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전쟁연구 (책소개)/1.세계전쟁사

문화재 전쟁

동방박사님 2022. 2. 16.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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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저지른 문화재 약탈!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독일, 미국, 소련의
쫓고 쫓기는 문화 예술품 약탈과 그 반환의 숨바꼭질이 펼쳐진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의 주도로 벌어진 나치의 약탈 문화재와 예술품, 그리고 종전 후 반환과 회복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나치 약탈 부대 ERR와 이들에 맞서는 미술사학자들로 편성된 연합군 모뉴먼츠 맨과 박물관 종사자들의 활약이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약탈의 마수를 피한 모나리자를 비롯한 대가의 작품들에 얽힌 숱한 이야기와 더불어 종전 후 약탈 예술품을 둘러싼 유럽 각국의 이해관계, 가문 소장품을 되찾으려는 후손들의 힘겨운 노력, 제3세계의 문화재 환수 운동 등을 소개한다. 문화 예술품 약탈이라는 시선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흥미로운 역사 교양서다.

목차

책머리에/ 여는 글

1부 퇴폐 미술과 조선 찻사발

1 조선의 찻사발을 품은 스위스 베른미술관
취득 경위가 명확하지 않은 조선의 찻사발

2 유럽을 뒤집은 남자 코르넬리우스 구를리트
구를리트가 누구이기에 유럽이 발칵 뒤집혔나
구를리트 컬렉션 구축, 나치 약탈에 편승

3 히틀러의 예술 학살 '퇴폐 전시회'
눈 뜨고 못 볼 히틀러의 '퇴폐 예술' 광기
빈 예술학교 불합격생, 히틀러의 미술 콤플렉스

2부 쫓고 쫓기는 약탈 삼국지

1 나치 약탈 부대 ERR
"총통미술관을 채워라" 나치 약탈 부대 ERR
이 그림을 누가 본 적 없나요?

2 모뉴먼츠 맨, 미술사학자들
사상 첫 문화재 구출 부대 '모뉴먼츠 맨'
모뉴먼츠 맨, 우피치를 지켜라
네페르티티를 지켜라

3 소련의 트로피 여단
"보이는 대로 가져와라" 소련의 '트로피 여단'
냉전의 서막
러시아, 트로이 보물 반환 거부
'금융 왕가'도 피할 수 없었던 약탈 그리고 회복

3부 계속되는 약탈 후유증

1 모나리자 구출 특급 비밀작전
"모나리자를 지켜라" 루브르의 특급 비밀작전

2 한국전쟁 때 해외로 피난 간 문화재
우리 문화재를 지켜라

3 폴란드, 베를링카 반환 거부
독일 국보 '베를링카'를 인질로 잡은 폴란드
현상금 1000억 원이 걸린 그림
폴란드, 그단스크 컬렉션 반환 거부

4 구트만 가족의 회복 이야기
오락가락 회복 정책에 뭇매 맞는 네덜란드
반환 겉도는 칸딘스키
오락가락 네덜란드의 반환 정책

4부 반환 목소리 커지는 제3세계

1 "우리도 돌려다오" 회복 목소리 커지는 아프리카
회복 목소리 커지는 아프리카
고향으로 돌아간 아프리카 유물들
반환보다 대여 택한 영국
해외에서 발견한 조국 문화재

2 마추픽추 반환한 미국
"마추픽추, 돌려줘라" 회복에 앞장서는 미국
「길가메시」 반환하는 미국
미국, 태국과 아이티 불법 거래 문화재 반환

3 '아를의 침실'을 보는 일본인의 심경은
타산지석으로 삼을 문화재 방안들
한국으로 오지 못한 이병창 컬렉션

5부 한중일 문화재 삼국지

1 중국이 애타게 환수 추진하는 '홍려정비'
중국과 일본, '반환 환수' 전쟁
중국의 속국 아닌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한 발해

