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기독교 신학연구 (독학>책소개)/6.복음개혁주의

역사비평의 도전과 복음주의의 응답 (2021)

동방박사님 2023. 11. 26.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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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근대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역사비평은 성경 해석의 토대와 지평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고대 신화의 범주로 격하시키거나, 비역사적 사실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해석을 공공연히 일삼았다. 이에 맞서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비평의 포화를 피해 “근본주의”라는 성채로 피신한 채 문자주의의 참호 안에 몸을 웅크리며 신앙을 파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교회는 진지하지만 반지성적인 스킬라(Scylla)라는 근본주의와 엄밀하지만 무신론적인 카리브디스(Charybdis)라는 비평주의를 향하여 돌진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와 같다. 따라서 건전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성경숭배적 반지성주의와 비평적 회의주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비평적이면서도 신앙고백적인 신학, 학문적이면서도 정통적인 신학, 영민하면서도 경건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은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목차

감사의 글 14
약어표 16

1. 신실한 비평을 위하여 20
2. 아담과 타락 54
3. 출애굽: 사실인가 허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102
4. 바빌로니아 포로 이전에는 언약이 없었다? 130
5. 예언 문제 160
6. 위작과 정경 206
7. 역사적 예수 254
8.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 290
9.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 324

참고문헌 352
집필자 소개 370
 

저자 소개

편 : 크리스토퍼 M. 헤이스 (Christopher M. Hays)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컬럼비아 성경신학교의 신약학 교수다. 휘튼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마친 후 유럽으로 건너가 세인트앤드루스, 옥스퍼드, 본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공부했다. 독일 본 대학교의 기독교신학부 연구원으로 근무한 후에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 신학과 종교학부에서 영국 학술원 박사후 과정을 이수했다. 그는 초기 기독교의 “재산 윤리”(wealth ethics)를 전공했으며 Luke’s W...
 
편 : 크리스토퍼 B. 안스베리 (Christopher B. Ansberry)
 
휘튼 칼리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런던 오크힐 칼리지의 구약학 교수다. 휘튼 칼리지와 대학원에서 강의했으며, 이스라엘 지혜문학을 전공했다. Be Wise, My Son, and Make My Heart Glad: An Exploration of the Courtly Nature of the Book of Proverbs (De Gruyter, 2010) 외에 다수의 저서가 있다.
 
역 : 성기문
저자는 중앙대학교 영문학과(B.A.)과 아세아연합신학연구원(M.Div.)을 졸업하였고 아세아연합신학대 대학원(Th.M.) 에서 구약학을 공부하였다. 1996년 영국으로 유학하여 University of Gloucestershire 박사과정에서 고든 맥컨빌 교수의 지도로 구약 선지서를 공부하였다. 귀국 후 2013-2018년 봄 백석대학교 기독교전문대학원에서 류호준 교수 지도로 <하타트 제의에서의 피와 고기의 기능...
 

책 속으로

본서는 저자들이 성경비평 강의를 듣는 학생들이었을 때 참고 도서로 소유하기를 소망했던 바로 그 책이다. 본서는 역사비평학의 신학적 귀결들에 관해 간략하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설명을 제공한다. 우리는 신학적 고려사항이 학계로 하여금 특정한 주제에 대해 결국 하나의 결론을 도출하도록 인도할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의도하는 바는 여기서 다뤄지는 이슈들이 역사적으로 아무리 복잡하다고 해도 그것들이 우리의 기독교(혹은 심지어 우리의 복음주의) 신앙을 폐기하라고 요구하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 「제1장 신실한 비평을 위하여」 중에서

그런 이유에서 본 장은 독자들에게 만일 창세기에 대한 역사비평적 관점들이 옳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상상력에 기반한 사변적인 실험을 한번 전개해보라고 제안하는 것이다. 우리는 죄의 신학, 즉 창세기 2-3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교리적 주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타락의 역사성에 대한 비평학계의 거부는 비록 욕정(concupiscence)이라는 개념을 위태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원죄(peccatum originans; originating sin)와 원죄책(original guilt) 개념을 배제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원죄책이 성경에서, 심지어 로마서 5장에서도 지지를 받는 개념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원죄책 개념은 2, 3세기의 교부들에게도 이질적인 것이었으며 동방 기독교 교리에서도 결코 수용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원죄책의 폐기는 기독교가 안고 있는 심각한 철학적 난제를 제거해준다는 점에서 신학적으로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질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아담의 타락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이론적으로 유대교와 기독교 인죄론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욕정” 개념을 죄의 성향을 촉발시키는 것으로서 지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제2장 아담과 타락」 중에서

