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기독교-개신교 (독학>책소개)/1.세계기독교역사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동방박사님 2022. 1. 31.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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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그들의 삶에는
기독교 성장에 대한 단서가 숨어 있다.”

기독교인은 서기 40년경에 1000명으로 시작했지만 100년에는 1만 명, 200년경에는 20만 명으로, 그리고 300년경에는 500~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로마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사악한 신종 미신’이라고 치부 받던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 그 이면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로마 1~3세기까지의 시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기”이자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성장을 보여 준 시기”라고 정의하는 학자가 있다. 래리 허타도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이자 신약성경 및 사복음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다.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은 이 책을 추천하며 “이 책을 통해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초심’ 그리고 ‘예수의 정신’을 다시 되짚어 볼 것”을 강조했다. 그의 바람처럼 이 책이 많은 기독교인의 새로운 믿음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목차

서문
들어가는 말

1장 기이한 종교의 탄생
2장 이교도들은 기독교를 왜 위험한 종교로 봤을까
3장 이전에는 없었던 ‘책의 종교’
4장 새로운 삶의 법칙을 말하다

맺음말
부록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래리 허타도 (Larry W. Hurtado)
 
영국의 저명한 신약학자이자 초기 기독교 연구의 최고 권위자이다. 복음서(특히 마가복음), 사도 바울, 초기 기독론, 신약의 유대적 배경, 신약 성서 본문 비평 분야의 전문가이다. 현재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대학교 신약 언어, 문학 및 신학 명예 교수이며, 에든버러 왕립 협회 회원이다. 에든버러 대학교 신학대학원장, 동 대학교 기독교 기원 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국내에 번역된 책으로는『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

역 : 이주만

 
서강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과를 졸업했으며, 현재 번역가들의 모임인 (주)바른번역의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끌림』, 『괴짜들의 비밀』, 『탈출하라』, 『다시, 그리스 신화 읽는 밤』,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심플이 살린다』, 『회색 코뿔소가 온다』, 『사장의 질문』, 『다시 집으로』, 『경제학은 어떻게 내 삶을 움직이는가』, 『나는 즐라탄이다』, 『모방의 경제학』, 『법은 왜 부...
 

책 속으로

타키투스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Suetonius는 네로 황제의 통치를 다룬 글에서 기독교인들을 가리켜 “사악한 신종 미신에 빠진 무리”라면서 그들을 처벌한 사건을 간략히 언급하고 있다(『황제 열전De vita Caesarum』 「네로」 16장 2절). 타키투스와 수에토니우스 모두 기독교의 성격을 기술하면서 ‘미신(라틴어로 수페르스티티오superstitio)’이라는 용어를 썼다. 당시 이 말은 대중이 보기에 극단적이고, 거부감이 들고, 심지어 극악무도한 종교적 신앙과 의식을 뜻했다. 여기서 요점은 두 작가 모두 기독교인들과 그들의 종교가 이질적이고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따라서 기독교를 믿는 것은 당시 로마 시대의 여러 종교나 신앙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음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 p.41

요컨대 고대 신전은 꽤나 큰 규모의 경제 활동이 이뤄지는 무대였다. 따라서 신들을 배교하거나 제사를 중단하는 행위, 혹은 장차 그렇게 될 가능성이나 불안한 전망에 지나지 않더라도 이는 신전 운영과 관련해 다양한 영역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실제로 이 같은 우려가 일찍이 표출된 사건이 「사도행전」 19장 21~40절에 등장한다. 아데미(아르테미스) 여신의 신상 모형을 제작해 팔던 장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큰 소동을 일으켰는데, 이는 그들의 생계가 위협받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비기독인들이 초기 기독교를 향해 품었던 적대감의 기저에는 경제적 요인이 짙게 깔린 것으로 보인다. --- p.45

기독교의 개념은 이교도보다는 유대교 전통과 훨씬 유사한 점이 많았다. 유대교에도 직접 교류할 수 있는 초월적 신이 있고, 유일신이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해 그들과 깊은 언약적-사랑 혹은 언약적-신실함을 유지한다는 개념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의 유대인들은 그들의 신이 참된 조물주이자 모든 민족의 정당한 지배자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전반적으로 세상과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개념을 초기 기독교인들의 문헌에서 보이는 만큼 힘주어 강조하지는 않았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사랑의 윤리love-ethic’에 따라 기독교인답게 처신할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은 실제로 기독교의 특색 중 하나가 되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바로는 로마 시대 여러 종교 중에 그 가르침이나 행동 지침에서 초기 기독교처럼 사랑의 역할을 중시하는 종교는 없었다.
--- p.104