2 발해 부처님, 일본엔 왜 가셨나요
중국, 동북공정을 통해 발해 역사 편입 시도
고구려로부터 이어받은 불상 양식, 이불병좌상

닫는 글/ 참고 자료/ 그림 출처
 

저자 소개 

저 : 이기철
 
1960년대 중반 경남의 한적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뛰놀던 산기슭에서 나온 하얀 사금파리를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바닥에 금을 긋고 그림을 그리며 놀았다. 사금파리들이 발견된 곳이 옛날 옛적엔 절이 있던 자리였다거나 서울로 이사 간 동네 아저씨의 집터였다는 것을 한참 후에야 알았다.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91년 〈서울신문〉에 기자로 입사했다. 미국 미주리주립대 저널리즘스쿨에서 연수했다. 사...
 
 
책 속으로
ERR는 약탈을 용이하게 하고자 점령지를 여덟 지역으로 나누고 음악, 시각예술, 역사, 도서관, 교회 등 5개 실무분야로 구분했다. ERR의 직접적인 약탈 대상은 나치 강제수용소 수감자들의 소유물이었다. ERR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1940년 11월에서 1944년 7월까지 파리의 개인 컬렉션 203곳에서 2만 1903점을 강탈했다. 1941년 4월부터 1944년 7월까지 ERR가 파리에서 독일의 약탈품 주요 보관소인 남부 바이에른주 노이슈반슈타인 성으로 운반한 약탈품 분량이 화물열차로 1418칸에 이른다. 이와는 별도로 선박으로 42만 7000톤을 실어 날랐다.
--- p.63~64

모든 지휘관에게 보낸 서신 명령에서 아이젠하워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구조물에 대한 약탈, 파괴, 모독을 금지함으로써 MFAA, 즉 ‘모뉴먼츠 맨’의 활동을 지원했다. 또 아이젠하워는 될 수 있는 한 MFAA를 돕도록 반복적으로 명령을 내렸다. 이런 명령과 활동은 군대가 전쟁을 치르는 동시에 문화재를 약탈하는 것이 아니라 보호하고 훼손을 줄이도록 한 것으로, 전쟁 역사상 처음이라고 MFAA 활동을 기리는 미국 ‘모뉴먼츠 맨 재단’은 밝히고 있다.
--- p.82

나치의 가장 유명한 거대 약탈 예술품 보관소로 오스트리아 알타우제 소금 광산을 들 수 있다. 광산 터널 길이만 64킬로미터에 이르는 미로 같은 소금 광산에서 그림 6577점, 조각 137점, 공예품 484상자를 비롯해 도서관 장서, 가구와 동전, 무기 등이 발견되었다. MFAA는 독일 남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서 가구와 보석 등과 함께 6000점 이상의 그림을 발견했고, 1945년 4월 독일 중부 산악지대인 메르커스 소금 광산에서는 예술품을 담은 상자 수천 개와 대량의 금괴(2017년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유로 상당)도 찾아냈다. 이곳에서는 특히 나치 강제수용소에서 희생된 유대인의 개인 소지품과 금니 등이 무더기로 나와 그 비참함을 더했다. 나치가 예술품을 숨기는 창고로 이용한 소금 광산은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미생물의 공격을 막는 천연 저장고였다.
--- p.84~88

소련은 자신들이 약탈한 예술품이 나치 독일의 재산인지, 개인 소장품인지에 상관없이 가져감으로써 논란을 일으켰다. 적군이 약탈한 예술품 상당수는 나치의 약탈품이었고, 곧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유물이었다. 전쟁 기간 소련이 계속해서 그리고 의도적으로 점령지에서 저지른 문화재 약탈 행위를 같은 승전국인 미국과 영국, 프랑스에 숨겼다는 것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두 진영이 서로 불신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전리품 부대를 비밀리에 운영한 것은 소비에트가 서방 국가들을 공개적이지는 않지만, 적으로 간주했다는 의미다. 냉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도 전에 서막이 올랐다.
--- p.123

