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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싸워 온 서경식의 두 번째 평론집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낸 두번째 평론집이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는 평론들이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일본 지성계와 리버럴 세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일본 사상계에 관한 비판적인 조감도를 제공한다. 4부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인터뷰는 2008년 저자가 서울 체류 당시 최현덕(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교수)과 ‘새로운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것이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대담은 저자와 이 책의 역자 권혁태 간에 이뤄졌다. 3부 주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주의와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렸다.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낸 두번째 평론집이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는 평론들이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일본 지성계와 리버럴 세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일본 사상계에 관한 비판적인 조감도를 제공한다. 4부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인터뷰는 2008년 저자가 서울 체류 당시 최현덕(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교수)과 ‘새로운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것이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대담은 저자와 이 책의 역자 권혁태 간에 이뤄졌다. 3부 주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주의와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렸다.
목차
1부 식민주의와 언어
모어라는 폭력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
서울에서 『유희』를 읽다
단절의 세기의 언어경험
2부 인간을 끌어당기고 가르는 경계선
도쿄와 서울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다
『태양 속의 남자들』이 던지는 물음 ― ‘우리들’은 누구인가?
도덕성을 둘러싼 투쟁
인간을 가르는 경계선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네 번째 호기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둘러싸고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당신은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 ― 하나자키 고헤이에 대한 항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4부 또 다른 만남
인터뷰: 새로운 통일의 꿈
대담: 국민주의와 리버럴 세력 ― 일본을 바로 알기 위해
옮긴이의 말
출전
모어라는 폭력
모어와 모국어의 상극
서울에서 『유희』를 읽다
단절의 세기의 언어경험
2부 인간을 끌어당기고 가르는 경계선
도쿄와 서울에서 프리모 레비를 읽다
『태양 속의 남자들』이 던지는 물음 ― ‘우리들’은 누구인가?
도덕성을 둘러싼 투쟁
인간을 가르는 경계선
어느 재일조선인의 초상
3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네 번째 호기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둘러싸고
‘일본인으로서의 책임’을 다시 생각한다
당신은 어느 자리에 앉아 있는가 ― 하나자키 고헤이에 대한 항변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4부 또 다른 만남
인터뷰: 새로운 통일의 꿈
대담: 국민주의와 리버럴 세력 ― 일본을 바로 알기 위해
옮긴이의 말
출전
저자 소개
출판사 리뷰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싸워 온 서경식의 두 번째 평론집
전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일본,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나?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두 번째 평론집을 내놓았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지진 참사로 우리 사회가 일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우리가 일본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물리적 위기 못지않게, 일본 사회가 수십 년간 지식인 사회의 사상적 퇴락(頹落)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고비를 맞고 있는 일본 사회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다시금 우리 사회와 화해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2006년 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강렬한 체험을 계기로 쓴 글들이다. 윤동주의 「서시」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대 지식인들의 흔적을 더듬어간 평론들도 함께 실렸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는 평론들이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일본 지성계와 리버럴 세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일본 사상계에 관한 비판적인 조감도를 제공한다.
4부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인터뷰는 2008년 저자가 서울 체류 당시 최현덕(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교수)과 ‘새로운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것이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대담은 저자와 이 책의 역자 권혁태 간에 이뤄졌다. 3부 주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주의와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렸다.
