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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만주와 조선을 연관 지은 ‘만선’이란 용어는 19세기 말 처음 등장했으며, 러일전쟁 이후에는 그에 대한 역사를 지칭하는 ‘만선사’라는 학술 용어가 확산되었다. 1960년대 이래 만선사는 한국사에 드리워진 대륙의 영향력을 강조한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지목되면서 한일 양측에서 모두 비판받고 있다.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를 살펴본다. 만주사에서 조선사와 만선사로, 다시 만주사로 중심축을 이동해온 이나바의 연구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제국 일본의 팽창 과정에서 탄생한 만선사의 논지를 선명히 하고 동아시아 역사를 재편하고자 한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을 뿐 아니라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를 살펴본다. 만주사에서 조선사와 만선사로, 다시 만주사로 중심축을 이동해온 이나바의 연구 궤적을 따라감으로써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는지, 또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제국 일본의 팽창 과정에서 탄생한 만선사의 논지를 선명히 하고 동아시아 역사를 재편하고자 한 일본의 식민주의 역사학을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목차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를 출간하면서
책머리에
프롤로그 만선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
1. 만주사에 대한 통사적 접근 시도
2. 새로운 연구자의 등장과 ‘발해-금’에 대한 연구
3. 대륙과 일본의 오래된 교섭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
1. 19세기 이래 강점 전후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
2. 조선총독부의 역사편찬사업과 이마니시 류
3. 이나바의 조선 부임과 시각의 엇갈림
4. 1920년대 이나바의 연구활동: 정체된 조선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
1. 만선사의 체계화: 과거 논의의 부정과 지속
2. 만선사의 체계에서 일본사의 위상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
1. 조선사에 대한 통사적 접근과 만선사적 조망의 공유
2. ‘만주국사’의 등장과 만선사
에필로그 동아시아의 역사적 전개와 일본사의 위상
본문의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머리에
프롤로그 만선사를 어떻게 볼 것인가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
1. 만주사에 대한 통사적 접근 시도
2. 새로운 연구자의 등장과 ‘발해-금’에 대한 연구
3. 대륙과 일본의 오래된 교섭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
1. 19세기 이래 강점 전후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
2. 조선총독부의 역사편찬사업과 이마니시 류
3. 이나바의 조선 부임과 시각의 엇갈림
4. 1920년대 이나바의 연구활동: 정체된 조선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
1. 만선사의 체계화: 과거 논의의 부정과 지속
2. 만선사의 체계에서 일본사의 위상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
1. 조선사에 대한 통사적 접근과 만선사적 조망의 공유
2. ‘만주국사’의 등장과 만선사
에필로그 동아시아의 역사적 전개와 일본사의 위상
본문의 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우리는 과연 만선사를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우리는 만선사라는 것이 식민주의 역사학의 여러 구성 요소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식민주의 역사학이 ‘침략성’과 더불어 ‘근대 역사학’의 속성을 함께 가지고 있듯이 만선사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니었을까? 만선사가 침략과 지배를 위한 것이었음은 틀림없다. 대륙 침략 이래 일본인들은 ‘만선’이라는 개념과 용어를 만들었다. 조선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만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즉 만선은 연결되어 있다는 사고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만선이라는 지역 개념이 촉발되었다고 하여도 그것이 학문의 영역, 특히 역사학의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만선사의 형성과 전개는 바로 근대 학문의 세례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었다. 즉, 식민주의 역사학이 그러하듯이 만선사 역시 침략성과 더불어 근대 역사학으로서의 속성 역시 담지하고 있는 것이다.
