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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정치적 리더십

동방박사님 2022. 4. 25. 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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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제1장│들어가며
1. 안창호 리더십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2. 이 책의 개요

제2장│기존연구의 특징과 평가
1. 개관
2. 전기와 평전
3. 안창호 교육사상에 관한 연구
4. 독립운동가 안창호에 관한 연구
5. 안창호 정치사상에 관한 연구
6. 인물비교 연구
7. 흥사단에 관한 연구
8. 안창호 리더십에 관한 연구

제3장│새로운 ‘독립운동가 리더십’ 모델을 위하여
제1절 무장한 예언자와 비무장 예언자
제2절 카리스마의 원천
제3절 거래 리더십과 변환 리더십

제4장│안창호의 정치 비전 배경과 형성
제1절 근대화 실패와 왕조 몰락: 국내 배경
제2절 근대국가 일본의 침략 제국주의: 국제 배경
제3절 안창호의 정치인식 형성: 사명의 발견

제5장│안창호의 비전과 전략: 정치 리더십의 형성과 그 한계
제1절 비무장 예언자의 시대: 한계의 인식
제2절 변환 리더십의 단초: 민주공화제
제3절 대공주의: 이상주의자의 소프트 파워

제6장│비전 구현을 위한 실천: 적과의 투쟁과정
제1절 적(彼)의 논리와 그 귀결: 일제 팽창과 조선 압제의 심화
제2절 안창호(己)의 대응논리 I - 베버의 ‘열정’:국내 개화와 계몽운동
제3절 안창호(己)의 대응논리 II - 통합 리더십:미주 한인사회 개척과 통합
제4절 통합 리더십의 실패: 중국에서의 독립 투쟁
1. 대한민국임시정부: 통합을 위하여
2. 연통부와 교통국: 국내 통합을 위하여
3. 국민대표회의: 다시 통합을 위하여
4. 흥사단원동위원부: 내부 단결의 도모
5. 이상촌건설운동과 동명학원: 다시 문화 투쟁으로
6. 민족대당촉성운동: 좌우통합 연합전선 촉구
7. 한국독립당: 통합 이념의 기초

제7장│안창호의 정치 리더십에 대한 평가
1. 리더십의 비극
2. 하드 파워 없는 소프트 파워
3. 열정의 변환 리더십, 그러나 유교의 굴레
4. 확고한 신념과 전술 부재(不在)의 부정합(不整合)
5. 통합 리더십, 독립운동세력의 공통 한계
6. 비무장예언자의 투쟁방편: 교육, 조직관리, 민주주의
7. 비무장예언자
8. 안창호의 정치 리더십 재평가

제8장│맺는말

부록│논문개요
부록│Abstract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이영석 (李永錫)
 
現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초빙교수 “통일한국과 사회통합연구” 강의(2015~) 2015년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정치학박사학위 취득학위논문: “안창호의 정치적 리더십 연구: 비무장 카리스마적 변환의 리더십 모델을 중심으로” 2004년 고려대학교 정책대학원 CRO과정 1기 수료서울대학교 자연대학교 과학 및 정책최고위과정 수료(SPARC 4기)수료논문: “6시그마 방법론을 활용한 ...
 

출판사 리뷰

[머리말]

그리스 역사가 투키디데스(Thucydides, B.C. 460경~B.C. 400경)는 후대에 『펠로폰네소스 전쟁사』(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로 알려진 자신의 저서 제목을 Eternal Possession(영원한 자산)이라 하고 서문에 자신의 책이 후세에 영원한 교훈서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기록했다. Thucydides, [History of the Peloponnesian War. English], The landmark Thucydides: a comprehensive guide to the Peloponnesian War, ed., Robert B. Strassler, trans., Richard Crawley(1840-93) published in 1874, New York: Free Press A Division of Simon & Schuster, Inc., 2008, p 16. 투퀴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역, (고양: 도서출판 숲, 2011), p. 45. 같은 의미로 저자는 독립운동을 하신 저자의 할아버지 이기준(李麒俊, 1891~1927)님께서 손자인 저자에게 애국심과 애족정신이라는 ‘영원한 사명감’을 남기셨다고 여겼다.

