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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역대 황제 평전

동방박사님 2022. 5. 21.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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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명나라 역대 황제 16명의 통치시대에 벌어진 역사적 사건들
소통하지 않는 절대 권력은 결국 부패하고 패망한다

명나라는 홍무(洪武) 원년(1368)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이 건국한 이래, 숭정(崇禎) 17년(1644) 숭정제(崇禎帝) 주유검(朱由檢)의 자살로 패망할 때까지, 276년 동안 지속된 한족 정권 최후의 봉건 제국이다. 16명의 황제가 통치한 명나라는 제국이 흥망성쇠하는 전형적인 표본이었다.

‘치국의 도’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한 황제가 통치했을 때는 번영했지만, 무능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황제가 통치했을 때는 어김없이 외우내란이 끊이질 않았다. 제국의 운명은 결정적으로 황제의 인격과 경륜 그리고 통치 역량에 좌지우지되었다.

고대 중국의 봉건 왕조에서 ‘천명’에 따라 천하의 백성을 다스리는 ‘천자’의 존재는 국가 권력의 요체였다. 제국의 흥망성쇠는 그의 손에 달려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천자는 백성의 행복과 국가의 안녕에 대한 무한 책임이 있었다. ‘제왕의 도’는 모든 백성이 풍요를 누리고 이웃나라와 화친을 이룸으로써 사해만방의 평화를 구가하는 일을 본질로 삼고 있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소통’을 거부한 채 백성의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와 향락을 누리는 것이 아니다.

 

목차

머리말

제1장 개국황제 명태조(明太祖) 주원장(朱元璋)
1. 떠돌이 승려 중팔(重八): 험난한 세월을 견뎌내다
2. 곽자흥(郭子興)의 홍건적(紅巾賊)에 가담하다
3. 세력 확장을 도모하다
4. 군웅할거를 종식시키고 명나라를 건국하다
5. 명태조(明太祖)와 마황후(馬皇后)
6. 살인 본능의 폭발: 공신 대학살 사건

제2장 건문제(建文帝) 혜종(惠宗) 주윤문(朱允?)
1. 사대부의 고상한 인품을 지닌 황제
2. 번왕(藩王)들과의 정치 투쟁
3. 혜종(惠宗)의 죽음: 천고의 수수께끼

제3장 영락제(永樂帝) 성조(成祖) 주체(朱?)
1. 문무를 겸비한 야심가: 연왕(燕王) 주체(朱?)
2. 정난지역(靖難之役): 조카를 죽이고 황위를 찬탈하다
3. 영락제(永樂帝)의 치적
4. 잔인한 영락제: 삼천궁녀 살해 사건

제4장 홍희제(洪熙帝) 인종(仁宗) 주고치(朱高熾)
1. 인자하고 후덕한 성품을 지닌 태자
2. 감국(監國): 부친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리다
3. 황위 계승과 사망 원인

제5장 선덕제(宣德帝) 선종(宣宗) 주첨기(朱瞻基)
1. 문무를 겸비한 태자
2. 숙부 주고후(朱高煦)의 반란을 평정하다
3. 선종(宣宗)의 치적
4. 호황후(胡皇后) 폐위 사건

제6장 정통제(正統帝) 영종(英宗) 주기진(朱祁鎭)
1. 영종(英宗)의 출생 의혹
2. 소년 황제
3. 환관 왕진(王振)의 전횡
4. 토목지변(土木之變): 황제가 몽골족의 포로로 잡히다
5. 영종의 환궁과 유폐
6. 탈문지변(奪門之變): 태상황 주기진의 황위 복귀 정변

제7장 경제(景帝) 대종(代宗) 주기옥(朱祁鈺)
1. 뜻밖에 황제로 등극하다
2. 북경 보위전: 와랄(瓦剌)의 군주, 야선(也先)의 침략을 격퇴하다
3. 태자 주견심(朱見深) 폐위와 친아들 주견제(朱見濟)의 태자 책봉
4. 왕황후(汪皇后)의 현명한 처신과 대종(代宗)의 비참한 말로