로스차일드 문서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지 거의 10년 만인 2002년 6월 러시아는 모스크바에 있는 국립군사문서고에서 로스차일드 가문의 문서 상자 29개를 꺼내주고 황제의 연애편지 등을 받으면서 ‘교환’ 형식으로 회복이 이루어졌다. 돌려받은 문헌들은 런던에 있는 로스차일드 문서보관소로 들어갔다. 로스차일드 가문이 이중으로 약 탈당한 기록물을 되찾은 방식은 등가 교환의 형식이었지만,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가 새로 출범한 법에 따라 독일을 제외한 다른 국가나 개인에게 반환하기는 처음이어서 그 의미가 크다.
--- p.152

모나리자, 이 작품이 전쟁 기간에 정확히 어디에 있었고, 어떻게 돌아왔는지와 관련한 이야기는 서로 모순될뿐더러 충돌한다. 전문가들은 전쟁에서 피난하던 이 작품은 1942년 몽토방에서 사라졌다고 추측한다. 루브르에서 출발해 프랑스 전역을 돌아다닌 모나리자는 고품질의 복제품, 즉 가짜이며, 작품이 이동할 때마다 행방을 알린 암호는 사실 나치 독일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명작 약탈에 혈안이 된 나치는 모나리자를 끊임없이 노릴 터이니 가짜 모나리자를 내주어 추적을 차단하려던 고도의 계산이었다는 것이다. 조자르의 의도대로 1942년에 가짜 모나리자가 나치에 강탈당했고, 이것이 결국 알타우제 소금 광산으로 보내졌다는 것이다.
--- p.163

독일 언론은 이들을 ‘마지막 전쟁 포로’라고 일컫는다. 그 포로는 독일을 대표하는 괴테, 루터, 베토벤, 바흐, 실러 등 철학자, 음악가, 시인, 소설가 등이다. 이들의 수기 원고와 악보 등 50만 건 이상을 폴란드가 소장하면서 독일 반환을 거부하고 있다. 독일 국가(國歌)와 유명 저작물의 초판본 등 독일 문화와 지성의 정수로, 가히 국보급이다. 폴란드는 이런 것들이 베를린에서 온 것이라 하여 ‘베를링카 컬렉션’이라 한다. 전쟁이 끝나고 1945년 8월 포츠담 협정으로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선을 정한 ‘오데르-나이세 선’에 따라 그뤼사우가 포함된 독일 동부지역이 폴란드 땅으로 결정되었다. 전후 이곳에 있던 컬렉션을 비밀리에 고스란히 확보한 폴란드 정부는 양도 어마어마하지만, 독일의 대표적 고급 문화유산이었기에 깜짝 놀랐다.
--- p.182~183

폴란드가 반환에 소극적인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의 상처에 여전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처칠과 루스벨트, 스탈린은 폴란드에 대한 독일의 배상은 현금이 아니라 물질과 기반 시설, 식량의 형태로 소련을 통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그러나 소련의 실질적인 배상은 없었다. 아르카디우스 물라르치크 폴란드 집권당 의원이자 의회 배상금 위원장은 “유대인은 보상받았지만, 나이 든 폴란드 국민은 단 1유로도 보상받지 못했다. 이런 것에 매우 신경이 날카롭고, 분노한다”라고 주장한다. 전후 배상과 관련해 폴란드 국민의 이런 정서가 약탈 문화재와 예술품 회복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 p.208~209

전쟁 후, 독일에서 네덜란드로 수많은 작품이 귀환했다. 전쟁 전의 소유자와 그 후손들은 비록 전쟁 기간에 작품 매각 대금의 일부 또는 전부를 받았다 해도 네덜란드 정부에 작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들은 컬렉션은 강요로 판매한 것이며, 국가가 압류하여 가지고 있을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 네덜란드 정부가 예술품을 연합군으로부터 되돌려받는 과정에서 단 한 푼도 지급하지 않았음에도 나치와 그 대리인들이 작품들을 사들이면서 지불한 대금에 해당하는 금액을 요구한 것이다. 네덜란드 정부의 ‘보관 비용’이라 하기에는 너무 지나치다고 그 후손들은 지적한다.
--- p.222

