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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역사를 흔들다 (2020 마크해리슨)

동방박사님 2022. 10. 25.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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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풍토병이 팬데믹으로, 격리에서 국제공조로
전염병과 무역이 빚어낸 21세기 세계화


21세기 문명사는 어쩌면 코로나 사태 이전과 이후로 나뉠 듯하다. 코로나 사태의 파급력은 그만큼 깊고 넓다. 무역과 해외여행이 막대한 타격을 받는 것은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와 ‘언택트’란 낯선 용어는 우리 일상을 바꾼다. 재택근무와 온라인 강의가 활성화되는 것이 그런 예다. 마스크가 상비품이 되는 등 일상의 풍경이 바뀐 것은 덤이다. 이처럼 세상이 요동치니 전염병의 역사에 눈길이 가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가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가는지 알기 위해선 먼저 지나온 길을 아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의학사가가 쓴 이 책은 이를 위한 탁월한 길라잡이라 할 수 있다.

촘촘하고 성실한 전염병의 역사

이 책은 12년 연구의 결실이다. 700년에 걸쳐 6개 대륙에서 벌어진 전염병과의 투쟁을 꼼꼼하게 살폈다. 자연스레 언급되는 전염병들은 다양하다. 14세기 페스트에서 콜레라, 황열병, 가축 질병인 우역은 물론 광우병 소동과 조류독감 등 동물 전염병과 21세기의 사스와 메르스까지 다뤘다. 당연히 1865년 메카를 습격한 콜레라, 1910년 만주를 강타한 페스트 등 굵직한 전염병 파동을 빠뜨리지 않는다. 이를 위해 지은이는 관련 학자들의 선행연구는 물론 다양한 세미나와 학술대회의 도움을 받았다. 인도 등 여러 나라의 기록을 살핀 것은 물론이다. 그 결과, 특정 국가의 차단 방역처럼 한 나라의 전염병 투쟁사가 아니라 상당한 지리적 범위에 걸친 장기간의 상호작용을 추적한 ‘세계사’로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의 기본적인 미덕이다.

 

목차

옮긴이의 글
한국어판 서문
서장
약어 표

제1장 죽음의 상인들
구세계에서 신세계로

제2장 다른 수단들을 동원한 전쟁
“우리의 위조품 거래 차단”|상업상의 이익|전염을 다시 생각하다

제3장 격리라는 악덕
이성과 과학|헛된 기대

제4장 격리와 자유무역 제국
유해 선박|국내에서 시작된 자선|엄청난 비용|사건 이후의 파장

제5장 황열병의 유행
열대성 전염병|새로운 위생 체제를 향하여|위생 조치의 결과

제6장 동방의 방벽
불결에 대한 혐의|페스트의 귀환|페르시아만|다른 나라들의 편견에 대처하기

제7장 페스트와 세계 경제
고통스러운 교훈|서양으로의 가교|페스트, 대유행병이 되다|깨지기 쉬운 합의

제8장 보호냐 아니면 보호주의냐?
동물과 사람의 질병|영원한 논쟁의 전망

제9장 전염병과 세계화
종의 경계를 넘어, 국경을 넘어|사스, 보안, 자유무역의 한계|대유행병과 보호주의

결론: 위생의 과거와 미래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마크 해리슨 (Mark Harrison)
 
영국 옥스퍼드대 사학과 교수(의학사). 옥스퍼드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현재 웰컴 윤리 및 인문학센터 공동 소장으로 있다. 제국주의, 전쟁, 세계화와 질병의 관계를 주로 연구해 왔다. 『의료와 승리: 2차 세계대전기 영국 군의학』(2004), 『의학 전쟁: 1차 세계대전기 영국 군의학』(2010)으로 두 차례 영 육군 역사연구회가 수여하는 템플러 도서상을 수상했다. 이 밖의 저서로 『전염병과 근대 세계』, 『식민...
 
역 : 이영석
 
서양사학자.(영국사) 광주대 명예교수. 성균관대 사학과 및 동대학원을 졸업했다.(문학박사)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홀과 울프슨 칼리지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서양사학회와 도시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2012년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 우수학자로 선정되었다. 그동안 19~20세기 영국 사회사, 노동사, 생활사, 사학사 분야의 많은 논문을 썼다. 저서로는 『산업혁명과 노동정책』(1994), 『다시 돌아본 자본의 ...
 

