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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외세의 침략과 시대의 엄혹한 압박에 굴하지 않고 온 몸을 내던진
어윤중의 삶과 역사에 대한 김태웅 교수의 역사평설
이 책은 한국 근대개혁기 재정 문제를 비롯해 국내외 정치와 경제사회 현안을 해결하려다가 비명횡사한 어윤중(魚允中, 1848~1896)의 일대기를 사료에 입각하여 서술한 역사평설이다. 어윤중의 생애를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풍부한 자료를 동원하고 어윤중 관련 유적지를 직접 답사함으로써 교과서를 비롯해 학계가 외면한 어윤중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복원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윤중과 시대의 만남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여러 인물들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가를 서술하고 싶었다. 그의 개인적 고뇌와 엄혹한 시대의 긴장 어린 대화를 듣고자 했다.”고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저자가 어윤중의 일대기를 복원하는 데에는 어윤중 자신이 갑오개혁 직전에 남긴 『종정연표』가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었다. 이는 어윤중의 개혁관료로서의 활동을 연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의 생애를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또한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는 『종정연표』가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있는 틈새를 메우는 데 매우 적절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어윤중의 삶과 역사에 대한 김태웅 교수의 역사평설
이 책은 한국 근대개혁기 재정 문제를 비롯해 국내외 정치와 경제사회 현안을 해결하려다가 비명횡사한 어윤중(魚允中, 1848~1896)의 일대기를 사료에 입각하여 서술한 역사평설이다. 어윤중의 생애를 생생하게 재현하기 위해 풍부한 자료를 동원하고 어윤중 관련 유적지를 직접 답사함으로써 교과서를 비롯해 학계가 외면한 어윤중의 삶과 역사적 의미를 총체적으로 복원한 첫 사례이기도 하다.
저자는 “어윤중과 시대의 만남을 씨줄과 날줄로 엮어 여러 인물들이 총체적 난국을 어떻게 헤쳐 나가며 다음 세대에 무엇을 남기고자 했는가를 서술하고 싶었다. 그의 개인적 고뇌와 엄혹한 시대의 긴장 어린 대화를 듣고자 했다.”고 저술의도를 밝히고 있다.
저자가 어윤중의 일대기를 복원하는 데에는 어윤중 자신이 갑오개혁 직전에 남긴 『종정연표』가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되었다. 이는 어윤중의 개혁관료로서의 활동을 연표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어 그의 생애를 복원하는 데 매우 중요했다. 또한 『고종실록』, 『승정원일기』 등 연대기 자료는 『종정연표』가 미처 말하지 못하고 있는 틈새를 메우는 데 매우 적절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목차
프롤로그: 왜 어윤중인가?
1. 난세의 시대
가세의 몰락과 민란의 도래
-봉기하는 백성과 마주하다
가학을 통해 계승한 실학사상
-가문의 영광을 되찾다
2. 격변의 시대
내수자강을 통한 문명개화
-새로운 학풍과 법고창신에 눈뜨다
지방관으로 명성을 떨치다
-법은 법대로, 사건은 사건대로
일본과 중국을 시찰하며 꿈꾼 부국강병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다른 뜻이 없느냐?
3. 임오군란의 수습과 서북경략사 활약
개화정책에 대한 불만과 군중의 봉기
-임오년 정월, 하늘을 스쳐 간 흰 빛깔의 기운
서북경략사가 되어 변경을 안정시키다
-조선 역사상 최장기 시찰 기록
4. 재기의 꿈을 꾸었으나 183
갑신정변의 유탄과 재기의 발판이 된 동학
-어윤중과 급진 개화파의 동상이몽
소용돌이 정국에 우뚝 선 탁지부 대신
-개혁의 칼날을 들다
갑오개혁의 중심에 서서
-차관을 통한 경제개발계획의 최초 입안자
반개화파의 반발과 어윤중의 의문사
-원한설과 역적설을 둘러싼 죽음의 내막
에필로그: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 시무개혁관료의 삶
주석 289
참고문헌 333
찾아보기 343
1. 난세의 시대
가세의 몰락과 민란의 도래
-봉기하는 백성과 마주하다
가학을 통해 계승한 실학사상
-가문의 영광을 되찾다
2. 격변의 시대
내수자강을 통한 문명개화
-새로운 학풍과 법고창신에 눈뜨다
지방관으로 명성을 떨치다
-법은 법대로, 사건은 사건대로
일본과 중국을 시찰하며 꿈꾼 부국강병
-일본이 우리나라에 대해 다른 뜻이 없느냐?
