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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9회 파주북어워드 기획상 수장작(2020년)
이 책의 원서는 한국에서 번역 출판되기 전에 이미 2020년의 제9회 파주 북어워드에서 기획상을 수상하였다. 그 수상 이유를 보면 다음과 같다.
‘시리즈 중국의 역사(シリ?ズ中?の?史)’(전 5권), 이와나미신서(岩波新書) 시리즈의 집필자인 와타나베 신이치로(渡?信一?), 마루하시 미쓰히로(丸橋充拓), 후루마쓰 다카시(古松崇志), 단조 히로시(檀上?) 그리고 오카모토 다카시(岡本隆司)는 모두 교토 대학 출신이다. 교토 대학의 동양 사학은 오랜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이번 시리즈는 그 전통에 더해서, 새로운 시각을 바탕으로 최신의 학문성과도 충분히 포함하면서, 실로 재미있게 완성한 시리즈다. 이 작은 시리즈는 포괄적이고 설명적인 통사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변천을 좇으면서도 대담하게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로부터 ‘중국’이라는 단위가 어떻게 성립했는지를 살펴가면서 중국의 다원적인 역동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중국사 연구의 새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전례 없는 도전적인 기획이다.
목차
지금 중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기 위하여: ‘새 중국사’ 시리즈의 목표·
머리말
제1장 중원의 형성: 하, 은, 주 3대
1. 농경 사회의 형성: 신석기 시대
2. 하, 은, 주 3대
3. 은, 주 시대의 정치 통합: 공헌제에서 봉건제로
제2장 중국의 형성: 춘추·전국
1. 춘추·전국의 ‘영웅 시대’
2. 소농민 사회의 형성: 백생(百生)에서 백성(百姓)으로
3. 봉건제에서 현제로
4. 상앙의 변법: 기원전 4세기 중엽의 체제 개혁
제3장 제국의 형성: 진한 제국
1. 군현제에서 군국제로
2. 무제의 시대: 제국의 형성
제4장 중국의 고전 국제: 왕망의 세기
1. 선제의 중흥
2. 왕망의 세기
3. 왕망을 낳은 사회
4. 후한의 고전 국제
제5장 분열과 재통합: 위진남북조
1. 한위 혁명
2. 화북 지방 사회의 변모
3. 서진: 중원 통일 왕조의 재건
4. 5호 16국과 천하의 분열
5. 선비 탁발부의 화북 통합
제6장 고전국제의 재건: 수당 제국
1. 수문제의 천하 재통일
2. 천가한의 대당제국
3. 『대당육전』의 당대 국제
맺음말
저자 소개
저 : 와타나베 신이치로 (渡?信一郞)
1949년 출생 교토대학(京都大學) 대학원 문학연구과 박사과정 수료 교토부립대학(京都府立大學) 교수, 학장 역임 교토시립예술대학(京都市立藝術大學) 일본전통음악연구센터 소장(2020~2022) 현재 교토부립대학 명예교수, 교토시립예술대학 고문(顧問) [전문 분야: 중국 고대사, 중국 악제사(樂制史)] 저서: 『중국 고대국가의 사상구조: 전제국가와 이데올로기(中?古代?家の思想構造: ?制?家とイデ...
역 : 이용빈
홍콩국제문제연구소 연구원. 인도 국방연구원(IDSA) 객원연구원 역임했으며, 미국 하버드대학 HPAIR 연례학술회의 참석(외교 분과)했으며, 이스라엘 크네세트(국회), 미국 국무부, 미국 해군사관학교 초청 방문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미국 하와이대학 동서문제연구원(EWC) 학술 방문했으며, 중국 ‘시진핑 모델(習近平模式)’ 전문가위원회 위원(2014.11~)으로 활동한다. 저서로는 『East by Mid-Ea...
책 속으로
양계초가 수치스럽게 생각했던 것처럼, 중국에는 국명이 없었다. 국명에 상당하는 한(漢), 당(唐), 명(明), 청(淸) 등은 권력을 장악한 일성(一姓)·일가(一家)의 왕조 명칭이었으며,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국민을 존중하는 양계초의 주요 취지에 반했다. 그래서 그는 왕조를 초월하는 통칭으로서 중화와 중국을 거론하며 최종적으로 중국을 선택했던 것이다.
