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세계국가의 이해 (독서)/4.러시아이해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 (리하초프(D.S. Likhachov, 1906~99)

동방박사님 2022. 12. 18.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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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은 러시아의 대표적인 문학 연구자이자 지식인 리하초프(D.S. Likhachov, 1906~99)의 주저다. 그는 이 책을 통해 고대 러시아 문학의 역사와 그에 대한 문학적 평가뿐만 아니라 왜 고대 문학을 연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분석까지 시도한다. 특히 리하초프는 19세기에 러시아 문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이유를 11~17세기의 풍부한 고대 러시아 문학에서 찾는다. 즉 근대 러시아 문학을 충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러시아 문학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러시아 문학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뛰어넘는 것으로 이후 러시아 문학 연구의 신기원으로 자리 잡는다.

 

목차

리하초프, 고대 러시아 문학 그리고 시학·변현태

서론 고대 러시아 문학의 경계
지리적 경계
시간적 경계

제1장 전체적 체계로서의 문학의 시학
조형예술과 관계된 고대 러시아 문학
고대 러시아의 조형예술에서 ‘서술적 시간’의 표현으로서 ‘서술적 공간’
문학 장르들 간의 관계

제2장 예술적 일반화의 시학
문학적 에티켓
추상화
장식성
리얼리즘적 요소들

제3장 문학적 기법의 시학
은유-상징
문체적 대칭
직유
비양식화된 모방

제4장 예술적 시간의 시간
문학작품의 예술적 시간
민속 문학에서의 예술적 시간
고대 러시아 문학에서의 예술적 시간
근대 문학에서 고대 러시아적인 예술적 시간의 운명
살티코프-셰드린의 ‘연대기적 시간’

제5장 예술적 공간의 시학

왜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을 연구하는가?

찾아보기
 

저자 소개

역자 : 김희숙
김희숙(金姬淑)은 1975년에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1977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독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9년 독일 뮌헨 대학교에서 러시아 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해 1989년에「보리스 필냐크의「이반 다 마리야」에 나타난 콤비나토릭의 기법과 의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대학교 러시아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연극성과 광대극: 삶의...
 
역자 : 변현태
변현태(卞鉉台)는 1989년에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1994년에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에 노문학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모스크바 대학교 교환학생으로 연수를 마쳤다. 1997년에 모스크바 대학교 박사과정에 입학해 2000년에 고대 러시아 문학 분야의 논문 「17세기 러시아 웃음문학의 희극성」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부터 서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출판사 리뷰

독창적인 러시아 문학 이론가 리하초프
고대 러시아 문학이라는, 우리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 않은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리하초프라는 인물과 대면할 수밖에 없다. 아니 좀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대 러시아 문학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리하초프라는 안내원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리하초프는 1906년 당시 러시아의 수도였던 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다. 그의 가문은 구(舊)귀족 출신이었는데, 레닌그라드 대학교를 졸업한 1928년에는 사회주의 혁명의 과열된 분위기 속에서 출신을 빌미로 억울하게 5년의 유형(流刑)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이러한 시련이 리하초프의 연구열을 식히진 못했다. 그는 악명 높은 정치범 수용소 솔로프키에서 4년 여간 유형 생활을 하는 악조건 속에서도 최초의 학술 논문을 발표한다. 모든 형기를 마친 리하초프는 다시 레닌그라드로 돌아와 러시아 최고의 문학 연구소 ‘푸시킨 연구소’에서 활동을 시작한다. 이후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1954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푸시킨 연구소 고대 러시아 문학 분과의 분과장으로 활동했다.
푸시킨 연구소에서 일하며 리하초프는 나름의 독자적인 문예학 방법론을 구축해나간다. 바흐친과 로트만 등 동시대의 권위 있는 문예 이론가들이 사회주의 리얼리즘과 대립하거나 탈주했다면 리하초프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외부’에서 고대 러시아 문학을 대중화하는 작업 그리고 현대 러시아 문학과 고대 러시아 문학의 관계를 풀어내는 작업에 몰두했다. 이데올로기에 맞서거나 피하는 차원을 뛰어넘어 아예 다른 차원에서 자기만의 문예 이론을 독창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바흐친과 로트만의 ‘망명문예학의 복권’이 외부 조건의 변화와 함께 가능했다면 리하초프는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 ‘복권’시키고 있는 것이다.”