제8장 성화제(成化帝) 헌종(憲宗) 주견심(朱見深)
1. 도량이 넓은 말더듬이 황제
2. 만귀비(萬貴妃)의 전횡
3. 환관 왕직(王直)과 양방(梁芳)의 득세
4. 3대 악정: 서창(西廠), 황장(皇莊), 전봉관(傳奉官)

제9장 홍치제(弘治帝) 효종(孝宗) 주우탱(朱佑?)
1. 유령 인간처럼 지낸 어린 시절
2. 명나라 최고의 성군: 홍치중흥(弘治中興)의 태평성대를 열다
3. 일부일처제를 고수한 황제

제10장 정덕제(正德帝) 무종(武宗) 주후조(朱厚照)
1. 주후조(朱厚照)의 출생 의혹
2. 황음무도한 생활을 마음껏 즐기다
3. 환관 유근(劉瑾)의 국정 농단
4. 전쟁을 즐긴 황제

제11장 가정제(嘉靖帝) 세종(世宗) 주후총(朱厚?)
1. 번왕 주후총이 황위를 계승하게 된 배경
2. 대례의(大禮儀) 논쟁
3. 도교의 미신에 빠진 황제
4. 임인궁변(壬寅宮變): 궁녀들의 황제 시해 음모
5. 총신 엄숭(嚴崇)의 득세
6. 남왜북로(南倭北虜): 왜구와 몽골의 침략

제12장 융경제(隆慶帝) 목종(穆宗) 주재후(朱載?)
1. 이룡불상견(二龍不相見)의 괴설
2. 권신 서계(徐階)와 고공(高拱)의 경쟁 관계
3. 몽골과 왜구에 대한 회유 정책
4. 여색에 빠져 죽다

제13장 만력제(萬曆帝)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
1.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2. 어린 황제를 대신한 장거정의 개혁 정치
3. 친정(親政)에 나선 신종(神宗)의 일탈과 폐정
4. 만력삼대정(萬曆三大征)과 살이호(薩爾滸) 전투

제14장 태창제(泰昌帝) 광종(光宗) 주상락(朱常洛)
1. 국본(國本)의 논쟁: 태자 책봉에 대한 임금과 신하간의 갈등
2. 정격안(?擊案): 태자 피습 사건
3. 홍환안(紅丸案): 광종의 급작스런 의문의 죽음

제15장 천계제(天啓帝) 희종(熹宗) 주유교(朱由校)
1.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과정
2. 희대의 간신: 환관 위충현(魏忠賢)의 국정 농단
3. 희종(熹宗)의 두 여인: 유모 객씨(客氏)와 황후 장언(張?)

제16장 숭정제(崇禎帝) 사종(思宗) 주유검(朱由檢)
1. 성장 배경과 황위 계승 과정
2. 엄당(奄黨)의 몰락과 동림당(東林黨)의 부활
3. 끊이질 않는 자연 재해와 농민 반란
4. 청태종(淸太宗)의 중원 침략
5. 숭정제(崇禎帝)의 자살: 대명제국 최후의 날

 

저자 소개

저자 : 강정만
전북대학교 중어중문학과 졸업(1984)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문학석사(1986)와 문학박사(1996)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영하회족자치구 영하대학교에서 방문학자(1992)의 자격으로 수학했으며, 중국 하남성 정주경공업대학 초빙교수(2008), 중국 인민해방군외국어대학(2010) 초빙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서남대학교 중국어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저서로는 『춘추오패』, 『중국을 통일한 영웅들의 이야기』, 『중국...
 

출판사 리뷰

이 책은 역사 자료에 근거하여 황제 16명의 통치 시대에 어떤 역사적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살펴봄으로써 역사의 교훈을 얻고자 한다. 과거에만 머물러있는 역사는 박물관의 먼지 쌓인 골동품에 불과하다. 역사는 현재 진행형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이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음으로써 현재를 바로잡고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다.

