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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주신화에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제대로 기록되지 못한 우리 신화의 원형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널리 알리고 보전하는 데 힘써온 저자 김순이는 지난 2000년부터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제주어를 현대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제주신화로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했다. 그 결과물을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는 제주 토박이로 제주 각 지역의 고유어까지 환히 꿰뚫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저자가 오랜 세월 굿판에 드나들며 현장에서 경험하고, 훼손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신화를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와 상징을 밝히고 전설, 민담, 설화와 구분되는 신화의 특징을 요약, 정리함으로써 신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혔다.
저자가 들려주는 제주신화는 우거진 팽나무 아래서 마을 아이들과 아낙들, 그 앞을 지나가던 이들에게 들려주는 ‘할망’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구송(口誦)으로 전해온 신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과 제주어의 멋을 더해 노래했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물론 부수적인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덕분에 진정한 신화 읽기가 가능해졌다. 우리는 신들의 이야기를 간고한 현재의 나의 삶에 비추어 보며 위로 받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제주 토박이로 제주 각 지역의 고유어까지 환히 꿰뚫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저자가 오랜 세월 굿판에 드나들며 현장에서 경험하고, 훼손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저자는 신화를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와 상징을 밝히고 전설, 민담, 설화와 구분되는 신화의 특징을 요약, 정리함으로써 신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혔다.
저자가 들려주는 제주신화는 우거진 팽나무 아래서 마을 아이들과 아낙들, 그 앞을 지나가던 이들에게 들려주는 ‘할망’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구송(口誦)으로 전해온 신화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며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과 제주어의 멋을 더해 노래했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물론 부수적인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덕분에 진정한 신화 읽기가 가능해졌다. 우리는 신들의 이야기를 간고한 현재의 나의 삶에 비추어 보며 위로 받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총설_ 제주신화를 찾아서
1. 신화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 제주
2. 제주신화의 특징
3. 제주신화에 나타난 신의 특성
4. 제주신화의 기본 열두본풀이와 큰굿
5. 열두본풀이의 의미와 상징
6. 본향당과 당굿
7. 본향당 본풀이의 의미와 상징
제1부_ 큰굿 열두본풀이
1. 정의로운 대별왕, 욕심 많은 소별왕 ◆ 천지왕본풀이
2. 생명신 삼승할망 ◆ 삼승할망본풀이
3. 무조신 자지명왕 ◆ 초공본풀이
4. 서천꽃밭과 할락궁이 ◆ 이공본풀이
5. 행운의 여신 감은장아기 ◆ 삼공본풀이
6. 저승차사가 된 강림 ◆ 차사본풀이
7. 삼천 년의 수명을 누린 사만이 ◆ 멩감본풀이
8. 새로 환생한 지장아기 ◆ 지장본풀이
9. 사랑과 농경의 여신 자청비 ◆ 세경본풀이