실제로 성경 봉독은 적어도 2세기 이후부터 많은 혹은 대다수의 기독교 공동체에서 행해지던 공중 예배의 순서 중 하나였다. 2세기에 로마에 거주했던 기독교 교사이자 작가였던 순교자 유스티누스가 쓴 글에서도 기독교인의 예배에서 “사도들의 회고록이나 선지자들의 글”이 정기적으로 봉독되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제1 변증서First Apology』 67장 3절). 여기서 유스티누스가 말한 ‘회고록(그리스어로 아폼네모뉴마타apomne-moneumata)’은 기독교 문헌, 특히 복음서를 가리킨다. 또 여기서 ‘선지자들’이라는 용어는 틀림없이 기독교인들이 구약이라 부르게 된 문헌들을 지칭한다. 그러니까 유스티누스에 따르면 적어도 2세기에 로마 교회들의 공중 예배에서는 이들 텍스트(복음서와 구약성경)를 성경으로 봉독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 p.134

초창기의 몇몇 기독교 사본을 살펴보면 성경 봉독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한 특정한 장치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 장치들은 로마 시대의 문학사본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특징으로 기본적인 구두법, 문장과 구문 같은 의미 단락을 표시하기 위한 띄어쓰기, 줄마다 첫 글자를 큼직하게 쓰기, 그리고 큼직한 글씨와 넉넉한 줄 간격 등을 말한다. 특히 성경 사본(구약성경)과 훗날 신약성경에 포함되는 문헌들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인데, 예배 시 성경 사본을 봉독하는 사람들을 보조하기 위한 시각적 장치였을 가능성이 높다.
--- p.137

로마 시대의 ‘종교’라고 하면 흔히 신전과 제단, 사당에서 거행되는 제사와 제의적 활동, 그리고 특정한 축일을 준수하는 등의 책무가 대부분이었다. 로마 시대의 종교는 우리가 말하는 ‘윤리’라든가 ‘행동 규범’, 간단하게 말해 신자들의 ‘행동’이나 ‘행실’에 대해서는 별로 다루지 않았다. 초기 기독교인들의 종교와 신자들의 행실이 여느 종교와 달리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음을 확인하려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서부터 시작해 초기 기독교 문헌에서 개인의 행동 규범에 관한 글이 얼마나 많은 지면을 차지하는지 살펴보면 된다. 일례로 여러 바울 서신에는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난다. 각 서신 가운데 핵심 부분, 어쩌면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기독교인의 행실에 대한 가르침과 권면으로 채워져 있다.
--- p.200

여기 열거된 권면 사항은 신자들이 준수할 종교적 의무이지만 그 내용을 살펴보면 모두 사회적 행동이나 대인 관계와 관련되어 있다. 예를 들어 신자들은 그들을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사랑해야 하고, 앙갚음해서는 안 되고, 모든 이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 또 살인, 간통, 남색이나 도적질을 해서는 안 되며, 마술을 행하거나 영아를 유기해서는 안 된다. 또 남의 소유를 탐하거나, 거짓 맹세를 하거나, 위증을 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높이지 말고, 겸손한 이들과 교제하고, 분열을 일으키지 말고 동료 신자들 사이에 평화를 도모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가르치고 훈육하는 법에 대해서도 지시하고 있으며, 또 주인에게는 노예를 다스리는 법을 지시한다. “너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있는” 노예들에게 가혹한 명령을 내리지 말아야 하며, “너와 네 수하 모두를 다스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중단하지 않도록” 주인으로서 주의해야 한다(4장 9~10절). 또 이 규율이 신자 개인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향한 규율임을 확인할 수 있는 항목이 있는데, 일례로 신자들은 공회에서 자신의 허물을 고백해(4장 14절) 양심에 거리낌이 없는 상태에서 기도에 임하도록 했다.
--- p.225
 

출판사 리뷰

평생 초기 기독교인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
“서기 1~3세기는
기독교 역사상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운 시기”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그들의 삶에는
기독교 성장에 대한 단서가 숨어 있다.”

기독교인은 서기 40년경에 1000명으로 시작했지만 100년에는 1만 명, 200년경에는 20만 명으로, 그리고 300년경에는 500~600만 명으로 늘어난다. 당시 로마의 기득권층으로부터 ‘사악한 신종 미신’이라고 치부 받던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 그 이면에는 과연 어떤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로마 1~3세기까지의 시기를 “기독교 역사를 통틀어 가장 재미있고 흥미로웠던 시기”이자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파격적인 성장을 보여 준 시기”라고 정의하는 학자가 있다. 래리 허타도 에든버러 대학교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초기 기독교인들의 삶을 연구한 신학자이자 신약성경 및 사복음서 연구의 세계적인 권위자이기도 하다.

그는 신간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에서 기독교의 파격적인 성장에 대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기독교가 당시의 다른 종교와는 다르게 매우 윤리적인 종교였다는 점이다. 사실 종교=윤리의 관점이 현대 사회에 있어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 같지만 로마 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로마 시대는 ‘신들이 가득한 세계’였지만 신과 종교란 그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해 주는 대상이었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봉착하면 그 상황에 맞는 관련된 신들을 찾아가 가호를 빌 뿐이었다.
그러나 기독교는 달랐다. 기독교는 기존의 종교와 달리 종교적 책무, 그리고 이를 사회적으로 실천할 것을 강조하는 종교였다. 이런 기독교의 탄생은 새로운 ‘윤리적 종교’의 탄생이었다. 당연히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파격적인 종교의 개념으로 다가왔다. 실제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바울의 서신을 포함해 당시 수많은 문헌에는 올곧은 행동을 공동체 차원에서 실천하고 헌신하도록 신자들을 격려하는 모습이 흔하게 발견되는데, 이런 특징은 윤리적 관점에서 피해를 입고 있었을, 비인간적인 처우를 받았던 수많은 약자와 도덕과 윤리의 개념을 이해하고 설파한 많은 지식인의 마음을 움직였다.

