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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발해와 교류를 가졌던 나라들과의 접촉사를 그 나라의 기록과 시각에서 점검해봄으로써 발해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고구려 계승 국가임을 분명히 한 발해가,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펴나가면서 일본과 교류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고구려와 당과의 관계도 살펴보고 있어, 동아시아에서의 발해의 위치를 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중국의 동북공정사업으로 역사분쟁 현안이 된 발해사를 좀 더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개회사
축사
기조강연
발해의 국가와 대외교류
주제발표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보론
발해와 당과의 관계
고고학에서 본 발해와 일본의 교류사
발해와 일본의 교류와 크라스키노 성
동북아시아 역사분쟁 속의 발해사의 위치
종합토론
개회사
축사
기조강연
발해의 국가와 대외교류
주제발표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보론
발해와 당과의 관계
고고학에서 본 발해와 일본의 교류사
발해와 일본의 교류와 크라스키노 성
동북아시아 역사분쟁 속의 발해사의 위치
종합토론
출판사 리뷰
발해국은 한반도 북부에서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 연해지방을 영역기반으로 하여, 698~926년에 걸쳐 존재한 국가로 당나라와 일본 등과 다양한 교류가 있었다. 일본과의 교류는 727년 첫 사절을 보낸 후, 919년까지 34차례에 걸쳐 사절을 파견했고, 일본에서는 13차례 발해에 사절을 파견했다.
발해의 대일교섭은 2대 무왕때인 726년, 발해에 인접한 흑수말갈이 발해영토를 통과하여 당에 사신을 파견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발해가 배후의 신라를 견제하면서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발해는 일본에 대해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분명히 했고,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가면서 양 국가간에 교류기반을 다져갔다.
발해의 대외적 자신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외교는 일본과의 사이에 외교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으나, 일본으로서는 발해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교류를 통해 얻는 혜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대륙과의 연계에 발해를 이용했고, 발해의 다양한 산물은 일본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양국간의 교류는 정치?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 나갔다. 특히 9세기 이후 양국 문인간 한시교류는 문화교류의 백미로 평가되기도 한다.
동해바다의 험난한 해로를 건너, 조난과 표류가 거듭되는 위험을 감수한 발해와 일본의 47회에 걸친 교류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도 양국관계가 매우 긴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총 6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일본 國學院大學 鈴木靖民 교수는 기조강연(「발해의 국가와 대외교류」)을 통해 발해국과 대외관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다.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보론」을 통해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중국사료와 일본사료를 통해 설명하였다. 발해의 대외관계 규명을 위해, 金澤大學 古畑徹 교수의 「발해와 당과의 관계」, 金澤學院大學 小嶋芳孝 교수의 「고고학에서 본 발해와 일본의 교류사」, 동북아역사재단 김은국 연구위원의 「발해와 일본의 교류와 크라스키노성」, 그리고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사업에 의해 한중 역사분쟁의 현안이 되고 있는 발해사를 일본 早稻田大學 이성시 교수의 「동북아시아 역사분쟁 속의 발해사의 위치」를 통해, 동아시아속의 발해사를 재조명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재조명 된 사실은 발해는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였다는 것이다. 발해는 당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지만 발해국 자체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황제를 칭하였다.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말갈국(발해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칭)은 그들만의 주장인 것이다.
발해의 대일교섭은 2대 무왕때인 726년, 발해에 인접한 흑수말갈이 발해영토를 통과하여 당에 사신을 파견하자, 이에 위협을 느낀 발해가 배후의 신라를 견제하면서 일본과 외교관계를 맺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발해는 일본에 대해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임을 분명히 했고, 신라를 견제하기 위한 적극적인 외교정책을 펼쳐가면서 양 국가간에 교류기반을 다져갔다.
발해의 대외적 자신감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적극적인 외교는 일본과의 사이에 외교적 갈등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으나, 일본으로서는 발해와의 관계를 악화시켜 교류를 통해 얻는 혜택을 포기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대륙과의 연계에 발해를 이용했고, 발해의 다양한 산물은 일본에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양국간의 교류는 정치?경제적 이익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화교류의 장을 열어 나갔다. 특히 9세기 이후 양국 문인간 한시교류는 문화교류의 백미로 평가되기도 한다.
동해바다의 험난한 해로를 건너, 조난과 표류가 거듭되는 위험을 감수한 발해와 일본의 47회에 걸친 교류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 속에서도 양국관계가 매우 긴밀하였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총 6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있다. 먼저 일본 國學院大學 鈴木靖民 교수는 기조강연(「발해의 국가와 대외교류」)을 통해 발해국과 대외관계에 대해 개괄적으로 정리하였다. 서울대 송기호 교수는 「발해의 고구려 계승성 보론」을 통해 발해와 고구려의 계승관계를 중국사료와 일본사료를 통해 설명하였다. 발해의 대외관계 규명을 위해, 金澤大學 古畑徹 교수의 「발해와 당과의 관계」, 金澤學院大學 小嶋芳孝 교수의 「고고학에서 본 발해와 일본의 교류사」, 동북아역사재단 김은국 연구위원의 「발해와 일본의 교류와 크라스키노성」, 그리고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사업에 의해 한중 역사분쟁의 현안이 되고 있는 발해사를 일본 早稻田大學 이성시 교수의 「동북아시아 역사분쟁 속의 발해사의 위치」를 통해, 동아시아속의 발해사를 재조명했다.
이상의 연구를 통해 재조명 된 사실은 발해는 대내외적으로 분명히 고구려 계승을 표방하였다는 것이다. 발해는 당나라로부터 책봉을 받았지만 발해국 자체 연호를 사용하였으며, 황제를 칭하였다. 중국측에서 주장하는 말갈국(발해국에 대한 중국인들의 호칭)은 그들만의 주장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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