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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괴로움의 소멸과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길,
누구나 접근 가능한 실질적인 마음공부에서 답을 찾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핵심사상이 녹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서(禪書), 『수심결(修心訣)』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법상 스님만의 자상하고 파격적인 해설로 만나다!
『수심결(修心訣)』을 풀이한 이 책은 알쏭달쏭한 선문답이나 알 듯 모를 듯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목탁소리 법상 스님이 쉽지만 깊이 있고, 친절하지만 파격적인 설명으로 어려운 선불교를 걷어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처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괴로움의 문제를 직접 풀 수 있도록 선의 핵심적인 실천을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은 뛰어난 수행자를 위한 전문서가 아니다. 학교, 직장, 가정 등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마음공부 입문서이자 행복 지침서다.
법상 스님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괴로움과 행복의 반복을 끊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가서 ‘나’라는 중심을 지키면 괴로움과 행복의 롤러코스터 안에서도 편안해진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마음공부에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수심결(修心訣)』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핵심 사상이 담긴 『수심결(修心訣)』은 마음을 닦는 방법과 진정한 ‘나’ 그리고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특히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진정한 ‘나’와 깨달음에 관한 최고의 매뉴얼이다. 법상 스님은 이 『수심결(修心訣)』을 알기 쉽게 풀이해 누구나 마음공부에 입문하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누구나 접근 가능한 실질적인 마음공부에서 답을 찾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핵심사상이 녹아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선서(禪書), 『수심결(修心訣)』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법상 스님만의 자상하고 파격적인 해설로 만나다!
『수심결(修心訣)』을 풀이한 이 책은 알쏭달쏭한 선문답이나 알 듯 모를 듯한 옛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목탁소리 법상 스님이 쉽지만 깊이 있고, 친절하지만 파격적인 설명으로 어려운 선불교를 걷어냈다. 특히 자기 자신이 처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괴로움의 문제를 직접 풀 수 있도록 선의 핵심적인 실천을 담았다. 그래서 이 책은 뛰어난 수행자를 위한 전문서가 아니다. 학교, 직장, 가정 등 일상을 살아가는 모두를 위한 마음공부 입문서이자 행복 지침서다.
법상 스님은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내리는 괴로움과 행복의 반복을 끊는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한 발 더 나가서 ‘나’라는 중심을 지키면 괴로움과 행복의 롤러코스터 안에서도 편안해진다고 강조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질적인 마음공부에서 ‘완전한 행복’에 이르는 길을 『수심결(修心訣)』에서 발견했기 때문이다.
보조국사 지눌 스님의 핵심 사상이 담긴 『수심결(修心訣)』은 마음을 닦는 방법과 진정한 ‘나’ 그리고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다. 특히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진정한 ‘나’와 깨달음에 관한 최고의 매뉴얼이다. 법상 스님은 이 『수심결(修心訣)』을 알기 쉽게 풀이해 누구나 마음공부에 입문하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목차
서문
오늘날 우리에게,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1.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2. 참마음이 온 세상의 바탕
3. 자기 마음이 참 부처
4. 부처를 저절로 얻는다
5. 마음을 떠난 부처는 없다
6. 밖에서 구하지 말라
7. 나는 왜 부처를 보지 못할까?
8. 불성은 작용하는 데 있다
9. 그대가 바로 부처다
10. 어떻게 보임하는가?
11. 깨달음과 신통력
12. 돈오와 점수
13. 신통은 괴이한 말단의 일일 뿐
14. 돈오와 점수를 다시 설명함
15.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견성이다
16. 할 일을 다 마친 대장부
17. 묻는 것이 그것이다
18. 들을 때 무엇이 듣는가?