‘문화재 보고(寶庫)’ 이집트 같은 사하라 사막 북쪽 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한 서브 사하라 유물 90퍼센트 이상이 유럽 박물관에 있다. 유럽의 아프리카에 대한 문화재 수탈은 다양한 형태로 이루어졌다. 전리품, 절도, 약 탈 그리고 대다수는 진정한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의 매입 등이 동원되었다. 그 현황을 보면 벨기에의 ‘아프리카 중앙박물관’이 18만 점을 소장하고 있어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박물관 컬렉션의 85퍼센트 이상이 중앙아프리카의 과거 식민지 콩고공화국에서 가져온 것들이다. 박물관의 소장품 일부는 선교사들이 가져왔고, 또 일부는 군사 작전과 약탈의 결과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 p.244

영국 인권 변호사인 로버트슨은 “식민시대의 야만성에 대해 거의 매주 사과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과는 싸구려”이고 “진정한 유일의 사과는 약탈품을 돌려주는 것”이라고 유럽 박물관을 강하게 다그친다. 그는 유럽 박물관들은 폭력적인 식민지 상황을 진지하게 마주 보려 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박물관들은 약탈한 유물에 대해 ‘절반의 진실’과 ‘자화자찬’으로 가득한 설명을 붙여둔다고 비판한다. ‘사부아-사르 보고서’의 공동 저자 베네딕트 사부아는 “유럽 박물관은 이런 유물들이 처음 있었던 곳에서 어떻게 획득했는지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라고 뼈 있는 한마디를 더한다.
--- p.266

마추픽추를 누가 처음 발견했고 그 많은 유물을 가져갔는지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 있지만, 확실한 것은 위대한 마추픽추를 건설한 이들의 후손들은 유적지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의 짐꾼으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추픽추의 잉카 유물 반환은 끝나지 않았다. 그 유물들을 되찾지 못하면 과거를 온전하게 복원할 수 없는 마추픽추는 반쯤은 ‘잃어버린 도시’로 영원히 남을 수밖에 없다.
--- p.297

고대의 국가 영역이 현재의 국경선과 일치하지 않지만, 중국이 자국 영토 내에 있었던 과거의 역사를 모조리 자국 역사로 편입하려고 사실을 왜곡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연구를 하는 것이 동북공정이다. 남북한이 통일되면 일어날 수 있는 영토분쟁 소지를 미리 방지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한다. 역설적이게도 초창기 발해 연구를 주도한 것은 동해를 사이에 둔 일본이다. 일본은 만주에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운 뒤 중국 헤이룽장성 닝안현에 있었던 발해 수도 상경 용천부(上京 龍泉府) 등을 발굴하면서 연구를 주도했다.
--- p.336~337
 

출판사 리뷰

다른 나라의 환수 사례와 고민을 통해서
우리 문화재 회복의 타산지석으로 삼다!


우리 문화유산의 회복을 위해 지속 가능하고 가치 있는 이야기로 전 세계인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있는 (재)문화유산회복재단에서 『돌아온, 돌아와야 할 우리 문화유산??에 이어 『문화재 전쟁: 전쟁과 약탈 그리고 회복??을 기획했다. ‘소유권’을 둘러싼 문화재 반환과 환수의 문제는 바로 “역사적 상처의 치유이고 역사 정의 실현”이라는 ‘회복’의 관점에서 인식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책은 반환과 환수의 문제를 한 차원 높게 확장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서울신문] 국제부를 거쳐 체육부 선임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저자 이기철이 유럽, 미국,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문화 예술품 약탈과 회복 과정을 다룬 국제사회 관련 뉴스와 정보를 총정리했고, 저자 이상근은 우리 역사에서 ‘아픈 손가락’ 발해 유물을 둘러싼 동북아의 역사 전쟁 관련 이야기를 정리했다. 이 책의 출간 의의에 대해 저자 이기철 기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책은 다른 나라의 약탈 문화재와 예술품의 반환과 회복 과정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다른 나라의 환수 사례와 고민을 통해서 우리 문화재 회복의 마중물이랄까 타산지석으로 삼기 위해서다. 우리 문화재의 약탈과 환수 과정은 이미 소개한 도서들이 풍부하기에 되도록 우리의 것은 피하고, 각국의 최근 환수 사례를 소개하면서 현재 진행되는 반환 과정과 그 경향을 무미건조하게 느낄 정도로 사실 위주로 전달하려고 했다. 하지만 약탈과 반환 그리고 회복의 그 드라마틱한 과정은, 흥미를 빼려야 뺄 수 없었다.”

