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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근대사의 시작과 끝은 모두 태평양과 통한다
한국근대사의 시야를 태평양 전역으로 확장시키는 새로운 시도
수십 년간 한국근대사 연구에 천착했던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가 태평양의 ‘발견’이 한국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추적해온 성과를 정리한 『태평양의 발견과 근대 조선: 세계와 마주하다』를 펴냈다. 개항기를 중심으로 태평양의 ‘발견’에 따른 근대 세계의 구성과 조선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핌으로써 한국근대사의 시야를 태평양 전역으로 확장시켰다. 근대화의 시작을 의미했던 ‘개항’은 광대한 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태평양이 상상 속 공간이 아닌 현실의 바다임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태평양의 ‘발견’은 조선이 서양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한제국 멸망 이후 한인 디아스포라의 통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건립으로 귀결되는 태평양 ‘발견’의 역사적 의의를 ‘발견’하는 이 책의 출간은, 한국근대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태평양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근대사의 시야를 태평양 전역으로 확장시키는 새로운 시도
수십 년간 한국근대사 연구에 천착했던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가 태평양의 ‘발견’이 한국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추적해온 성과를 정리한 『태평양의 발견과 근대 조선: 세계와 마주하다』를 펴냈다. 개항기를 중심으로 태평양의 ‘발견’에 따른 근대 세계의 구성과 조선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핌으로써 한국근대사의 시야를 태평양 전역으로 확장시켰다. 근대화의 시작을 의미했던 ‘개항’은 광대한 태평양으로 향하는 바닷길을 연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태평양이 상상 속 공간이 아닌 현실의 바다임을 직시하기 시작하면서 조선인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태평양의 ‘발견’은 조선이 서양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대한제국 멸망 이후 한인 디아스포라의 통로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건립으로 귀결되는 태평양 ‘발견’의 역사적 의의를 ‘발견’하는 이 책의 출간은, 한국근대사에서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태평양의 의미를 체계적으로 정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목차
머리말 5
서론 태평양의 발견에 대하여 묻다 9
제1부 태평양의 발견과 지구일주 시대의 도래
1장 공간혁명: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35
1. ‘태평양이 없는 세계’ 35
2. 미지의 대양: ‘남해’와 ‘태평양’ 52
3. 태평양, 그 모습을 드러내다 62
2장 교통혁명: 시간과 공간의 파괴 67
1. 대륙철도와 대양고속도로의 개통 67
2. 속도의 경쟁: ‘80일간의 세계일주’ 75
3. 바다로 열린 창: ‘극동’의 개항 83
제2부 조선인, 태평양에 눈을 뜨다
3장 지리적 상상 공간으로의 태평양 95
1. 서양의 중국 침투: 선교와 만국지도 95
2. 조선 전래 및 그 영향 118
3. 최한기, 해양의 시대를 예견하다 133
4장 문명적 교류 통로로의 태평양 143
1. 개항과 ‘세계대세론’ 143
2. 안에서 밖으로:조선사절단의 세계일주 기행 152
3. 밖에서 안으로: 한양 도성 안의 ‘양인촌’ 188
4. 최남선, 바다(태평대양)를 품다 208
5장 패권적 경쟁 대상으로의 태평양 217
1. ‘구미태평양’과 일본의 도전 217
2. 미일전쟁설의 생성과 유포 227