---「프롤로그」중에서
이나바가 만주의 역사를 고찰함에 있어 만몽이 불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만주와 몽골의 일체화만이 아니라 만주와 몽골이라는 두 지역의 관계를, 양측의 균형자로서 중국까지 포함하여 주목하는 것이다. 중국은 “요하 유역이라는 만주의 일각만을 점유했지만 만몽의 경영을 계획했던 유일한 이들”이자 어느 한쪽이 커지면 다른 한쪽과 손을 잡고 견제하는 존재로서, 몽골-중국-만주는 마치 시소 같은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략)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것은 만주와 몽골만이 아니었다. 이나바는 압록강과 장백산(백두산)은 만주와 조선의 경계로 그다지 의미가 없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만주와 조선을 구획 짓는 선은 대동강에서 원산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이유로 “조선과 만몽은 불가분”이라고 주장했다.
---「1장 만주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중에서
이나바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만주사를 만주라는 지역을 둘러싸고 불가분한 여러 세력의 경쟁 과정으로 정리함으로써 19세기 중반부터 지속된, 20세기 들어서는 일본도 참여한, 만주에서의 이권 획득을 위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에 역사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만주와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만주와 불가분한 여러 세력과 일본과의 관계로 치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이 대륙과 역사적으로 관계를 맺은 계기를 한사군의 설치까지 소급해버렸다. (중략) 이나바는 오래된 대륙과 일본의 교통을 일본에서 국가 형성의 문제와 연결지으며, 고대 국가의 형성 시기를 획기적으로 소급했을 뿐만 아니라 ‘반도 남부 경영’의 근거인 임나일본부의 존재 시기 역시 끌어올렸다.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중에서
이나바는 조선사에 대한 과거의 연구를 비판하는 가운데 자신의 접근법과 목표를 분명하게 밝혔다. 당시까지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를 “조선사를 일본사적(日本史的)으로 관찰하는 편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 및 만몽 방면의 문화를 참작”하고 “대륙 방면의 기록에 비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조선사의 동양사화(東洋史化)”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이나바는 이마니시로 대변되는 조선과 일본의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을 규명해왔던 당시까지 일본인들의 연구들을 조선의 역사를 일본사와의 관련 속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만선불가분이라는 구상하에 조선사를 취급하여 그 역사를 일본사(국사)의 범주가 아닌 ‘동양사’의 일부로 위치 지우고자 한 것이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이나바는 ‘조선 민족’의 중심을 이루는 한종을 동호계라며, 민족적으로 만선의 불가분성을 다시 역설하고 있다. 즉, 조선의 민족은 기본적으로 북방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 한종을 중심으로 여러 종족이 반도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구성된 것이 조선 민족이라는 지적이다. 바로 민족과 민족성을 형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라는 환경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자신이 백 번 양보해 반도의 남북에 민족적 차이가 있고, 고구려·백제와 달리 신라는 북방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 조선의 민족과 민족성의 형성, 민족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반도’라는, “대륙의 영향이 긴절”한 “토지”임을 역설했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조선의 역사적 특징을 정체에 두었던 그의 시각이 시종일관 지속되며 그 폭을 넓혔듯이 그 원인에 대한 생각, 특히 가례와 가족주의에 대한 그의 논의는 1930년대에도 유지·진화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입론, 바로 조선의 역사를 만몽-조선 불가분·만선불가분 혹은 한민족·몽골 민족·동호계 민족의 삼자구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향후 그의 연구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이나바가 구상한 만선사, 바로 그 체계화에 대한 유일한 시도에서 나타나는 만선사의 모습은 만주와 조선을 하나의 역사 단위로 파악하여 그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주와 조선의 관계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고구려 멸망 이후 만선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향이 거란, 여진 등 북방 세력이 강화되고 중국 세력이 반도를 회유함에 따라 강화된다는 것이 이나바의 설명이다. 이것만 보아도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스스로도 만선을 하나로 아울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이나바가 체계화한 만선사라는 것을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만주와 조선은 분리되지만 그 역사적 전개는 만주, 중국, 몽골 방면을 중심으로 몇몇 세력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구상한 만선사의 체계라는 것은 이 대륙 세들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과 일본의 관계로 귀결되었다.