이처럼 저자가 국제부에서 쌓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약탈 문화 예술품과 관련된 자료들을 모으고 갈무리하면서 비로소 생명을 얻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하게 되었다.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예술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와 함께 관련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곁들였고, 앞으로 문화유산의 회복과 가치 발굴을 이끌어갈 미래세대의 눈높이에 맞춰 누구나 흥미있게 다가갈 수 있게 서술했다. 저자가 표현했듯이, 문화재 환수는 창조자들이 만든, 있어야 할 곳으로 되돌아가는 제자리 찾기라는 도덕적 당위성뿐만 아니라 약탈에 스며든 역사적 핏빛 폭력과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쓰다듬는 힐링의 길이기에 이 책의 출간이 더욱 의미 있다.

나치 약탈 부대 ERR, 소련의 트로피 여단
그리고 이들을 쫓는 모뉴먼츠 맨의 활약을 담다!


인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이고 치욕적인 전쟁으로 기록된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의 문화 예술품 약탈과 관련하여 독일, 미국, 소련이 마치 삼국지를 방불케 하는 쫓고 쫓기는 문화 예술품 약탈과 그 반환 과정에 얽힌 사건들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미술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것으로 알려진 히틀러는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품을 ‘퇴폐 예술’로 낙인찍었고, 개인 미술관을 장식할 목적으로 ‘로젠베르크 제국 사령부(ERR)’에 예술품 약탈 권한을 부여했다. ERR가 조직적으로 거둬들인 약탈품은 1940년 11월에서 1944년 7월까지 파리의 개인 컬렉션 203곳에서만 2만 1903점에 이른다고 한다. 이에 맞서 전쟁 역사상 최초로 편성된 ‘기념물, 예술품, 기록물 지원부대(MFAA)’는 나치가 숨긴 500만 점에 이르는 보물찾기에 나서면서 예술품들을 제자리에 돌려보내는 등 이들의 활약을 소재로 영화 ‘모뉴먼츠 맨’이 제작되기도 했다.

총통미술관 구상에서 비롯된 히틀러의 광적인 문화 예술품 약탈에 관여한 인물들과, 약탈된 문화 예술품의 과거 합법적 소유자들이나 그 후손들이 회복을 주장하는 근거와 증거를 소개하는 여러 사례도 눈여겨볼 만하다. 또 약탈한 그림과 조각, 공예품을 비롯해 도서관 장서, 가구와 동전, 무기 등과 대량의 금괴(2017년 가치로 환산하면 10억 유로 상당)를 온도와 습도가 자동으로 일정하게 유지되고 미생물의 공격을 막는 천연 저장고인 소금 광산에 숨긴 나치 행위가 결과적으로 그 문화 예술품들을 보호한 셈이라는 사실이 참 아이러니하다.

나치에 당한 만큼 “모든 것을 다 가져오라”는 스탈린의 특명에 따라 소련 전리품 부대 ‘트로피 여단’이 꾸려졌다. 이들의 가장 중요한 수집 대상은 독일의 산업 시설과 전략 물자들로, 이런 것을 소련으로 옮기는 것이었지만 예술품도 그 대상이었다. 트로피 부대가 약탈한 주요 대상물은 미적 가치가 거의 없는 청동 제품으로, 나중에 모스크바에서 다 녹여버렸다.