--- p.12
중국, 중국사에 대한 일본인의 이러한 ‘지적 폐쇄’ 상황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은 용이한 일이 아니다. 흔들리고 있는 중국, 중국사의 상(像)을 적확(的確)하게 파악하는 것은 필자에게 상당히 어려운 과제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감정적인 논의에 빠지기 일쑤인 ‘혐중론’과는 선을 긋고, 우선 새로운 대국적·전체적인 논의와 인식을 이끌어낼 소재를 제공하는 것 이외에는 없을 것이다. 양계초가 시작했던 ‘중국사’를 새로운 소재를 가지고 서술하여 ‘중국’ 및 ‘중국사’에 대해서 약간의 공통 인식을 이룰 수단을 제공해 보고자 한다.
--- p.16~17
춘추시대는 물론이고 한(漢)나라 시대의 임치에도 현대의 한족과는 다른 인간집단이 거주했으며, 또한 한자를 사용하고 고전 한어로 문장을 썼던 것이다. 제나라 인근의 노(魯)나라에서 태어난 유가(儒家)의 비조 공자(孔子)는 마침 2500년 전에 제나라에 체재했으며, 소(韶)라고 하는 고전 음악을 듣고 감동한 나머지 3개월 동안이나 고기 맛을 잊었다고 한다. 억측을 해본다면, 특이한 풍모를 지닌 것으로 전해지는 공자도 차(茶) 색깔의 눈, 좀 더 말한다면 푸른색 눈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 p.25
이리두 만기(晩期)에 속하는 유적에서는 소도(小刀)·추(錐) 등의 도구 종류, 월(鉞: 큰 도끼)·과(戈: 창) 등의 무기, 작(爵: 술잔)·영(鈴: 방울) 등의 예기(禮器) 등, 여러 종류의 청동기가 발견되었다. 이 지역은 중국 상호작용권 중에서 최초로 금석 병용(金石倂用) 시기에 진입했다.
--- p.37
은나라 말기부터 서주 시기에 걸쳐서 공헌제는 봉건제로 진화한다. 봉건(封建)이라는 말이 서주의 당초부터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봉건이라는 용어는 『춘추좌씨전』에서부터 발견되기 시작한다. 봉건은 오히려 그 실태가 변용하여 형해화되었던 전국 시기부터 한(漢)나라 시대에 걸쳐서 형성된 용어이다. 당초에는 단순히 봉(封)이나 건(建)으로 표현되는 일이 많았다.
--- p.49
맹자는 또한 농가학파(農家學派)인 허행(許行)과의 토론 중에서 우(禹)가 제수(濟水), 탑수(?水)를 소통시켜 바다로 물을 흘러나가게 하며 여수(汝水), 한수(漢水), 회수(淮水), 사수(泗水)를 배수시켜 장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기 때문에, ‘중국’이 농업 생산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논한다(『孟子』 騰文公上篇). 이에 의하면, ‘중국’이 장강 이북의 화중·화북의 농경 사회를 지칭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며, 이 영역은 또한 방(方) 3000리에 이르는 천하의 넓이와 거의 일치한다.
--- p.61~62
호적은 조세, 요역, 병역을 수취하기 위한 대장(臺帳)이다. 호적을 편성하는 단위인 호(戶)는 통상적으로 조세, 요역, 병역의 징수 단위이며, 납입 책임자인 호주는 진한(秦漢) 시대에는 호인(戶人), 당송(唐宋) 시대에는 호주(戶主)·호두(戶頭)·당호(當戶) 등으로 불렸다. 호적은 통상적으로 호주가 자신의 책임하에 자주적으로 신고하고, 세역(稅役)은 호(戶) 단위로 합산하여 일괄 납입되었다. 호적은 세역 수취의 형태에 따라 시대마다 기재 내용 및 양식을 달리한다. 하지만 그것이 호구·전토 장부라는 점은 그 이후 명(明)나라의 부역황책(賦役黃冊), 청(淸)나라의 편심책(編審冊)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일관되고 있다.
--- p.77~78
필자의 관견(管見: 좁은 소견)에 의하면, 최초로 ‘균전제’를 기술한 사람은 북송의 사마광(司馬光, 1019~1086)이다. 사마광은 『자치통감(資治通鑑)』의 당나라 무덕(武德) 7년(624) 4월 항목에서 ‘무덕 7년령(令)’의 발포를 구실로 삼아 “처음으로 균전 조용조법(均田租庸調法)을 정했다”라고 표기하며 그 아래에 정남(丁男)·중남(中男)에 대한 1경의 급전(給田)과 조용조 수취의 규정이 서로 불가분의 제도인 것처럼 기술하고 있다. ‘균전 조용조법’은 사마광의 조어이지 사료의 용어는 아니다.