---「3장 대륙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중에서
만선사의 체계화 과정에서 이나바는 조선의 역사를 중국과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바라보던 과거 1920년대의 견해를 부정했지만 궁극적으로 1910년대 이래 자신이 구상했던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이와 관련하여 과거 자신이 제시했던 견해를 정교화하는 한편,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쌍방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중에서
이나바가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후 ‘만선사’라는 용어는 당시 학계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중략) 일본의 대륙 침략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 학계의 관심 역시 제국 일본의 침략 방향이었던 대륙의 안쪽, 바로 몽골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식민지로 영유한 지 20년이 훌쩍 넘어 제국 일본의 안정적인 판도가 되어버린 조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 것이다. 마치 조선을 영유하고 조선을 발판 삼아 만주 방면으로 침략해 들어가며 ‘만선’이란 용어를 만들어내고 그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이, 1930년대 중반 만주를 발판으로 몽골 방면으로 침략하려던 당시 만몽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중에서
결국 만선사라는 것은 만주와 조선은 물론 몽골, 중국 등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와 상관성을 보여주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 일본의 역사를 대륙의 역사적 전개, 바로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즉 동아시아라는 역사의 무대를 중국이 아닌 일본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대륙과의 끊임없는 교섭 과정으로서 동아시아와 일본의 역사를 서술하며, 대륙의 역사적 전개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위를 떨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프롤로그」중에서
이나바가 만주의 역사를 고찰함에 있어 만몽이 불가분이라고 말하는 것은 만주와 몽골의 일체화만이 아니라 만주와 몽골이라는 두 지역의 관계를, 양측의 균형자로서 중국까지 포함하여 주목하는 것이다. 중국은 “요하 유역이라는 만주의 일각만을 점유했지만 만몽의 경영을 계획했던 유일한 이들”이자 어느 한쪽이 커지면 다른 한쪽과 손을 잡고 견제하는 존재로서, 몽골-중국-만주는 마치 시소 같은 모양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중략) 불가분의 관계에 있던 것은 만주와 몽골만이 아니었다. 이나바는 압록강과 장백산(백두산)은 만주와 조선의 경계로 그다지 의미가 없으며, 역사적으로 볼 때 만주와 조선을 구획 짓는 선은 대동강에서 원산진을 기준으로 한다는 것을 이유로 “조선과 만몽은 불가분”이라고 주장했다.
---「1장 만주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중에서
이나바는 여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만주사를 만주라는 지역을 둘러싸고 불가분한 여러 세력의 경쟁 과정으로 정리함으로써 19세기 중반부터 지속된, 20세기 들어서는 일본도 참여한, 만주에서의 이권 획득을 위한 제국주의 열강들의 경쟁에 역사성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만주와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만주와 불가분한 여러 세력과 일본과의 관계로 치환했다. 이를 통해 그는 일본이 대륙과 역사적으로 관계를 맺은 계기를 한사군의 설치까지 소급해버렸다. (중략) 이나바는 오래된 대륙과 일본의 교통을 일본에서 국가 형성의 문제와 연결지으며, 고대 국가의 형성 시기를 획기적으로 소급했을 뿐만 아니라 ‘반도 남부 경영’의 근거인 임나일본부의 존재 시기 역시 끌어올렸다.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중에서
이나바는 조선사에 대한 과거의 연구를 비판하는 가운데 자신의 접근법과 목표를 분명하게 밝혔다. 당시까지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를 “조선사를 일본사적(日本史的)으로 관찰하는 편견”에 빠져 있다고 비판하는 한편, 조선의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나 및 만몽 방면의 문화를 참작”하고 “대륙 방면의 기록에 비교”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조선사의 동양사화(東洋史化)”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즉 이나바는 이마니시로 대변되는 조선과 일본의 인종적·문화적 동질성을 규명해왔던 당시까지 일본인들의 연구들을 조선의 역사를 일본사와의 관련 속에서 접근하는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만선불가분이라는 구상하에 조선사를 취급하여 그 역사를 일본사(국사)의 범주가 아닌 ‘동양사’의 일부로 위치 지우고자 한 것이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이나바는 ‘조선 민족’의 중심을 이루는 한종을 동호계라며, 민족적으로 만선의 불가분성을 다시 역설하고 있다. 즉, 조선의 민족은 기본적으로 북방계라는 것이다. 그런데 더욱 주의해야 하는 것은 이 한종을 중심으로 여러 종족이 반도라는 환경에 영향을 받으며 구성된 것이 조선 민족이라는 지적이다. 바로 민족과 민족성을 형성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토지”라는 환경의 영향력이 결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 자신이 백 번 양보해 반도의 남북에 민족적 차이가 있고, 고구려·백제와 달리 신라는 북방계가 아니라 하더라도 ? 