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인간과 건강 (책소개)/1.죽음.심령.사후세계

죽음이란 무엇인가: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동방박사님 2022. 9. 14.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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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역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DEATH’는 하버드대 ‘정의’및 ‘행복’과 함께 ‘아이비리그 3대 명강’으로 불리는 강의이며,17년 연속 예일대 최고의 명강의로 꼽혔다. 저자는 이 책에서 그동안 우리가 생각해왔던 심리적 믿음과 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논리와 이성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를 고찰한다.

하버드대 마이클 샌델(Michael Sandel)과 더불어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로 불리는 셸리 케이건(Shelly Kagan) 교수는 이 책에서 다소 무겁고 어둡게 흘러갈 수 있는 주제를 토크쇼 사회자에 비견되는 특유의 유머감각과 입담으로 흥미롭게 풀어간다. 고대에서 현대까지 방대한 철학사를 다루면서도 난해한 철학용어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 그만의 교수법은 “대중철학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강의할 때 항상 책상 위에 올라간다고 해서 ‘책상 교수님’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의 이 죽음 강의는, 예일대학교 지식공유 프로젝트인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OYC)’의 대표 강의로서 미국과 영국 및 유럽은 물론 중국과 러시아에도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사후 세계는 존재해는지, 영혼은 실재하는 것인지, 죽음이 과연 나쁜 것인지, 영원한 삶이 좋은 것인지, 자살은 도덕적으로 납득될 수 있는지, 그리고 과연 사람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지 등 이 책은 죽음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고찰한다.

이 책은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에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목차

프롤로그_삶과 죽음 그리고 영생에 관하여

제1장_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죽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던져야 할 질문들/인간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진 인간-이원론/육체만으로 이뤄진 인간-물리주의

제2장_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의 존재 증명/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육체는 누가 조종하는가/영혼은 체험할 수 있는가

제3장_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육체와 정신은 다르다-데카르트/개밥바라기별과 샛별

제4장_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소크라테스의 죽음/플라톤의 완벽한 왕국/불멸의 영혼-형상의 본질/소멸하지 않는 존재-영혼의 단순성/정신, 육체가 만들어내는 화음

제5장_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의심스러운 영혼의 존재/인간의 정체성과 시공간 벌레/영혼 관점에서의 정체성/육체 관점에서의 정체성/인격 관점에서의 정체성

제6장_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같은 문제 다른 대답/또 한 명의 나폴레옹-복제 문제/영혼은 나뉠 수 있는가-분열 문제/정말로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제7장_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죽음이란 무엇인가/살아있다고 말할 수 있는 근거

제8장_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

제9장_죽음은 나쁜 것인가
죽음이 앗아가는 것들-박탈 이론/죽음은 ‘언제’ 나쁜가-에피쿠로스의 입장/내가 ‘없던’ 과거, 내가 ‘없을’ 미래-루크레티우스의 경우

제10장_영원한 삶에 관하여
영생이라는 형벌/영원히 살고 싶은가

제11장_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본질적으로 좋은 것과 나쁜 것/경험 기계에 연결된 삶/그릇과 같은 삶-그릇 이론

제12장_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반드시 죽는다-죽음의 필연성/얼마나 살지 모른다-죽음의 가변성/언제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예측불가능성/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죽음의 편재성/삶과 죽음의 상호효과

제13장_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죽음에 대한 태도-부정·인정·무시/죽음은 두려운 대상인가/단 한 번뿐인 삶/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삶의 전략

제14장_자살에 관하여: 죽음의 선택인가 삶의 포기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가

에필로그_다시 삶을 향하여


더 읽어볼 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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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셸리 케이건 (Shelly Kagan)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사회사상·윤리학).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1976년 웨슬리언대학교 철학부를 최우등(summa cum laude)으로 졸업한 뒤, 1979년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석사학위와 1982년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1986년까지 피츠버그대학교, 1995년까지 일리노이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1995년부터 현재까지 예일대학교 철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16년에는 ...

역 : 박세연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글로벌 IT기업에서 10년간 마케터와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면서 번역가 모임 ‘번역인’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옮긴 책으로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행동경제학》, 《열 번의 산책》, 《불만 시대의 자본주의》, 《더 나은 세상》, 《플루토크라트》, 《딥 씽킹》, 《OKR》 등이 있다.
 