10. 문전신과 조왕할망 ◆ 문전본풀이
11. 곡식과 재물의 칠성신 ◆ 칠성본풀이
12. 먹은 값 하는 도깨비 신 ◆ 영감본풀이
제2부_ 마을 본향당 본풀이
1. 제주 창조의 여신 ◆ 설문대할망
2. 바다의 여신 ◆ 영등할망
3. 신들의 어머니 ◆ 송당리 금백주
4. 방랑하는 영웅 ◆ 김녕리 궤내기또
5. 아이고, 술 냄새야! ◆ 상귀리 송씨할망
6. 내 혼에 불을 놓아 ◆ 신천리 현씨일월
7. 돼지고기 먹고 싶어 한 죄 ◆ 와흘리 서정승따님아기
8. 해녀들의 수호신 ◆ 마라도 애기할망
9. 사랑에 눈이 멀다 ◆ 고산국과 바람운
10. 인신공양의 희생물 ◆ 수산리 진안할망
11. 환생하는 여신 ◆ 토산리 토산한집
12. 바다에서 건진 돌미륵 ◆ 화북리 윤동지영감
13. 역적이 된 효자 ◆ 삼달리 황서국서어모장군
14. 식성이 문제로다 ◆ 세화리 천자또
마치는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1. 신화의 원형이 살아 있는 곳, 제주
2. 제주신화의 특징
3. 제주신화에 나타난 신의 특성
4. 제주신화의 기본 열두본풀이와 큰굿
5. 열두본풀이의 의미와 상징
6. 본향당과 당굿
7. 본향당 본풀이의 의미와 상징
제1부_ 큰굿 열두본풀이
1. 정의로운 대별왕, 욕심 많은 소별왕 ◆ 천지왕본풀이
2. 생명신 삼승할망 ◆ 삼승할망본풀이
3. 무조신 자지명왕 ◆ 초공본풀이
4. 서천꽃밭과 할락궁이 ◆ 이공본풀이
5. 행운의 여신 감은장아기 ◆ 삼공본풀이
6. 저승차사가 된 강림 ◆ 차사본풀이
7. 삼천 년의 수명을 누린 사만이 ◆ 멩감본풀이
8. 새로 환생한 지장아기 ◆ 지장본풀이
9. 사랑과 농경의 여신 자청비 ◆ 세경본풀이
10. 문전신과 조왕할망 ◆ 문전본풀이
11. 곡식과 재물의 칠성신 ◆ 칠성본풀이
12. 먹은 값 하는 도깨비 신 ◆ 영감본풀이
제2부_ 마을 본향당 본풀이
1. 제주 창조의 여신 ◆ 설문대할망
2. 바다의 여신 ◆ 영등할망
3. 신들의 어머니 ◆ 송당리 금백주
4. 방랑하는 영웅 ◆ 김녕리 궤내기또
5. 아이고, 술 냄새야! ◆ 상귀리 송씨할망
6. 내 혼에 불을 놓아 ◆ 신천리 현씨일월
7. 돼지고기 먹고 싶어 한 죄 ◆ 와흘리 서정승따님아기
8. 해녀들의 수호신 ◆ 마라도 애기할망
9. 사랑에 눈이 멀다 ◆ 고산국과 바람운
10. 인신공양의 희생물 ◆ 수산리 진안할망
11. 환생하는 여신 ◆ 토산리 토산한집
12. 바다에서 건진 돌미륵 ◆ 화북리 윤동지영감
13. 역적이 된 효자 ◆ 삼달리 황서국서어모장군
14. 식성이 문제로다 ◆ 세화리 천자또
마치는 글
참고문헌
찾아보기
책 속으로
열두본풀이란 일반신화 중 우리 삶의 핵심을 관장하는 신 열두 분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근본 태생과 성장, 사건에 따른 행동을 통하여 인간의 여러 가지 유형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므로 본풀이란 신의 내력담來歷談이며 신에게 바치는 송가頌歌요, 찬가讚歌라 하겠다. 열두본풀이에는 동서양의 영웅신화에 나타나는 공통점이 어김없이 나타난다. 훌륭한 가문에서 출생하여 범속한 인간이 겪을 수 없는 사건과 고통을 겪으며 초월적인 권능을 획득, 인간 세상에 이로운 존재가 된다.
이런 신들의 내력담을 풀어주면 신들은 ‘신나락 만나락한다’고 한다. 즉 신의 근본은 풀면 풀수록 그 신이함과 영험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반면, 인간의 내력은 풀면 풀수록 그 범속함이 드러나며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굿판으로 신을 청하여 본풀이를 하는 이유는 신을 칭송함으로써 그를 흡족하게 하고 그가 가진 권능으로 인간들을 돕도록 하는 데 있다.
일반신화의 열두본풀이는 제주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제주신화가 한국신화의 뿌리이며 원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육지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한국신화의 원형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원형질이 제주신화에 굳건히 살아남아 있음을 뜻한다.
--- pp.16-18
한 말 나는 밭에 천 말 나게 해주시고
두 말 거두는 밭에 만 말 거두게 해주소서
곡식 줄기는 튼실하게 잎사귀는 너풀너풀
열매들은 무쇠열매 농사지어 땀 흘리면
천석꾼 부자로 만들어주소서
만석꾼 부자로 만들어주소서
자청비가 씨를 뿌리며 하늘에다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축원을 드려가니 할망이 다시 졸락허게 말을 하였다.
“아이고, 그렇게 많이 해서 어찌 다 먹습니까. 그냥 검은 암소에 싣거든 등이 톡하게 오그라질 정도만 되면 먹을 만합니다.”
