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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역대 황제 평전

동방박사님 2022. 5. 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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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청나라 역대 황제 12명의 통치시대를 끝으로 근대 중국이 시작된다

누르하치가 건국한 후금을 포함하면, 청나라는 12대 황제, 296년을 지속했다. 청나라의 역대 황제들은 명나라 황제들에 비해 왕조를 망칠만큼 무능하거나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다. 그들은 대부분 제왕의 교육을 충분히 받고 선정을 베풀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했으며, 어떠한 허례허식도 배격하고 실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럼에도 청나라가 망한 결정적 이유는 무엇인가.

아편전쟁 이후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의 시대에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중국은 서구 열강에게 처절하게 유린될 수밖에 없었다. 중국 3000년의 봉건 역사와 유가 문명의 약점이 서구 문명과 충돌하면서 여지없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먹는 것을 하늘로 삼는’ 백성은 피지배자로 자각의 주체가 될 수 없는 존재였다. 개인의 자각을 통한 인권의 가치를 인식하고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 되는 민주제도를 완성한 서양의 민주적 관계를 유가의 종속적 관계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었다.

또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청나라의 발목을 잡았다. 청나라 황제들은 하늘 밖에 또 다른 하늘이 있음을 알지 못했으며, 설사 알고 있었더라도 애써 외면했다. 청나라가 역사에서 사라진 것은 지도자들이 시대를 읽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대의 요구를 외면한 결과였다.

 

목차

머리말

제1장 애신각라 누르하치 청태조
1. 청나라 이전의 여진족(만주족) 역사
2. 누르하치의 등장: 건주여진 부족장의 아들로 태어나다
3. 골수에 사무친 원한: 조부와 부친이 명나라 군사에게 살해당하다
4. 여진부족의 통일: 대금을 건국하다
5. 산업 부흥과 팔기제도 창설
6. 명나라와의 혈전: 살이호 전투와 심요대첩
7. 영원성 싸움: 원숭환의 벽을 넘지 못하다고 죽다
8. 국가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 큰아들도 죽이다
9. 누르하치의 심복: 개국 5대신

제2장 황태극 태종 숭덕제
1. 젊은 시절의 활약과 칸위 계승 과정
2. 대패륵 망고이태와 아민을 제거하고 여동생 망고제를 능지처참하다
3. 대외 정복 전쟁: 조선(정묘·병자호란), 몽골, 명나라를 침략하다
4. 청나라 건국과 만한문화의 융합을 통한 문물제도를 정비하다
5. 청태종에게 충성한 명나라 장수: ‘삼순왕’, 범문정, 홍승주
6. 사랑하는 신비의 죽음을 따라가다

제3장 복림 세조 순치제
1. 6세의 나이에 황제로 등극하다
2. 숙부 다이곤의 섭정과 북경 입성
3. 중원 통일 전쟁을 시작하다: 이자성의 패망과 ‘양주십일’의 대학살
4. 다이곤 세력을 숙청하고 친정 체제를 확립하다
5. 황후를 쫓아내고 동악비만을 총애하다
6. 천주교를 이해하고 불교를 숭배하다

제4장 현엽 성조 강희제
1. 8세의 나이에 황위를 계승하다
2. 고명대신 4명이 국정을 맡다
3. 오배와 알필륭을 제거하고 친정을 단행하다
4. 삼번의 난을 평정하다
5. 대만을 병탄하다
6. 러시아와 국경을 확정하고 외몽골을 정벌하다
7. 강희성세: 천고 제일의 황제가 되다
8. 황태자 책봉을 둘러싼 갈등

제5장 윤진 세종 옹정제
1.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과정
2. 민생을 위한 개혁을 단행하다
3. 옹정제의 용인술: 업무 능력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다
4. 문자옥을 일으켜 황권을 강화하다
5. 죽음에 대한 의혹

제6장 홍력 고종 건륭제
1. 성장 과정과 순조로운 황위 계승
2. 아버지의 실정을 바로잡고 선정을 펴다
3. 관용과 엄격함을 병행하는 통치술을 완성하다
4. 이른바 ‘무공십전’의 진실과 허상
5. 청나라와 영국의 만남: 매카트니 사절단을 접견하다
6. 문자옥을 일으켜 청나라의 정통성을 강화하다
7. 스스로 위대한 시인이 되기를 원하다
8. 권신 화신을 지나치게 총애하여 국정을 문란하게 하다
9. 번영에서 쇠퇴의 조짐이 보이다

제7장 옹염 인종 가경제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화신을 제거하고 개혁을 도모했으나 실패하다
3. 민란이 전국 각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다
4. 쇄국정책을 펴다: 천주교 탄압과 영국 사신 암허스트의 방문
5. 내무부의 주방 하인 출신, 진덕이 가경제를 시해하려고 하다

