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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문헌학자답게 서울 걷기
규장각한국학연구소 김시덕(金時?) 교수의 새 책 『서울 선언』은 좀 의외의 주제를 다룬다. 제목과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일종의 답사기다. 고문헌학자가 왜 서울 답사에 나섰을까? 그가 걷고 본 서울은 어떤 도시일까?
문헌학자가 서울 답사기를 썼다고 하면 아마도 [문화유산 답사]를 떠올릴 것이다. 궁궐과 박물관, 역사 유적을 돌아보겠거니 생각할 만하다. 그러나 이 책에 그런 장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말하자면, 찬란한 문화유산이나, 아픈 근대의 흔적 같은 이야기는 없다. 물론 이 책도 역사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그 시점은 대체로 현재에 가깝다.
저자는 주로 [여기도 서울인가?] 싶은 장소들을 걷는다. 그 장소들은 그가 40여 년간 살고 생활했던 곳들이다. 특별할 것 없고 역사가 없어 보이는 곳들을 걸으며 조금은 다른 서울의 역사를 읽어 낸다. 그는 그 장소들을 [무수히 많은 책이 꽃힌 도서관]이라고 칭한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이 어쩌면 진짜 서울의 역사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목차
제1장 여기도 서울이다
1. 여기도 서울인가?
2. 〈사대문 안〉만 서울인가?
3. 서울 보는 법: 삼문화 광장(三文化廣場)
4. 여러 모습의 서울
제2장 나의 서울 답사 40년
1. 잠실
2. 부천시 소사
3. 안양시 평촌
4. 방배동
5. 신반포와 구반포
6. 종로와 광화문
7. 중계동
8. 고양시 일산
9. 개포동
제3장 서울 걷기 실전편
1. 이제는 걸을 수 없는 답사 코스: 청계천
2. 식민지 시대의 신도시를 걷다: 청계천 남쪽에서 한강까지
3. 1925년 을축년 대홍수의 문화사: 양수리에서 영등포까지
4. 최초의 강남을 걷다: 영등포에서 흑석동까지
5. 변화는 서울의 끝에서 시작된다: 종교, 공장, 노동자
제4장 서울, 어떻게 기억할까?
1. 은평 뉴타운
2. 은평 한옥 마을과 은평 역사 한옥 박물관
3. 역사 왜곡으로부터 서울을 지켜라
나가며
인용한 글
저자 소개
YES24 리뷰
휴가철, 멀리 떠날 것 없이 근처라도 걸어보실래요?
손민규 (lugali@yes24.com) | 2018-07-04
지금은 입사 면접 단골 문제가 어떻게 변한지 모르겠다. 대략 10여 년 전, 대표적인 질문이 "여기까지 온 과정을 1분 안에 말하시오."였다. 당시 나는 관악구에 살았고, 면접을 보기 위해 동작구와 영등포구를 지나는 버스를 탔더랬다. 지나친 정류장 중 '강남 초등학교'라는 곳이 있었다. 강남 초등학교로 썰을 풀었다. 강남3구가 아닌 곳에도 강남이라는 명칭을 학교에 붙이는 것은 대한민국의 과잉된 교육 열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고 말이다. 나름 잘 대답했다고 생각하고 뻐근해하며 면접관을 바라봤더랬다.
그리고 10년 뒤. 『서울 선언』을 읽으며 강남 개발 이전의 강남이 영등포구와 동작구 일대를 일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볼이 빨개졌다. 그 면접관은 내 대답을 들으며 코웃음 쳤을까? 주변에 있는 서울 토박이들을 만날 때마다 집요하게 묻고 다녔다. 동작구에 왜 강남초등학교가 있는지 아니? 다행히도 내 또래 서울 토박이들은 나처럼 몰랐다.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정신 승리하기로 했다. 그 면접관도 몰랐을 거야! 우리에게 서울의 역사는 사대문 안 서울을 주로 의미하니까.
현대 서울 시민이 조선 시대의 사대문 안에만 주목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외국 도시의 올드 타운을 관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자기가 사는 도시를 관광객처럼 낯설게 보는 것은 도시를 보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서울 사대문 안이라는 올드 타운의 바깥에 사는 나 자신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주인공이 아닌 존재로서 스스로 소외되어 버립니다. (51쪽)
여하튼 『서울 선언』은 서울에 관한 책이다. 김시덕 문헌학자가 책을 연구하듯 꼼꼼하게 서울을 둘러보고 쓴 기록이다. 부제가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이다. 문헌학자의 서울 걷기란 어떤 의미일까. 문헌학이란 기존에 주목받지 않았던 텍스트까지 세세하게 검토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학문이다. 이 방법을 서울 답사에 적용해본다면,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문헌학자의 서울 걷기라 할 수 있겠다. 그간 서울을 소개하는 책에서 단골로 등장했듯 궁궐이나 종묘 같은 조선 시대 유적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도로, 골목, 단독 주택, 다세대 주택 등등 보통의 공화국 시민이 살고 걷는 공간을 소개한다. 글을 보지 않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만 쓱 보더라도 서울이 이토록 다채로운 공간이었다니!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다.