3. 한국 언론의 보도와 반응 270
제3부 한인 디아스포라와 외신대한의 건설
6장 경계를 넘다: 추방과 망향 299
1. 유민: 구대륙 내의 이동 302
2. 이민: 하와이와 신대륙으로의 이동 308
3. 태평양상의 한인 네트워크 형성 319
7장 이주소설과 체류기록 341
1. 육정수의 『송뢰금』 341
2. 현순의 『포와유람기』 353
3. 김한홍의 「해유가」 364
8장 ‘나라 밖의 나라’: 신대한의 꿈 375
1. 밖에서 바라보는 대한제국 376
2. 안에서 바라보는 외신대한 391
3. 유예된 혁명: 제국에서 민국으로 405
참고문헌 415
그림목록 436
찾아보기 438
서론 태평양의 발견에 대하여 묻다 9
제1부 태평양의 발견과 지구일주 시대의 도래
1장 공간혁명: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35
1. ‘태평양이 없는 세계’ 35
2. 미지의 대양: ‘남해’와 ‘태평양’ 52
3. 태평양, 그 모습을 드러내다 62
2장 교통혁명: 시간과 공간의 파괴 67
1. 대륙철도와 대양고속도로의 개통 67
2. 속도의 경쟁: ‘80일간의 세계일주’ 75
3. 바다로 열린 창: ‘극동’의 개항 83
제2부 조선인, 태평양에 눈을 뜨다
3장 지리적 상상 공간으로의 태평양 95
1. 서양의 중국 침투: 선교와 만국지도 95
2. 조선 전래 및 그 영향 118
3. 최한기, 해양의 시대를 예견하다 133
4장 문명적 교류 통로로의 태평양 143
1. 개항과 ‘세계대세론’ 143
2. 안에서 밖으로:조선사절단의 세계일주 기행 152
3. 밖에서 안으로: 한양 도성 안의 ‘양인촌’ 188
4. 최남선, 바다(태평대양)를 품다 208
5장 패권적 경쟁 대상으로의 태평양 217
1. ‘구미태평양’과 일본의 도전 217
2. 미일전쟁설의 생성과 유포 227
3. 한국 언론의 보도와 반응 270
제3부 한인 디아스포라와 외신대한의 건설
6장 경계를 넘다: 추방과 망향 299
1. 유민: 구대륙 내의 이동 302
2. 이민: 하와이와 신대륙으로의 이동 308
3. 태평양상의 한인 네트워크 형성 319
7장 이주소설과 체류기록 341
1. 육정수의 『송뢰금』 341
2. 현순의 『포와유람기』 353
3. 김한홍의 「해유가」 364
8장 ‘나라 밖의 나라’: 신대한의 꿈 375
1. 밖에서 바라보는 대한제국 376
2. 안에서 바라보는 외신대한 391
3. 유예된 혁명: 제국에서 민국으로 405
참고문헌 415
그림목록 436
찾아보기 438
출판사 리뷰
한국의 근대는 태평양의 ‘발견’에서 시작됐다.
태평양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격랑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였다. 태평양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모두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태평양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무엇보다 이 바다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있다.
수십 년간 한국근대사에 천착해온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는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태평양의 ‘발견’에 주목했다. 태평양의 발견은 곧 서양이 주도하는 근대 세계의 탄생을 예고했고, 그것은 한마디로 지구적 차원의 공간혁명이었다. 저자는 이 엄청난 발견이 한국사에서 지닌 의미를 밝히며 한국근대사를 새롭게 설명한다. 지금까지 ‘개항’은 근대화의 시작을 의미했다. 9세기 조선이 열었던 바닷길은 다름 아닌 광대한 태평양과 만나는 길이었다. 자본주의 문명을 촉발시키고 서양 중심의 질서를 가져온 태평양은 조선과 조선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 책은 개항기를 중심으로 태평양의 ‘발견’에 따른 근대 세계의 구성과 조선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핀다. 동서양의 지도, 당대 조선인과 외국인이 남긴 기록을 총망라하여 조선인이 태평양 개념을 알게 되는 경위와 태평양이 우리 역사의 무대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검토한다. 이로써 한국의 역사에서 태평양의 ‘발견’이 갖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한다.