3. 임오군란의 수습과 서북경략사 활약
개화정책에 대한 불만과 군중의 봉기
-임오년 정월, 하늘을 스쳐 간 흰 빛깔의 기운
서북경략사가 되어 변경을 안정시키다
-조선 역사상 최장기 시찰 기록
4. 재기의 꿈을 꾸었으나 183
갑신정변의 유탄과 재기의 발판이 된 동학
-어윤중과 급진 개화파의 동상이몽
소용돌이 정국에 우뚝 선 탁지부 대신
-개혁의 칼날을 들다
갑오개혁의 중심에 서서
-차관을 통한 경제개발계획의 최초 입안자
반개화파의 반발과 어윤중의 의문사
-원한설과 역적설을 둘러싼 죽음의 내막
에필로그: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 시무개혁관료의 삶
주석 289
참고문헌 333
찾아보기 343
출판사 리뷰
추운 겨울 2월의 어느 날, 한 정부 관리의 미스터리한 죽음!
윤치호는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박은식은 “결단성이 있어 강직한 신하가 되었다가, 죽임을 당하여 많은 사람이 슬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 개혁관료 어윤중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 근대사의 숨겨진 시무개혁관료, 어윤중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한국근대사에서 순수와 열정을 넘어 현실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함으로써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생존, 민생의 안정을 도모한 인물은 과연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김옥균은 조급하게 개혁을 추진하다 좌절한 풍운아로서 결과적으로 일본 침략의 길을 열어주었고, 한때 변혁을 꿈꾼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전봉준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기에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어윤중을 떠올린다. 임오군란을 수습하고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간도땅이 조선의 영토임을 확신했으며, 지방 재정의 안정화를 위한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동학도들을 인정한 최초의 조정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윤중은 아관파천 때 횡사한 데다가 후손들이 살아온 이력마저 별로 남아 있지 못하다. 그가 여타 인물들과 달리 문집조차 남기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심지어 무덤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잊혔다.
어윤중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온당한 것일까?
-어윤중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우리 역사책에서도 어윤중을 다루는 비중은 낮은 편이다. 온건 개화파라든가 심지어 친청파라는 달갑지 않은 명명이 그의 활동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에 비해 빛이 바라게 했으며 국사 교과서에서도 김옥균 등을 높이 치켜세우는 반면에 어윤중, 김윤식, 김홍집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한국 근대개혁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낮게 평가된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이 조급했다는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근대개혁운동으로 높이 평가되는 반면에 어윤중 등 이른바 온건 개화파의 활동과 노선은 민씨정권에 대항하지 못하고 청국의 보호에 안주함으로써 변혁운동의 무기력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학계의 주류가 사대-독립, 보수-개화라는 이항대립 구도에 입각하여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애국계몽운동이라는 기본 틀에서 근대민족운동을 파악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윤중은 근대개혁과 주권 수호를 위해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동분서주했으며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암행어사와 서북경략사로 활약했다. 특히 1883년 서북경략사로 파견되어 함경도 재정개혁을 추진했고 여기서 얻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갑오개혁기 국가재정개혁에 확대, 적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세체계를 혁신하였음은 물론 중세 재정체계를 근대 재정체계로 전환시켰다. 즉 그는 서북경략사로서 평안도와 함경도를 순찰하면서 환곡을 혁파하여 지방관아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경험을 살려 국가 재정체계를 일신하고 근대개혁의 물적 토대를 갖추고자 했다. 당시 서북경략사로서 어윤중의 행보는 조선역사상 최장기 시찰기록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경을 획정하는 감계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 어윤중은 당시 국경의 실태를 조사하고 문헌 검토를 거친 다음 두만강 이북의 땅이 조선의 영토임을 확신했다.
즉 어윤중은 우리나라 근대개혁기 ‘재정개혁의 설계자’로서 일본과 청나라를 드나들며 국제정세를 익히고 갑오개혁의 중심에서 조세개혁과 경제 근대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정세의 새로운 변화와 국내외 현재적 여건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국가 진로의 목표와 민족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실무 역량을 발휘한 시무개혁관료로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윤치호는 “그는 죽은 사람들 가운데 내가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말했고, 박은식은 “결단성이 있어 강직한 신하가 되었다가, 죽임을 당하여 많은 사람이 슬퍼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살아간 한 사람의 이야기, 시대를 앞서간 엘리트 개혁관료 어윤중의
삶을 들여다본다.