왜 언어의 감옥인가 ― 모어에 담긴 폭력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언어 내셔널리즘이다. 저자는 2년간의 모국체험을 통해 실감했던 모어에 담긴 폭력성을 치열하게 사유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소년의 눈물』은 1995년 일본에서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상 이유가 “뛰어난 일본어 표현”이라는 데 심경 복잡했던 저자는 수상 인사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61쪽)
모어란 태생적으로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언어다. 누구도 자신의 의사로 선택할 수는 없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근원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모어의 폭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모어를 부정하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모어란 곧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쓸 수도 없다. 첼란이나 저자 본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모어 속에는 곧 자신들의 민족을 억압했던 침략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곧 모어 속에 들어 있는 제국주의의 시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모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힘으로 덧씌워진 ‘덫’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저자의 고백은 실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모어=국어’라는 공식을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유대계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의 경우를 소개한다. 첼란은 어머니로부터 독일어를 모어로 물려받았다. 부모를 나치 수용소에서 잃은 뒤에도 독일어로 시를 쓰던 첼란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들의 언어로 쓰는가?”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때 첼란은 “오직 모어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만일 외국어로 쓴다면 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답한다. 저자는, 첼란에게 독일어는 언제나 어떤 단일국가의 국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첼란에게 모어공동체는 같은 국어를 쓰는 국민공동체가 아니라 다언어·다문화의 영역 안에서 언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유대를 의미했으리란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모어에 담긴 다수자의 시선과 시각을 치열하게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어란 것이 나와 너를 가르는 기준이 아닌, 또 다른 공동체의 조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모어와 모국어의 어긋남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 일본 우파보다 위험한 일본의 리버럴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부족을 크게 우려한다. 이 책의 3부와 4부의 대담은 리버럴 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박유하 현상을 둘러싼 일본 리버럴 세력의 담론을 비판한 글은 매우 예리하며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증언의 시대’를 맞이했다. 일본 국민의 다수가 가해의 역사와 대면하고 대화를 통해 과거를 극복함으로써 피해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기를 열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 전반의 우경화와 함께 역사 문제에서도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이 대폭 줄어드는 등 일본 사회는 ‘반동의 시대’로 돌입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은 우파나 역사수정주의자로부터의 폭력뿐만 아니라, 중간파 다수자로부터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박유하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상적 퇴락현상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7년 일본에 소개된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는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네 개의 논점을 둘러싼 한일 간 인식의 어긋남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일본의 대표적 리버럴 매체인 아사히신문사 주최한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받는 등 리버럴 세력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박유하의 모든 레토릭은 “궁극적으로 한일 간 불화의 원인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식의 가짜 ‘화해론’으로 수렴”한다. 예컨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주장들을 인용하고 있다.
화해 성립의 열쇠는 결국, 피해자 쪽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 쪽이 용서를 구했는지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 큰 틀에서는 한국이 사죄를 받아들일 만큼의 노력을 일본은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 344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피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기비판은 필요하지 않을까?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원한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져 상처를 받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본문 348쪽)
저자는 『화해를 위해서』에 일본 리버럴 세력이 환호했던 이유를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의 리버럴에 숨겨져 있는 욕구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일본 리버럴)은 일반적으로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사의 전 과정을 통해 홋카이도, 오키나와, 타이완, 조선, 만주국으로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면서 획득했던 일본 국민의 국민적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본문 351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저자가 보기에 일본 리버럴파의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구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지적처럼 박유하의 언설은 일본 리버럴 세력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상품가치가 있었던 셈이다. ‘절도’ 있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억눌려온 일본 리버럴 지식인의 본심을 박유가 “자국 비판”인 듯한 레토릭을 구사해 대변해준 것이다.
‘죄’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의 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간 저자는 그곳에서 젊은 날의 호치민과 닮은 주인 남자를 만났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잔인한 용병으로서 역할을 아는 저자는 음식점 주인으로부터 “자포네?”(일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주 곤혹스러워한다. “코레안”이라고 사실을 밝힌다면 주인 남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저자는 주인 남자가 물이라도 끼얹으면 기꺼이 맞을 생각이었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그는 베트남전쟁과는 하등 상관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니고, 베트남 파병 결정을 한 한국 정권을 지지한 적도 없다. 오히려 저자의 두 형은 1971년 ‘모국 유학’ 중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을 갖고 여행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죄’와 ‘책임’에 대한 정의를 인용하여 이것을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죄’는 개인에 귀속되는 것이지 집단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책임’에는 두 개의 조건이 있다. 즉,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고, 자신의 자발적 행동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집단에 성원으로 속해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임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오직 “망명자이거나 국가 없는 사람들”만이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문 250쪽)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개인으로서는 한국 베트남 파병의 ‘죄’를 짓지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부여 받은 ‘여권’이 아무리 사소한 혜택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도 마찬가지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일본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예컨대 저자는 일제 강제동원으로 악명 높았던 가지마 건설을 예로 든다. 저자는 가지마 건설이 국가와 공모해 저지른 과거의 범죄를 가지고 그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주주, 사원, 하청, 고객 등의 형태로 가지마 건설의 기득권을 자기 몫으로 취하는 수익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마 건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범죄(피해자의 보상요구를 거부하는 것)를 용인한다면, 그 행위는 이제 ‘책임’의 영역을 넘어서 한없이 ‘죄’에 가까운 것이다.