 

책 속으로

이 책은 내가 예일대학교에서 오랫동안 진행해온 죽음에 대한 강의에 기반을 두고 있다. 이 강의는 ‘열린예일강좌(Open Yale Courses)’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모두 녹화됐다. 이 강의에서 내가 했던 모든 이야기들이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뼈대를 이루고 있다.
강의를 책으로 펴내기 위해 원고를 수정하면서 중복되는 내용을 뺐고, 실수를 바로잡았으며,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은 곳에서는 설명과 논증의 방식을 바꿨다. 지나치게 장황한 논의는 간략하게 다듬었다(특히 플라톤에 관한 내용은 대폭 줄였다). 그리고 강의의 순서와 사례도 함께 고쳤다. 하지만 실제 강의의 자연스러운 말투와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하고자 했다. 물론 죽음은 심각한 주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끝까지 무거운 학술적 분위기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 책은 죽음에 관한 책이자 삶에 관한 책이며 동시에 철학에 관한 책이다. 이 말은 죽음에 관한 기존 책들과는 사뭇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나는 이 책에서 절대로 다루지 않을 내용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즉, 죽음을 주제로 한 책이라면 당연히 다루고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내용들 중 이 책에는 들어 있지 않는 것들을 먼저 밝혀두고자 한다.
죽음 또는 죽음이라고 하는 현상에 관한 심리학적·사회학적 질문들에 대해 말해보자. 가령 죽음에 관한 책들 대부분은 ‘죽음에 도달하는’ 과정이나 ‘인간은 모두 죽을 운명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다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가까운 이의 죽음과 그 슬픔의 장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미국의 장례 산업, 죽음에 관한 사람들의 인식, 죽음을 외면하려는 여러 가지 방법들에 대해서도 다루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 모두 대단히 중요한 주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죽음과 관련해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을까? 우선 죽음의 본질에 대해 생각할 때 떠오르는 철학적인 질문들을 다뤄볼 것이다. 가령 “죽고 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와 같은 질문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먼저 다음과 같은 질문들을 던져볼 것이다.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인간의 실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영혼이란 게 정말로 존재하는가?”
이 책에서 나는 ‘영혼(soul)’이라는 표현을 일종의 ‘철학적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려둔다. 여기서 말하는 영혼이란 정신적 존재, 즉 육체와는 완전히 다른 별개의 존재를 의미한다. 이런 영혼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우리는 비물질적인 영혼, 즉 육체적 죽음 이후에도 살아남을 그런 존재를 갖고 있는가? 만약 영혼이 없다면 이는 죽음의 본질과 관련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가 세상을 떠나는 순간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 pp.6-7

일요일 새벽 3시에 갑자기 신이 나타나 내 영혼을 다른 영혼으로 바꿔놓았다. 신이 내 몸에 새로운 영혼을 불어넣고, 그 새로운 영혼에 나의 모든 기억, 믿음, 욕망, 의지를 심었다. 다음날 아침에 무슨 일이 벌어질까? 내 침대에서 누군가가 깨어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 “좋은 아침이네.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 날이야(실제로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종종 이렇게 혼잣말한다).” 그런데 과연 이 사람이 나일까? 사실 그는 셸리 케이건이 아니다. 영혼 관점에 따르면 그는 다른 사람이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영혼 이론을 기반으로 셸리 케이건이 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을 갖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시나리오 속에서 그는 다른 영혼을 갖고 있다. 내 영혼은 일요일 새벽 3시에 내 몸으로부터 빠져나갔고, 그 자리에 새로운 영혼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는 내가 아니다. 내 침대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는 금방 태어났고 지금부터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셸리 케이건과는 분명히 다른 사람이다. 영혼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의 의미를 생각해보자. 일요일 새벽에 신이 홀연히 내 앞에 나타나 내 영혼을 바꿔치기하면서 원래의 영혼을 파괴했다면 나는 죽은 것이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에 깨어난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다. 물론 그는 스스로 나라고 믿고, 아니 자기가 다른 사람인 줄 전혀 모른 채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오늘도 죽음에 관한 글을 계속 써야지.” 하지만 그렇지 않다. 영혼이 다르므로 그는 내가 아니다. 그는 착각에 빠져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가 자신이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챌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믿음과 욕망 그리고 기억들을 차분히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영혼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가 아니다. 계속 말하지만 영혼 관점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핵심은 동일한 영혼을 갖는 것이다. 그는 분명히 내가 아니다. 하지만 영혼이 같은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셸리 케이건의 모든 기억, 믿음, 욕망, 의지를 주입받았기 때문에 자기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챌 도리가 없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을 여러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한다. “혹시 어젯밤에 내게도 이런 일이 벌어진 건 아닐까? 아니라면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어제 이 책을 읽고 있던 바로 그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어젯밤에 신이 여러분의 영혼을 파괴한 뒤 새 영혼을 불어넣고 그 영혼에 과거의 모든 기억과 믿음, 욕망, 의지 등을 그대로 심어놨다면, 어제 이 책을 읽고 있던 여러분은 이미 죽은 것이다. 지금 이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방금 태어난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이다. --- pp.169-170