19. 공적영지한 마음
20. 보임이 필요한 이유
21. 깨달은 뒤의 목우행(牧牛行)
22. 망상을 없애려 애쓰지 말라
23. 정혜(定慧)의 체(體)와 용(用)
24. 점문, 열등한 근기의 수행
25. 깨달은 자의 정혜
26. 점문, 열등한 근기의 정혜
27. 자성문의 정혜와 수상문의 정혜 관련 질문
28. 자성문과 수상문의 정혜, 질문에 답하다
29. 깨닫기 전의 수행은 참된 수행이 아니다
30. 깨달은 입장에서는 방편을 쓰더라도 오염되지 않는다
31. 근본에 계합하는 위없는 깨달음
32. 법을 만난 기쁨
33. 최상승 법문 만났을 때 깨달으라
34. 희유한 공부, 용맹스럽게 정진하라
오늘날 우리에게,
보조지눌 스님의 『수심결』이
필요한 이유
1.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
2. 참마음이 온 세상의 바탕
3. 자기 마음이 참 부처
4. 부처를 저절로 얻는다
5. 마음을 떠난 부처는 없다
6. 밖에서 구하지 말라
7. 나는 왜 부처를 보지 못할까?
8. 불성은 작용하는 데 있다
9. 그대가 바로 부처다
10. 어떻게 보임하는가?
11. 깨달음과 신통력
12. 돈오와 점수
13. 신통은 괴이한 말단의 일일 뿐
14. 돈오와 점수를 다시 설명함
15. 알지 못하는 줄 알면 견성이다
16. 할 일을 다 마친 대장부
17. 묻는 것이 그것이다
18. 들을 때 무엇이 듣는가?
19. 공적영지한 마음
20. 보임이 필요한 이유
21. 깨달은 뒤의 목우행(牧牛行)
22. 망상을 없애려 애쓰지 말라
23. 정혜(定慧)의 체(體)와 용(用)
24. 점문, 열등한 근기의 수행
25. 깨달은 자의 정혜
26. 점문, 열등한 근기의 정혜
27. 자성문의 정혜와 수상문의 정혜 관련 질문
28. 자성문과 수상문의 정혜, 질문에 답하다
29. 깨닫기 전의 수행은 참된 수행이 아니다
30. 깨달은 입장에서는 방편을 쓰더라도 오염되지 않는다
31. 근본에 계합하는 위없는 깨달음
32. 법을 만난 기쁨
33. 최상승 법문 만났을 때 깨달으라
34. 희유한 공부, 용맹스럽게 정진하라
책 속으로
이것은 불교를 믿는 사람들만의 일일까? 이것이 종교일까? 이것은 종교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어떤 종교를 믿느냐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이것은 ‘나’의 문제이고, ‘나의 괴로움’을 해결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관련된 일이다. 부처를 구한다는 것은 곧 나의 괴로움을 스스로 해결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길일 뿐이다.
--- pp.37~38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전해지던, 혹은 방편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깨달음의 시크릿’이 이제 와서 광범위하게 깨어나고 있다. ‘깨달음의 시크릿’이란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힐링, 웰빙, 요가, 명상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성불(成佛), 당신도 바로 여기에서 부처가 될 수 있다!
--- p.40
파도가 날씨에 따라 거세게 치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지만, 무수히 많은 파도의 생멸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언제나 그대로인 이 바탕의 성품을 늘 한결같아 변치 않는다고 하여 여여(如如), 혹은 진여(眞如)라고 부른다.
--- p.67
본마음은 모든 것의 배경에서 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땅이 되어 주기에 마음 땅, 즉 심지(心地)라고 한다. 땅 위에서 일체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땅은 그 모든 것의 바탕으로 늘 여여하게 있는 것처럼 본마음은 그렇게 있다. 이 본래마음, 내가 나온 자리, 돌아갈 자리, 이 본바탕을 설하는 법문을 심지법문(心地法門)이라고 한다. 『수심결』이 바로 심지법문이다.
--- pp.69~70
사람들은 ‘깨달음’이 어떤 로또 같은 것인 줄 착각한다. 깨닫고 나면 삶이 완전히 바뀌고, 괴로움이 한 방에 끝나 버리고, 남들과는 다른, 예전과는 다른 초월적인 힘도 생기는 등 눈부신 인생 역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깨닫는다고 해서 한 방에 모든 문제가 다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깨달음 이후에 진정으로 수행이 시작된다. 수행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먼저 깨닫고 나서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pp.92~93
절망스럽고 좌절할 때 우리는 ‘나는 절망스러워’라고 말하며 나와 절망을 동일시하곤 하지만, 사실 절망스러울 때 절망스러움을 아는 나가 있었고, 그 절망과 좌절하는 마음이 떠나간 뒤에도 여전히 그 절망과 좌절이 떠나갔음을 아는 ‘나’는 여기 그대로 있다. 그 ‘나’는 떠나가지 않았다. 이 오고 가지 않는 ‘나’가 진짜이지, 이 ‘나’ 위에 오고 가는 감정이나, 느낌, 생각, 몸 등이 ‘나’일 수 있을까?