소수자의 눈으로 시대를 고발해온 진정한 지식인
우리 사회는 그의 책을 어떻게 읽어왔나?
젊은 시절 저자는 “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내 발언 따위는 곧 쓸모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런 글쓰기는 접고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 만 60세를 맞은 저자의 눈에 비친 일본 사회는 더욱더 “황폐해져”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다.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일본 사회는 침략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친 채, 수십 년간 부정과 회피로 식민지 지배 책임을 도외시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저자의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1990년대 초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처음 소개된 뒤, 저자의 저술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애독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서경식의 책을 통해 소비했던 것은 “피차별과 피식민지의 역사”가 증발된 ‘세계인’으로서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역자 권혁태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날카롭다.
그가 『디아스포라 기행』을 한국에서 출간했을 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가 내세운 ‘디아스포라’라는 말에 담겨 있는 사유와 고민을 읽지 않고 그저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주는 해방감에만 주목한 흔적이 있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적인 문화에 지긋지긋해 있던 (……) 사람들에게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 새로운 주체로서의 ‘세계인’과 같은 이미지였던 듯하다. (「역자의 말」 중에서)
저자는 전작들을 통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체제에 희생된 채 오늘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성찰하지 않고 ‘진정한 조국’(국경이나 혈통·문화에 의해 특정한 집단에게 배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별과 지배를 함께 극복해낸 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이란 불가능함을 말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저술활동은 물론, 대학강의와 대중강연, 대담, NGO 참여 등으로 폭넓게 이어오고 있다. 이 책 역시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겨루는 힘겨운 싸움의 하나이다.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잃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려는 다수자들이 지식사회를 장악해버린 시대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자기 신념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지는 고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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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89년 히로히토 사망 직후 쓴 글( 3부 「네 번째 호기―쇼와의 끝과 ‘조선’」)에서 와다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인 스스로)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반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네 번째 호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앞의 세 번의 호기란 ‘일본 패전 때’와 ‘한일조약 체결 때’,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던 1973년을 말한다. 저자는 세 번째 호기(김대중 납치 사건)에서 “일본인과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 사이에 연대의 싹이 생겨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하루키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곧 쇼와의 막이 내리는 시점을 네 번째 호기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가 구시대와 선을 긋고,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민족과 진정한 우정을 쌓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는 침략전쟁의 주역 천황을 변명하고 미화하는 일본 언론의 외침 앞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일본 대지진 참사 직후 한국 사회의 반응은 몇 가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내 시민 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활발한 성금 모금 활동과 기부 공연이 행해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 형식으로 진행됐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지지부진했던 일본에 비난을 잠시 멈추고, 이웃나라의 자연재해에 함께 가슴 아파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인도적인 움직임에 대해 앞으로 일본 사회는 어떤 응답을 보내올 것인가? 이번 사건이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다섯 번째 호기’일 수 있을까?
전후 최대의 시련을 겪고 있는 일본, 우리는 그들을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나?
『디아스포라 기행』, 『소년의 눈물』로 잘 알려진 재일조선지식인 서경식이 『난민과 국민 사이』를 묶어낸 지 5년 만에 두 번째 평론집을 내놓았다. 저자는 전작을 통해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민족주의와 국민주의, 일본 우경화 문제 등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은 전작의 문제의식들을 계승하는 한편, 언어 내셔널리즘 문제와 ‘계속되는 식민주의’의 청산을 막는 위험으로서의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대지진 참사로 우리 사회가 일본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우리가 일본 사회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점검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현재 경험하고 있는 물리적 위기 못지않게, 일본 사회가 수십 년간 지식인 사회의 사상적 퇴락(頹落)이 심각할 정도로 진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고비를 맞고 있는 일본 사회가 “계속되는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다시금 우리 사회와 화해할 수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성찰의 기회를 줄 것이다.
