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국제평화 연구 (책소개)/1.국제관계

정상회담 - 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

동방박사님 2022. 10. 8.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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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세계를 만든 정상 외교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책

20세기 대표적인 여섯 번의 회담을 분석한 국내 최초의 '정상회담' 개설서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국제역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20세기에 있었던 뮌헨, 얄타, 빈, 모스크바, 캠프 데이비드, 제네바 회담을 세계를 바꾼 중요한 만남으로 판단하여 연구와 강의를 진했하였고, 이 내용은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방영된 바 있다. 강의와 방송내용을 토대로 20세기 세계정세를 좌지우지한 '정상회담'을 다룬 책이 출간되었다.

저자는 막연한 추측보다 객관적인 자료를 토대로 정상회담을 그려내고 있다. 막연한 추측이나 2차 사료에 의거하기보다 여러 문서보관소의 자료를 활용하여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한다.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정상회담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부터 정상회담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등 회담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20세기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이었던 여섯 번의 정상회담. 이 여섯 번의 만남에 대한 생생한 묘사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역사의 한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을 줄 것이다.

 

목차

들어가는 글
‘정상’이라는 용어는 윈스턴 처칠이 만들어낸 말이다. 냉전의 시대였던 1950년 2월 14일 처칠은 에든버러에서 “소련 최고위층과의 또 다른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정상에서의 회담으로 인해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 어떤 계기로 처칠이 ‘정상’이라는 등산 용어를 외교에 적용하게 되었는지는 불분명하나, 당시 그 용어가 영국 신문들에 자주 등장했다. 1940년대 후반에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 등반이 다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장 정상을 향하여_ 바빌론에서 베르사유까지
청동기시대부터 20세기 전까지 각종 회담의 사례를 살폈다. 지도자들은 20세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안전과 체면 문제 때문에 최고위 회담을 일반적으로 기피해왔다. 정상회담은 20세기에 들어와 본격적으로 발전했다.

2장 뮌헨 1938년_ 체임벌린과 히틀러
체임벌린과 히틀러는 세 번 만났다. 체임벌린은 히틀러와 좋은 관계를 맺기 원했으나 기만당했고, 결국 1년 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 저자는 이 뮌헨 회담을 최초의 정상회담으로 본다.

3장 얄타 1945년_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이 전후 유럽의 판도를 결정하기 위해 1945년 크림 반도에서 만났다. 2차 세계대전을 평화롭게 종결짓기 위한 만남이었지만, 히틀러의 체제를 구제하고 전쟁을 1년간 지연시키는 등 참담한 결과를 낳았다.

4장 빈 1961년_ 케네디와 흐루쇼프
냉전 초창기인 1961년, 케네디는 호전적인 소련 지도자 흐루쇼프를 빈에서 만났다. 이 두 지도자 간의 준비되지 않은 만남은 쿠바 미사일 위기와 미국의 베트남 참전을 불러왔다.

5장 모스크바 1972년_ 브레즈네프와 닉슨
닉슨과 브레즈네프는 냉전의 진정한 해빙에 시동을 걸었다. 닉슨은 1972년에 긴장 완화책인 데탕트 정책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소련 제국이 미국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대국이고 또 그것이 국제사회의 객관적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전제조건 덕분이었다.

6장 캠프 데이비드 1978년_ 베긴, 카터, 사다트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초강대국이 참여한 회담이 아니었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 주선한 것으로 이스라엘의 메나헴 베긴과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사이에 평화 협정을 이끌어내기 위한 고난도 줄타기 회담이었다.

7장 제네바 1985년_ 고르바초프와 레이건
서로 어울리지 않는 듀오인 레이건과 고르바초프는 일련의 정상회담을 가졌다. 그 결과 냉전이 평화적으로 종식되었다. 지도자와 보좌관들 사이에 좋은 팀워크가 발휘되어 회담은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8장 생활방식으로서의 정상회담_ G7부터 부시와 블레어까지
전형적 정상회담 기간인 193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약 50년을 성찰하면서 냉전 종식 이후의 세계에서 정상회담이 어떤 형태를 취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다. 그리고 회담에서 얻을 수 있는 몇 가지 ‘교훈들’을 제시했다.
 

저자 소개

저 : 데이비드 레이놀즈 (David Reynolds)
 
케임브리지 대학교 국제역사학과 교수다. 영국 덜위치 학교를 졸업하고 케임브리지와 하버드대학에서 수학했다. 하버드대학교와 도쿄의 니혼 대학교에서 방문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크라이스트 칼리지의 펠로, 영국 학술원 회원이다. 2004년에는 울프슨 역사상을 수상하였다. 20세기 역사에 관하여 10권의 책을 저술 혹은 편집했다. 대표작으로는 『분할 가능한 하나의 세계: 1945년 이래의 세계 역사One World Div...
 
역 : 이종인
 
1954년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브리태니커 편집국장과 성균관대학교 전문 번역가 양성 과정 겸임 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정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지금까지 250여권의 책을 번역했으며 주로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교양서와 문학 서적을 많이 번역했다. 최근에는 E. M. 포스터, 존 파울즈, 폴...
 