책 속으로

‘흑사병’이라는 용어는 19세기에 들어서야 일반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이 용어가 무지, 미개와 연관된 것은 18세기 말이다. 아시아, 북아프리카, 동유럽인들에게 전염병의 도래는 끔찍한 현실로 남아 있었다.
--- p.35

1347년, 유구한 비잔틴제국의 수도에 페스트가 창궐했다. 많은 사람들이 질병에 감염된 채로 탈출했다. 그들 가운데는 카파를 벗어난 제노바 상인들도 있었다. (…) 처음 그들이 발을 들여놓은 곳은 시칠리섬 메시나 항구였다. (…) 이곳이 1347년 10월 페스트의 발생 기록이 남아 있는 최초의 도시이다.
--- p.44

페스트균을 지닌 쥐벼룩이 옷감, 곡물, 다른 산물들에 끼어 중앙아시아로부터 멀리 크리미아까지 이동했다. 그곳에서 다시 서아시아, 북아프리카, 유럽으로 향하는 상선들을 통해 쥐에게로 옮겨졌다. 마침내, 레반트와 이집트가 자연스럽게 페스트의 ‘온상’으로 간주되었다.
--- p.46

1348년 피스토야 칙령Ordinances of Pistoia까지 소급해 올라가는 이런 조치들은 감염된 지역의 사람들과 리넨이나 모직 천을 가지고 다니는 사람들의 접근을 금지했다. (…) 예컨대, 베네치아에서는 1348년에 위생위원회가 설립되었는데, 이 위원회는 감염된 선박, 상품, 선원들을 항구 외곽 석호潟湖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을 행사했다.
--- p.51

위생상의 이유로 배를 묶어 두는 것은 ‘격리quarantine’라고 알려지게 되었다. 이 말은 1397년 (아드리아해 연안 도시) 라구사Ragusa 공화국이 마련한 여러 규제 조치에 기원을 두고 있는데, 그해에 이 도시는 기존의 1377년 예방 조치를 확대해 40일까지 선박을 격리할 수 있도록 했다.
--- p.52

격리 관행은 황열병이 처음 보고된 17세기 말부터 서인도에서 유럽으로 항해하는 선박들에 때때로 시행되었다. (…) 최초의 사례는 1647년 매사추세츠만 식민지에서 등장했는데, 바베이도스에서 이곳에 도착한 선박들에 시행되었다.
--- p.72

네덜란드인들은 암스테르담에서의 전염성 질병에 대한 소문을 근거로 영국이 부과한 30일간의 격리 조치에 반대했다. (네덜란드가 조심스럽게 페스트라는 용어를 쓰지 않았던) 이 질병은 분명히 가라앉았으며, 네덜란드 정부는 두 나라의 “중단 없는 상업”이 서로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 p.85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은 지금도 가끔 역병에 시달리던 오스만제국의 지방 속주 몰다비아Moldavia와 왈라키아Wallachia의 국경을 따라 1,600킬로미터(1,000마일)의 방역선을 유지했다. 그 국경에 감시탑을 세우고 격리 조치를 받지 않고 국경을 넘는 사람을 보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받은 초병들이 정기적으로 순찰했다.
--- p.103

격리 제도의 발달도 금전적 동기에서 비롯됐다. 1781년까지 리보르노에는 제노바의 격리 시설 증설에 대응하여 제3의 검역소lazaretto가 건설되었다. 두 항구 모두 지중해를 거쳐 서쪽으로 항해 중에 어느 지점에선가 격리를 받아야 하는 상선들로부터 수입을 얻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p.115

찰스 콜드웰Charles Caldwell은 격리 조치란 ‘이성과 과학보다는 미신과 편견에 바탕을 둔중세적 제도’라고 비난했다. (…) 콜드웰은 인간 정신이 ‘사제의 기만적인 속임수’에 의해 타락하고 교황의 심각한 폭정 아래 신음하던 때에 격리 조치가 도입되었다고 주장했다.
--- p.138

1851년의 파리회의가 구속력 있는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개최 사실 자체는 주목할 만한 것이다. 이전 세기에는 격리 조치를 외교정책의 수단으로 광범위하게 남용했다. 1820년대 말 부르봉 정부는 에스파냐에서 자유주의적인 움직임을 분쇄하기 위해 방역선을 이용했다.
--- p.171