이번에 소개되는 글들은 2006년부터 2년간 저자가 한국에 머물던 기간에 쓴 시론과 시평을 중심으로, 주제에 따라서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글들을 포함한다. 모국체험 전후 10여 년간 저자의 정치적·역사적·철학적 사유와 성찰의 궤적을 정리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는 ‘식민주의’와 ‘언어 내셔널리즘’에 대한 글이다. 저자가 2006년 봄부터 2년간 성공회대 연구교수로 국내에 머물 당시 모어(일본어)와 모국어(조선어)의 어긋남에서 비롯된 강렬한 체험을 계기로 쓴 글들이다. 윤동주의 「서시」 번역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하여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유대 지식인들의 흔적을 더듬어간 평론들도 함께 실렸다.
2부는 선(線)이라는 주제로, 제국주의가 그어버린 국경선으로 인해 고통받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룬 평론, 저자의 가족사를 중심으로 분단(분단선)의 아픔을 겪고 있는 재일조선인에 대한 에세이 등이 실렸다. 다른 각도에서 1부의 내용을 보완하는 평론들이다.
3부는 일본 지식인의 사상적 퇴락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의 우파와는 다른 의미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있다. 식민지 지배의 책임론이 불거질 때마다 양비론으로 일관했던 일본 지성계와 리버럴 세력에 대해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1990년대 이후 일본 사회에서 진행되었던 일본 사상계에 관한 비판적인 조감도를 제공한다.
4부는 저자의 인터뷰와 대담 한 편씩을 묶었다. 인터뷰는 2008년 저자가 서울 체류 당시 최현덕(부산대 인문학연구소 HK교수)과 ‘새로운 통일의 꿈’이라는 주제로 이뤄진 것이다. 조선 민족의 통일을 위한 협의체 조직, 한국의 이중국적 허용 등 저자 나름의 통일에 대한 흥미로운 구상을 엿볼 수 있다. 대담은 저자와 이 책의 역자 권혁태 간에 이뤄졌다. 3부 주제를 좀더 자유롭게 풀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국민주의와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독자들의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해 실렸다.
왜 언어의 감옥인가 ― 모어에 담긴 폭력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중요한 주제 중 하나가 언어 내셔널리즘이다. 저자는 2년간의 모국체험을 통해 실감했던 모어에 담긴 폭력성을 치열하게 사유한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아온 『소년의 눈물』은 1995년 일본에서 에세이스트 클럽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수상 이유가 “뛰어난 일본어 표현”이라는 데 심경 복잡했던 저자는 수상 인사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구식민지 종주국인 일본에서 태어난 나는 원래 모어여야 할 언어(조선어)를 박탈당하고 과거 종주국의 언어를 모어로 해서 자라났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일본어로 생각하며 모든 것을 일본어로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나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벽’에 갇힌 수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본문 61쪽)
모어란 태생적으로 부모로부터 주어지는 언어다. 누구도 자신의 의사로 선택할 수는 없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근원적이면서도 피할 수 없는 “모어의 폭력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자신의 모어를 부정하게 된다면 결국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모어란 곧 자신의 감정과 사고를 표현하는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어를 아무런 고민 없이 쓸 수도 없다. 첼란이나 저자 본인과 같은 디아스포라의 모어 속에는 곧 자신들의 민족을 억압했던 침략국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다. 곧 모어 속에 들어 있는 제국주의의 시선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모어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힘으로 덧씌워진 ‘덫’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는 저자의 고백은 실존의 문제와 연결된다.
