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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현대 교회가 찾아야 할 교회 본연의 모습
1세기 초대교회를 생생하게 만나다!
초대교회를 꿈꾸게 했던 비서(秘書)
가정교회와 소그룹, 셀 모임 필독서의 귀환!
1세기 어느 날 오후, 로마 군인 푸블리우스는 한 그리스도인 부부의 초청을 받아 한 가정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여자와 남자, 어린이와 어른, 종과 주인,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 신자와 불신자 같은 일체의 차별이나 구분 없이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격의 없이 토론하고 노래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또한 사제나 특별한 의식 없이 일상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꾸밈없는 예배에 감동한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예배는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복음의 혁명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축제이자 일상이었다. 역사적 고증과 신학 자료에 기초해 재구성한 이 책은 초대교회의 복원을 꿈꾸는 이들, 교회 내 소그룹이나 셀 모임, 가정교회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1세기 초대교회를 생생하게 만나다!
초대교회를 꿈꾸게 했던 비서(秘書)
가정교회와 소그룹, 셀 모임 필독서의 귀환!
1세기 어느 날 오후, 로마 군인 푸블리우스는 한 그리스도인 부부의 초청을 받아 한 가정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그는 이방인을 따뜻하게 맞이하고, 여자와 남자, 어린이와 어른, 종과 주인, 먼저 온 사람과 나중에 온 사람, 신자와 불신자 같은 일체의 차별이나 구분 없이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격의 없이 토론하고 노래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또한 사제나 특별한 의식 없이 일상의 맥락에서 진행되는 꾸밈없는 예배에 감동한다. 실제로 초대교회의 예배는 세상의 질서를 뒤집는 복음의 혁명성을 고스란히 담아낸 축제이자 일상이었다. 역사적 고증과 신학 자료에 기초해 재구성한 이 책은 초대교회의 복원을 꿈꾸는 이들, 교회 내 소그룹이나 셀 모임, 가정교회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본연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목차
한국어판 서문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
내 이름은 푸블리우스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다
친교를 나누다
벨릭스가 친구 두로를 데려오다
루시아의 해방에 대해 토론하다
종교적 격식에 매이지 않은 모임
놀이하는 모임
노래 부르기와 대화식 기도
은사에 대한 아굴라의 가르침
권면과 서로를 위한 기도 후에 모임을 마치다
밤길을 나서며
역자 후기
초판 서문
개정판 서문
내 이름은 푸블리우스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다
친교를 나누다
벨릭스가 친구 두로를 데려오다
루시아의 해방에 대해 토론하다
종교적 격식에 매이지 않은 모임
놀이하는 모임
노래 부르기와 대화식 기도
은사에 대한 아굴라의 가르침
권면과 서로를 위한 기도 후에 모임을 마치다
밤길을 나서며
역자 후기
책 속으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의 한국어판이 개정되어 나온다니 기쁘기 그지없다. 30년 전에 출간된 한국어판은 이 책의 첫 번역서였다. 이후로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 책을 통해 생각의 문이 열려 교회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며, 최초의 교회 모임에 나타난 그리스도인의 교제의 정신과 활력을 더 많이 회복할 수 있었다는 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들었다. 이후 여러 해 동안 이 작은 책은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책이 여러 나라의 그리스도인들이 느끼는 필요, 곧 그들의 모임에 생명력을 ‘더할’ 무언가를 채워 주었나보다. 선교 사역에 관여하는 사람들?오늘날 최전선에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이 있다 ?가운데는 회심자들이 기독교 운동의 초기 확산에서 보였던 신선함과 권능을 경험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미친 영향은 그들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동료와 시민과 함께하며 보여 준 삶의 질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 이어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일상』(A Day in the Life of a First Century Christian, 한국 IVP 근간)을 자매편으로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또한 “세상을 전복”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기도한다(행 17:6).