--- p.156
깨달음은 이런 것이 아니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지혜가 깨달음일 뿐, 이런 신통 변화하는 능력은 본질이 아니다.
--- p.181
마음공부도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수학이나 영어, 체육이나 음악이 아니라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공부다.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공부라는 보물찾기는 내 바깥에 따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보물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 p.184
이 몸을 가지고 도술을 부리고 신통을 부리고 다닌들, 병에 걸리고 늙고 죽어가는 괴로움에 빠져 있다면 어찌 그것을 참다운 신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견성, 돈오의 순간 참다운 공부인은 신통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노병사를 비롯한 일체의 모든 괴로움에서 문득 벗어난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더는 괴로움이 아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통이 아닌가?
--- p.207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관성에 의해 계속 달린다. 속도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동차도 이러한데,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온 중생의 분별 습관은 어떠할까. 이 분별의 업습을 조복 받는 데는 더욱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 물론 브레이크를 잡는다고 당장 멈춰 서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돈오하여 깨달으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의 습기가 깊다.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념은 여전히 침입한다”라고 하신 말과 같다.
--- p.277
생각과 분별 망상은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분별할 줄 모르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생각과 분별을 할 줄 알아야 우리 집이 몇 동 몇 호인 줄도 알고, 우리 집까지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고, 회사가 어디인지도 알고, 직장 동료도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분별하지 못한다면 삶을 살 수조차 없다. 그러니 어찌 분별과 생각을 없애려고 하는가? 그것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없애서도 안 되는 것이다. 생각과 분별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억눌러 놓을 게 아니라,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실체가 아님을, 선악·대소·장단·옳고 그름 등으로 분별하는 그 분별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 pp.288~289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여섯 갈래 길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진리를 닦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업을 짓는 것도 인간계에서만 가능하며, 다른 다섯 세계에서는 업을 받기만 한다고 설명한다. 이 말을 곱씹어 보라. 오직 인간계에서만, 오직 인간만이, 오직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만이 업을 짓고, 업장에서 벗어나며, 진리를 닦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pp.37~38
오랫동안 비밀스럽게 전해지던, 혹은 방편에 가려져 빛을 보지 못했던 ‘깨달음의 시크릿’이 이제 와서 광범위하게 깨어나고 있다. ‘깨달음의 시크릿’이란 그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힐링, 웰빙, 요가, 명상 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 그대로 깨달아 부처가 되는 것을 말한다. 성불(成佛), 당신도 바로 여기에서 부처가 될 수 있다!
--- p.40
파도가 날씨에 따라 거세게 치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지만, 무수히 많은 파도의 생멸과 변화에도 불구하고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언제나 그대로인 이 바탕의 성품을 늘 한결같아 변치 않는다고 하여 여여(如如), 혹은 진여(眞如)라고 부른다.
--- p.67
본마음은 모든 것의 배경에서 그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지도록 땅이 되어 주기에 마음 땅, 즉 심지(心地)라고 한다. 땅 위에서 일체 모든 존재가 생겨나고 사라지지만, 땅은 그 모든 것의 바탕으로 늘 여여하게 있는 것처럼 본마음은 그렇게 있다. 이 본래마음, 내가 나온 자리, 돌아갈 자리, 이 본바탕을 설하는 법문을 심지법문(心地法門)이라고 한다. 『수심결』이 바로 심지법문이다.