제8장 민영 선종 도광제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유가의 고상한 선비와 같았던 황제
3. ‘짠돌이’라는 비난을 들을 정도로 근검절약을 실천하다
4. 제1차 아편전쟁: 제국주의 영국의 침략에 종이호랑이로 전락하다
5. 부패가 만연하여 국고가 바닥을 드러내다

제9장 혁저 문종 함풍제
1. 성장 과정과 황위 계승
2. 태평천국의 난: 이상 세계를 꿈꾸었으나 분열 때문에 망하다
3. 제2차 아편전쟁: 청나라가 반식민지로 전락하다

제10장 재순 목종 동치제
1. 여섯 살배기 어린이가 황제로 등극하다
2. 서태후와 공친왕 혁흔이 신유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하다
3. 동치중흥: 서양 문물을 도입하고 새 정치를 도모했으나 실패하다
4. 동치제의 친정과 죽음: 아무런 업적도 남기지 못하고 요절하다

제11장 재첨 덕종 광서제
1. 서태후가 네 살배기 재첨을 황제로 옹립하다
2. 서태후와 함께 수렴청정을 했던 동태후가 갑자기 죽다
3. 서태후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다
4. 청일전쟁: 일본에게 패하여 조선에 대한 종주권을 빼앗기다
5. 무술변법을 주도했으나 실패하여 유폐를 당하다
6. 의화단 운동과 8개국 연합군의 북경 점령
7. 광서제와 서태후가 하루 차이로 붕어하다

제12장 청조(중국)의 마지막 황제 선통제 부의
1. 3세 때 등극하여 6세 때 퇴위하다
2. 자금성의 작은 왕국에서 황제 노릇을 하다
3. 12세 때 다시 등극했으나 12일 만에 퇴위하다
4. 만주국 괴뢰 황제가 되다
5. 중화인민공화국의 공민이 되다
6. 부인 5명과 자식 한 명도 두지 못하고 불행한 결혼 생활을 하다
 

저자 소개 

저 : 강정만 (姜正萬)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1984)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석사(1986)와 문학박사(1996)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영하회족자치구 영하대학교에서 방문학자(1992) 자격으로 문화혁명 이래 최초의 문학박사인 배세준(裴世俊)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서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는 기간에 중국 하남성 정주경공업대학교 초빙교수(2008), 중국 인민해방군의 국어대학 초빙교수(2010) 등을 역임했다. 대학 ...
 

출판사 리뷰

‘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에 이은 시리즈 2탄
고금을 막론하고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는 지도자는 도태될 뿐이다


이 책은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청나라 황제 12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역사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골동품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중국 역사는 우리 민족에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미래에도 미국과 더불어 세계의 양대 패권 국가로 떠오른 중국을 상대로 생존권을 확보하고 번영을 구가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냉전 시대에는 미국 중심의 ‘줄서기’를 통해 중국이라는 변수를 심각하게 고려할 필요가 없었으나, 이념보다 경제 논리가 우선이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동맹’이 허울뿐인 약속에 불과한 상황에서 중국 역사를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청나라는 여진족(만주족) 누르하치(1559∼1626)와 그의 후손들이 건국한 중국 최후의 봉건 왕조이다. 인구가 100만 명도 안 되는 소수 민족이 어떻게 1억이 넘는 한족 왕조,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의 주인이 되었을까. 더구나 명군은 수백만 대군과 조총, 서양에서 수입한 홍이포 등 첨단 무기로 무장한 반면에 청군은 팔기병 조직이 전부였던 상황에서, 청나라의승리는 역사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교훈을 남겼다. 최고지도자는 무능하고 황음무도한 생활에 젖어있으며 관리들은 부패하고 가렴주구를 일삼으며 지식인들은 실질을 숭상하지 않고 공리공담에 빠졌을 때, 국가가 아무리 인구가 많고 엄청난 생산량을 자랑하며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고 있을지라도, 망국의 길로 접어든다. 명나라는 10대 황제 무종 주후조(1491∼1521)때부터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명나라가 패망한 결정적인 이유는 황제들의 방탕한 생활과 관리들의 부정부패였다. 이와 반면에 청나라는 건국 초기에 국가의 행정을 군사 조직으로 운영함으로써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출신 성분을 따지지 않고 오로지 능력자만이 출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했다. 어떤 허례허식도 배격하고 실무를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다. 양국의 이러한 차이가 결국은 소국이 대국을 멸망시킬 수도 있다는 전례를 남긴 것이다.

나름대로의 ‘시스템’을 갖추고 다른 왕조에 비해 청렴하고 성실한 지도자들이 국가를 경영했던 청나라는 어째서 더 오랜 시간 살아남지 못했던 것일까. 바야흐로 시대는 봉건제도를 타파하고 민주민본주의로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청나라 황제들은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는커녕 오랫동안 지켜진 공고한 시스템을 믿고 안주했기 때문에 역사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고 쓸쓸하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