그 주책없는 소리 때문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 부자 소리를 들을 만큼 수확을 걷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먹을 만큼의 소출만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씨 뿌리는 데 가서 “씨앗을 잦게 뿌려라” 또는 “굵게 뿌려라” 하는 주책바가지 소리를 하면 그해 농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나라의 문도령은 농사일 전체를 관장하는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가축을 돌보는 하세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상세경 문도령은 일월성수日月星宿(해와 달과 별들) 사계절의 운행 및 풍수재해 등의 자연 현상을 관장하는 하늘을 상징한다. 중세경 자청비는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과 열매를 생산하는 신비한 생명력의 대지를 상징한다. 하세경 정수남이는 상세경과 중세경을 돕고 섬기며 가축을 돌보고 번성시키는 테우리[牧畜]신이다. 더벅머리 총각으로 손에는 항상 마소를 몰 때 사용하는 막대기와 고삐로 사용하는 밧줄을 들고 있다.
--- pp.243-244
“우린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꼭 하고야 마는 성질머리가 있지. 우린 돼지고기 좋아하지. 흑돼지 백돼지 앞갈비 뒷갈비 앞다리 뒷다리 앞머리 뒷머리 열두신뼈 좋아하고, 시원석석한 횟간[膾肝]이나 염통 콩팥 좋아하고, 큰창자 작은창자 좋아하고, 더운피 단피 그거 좋아하지. 수수떡 수수밥 좋아하고, 청주나 탁주나 소주도 좋고, 거 뭣이냐, 양놈들 좋아하는 포도주나 위스키 꼬냑도 좋아하고, 중국 놈들 좋아하는 고량주 죽엽청주도 좋지. 술안주로는 삶은 계란 찐 계란 매끄럽게 껍질 벗긴 거, 그거 한 입에 쏘옥 먹으면 아, 좋지! 우린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 하는 성질머리라.”
첫째가 능글능글 결정적인 한 말씀을 얹었다.
“누가 우리 성질머리를 건드렸다, 그러면 건드린 값을 열 배 백 배로 갚아주지. 요놈 저놈 고약한 놈, 배신한 놈 절대 못 봐줘. 가난할 때는 영감님 땡감님 하며 손발이 닳게 쫓아댕기며 알랑방구 뀌다가 부자 만들어주면 누구시더라 언제 보셨더라 하고 안면 싸악 바꾸는 고런 놈, 그놈 집 처마에는 신불을 놔주지. 재물이고 뭐고 다 불타고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나앉는 꼴 만들어준단 말이야. 자기 필요한 거 얻어보려고 마음에도 없으면서 겉으로 위하는 척하는 그런 놈들, 소가지가 종지 물처럼 얕은 놈들, 그런 놈들 잘되는 꼴 죽어도 못 봐준다는 말씀.”
--- pp.289-290
“여기가 내가 찾던 바로 그곳이로구나!”
설문대는 한라산의 정령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 이제 이 땅에 스며들련다.
이 섬의 흙은 내 살이요,
이 섬의 물은 내 피요,
이 섬의 돌은 내 뼈라.”
설문대는 물장올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거인의 몸이 점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안개가 피어올라 그 모습을 살포시 휘감아 감춰버렸다.
이때부터 한라산 아흔아홉 골짜기를 흘러내리던 물들은 모두
설문대를 따라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은 오백장군은 통곡하며
한라산 곳곳을 헤매며 설문대의 모습을 찾아다니다
굳어져 바위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흘린 뜨거운 눈물 자국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진달래, 철쭉이 무더기무더기 피어나
한라산을 붉게 물들인다.
이런 신들의 내력담을 풀어주면 신들은 ‘신나락 만나락한다’고 한다. 즉 신의 근본은 풀면 풀수록 그 신이함과 영험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반면, 인간의 내력은 풀면 풀수록 그 범속함이 드러나며 하찮은
존재로 전락하고 만다는 것이다. 굿판으로 신을 청하여 본풀이를 하는 이유는 신을 칭송함으로써 그를 흡족하게 하고 그가 가진 권능으로 인간들을 돕도록 하는 데 있다.
일반신화의 열두본풀이는 제주신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학자들은 제주신화가 한국신화의 뿌리이며 원형이라는 점을 인정한다. 육지에서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한국신화의 원형이 살아 있다는 것은 한국인의 원형질이 제주신화에 굳건히 살아남아 있음을 뜻한다.
--- pp.16-18
한 말 나는 밭에 천 말 나게 해주시고
두 말 거두는 밭에 만 말 거두게 해주소서
곡식 줄기는 튼실하게 잎사귀는 너풀너풀
열매들은 무쇠열매 농사지어 땀 흘리면
천석꾼 부자로 만들어주소서
만석꾼 부자로 만들어주소서
자청비가 씨를 뿌리며 하늘에다 풍년농사를 기원하는 축원을 드려가니 할망이 다시 졸락허게 말을 하였다.