출애굽과 관련해서, 일부 비평적 역사분석은 의문스러운 결과들을 양산했다. 출애굽 내러티브가 페르시아 시대 혹은 헬레니즘 시대에 만들어진 허구적 기사라는 최소주의적 개념은 고대 이스라엘의 포로 시대 이전 정체성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미래에 대한 이스라엘의 소망을 좀먹고 출애굽이 증거하는 해방 신앙에 대한 기독교적 확신을 파괴한다. 그러나 최소주의 출애굽 개념이 역사비평적으로 유일한 가능성은 아니며, 다만 역사비평적 연구의 극단적인 형태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신앙의 근본적인 교리주장들에 대한 우리의 헌신은 이런 극단적이고 허무주의적인 역사관을 수용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막아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신앙은 출애굽의 역사적 실재를 탐구하거나 그 이야기가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의 삶에서 어떤 기능을 가졌는지를 결정하기 위해 비평적 방법론을 사용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많은 최소주의 학자들이 신앙의 근거들을 훼손한다는 사실이야말로 오히려 기독교 신앙에 깊이 헌신한 더 많은 복음주의 학자들이 그 대화에 참여해야 하는 강력한 이유인 것 같다.
--- 「제3장 출애굽: 사실인가 허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 중에서

신명기 언약의 저자와 재사용에 대한 역사비평적 연구는 복음주의자들로 하여금 신명기의 권위가 자리하는 곳이 어디이며, 이스라엘 역사 전반에 걸쳐 신명기의 신학적 개념이 수용되어온 방식이 무엇인가라는 주제에 보다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론들이 모두에게 유용한 것이 되기 위해서는 학자들이 저자와 권위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과감하게 탈피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개념들은 복음주의 학자들뿐 아니라 보다 회의적인 그들의 대화 상대자들 모두를 종종 걸고 넘어졌다. 신명기에 나타난 모세의 목소리가 갖는 생동성이 단지 한 시대(모세의 시대든 요시아의 시대든 혹은 다른 어떤 시대든) 혹은 장소로 국한될 수는 없다. 게다가 그 문서의 권위도 단지 한 사람에게만 돌려질 수 없다. 우리가 기독교 정경으로서 신명기의 권위를 일반적으로는 그 문서의 내용에, 그리고, 특히 공인된 전승가들을 통한 성령의 역할에 두게 되면, 모세 기원설에 대한 가장 예리한 공격들조차도 그 책의 권위적 지위를 빼앗거나 그 계시적 목소리를 잠재우지 못한다.
--- 「제4장 바빌로니아 포로 이전에는 언약이 없었다? 신명기 토라와 이스라엘의 언약신학」 중에서

우리는 본 장에서 예언이 미래에 일어날 사건들을 예보할 수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으며, 비록 우리의 연구가 예언과 관련해 명백하게 “문제적인” 사례들에 초점을 맞추었지만, 어떤 사건들이 예보된 대로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것도 꽤나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하지만 예언과 성취의 관계는 훨씬 더 유연한 것일 수도 있다. 예언의 성취는 때로 예언자가 예보한 것을 넘어서면서도 예언에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본래 의지와 조화될 수 있다. 또한 예언은 인간의 행동이나 구체적인 반응에 좌우될 수도 있는데, 올바르게 반응하는 데 실패할 때는 예언되었던 결과가 무산되거나 지연될 수도 있다. 그리고 때로는 예언이 “사후에” 작성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기만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역사의 주재시며 참으로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확신의 표현이었다. 일단 예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성경의 관점을 이해하고 나면, 예언의 성취 혹은 실패를 다룬 성경 기록들이 가진 통렬한 문제들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 「제5장 예언 문제」 중에서