_한국판 서문
내 이름은 푸블리우스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아미키우스 루푸스다. 비교적 신식민지에 해당하는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출신이다. 빌립보는 비록 마케도니아 영토 안에 있지만, 뼛속까지 로마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곳이다. 지금 나는 오랜 친구 글레멘드, 유오디아와 함께 로마에 잠시 머무는 중이다. 오늘은 일찍이 근처에 있는 한 가정의 저녁 식사에 다녀왔는데,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특이한 경험이었다. 동행한 친구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라는 유대인 부부로부터 매번 일곱째 날마다 식사 자리에 상시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방문객들에게도 열려 있는 자리였으므로, 내가 참석하는 데 별도의 초청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집을 나선 것은 낮 제9시(오후 3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여름이면 느지막이 만찬을 하는 게 로마에서도 상례였다. 손님이 있을 경우 더욱 그랬다. 한길로 나서 한참을 걷다 보니 거리가 너무 좁아 갑갑했다. 폭이 채 3미터도 안 되는 길도 있었다. 게다가 바닥은 그야말로 진창투성이라 발밑이 불안했다. 이미 대부분 일이 끝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앞으로 나아가기조차 어려웠다. 길이 엉망이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렸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없었다. 건물은 번지수가 거의 없고 거리도표지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외지인이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내 이름은 푸블리우스」중에서
아굴라가 나타나자, 내 친구들은 그가 문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를 만나려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흔히 하는 대로 남자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는데, 의례적이기보다는 다정함이 묻어났다.“어서 오세요. 환영해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하기를요.” 아굴라가 마음으로 인사했다. “아굴라 님께도요, 다시 오게 되어 기쁩니다.” 글레멘드가 화답했다. 그때 아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아굴라가 유오디아도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아마도남매지간이나 그와 비슷한 관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그랬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 남자들이 툭하면 서로 입맞춤하는 습관을 혐오했고, 나도 그에게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때 브리스가가 방으로 들어왔는데, 수수한 장식이 달린 화려한색상의 모직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모두가 아까처럼 돌아가며 인사했다. 이번에는 내 소개와 인사도 있었다. 나는 즉시 아주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중에서
“루시아, 루시아”하고 아이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는 짐짓 겁먹은 듯 말했다. “그래, 그래, 야만인들이 벌써 로마에 쳐들어왔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그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 분명했고, 그 역시아이들을 보는 게 즐거워 보였다. 그는 다정하게 사내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소녀들에게는 옷차림새를 칭찬해 주었다. (소녀들은 느슨한 블라우스에 발목까지 오는 흰색숄을, 사내아이들은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를 졸라맨 짧은 옷을 입었다.) 나는 곧 종의 주인을 소개 받았다. 그의 이름은 아리스도불로였고, 비교적 고위직에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가 하는 일에 대해 그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굴라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물시계 둘보다 철학자 둘이 훨씬 더 잘 맞는다는 등 흔한 농담을 했다.(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세네카일 텐데, 아굴라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손님들이 오는 중이라는 전갈을 방금 받았으니, 이제 식사 준비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응접실을 나오면서 글레멘드와 유오디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글레멘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중에서
아굴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더불어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사하셨습니다. 식사 중에 그들에게 빵을 나눠 주시며 그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살려면 빵이 필요하듯, 참 생명을 경험하려면 더욱 그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를 행합니다. 이는 바로 그분이 우리가 계속함께 먹기를 바라시기 때문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이유입니다.”죽은 자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굴라는 이 사람이 처형을 받은 후에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고까지 말했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굴라가 한 말은 정확히 그랬다! 그는 죽은 다음 살아나서 자기 아버지에게로 갔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누구든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자기 생명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그 수가 얼마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를테면, 그의 일부가 그를 따르는 자들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다」중에서