경험 기계에 연결돼 살아가는 삶에 대해 상상해보자. 우리가 원하는 최고의 경험들을 데이터파일로 다운로드해 마음대로 경험해볼 수 있다고 하자. 가령 위대한 소설을 쓰는 경험을 선택했다면 여러분은 이제 밤을 새워 글을 쓰고, 줄거리를 고치고, 원고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지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초고 파일을 컴퓨터에서 몽땅 지워버리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최고의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여러분은 생생하게 체험할 것이다. 또는 암을 정복할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법을 개발하는 경험을 선택했다고 해보자. 연구실에서 실험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놀라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면서 암을 치료할 수 있는 단백질 억제제를 개발하는 데 성공한다. 아니면 환상적인 석양을 감상하거나 이국적인 곳을 여행하는 경험을 선택했다면, 정말로 그런 경험을 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느낌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경험 기계 속 인생이다.
이제 생각해보자. 여러분은 이런 삶을 원하는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이 경험 기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여기서 보충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가 내 이 완벽하고 우아한 철학적 사례를 망쳐놓았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이 사례에 대해 설명할 때마다 학생들은 너도나도 이렇게 말한다.
“그 악마의 기계가 인간들의 몸을 에너지로 쓰고 있겠군요.”
그리고 그 영화 속에서 벌어졌던 다양한 장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심지어 이렇게 걱정하는 학생도 있다.
“경험 기계 속에 있는 동안 기계들이 몰래 제 간을 먹어치우면 어쩌죠?”
나는 여러분에게 이와 같은 어떤 것들도 상상하지 말기를 당부하고 싶다. 그런 악의적인 실험을 수행하기 위해 여러분을 속이는 과학자는 없을 테니 그럴 위험은 없다. 한 가지 더 당부하고 싶은 말은, 이 사례에 대해 생각하는 동안 기아 문제나 세계 정의에 대해서는 잠시 잊어두기 바란다. 다만 여기서는 ‘모든’ 사람들이 경험 기계에 연결돼 있으며, 그들 모두 최고의 경험을 누리고 있다고만 상상해보자.
다시 한번 말하지만 지금 내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은, 경험 기계에 연결된 채 ‘평생’을 보내고 싶은지에 대한 것이다. 1주일, 1개월 또는 1년 동안 신나고 흥미로운 체험을 해볼지 묻고 있는 게 아니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경험 기계 속에서의 삶이 지금 여러분의 삶보다 더 나을 것인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물론 가슴 아픈 일이기는 하지만, 지독하게 나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경험 기계 속의 삶이 분명 더 나은 선택이 될 것이다.
--- pp.361-362
 

출판사 리뷰

“가장 끔찍한 주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오직 이성과 논리로 풀어낸 죽음과 삶의 의미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역설


이 책은 셸리 케이건 교수가 1995년부터 예일대에서 진행해온 교양철학 정규강좌 ‘DEATH’를 새롭게 구성한 것으로, ‘죽음’의 본질과 ‘삶’의 의미 그리고 ‘생명’의 존엄성을 고찰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죽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없다.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사실’은 “나는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다.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죽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을 수밖에 없는 나란 존재는 과연 무엇인가?”,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영혼은 육체가 죽은 뒤에도 계속 존재하는가?” 이런 철학적 질문은 죽음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와 연결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영생은 좋은 것인가?”,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인가?”, “우리는 왜 경험하지도 못한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는가?”
그런데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

죽음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 이상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하고 무섭다. 그래서일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이후의 삶’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낳았다. 바로 이 지점으로부터 셸리 케이건 교수의 강의는 시작된다. 죽음에 관한 모든 문제는 바로 “죽은 다음에도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우선 케이건 교수는 이 질문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면 “육체가 죽어도 육체는 살아남을 수 있는가?”와 같은 자기모순에 빠지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사후의 삶은 ‘영혼’의 존재를 상정한 개념이라고 정리한다. 그런 다음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 ‘인간’이란 존재의 실체에 관한 두 가지 거대한 관점을 살핀다. 첫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으로 이뤄져 있다는 ‘이원론(dualism)’이고, 두 번째 관점은 인간이 ‘육체’로만 이뤄져 있다는 ‘물리주의(physicalism)’다.