두 번째는 ‘책의 종교’로 대변되는 속성이다. 기독교는 읽고, 공부하고, 수집하고, 유포하고, 의견을 나누는 이른바 텍스트 공동체적 성격이 강한 종교였다. 실제 초기 기독교는 제단도, 신상도, 제사장도, 신전도 없는 종교였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이 모여 예수의 말씀을 읽고 나누는 종교였다.
이러한 결과로 당시의 수많은 문헌이 아직도 남아있는데, 서기 300년 사이에 작성된 기독교 문헌은 알려진 것만 해도 최소 200가지가 넘는다. 이 뿐만 아니라 그 분량 역시 방대한데 심지어 “로마의 기독교인들이 바울의 서신을 처음 받았을 때 십중팔구 편지 내용보다 그 분량을 보고 기겁했을 것”이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실제로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는 6807단어였고, 「로마서」는 7101단어에 달하는데, 이는 필사하는 데만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분량이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은 네트워크를 구축해 열성적이며 자발적으로 이 방대한 양의 문헌들을 필사하고 유포하고 함께 나누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반복했다. 물론 이러한 그들의 노력은 기독교 성장의 강력한 토대가 되었다.

세 번째로 탈 민족적이며 탈 신분적인 성격의 종교라는 특징이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이 대속적인 사랑을 통해 세상과 인류를 구원할 계획을 세웠으며, ‘가장 미천한 인간’이라도 이 유일신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고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로마의 다른 신과 인간의 관계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는 누구든 새로운 공동체의 일원으로써 새로운 정체성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이러한 특성은 기독교를 초민족적이며 초신분적인 거대한 종교로 만들었다.

“매우 종교적인, 그러나 동시에 너무나도 인문적이고 역사적이며 과학적인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탐사”라는 독자의 서평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는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연구한 성과물을 이 책에서 다양한 사례와 이야기로 설명한다.

책을 덮을 때 즈음이면 문득 오늘의 교회가 오버랩 된다. 혁신을 넘어 혁명적이었던 기독교, 누구보다도 약자의 편에서 그들의 마음을 어르고 달래주었던 기독교, 열성적인 배움과 나눔이 존재했던 기독교, 앎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혁신적이며 윤리적인 가치들을 사회운동 차원으로까지 실천하고 독려했던 기독교의 특성이 여전히 오늘의 교회와 기독교인들에게도 존재하고 있는지, 혹 우리의 모습이 그들의 초심으로부터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버린 것은 아닌지, 라는 생각과 함께 말이다.

전 문화부 장관이었던 이어령 선생은 이 책을 추천하며 “이 책을 통해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초심’ 그리고 ‘예수의 정신’을 다시 되짚어 볼 것”을 강조했다. 그의 바람처럼 이 책이 많은 기독교인의 새로운 믿음 방향 설정에 도움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
 

추천평

정체성이 헷갈리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에게 나는 당신의 뿌리를 들여다보라 권한다. 뿌리를 들여다보는 일만큼 나를 이해하는 데 좋은 방법도 드물다. 그런 측면에서 나는 이 책이 반가웠다. 서기 40년경에 1000여 명으로 시작했던 정말 보잘것없었던, 심지어 로마의 기득권층에게는 ‘미신의 종교를 믿는 사람’으로 멸시받았던 초기 기독교인의 삶을 오늘 이 시점에 되짚어보는 것은 우리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의 많은 기독교인에게 권한다. 이 책을 읽고 초기 기독교인들이 가졌던 ‘초심’ 그리고 ‘예수의 정신’을 다시 되짚어보기를 소망하면서.
- 이어령 (국문학자, 전 문화부 장관)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통해 자신들의 정체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세상과 함께하면서도 또 세상과 다르게 행동한다는 것의 의미를 찾게 될 것이다.
- 외르크 프레이 (취리히 대학교 신약학과장)

만약 우리가 초기 기독교인들을 만나 직접 그들의 삶을 묻는다면, 그들의 답과 가장 가까운 답변이 바로 이 책 속에 있을 것이다.
- 로빈 코맥 (코톨드 미술학교 명예교수)

허타도 교수는 이 책에서 오늘날 종교를 떠올릴 때 당연시하는 전제들, 예를 들면 윤리적인 개념이나 유일신의 개념과 같은 것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기독교가 발흥하지 않았더라면 이런 개념들은 결코 존재할 수 없었던 개념이다.
에이프릴 디코닉 (라이스 대학교 종교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