브리스가가 아굴라에게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이 무언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굴라가 대답했다. “맞아요, 우리가 예전에 속해 있던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 가운데 하나에서 그가 무슨 말을 했었죠.”“어느 편지인지 기억나요?”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첫 번째 편지에서 결혼과 독신 생활에 대해 말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침실에 있는 상자에 다른 문서들과 함께 있을 거요. 미안하지만 좀 가져다줄래요?” 브리스가가 방을 비운 사이에 아굴라가 내게 말했다. 바울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여러 모임을 시작한 자신들의 오랜 친구인데, 지금은 로마 어딘가에 가택 연금된 상태로 유대에서 제기된 날조된 고소 사건에 대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울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다루는 특별한 지혜가 있으므로, 그런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와 상담하거나 그가 쓴 글을 살펴보면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다. 브리스가가 돌아오자, 아굴라는 두루마리에서 금방 그 부분을 찾아 읽어주었다. 바울은 대체로 현 상태에 만족하고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종으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 됨을 남을 섬길 기회로 여기라는 것이다. 우리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기본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기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인 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새로운 상황에 바르게 접근한다면, 실제로는 남들을 도울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인들 자신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에게 종이며, 종들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자유인임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이러한 조언으로 토론은 확실히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나조차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생겼다. 이제 대화는 바울이 이렇게 판단한 근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자유를 얻음으로써 루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아리스도불로를 더 만족스럽게 섬길 수 있는지, 혹은 루시아의 경우 바울이 제시한 원칙에서 예외를 적용해야 하는 특수 상황은 없는지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루시아와 그의 견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아리스도불로의 제안에 대해 더 긍정적 태도로 생각을 모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히 루시아에게는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더 남아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순서를 위해 브리스가를 도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아의 해방에 대해 토론하다」중에서
소녀가 말했다. “노래인데요. 제가 만든 거고요. 하나님이 지으신 온갖 만물들에 대한 거예요.”소녀가 노래했다. 아주 자신 있고 맑고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물론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제일 컸다. 아리스도불로는 낭랑한 목소리로 ‘브라보’를 외쳤다! 브리스가와 다른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디저트를 갖고 들어왔다. 사과, 포도, 배, 무화과가 보였다. 우리는 대접에 담긴 물로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은 다음과일을 골라 들었다.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바로 옆에 있는 모임에서는 경기장에서 벌어진 전차 경주의 윤리성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보여 준 모임 참여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열띤 토론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태껏 내가 참석했던 만찬 모임에서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손님들은 최대한 자유를 만끽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지를 쓰거나 받아쓰게 하거나, 이웃과 비즈니스를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일이 허다했다.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예의 바르게도 남은 음식과 포도주를 함부로 바닥에 버리지도 않았다. 다소 산만하긴 했으나, 단정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았다. 흔히 보이는 무례도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임 전체에는 종교적으로 볼 때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는 한,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 가운데 종교적인 내용이라곤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전의 틀은 고사하고, 어째서 사제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면 더 진정한 종교성과 같은 무언가가 또 있었던 것일까?
---「종교적 격식에 매이지 않은 모임」중에서