--- p.129
구양수(歐陽脩)가 집필한 『당서(唐書)』 ‘병지(兵志)’의 간행 이래 약 1000년 동안, 당나라의 군제는 부병제뿐이었으며 부병이 위사·방인·행군 등 모든 군역을 담당했던 것으로 오해되어 왔다. 그 성과는 약간의 의심을 받는 일도 없이, 오늘날 세계사 교과서의 기술만이 아니라 국내외의 모든 당대사(唐代史) 전문 연구서에도 반영되고 있다. 당인(唐人)의 손으로 기록된 『대당육전』을 읽어보면, 당나라의 군제는 ‘12위-절충부-부병제’로 구성되는 중앙 남아금군의편성과지방 군제인 ‘도독부-진수-방인제’의 두 가지 계통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 역연하다. 주로 개원 연간에 시작된 절도사의 설치는 부병제의 붕괴로부터가 아니라, 도독부 진수제를 하나의 거점으로 삼아 새롭게 전개되었던 것이다. 지금은 과거 약 1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오해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때이다.
--- p.215
출판사 리뷰
중국은 어떻게 해서 중국이 되었을까?
역사의 세 가지 층차
이 책에 의하면 역사를 서술하는 데 세 가지 층차가 있다고 한다. 첫째, 정치사처럼 10년·50년을 단위로 하여 변화해 가는 층차가 있다. 둘째, 500년·1000년의 단위로 관찰하지 않으면 변화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의식주 및 그 생산의 층차, 환언하자면 사회의 생활권의 층차가 있다. 1000년 단위는 파악하기 어려운 장기간에 걸친 변화이다. 셋째, 정치 과정과 생활권의 중간에는 100년 단위로 변화해 가는 정치 및 사회의 조직·제도의 층차가 있다. 역사는 이 세 가지 층차의 상호 작용을 통해 변화한다. ‘새 중국사’ 시리즈 제1권은 그중에서 기초가 되는 사회 생활권과 정치·사회의 조직을 중심으로 서술을 전개한다. 다시 말해 시간적·공간적인 변화의 모습 속에서 중국을 파악한다는 것이다.
이리두 문화와 하왕조
1959년에 하남성의 이리두 유적이 발굴되었는데, 이로써 기원전 1800년경부터 1500년경까지 뒷날 중국의 중원이 되는 지역에 이리두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알려졌다. 중국에서는 이 이리두 문화로부터 청동기 문명이 시작되었다. 또 이리두 유적에서는 1만 제곱미터 규모의 궁전터도 발굴되었으며, 그 뜰에는 1000명의 사람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리두 문화를 형성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하(夏) 또는 하인(夏人)으로 불렀던 것으로 보인다. 이리두 문화 유형에 속하는 하남성 서부는 후세의 문헌에서 ‘유하지거(有夏之居)’라고 불렸다. 이것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리두 문화는 하왕조와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최근 중국은 물론이고 일본의 학자 중에서도 이리두 문화에 근거해 하왕조의 실재를 말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균전제, 조용조제, 부병제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
중국의 당나라가 균전제, 조용조제, 부병제를 시행하였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국 사학계의 통설로 되어왔다. 이 책은 이러한 통설을 당대(唐代)의 사료에 입각해 재검토한다. 예컨대 당대(唐代) 사료에는 균전제라는 용어도 조용조제라는 용어도 나오지 않는다. 저자에 의하면 당나라의 균전 조용조제라는 용어는 북송 사마광의 『자치통감』에 최초로 나온다. 저자는 지금까지의 균전제와 조용조제에 대한 이해를 수정해야 할 때라고 말한다. 또 구양수(歐陽脩)가 집필한 『당서(唐書)』 ‘병지(兵志)’ 간행 이래로 약 1000년 동안 당나라의 군제는 부병제뿐이며 부병이 위사·방인·행군 등 모든 군역을 담당했던 것으로 오해되어 왔지만, 이제는 과거 약 1000년 동안 계속되었던 오해로부터 해방되어야 할 때라고 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2686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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