이 책이 서울 걷는 법만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전작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 주류 한국인의 역사 인식 -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 과 반대되는 주장을 개진했듯, 이번 책에서는 책 곳곳에서 한국의 역사 기억 방식을 비판한다. 이를테면, 한국은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재가 풍부하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가 나쁘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뒤 대한민국 정부에서 벌어진 동일한 폭력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태도. 서울을 기억하는 다섯 가지 선입견에 관한 부분 - 조선 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 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 도 유념할 만한 대목이다.
서울의 백제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습니다. 현대 한국, 현대 서울에 이렇게까지 유적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책임의 일부는 발 우리 현대 한국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69쪽)
조선 신궁은 헐릴 만합니다만, 현대 한국 시기에 세워져서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들른 남산 식물원을 헐어 버리고, 조선 왕조 시대의 성곽을 복원하는 데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선 왕조라는 왕국의 신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시민입니다. 대한민국 시기에 만들어진 건물과 공간들이 귀히 여겨지지 않아서 툭하면 헐려 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 왕조의 유적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작되는 최근 움직임이 한탄스럽습니다. (중략)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 시대의 로마를 지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을 깡그리 철거해 버렸습니다. 자기가 로마 제국의 위엄을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했다고 강조함으로써, 로마 제국과 자신의 파시스트 국가를 동일시하려고 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서울 곳곳에서 대한민국 시대의 건물과 공간을 헐고 조선 시대의 유적을 발굴 복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이름만 제국이었던 대한 제국을 <아시아 2위의 군사 강국>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치 무솔리니 시대의 로마 발굴 작업을 보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받고 있습니다. (177쪽)
눈 떠 보니, 올해도 절반이 지났다. 휴가철이 성큼 다가왔다. 멀리 떠난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골목, 도로, 건물도 유심히 보면 재밌는 게 많다. 그 장소가 이 책에서 다룬 서울일 필요도 없다. 저자의 바람처럼 각자 자신이 사는 동네를 걷고, 기록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10년 뒤. 『서울 선언』을 읽으며 강남 개발 이전의 강남이 영등포구와 동작구 일대를 일컬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볼이 빨개졌다. 그 면접관은 내 대답을 들으며 코웃음 쳤을까? 주변에 있는 서울 토박이들을 만날 때마다 집요하게 묻고 다녔다. 동작구에 왜 강남초등학교가 있는지 아니? 다행히도 내 또래 서울 토박이들은 나처럼 몰랐다. 마음대로 결론 내리고 정신 승리하기로 했다. 그 면접관도 몰랐을 거야! 우리에게 서울의 역사는 사대문 안 서울을 주로 의미하니까.
현대 서울 시민이 조선 시대의 사대문 안에만 주목하는 것은,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외국 도시의 올드 타운을 관광하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자기가 사는 도시를 관광객처럼 낯설게 보는 것은 도시를 보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방법만으로는, 서울 사대문 안이라는 올드 타운의 바깥에 사는 나 자신이 서울이라는 도시의 주인공이 아닌 존재로서 스스로 소외되어 버립니다. (51쪽)
여하튼 『서울 선언』은 서울에 관한 책이다. 김시덕 문헌학자가 책을 연구하듯 꼼꼼하게 서울을 둘러보고 쓴 기록이다. 부제가 '문헌학자 김시덕의 서울 걷기'이다. 문헌학자의 서울 걷기란 어떤 의미일까. 문헌학이란 기존에 주목받지 않았던 텍스트까지 세세하게 검토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내는 학문이다. 이 방법을 서울 답사에 적용해본다면, 그간 주목받지 않았던 공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게 문헌학자의 서울 걷기라 할 수 있겠다. 그간 서울을 소개하는 책에서 단골로 등장했듯 궁궐이나 종묘 같은 조선 시대 유적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도로, 골목, 단독 주택, 다세대 주택 등등 보통의 공화국 시민이 살고 걷는 공간을 소개한다. 글을 보지 않고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만 쓱 보더라도 서울이 이토록 다채로운 공간이었다니!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겠다.
이 책이 서울 걷는 법만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전작인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 주류 한국인의 역사 인식 - 한반도는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지금도 그러하다 - 과 반대되는 주장을 개진했듯, 이번 책에서는 책 곳곳에서 한국의 역사 기억 방식을 비판한다. 이를테면, 한국은 역사가 유구하고 문화재가 풍부하다는 사실. 그리고 일본제국주의가 나쁘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뒤 대한민국 정부에서 벌어진 동일한 폭력에 관해서는 침묵하는 태도. 서울을 기억하는 다섯 가지 선입견에 관한 부분 - 조선 후기 중심주의, 사대문 안 중심주의, 왕족 양반 중심주의, 주자학 중심주의, 남성 중심주의 - 도 유념할 만한 대목이다.