―영혼은 존재하는가

영혼의 존재를 받아들일 만한 타당한 근거가 있는지 ‘최선의 설명으로의 추론(inference to the best explanation)’으로 알려진 일련의 논의들을 살펴본다. 이 추론은 우리의 오감으로 확인할 수 없는 존재를 증명코자 할 때 사용하는, 여러 가지 설명들 중 최고의 설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그 가설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보는 논증방식이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가정할 때 일어나는 다른 현상들에 대한 논리적 추론이 가능하면 그 존재는 실재한다는 것이다.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Platon)의 대화편 중 소크라테스(Socrates)의 죽음과 영혼의 불멸을 다룬 《파이돈(Phaidon)》에 대한 간략한 소개와 함께, 영혼의 존재에 대한 갖가지 옹호적인 주장들에 관해 설명하고 하나씩 반박한다. 최선의 설명으로서의 추론 중 가장 강력한 사례는 “인간에게 있는 ‘자유의지(free will)’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영혼의 존재를 믿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라는 존재를 상정하지 않고도 자유의지를 설명할 수 있는 여러 철학적 논증을 제시함으로써, 영혼이 존재한다는 이원론자들의 (현재까지 제기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말한다.

―육체 없이 정신만 존재할 수 있는가

“육체 없이도 정신(영혼)이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육체와 정신은 각각 다른 존재”라는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주장을 자세히 살피고, 그 주장에 어떤 오류가 있는지 금성의 각기 다른 이름인 개밥바라기별과 샛별 및 둥근 사각형 등의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또한 케이건 교수는 영혼이나 정신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사변적 논증을 같은 사변적 논증으로 반박하면서, 이성으로 증명하기 매우 까다로운 존재 앞에서 쉽게 심리적 믿음을 택하게 되는 현상을 비판한다.

―영혼은 영원히 죽지 않는가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라는 질문은 사실 “육체적 죽음 뒤에도 영혼은 살아남는가?”를 의미하므로, 이 장에서는 질문의 핵심인 ‘영혼의 불멸성’에 관해 논의한다. 영혼불멸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논증은 플라톤의 《파이돈》에서 찾을 수 있다. 플라톤은 물질적이고 감각적이며 개별적인 세계와 대비되는 비물질적이고 초월적이며 보편적인 실재, 즉 ‘이데아(idea)’를 제시했다. 플라톤에 따르면 영원하고 완벽하며 결코 변하지 않는 실체, 예컨대 절대적인 정의나 선, 아름다움 등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아닌 이데아에 존재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들을 현상계의 물질적 대상으로부터 인식한다.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대상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여야 한다. 우리는 이성을 통해 이데아를 인식할 수 있으므로 이성은 비물질적이고 영원한 존재다. 이성이 비물질적이라는 것은 곧 영혼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영혼은 영원히 존재한다는 것이 플라톤의 영혼불멸 논증 중 ‘형상의 본질’에 관한 주장이다. 이 논증은 “영혼은 파괴되지 않는 순수하고 단순한 존재이기 때문에 소멸하지 않는다”는 ‘영혼의 단순성’ 주장으로 이어지는데, 케이건 교수는 플라톤의 이 같은 논증을 흥미진진하게 소개하고는 결국 논리적 모순으로 이뤄진 치명적 오류를 찾아내 정확히 끄집어내는 대반전을 펼쳐 보인다.

―나는 왜 내가 될 수 있는가

영혼의 존재와 불멸성에 관해 살폈지만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아직 논의할 문제가 남아 있다. 바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인가?”이다. 살아남는다고 해도 그것이 내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나를 나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무엇 때문에 우리는 나를 나로서 인식할 수 있는가? 나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케이건 교수는 ‘영혼 관점’, ‘육체 관점’, ‘인격 관점’이라는 인간 정체성에 관한 세 가지 주장을 살펴보면서 이 질문의 답을 찾는다. 우선 ‘영혼 관점’은 영혼이 같으면 동일인물이라는 주장이다. 마찬가지로 ‘육체 관점’과 ‘인격 관점’도 서로 동일한 육체 및 인격이 ‘나’를 규정하는 핵심 요소라고 본다. 얼핏 간단한 논증 같지만 깊이 파고들수록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케이건 교수는 ‘시공간 벌레(space-time worm)’ 개념에서부터 시계 수리공의 비유와 영화 〈스타워즈(Star Wars)〉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재미있고 이해하기 쉬운 사례를 들어 이 형이상학적 수수께끼를 풀어간다.