조선의 민족과 민족성의 형성, 민족사의 전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은 ‘반도’라는, “대륙의 영향이 긴절”한 “토지”임을 역설했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조선의 역사적 특징을 정체에 두었던 그의 시각이 시종일관 지속되며 그 폭을 넓혔듯이 그 원인에 대한 생각, 특히 가례와 가족주의에 대한 그의 논의는 1930년대에도 유지·진화하는 가운데 자신만의 입론, 바로 조선의 역사를 만몽-조선 불가분·만선불가분 혹은 한민족·몽골 민족·동호계 민족의 삼자구도에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과도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조선의 역사에 대한 이러한 이해 방식은 향후 그의 연구 방향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중에서
이나바가 구상한 만선사, 바로 그 체계화에 대한 유일한 시도에서 나타나는 만선사의 모습은 만주와 조선을 하나의 역사 단위로 파악하여 그 역사적 전개를 살펴보는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주와 조선의 관계만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고구려 멸망 이후 만선이 분리되기 시작했으며, 이러한 역사적 경향이 거란, 여진 등 북방 세력이 강화되고 중국 세력이 반도를 회유함에 따라 강화된다는 것이 이나바의 설명이다. 이것만 보아도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 스스로도 만선을 하나로 아울러 역사를 서술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또 이나바가 체계화한 만선사라는 것을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연구라고 하는 것도 충분치 않다. 왜냐하면 그는 비록 만주와 조선은 분리되지만 그 역사적 전개는 만주, 중국, 몽골 방면을 중심으로 몇몇 세력들의 역학관계 속에서 그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가 구상한 만선사의 체계라는 것은 이 대륙 세들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고 이들과 일본의 관계로 귀결되었다.
---「3장 대륙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중에서
만선사의 체계화 과정에서 이나바는 조선의 역사를 중국과의 일대일 관계에서만 바라보던 과거 1920년대의 견해를 부정했지만 궁극적으로 1910년대 이래 자신이 구상했던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내세우며, 이와 관련하여 과거 자신이 제시했던 견해를 정교화하는 한편, 대륙과 일본의 관계를 쌍방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중에서
이나바가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후 ‘만선사’라는 용어는 당시 학계에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중략) 일본의 대륙 침략이 확대됨에 따라 일본 학계의 관심 역시 제국 일본의 침략 방향이었던 대륙의 안쪽, 바로 몽골 방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식민지로 영유한 지 20년이 훌쩍 넘어 제국 일본의 안정적인 판도가 되어버린 조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은 떨어진 것이다. 마치 조선을 영유하고 조선을 발판 삼아 만주 방면으로 침략해 들어가며 ‘만선’이란 용어를 만들어내고 그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듯이, 1930년대 중반 만주를 발판으로 몽골 방면으로 침략하려던 당시 만몽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떠오른 것이다.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중에서
결국 만선사라는 것은 만주와 조선은 물론 몽골, 중국 등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와 상관성을 보여주는 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대륙에서 떨어진 섬나라 일본의 역사를 대륙의 역사적 전개, 바로 대륙 세력들의 역학관계에 참여시키는 것이었다. 즉 동아시아라는 역사의 무대를 중국이 아닌 일본을 중심으로 바라보고, 대륙과의 끊임없는 교섭 과정으로서 동아시아와 일본의 역사를 서술하며, 대륙의 역사적 전개에 영향을 미치면서 국위를 떨친 일본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에필로그」중에서
출판사 리뷰
만선사를 탄생시킨 일본의 역사 연구자들을 통해
제국 일본의 팽창과 동아시아 역사의 재편 과정을
새롭게 읽는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비판받고 있는 ‘만선사’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만주와 조선을 아울러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만선’이란 용어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선사’라는 학술적 용어로 탈바꿈했다고 여겨왔는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시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만선사를 다룰 때 만주와 조선에만 집중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만선사가 일본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등장하고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일본사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 및 대륙의 역사를 재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침략의 주체이자 새로운 역사 판도의 중심인 일본사를 함께 사고해야 일본의 