서울의 백제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습니다. 현대 한국, 현대 서울에 이렇게까지 유적 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책임의 일부는 발 우리 현대 한국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69쪽)
조선 신궁은 헐릴 만합니다만, 현대 한국 시기에 세워져서 수많은 서울 시민들이 들른 남산 식물원을 헐어 버리고, 조선 왕조 시대의 성곽을 복원하는 데에 저는 찬성하지 않습니다. 저는 조선 왕조라는 왕국의 신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공화국의 시민입니다. 대한민국 시기에 만들어진 건물과 공간들이 귀히 여겨지지 않아서 툭하면 헐려 버리고, 그 자리에 조선 왕조의 유적이 복원이라는 이름으로 새로 창작되는 최근 움직임이 한탄스럽습니다. (중략)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 시대의 로마를 지상에 드러내기 위해, 그 이후에 만들어진 것들을 깡그리 철거해 버렸습니다. 자기가 로마 제국의 위엄을 세상에 다시 드러나게 했다고 강조함으로써, 로마 제국과 자신의 파시스트 국가를 동일시하려고 했습니다. 21세기 들어 서울 곳곳에서 대한민국 시대의 건물과 공간을 헐고 조선 시대의 유적을 발굴 복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이름만 제국이었던 대한 제국을 <아시아 2위의 군사 강국>이라는 식으로 호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마치 무솔리니 시대의 로마 발굴 작업을 보는 듯한 불길한 예감을 받고 있습니다. (177쪽)
눈 떠 보니, 올해도 절반이 지났다. 휴가철이 성큼 다가왔다. 멀리 떠난는 것도 좋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굳이 멀리 갈 필요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 주변에 존재하는 골목, 도로, 건물도 유심히 보면 재밌는 게 많다. 그 장소가 이 책에서 다룬 서울일 필요도 없다. 저자의 바람처럼 각자 자신이 사는 동네를 걷고, 기록하고, 사랑했으면 좋겠다.
책 속으로
여기도 서울인가? 어디까지 서울인가? 인위적으로 구획된 행정 구역인 서울특별시 안의 지역들을 걷는 것에 어떤 의미가 있나? 나는 왜 우연히 탄생한 것일 뿐인 행정 구역 서울을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걸까? --- p.19
오늘날의 서울이 1963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처럼, 현재 서울의 역사라는 것도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띤 서울특별시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서울의 역사〉란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p.28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 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옛 책이 동일하게 귀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속의 모든 공간과 사람도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 p.33
양천 향교는 양천구가 아니라 강서구에 있습니다. 사대문 가운데 동대문은 동대문구가 아니라 종로구에 있구요. 옛 시흥군은 지금의 시흥시와는 무관하게 서울 금천구 시흥동이 중심지였고, 매동 초등학교는 현재 필운동에 있습니다. 명실상부하지 않은 지명이 많은 것 또한, 서울의 역사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증언해 줍니다. --- p.39
현대 〈서울〉의 대부분은 1936년과 1963년 이후 〈서울〉이라 불리게 된 지역들입니다. 그리고 서울 시민의 절대 다수는 이들 지역에 삽니다. 조선 시대까지의 사대문 안 한양의 역사와 문화는, 저를 포함한 이들 새로운 서울의 시민들과는 무관합니다. --- p.49
서울의 백제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습니다. 현대 한국, 현대 서울에 이렇게까지 유적?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책임의 일부는 바로 우리 현대 한국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 p.69
식민 잔재라고 말해지곤 하는 서대문 형무소와 안산 선감 학원도, 사실은 식민지 시대에 이용된 기간보다 현대 한국 시대에 이용된 기간이 더 깁니다. ……국민의례, 국민 교육 헌장, 반상회, 국가 보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제도들을 일제 잔재라고만 해버리면, 현대 한국 시대에 이 제도들에 의해 피해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 p.79
5학년으로 전학 간 안양 남초등학교에서는 〈다가오는 이천 년의 새 날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경기도민의 노래를 배웠습니다. 경기도에서는 도민의 노래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에서 막 전학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울 시민의 노래 같은 걸 배우지 않는데, 왜 경기도에서는 경기도민의 노래를 배울까?〉 서울과 서울 주변 지역은 왜 이렇게 다른가. 이런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 p.105
청계천은 오늘날의 서울이 시작된 지점입니다. 청계천 남쪽에는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의 신도시가 만들어졌고, 북쪽에서도 오늘날 〈북촌〉의 원형이 만들어집니다. ……북촌 한옥은 조선 시대 양반들의 집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중산층 조선인들의 〈마이홈〉이었습니다. --- p.149
1960년대에 청계천 빈민들을 동남쪽 광주대단지로 이주시킨 서울시는, 21세기 들어 또 다시 청계천 상인들을 동남쪽 성남시와의 경계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자신들이 보기 싫은 존재를 서울 경계 지역으로 보내 버려서 눈에 띄지 않게 한다는 심리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 p.172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 상〉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보이게 세워져 있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부정적인 유산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배치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배치함으로써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 p.187