한국 근대사의 숨겨진 시무개혁관료, 어윤중
이 책의 문제의식은 한국근대사에서 순수와 열정을 넘어 현실의 모순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실질적으로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여 집행함으로써 국가의 이익과 민족의 생존, 민생의 안정을 도모한 인물은 과연 없을까?라는 물음에서 비롯한다. 그도 그럴 것이 근대화의 선각자로 불리는 김옥균은 조급하게 개혁을 추진하다 좌절한 풍운아로서 결과적으로 일본 침략의 길을 열어주었고, 한때 변혁을 꿈꾼 청년들의 우상이었던 전봉준은 현실의 장벽을 뛰어넘기에 정치적, 사회적 기반이 열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어윤중을 떠올린다. 임오군란을 수습하고 백두산정계비를 기준으로 간도땅이 조선의 영토임을 확신했으며, 지방 재정의 안정화를 위한 과감한 개혁을 시도하고 동학도들을 인정한 최초의 조정 관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윤중은 아관파천 때 횡사한 데다가 후손들이 살아온 이력마저 별로 남아 있지 못하다. 그가 여타 인물들과 달리 문집조차 남기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심지어 무덤조차 알려져 있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잊혔다.
어윤중에 대한 학계의 평가는 온당한 것일까?
-어윤중에 대한 재평가의 필요성
우리 역사책에서도 어윤중을 다루는 비중은 낮은 편이다. 온건 개화파라든가 심지어 친청파라는 달갑지 않은 명명이 그의 활동을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에 비해 빛이 바라게 했으며 국사 교과서에서도 김옥균 등을 높이 치켜세우는 반면에 어윤중, 김윤식, 김홍집에 대한 인식과 그들이 한국 근대개혁기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여전히 낮게 평가된다. 김옥균 등 급진 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이 조급했다는 비판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주적인 근대개혁운동으로 높이 평가되는 반면에 어윤중 등 이른바 온건 개화파의 활동과 노선은 민씨정권에 대항하지 못하고 청국의 보호에 안주함으로써 변혁운동의 무기력한 결과를 초래했다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이는 학계의 주류가 사대-독립, 보수-개화라는 이항대립 구도에 입각하여 갑신정변-갑오개혁-독립협회-애국계몽운동이라는 기본 틀에서 근대민족운동을 파악하려는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윤중은 근대개혁과 주권 수호를 위해 중국과 일본을 드나들며 동분서주했으며 민생의 안정을 도모하고 적폐를 해소하기 위해 암행어사와 서북경략사로 활약했다. 특히 1883년 서북경략사로 파견되어 함경도 재정개혁을 추진했고 여기서 얻은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갑오개혁기 국가재정개혁에 확대, 적용함으로써 우리나라 조세체계를 혁신하였음은 물론 중세 재정체계를 근대 재정체계로 전환시켰다. 즉 그는 서북경략사로서 평안도와 함경도를 순찰하면서 환곡을 혁파하여 지방관아 재정의 안정을 도모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러한 경험을 살려 국가 재정체계를 일신하고 근대개혁의 물적 토대를 갖추고자 했다. 당시 서북경략사로서 어윤중의 행보는 조선역사상 최장기 시찰기록으로 남아 있다. 뿐만 아니라 당시 국경을 획정하는 감계활동으로 두각을 나타내 어윤중은 당시 국경의 실태를 조사하고 문헌 검토를 거친 다음 두만강 이북의 땅이 조선의 영토임을 확신했다.
즉 어윤중은 우리나라 근대개혁기 ‘재정개혁의 설계자’로서 일본과 청나라를 드나들며 국제정세를 익히고 갑오개혁의 중심에서 조세개혁과 경제 근대화를 추진했던 인물이다. 정세의 새로운 변화와 국내외 현재적 여건을 냉철하게 인식하는 가운데 국가 진로의 목표와 민족의 생존 전략을 세우고, 민중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의 실무 역량을 발휘한 시무개혁관료로서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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