태평양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가
저자는 우선 조선인이 태평양을 알게 된 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으며 태평양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지 조명한다. 태평양의 존재를 알게 된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한국사에서 태평양이 지닌 독특한 성격을 규명한다. 조선 후기의 위정자나 실학자를 포함한 지식인은 바다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낮았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과 연결된 대륙 중심적 사고의 반영이자 그 한계를 보여 준다. 일찍이 ‘해양의 시대’를 예고했던 최한기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저자는 최남선의 「소년」,「해상대한사」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개항으로 바닷길이 열린 뒤 조선인은 땅에서 바다로, 대륙에서 해양으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음을 확인한다. 특히 미국과의 수교는 태평양이 상상 속 공간이 아닌 현실의 바다임을 직시하는 직접적 계기였다. 대체 미국이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지배층만 아니라 일반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태평양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이렇게 태평양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한편, 서양 문물이 조선으로 유입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한양 도성 안의 ‘양인촌’(洋人村) 정동(貞洞)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성 안 서양인의 집단 거주지인 이곳은 청일전쟁 후 한국의 정치와 외교의 중심이며 서양 근대문물의 수용 창구이자 국내로 전파하는 발신지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는 한국이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에서 서양(특히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지배층의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변방으로만 인식되던 ‘해국’ 일본이 청일, 러일전쟁 승리 이후 부상하고,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 한국의 독립 보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미국이 포착되고 있었다. 미일충돌설이 불거지면서 태평양이 미·일 간 패권 경쟁의 무대로 한국인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지적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망국의 한인,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된 태평양
저자는 한인들이 어쩔 수 없이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현상, 즉 ‘한인 디아스포라’에 주목하며 태평양 발견의 새로운 의미를 모색한다. 태평양이 이주한 한인들의 삶의 배경이 되면서 ‘외신대한의 건설’이라는 한국근대사를 관통하는 태평양의 역사적 의의를 발견한 것이다.
한인들은 자연재해, 봉건적 압제, 대한제국의 멸망 등으로 인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한인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친척과 떨어지고, 조상이 묻힌 묘지를 버리면서까지 이역만리 먼 타향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인 디아스포라’가 일어난 것이다.
해외로 이주한 한인들은 낯선 환경에서 집단을 이루어 살아갔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단체를 만들고 신문을 발간하며 학교를 설립했다. 한국의 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보존했다. 1910년을 전후해서는 해외 한인들 사이의 연결망이 형성된다. 그 거점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의 호놀룰루,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였다. 광활한 북태평양 위에 삼각 꼭짓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 이주 한인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는 역설적으로 국가가 오직 바깥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해외 한인들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며 더 이상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을 표방했다. 한인은 나라 밖에서 조국의 국권 회복과 새로운 국민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대한제국을 대체하는 대한민국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저자가 태평양의 발견과 이로부터 비롯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의의가 이러한 점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다.
태평양은 과거부터 지금까지 언제나 격랑이 몰아치는 거친 바다였다. 태평양은 우리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와 모두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태평양에 무관심하고 무지하다. 무엇보다 이 바다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변화의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있다.
수십 년간 한국근대사에 천착해온 고정휴 포스텍 명예교수는 그동안 관심을 받지 못했던 태평양의 ‘발견’에 주목했다. 태평양의 발견은 곧 서양이 주도하는 근대 세계의 탄생을 예고했고, 그것은 한마디로 지구적 차원의 공간혁명이었다. 저자는 이 엄청난 발견이 한국사에서 지닌 의미를 밝히며 한국근대사를 새롭게 설명한다. 지금까지 ‘개항’은 근대화의 시작을 의미했다. 9세기 조선이 열었던 바닷길은 다름 아닌 광대한 태평양과 만나는 길이었다. 자본주의 문명을 촉발시키고 서양 중심의 질서를 가져온 태평양은 조선과 조선인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꿨다.
이 책은 개항기를 중심으로 태평양의 ‘발견’에 따른 근대 세계의 구성과 조선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살핀다. 동서양의 지도, 당대 조선인과 외국인이 남긴 기록을 총망라하여 조선인이 태평양 개념을 알게 되는 경위와 태평양이 우리 역사의 무대로 들어오게 된 과정을 검토한다. 이로써 한국의 역사에서 태평양의 ‘발견’이 갖는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탐구한다.