나는 오후에 집을 나선 후 일어난 일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내 예상과는 아주 달랐지만, 대체로 그날 저녁이 즐거웠다. 사람들 자체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어떤 예절을 무시할지, 어떤 신조를 고수할지, 광신에 빠져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았었다. 그러나 만찬 중은 물론 만찬 후에 이루어지는 그들의 대화에는 이상하게도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실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부적합한 부분이 꽤 많았고, 그들의 어떤 행동은 아주 이색적이어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초청을 받아들여 다음 주 모임에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뭐라 말하기 힘들다. 확신이 없다. 하지만 어쩐지 응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첫 번째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세계에 미친 영향은 그들이 가족과 친구와 이웃과 동료와 시민과 함께하며 보여 준 삶의 질에서 비롯되었다. 이 책에 이어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일상』(A Day in the Life of a First Century Christian, 한국 IVP 근간)을 자매편으로 내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이 이야기를 읽는 독자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쳐 1세기 그리스도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우리 또한 “세상을 전복”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기를 기도한다(행 17:6).
_한국판 서문
내 이름은 푸블리우스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 아미키우스 루푸스다. 비교적 신식민지에 해당하는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출신이다. 빌립보는 비록 마케도니아 영토 안에 있지만, 뼛속까지 로마임을 자랑으로 여기는 곳이다. 지금 나는 오랜 친구 글레멘드, 유오디아와 함께 로마에 잠시 머무는 중이다. 오늘은 일찍이 근처에 있는 한 가정의 저녁 식사에 다녀왔는데, 여러분에게 들려주고 싶을 정도로 특이한 경험이었다. 동행한 친구들은 아굴라와 브리스가라는 유대인 부부로부터 매번 일곱째 날마다 식사 자리에 상시 초청을 받은 상태였다. 방문객들에게도 열려 있는 자리였으므로, 내가 참석하는 데 별도의 초청은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가 집을 나선 것은 낮 제9시(오후 3시)에 접어들 무렵이었다. 여름이면 느지막이 만찬을 하는 게 로마에서도 상례였다. 손님이 있을 경우 더욱 그랬다. 한길로 나서 한참을 걷다 보니 거리가 너무 좁아 갑갑했다. 폭이 채 3미터도 안 되는 길도 있었다. 게다가 바닥은 그야말로 진창투성이라 발밑이 불안했다. 이미 대부분 일이 끝나 제법 많은 사람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와서 앞으로 나아가기조차 어려웠다. 길이 엉망이라 이리저리 헤매다 보니 방향감각조차 잃어버렸다. 도저히 내 힘으로는 목적지까지 찾아갈 수 없었다. 건물은 번지수가 거의 없고 거리도표지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외지인이 길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내 이름은 푸블리우스」중에서
아굴라가 나타나자, 내 친구들은 그가 문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를 만나려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갔다. 흔히 하는 대로 남자들끼리 서로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는데, 의례적이기보다는 다정함이 묻어났다.“어서 오세요. 환영해요. 하나님의 은총과 평화가 함께하기를요.” 아굴라가 마음으로 인사했다. “아굴라 님께도요, 다시 오게 되어 기쁩니다.” 글레멘드가 화답했다. 그때 아주 이례적인 일이 일어났다. 아굴라가 유오디아도 끌어안고 입맞춤을 했기 때문이다. 당신이라면 아마도남매지간이나 그와 비슷한 관계로 생각했을 것이다! 시인 마르티알리스가 그랬어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로마 남자들이 툭하면 서로 입맞춤하는 습관을 혐오했고, 나도 그에게 동의하는 편이었다. 그때 브리스가가 방으로 들어왔는데, 수수한 장식이 달린 화려한색상의 모직 가운을 걸치고 있었다. 모두가 아까처럼 돌아가며 인사했다. 이번에는 내 소개와 인사도 있었다. 나는 즉시 아주 예의 바르게 감사를 표했다.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중에서
“루시아, 루시아”하고 아이들이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그는 짐짓 겁먹은 듯 말했다. “그래, 그래, 야만인들이 벌써 로마에 쳐들어왔다는 말은 하지 말거라!” 그는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게 분명했고, 그 역시아이들을 보는 게 즐거워 보였다. 그는 다정하게 사내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소녀들에게는 옷차림새를 칭찬해 주었다. (소녀들은 느슨한 블라우스에 발목까지 오는 흰색숄을, 사내아이들은 나이에 어울리게 허리띠를 졸라맨 짧은 옷을 입었다.) 나는 곧 종의 주인을 소개 받았다. 그의 이름은 아리스도불로였고, 비교적 고위직에 있는 공무원이었다. 그가 하는 일에 대해 그와 대화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아굴라가 손뼉을 치며 주의를 끌었다. 물시계 둘보다 철학자 둘이 훨씬 더 잘 맞는다는 등 흔한 농담을 했다.(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은 세네카일 텐데, 아굴라는 아마도 누군가에게 전해 들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른 손님들이 오는 중이라는 전갈을 방금 받았으니, 이제 식사 준비를 하러 식당으로 가는 게 좋겠다고 했다. 응접실을 나오면서 글레멘드와 유오디아를 다시 보게 되었다.“이제 예배가 시작되는 건가?” 글레멘드에게 물었다. 그러자 그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면서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
---「아굴라와 브리스가 부부와 만나다」중에서