오경, 이사야서, 요한복음, 그리고 바울 서신이 제기하는 다양한 이슈들을 통해 우리는 독자가 반응해야 할 두 가지 근본적인 문제를 발견한다. 정경 내에 위작(pseudepigraphy)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성경의 본질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리고 성경 텍스트의 권위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첫 번째 질문의 경우 문제의 핵심은 영감과 하나님의 낮아지심 사이의 복잡한 관계에 놓여 있다. 하나님이 성경을 통하여 인간에게 말씀하시려고 어느 정도까지 낮아지셨는가라는 문제가 우리의 영감 개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는 위작과 영감의 관계를 진공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논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두 번째 질문이 중요성을 갖는 것이다. 오경과 요한복음을 연구할 때 저자에 관한 고대의 인식은 성경 텍스트 내에서 권위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이해하고 영감의 과정을 성찰하기 위한 틀을 제공한다. 성경 문서들이 그 권위를 “저자(들)”보다는 영감된 텍스트의 내용과 정경화(canonization) 과정에 두는 것으로 이해할 때, 역사비평은 권위에 대한 현대 개념들의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성경 텍스트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또한 저자에 대한 고대의 인식과 텍스트가 생산되는 실제 과정이 현대 개념에 비해 유동적이었다면, 역사비평은 하나님이 성령을 통하여 성경 텍스트를 저작하고 문서화하기 위해 택하신 방식에 대한 탐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 것이다.
--- 「제6장 위작과 정경」 중에서

우리는 예수의 자기제시, 기적, 동정녀 탄생, 그리고 부활의 문제를 다룬 주요 학자들의 관점들을 개괄함으로써 나사렛 사람 예수에 대한 비평적 연구가 복음서, 니케아 신조, 그리고 그 이후의 신앙에 대해서도 충분한 여지를 제공해준다는 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우리는 사변적이고 이론적인 관점에서 대화를 이끌어가고자 했으며, 각각의 역사적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선호하는 해석을 옹호하기보다는 주어진 비평적 제안이 신학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있는 부분들을 지적하고자 했다. 역사비평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현대 예수 연구에 위태로운 요소가 전혀 없다는 순진한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이 분야에 신학적으로 위태로운 요소들이 너무나 많으며 따라서 펑크, 크로산, 뤼데만과 같은 신학자들이 연구를 과도하게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적인 그리스도인들이 무비판적으로 이 분야를 그들에게 양도할 수는 없다고 믿기 때문에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전문가”라는 명패를 포기한 채 정통 기독교 학계에서 결코 수용하지 못할 관점을 가진 학자들에게 그 명패를 넘겨줌으로써 우리 회중의 성도들이 검증되지 않은 역사적 풍자에 노출되도록 방치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 「제7장 역사적 예수」 중에서

누가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을 비교할 때 우리가 던져야 할 근본적인 질문은, 사도행전과 서신서가 그리는 그림들이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의 삶과 신학을 동일하게 채색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 아니라, 누가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이 성령을 부어주시고 아버지를 드러내신 메시아 예수를 동일하게 증거하는지 여부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바로 이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망설임 없이 “예”가 된다. 이 점을 염두에 둘 때 우리는 누가와 바울이 동일한 언어 표현들을 사용하는지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는 좀 더 너그러운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에 두 사도는 그렇게 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로 완전히 이질적이지도 않다. 그들은 한목소리로 이스라엘과 열방과 전체 창조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언약적 목적들의 절정으로서 구원자의 삶을 사시고 성령을 부어주신 하나님의 독생자, 나사렛 예수 우리 주님에 대해 증언한다. 이처럼 성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1) 정경 내에 다채로운 목소리를 허용할 여유를 갖게 되고, 2) 기독교의 중심 메시지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교리서를 주셨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그리고 예수를 통하여 일하셨다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며, 3) 무한하신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글이나 말 혹은 사고에 한계가 있음을 염두에 둘 수 있게 된다.
--- 「제8장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 중에서

그렇다면 우리가 그와 같은 역사비평의 심연으로 뛰어들 때 어떻게 우리는 근본주의적 성경 숭배와 전체주의적 회의주의라는 양극단을 피하면서 역사비평의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이와 관련하여 어떤 종류의 종교적 신념이 세심한 역사적 분석이 제기하는 도전들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참으로 우울한 질문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를 찾는 작업, 곧 성경이 가진 완전함을 발견하는 작업이 철저한 역사적 탐구, 겸허한 자기반성, 그리고 고양된 신앙의 조합을 요구한다고 제안한다. 다시 말해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 「제9장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 중에서
 