저자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언어 내셔널리즘이 만들어낸 ‘모어=국어’라는 공식을 깰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유대계 루마니아 시인 파울 첼란의 경우를 소개한다. 첼란은 어머니로부터 독일어를 모어로 물려받았다. 부모를 나치 수용소에서 잃은 뒤에도 독일어로 시를 쓰던 첼란은 “자신의 부모를 죽인 자들의 언어로 쓰는가?”라는 비난을 받는다. 그때 첼란은 “오직 모어로만 자신의 진실을 말할 수 있다. 만일 외국어로 쓴다면 시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답한다. 저자는, 첼란에게 독일어는 언제나 어떤 단일국가의 국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본다. 첼란에게 모어공동체는 같은 국어를 쓰는 국민공동체가 아니라 다언어·다문화의 영역 안에서 언어를 같이하는 사람들의 정신적 유대를 의미했으리란 것이다.
결국 저자는 자신의 모어에 담긴 다수자의 시선과 시각을 치열하게 인식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은 이미 다문화 사회로 진입한 한국 사회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언어란 것이 나와 너를 가르는 기준이 아닌, 또 다른 공동체의 조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또한 모어와 모국어의 어긋남으로 인해 스스로를 부정당하는 역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 ― 일본 우파보다 위험한 일본의 리버럴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 리버럴 세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부족을 크게 우려한다. 이 책의 3부와 4부의 대담은 리버럴 세력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특히 박유하 현상을 둘러싼 일본 리버럴 세력의 담론을 비판한 글은 매우 예리하며 음미해볼 가치가 있다.
1990년대에 들어와서 일본 사회는 처음으로 ‘증언의 시대’를 맞이했다. 일본 국민의 다수가 가해의 역사와 대면하고 대화를 통해 과거를 극복함으로써 피해자들과 함께 새로운 세기를 열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회 전반의 우경화와 함께 역사 문제에서도 교과서에서 위안부 관련 기술이 대폭 줄어드는 등 일본 사회는 ‘반동의 시대’로 돌입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에서 일본 식민지 지배 피해자들은 우파나 역사수정주의자로부터의 폭력뿐만 아니라, 중간파 다수자로부터 ‘화해라는 이름의 폭력’에 노출되었다고 주장한다. 특히 박유하 현상은 1990년대 이후, 일본의 리버럴 세력의 사상적 퇴락현상이 어느 수준에까지 이르렀는지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2007년 일본에 소개된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는 교과서, 위안부, 야스쿠니, 독도라는 네 개의 논점을 둘러싼 한일 간 인식의 어긋남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일본의 대표적 리버럴 매체인 아사히신문사 주최한 오사라기 지로 논단상을 받는 등 리버럴 세력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박유하의 모든 레토릭은 “궁극적으로 한일 간 불화의 원인이 ‘일본’이 아니라 ‘한국’의 불신에 있다는 박유하식의 가짜 ‘화해론’으로 수렴”한다. 예컨대 저자는 다음과 같은 문제의 주장들을 인용하고 있다.
화해 성립의 열쇠는 결국, 피해자 쪽이 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가해자 쪽이 용서를 구했는지 여부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 큰 틀에서는 한국이 사죄를 받아들일 만큼의 노력을 일본은 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본문 344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피해자’로서의 내셔널리즘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기비판은 필요하지 않을까? ‘용서’는 피해자 자신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다. 원한과 분노로부터 자유로워져 상처를 받기 전의 평화로운 상태로 돌아가기 위해서. (본문 348쪽)
저자는 『화해를 위해서』에 일본 리버럴 세력이 환호했던 이유를 박유하의 언설이 일본의 리버럴에 숨겨져 있는 욕구에 딱 들어맞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그들(일본 리버럴)은 일반적으로 우파의 노골적인 국가주의에는 반대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비합리적이고 광신적인 우파와 구별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라고 자임한다. 그러나 동시에 근대사의 전 과정을 통해 홋카이도, 오키나와, 타이완, 조선, 만주국으로 식민지 지배를 확대하면서 획득했던 일본 국민의 국민적 특권이 위협받는 것에 불안을 느낀다. (본문 351쪽, 박유하의 『화해를 위해서』 재인용)
저자가 보기에 일본 리버럴파의 다수는 이성적인 민주주의자를 자임하는 명예 감정과 구종주국 국민으로서의 국민적 특권 모두를 잃고 싶어하지 않는다. 결국 저자의 지적처럼 박유하의 언설은 일본 리버럴 세력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상품가치가 있었던 셈이다. ‘절도’ 있는 ‘양심적 지식인’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망 때문에 억눌려온 일본 리버럴 지식인의 본심을 박유가 “자국 비판”인 듯한 레토릭을 구사해 대변해준 것이다.