에클레어호와 보아비스타에서의 발병은 지역적인 관심 이상의 것이었다. 이것은 주요 전염병이 증기선의 이동으로 퍼진 최초의 사례였고, 서아프리카와 서인도제도로부터 유럽으로 황열병이 급속하게 퍼질 것이라는 우려는 격리 조치의 완화 또는 폐지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숙제가 되었다.
--- p.184

에클레어호는 9월 28일 영국의 포츠머스Portsmouth에 도착했다. 승무원 가운데 (버나드를 포함해) 90명 이상이 열병을 앓았으며, 사망자만 45명이었다. 이 해군 함정은 (…) 어느 병원에도 환자들을 상륙시킬 수 없었다. 그 대신 1825년 격리법에 따른 권고 기간인 21일 동안 격리 조치를 당해 모든 선원들은 선상에 있어야 했다. 이 격리 기간에 더 많은 선원이 감염되었고 이미 병에 걸린 사람들은 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
--- p.188

1878년 5월, 뉴올리언스에서 황열병이 보고되었는데 (…) 빠르게 미시시피강 계곡으로 퍼져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테네시주를 황폐화시켰다. 1878년 10월에 전염병이 가라앉았을 때까지 2만 명 이상이 죽었다. 이는 1850년대 이후 미국에서 최초로 심각한 황열병 창궐이었고, 순전히 사망자의 숫자로만 보면, 미국 역사상 최악의 사례였다.
--- p.249

1902년 회의에서는 세계 최초로 영구적인 국제위생기구인 범汎미주보건국Pan American Bureau of Health을 설립했는데, 그 주된 목적은 남·북미 국가들의 질병 및 위생규정에 관한 정보를 개선하는 데 있었다.
--- p.270

1865년 전 세계는 메카Mecca에 모인 순례자들 사이에 콜레라가 발생해 약 3만 명―메카 순례자의 거의 3분의 1―이 죽었다. 광대한 영토에 인구가 널리 흩어져 있는 러시아에서는 약 9만 명이 병에 걸려 죽었고, 북아메리카에서는 그 전염병이 대부분 항구를 엄습해 사망자는 거의 5만 명에 가까웠다. 프로이센과 전쟁에 휘말린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병사자는 16만 5천 명을 넘었다.
--- p.285

1865년 메카에서의 콜레라 발병은 아라비아에서 서쪽으로 더 멀리까지 은밀하고 급속하게 확산될 가능성 때문에 더 큰 우려를 낳았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가 1850년대 초 이래 열리지 않던 국제위생회의를 다시 소집한 것은 바로 이 두려움 때문이었다.
--- p.288

어떤 정부도 홍콩과 뭄바이 같은 거대 항구 도시를 굴복시킨 수입 금지 조치와 위생 규제를 당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따라서 파리에서 각국 대표들은 최신의 과학적 견해와 국제 무역의 필요성을 고려해 페스트와 다른 전염병에 대한 통제를 이끌어 내려고 노력했다. 이 회의에서 서명한 협약은 국제 보건 규제의 선구라 할 수 있는데, 1907년 4월 로마에서 비준되었다.
--- p.375

아바나 위생회의에서 성안된 1924년 범미주위생협약Pan American Sanitary Code은 통계와 위생 조치를 표준화하여 “국제 상업에 불필요한 간섭”을 줄이려는 여러 시도 중의 하나였다. 그 협약은 서명국들이 페스트, 콜레라, 황열병, 천연두, 발진티푸스 등의 발병 즉시 범미주위생국Pan American Sanitary Bureau에 통보하는 것은 물론, 이 질병을 막기 위해 여러 조치를 취하도록 했다.
--- p.392

감염된 소 떼를 대상으로 대량 도살을 허용한 1866년 가축질병법Cattle Disease Act은 지방 당국에 폐렴과 구제역을 포함한 동물의 모든 질병에 대한 권한을 부여한 몇몇 법률 중 최초의 것이다.
--- p.414

독일의 수입 금지는 미국의 보복을 유발했고 ‘돈육 전쟁Pork War’으로 알려진 10년간의 무역 분쟁을 촉발했다. 유럽 국가들 간의 관세 전쟁은 드물지 않았고 심지어 전통적인 자유무역 챔피언인 영국에서도 농업 부문이 값싼 외국 수입 농산물의 영향을 실감하면서 갈수록 보호와‘제국 특혜관세imperial preference’를 외치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 p.424