출판사 리뷰

근대 계몽주의와 함께 태동한 역사비평은 성경 해석의 토대와 지평을 완전히 뒤바꾸어놓았다. 역사비평은 성경의 많은 이야기를 고대 신화의 범주로 격하시키거나, 비역사적 사실로 치부하거나, 심지어 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해석을 공공연히 일삼았다. 이에 맞서 많은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비평의 포화를 피해 “근본주의”라는 성채로 피신한 채 문자주의의 참호 안에 몸을 웅크리며 신앙을 파수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비유하자면, 오늘날의 교회는 진지하지만 반지성적인 스킬라(Scylla)라는 근본주의와 엄밀하지만 무신론적인 카리브디스(Charybdis)라는 비평주의를 향하여 돌진하는 오디세우스의 배와 같다. 따라서 건전한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는 성경숭배적 반지성주의와 비평적 회의주의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채 비평적이면서도 신앙고백적인 신학, 학문적이면서도 정통적인 신학, 영민하면서도 경건한 신학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본서는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이라는 두 가지 방법론을 제시한다.

“신실한 비평”은 엄격한 역사비평적 탐구를 기독교의 본질적인 교리에 대한 단호한 헌신과 결함시킴으로써 성경의 역사적, 신학적 차원에 대한 이해를 고취시킨다. 이 방법론은 한편으로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고 성경을 통해 인간의 방식으로 그들과 소통하셨음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다른 한편으로 텍스트의 의미를 부적절하게 반영하는 모든 종류의 전이해를 재조정하는 열린 태도를 가지고서 성경에 기록된 사건들, 속성들, 그리고 기대들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비평적”이다. 신실한 비평 방법론은 텍스트에 묘사된 역사적 사건들과 텍스트가 그 사건에 부여하는 신학적 함의에 관한 대화에 역사적, 신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는 포괄적인 해석학적 배경을 제공해줄 수 있다.

“비평적 신앙”은 성경이나 신학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지만, 분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비평적”이다. 그것은 정통 기독교에 뿌리박은 신앙으로서 진리가 어느 곳에서 발견되든지 간에 그 진리를 수용하고 그 진리에 비추어서 전통적인 전제들이나 신념들을 재조정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을 가진 신앙이다. 비평적 신앙은 성경의 고유한 역사적, 신학적 멜로디를 들려주는 목소리들, 다른 전통적인 해석들과 불협화음을 이룬다는 이유로 숨죽여야만 했던 선율들도 사장시키지 않는다. 따라서 비평적 신앙의 관점에서 보자면 성령께서 과거에 성경 저자들에게 역사하셨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성경을 계시하실 수 있도록 무대를 제공하는 인간적인 작업이 곧 역사적 연구다. 비평적 신앙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더 잘 알기 위해 창조세계의 다양한 차원들을 탐구할 수 있도록 지성을 주셨음을 인정하는 신앙이다.