--- pp.69~70
사람들은 ‘깨달음’이 어떤 로또 같은 것인 줄 착각한다. 깨닫고 나면 삶이 완전히 바뀌고, 괴로움이 한 방에 끝나 버리고, 남들과는 다른, 예전과는 다른 초월적인 힘도 생기는 등 눈부신 인생 역전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기대한다. 그러나 우리의 기대와는 달리 깨닫는다고 해서 한 방에 모든 문제가 다 끝나 버리는 것은 아니다. 사실은 깨달음 이후에 진정으로 수행이 시작된다. 수행해서 깨닫는 것이 아니라, 먼저 깨닫고 나서 수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 pp.92~93
절망스럽고 좌절할 때 우리는 ‘나는 절망스러워’라고 말하며 나와 절망을 동일시하곤 하지만, 사실 절망스러울 때 절망스러움을 아는 나가 있었고, 그 절망과 좌절하는 마음이 떠나간 뒤에도 여전히 그 절망과 좌절이 떠나갔음을 아는 ‘나’는 여기 그대로 있다. 그 ‘나’는 떠나가지 않았다. 이 오고 가지 않는 ‘나’가 진짜이지, 이 ‘나’ 위에 오고 가는 감정이나, 느낌, 생각, 몸 등이 ‘나’일 수 있을까?
--- p.156
깨달음은 이런 것이 아니다.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에 관한 지혜가 깨달음일 뿐, 이런 신통 변화하는 능력은 본질이 아니다.
--- p.181
마음공부도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수학이나 영어, 체육이나 음악이 아니라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공부다.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공부라는 보물찾기는 내 바깥에 따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보물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 p.184
이 몸을 가지고 도술을 부리고 신통을 부리고 다닌들, 병에 걸리고 늙고 죽어가는 괴로움에 빠져 있다면 어찌 그것을 참다운 신통이라 할 수 있겠는가? 견성, 돈오의 순간 참다운 공부인은 신통력을 얻는 것이 아니라 노병사를 비롯한 일체의 모든 괴로움에서 문득 벗어난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일이 더는 괴로움이 아니게 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신통이 아닌가?
--- p.207
시속 1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던 자동차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관성에 의해 계속 달린다. 속도가 줄어들긴 하겠지만, 완전히 멈출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자동차도 이러한데, 그보다 더 오래 지속되어 온 중생의 분별 습관은 어떠할까. 이 분별의 업습을 조복 받는 데는 더욱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 물론 브레이크를 잡는다고 당장 멈춰 서는 것은 아니다. 완전히 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이 바로 “돈오하여 깨달으면 부처와 같으나, 여러 생의 습기가 깊다. 바람은 그쳤으나 물결은 아직 출렁이고, 이치는 나타났으나 망념은 여전히 침입한다”라고 하신 말과 같다.
--- p.277
생각과 분별 망상은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다. 분별할 줄 모르면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다. 생각과 분별을 할 줄 알아야 우리 집이 몇 동 몇 호인 줄도 알고, 우리 집까지 가려면 몇 번 버스를 타야 하는지 알고, 회사가 어디인지도 알고, 직장 동료도 알아볼 수 있는 것 아닌가? 분별하지 못한다면 삶을 살 수조차 없다. 그러니 어찌 분별과 생각을 없애려고 하는가? 그것은 없어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없애서도 안 되는 것이다. 생각과 분별은 올라오지 못하도록 억눌러 놓을 게 아니라, 그 실체가 무엇인지 자각하기만 하면 된다. 그것이 실체가 아님을, 선악·대소·장단·옳고 그름 등으로 분별하는 그 분별의 성품이 공하다는 것을 깨닫기만 하면 된다.
--- pp.288~289
불교에서는 육도윤회의 여섯 갈래 길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진리를 닦아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한다. 업을 짓는 것도 인간계에서만 가능하며, 다른 다섯 세계에서는 업을 받기만 한다고 설명한다. 이 말을 곱씹어 보라. 오직 인간계에서만, 오직 인간만이, 오직 지금 여기에 있는 당신만이 업을 짓고, 업장에서 벗어나며, 진리를 닦아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바로 지금 여기에 있는 나 자신, 당신만 할 수 있는 일이다.