평북 운산 출생이신 할아버님께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독립자금을 지원하셨고, 동지들과 함께 더 많은 독립운동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평양감옥에서 옥고를 치르셨다. 국가보훈처, “이기준”, 독립유공자 공훈록, 공훈전자사료관. 요약 내용은 “이기준은 …1920년 6월 이래…독립운동자금 3,610원을 모집하여 평북 독판부로 보내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21년 6월 18일 평양복심법원에서 이른바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을 받고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후에 중국에서 해외 독립운동을 하다 다시 체포되어 결국 톈진(天津)감옥에서 고문으로 순국하셨다는 말씀을 어릴 적부터 아버님으로부터 듣고 성장했다. 아버님은 선대의 공훈으로 후대가 보상받으면 안 된다며 국가유공자 신청을 하지 않으셨다. 그 말씀을 당연히 여기며 성장한 저자는 20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보상을 바라지는 않으나 장차 결혼 후 자녀를 낳으면 후손들에게 조상님의 독립운동 공훈을 자긍심과 애국심으로 남겨주고 싶다는 생각을 갖기 시작했다. 이후 아버님도 돌아가시고 사회생활에 바쁜 나머지 조부님의 공훈 찾기는 하나의 큰 숙제로만 남아있었다.
저자 나이 50대에 들어 사업도 안정되면서 할아버님의 숭고하신 뜻을 손자인 저자가 기리고 이어가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늘 고민해 왔다. 그 중의 하나가 2012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사랑의 열매) 아너소사이어티 회원(156호) 가입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은 할아버님의 독립운동 발자취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인터뷰에서 아너소사이어티 가입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저자는 독립자금을 지원하신 할아버님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는 대답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독립기념관과 국가보훈처와의 연계를 통한 독립유공자 공훈 발굴 과정에서 당시 매일신보(1921.4.11)와 동아일보(1921.5.1 / 1922.3.5) 기사 자료와 함께 할아버님의 소중한 독립운동 증거 자료를 발견했다. 할아버님의 평양감옥 수감기록인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가 지문이 날인된 채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톈진감옥 기록과 중국에서 함께 독립운동하신 분들의 자료는 앞으로 찾고자 한다). 이때 벅차오르는 감동과 함께 좋은 일을 하면 하늘이 돕는다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절감했다. 결국 2014년 3·1절 기념행사에서 독립투사였던 할아버님께서 순국하신 지 10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 받을 수 있었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에 대한 수많은 국가 혜택들이 있었지만, 저자의 형제들은 연령이 많이 들어 혜택을 받을 기회들은 이미 지나갔다. 결국 아버님 말씀대로 국가의 큰 보상은 받지 않은 채 국가에서 매달 지급하는 적은 금액의 보상금만을 받지만 큰 영광을 얻게 되었다. 이때부터 매달 모은 보상금은 선대의 뜻을 이어가기 위한 (사)한국지정학연구원의 2016년 창립 기금의 씨앗이 되었다. 그리고 통일부의 사단법인 허가를 받아 통일에 관한 연구를 하는 후배 학자들을 위한 저자의 후원금에 비록 작은 보탬이지만 지금까지도 가치 있게 쓰이고 있다. 그 외에 재산과 목숨을 조국에 바치신 할아버님의 숭고하신 뜻을 받들어 저자는 2013년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사후 유산기부 서약을 했고 환갑, 진갑을 넘긴 2017년에는 어머님과 가족들의 동의를 받아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 사후 시신기증 등록(등록번호: 6787)을 했다.
할아버님의 유지를 이어가기 위한 또 하나의 새로운 시도는 뒤늦게 시작한 공부였다. 할아버님께서 영향을 받으셨으리라 여겨지는 선각자 도산 안창호 선생과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독립운동에 관해 공부하며 도산의 정치적 리더십을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선정했다. 우리는 100년 전에는 조국의 독립, 그리고 지금은 조국의 통일이라는 시대 목표를 갖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분열과 갈등이 걸림돌이다. 100년 전 도산 안창호는 조국 독립을 이루고 새로운 정치질서인 공화주의 근대 민족국가를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도산은 분열과 갈등을 통합 리더십으로 극복하고자 했지만, 당시 현실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그 현실의 벽은 지금도 공고하게 버티고 있다. 저자는 그 원인 분석과 해결책 연구를 통해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국가창업인 ‘통일한국’ 시대가 요구하는 통일 리더십을 제시하고 싶었다.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약간 수정 보완해 펴낸 것으로 모두 8장으로 이루어졌으며 각 장의 구성과 내용은 본문 제1장에서 개략적으로 소개했다. 결론은 도산 안창호의 정치 리더십의 특징을 종합하고 평가하며 그가 남긴 애국심의 유산과 오늘에 주는 함의를 제시하고자 했다.

