이 책은 무색의 경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학설사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 같은 책이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과 교조에 따라 정치 권력을 장악하고, 사회 곳곳을 장악하고, 마침내 코민테른을 통해 세계 혁명 운동을 장악해 나갔듯이, (중략) 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이 ‘과학으로서의 실증 경제학’을 내세우며 미국과 영국의 정치 권력을 장악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각종 사회 정책 전반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장 경제 전체를 장악해 나가던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 홍기빈(글로벌정치연구소 소장) 추천사
1929년 대공황과 두 차례의 세계대전으로 백척간두에 선 자본주의를 구한 케인스주의 시대가 저물고 프리드먼을 중심으로 한 시카고학파의 보수적 경제학이 주류로 올라서는 과정, 그들이 권력을 쟁취하고 세계를 장악했지만 숱한 문제를 남기고 2008년 금융 위기와 함께 바벨탑처럼 무너지는 대결과 반전의 역사가 저널리스트 특유의 현장감 넘치는 일화와 생생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거대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자본주의의 현재와 미래를 조감하기 위한 필독서
종종 흥미로운 역사서나 대하 역사소설이 수많은 영웅호걸을 다루듯이 『경제학자의 시대』에는 보수주의 경제학계의 스타들이 대거 등장한다. 예컨대 밀턴 프리드먼을 위시해 조지 스티글러, 조지 슐츠, 아론 디렉터, 로버트 루카스 같은 보수파의 거두들부터 칵테일 냅킨에 아이디어를 그려 세금 감면을 보수 경제 정책의 핵심으로 만든 아서 라퍼, 닉슨 대통령에게 군 징집 종식을 설득한 시각장애인 경제학자 월터 오이, 그리고 인간의 삶을 달러 가치로 평가한 토마스 셸링 등 숱한 자유 시장 경제학 전도사들이 그들이다.
영웅호걸의 활약상에 비견할 만한 이들 학자의 역할을 씨줄로, 시대의 도도한 흐름을 날줄로 삼아 저자 애펠바움이 직조해 낸 40년의 역사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일방적인 비난이나 상찬과는 거리가 멀다. 애펠바움은 수많은 우연과 필연이 쌓여 한 시대가 만들어졌음을 냉정하게 성찰하면서 ‘경제학자의 시대’가 이룬 성과와 함께 역사적 한계를 면밀하게 살핀다.
경제학자의 시대에 이루어진 정책 전환으로 미국은 경제적 진화를 앞당겼다. 하지만 그 편익을 소수 특권층의 호주머니 속으로 쏟아 넣었다. 달러의 높은 가격과 인플레이션의 억제에만 오롯이 집중하는 정책으로 제조업의 쇠퇴를 더욱 재촉했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는 더욱 힘들어졌다. 일하지 않는 노동자 수가 늘어나면서 임금도 내려갔다. 확실한 균형추 역할을 하던 노동조합의 힘이 특권층이 느끼는 반감 때문에, 정부가 기업 집중에 베푸는 아량 때문에 더욱 약화되었다. 그 결과 협상력이 고용주 쪽으로 더 옮겨 갔다. (중략) 최저임금은 1968년 정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경제학자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40퍼센트가 깎였다. (중략) 1971년 상위 10퍼센트 가구는 총소득의 31퍼센트를 벌었다. 2016년에는 상위 10퍼센트 가구가 48퍼센트를 가져갔다. - 542~544쪽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이념적 태동부터 세계를 장악하고 몰락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시대가 남긴 유산과 한계를 세밀하게 살핀다는 점에서 『경제학자의 시대』는 신자유주의에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양쪽 독자 모두에게 필독서가 될 책이다.
이 시대의 경제 그리고 자본주의 체제는 여전히 많은 한계와 가능성을 동시에 안고 비척비척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오늘날까지 자본주의가 걸어온 길, 그 모험과 도전의 역사를 때로는 다큐멘터리처럼, 때로는 박진감 넘치는
대하소설처럼 펼치는 이 책과 함께 우리 시대의 자본주의를 이해하고 다가올 미래를 전망해 보면 어떨까.
추천평
그동안 읽은 경제학 관련 책들 중 이것처럼 재미있게 읽은 것이 거의 없을 정도다. 이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으려면 1960년대와 1970년대 미국의 정치 지형에 대한 사전 지식이 필요하지만 설사 그런 지식이 없더라도 이 책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 신자유주의 이념의 태동과 확산, 그리고 그것이 가져다준 귀결에 대해 친절하고 흥미롭게 설명해 주고 있다. 저자의 다방면에 걸친 해박한 지식에 접하는 것도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다.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 책은 무색의 경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학설사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과 교조에 따라 세계 혁명 운동을 장악해 나갔듯이, 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이 ‘과학으로서의 실증 경제학’을 내세우며 미국과 영국의 정치 권력 장악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 정책 전반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장 경제 전체를 장악해 나간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지난 40여 년간 득세했던 자유 시장 경제학의 주장과 실패를 돌이켜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가 감세와 규제 완화, 재정 긴축과 같은 낡은 경제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독자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줄 것이다.
-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히는 역사서다. 여러 일화를 이어가며 명쾌한 설명을 풍부하게 곁들여 숨 돌릴 틈 없이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도 최근 역사학자와 사회학자와 다른 학자들이 일구어 놓은 연구 성과에 탄탄한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 저스틴 폭스 [뉴욕타임스 북리뷰]
-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
이 책은 무색의 경제 이론을 지루하게 늘어놓는 경제학설사가 아니다. 오히려 『러시아 혁명사』에 더 가까운, 논쟁과 모험과 행동과 사회의 대변혁으로 이어지는 거대한 활극과 같은 책이다.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스스로를 ‘과학적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과 교조에 따라 세계 혁명 운동을 장악해 나갔듯이, 한 무리의 경제학자들이 ‘과학으로서의 실증 경제학’을 내세우며 미국과 영국의 정치 권력 장악을 시작으로 각종 사회 정책 전반을, 그리고 전 세계의 시장 경제 전체를 장악해 나간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묘사하고 있다.
-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지난 40여 년간 득세했던 자유 시장 경제학의 주장과 실패를 돌이켜 보는 것은 의미가 크다. 무엇보다 최근 정부가 감세와 규제 완화, 재정 긴축과 같은 낡은 경제 정책으로 회귀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 독자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줄 것이다.
- 이강국 (리쓰메이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놀라울 정도로 쉽게 읽히는 역사서다. 여러 일화를 이어가며 명쾌한 설명을 풍부하게 곁들여 숨 돌릴 틈 없이 이야기를 펼쳐 나가면서도 최근 역사학자와 사회학자와 다른 학자들이 일구어 놓은 연구 성과에 탄탄한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다.
- 저스틴 폭스 [뉴욕타임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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