--- pp.362~363
출판사 리뷰
깨달음과 그 후의 길에 관한 명쾌한 설명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 『수심결(修心訣)』
‘친절한 법문’의 대명사 목탁소리 법상 스님
알쏭달쏭 선문답 걷어낸 단 한 권의 『수심결』 풀이
일상의 괴로움에 속 시원한 답을 찾다!
붓다를 몰라도 좋다. 불교를 몰라도 상관없다. 종교가 무엇이든, 아니 종교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돈, 명예, 사랑 등 ‘나’의 행복을 충족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자기계발서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상 물정 따라가는 행복의 충족 요건보다 가치 있는 행복의 비결로 ‘마음’을 발견하는 보석 같은 책이다. 돈, 명예, 사랑은 달콤하다. 이것을 쟁취하면 행복하다는 유혹도 달콤하다. 달콤한 만큼 ‘마음’도 썩는다. 행복을 가지려는 과정 중에 겪는 온갖 괴로움은 달콤함으로 달랠 뿐이다. 100년도 안 돼서 반드시 사라질 것들이라는 사실도 뒷맛이 쓰다. 사라지지 않는 진짜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완전한 행복에 다가가는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이 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이 버겁다면, 괴로움의 실체가 궁금하고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면, 그리고 진짜 ‘나’와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은 깨달음이라는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깨달음 같은 것은 저자도 모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몇 년 동안 눕지도 않고 좌선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깨달음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너무 어렵다. 그러나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 그리고 ‘나’와 ‘마음’을 발견하는 지혜는 어렵지 않다. 『수심결』은 첫 문장부터 괴로움을 벗어날 해법을 제시한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나오려면 ‘부처(=마음)’를 구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관건은 방법이다. 저자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저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도록 안내하는 선의 방편에 마음을 열어 보자.”
‘가장 친절한 법사’ 법상 스님의 자상한 『수심결』 풀이
왜 『수심결』인가. 『수심결(修心訣)』은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마음을 닦는 방법과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쓴 저술이다. 깨달음과 그 후의 길에 대한 명쾌한 지침을 담고 있는 선(禪)의 입문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으로 밝히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검증된 마음 비결 『수심결』을 관통하는 여러 질문과 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이 부처이고 무엇이 깨달음일까? 내가 가진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수심결』에서 지눌 스님이 내놓은 답변을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목탁소리의 법상 스님이 쉽게 풀이했다.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피로 사회’ 버금가는 ‘괴로움의 사회’에 사는 우리의 시대는 빠르게 열리고 있다. 목사, 신부, 스님, 철학자, 양자물리학자, 인문학자 누구든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가르침이면 될 뿐이다. 소속이나 종교 등을 이유로 벽을 치던 시대는 저물었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탈출하는 일은 모두에게 시급한 일이다. 일시적인 힐링이나, 다른 달콤한 것으로 대체하는 임시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괴로움의 소멸은 과연 가능할까?
『수심결』을 풀이한 법상 스님은 “가능하다”라고 확신한다. 괴로움의 끊임없는 반복, 즉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부처를 구하는 게 제일이다. 불교라는 종교를 믿는다거나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님은 “단순하게, 부처는 모든 괴로움을 여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는 일 ‘깨달음의 시크릿’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독려한다. 스님은 이 책에서 『수심결』의 질문과 답을 34개로 쪼개 친절하게 설명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에서부터 진짜 ‘마음’과 불성의 정체, ‘마음’이 부처인 이유, 깨달음과 신통력의 관계, 부처를 발견하지 못하는 까닭, ‘마음’을 찾은 뒤의 태도 등 우리의 의문을 차근차근 풀어준다.
‘깨달음의 시크릿’? 소풍 때 보물찾기만큼 쉽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키가 클까 작을까?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한 사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만 크고 작고 잘났고 못났고 분별할 수 있다. 이렇게 둘로 나눠 놓고 비교해서 대상을 파악해서 안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마음’이 아니다. 중생심이고 분별심 혹은 분별망상이다. 좋아하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싫어하는 것은 거부하고 밀어내려는 마음이 진짜 ‘마음’을 찾기 어렵게 한다고 법상 스님은 강조한다. 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괴롭고, 싫어하는 게 자꾸 나타나도 괴롭다. 이 분별하는 마음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스님은 이 가짜 ‘마음’이 파도와 같다고 했다. 날씨에 따라 거세게 일거나 잔잔해지는 파도는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눈치챘는가? 바다가 진짜 ‘마음’이자 ‘나’라고 스님은 말한다.