경성 호국 신사가 세워진 것은 1943년입니다. 그러니까 2년 정도만 운영되다가 한반도가 해방되면서 폐기된 것이지요. 그 후, 경성 호국 신사의 빈 땅에 월남민들이 정착하면서 해방촌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해방 예배당이라는 종교 시설이 건재하여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 p.201
오늘날 서울 시내 각지의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땅을 주고 집과 학교를 지어 준 김주용 선생과 그를 추모하는 비석은 여전히 잊혀져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일부 세력은 〈친일파〉라는 칼을 너무나도 쉽게 휘둘러 역사를 왜곡하고 망각시키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낙인찍습니다. --- p.247
1930년대에 공업 지대로서 발전한 영등포는 1936년에 경성에 편입됩니다. 그 후 영등포, 노량진, 흑석동은 〈강남〉이라 불리게 됩니다. 용산에서 남쪽으로 한강 인도교와 한강 철교를 건너면 다다르는 곳이니, 한강의 남쪽인 강남이 맞지요. 지금도 강남 아파트, 강남 중학교, 강남 교회를 비롯해서 강남이라는 단어가 붙은 시설과 업체를 영등포와 그 주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p.269
청계천 한복판에 공장들이 있을 때는 1970년의 전태일 분신 때처럼 노동자들의 문제가 즉시 시민들에게 전달되었지만, 1985년에 서울 서남쪽의 구로 공단에서 동맹 파업이 일어났을 때에는 파업의 배경이 되는 노동자들의 실상이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공단을 서울의 끝에 세운 의도는, 단순히 혐오 시설을 서울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 두려고 한 것 뿐 아니라, 노동자와 일반 시민을 떨어뜨려 놓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 p.312
현대 한국의 변화가 서울의 끝에서 시작되기에, 그 변화의 주체들과 함께 하는 종교 세력들도 서울의 끝에 자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해방촌의 해방 예배당이나 을지로의 영락 교회가 1945년 8월 이후 북한 주민들의 남한으로의 이주를 상징한다면, 한강 남쪽의 이들 종교 시설은 서울이 남쪽으로 확장되고 지방민이 서울로 이주?정착한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 p.313
1978년에 인천 서쪽에서 일어난 동일방직 사건과 1979년에 서울 동쪽 끝 면목동에서 일어난 YH무역 사건, 그리고 1980년대에 서울 동쪽의 구리시에서 일어난 원진레이온 사건은 서울 중심부에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이윽고 한국 전체를 뒤흔들게 됩니다. 그 변화의 주인공은 〈아무 것도 아닌〉 우리 시민들이었습니다. --- p.334쪽
〈구로 공단〉이라는 이름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바뀌고, 〈가리봉역〉이라는 이름은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뀝니다. 〈가산〉은 1963~1970년 사이에 존재한 지명이기는 했지만, 〈가리봉〉이 훨씬 오래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리봉〉과 〈독산〉을 합친 인공적인 지명인 〈가산〉이 〈가리봉〉을 대체한 데서, 저는 모종의 의도를 느낍니다. --- p.338
서울특별시에 속해 있지만 옛 사대문 안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대문 안의 〈진짜 서울〉, 〈궁궐의 도시 서울〉에서 찾기 위해 한강 너머 사대문 안을 바라볼 뿐, 자신들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 p.350
키 낮은 단독 주택들과 빌딩들의 군집 속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유럽?일본의 성곽 도시와 주변 공간을 연상케 합니다. 그 공간의 중심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는, 그 일대의 옛 공간과 주민들에게 위압적으로 근대화, 또는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서구화를 강제하는 〈혁명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런지요. --- p.367
한반도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대부분의 서민들이 살아 온 집은 기와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삼남 지역의 커다란 기와집 형태만 짓게 한 동네를 〈한옥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역사 왜곡이고, 온건하게 말하자면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 p.375
소수자들을 시민들의 기억에서 지워 버리면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은, 〈선비〉니 〈양반〉이니 〈사대부〉니 자칭하는 소수의 남성 지배자들이 조선 시대부터 현대 한국에 이르는 시기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주도했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지금도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권리가 있다는 세계관입니다. --- p.388
실제로 있었던 일을 부끄럽다며 감추려 하고, 그런 말 하는 사람의 입을 폭력적으로 다물게 하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를 기억에서 지우고는 자신들 보기에 바람직한 과거를 창조하려는 것을 역사 왜곡이라고 합니다. 동북공정이니 식민사관이니 하면서 이웃나라들을 비난하기 전에, 한국 시민은 스스로가 떳떳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 p.398
이 책의 집필 과정은 곧, 아직 제각각의 정체성이 강하고 서로 간의 관계성이 긴밀하지 않은 서울을 그 전체로서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나의 서울 순례〉였습니다. 이 책은 제가 지난 40년간 서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을 기록한 〈서울 이야기〉이자, 서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밝힌 〈서울 선언〉이며, 김시덕이라는 인문학자의 〈서울학(學)〉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독자분들께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걸을 때 참고로 하실 수 있는 〈서울 답사 매뉴얼〉입니다.