―나는 영혼인가 육체인가 인격인가

케이건 교수는 앞의 세 가지 관점 중 우리가 어떤 관점에 서 있는지 테스트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러면서 ‘미친 과학자’의 뇌 교환 실험, 뉴욕에 나타난 ‘나폴레옹’의 비유, ‘복제 인간’의 사례 등을 통해 그 선택이 결코 녹록치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문제는 다시 “삶이 끝난 후에도 삶은 계속되는가?”의 질문으로 연결된다. 만약 현재의 내가 죽고 나서도 나라는 정체성을 유지한 채 다른 객체로의 이동이 가능하다면 한줄기 희망의 빛을 찾아낼 수 있다. 과연 우리는 그 빛을 발견해낼 수 있을까?

―죽음의 본질에 관하여

나의 정체성 논의는 자연스럽게 “살아남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옮겨간다. 정체성 문제가 해결되면 살아남는 데 있어 무엇이 필요한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죽었는데도 살아있다는 말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즉 죽음의 순간을 결정짓는 육체적·정신적 기능은 무엇일까? 케이건 교수는 이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에서 다시 “죽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

우리 주변에 널리 퍼져 있는 죽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짚고 넘어가는 장이다. 그것은 대표적으로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주장과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명제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아직 죽음을 경험하지 못했다. 그래서 죽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다시 말해 죽어있는 ‘상태’ 자체를 떠올릴 수 없다. 이는 “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는 얼토당토 않는 믿음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케이건 교수는 톨스토이의 《이반 일리치의 죽음(The Death of Ivan Ilyich)》을 예로 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순간에도 죽음을 부인하고자 하는 인간 심리의 이중성을 살펴보고, 죽음 직전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죽음과 삶이 어떤 식으로 맞닿아 있는지 살핀다. 그리고 또 하나의 보편적 주장인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라는 명제를 분석하면서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두 도시 이야기(A Tale of Two Cities)》 등의 비유를 통해 이 속에는 그 어떤 심오한 진리도 담겨 있지 않으며 진실도 아니라고 역설한다.

―죽음은 나쁜 것인가

여기서부터 케이건 교수는 본격적으로 죽음의 본질로부터 삶의 의미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논의한다. 그 첫 번째로 우리가 죽음을 바라보는 대표적 시각인 “죽음은 나쁜 것인가?”라는 의문을 파헤친다. 죽음이 나쁘다면 무엇 때문에 나쁜지 그동안 이어져왔던 여러 철학적 주장들을 살핀 다음 “삶이 가져다주는 좋은 것들을 앗아가기 때문에 나쁘다”는 ‘박탈 이론(deprivation account)’을 죽음이 나쁜 유일한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나쁘다는 것은 존재하는 대상에게만 가능한 평가인데, 죽고 나면 나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은 나쁜 게 아니다”라는 에피쿠로스(Epicurus)의 입장과, “죽음이 나쁘려면 마찬가지로 비존재 상태인 태어나기도 전의 상태도 나빠야 한다”는 루크레티우스(Lucretius)의 비판을 통해 ‘박탈 이론’을 확고히 한다. 이 밖에 토머스 네이글(Tomas Nagle), 프레드 펠드먼(Fred Feldman), 데렉 파피트(Derek Parfit) 등 현대 철학자들의 핵심 견해도 소개한다.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인가

죽음이 나쁘다면 그 반대인 ‘영생’, 즉 영원한 삶은 좋은 것일까? 케이건 교수는 우리가 “영원하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문하면서, 그러한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만으로도 결코 좋은 느낌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소위 천국이나 극락과 같은 영원히 행복한 삶도 막연히 ‘좋은 것’으로만 주입됐을 뿐, 세부적으로 묘사하게 되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올 것이라고 설명한다. 어떤 형태의 삶도 영원히 지속된다면 그 매력을 잃어버리게 되며, 무한한 삶은 그 어떤 고통보다도 가혹한 형벌임을 강조하고, 모든 좋은 것들은 그것이 유한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환기시킨다.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제 케이건 교수는 유한한 삶에서 찾을 수 있는 가치, 다시 말해 행복의 본질에 관한 주제로 논의를 전환한다. 무엇이 삶을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어주는가? 삶에서 본질적으로 좋고 나쁜 것은 무엇인가? 그는 우선 이와 관련한 대표적 철학 이론인 ‘쾌락주의(hedonism)’의 입장을 소개한 뒤,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의 사고 실험인 ‘경험 기계(experience machine)’를 예로 들어 ‘쾌락’이 본질적인 행복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삶의 가치는 삶 그 자체가 아니라 삶 속에 채워지는 ‘내용물(contents)’에 달려 있다고 설명하면서 삶은 ‘그릇(container)’이며 그 속에 채워지는 좋은 것과 나쁜 것의 총합을 통해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그릇 이론(container theory)’에 관해 살핀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의 무거움