아굴라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 제물로 드리시기 직전에 제자들과 더불어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식사하셨습니다. 식사 중에 그들에게 빵을 나눠 주시며 그것이 자신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몸이 살려면 빵이 필요하듯, 참 생명을 경험하려면 더욱 그분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이를 행합니다. 이는 바로 그분이 우리가 계속함께 먹기를 바라시기 때문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이유입니다.”죽은 자가 이 모든 일을 어떻게 한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아굴라는 이 사람이 처형을 받은 후에 실제로 다시 살아났다고까지 말했다. 내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굴라가 한 말은 정확히 그랬다! 그는 죽은 다음 살아나서 자기 아버지에게로 갔고, 이로 말미암아 그는 누구든지 자기를 따르는 자에게 자기 생명을 줄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어디에 있든, 그 수가 얼마든 상관없이 말이다. 이를테면, 그의 일부가 그를 따르는 자들 속에 살아 있다는 말이었다. 최소한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다」중에서
브리스가가 아굴라에게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해 바울이 무언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아굴라가 대답했다. “맞아요, 우리가 예전에 속해 있던 고린도 교회에 보낸 바울의 편지 가운데 하나에서 그가 무슨 말을 했었죠.”“어느 편지인지 기억나요?” 그는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했다.“첫 번째 편지에서 결혼과 독신 생활에 대해 말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침실에 있는 상자에 다른 문서들과 함께 있을 거요. 미안하지만 좀 가져다줄래요?” 브리스가가 방을 비운 사이에 아굴라가 내게 말했다. 바울은 로마 제국 전역에서 여러 모임을 시작한 자신들의 오랜 친구인데, 지금은 로마 어딘가에 가택 연금된 상태로 유대에서 제기된 날조된 고소 사건에 대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울은 일상생활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를 다루는 특별한 지혜가 있으므로, 그런 문제에 대해 개인적으로 그와 상담하거나 그가 쓴 글을 살펴보면 도움을 받는 경우가 잦다는 것이었다. 브리스가가 돌아오자, 아굴라는 두루마리에서 금방 그 부분을 찾아 읽어주었다. 바울은 대체로 현 상태에 만족하고 그것을 바꾸지 말라고 조언했다. 종으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 됨을 남을 섬길 기회로 여기라는 것이다. 우리의 위치가 어떠하든,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기본 책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를 얻을 기회가 생기거든, 다른 사람들처럼 자유인 되기를 주저하지 말라고 했다. 새로운 상황에 바르게 접근한다면, 실제로는 남들을 도울 새로운 방법을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주인들 자신도 실제로는 그리스도에게 종이며, 종들도 본질적인 면에서는 실제로 자유인임을 기억하라고 말했다. 이러한 조언으로 토론은 확실히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환되었고, 나조차도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할 거리가 생겼다. 이제 대화는 바울이 이렇게 판단한 근거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자유를 얻음으로써 루시아는 어떤 방식으로 아리스도불로를 더 만족스럽게 섬길 수 있는지, 혹은 루시아의 경우 바울이 제시한 원칙에서 예외를 적용해야 하는 특수 상황은 없는지 등에 대한 토론이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루시아와 그의 견해를 지지했던 사람들은 아리스도불로의 제안에 대해 더 긍정적 태도로 생각을 모으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히 루시아에게는깊이 생각해 볼 문제가 더 남아 있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다음 순서를 위해 브리스가를 도와야 한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루시아의 해방에 대해 토론하다」중에서
소녀가 말했다. “노래인데요. 제가 만든 거고요. 하나님이 지으신 온갖 만물들에 대한 거예요.”소녀가 노래했다. 아주 자신 있고 맑고 진심 어린 목소리였다. 노래가 끝나자 모두가 박수를 쳤다. 물론 아이들의 박수소리가 제일 컸다. 아리스도불로는 낭랑한 목소리로 ‘브라보’를 외쳤다! 브리스가와 다른 사람들은 방해하지 않으려고 문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디저트를 갖고 들어왔다. 사과, 포도, 배, 무화과가 보였다. 우리는 대접에 담긴 물로 손가락을 깨끗이 씻고 수건으로 닦은 다음과일을 골라 들었다. 여기저기서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는 동안(바로 옆에 있는 모임에서는 경기장에서 벌어진 전차 경주의 윤리성에 대한 토론이 한창이었다), 참석한 사람들이 보여 준 모임 참여도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런 열띤 토론은 나로서는 처음 겪는 일이었다. 여태껏 내가 참석했던 만찬 모임에서는, 만찬이 진행되는 동안 손님들은 최대한 자유를 만끽하며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편지를 쓰거나 받아쓰게 하거나, 이웃과 비즈니스를 하거나, 꾸벅꾸벅 조는 일이 허다했다. 이 모임의 참석자들은 예의 바르게도 남은 음식과 포도주를 함부로 바닥에 버리지도 않았다. 다소 산만하긴 했으나, 단정하면서도 도를 넘지 않았다. 흔히 보이는 무례도 범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모임 전체에는 종교적으로 볼 때 의아스러운 점이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아는 한, 그때까지 일어난 일들 가운데 종교적인 내용이라곤 거의 없었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예전의 틀은 고사하고, 어째서 사제조차 없단 말인가. 아니면 더 진정한 종교성과 같은 무언가가 또 있었던 것일까?
---「종교적 격식에 매이지 않은 모임」중에서
나는 오후에 집을 나선 후 일어난 일에 대해 돌이켜 보았다. 내 예상과는 아주 달랐지만, 대체로 그날 저녁이 즐거웠다. 사람들 자체가 확실히 인상적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그들이 어떤 예절을 무시할지, 어떤 신조를 고수할지, 광신에 빠져 있지는 않을지 걱정이 많았었다. 그러나 만찬 중은 물론 만찬 후에 이루어지는 그들의 대화에는 이상하게도 그 자체로 무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들의 행동에는 틀림없이 실제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모임은 종교적 관점에서는 부적합한 부분이 꽤 많았고, 그들의 어떤 행동은 아주 이색적이어서 상당히 당혹스러웠다. 아굴라와 브리스가의 초청을 받아들여 다음 주 모임에 갈지는 아직 모르겠다. 뭐라 말하기 힘들다. 확신이 없다. 하지만 어쩐지 응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밤길을 나서며」중에서
출판사 리뷰
초대교회는 어떤 교회였을까?