오늘날의 서울이 1963년에야 지금의 형태를 띠게 된 것처럼, 현재 서울의 역사라는 것도 원래부터 존재하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만들어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와 같은 형태를 띤 서울특별시는 역사적으로 존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올바른 서울의 역사〉란 것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 p.28
이제까지 서울을 말해 온 사람들이 조선 시대 궁궐과 왕릉, 양반의 저택과 정자들을 주로 거론해 온 것은 대단히 편협한 귀족주의적 세계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모든 옛 책이 동일하게 귀중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울 속의 모든 공간과 사람도 동일하게 가치 있는 존재들입니다. --- p.33
양천 향교는 양천구가 아니라 강서구에 있습니다. 사대문 가운데 동대문은 동대문구가 아니라 종로구에 있구요. 옛 시흥군은 지금의 시흥시와는 무관하게 서울 금천구 시흥동이 중심지였고, 매동 초등학교는 현재 필운동에 있습니다. 명실상부하지 않은 지명이 많은 것 또한, 서울의 역사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을 증언해 줍니다. --- p.39
현대 〈서울〉의 대부분은 1936년과 1963년 이후 〈서울〉이라 불리게 된 지역들입니다. 그리고 서울 시민의 절대 다수는 이들 지역에 삽니다. 조선 시대까지의 사대문 안 한양의 역사와 문화는, 저를 포함한 이들 새로운 서울의 시민들과는 무관합니다. --- p.49
서울의 백제 유적이 파괴된 것은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킨 뒤도 아니고, 임진왜란 때도 아니고, 식민지 시대도 아니고, 바로 우리 한국인들이 정부를 세운 현대 한국 시기였습니다. 현대 한국, 현대 서울에 이렇게까지 유적?유물이 남아 있지 않은 책임의 일부는 바로 우리 현대 한국인들 자신에게 있습니다. 이 책임을 회피하면 안 됩니다. --- p.69
식민 잔재라고 말해지곤 하는 서대문 형무소와 안산 선감 학원도, 사실은 식민지 시대에 이용된 기간보다 현대 한국 시대에 이용된 기간이 더 깁니다. ……국민의례, 국민 교육 헌장, 반상회, 국가 보안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제도들을 일제 잔재라고만 해버리면, 현대 한국 시대에 이 제도들에 의해 피해받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잃은 사람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결과를 낳습니다. --- p.79
5학년으로 전학 간 안양 남초등학교에서는 〈다가오는 이천 년의 새 날이 오면〉으로 시작하는 경기도민의 노래를 배웠습니다. 경기도에서는 도민의 노래를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서울에서 막 전학간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서울에서는 서울 시민의 노래 같은 걸 배우지 않는데, 왜 경기도에서는 경기도민의 노래를 배울까?〉 서울과 서울 주변 지역은 왜 이렇게 다른가. 이런 고민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 p.105
청계천은 오늘날의 서울이 시작된 지점입니다. 청계천 남쪽에는 19세기 말에 일본인들의 신도시가 만들어졌고, 북쪽에서도 오늘날 〈북촌〉의 원형이 만들어집니다. ……북촌 한옥은 조선 시대 양반들의 집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중산층 조선인들의 〈마이홈〉이었습니다. --- p.149
1960년대에 청계천 빈민들을 동남쪽 광주대단지로 이주시킨 서울시는, 21세기 들어 또 다시 청계천 상인들을 동남쪽 성남시와의 경계 지역으로 보냈습니다. 자신들이 보기 싫은 존재를 서울 경계 지역으로 보내 버려서 눈에 띄지 않게 한다는 심리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았습니다. --- p.172
〈남작 하야시 곤스케 군 상〉이라는 글자가 거꾸로 보이게 세워져 있는 것은 식민지 시대의 부정적인 유산도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배치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알 수가 없지만, 이렇게 배치함으로써 통쾌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겠습니다. --- p.187
경성 호국 신사가 세워진 것은 1943년입니다. 그러니까 2년 정도만 운영되다가 한반도가 해방되면서 폐기된 것이지요. 그 후, 경성 호국 신사의 빈 땅에 월남민들이 정착하면서 해방촌이라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지금도 해방 예배당이라는 종교 시설이 건재하여 당시의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 p.201
오늘날 서울 시내 각지의 역사적 인물을 발굴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는 와중에도, 을축년 대홍수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에게 땅을 주고 집과 학교를 지어 준 김주용 선생과 그를 추모하는 비석은 여전히 잊혀져 있습니다. 현재 한국의 일부 세력은 〈친일파〉라는 칼을 너무나도 쉽게 휘둘러 역사를 왜곡하고 망각시키고, 자신들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낙인찍습니다. --- p.247