또 명나라 황제들의 공적과 과오를 평가함으로써 오늘날 지도자가 어떠한 덕목과 리더십을 갖추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대체적으로 성공 한 황제들은 애민 사상을 실천하고 자기 관리에 철저하여 사치와 향락을 멀리했으며 동시에 귀를 열고 신하의 간언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도량이 있었다. 이와 반면에 역사에 오점을 남긴 어리석은 황제들은 하나같이 무능하고 주색잡기에 빠져 살았을 뿐만 아니라 신하들과 ‘소통’을 거부했다.


황제를 중심으로 기술한 명나라 역사의 특징을 몇 가지로 나누어 분석하면 이렇다.
첫째, 유가의 전통 사상을 국가의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 황제는 유가에서 주장하는 ‘제왕의 도’를 실천해야 했으며, 신하는 황제를 보좌하여 치국평천하의 이상을 실현해야 했다.

둘째, 황권은 적장자 계승을 원칙으로 삼았다. 하지만 16명의 황제 가운데 유일하게 무종(武宗) 주후 조(朱厚照)만이 황제와 황후 사이에서 태어난 적장자 신분으로서 황위를 계승했을 뿐, 다른 황제들은 그렇지 않았다. 이는 황제와 신하들 간의 지루 한 이념 논쟁과 갈등 요소가 되었으며 당파 싸움의 빌미를 제공했다.

셋째, 황권(皇權)과 신권(臣權)의 충돌이다. 대체적으로 황제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신민을 통치하고자 했다. 유가의 대의명분에 충실한 신하들은 황제가 ‘성군의 도’를 실천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그들의 주장을 받아들인 황제도 있었지만, 신권이 황권을 능멸한다고 분노한 황제는 피 비린내 나는 살육과 옥사를 끊임없이 벌였다.

넷째, 명 중엽부터 도교의 황당무계한 미신이 성행했다. 황제들은 단약 과 최음제를 상복하여 수명을 단축하고, 혹세무민하는 도사들이 득세했다.

다섯째, 환관들의 국정 농단이 극을 다했다. 천계(天啓) 연간(1621∼1627) 희종(熹宗) 때, 실질적인 황제는 환관 위충현(魏忠賢)이었을 정도로 환관의 전횡이 심각했다. 사실상 명나라가 붕괴한 결정적인 이유는 외침이 아니 라, 황제의 무능과 일탈, 도교의 성행 그리고 환관의 국정 농단이었다.

여섯째, 해금(海禁) 정책이다. 영락제(永樂帝) 때 환관 정화(鄭和)가 어명을 받들 어 거대한 선단을 이끌고 지금의 아프리카 소말리아까지 진출하여 통상 을 확대한 적이 있었으나, 영락제 이후에는 해상 무역을 통제하는 정책을 폈다. 이는 결과적으로 동남 해안 일대에서 왜구의 반란을 초래하였고 명나라가 해상으로 진출하지 못한 대륙 국가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명나라 역사는 우리 한민족에게도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명나라와 조선(朝鮮)은 ‘이란성 쌍둥이’였다. 사실은 ‘조선’이라는 국호도 명 태조의 윤허를 받아 결정되었다. 이념적인 면에서는 양국이 유가 사상을 국시(國是)로 삼았으므로 통치 철학과 세계관이 일치했다. 이는 양국의 정 치인과 지식인들이 강한 유대감을 느끼게 했다. 명나라가 조선에게 ‘조공 무역’의 형태로 시혜를 베풀고, 임진왜란 때 대군을 파병하여 조선을 구원한 까닭이 이런 사상적 결속에서 비롯되었다.

조선의 유림들도 명나라가 망한 후 연도를 표기할 때, 청나라 연호를 쓰지 않고 명나라 마지막 황제의 연호인 ‘숭정(崇禎)’을 사용함으로써 명나라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이는 그들이 명나라를 맹목적으로 숭상한 게 아니라 이념적 동지애를 강하 게 느꼈으며, ‘오랑캐’가 세운 청나라를 마음속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명사(明史)』 등 명나라와 관련한 사료 분석을 통해 기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