책 속으로

두 적수 사이의 위험한 만남
처칠이 외교적 의미에서 ‘정상에서의 회담’이라는 표현을 썼을 때 거기에는 위와 같은 문화적 함의가 깃들어 있었다. 두 적수 사이의 위험스러운 만남. 강렬한 의지에서 터져 나오는 극적인 행동으로서 장엄한 새로운 전망을 펼치는 한판 승부. 지도자가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걸고 도박을 벌이는 순간. 지도자의 명성을 죽이느냐 살리느냐 결정하는 건곤일척의 기회. 일단 시작하면 물러서기가 거의 불가능한 여행. 정상회담의 이런 서사시적 특성이 많은 정치 지도자들을 유혹한다. --- p.15

항공기와 정상회담의 함수관계
비행기는 수송과 무기의 양 측면에서 현대 정상회담의 필수적 조건이 되었다. 수송 수단으로서의 비행기 덕분에 정치 지도자들은 몇 주나 몇 달 혹은 며칠이 아닌 몇 시간 내에 상대방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무기로서도 항공기는 현대 정상회담의 주요 이유들 중 하나가 되었다. 항공기의 발달로 민간인들을 엄청난 규모로 살상하는 무기를 실어 나를 수 있게 되면서 정상들은 가능하면 현대전을 피하려 했다. 1938년 9월 영국의 총리는 공중전의 위협을 막아보기 위해 비행기 트랩에 올랐다. --- pp.59~60

정상회담의 아마추어, 체임벌린
후에 스트랭은 외무부의 다른 관리들과 마찬가지로 뮌헨 회담이 솔직히 ‘대실패작’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벌어진 정상회담의 기준에 비추어 보면 체임벌린의 개인 외교가 아마추어였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먼저 회담 상대자의 심리적 프로필 따위는 아예 마련되지 않았다. ‘백서’나 ‘브리핑 북’ 같은 것도 없었다.…… 총리는 외무장관을 위시하여 전문 외교관들을 경원시했고 통역이나 기록원을 대동하지 않고 베르히테스가덴을 방문했다. 협상에 임해서는 자신의 최종 입장을 명확히 결정하지 않고, 상대방으로부터 반대급부를 얻지도 못한 채 흥정의 수단을 미리 건네주고 말았다. 하지만 체임벌린의 근본적 문제는 방법론이 아니라 전제조건의 부실함이었다. 그는 유럽의 운명이 미치광이의 손에 맡겨져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베르히테스가덴으로 날아갔다. 하지만 하나의 환상을 품고서 돌아왔다. 자신이 히틀러와 개인적 인간관계를 맺었고, 총통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관계가 결실을 맺으리라는 엉뚱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더 위험한 것은 자신이 유럽의 평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믿는 이상주의(혹은 지나친 자부심)였다. --- pp.142

지도자의 건강 상태가 정상회담의 성패를 좌우할 수도 있다
모란은 사키 공항에서 루스벨트를 보고서 깜짝 놀랐다. 모란은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은 늙고 수척하고 홀쭉해 보였다……. 그는 입을 벌린 채 앞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사물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영국 대표단은 대통령의 건강이 “아주 나쁘고” 회담에 대해서도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논평했다. 건강이 처칠과 루스벨트의 회담 진행에 영향을 미쳤는지 여부는 근본적인 문제다. --- p.175

외교의 성과는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스탈린은 분명 협상하기 까다로운 사람이었으나 예측하기 어렵고 감정을 앞세우는 히틀러와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까다로웠다. 얄타 회담 1개월 전 이든은 정상회담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세 사람 중 스탈린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알고 있고 또 대단히 터프한 협상가다. 총리는 이런 문제에서 너무 감정이 앞서고 대통령은 애매모호하면서 다른 지도자들에 대한 질투심이 많다.” 1965년에 얄타 회담을 회고하면서도 이든은 의견을 바꾸지 않았다. “처칠은 말하기를 좋아했고,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았으며, 자기의 발언 차례를 잘 기다리지 못했고 차례가 돌아오면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외교 게임에서의 성과는 반드시 열심히 토론하는 사람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든은 스탈린에 대해서는 이렇게 논평했다. “나는 이런저런 국제회의를 30년 가까이 체험해보았다. 만약 회담장에 들어갈 팀을 고르라고 한다면, 스탈린을 첫 번째로 선택하겠다.” --- p.197