소련이 미국과 영국 등이 모르게 운영한 전리품 부대는 두 진영의 불신이 시작된 냉전의 출발이었다. 소련은 1945년 베를린에서 가져간 제우스 신단(페르가몬 제단)을 1958년 동독에 반환하면서 문화재 반환 원칙을 철저히 체제 우월의 선전 도구, 외교 카드로 삼았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전리품 국유화를 선언했지만, 전리품 부대가 약탈한 약 4만 건의 문서가 들어 있는 금융 가문 로스차일드의 기록물 ‘금융 왕조의 실록’을 등가 교환 형식으로 돌려주면서 반환의 실마리를 풀었다. 러시아는 여전히 100만 점 이상의 제2차 세계대전 전리품을 보유한 ‘약탈품 대국’이다.

모나리자를 비롯한 명작 구출 작전과
종전 후 반환과 회복에 얽힌 이야기를 풀어내다!


그때나 지금이나 최고의 미술품으로 꼽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지존’ 모나리자는 어떻게 나치 약탈의 마수를 피할 수 있었을까? 그 미소만큼이나 베일에 가린 그녀의 전시 행적도 따라간다. 모나리자는, 루브르 직원들이 암호로 역정보를 흘려 나치로부터 지켜내는 데 성공한다. 이들이 소장품을 안전하게 지키려고 기울였던 노력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 문화재 보호 활동에 나섰던 국립박물관 서울 본관 직원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총성과 포성이 울리는 급박했던 상황에서 한국 최초의 미술 전문기자인 이구열 선생이 경복궁과 덕수궁 박물관에 소장된 문화재의 전시 소개(疏開) 과정을 연재한 1972년도 [서울신문] 기사를 간추려 실었다.

문화재 약탈로 홍역을 치른 지구촌이 최근 반환에 나서는 분위기가 확연하지만, 여전히 해결해야 할 숙제도 남아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공습에 대비해 격납해 두었던 국보급 문화재 50만 점을 폴란드로부터 돌려받는 데 애로를 겪고 있다. 독일 문화와 지성의 정수를 이룬 괴테, 모차르트, 루터 등의 수기 원고와 악보가 폴란드에 남아 있다. 독일은 ‘전쟁의 마지막 포로’라고 부르며 환수를 추진하지만, 폴란드와의 협상은 겉돌고 있다.

일본 역시 일본의 기업가 마쓰카타 고지로가 1910~1920년대에 구입한 고흐, 세잔, 모네, 쿠르베 등의 작품 14점을 프랑스가 돌려주지 않아 속앓이를 하고 있다. 이웃 나라를 침략해 온갖 것을 약탈한 독일과 일본이 역설적으로 문화재와 예술품을 상실한 다른 나라의 아픔을 절감하고 있다. 다른 나라의 미술관과 박물관에 버젓이 내걸린 자국 소유의 문화 예술품들을 보는 독일과 일본 국민의 심경은 어떨까? 식민지를 경험한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약탈 문화재 반환 목소리가 거세다. 남미의 페루는 국가적으로 환수 운동을 펼쳐 마추픽추 유물을 돌려받았다. 미국 국토안보부와 FBI는 인류 최고(最古)의 서사시인 ?길가메시?가 새겨진 점토판을 이라크에 돌려주려 한다.

우리 역사에서 ‘아픈 손가락’ 발해 유물은 역사 전쟁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중국이 일본 왕궁에 자리한 발해 시대의 석비 ‘홍려정비’ 환수를 추진하는 속뜻은 역사를 자국의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의도, 즉 발해의 역사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데 있음을 놓치지 않는다. 탄탄한 구성과 풍부한 사례가 담긴 이 책은 문화 예술품 약탈이라는 시선으로 세계사의 흐름을 읽는 흥미로운 역사 교양서로, 미래세대인 청소년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새로운 울림을 안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