초대교회의 예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초대교회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살았을까?
교회가 위기에 처했을 때, 누구나 초대교회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어떠했는지는 정작 말하지 않는다. 교회 갱신을 위해 가정교회나 작은 교회로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분명 교회의 외형과 구조는 교회의 본질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나 교회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참으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해 왔고 또 존재할 수 있다. 이 책은 단순한 초대교회 및 가정교회 안내서가 아니다. 교회의 본질이 역동적으로 드러난 살아 있는 교회의 모습을 통해 교회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는 책이다.
얼마 안 되는 분량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담아야 할 매우 다양한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 종과 주인, 여자와 남자, 가난한 자와 부자, 아이와 어른과 노인, 가족과 독신, 해방과 자유, 세상과 교회, 직업 소명과 신분, 성만찬과 세례, 논쟁과 조정, 상황과 말씀, 식사와 성찬, 일상과 초월, 공간과 시간, 의외성과 규칙성, 참여와 권위, 본질과 형식, 치료와 치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덩치만 크지 단조롭기 그지없는 오늘날의 어떤 대형 교회보다도 소수로 이루어진 이 작은 공동체에서 우리가 오랫동안 잃어버린 교회의 본질과 다양하고 풍성 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교회를 믿는다. 교회는 나가거나 안 나가는 곳이 아니라 매 순간 갱신하며 새롭게 태어나는 생명체다. 푸블리우스와 함께 2천 년 전 로마에서 모였던 원초적 교회의 방문자가 되어 오늘의 교회를 위한 상상력과 확 신을 길어 올리기를 바란다.
오늘날 우리 교회와 우리가 드리는 예배와 너무나 다른,
그래서 초대교회를, 그들이 드렸던 예배를 더 꿈꾸게 만드는 놀라운 책!
추천평
“책이 얇다고 결코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이 책은 신구약 성경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1세기 역사와 고고학에 정통하고 기독교 영성과 공동체를 깊이 체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작품이다. 교회가 건물, 조직, 주일날 예배하는 모임 정도로 축소되어 버린 오늘날, 예수님이 꿈꾸고 바울이 가르친 교회의 실체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꼭 읽어야 한다. 저자의 또 다른 역작 『바울의 공동체 사상』, 『교회, 또 하나의 가족』을 함께 읽으면 더할 나위 없다. 이 책은 오늘날 현대 사회 속에서 진정한 메시아 공동체를 세우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영감을 제공해 줄 것이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이 책을 필독서로 지정한 이유다!”
- 김형국(나들목교회 목사, 하나님나라의복음DNA네트워크 대표)
“신학에 등급이 있다면 논문이나 이론서들이 2등급이고, 이야기와 춤과 노래와 시 등은 1등급일 것이다. 2등급 신학이 해설이라면, 1등급 신학은 원초적 삶이다. 하수는 설명하려 들지만, 고수는 이야기로 푼다. 놀랍게도 이야기 속에 교회, 복음, 예배, 성찬, 윤리, 교육, 직제, 은사, 기도의 신학이 온전히 녹아 있다. 이 책이 초대하는 1세기 교회로의 시간 여행을 따라 가다보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예배가 얼마나 근원으로부터 멀리 와 있는지 생생히 깨닫게 될 것이다.”
- 김선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 김형국(나들목교회 목사, 하나님나라의복음DNA네트워크 대표)
“신학에 등급이 있다면 논문이나 이론서들이 2등급이고, 이야기와 춤과 노래와 시 등은 1등급일 것이다. 2등급 신학이 해설이라면, 1등급 신학은 원초적 삶이다. 하수는 설명하려 들지만, 고수는 이야기로 푼다. 놀랍게도 이야기 속에 교회, 복음, 예배, 성찬, 윤리, 교육, 직제, 은사, 기도의 신학이 온전히 녹아 있다. 이 책이 초대하는 1세기 교회로의 시간 여행을 따라 가다보면, 오늘날 우리의 교회와 예배가 얼마나 근원으로부터 멀리 와 있는지 생생히 깨닫게 될 것이다.”
- 김선일(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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