1930년대에 공업 지대로서 발전한 영등포는 1936년에 경성에 편입됩니다. 그 후 영등포, 노량진, 흑석동은 〈강남〉이라 불리게 됩니다. 용산에서 남쪽으로 한강 인도교와 한강 철교를 건너면 다다르는 곳이니, 한강의 남쪽인 강남이 맞지요. 지금도 강남 아파트, 강남 중학교, 강남 교회를 비롯해서 강남이라는 단어가 붙은 시설과 업체를 영등포와 그 주변 지역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 p.269
청계천 한복판에 공장들이 있을 때는 1970년의 전태일 분신 때처럼 노동자들의 문제가 즉시 시민들에게 전달되었지만, 1985년에 서울 서남쪽의 구로 공단에서 동맹 파업이 일어났을 때에는 파업의 배경이 되는 노동자들의 실상이 대다수의 서울 시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습니다. 공단을 서울의 끝에 세운 의도는, 단순히 혐오 시설을 서울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진 데에 두려고 한 것 뿐 아니라, 노동자와 일반 시민을 떨어뜨려 놓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 p.312
현대 한국의 변화가 서울의 끝에서 시작되기에, 그 변화의 주체들과 함께 하는 종교 세력들도 서울의 끝에 자리한 경우가 많습니다. ……해방촌의 해방 예배당이나 을지로의 영락 교회가 1945년 8월 이후 북한 주민들의 남한으로의 이주를 상징한다면, 한강 남쪽의 이들 종교 시설은 서울이 남쪽으로 확장되고 지방민이 서울로 이주?정착한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 p.313
1978년에 인천 서쪽에서 일어난 동일방직 사건과 1979년에 서울 동쪽 끝 면목동에서 일어난 YH무역 사건, 그리고 1980년대에 서울 동쪽의 구리시에서 일어난 원진레이온 사건은 서울 중심부에 충격을 주었고, 그 충격은 이윽고 한국 전체를 뒤흔들게 됩니다. 그 변화의 주인공은 〈아무 것도 아닌〉 우리 시민들이었습니다. --- p.334쪽
〈구로 공단〉이라는 이름은 〈구로디지털단지〉, 〈G밸리〉로 바뀌고, 〈가리봉역〉이라는 이름은 〈가산디지털단지역〉으로 바뀝니다. 〈가산〉은 1963~1970년 사이에 존재한 지명이기는 했지만, 〈가리봉〉이 훨씬 오래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가리봉〉과 〈독산〉을 합친 인공적인 지명인 〈가산〉이 〈가리봉〉을 대체한 데서, 저는 모종의 의도를 느낍니다. --- p.338
서울특별시에 속해 있지만 옛 사대문 안이 아닌 지역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사대문 안의 〈진짜 서울〉, 〈궁궐의 도시 서울〉에서 찾기 위해 한강 너머 사대문 안을 바라볼 뿐, 자신들이 바로 지금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 p.350
키 낮은 단독 주택들과 빌딩들의 군집 속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들이 우뚝 솟아 있는 모습은, 유럽?일본의 성곽 도시와 주변 공간을 연상케 합니다. 그 공간의 중심에 자리한 아파트 단지는, 그 일대의 옛 공간과 주민들에게 위압적으로 근대화, 또는 한국인들의 상상 속에 존재하는 서구화를 강제하는 〈혁명군〉이라고 부를 수 있을런지요. --- p.367
한반도 역사의 대부분 시기에 대부분의 서민들이 살아 온 집은 기와집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기에, 삼남 지역의 커다란 기와집 형태만 짓게 한 동네를 〈한옥 마을〉이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역사 왜곡이고, 온건하게 말하자면 〈만들어진 전통〉입니다. --- p.375
소수자들을 시민들의 기억에서 지워 버리면서 만들어 내려고 하는 것은, 〈선비〉니 〈양반〉이니 〈사대부〉니 자칭하는 소수의 남성 지배자들이 조선 시대부터 현대 한국에 이르는 시기까지 한반도의 역사를 주도했고, 이들이 주축이 되어 일본의 침략을 물리쳤으며, 지금도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권리가 있다는 세계관입니다. --- p.388
실제로 있었던 일을 부끄럽다며 감추려 하고, 그런 말 하는 사람의 입을 폭력적으로 다물게 하고, 자신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 과거를 기억에서 지우고는 자신들 보기에 바람직한 과거를 창조하려는 것을 역사 왜곡이라고 합니다. 동북공정이니 식민사관이니 하면서 이웃나라들을 비난하기 전에, 한국 시민은 스스로가 떳떳한지 돌아봐야 합니다. --- p.398
이 책의 집필 과정은 곧, 아직 제각각의 정체성이 강하고 서로 간의 관계성이 긴밀하지 않은 서울을 그 전체로서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한 〈나의 서울 순례〉였습니다. 이 책은 제가 지난 40년간 서울을 걸으며 생각한 것을 기록한 〈서울 이야기〉이자, 서울에 대한 저의 생각을 밝힌 〈서울 선언〉이며, 김시덕이라는 인문학자의 〈서울학(學)〉입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독자분들께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걸을 때 참고로 하실 수 있는 〈서울 답사 매뉴얼〉입니다.