본서의 논증은 아홉 장으로 전개된다. 제1장에서는 현대 복음주의 성서학계의 역사적·지성적 맥락에 관한 일반적인 개론을 제공한다. 제2장 “아담과 타락”은 비평학계가 통상적으로 창세기 2-3장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문제를 다루면서, 만일 비평학자들의 주장이 옳다면 죄에 관한 교리(인죄론)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를 질문하면서, 결론적으로 아담의 역사성에 관한 논쟁의 결말이 어떠하든지 간에 기독교 교리의 핵심은 여전히 확고한 발판 위에 서 있을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제3장 “출애굽: 사실인가 허구인가, 아니면 둘 다인가?”는 출애굽 사건에 대한 최소주의자와 최대주의자의 접근법 사이에서 양극화된 논쟁을 다룬다. 고대 역사기술과 문화적 기억에 대한 최근의 학문적 진전을 발판으로 성경의 권위가 출애굽에 대한 최대주의적 확증에 의해서만 존중될 수 있다는 개념을 타파한다. 제4장 “바빌로니아 포로 이전에는 언약이 없었다? 신명기 토라와 이스라엘의 언약신학”은 신명기 언약이 바빌로니아 포로 이전에 만들어졌는지 아니면 포로 이후에 발전했는지에 관한 학계의 견해 차이를 소개한 후에, 만일 신명기가 모세의 저작이 아니거나 혹은 그것이 이스라엘의 위대한 예언자와 역사적으로 단지 제한적인 관계만을 가질 경우 그 책이 가지는 의의가 무엇인지 질문한다. 제5장 “예언 문제”는 성경 예언들의 진리주장들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으로 여겨졌던 예언의 특징들을 탐구한다. 역사비평가들은 다음과 같은 점들을 지적해왔다. 1) 예언자들이 예보한 어떤 사건들은 사실상 성취되지 않았다. 2) 일부 예언은 “사건이 발생한 이후에” 기록되었던 것처럼 보인다. 3) 때로 예언의 성취는 반복적으로 재공시되었고 미래로 연기되었다. 일부 독자들은 이에 근거하여 성경 계시들의 진실성에 대한 기독교의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성경의 예언들이 “거짓”이라고 결론지었다. 본 장은 이러한 부정적인 판단이 실상은 예언 장르가 신적 계시를 소통하는 방식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제6장 “위작과 정경”은 성경의 특정 책들을 그 책의 저자로 알려진 사람들이 저술하지 않았다는 역사비평적 합의를 다룬다. 이러한 합의는 대체적으로 성경의 권위나 계시에 대한 주장을 말살시키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본 장은 그것이 진리와 동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제7장 “역사적 예수”는 우리를 기독교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논의로 인도한다. 예수 연구에서 가장 논쟁적이고 신학적으로 신랄한 주제 가운데 네 가지(예수의 자기제시, 기적, 동정녀 탄생, 부활)를 간략하게 묘사하면서, 본 장은 예수 학자들 사이에 대두되는 다양한 견해들을 요약한 후에 그와 같은 비평적인 예수상이 기독론, 구원론, 종말론 교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설명한다. 제8장 “사도행전의 바울과 서신서의 바울”은 사도행전에 묘사된 바울이 우리가 그의 서신들을 통하여 만나게 되는 바울과 조화를 이루는가라는 특히 난해한 주제에 천착한다. 마지막 장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은 앞서 제시된 여덟 장의 연구를 기반으로 복음주의 기독교 학자들에게 교회를 수호하고 풍요롭게 하기 위해 역사비평에 깊이, 그리고 생산적인 방식으로 참여하라고 요청한다.

본서는 성경에 대한 비평적 연구가 반드시 전통과의 관계를 상실한 채 역사비평적 공허 속에서 신학적 허무주의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며, 복음주의 비평가들이 공적인 증명의 영역 내에서 역사적 판단에 공정을 기하면서도 그들의 신학적 유산 대부분을 확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개인적 신앙과 성경을 역사적인 문서로서 비평적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학문적 열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복음주의자들에게 건전한 통합의 길을 보여주는 탁월한 지침이다.
 