이를 깨닫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법상 스님은 말한다.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만이, 수행을 극도로 돌파한 이들만 깨닫는 게 아니라고 한다. 소풍에서 보물찾기하듯 즐겁고 쉬운 일이라는 것.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는 수학과 영어에 자질이 있어야 하고, 소풍 때 장기 자랑이나 노래 대회도 특별한 장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물찾기는 다르다. “마음공부도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수학이나 영어, 체육이나 음악이 아니라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공부다.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공부라는 보물찾기는 내 바깥에 따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보물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법상 스님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깊이 있고 강력하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게 없는데도 법문만 들어도 저절로 괴로움은 쉬고, 삶은 변화한다. 우리는 그 어렵다는 사람 몸을 받아 지금을 살아간다. 그 어렵다는 일도 해낸 우리가 가슴으로 온몸으로 자기 것으로 가져와 읽다 보면, 문득 자기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 『수심결(修心訣)』
‘친절한 법문’의 대명사 목탁소리 법상 스님
알쏭달쏭 선문답 걷어낸 단 한 권의 『수심결』 풀이
일상의 괴로움에 속 시원한 답을 찾다!
붓다를 몰라도 좋다. 불교를 몰라도 상관없다. 종교가 무엇이든, 아니 종교가 없어도 괜찮다. 다만 돈, 명예, 사랑 등 ‘나’의 행복을 충족하는 일이 중요하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자기계발서냐고?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세상 물정 따라가는 행복의 충족 요건보다 가치 있는 행복의 비결로 ‘마음’을 발견하는 보석 같은 책이다. 돈, 명예, 사랑은 달콤하다. 이것을 쟁취하면 행복하다는 유혹도 달콤하다. 달콤한 만큼 ‘마음’도 썩는다. 행복을 가지려는 과정 중에 겪는 온갖 괴로움은 달콤함으로 달랠 뿐이다. 100년도 안 돼서 반드시 사라질 것들이라는 사실도 뒷맛이 쓰다. 사라지지 않는 진짜 ‘나’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 완전한 행복에 다가가는 가장 오래된 마음 비결이 있다. 인생의 모든 괴로움이 버겁다면, 괴로움의 실체가 궁금하고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다면, 그리고 진짜 ‘나’와 ‘마음’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치면 된다.
이 책은 깨달음이라는 대단한 무언가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깨달음 같은 것은 저자도 모른다. 한 가지는 확실하다. 몇 년 동안 눕지도 않고 좌선해야만 얻을 수 있다는 그런 깨달음은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겐 너무 어렵다. 그러나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 그리고 ‘나’와 ‘마음’을 발견하는 지혜는 어렵지 않다. 『수심결』은 첫 문장부터 괴로움을 벗어날 해법을 제시한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나오려면 ‘부처(=마음)’를 구하는 것이 제일이라고. 관건은 방법이다. 저자는 한마디 덧붙인다. “그저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고, 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도록 안내하는 선의 방편에 마음을 열어 보자.”
‘가장 친절한 법사’ 법상 스님의 자상한 『수심결』 풀이
왜 『수심결』인가. 『수심결(修心訣)』은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 스님이 마음을 닦는 방법과 마음이 무엇인지 밝히고자 쓴 저술이다. 깨달음과 그 후의 길에 대한 명쾌한 지침을 담고 있는 선(禪)의 입문서로 평가받는 이 책은 마음을 닦아 부처를 이루는 방법론을 9문 9답으로 밝히고 있다. 가장 오랜 시간 검증된 마음 비결 『수심결』을 관통하는 여러 질문과 답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엇이 부처이고 무엇이 깨달음일까? 내가 가진 이 마음이 부처라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 『수심결』에서 지눌 스님이 내놓은 답변을 ‘우리 시대의 가장 친절한 법사(法師)’로 꼽히는 목탁소리의 법상 스님이 쉽게 풀이했다.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피로 사회’ 버금가는 ‘괴로움의 사회’에 사는 우리의 시대는 빠르게 열리고 있다. 목사, 신부, 스님, 철학자, 양자물리학자, 인문학자 누구든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 줄 가르침이면 될 뿐이다. 소속이나 종교 등을 이유로 벽을 치던 시대는 저물었다. ‘불타는 집(=괴로움)’에서 탈출하는 일은 모두에게 시급한 일이다. 일시적인 힐링이나, 다른 달콤한 것으로 대체하는 임시 처방이 아닌 근본적인 괴로움의 소멸은 과연 가능할까?