미국의 위생정책과 국제가축전염병기구 가입 거부는 외국과의 경쟁에서 목축업자와 육류 생산자들을 보호하려는 것이었고 이 원칙은 향후 수십 년간 유지되었다.
--- p.428

세계동물보건기구WOAH, 이 새로운 기구는 가난한 나라들에게 불공정한 영향을 미친다고 인정되는 위생 규제의 폐해를 제거하는 일에 헌신했다. WOAH가 분명히 언급했듯이, “소비 감소와 함께 정당화되지 않은 무역 붕괴는 소득 자원을 잃은 전 세계 소규모 농부들과 생산자에게 영향을 미친다.”.
--- p.433
 

출판사 리뷰

‘역사의 전제자’ 무역에 초점을 두다

1860년대 영국 의사 윌리엄 버드는 역사의 ‘전제자’로 전쟁과 무역을 꼽았다. 이 둘이 역병을 낳고 그 전염병의 여파가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는 경고였다. 지은이 마크 해리슨은 바로 이 대목에 주목했다. 풍토병이 세계사적 문제로 등장하게 된 배경에 있는 무역의 역할, 그리고 세계적 유행병이 지구촌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19세기 중반 온 유럽이 공포에 젖게 만든 콜레라나 아메리카 대륙을 뒤흔든 황열병의 확산 뒤에는 노예무역을 비롯한 국제교역과 노동 이주, 성지순례 등이 있었음을 지적해낸다. 뿐만 아니라 국민 건강과 자유무역의 상충에 대한 고심 등을 짚는다. 그런 점에서 전염병의 역사를 ‘의학사’로 한정하거나 전염병과 굵직한 역사적 사건의 인과관계를 성찰한 기존 전염병 관련 역사책과 남다르다.

‘격리’를 축으로 한 전염병과의 투쟁사

인도 벵골 지방의 풍토병 콜레라, 아프리카 풍토병 황열병이 세계적 유행병으로 확산된 데에는 증기선과 철도로 상징되는 교통혁명이 크게 작용했다. 그리고 전염병의 원인이 밝혀지기 전까지 전염병 억제를 위한 노력에서는 ‘격리’가 축을 이루었다. 감염이 의심되는 상인과 상품의 이동의 금지는 일찍이 14세기 이탈리아에서 발령된 피스토야 칙령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55년 암스테르담에 세워진 북유럽 최초의 상설 격리병원, 1845년 노예무역을 감시하다 황열병에 감염돼 선원의 3분의 2가 사망한 ‘에클레어호 사건’ 등 ‘격리’의 역사를 중심으로 전염병 투쟁사를 살핀다. 이 책을 돋보이게 하는 관점이다.

전염병이 이끌어낸 국제공조에 주목하다

전염병이 세계화에 부정적 효과만 끼친 게 아니다. 교통혁명과 산업화로 한 나라 단독으로는 전염병 대처가 불가능해짐에 따라 확산을 막기 위한 새로운 국제 협력 시스템을 끌어내기도 했다. 1851년 처음으로 파리에서 국제위생회의가 열렸다. 3차 콜레라 대유행기에 새로운 국제주의가 시작된 것이다. 이후 1902년 황열병 대처를 위한 범미위생회의 등을 거쳐 1907년 전염병 정보 수합 및 통지 업무를 담당할 상설기구 ‘국제공중보건국’이 파리에 설립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의 전신이다. 지은이는 수에즈운하 통제 등 이해관계가 다른 각국의 갈등, 당대의 패권국 영국 대신 프랑스가 이를 주도한 사정 등 21세기 ‘국제 전염병 전선’의 배경을 찬찬히 풀어놓는다.

코로나 사태에 대한 각국의 대응을 보면 19세기 후반으로 되돌아간 느낌이다. 국제 협조의 정신은 사라지고 세계보건기구의 역할은 미미하다. 각국은 저마다 국경 폐쇄, 무역 중단 등 오직 ‘격리’를 통한 방역에만 몰두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새로운 전염병이 간헐적으로 출현하는 지금은 국제 공조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역 방식과 제도를 창출해야 한다. 전염병과 무역의 길항관계를 파헤친 이 책은 이를 위한 출발점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