‘서지학적 역사화’의 목표
고대 러시아 문학 연구 영역에서 리하초프가 한 기여는 대중화에 한정되지 않는다. 리하초프의 진정한 위상은 방향 전환, 즉 진정한 의미에서 고대 러시아 문학 연구를 시작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
고대 러시아 문학을 바라보는 리하초프의 시선에는 언제나 지금 현재의 러시아 문학/문화에 대한 고려가 있다. 좁은 의미의 러시아 문학사는 18세기 표트르 대제의 개혁과 함께 시작된다. 수도를 페테르부르크로 옮기면서 시작된 러시아의 서구화는 동시에 러시아 전(全) 문화의 서구화이기도 했다. 여기서 가장 인상적인 사실 가운데 하나는 서구 문학의 모방에서 시작된 러시아 문학이 19세기 중반에 이르러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의 등장과 함께 단연 세계 문학의 중심지로, 정상으로 도약한다는 사실이다.
리하초프 이전의 문학 이론가들은 이를 ‘문학 발전의 불균등성’으로 설명했다. 즉 19세기 러시아는 정치적으로 상당히 억압적이었고 이러한 현실에 대해 오로지 문학으로만 투쟁할 수 있었기 때문에 비약적인 문학 발전이 가능했다는 논리다. 리하초프는 이에 대해 전혀 다른, 하지만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론을 제시한다. 19세기 러시아는 이미 질 좋은 문학 발전의 토대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토대는 당연히 그 이전, 즉 11~17세기 고대 러시아 문학이다. 따라서 근대 러시아 문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고대 러시아 문학을 알아야 한다.

표트르 1세의 개혁은 옛것으로부터 새로운 것으로의 이행을 알렸다. 그러나 그것은 단절이 아니라, 선행한 시대 속에 숨어 있던 여러 경향의 영향 아래 새로운 자질들이 출현함을 의미했다. 이것은 분명하다. _ 552쪽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에 가까운 이 문제제기를 위해 리하초프는 우선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기를 새롭게 구분한다. 즉 ‘러시아 역사’가 아닌 ‘양식’을 기준으로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기를 구분한 것이다. 리하초프가 제시한 시기 구분은, ‘기념비적 역사주의 양식(10~13세기) → 표현적·정서적 양식(14~15세기) → 제2차 기념비적 역사주의 양식(16세기) → 바로크 양식(17세기)’ 순이다. 리하초프는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기 구분을 역사 중심에서 양식 중심으로 전환함으로써 고대 러시아 문학에 중세 유럽의 문학적 보편성을 부여하게 된다.
양식을 매개 삼은 리하초프의 공으로 고대 러시아 문학은 중세 유럽 문학의 발전·변형된 한 노선으로 평가받게 된다. 또한 그가 매우 훌륭하게 각 양식을 정리함으로써 고대 러시아 문학뿐만 아니라 중세 유럽 문학의 양식별 특징까지 더욱 선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런 이유로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은 여전히 중세 유럽 문학 연구를 위한 필독서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엇보다 리하초프는 이러한 양식에 대한 연구를 ‘시학’(詩學)의 관점으로 접근한다. 이는 고대 러시아 문학이 ‘문헌’이나 ‘자료’가 아닌 진정한 ‘문학’으로 취급받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 리하초프가 말하는 ‘시학’은 대상의 본모습에 충실하게, 대상의 본모습에 근거하여 재구성하는 작업이다. 그의 작업은 대상의 본모습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서지학적이며, 본모습에 준거하여 범주를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역사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리하초프의 연구 방법론을 ‘서지학적 역사화’라고 부를 수 있다.
리하초프의 ‘서지학적 역사화’의 목표는 고대 러시아 문학이라는 ‘타자’의 개성을 그 자체로 인정하고 이해하면서 더 나은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고대 러시아 문학의 시학』 결론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타자의 의식에 대한 통찰은 인식하는 자를 풍요롭게 하며, 그를 전진시키고 성장시키고 발전시킨다. 인간의 의식은 타문화를 많이 습득할수록 그만큼 풍요로워지고, 유연해지고, 활동적으로 된다. _ 552쪽

1906년 태어나 1999년 죽은 리하초프는 사회주의 러시아가 시작될 때와 끝날 때를 넘겨 살았다. “그의 죽음, 이는 완전한 한 시대의 종결”이었다. 그러나 타자의 문화, 타자의 의식, 타자의 개성을 그 자체로 이해하고 더 나은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는 그의 말과 실천은 현재 러시아에도, 현재의 한국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