이 책의 근간이 된 박사학위논문 탄생에 산파 역할을 해주신 분이 강성학 지도교수님이시다. 강성학 교수님은 2008년 저자가 모교 고려대학교 일반대학원 정외과 석박사통합과정 입학 시 정외과 학부 시절에 배웠던 교수님들 중 유일하게 원로 교수님으로 남아 계셨다. 대학 졸업 후 25년 만에 나이 오십 넘어 다시 공부를 시작한 늦깎이에게 격려와 동정보다는 좋은 논문 아니면 쓸 생각을 말라는 엄격한 말씀으로 일관하셨다. 일주일 밤새워 여러 쪽의 논문 초안을 제출하면 거의 모든 내용이 빨간 줄로 삭제되고 겨우 몇 줄들만이 살아남았다. 너무나 허탈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런 과정의 반복으로 살아남은 그 몇 줄들이 모이고 모여 드디어 2015년 박사학위논문으로 탄생했다. 학위논문 심사 통과 때 책으로 출판하라는 칭찬과 격려에 덧붙여 경계의 말씀도 주셨다. 박사학위는 운전면허증과 같으니 이제부터 자신의 주장을 발표할 수는 있지만, 초보운전에 불과하니 겸손하라는 값진 말씀을 저자는 지금도 항상 되새기고 있다. 박사학위 취득 이후 지금까지도 저자의 부족한 학문적 지식과 소양을 지속적으로 충전해 주신다. 향후 제2의 탄생을 추구하는 저자의 목표 달성을 위한 가르침을 계속 베풀어 주시는 ‘영원한 스승’ 강성학 교수님께 저자 탄생의 근원이신 조부모님, 부모님에 이어 감사드린다.
정치학을 전공한 저자에게 논문 작성 초기에 큰 걸림돌이 있었다. 그것은 도산 안창호의 리더십에 관한 주제의 연구 가치 여부와 독립운동에 관한 자료와 학식의 부족이었다. 때마침 개최된 도산학회 주최의 도산 학술 세미나에 참가해 윤경로 도산학회장님께 처음 인사드리고 이를 여쭤보았다. 처음에는 도산에 관한 연구는 역사학계에 이미 많아 더 할 게 없다며 의아해하셨다. 그러다 저자의 전공이 정치학임을 아시고는 큰 관심을 보이셨다. 정치학 관점의 리더십에 관한 도산 연구가 아직 없어 좋은 주제가 될 것이니 잘 해보라는 격려 말씀을 주셨다. 윤경로 도산학회장님의 이 말씀으로 자신감을 얻어 도산 리더십을 박사학위논문 주제로 정하게 되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더 큰 걸림돌이 있었다. 정치학계에 리더십에 관한 연구는 많지만, 안창호와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는 전무해 참고 자료가 전혀 없었다. 운 좋게도 2010년 1학기에 고려대학교 한국사학과 대학원에 독립운동사 연구의 권위자이신 국민대학교 장석흥 교수님의 ‘일제시대의 민족운동사 I’가 개설되었다. 이 수업을 통해 처음 만난 장석흥 교수님으로부터 독립운동에 관한 큰 맥락과 상세한 역사 사실을 배웠다. 이때 인연이 맺어진 장석흥 교수님은 수강 이후에도 박사학위논문 완료 시까지 도산과 독립운동에 관한 수많은 자료를 제공해 주셨다. 특히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소장 겸임 시절에 보내주신 『한국독립운동의 역사』 전 60권은 학위논문의 큰 자산으로 활용되어 여러 각주에 반영되었다. 이 책에 게재된 모든 사진 역시 장석흥 교수님이 제공해 주신 것들이다. 그 덕분에 책의 모양새가 독자들에게 더욱 친밀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동갑내기 친구이자 인생의 동지가 된 장석흥 교수님께 재차 감사드린다. 그리고 앞에 언급한 세 분과 함께 학위논문 심사위원으로 두 차례나 심사해 주신 정외과의 김병곤 교수님, 김동훈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그 외 감사드릴 분들이 너무나 많지만 지면 관계상 몇 분들께만 간략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자의 정외과 후배이지만 선학으로서 논문 작성에 기술적인 조언을 해 준 이웅현 박사님과 신희섭 박사님께도 감사드린다. 함께 대학원에서 동문수학했던 아들딸 뻘 되는 기라성 같은 인재들로부터 받은 학문 열정과 젊은 에너지는 큰 힘이 되었다. 이들은 장차 통일한국을 준비하고 이끌어 나갈 지도자가 되리라 기대한다. 또 다른 형태의 에너지를 준 고마운 친구들이 있다. 