‘죄’와 ‘책임’이라는 문제를 생각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한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집단의 과오에 대해 일정한 책임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프랑스 아비뇽의 한 베트남 음식점에서 있었던 일화는 매우 상징적이다. 프랑스를 여행하던 중 우연히 베트남 음식점에 들어간 저자는 그곳에서 젊은 날의 호치민과 닮은 주인 남자를 만났다. 베트남전쟁에서 한국군의 잔인한 용병으로서 역할을 아는 저자는 음식점 주인으로부터 “자포네?”(일본이세요?)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 아주 곤혹스러워한다. “코레안”이라고 사실을 밝힌다면 주인 남자는 어떻게 반응할까? 저자는 주인 남자가 물이라도 끼얹으면 기꺼이 맞을 생각이었다.
사실 저자의 말처럼 그는 베트남전쟁과는 하등 상관도 없다고 할 수 있다. 전쟁에 나간 것도 아니고, 베트남 파병 결정을 한 한국 정권을 지지한 적도 없다. 오히려 저자의 두 형은 1971년 ‘모국 유학’ 중 정치범으로 투옥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저자는 “한국 정부가 발행하는 여권을 갖고 여행하기 때문”에 ‘한국인으로서의 책임’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한나 아렌트의 ‘죄’와 ‘책임’에 대한 정의를 인용하여 이것을 설명한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죄’는 개인에 귀속되는 것이지 집단에 귀속되는 것은 아니다. ‘집단의 책임’에는 두 개의 조건이 있다. 즉, 자신이 행하지 않은 일에 대해 책임이 있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고, 자신의 자발적 행동으로는 해소할 수 없는 집단에 성원으로 속해 있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책임은 언제나 정치적이다. 오직 “망명자이거나 국가 없는 사람들”만이 이런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문 250쪽)
결국 저자의 결론은 개인으로서는 한국 베트남 파병의 ‘죄’를 짓지 않았지만 ‘한국인’으로서 정치적 의미에서 ‘집단의 책임’은 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으로부터 부여 받은 ‘여권’이 아무리 사소한 혜택일지라도 말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도 마찬가지다. 전후에 태어난 일본인들은 일본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에 대해 ‘죄’는 없지만 일본인으로서 ‘집단의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예컨대 저자는 일제 강제동원으로 악명 높았던 가지마 건설을 예로 든다. 저자는 가지마 건설이 국가와 공모해 저지른 과거의 범죄를 가지고 그와 관련되지 않은 사람에게 그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주주, 사원, 하청, 고객 등의 형태로 가지마 건설의 기득권을 자기 몫으로 취하는 수익자들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가지마 건설이 지금 저지르고 있는 범죄(피해자의 보상요구를 거부하는 것)를 용인한다면, 그 행위는 이제 ‘책임’의 영역을 넘어서 한없이 ‘죄’에 가까운 것이다.
소수자의 눈으로 시대를 고발해온 진정한 지식인
우리 사회는 그의 책을 어떻게 읽어왔나?
젊은 시절 저자는 “나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으니, 내 발언 따위는 곧 쓸모없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이런 글쓰기는 접고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이제 만 60세를 맞은 저자의 눈에 비친 일본 사회는 더욱더 “황폐해져” 있다.