『수심결』을 풀이한 법상 스님은 “가능하다”라고 확신한다. 괴로움의 끊임없는 반복, 즉 윤회에서 벗어나려면 부처를 구하는 게 제일이다. 불교라는 종교를 믿는다거나 부처가 되어야 한다는 거창한 이야기는 아니다. 스님은 “단순하게, 부처는 모든 괴로움을 여읜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러면서 자신이 부처임을 깨닫는 일 ‘깨달음의 시크릿’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고 독려한다. 스님은 이 책에서 『수심결』의 질문과 답을 34개로 쪼개 친절하게 설명한다.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길에서부터 진짜 ‘마음’과 불성의 정체, ‘마음’이 부처인 이유, 깨달음과 신통력의 관계, 부처를 발견하지 못하는 까닭, ‘마음’을 찾은 뒤의 태도 등 우리의 의문을 차근차근 풀어준다.
‘깨달음의 시크릿’? 소풍 때 보물찾기만큼 쉽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키가 클까 작을까? 잘생겼을까 못생겼을까? 남자일까 여자일까? 한 사람만으로는 알 수 없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야만 크고 작고 잘났고 못났고 분별할 수 있다. 이렇게 둘로 나눠 놓고 비교해서 대상을 파악해서 안다고 여기는 것을 우리는 마음이라고 한다. 하지만 진짜 ‘마음’이 아니다. 중생심이고 분별심 혹은 분별망상이다. 좋아하는 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고, 싫어하는 것은 거부하고 밀어내려는 마음이 진짜 ‘마음’을 찾기 어렵게 한다고 법상 스님은 강조한다. 좋아하는 것을 갖지 못하면 괴롭고, 싫어하는 게 자꾸 나타나도 괴롭다. 이 분별하는 마음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스님은 이 가짜 ‘마음’이 파도와 같다고 했다. 날씨에 따라 거세게 일거나 잔잔해지는 파도는 일어났다 사라지지만 바다는 언제나 그대로다. 눈치챘는가? 바다가 진짜 ‘마음’이자 ‘나’라고 스님은 말한다.
이를 깨닫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라고 법상 스님은 말한다. 머리가 아주 비상한 사람만이, 수행을 극도로 돌파한 이들만 깨닫는 게 아니라고 한다. 소풍에서 보물찾기하듯 즐겁고 쉬운 일이라는 것. 수학이나 영어 경시대회는 수학과 영어에 자질이 있어야 하고, 소풍 때 장기 자랑이나 노래 대회도 특별한 장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보물찾기는 다르다. “마음공부도 보물찾기와 비슷하다. 수학이나 영어, 체육이나 음악이 아니라서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공부다. 누구나 이미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음공부라는 보물찾기는 내 바깥에 따로 숨겨진 보물이 있는 게 아니다. 내가 바로 보물임을 찾는 것이다. 내가 진짜 보물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깨달을 수 있다.”
법상 스님의 설법은 자상하지만 파격적이고, 쉽지만 깊이 있고 강력하다. 무엇을 하라고 하는 게 없는데도 법문만 들어도 저절로 괴로움은 쉬고, 삶은 변화한다. 우리는 그 어렵다는 사람 몸을 받아 지금을 살아간다. 그 어렵다는 일도 해낸 우리가 가슴으로 온몸으로 자기 것으로 가져와 읽다 보면, 문득 자기의 진짜 모습을 확인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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