추천평

본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복음주의를 견지하면서, 동시에 성서 해석에 있어 어떻게 역사비평을 활용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성경을 올바로 이해하려는 신학생, 목회자에게 필독서로 추천한다.
- 김동수 (평택대학교 신학과 교수)
성서학에서 문자주의의 성경 무오사상과 역사비평은 이 책이 전제하는 미국의 배경에서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언제나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로 여겨졌다. 그리하여 성경을 읽으려는 평신도들은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복음주의 관점에서 이른바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을 지향하며 날카롭게 대립해온 두 진영의 통합을 시도하는 이 책은 그런 성경 독자들에게 좋은 지침을 주리라 확신한다.
- 김정훈 (부산장신대학교 구약학 교수)
학문적 열정과 업적을 일궈내는 일군의 젊은 복음주의 성서학자들이 역사비평의 풍성한 전통과 공헌을 긍정적으로 변호하고 평가하면서 같은 진영의 보수적 동료 학자들에게 비평적인 동시에 복음주의적이 되기를 요청한다. 차세대 성서학자들에게 “신실한 비평”과 “비평적 신앙”을 함께 배양하라는 강력한 촉구의 나팔 소리다. 특별히 한국 보수진영의 학생들과 목회자들, 학자들에게 큰 자극이 되리라 믿는다. 천천히 곱씹어 생각하며 읽어야 할 독서과제다.
- 류호준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은퇴))
본서는 복음주의자들이 역사비평을 불편한 수용이 아니라 적극적 구애의 대상으로 여겨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제시한다. 조직신학의 틀에서 주로 이루어지던 해석학 담론 대신 구약학과 신약학의 주요 쟁점들을 정면으로 다룬 점, 아담의 역사성에서 시작해 예언의 신뢰성, 위작과 정경 문제, 역사적 예수와 바울신학에 이르는 광범위한 논제에도 불구하고 문제의식과 탐구 방식에서 일정한 통일성을 확보한 점, 우상화와 악마화의 양 극단을 피해 역사비평의 신학적 기여 가능성을 천착한 점이 돋보인다.
- 유선명 (백석대학교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역사비평이 연구자의 든든한 파트너라고 전제하는 본서의 신선한 접근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한국교회가 거듭 숙고할 방법론적 틀이다. 역사비평의 이해와 적용을 원한다면 본서와의 진지한 대화가 필요하다.
- 윤철원 (서울신학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복음주의적이면서 역사비평적인 성경 해석에 관심 있는 신학생, 목회자, 학자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유익한 책이다.
- 이상일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신약학 교수)
이 책은 특히 한국 신학계와 교회를 짓누르고 있는 고질병인 “역사비평 포비아”를 치료해주는 반가운 백신이다. 이제는 세계의 복음주의적 신학 풍토가 역사비평적 질문들을 소화할 만큼 무르익었음을 알려주는 적절한 신호탄이다. 개인적으로도 오매불망 고대하고 기다리던 책이다. 복음주의자들이 역사비평을 제대로 활용하여 반지성주의의 늪에서 구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차준희 (한세대학교 구약학 교수, 한국구약학연구소 소장, 한국구약학회장 역임)
저자들은 모두 복음주의 전통의 자녀들로서 학문(역사)의 남편과 교회(신학)의 아내가 냉혹하게 이혼 내지 별거하지 않아도 될 다음세대의 복음주의 가정을 꿈꾸고 있다. 복음주의 성서 해석의 강물이 좁지도 않고 안일하지도 않은 다양한 물줄기를 만나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의 바다로 나아가야 할 학문과 신앙의 지향성을 잘 꼬집어준다. 젊은 목회자와 오늘의 신학생이 놓치지 말아야 할 또 하나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 허주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 신약학 교수, 한국복음주의신약학회 회장)
신중한 주장을 담은 본서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을 역사비평적 성경 해석의 세계로 초대한다. 집필자들은 성경 비평의 방법론과 관련된 질문들에 복음주의 관점에서 참여할 수 있는 신선한 모델들을 보여주고자 했으며, 그들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 마크 A. 놀 (노트르담 대학교)
헤이스와 안스베리는 복음주의권 신학생들에게 좀처럼 만나기 힘든 선물을 제공했다. 성경을 배우려는 학생들은 너무나도 자주 학문적 열정과 개인적 신앙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맞닥뜨려야만 했지만, 다음 세대에 동일한 주제를 처음 접하는 학생들에게는 이 책이 놀라운 선물이 될 것이다.
- 개리 M. 버지 (휘튼 칼리지)
학문적 열정과 목회적 관심을 동시에 가진 저자들은 복음주의자들을 향해 역사비평의 진정한 통찰들에 동참하고 그 통찰들을 자신의 신앙에 통합시키도록 초대한다. 기고자들은 신앙과 역사비평 모두에 대해 각자가 받아야 할 존중을 표하는 용기를 보여준다.
- 피터 엔즈 (이스턴 대학교)
본서의 편집자들은 용기를 내어 복음주의 학자들이 성서학계의 뜨거운 감자를 어떻게 건전한 방식으로 다룰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업을 감행했다. 복음주의 학계는 신앙과 비평의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다룬 논의를 오래도록 기다려왔다.
- 마이클 버드 (오스트레일리아 리들리멜버른 칼리지)
한참 전에 진행되었어야 할 프로젝트다. 저자들은 논쟁의 중심에 놓인 견해들을 정직하고 진지하게, 최대한의 존중을 표하면서 공정하게 다루고 있다.
- 대니얼 I. 블록 (휘튼 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