--- p.405
출판사 리뷰
여기도 서울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현대 서울이다. 얼핏 봐선 볼품없는 곳들이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와 골목, 공단과 종교 시설, 주택가와 빈민가, 유흥가와 집창촌, 서울 안의 농촌 지대, 이런 곳들이 저자의 관심사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곳이 바로 시민의 생활 터전이라는 점이다. 경복궁 근처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도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 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아마도 그 장소들에서 역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이다. 또한 [시민의 도시]로서 서울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장소들이 서울의 변두리라는 점이다. 이제는 서울의 새로운 중심처럼 느껴지는 강남도 사실은 가장 늦게 서울에 합류한 변두리 중 하나다. [강남은 서울이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보는 변두리의 한 특징은 [역동성]이다. 이 장소들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은 그 한 단면일 뿐이다. 한편으로 역동성은 사회 변혁의 측면을 말하기도 한다. 위정자들은 불안 요소들을 서울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노력해 왔다. 빈민과 철거민, 집창촌, 공단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쌓인 불안이 사회 변혁의 불씨가 되어 왔다. 저자는 [현대 한국의 변화는 언제나 땅끝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파악하려면 서울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도시, 서울
그렇다 하더라도, 한양 도성 안의 풍성한 문화유산을 두고 굳이 변두리를 걸어야 할까. 경복궁이나 종묘에 가면 얻을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조선 왕조의 유산은 그 자체로 서울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이 책은 서울에서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것이 단지 그뿐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의 계승을 서울의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을 [조선 왕조 중심주의]라 칭하고, 강남 개발 과정에서 파괴된 백제 고분과 왕성들, 은평 한옥 마을 조성 과정에서 파괴된 5,000여 기의 평민 무덤을 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근대 문화 유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행태도 문제 삼는다. 일제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아픈 역사를 감추고 지울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드러내야만 교훈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우리는 외국에 비해 문화유산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침략을 많이 받아서], [일제의 약탈]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책임이 현대 한국에도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사대문 안 조선 왕조를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같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 사대문 밖 오래된 장소들은 함부로 파헤쳐 재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저자는 서울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것을 요청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조선 왕조와 사대부의 전통을 잇는 도시가 아니고, [공화국의 수도]이자 [시민의 도시]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뿐 아니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도 공존하는 도시다. 이 모든 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서울의 진정한 주인, 시민을 존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서울을 걷는 법
저자에게 서울 걷기는 곧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는 방편이다. 그는 [사대문 안이 진짜 서울]이라는 동료 연구자의 말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애초의 문제의식이다. 한편으로는 학자로서 정체성과도 맥락이 닿는다. 사학계 일부는 그의 학문적 관점을 두고 [친일파]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대문 밖 서울을 [가짜]로 보는 태도가 자신들과 다른 학문 관점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 맞서기 위해 위정자들과 학자들이 가치 없다고 치부하는 사대문 밖 서울을 걸었다.