죽음을 나쁜 것으로 보게 만드는 죽음의 네 가지 특성에 대해 알아본다. “반드시 죽는다”는 죽음의 ‘필연성( inevitability)’, “얼마나 살지 모른다”는 죽음의 ‘가변성( variability)’,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예측불가능성(unpredictability)’ 그리고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른다”는 죽음의 ‘편재성(ubiquity)’을 설명한다. 케이건 교수는 이러한 죽음의 특성을 이해할 때, 유한한 삶을 인정하지 않고 죽는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 과연 우리의 삶에서 적절한 태도인지 묻는다. 또한 “죽음은 반드시 삶이 끝난 다음, 즉 삶을 영위하고 그 다음에 죽음을 맞이한다”고 말하면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상은 삶 자체나 죽음 자체가 아니라,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이라고 역설한다. 아울러 삶과 죽음은 긍정적·부정적 상호효과를 모두 갖고 있으며 우리가 부정적 상호효과만을 받아들일 때 삶은 나쁜 것이 돼버린다고 지적한다.

―죽음을 마주하고 산다는 것

우리는 “나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라는 사실에 대해 ‘부정’하거나 ‘인정’하거나 ‘무시’할 수 있다. 이 장에서는 죽음에 대한 이러한 태도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더불어 죽음에 대한 ‘공포’가 정당한 감정인지, 다시 말해 죽음이 공포의 대상인지 논의한다. 케이건 교수는 공포라는 감정이 성립하기 위한 모든 조건을 분석함으로써 죽음은 공포의 대상이 아니므로 공포가 죽음에 대한 정당한 감정도 아니라고 설명한다. 때문에 “적절치 못한 감정으로 인생을 허비할 까닭이 없다”고 꼬집으면서, “우리에게 그리 많은 시간이 주어져 있지 않기에 삶을 가능한 많은 것들로 채워 넣어서 최대한 많은 축복을 누려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즉 행복지수가 높은 삶을 위한 전략을 어떻게 짜야 하는지 설명한다.

―자살은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행위인가

죽음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주제인 ‘자살’에 관해 두 가지 측면에서 고찰한다. 첫째는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가”이며, 둘째는 “자살은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인가”다. 합리성은 ‘나’와 관련이 있으며 도덕성은 ‘남’과 관련이 있다. 케이건 교수는 우선 자살이 합리적 선택이 될 수 있으려면 “죽는 게 더 나은 삶”이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삶과 죽음을 상대적으로 비교해 둘 중 어느 것이 나은지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이론을 동원해 그것이 가능한지 살펴본다. 그리고 자살이 도덕적으로 정당한 행위가 될 수 있는지 ‘공리주의(utilitarianism)’와 ‘의무론(deontology)’의 관점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논의한다. 엄청난 빚 때문에 이혼한 뒤 아내와 자식을 두고 자살하는 행위, 흉악범의 자살, 한 사람이 희생해 그의 장기를 이식해서 다섯 명의 환자를 치료하는 경우, 전쟁터에서 전우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몸으로 수류탄을 덮는 행위 등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다양한 사례를 살펴보고 자살의 도덕성을 말할 수 있는 단서를 찾아본다.

이 책은 ‘죽음’을 테마로 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이 없는 삶은 세상에 없으며, 삶이 없는 죽음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셸리 케이건 교수는 “삶은 죽음이 있기 때문에 비로소 완성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목적”이며, “죽음에 본질을 이해하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주제,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강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예일대 학생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들었던 죽음 강의 ‘DEATH’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추천평

심리적·종교적 해석을 완전히 배제하고 오직 이성과 논리로 죽음에 관한 모든 것을 파헤치는 책이다. 삶과 죽음, 육체와 영혼에 대한 우리의 기대와 믿음을 원점으로 돌려놓고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든다. 읽고 나면 간절히 원하던 뭔가가 눈앞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묘하게도 동시에 내면으로부터 삶에 대한 의지와 열정이 솟구친다.
앤드류 스타크 (컬럼비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