야간 특수대학원이 아닌 일반대학원에서 어려운 원서 강독 수업과 엄청난 양의 과제물, 중간고사, 기말고사, 종합시험, 학위논문 자료 수집, 학위논문 작성 등등 힘들고 지칠 때 시원한 생맥주로 활력소를 불어넣어 주고 격려해준 40여 년 지기 윤문권을 비롯한 권재창, 김병량, 정창덕-이들을 저자의 야간 지도교수님이라 칭했다-께도 감사드린다. 친구들이 학교 앞까지 원정와서 응원해 준 터전인 학교 앞 생맥주 집의 이성빈, 안진경 부부 사장님께서 베풀어 주신 한 쪼끼 따뜻한 마음도 큰 활력소가 되었음에 감사드린다. 도산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외국인 Arthur Leslie Gardner의 박사학위논문 “The Korean Nationalist Movement and An Ch’ang Ho, Advocate of Gradualism”(University of Hawaii, 1979)을 미국 도서관에서 복사 제본하여 보내 주신 『버드나무 그늘 아래: 도산 안창호의 딸 안수산 이야기』 저자이신 존 차(John Cha, 차학성) 재미작가님께도 이제야 감사드린다. 박인주 흥사단 전 이사장님과 강남대 박의수 명예교수님, 전남대 박만규 교수님,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김용달 전 수석연구위원님을 비롯해 도산 관련 여러 자료를 제공해 주신 그 외 여러분들께도 감사드린다. 도산 안창호와 독립운동에 관한 연구와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역사학계의 학자 및 연구자님들께는 저자 논문의 각주를 통해 그간의 학문적 노고에 대한 감사의 뜻을 전해드린다.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이 책으로 출판되기까지 고마우신 분들이 있다. 최우선으로 출판 권유와 함께 박영사를 섭외해 주신 강성학 지도교수님께 감사드린다. 당초 박사학위 취득 직후인 2015년에 출판 권유를 하셨는데 저자의 바쁜 일정을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게으름 와중에도 계속 출판을 독촉하셨다. 은근히 부담되었지만 그 독촉과 부담이 없었다면 아직도 출판을 못 했을 것이다. 이번 출판하기까지 오래 기다려 주신 박영사의 조성호 이사님과 세밀하고 친절하게 정성스런 교정과 편집을 해주신 편집부의 조보나 대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2015년 출판을 결심했던 당시 박사학위논문을 정독해보니 문장 구성에 불필요한 접속사가 너무 많고 곳곳에 오자도 발견되었다. 이를 윤문 교정해 주신 고려대 국제어학원 윤희기 교수님께도 감사드린다. 2008년 당시 대학원 첫 학기에 수강한 학위 취득 자격을 위한 영어 과목의 교수님으로, 여러 번역서도 낸 작가이며 영문학자로서 따뜻한 인품을 가지신 분이다. 이분의 도움으로 문장이 훨씬 부드러워졌다. 그 고마움에 예의상 약소한 인사를 드리려 했으나 한사코 거절해 학교 앞 생맥주 정담으로 대신했었다. 책 출판에 즈음해 다시금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끝으로 공부 기간 내내 회사를 경영하고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영원한 반려자’ 강정임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두 아들 동호, 동현과 며느리 강청, 손자 승규, 손녀 승주에게는 저자의 박사학위가 엄마이자 할머니이신 강정임 여사와의 공동 학위임을 다시금 상기시키고자 한다.

2018년은 “죽더라도 혼이 있다면 독립운동은 계속할 것”이라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탄신 140주년이자, 서거 8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다. 대한민국의 미래는 사회적 통합과 남북한 통일에 달려있다. 이 막중한 시대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도산의 리더십과 그가 남긴 애국심의 함의를 찾고자 한다. 모쪼록 이 책이 새로운 ‘통일한국’을 창업할 차세대 통일 리더들의 지침서가 되기를 소망한다.

2018년 10월
이 영 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