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두 달 만에 발발해 국내는 물론 국제 사회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1948년 10월 19일 전남 여수에 주둔한 제14연대는 4·3사건의 제주도 파병을 거부하고 봉기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여수와 순천 지역을 점령해버렸다. 일부 지역 주민들도 봉기에 가담했다. 이에 이승만 정부는 7개 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섰다. 미군도 진압에 합류했다. 그 과정에서 봉기한 군인들은 물론 많은 주민들이 무고하게 희생을 당했다. 사건은 1주일 만에 종료됐으나 후유증은 두고두고 이어졌다. 우익 세력의 '손가락 총'에 지목되기만 하면 혐의자들은 즉석에서 참수되거나 군법회의에 넘겨졌다. 자세한 조사도 없었고, 제대로 된 재판 또한 이뤄지지 않았다. 이후 침묵과 고통은 70년이 넘도록 강요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