나는 글쓰기를 통해 ‘계속되는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을 지속해왔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눈앞에 펼쳐지는 일본 사회의 모습은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져 있다. 우파의 야비한 욕설이 울려 퍼지고 리버럴 세력은 공허한 양비론을 중얼거리며 방관한다. 결과적으로 이런 무참한 사회를 젊은 세대에게 남겨주게 되었다. (「저자의 말」 중에서)
일본 사회는 침략의 역사를 반성할 수 있는 몇 번의 기회를 놓친 채, 수십 년간 부정과 회피로 식민지 지배 책임을 도외시해왔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저자의 이런 비판에서 자유로울까?
1990년대 초 『나의 서양미술 순례』가 처음 소개된 뒤, 저자의 저술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꾸준히 독자들로부터 애독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서경식의 책을 통해 소비했던 것은 “피차별과 피식민지의 역사”가 증발된 ‘세계인’으로서의 이미지는 아니었을까? 역자 권혁태의 다음과 같은 분석은 날카롭다.
그가 『디아스포라 기행』을 한국에서 출간했을 때,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그가 내세운 ‘디아스포라’라는 말에 담겨 있는 사유와 고민을 읽지 않고 그저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주는 해방감에만 주목한 흔적이 있다. 한국의 내셔널리즘적인 문화에 지긋지긋해 있던 (……) 사람들에게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 새로운 주체로서의 ‘세계인’과 같은 이미지였던 듯하다. (「역자의 말」 중에서)
저자는 전작들을 통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냉전체제에 희생된 채 오늘에 이르는 재일조선인의 역사를 성찰하지 않고 ‘진정한 조국’(국경이나 혈통·문화에 의해 특정한 집단에게 배룅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차별과 지배를 함께 극복해낸 자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이란 불가능함을 말해왔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기 위해 저술활동은 물론, 대학강의와 대중강연, 대담, NGO 참여 등으로 폭넓게 이어오고 있다. 이 책 역시 “계속되는 식민주의”와 겨루는 힘겨운 싸움의 하나이다.
역사적 책임과 소명을 잃고 안락한 삶에 안주하려는 다수자들이 지식사회를 장악해버린 시대에, 소수자로서의 정체성을 놓지 않고 자기 신념을 끈기 있게 밀고 나가고 있는 인물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그 행운을 누릴 자격이 충분한지는 고민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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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1989년 히로히토 사망 직후 쓴 글( 3부 「네 번째 호기―쇼와의 끝과 ‘조선’」)에서 와다 하루키의 말을 인용하며 “(일본인 스스로) 침략과 수탈의 역사를 부정하고 조선반도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창조해나갈” 네 번째 호기가 왔다고 주장했다. 앞의 세 번의 호기란 ‘일본 패전 때’와 ‘한일조약 체결 때’, 김대중 납치 사건이 일어났던 1973년을 말한다. 저자는 세 번째 호기(김대중 납치 사건)에서 “일본인과 한국 민주화운동 세력 사이에 연대의 싹이 생겨 일본인에게 조선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하루키의 말을 인용했다. 그리고 천황 히로히토의 죽음, 곧 쇼와의 막이 내리는 시점을 네 번째 호기라고 지적했다. 일본 사회가 구시대와 선을 긋고, 식민 지배에 대한 사죄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여준다면 “조선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민족과 진정한 우정을 쌓는” 호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의 목소리는 침략전쟁의 주역 천황을 변명하고 미화하는 일본 언론의 외침 앞에 그대로 묻히고 말았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대지진과 쓰나미, 원자력발전소 폭발로 전후 최대의 시련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큰 희생을 치르고 있다. 일본 대지진 참사 직후 한국 사회의 반응은 몇 가지 중요한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국내 시민 단체들을 중심으로 일본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활발한 성금 모금 활동과 기부 공연이 행해졌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수요집회는 지진 피해자들에 대한 추모 형식으로 진행됐다. 과거사 청산 문제에 지지부진했던 일본에 비난을 잠시 멈추고, 이웃나라의 자연재해에 함께 가슴 아파하며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자 하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인도적인 움직임에 대해 앞으로 일본 사회는 어떤 응답을 보내올 것인가? 이번 사건이 한일 양국의 화해를 위해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다섯 번째 호기’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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