태평양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가
저자는 우선 조선인이 태평양을 알게 된 과정을 다시 한번 되짚으며 태평양이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왔는지 조명한다. 태평양의 존재를 알게 된 조선과 조선인의 모습을 상세하게 묘사하면서 한국사에서 태평양이 지닌 독특한 성격을 규명한다. 조선 후기의 위정자나 실학자를 포함한 지식인은 바다에 대한 관심이 대단히 낮았다. 이는 오랫동안 중국과 연결된 대륙 중심적 사고의 반영이자 그 한계를 보여 준다. 일찍이 ‘해양의 시대’를 예고했던 최한기는 예외적인 존재였다.
저자는 최남선의 「소년」,「해상대한사」를 비롯해 다양한 자료를 통해 개항으로 바닷길이 열린 뒤 조선인은 땅에서 바다로, 대륙에서 해양으로 빠르게 시선을 돌렸음을 확인한다. 특히 미국과의 수교는 태평양이 상상 속 공간이 아닌 현실의 바다임을 직시하는 직접적 계기였다. 대체 미국이 어디에 있는, 어떤 나라인지 지배층만 아니라 일반에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태평양의 존재가 부각되었다. 이렇게 태평양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목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는 한편, 서양 문물이 조선으로 유입되는 통로이기도 했다. 한양 도성 안의 ‘양인촌’(洋人村) 정동(貞洞)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도성 안 서양인의 집단 거주지인 이곳은 청일전쟁 후 한국의 정치와 외교의 중심이며 서양 근대문물의 수용 창구이자 국내로 전파하는 발신지 역할을 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는 한국이 중국 중심의 ‘천하’ 질서에서 서양(특히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로 이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조선 시대 지배층의 중화주의적 세계관에서 변방으로만 인식되던 ‘해국’ 일본이 청일, 러일전쟁 승리 이후 부상하고, 일본의 팽창을 견제하고 한국의 독립 보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국가로 미국이 포착되고 있었다. 미일충돌설이 불거지면서 태평양이 미·일 간 패권 경쟁의 무대로 한국인에게 각인되기 시작했다는 지적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망국의 한인, 그들의 삶의 터전이 된 태평양
저자는 한인들이 어쩔 수 없이 한반도를 떠나야 했던 현상, 즉 ‘한인 디아스포라’에 주목하며 태평양 발견의 새로운 의미를 모색한다. 태평양이 이주한 한인들의 삶의 배경이 되면서 ‘외신대한의 건설’이라는 한국근대사를 관통하는 태평양의 역사적 의의를 발견한 것이다.
한인들은 자연재해, 봉건적 압제, 대한제국의 멸망 등으로 인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20세기 들어서 태평양을 건너 하와이와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한인들도 점점 늘어났다. 그들은 인륜을 저버리는 행위임을 알면서도 친척과 떨어지고, 조상이 묻힌 묘지를 버리면서까지 이역만리 먼 타향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이른바 ‘한인 디아스포라’가 일어난 것이다.
해외로 이주한 한인들은 낯선 환경에서 집단을 이루어 살아갔다. 아무도 그들을 보호해 주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단체를 만들고 신문을 발간하며 학교를 설립했다. 한국의 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보존했다. 1910년을 전후해서는 해외 한인들 사이의 연결망이 형성된다. 그 거점은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 하와이의 호놀룰루, 미국 서부의 샌프란시스코였다. 광활한 북태평양 위에 삼각 꼭짓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해외 이주 한인들에게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새로운 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1910년 대한제국이 식민지가 된 상황에서는 역설적으로 국가가 오직 바깥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얻기 시작했다. 비록 숫자는 적지만 해외 한인들은 하나로 뭉치기 시작하며 더 이상 신민(臣民)이 아닌 국민(國民)을 표방했다. 한인은 나라 밖에서 조국의 국권 회복과 새로운 국민국가를 건립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대한제국을 대체하는 대한민국의 건립으로 이어졌다. 저자가 태평양의 발견과 이로부터 비롯된 한인 디아스포라의 역사적 의의가 이러한 점에 있다고 힘주어 말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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