팽창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 재편 과정으로서 만선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과 담론을 살펴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세 번째 권인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대표자로 꼽히는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 궤적을 밟아나감으로써 만선사가 무엇인지 그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함으로써 식민주의 역사학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만선사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이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일본인 연구자 이나바 이와키치를 중심으로 ‘만선사의 형성과 지속’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만선사학자로 자신을 정의한 몇 안 되는 학자로서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하며 그 구조를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이력이 식민주의 역사학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전공한 이나바는 당시 저명한 동양사학자 나이토 고난을 만나면서 역사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러일전쟁 후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만선역사지리조사부와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을 총괄했으며, 이어 만주의 건국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를 자연스럽게 만선사 연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근대 역사학의 세례를 입은 역사학자이자 침략의 선봉에서 연구를 진행한 제국 일본의 연구자라는 이나바의 두 측면이 만선사를 고찰할 때 시사점을 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에서는 만선사 연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910년대 중반 이후 만주사 연구의 전개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연구는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만주의 역사가 구체화되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일본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구조화하려 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에서는 19세기 후반 이후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와 1922년 이래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이나바의 조선사 연구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당시 조선사에 대한 이나바의 시각이 다른 일본인 연구자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통해 그의 만선사 연구의 전제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에서는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으로 만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던 당시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의 저작들을 통해 만선사라는 것이 단순히 만주와 조선을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대륙의 역사적 전개에 참여시키는 것이었음을 읽어내고 있다.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에서는 만선사를 체계화한 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는 만주국 건국 이후 일본 정부의 후원으로 만주사 연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 대륙의 안쪽, 즉 몽골 방면으로 향하면서 ‘만선’을 대신하여 ‘만몽’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 열기는 사그라들었으며, 만선사는 이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나바가 조선사와 만주사에 대해 각각의 통사를 집필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서는 이 두 권의 통사를 중심으로 만선사의 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다른 연구자들과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식민주의 역사학의 전개에서 만선사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만선사라는 것은 결국 대륙과 동떨어진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를 대륙의 역사적 전개와 결부 지음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제국 일본의 팽창과 동아시아 역사의 재편 과정을
새롭게 읽는다!
식민주의 역사학의 주요 담론으로 비판받고 있는 ‘만선사’란 무엇인가?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만주와 조선을 아울러 지칭할 때 사용하던 ‘만선’이란 용어가 러일전쟁 이후 일본의 대륙 침략을 역사적으로 합리화하기 위해 ‘만선사’라는 학술적 용어로 탈바꿈했다고 여겨왔는데, 오늘날까지 이러한 시각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도 만선사를 다룰 때 만주와 조선에만 집중해온 것 또한 사실이다.