즉, 이 책의 서울 걷기는 저자의 삶의 이력을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하지만, 누구나 나름의 삶이 깃든 장소가 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걷기를 권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적 맥락을 읽기 쉽도록 배려한 궁궐과 유적지에 비해, 우리가 사는 주변부를 걸음으로써 뭔가를 얻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노하우는 같은 장소를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걷는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서울의 주인이고, 변화야말로 서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관찰해야만 의미를 짚을 수 있다. 또 하나의 노하우는 [여럿이 걷기]다. 무엇이든 혼자서는 알기 어렵다. 가능하면 동료와 함께 걷는 것이 좋다. 저자 역시 책의 곳곳에서 함께 걷던 동료로부터 중요한 통찰을 얻는다. 한편으로 선행 답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가령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장소들은 현대 서울이다. 얼핏 봐선 볼품없는 곳들이다. 아파트 단지와 상가와 골목, 공단과 종교 시설, 주택가와 빈민가, 유흥가와 집창촌, 서울 안의 농촌 지대, 이런 곳들이 저자의 관심사다. 이들 장소의 공통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그곳이 바로 시민의 생활 터전이라는 점이다. 경복궁 근처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타워팰리스에 사는 사람도 극소수일 뿐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시민 대다수가 사는 공간에 관심이 없고, 함부로 없애 버려도 된다고 생각할까. 저자가 보기에 이것은 아마도 그 장소들에서 역사가 지워졌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 역사를 복원하기 위한 시도이다. 또한 [시민의 도시]로서 서울을 재정립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 장소들이 서울의 변두리라는 점이다. 이제는 서울의 새로운 중심처럼 느껴지는 강남도 사실은 가장 늦게 서울에 합류한 변두리 중 하나다. [강남은 서울이 아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저자가 보는 변두리의 한 특징은 [역동성]이다. 이 장소들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은 그 한 단면일 뿐이다. 한편으로 역동성은 사회 변혁의 측면을 말하기도 한다. 위정자들은 불안 요소들을 서울의 중심부에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노력해 왔다. 빈민과 철거민, 집창촌, 공단 등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쌓인 불안이 사회 변혁의 불씨가 되어 왔다. 저자는 [현대 한국의 변화는 언제나 땅끝에서 시작되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서울이 어떤 도시인지 파악하려면 서울의 중심이 아니라 변두리를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시민의 도시, 서울
그렇다 하더라도, 한양 도성 안의 풍성한 문화유산을 두고 굳이 변두리를 걸어야 할까. 경복궁이나 종묘에 가면 얻을 것이 더 많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조선 왕조의 유산은 그 자체로 서울의 소중한 자산이다. 다만 이 책은 서울에서 소중히 보존되어야 할 것이 단지 그뿐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저자는 조선 왕조와 사대부 문화의 계승을 서울의 정체성 확립과 동일시하는 관점을 비판한다. 이 관점을 [조선 왕조 중심주의]라 칭하고, 강남 개발 과정에서 파괴된 백제 고분과 왕성들, 은평 한옥 마을 조성 과정에서 파괴된 5,000여 기의 평민 무덤을 예로 든다. 한편으로는 일제 잔재 청산을 이유로 근대 문화 유산을 마구잡이로 훼손하는 행태도 문제 삼는다. 일제를 옹호하자는 게 아니다. 아픈 역사를 감추고 지울 것이 아니라 보존하고 드러내야만 교훈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저자는 서울이 [역사 없는 도시]가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애초에 우리는 외국에 비해 문화유산이 그리 많지 않다. 흔히 [침략을 많이 받아서], [일제의 약탈] 때문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저자는 그 책임이 현대 한국에도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사대문 안 조선 왕조를 복원해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같은 일에 매달리는 한편, 사대문 밖 오래된 장소들은 함부로 파헤쳐 재개발하는 데 여념이 없다.
저자는 서울의 정체성을 다시 정립할 것을 요청한다. 그에 따르면, 서울은 조선 왕조와 사대부의 전통을 잇는 도시가 아니고, [공화국의 수도]이자 [시민의 도시]이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의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뿐 아니라 초라하고 더러운 모습도 공존하는 도시다. 이 모든 것을 역사로 받아들이는 것이 곧 서울의 진정한 주인, 시민을 존중하는 길임을 강조한다.
서울을 걷는 법
저자에게 서울 걷기는 곧 자신의 존재 근거를 찾는 방편이다. 그는 [사대문 안이 진짜 서울]이라는 동료 연구자의 말을 인용한다. [그렇다면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것이 바로 애초의 문제의식이다. 한편으로는 학자로서 정체성과도 맥락이 닿는다. 사학계 일부는 그의 학문적 관점을 두고 [친일파]라고 비판한다. 그는 사대문 밖 서울을 [가짜]로 보는 태도가 자신들과 다른 학문 관점을 친일파로 매도하는 태도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이러한 편협한 시각에 맞서기 위해 위정자들과 학자들이 가치 없다고 치부하는 사대문 밖 서울을 걸었다.
즉, 이 책의 서울 걷기는 저자의 삶의 이력을 반영한다. 많은 이들이 공감할 만하지만, 누구나 나름의 삶이 깃든 장소가 또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더 많은 시민이 자신의 도시를 걷기를 권한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도시를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라고 강조한다.
역사적 맥락을 읽기 쉽도록 배려한 궁궐과 유적지에 비해, 우리가 사는 주변부를 걸음으로써 뭔가를 얻으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저자가 강조하는 노하우는 같은 장소를 시간 간격을 두고 반복해서 걷는 것이다. [시간이야말로 서울의 주인이고, 변화야말로 서울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관찰해야만 의미를 짚을 수 있다. 또 하나의 노하우는 [여럿이 걷기]다. 무엇이든 혼자서는 알기 어렵다. 가능하면 동료와 함께 걷는 것이 좋다. 저자 역시 책의 곳곳에서 함께 걷던 동료로부터 중요한 통찰을 얻는다. 한편으로 선행 답사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가령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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