케네디와 흐루쇼프의 이념 논쟁
흐루쇼프는 공산주의가 무력이 아니라 역사적 발전의 필연적 법칙에 따라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케네디는 반론을 폈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 역사적 필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사람들이 자유로운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흐루쇼프는 미국이 인간의 마음과 양심이라는 물길을 가로막는 댐을 짓고 있다면서 이것을 스페인의 종교재판에 비유했다. 케네디는 역사적 필연성과 정치적 자유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다시 설명하면서 양측의 ‘오판’이 가져올 위험을 ?계했다. 그러자 흐루쇼프는 약간 화를 내면서 서방이 그런 ‘막연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못마땅하다고 말했다. 미국은 소련이 “학동처럼 책상 위에 양손을 얹어놓고 가만 앉아 있기를” 바라는 것 같다. 케네디는 다른 나라의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오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쿠바 위기’나 그보다 앞서 일어났던 일로서 중공이 한국전쟁에 개입할 것으로 내다보지 못한 것 등이 사례라고 말했다.…… --- p.282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관리하여 합의를 이끌어낸 카터 대통령
세 지도자는 모두가 정상회담에서의 합의에 크게 기여했다. 사다트의 극적인 예루살렘 방문은 초강대국 관계로부터 평화 과정을 분리시켰고 카터를 격려하여 나름대로 중동 문제에 나서게 했다. 그것은 또한 이스라엘과 이집트의 평화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깼다. 하지만 베긴은 물론이고 사다트 또한 개념을 현실로 바꾸어놓을 수 없었다. 현실로 바꾸어놓는 것은 카터의 몫이었다. 그는 신중하게 계획된 정상회담에 두 사람을 초대하고 초기의 교착 상태 이후 협상 과정을 세부 사항까지 꼼꼼히 관리함으로써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 어떤 대통령도 중동에 이런 개인적 관심사를 보이지 않았고 혹은 정치적 협상에 그렇게 많은 에너지, 생각, 정치적 역량을 투입하지 않았다. --- pp.470~471

정상회담, 앞으로 어떻게 변모할까
21세기의 정상회담은 여론에 극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되었다. 1961년의 빈 회담이나 1978년의 캠프 데이비드 회담은 대중매체가 그 뉴스를 온 가정에 전달했다.…… 이를테면 1978년, 카터의 홍보 담당 비서관 조디 파월은 미국의 3대 텔레비전 방송사, 통신사, 몇몇 주요 신문사에 뉴스를 건네주면, 캠프 데이비드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 세계적으로 인지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와 매체는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개별화되어 있다. 케이블 방송과 인공위성 방송 채널이 전국 텔레비전 방송망을 압도했고, 보통 사람들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것이든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그 밖의 정치 행사 뉴스를 광범위하게 선택할 수 있다. 인터넷, 웹페이지, 블로그 또한 엄청나게 많은 독자적 정보, 루머, 논평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하여 정부는 정상회담을 정부 편리할 대로 해설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소수의 텔레비전 방송사와 신문사만이 뉴스를 전하던 시절의 방식으로는 사람들의 관심을 정상회담에 집중시킬 수 없게 되었다.
--- p.556~557
 

출판사 리뷰

국내 최초의 ‘정상회담’ 개설서
『정상회담-세계를 바꾼 6번의 만남』은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정상회담’ 개설서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국제역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레이놀즈는 문서보관소에서 새로 공개된 자료들을 섭렵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그동안 남북정상회담, 한미정상회담, APEC 회담 등의 전개과정, 의의나 성과, 전망을 기록한 논문이나 글은 있었지만, 정작 정상회담을 본격적으로 분석한 개설서는 없었다. 이 책은 20세기 대표적인 여섯 번의 회담(뮌헨, 얄타, 빈, 모스크바, 캠프 데이비드, 제네바 회담)을 분석함으로써 정상회담의 모든 것을 담아내고 있다.

정상회담의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다!
저자는 직접 회담의 발언 기록을 샅샅이 뒤지고, 관련 서류들을 면밀하게 검토했다. 인터넷에서 입수 가능한 자료뿐 아니라 여러 문서보관소들의 자료를 활용했다. 그리고 막연한 추측이나 2차 사료에 의거하지 아니하고 객관적 자료들을 분석하는 태도를 끝까지 유지했다. 이를 통해 저자는 세계 지도자들이 정상회담에 이르는 과정에서부터 정상회담 현장의 분위기는 어떠했는지 그리고 그 성과가 현실에서는 어떻게 나타났는지 등, 회담의 전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복원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이 책은 대학에서 직접 강의한 내용을 바탕으로 했다. 저자는 수년 동안 대학에서 처칠, 루스벨트, 스탈린, 전시 동맹 등을 강의했고, 그 수업 내용은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었다. 이미 강의와 방송으로 검증된 만큼 이 책은 다양한 정보를 실감나게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을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마치 역사의 현장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해준다.

정상회담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저자는 협상과 흥정에 관한 정치학 문서들을 다수 읽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서술했다. 각 사례에서 정상회담의 3단계, 즉 준비, 협상, 실천을 두루 살폈다. 이런 정상회담의 협상 절차는 국가뿐 아니라 대규모 기업들, 개인들 사이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가령 기업의 CEO가 국제 간 상담의 공로를 욕심내어 보좌관들의 도움을 무시하려 든다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반면에 이사회와 회사 조직원 전체의 지지를 받는다면 그 상담은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남녀 관계에서도 아무리 상대가 마음에 들어도 여자(혹은 남자)는 빈손을 털고 일어설 수 있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비굴하지도 거만하지도 않은 대등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또 두 사람이 서로 뜻이 통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부모를 설득해야 하는 과정은, 국가 지도자가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와서 혹은 대기업 총수가 중요한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 국민이나 이사회를 상대로 전반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과 동일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정치인이나 외교관뿐 아니라 사회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 협상의 기술을 배우는 데 꼭 필요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