이 책은 만선사가 일본의 대륙 침략 과정에서 등장하고 전개된 것일 뿐 아니라 일본사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 및 대륙의 역사를 재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침략의 주체이자 새로운 역사 판도의 중심인 일본사를 함께 사고해야 일본의 팽창에 따른 동아시아 역사 재편 과정으로서 만선사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국 일본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한 주요 조직과 담론을 살펴본 ‘일제 식민사학 비판 총서’의 세 번째 권인 이 책은, 만선사라는 이름 아래 만주와 조선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연구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만선사가를 자처했으며, 지금까지도 그 대표자로 꼽히는 이나바 이와키치의 논의를 중심으로 만주와 조선의 역사에 대한 당시 일본인 역사가들의 연구 궤적을 밟아나감으로써 만선사가 무엇인지 그 논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이나바로 대변되는 일본인 연구자들이 동아시아의 역사를 어떻게 그려냈으며,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고찰함으로써 식민주의 역사학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만선사는 무엇이며,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 이 책의 구성과 주요 내용
이 책은 일본인 연구자 이나바 이와키치를 중심으로 ‘만선사의 형성과 지속’에 관한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전개하는 첫 번째 이유는 그가 만선사학자로 자신을 정의한 몇 안 되는 학자로서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하며 그 구조를 설명하려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그의 이력이 식민주의 역사학을 대변해주기 때문이다. 중국어를 전공한 이나바는 당시 저명한 동양사학자 나이토 고난을 만나면서 역사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으며, 러일전쟁 후 설립된 남만주철도주식회사의 만선역사지리조사부와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의 『조선사』 편찬을 총괄했으며, 이어 만주의 건국대학에 교수로 부임하였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그를 자연스럽게 만선사 연구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저자는 근대 역사학의 세례를 입은 역사학자이자 침략의 선봉에서 연구를 진행한 제국 일본의 연구자라는 이나바의 두 측면이 만선사를 고찰할 때 시사점을 준다고 말한다. 이 책은 총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만주사에 대한 일본인 연구자들의 접근」에서는 만선사 연구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1910년대 중반 이후 만주사 연구의 전개를 다루고 있다. 이 시기 연구는 일본인 연구자들에 의해 만주의 역사가 구체화되는 과정을 보여줌과 동시에 일본까지 포함한 동아시아 역사를 어떻게 구조화하려 했는지에 대한 단서를 제공한다.
2장 「조선 강점 이후 조선사 연구와 서로 다른 시각들」에서는 19세기 후반 이후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와 1922년 이래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이나바의 조선사 연구를 다루고 있다. 특히 당시 조선사에 대한 이나바의 시각이 다른 일본인 연구자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통해 그의 만선사 연구의 전제가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다.
3장 「대륙 침략과 만선사의 체계화」에서는 만주사변과 만주국 건국으로 만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던 당시 유일하게 만선사의 체계화를 시도한 이나바의 저작들을 통해 만선사라는 것이 단순히 만주와 조선을 뭉뚱그리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대륙의 역사적 전개에 참여시키는 것이었음을 읽어내고 있다.
4장 「만선사 체계의 지속」에서는 만선사를 체계화한 이후의 상황을 다루고 있는데, 당시는 만주국 건국 이후 일본 정부의 후원으로 만주사 연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이 대륙의 안쪽, 즉 몽골 방면으로 향하면서 ‘만선’을 대신하여 ‘만몽’이 새로운 관심 대상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일본인 연구자들의 조선사 연구 열기는 사그라들었으며, 만선사는 이전과 같은 영광을 누리지 못했다. 이러한 시기에 이나바가 조선사와 만주사에 대해 각각의 통사를 집필한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여기서는 이 두 권의 통사를 중심으로 만선사의 구조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다른 연구자들과는 어떤 영향을 주고받았는지를 고찰함으로써 식민주의 역사학의 전개에서 만선사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이러한 논의를 통해 만선사라는 것은 결국 대륙과 동떨어진 섬나라인 일본의 역사를 대륙의 역사적 전개와 결부 지음으로써,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위상을 극대화하고자 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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