“아이고, 그렇게 많이 해서 어찌 다 먹습니까. 그냥 검은 암소에 싣거든 등이 톡하게 오그라질 정도만 되면 먹을 만합니다.”
그 주책없는 소리 때문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으면 부자 소리를 들을 만큼 수확을 걷을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겨우 먹을 만큼의 소출만 나게 되었다. 그래서 그 후부터 씨 뿌리는 데 가서 “씨앗을 잦게 뿌려라” 또는 “굵게 뿌려라” 하는 주책바가지 소리를 하면 그해 농사를 그르치게 된다는 말이 생기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나라의 문도령은 농사일 전체를 관장하는 상세경, 자청비는 중세경, 정수남이는 가축을 돌보는 하세경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상세경 문도령은 일월성수日月星宿(해와 달과 별들) 사계절의 운행 및 풍수재해 등의 자연 현상을 관장하는 하늘을 상징한다. 중세경 자청비는 인간 세상을 풍요롭게 하는 오곡과 열매를 생산하는 신비한 생명력의 대지를 상징한다. 하세경 정수남이는 상세경과 중세경을 돕고 섬기며 가축을 돌보고 번성시키는 테우리[牧畜]신이다. 더벅머리 총각으로 손에는 항상 마소를 몰 때 사용하는 막대기와 고삐로 사용하는 밧줄을 들고 있다.
--- pp.243-244
“우린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을 꼭 하고야 마는 성질머리가 있지. 우린 돼지고기 좋아하지. 흑돼지 백돼지 앞갈비 뒷갈비 앞다리 뒷다리 앞머리 뒷머리 열두신뼈 좋아하고, 시원석석한 횟간[膾肝]이나 염통 콩팥 좋아하고, 큰창자 작은창자 좋아하고, 더운피 단피 그거 좋아하지. 수수떡 수수밥 좋아하고, 청주나 탁주나 소주도 좋고, 거 뭣이냐, 양놈들 좋아하는 포도주나 위스키 꼬냑도 좋아하고, 중국 놈들 좋아하는 고량주 죽엽청주도 좋지. 술안주로는 삶은 계란 찐 계란 매끄럽게 껍질 벗긴 거, 그거 한 입에 쏘옥 먹으면 아, 좋지! 우린 잘 먹으면 잘 먹은 값 못 먹으면 못 먹은 값 하는 성질머리라.”
첫째가 능글능글 결정적인 한 말씀을 얹었다.
“누가 우리 성질머리를 건드렸다, 그러면 건드린 값을 열 배 백 배로 갚아주지. 요놈 저놈 고약한 놈, 배신한 놈 절대 못 봐줘. 가난할 때는 영감님 땡감님 하며 손발이 닳게 쫓아댕기며 알랑방구 뀌다가 부자 만들어주면 누구시더라 언제 보셨더라 하고 안면 싸악 바꾸는 고런 놈, 그놈 집 처마에는 신불을 놔주지. 재물이고 뭐고 다 불타고 하루아침에 알거지로 나앉는 꼴 만들어준단 말이야. 자기 필요한 거 얻어보려고 마음에도 없으면서 겉으로 위하는 척하는 그런 놈들, 소가지가 종지 물처럼 얕은 놈들, 그런 놈들 잘되는 꼴 죽어도 못 봐준다는 말씀.”
--- pp.289-290
“여기가 내가 찾던 바로 그곳이로구나!”
설문대는 한라산의 정령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나 이제 이 땅에 스며들련다.
이 섬의 흙은 내 살이요,
이 섬의 물은 내 피요,
이 섬의 돌은 내 뼈라.”
설문대는 물장올 호수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커다란 거인의 몸이 점점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하자
안개가 피어올라 그 모습을 살포시 휘감아 감춰버렸다.
이때부터 한라산 아흔아홉 골짜기를 흘러내리던 물들은 모두
설문대를 따라서 땅속으로 스며들어 흐르게 되었다.
어머니를 잃은 오백장군은 통곡하며
한라산 곳곳을 헤매며 설문대의 모습을 찾아다니다
굳어져 바위가 되고 말았다.
그들이 흘린 뜨거운 눈물 자국에서
해마다 봄이 되면
진달래, 철쭉이 무더기무더기 피어나
한라산을 붉게 물들인다.
--- p.315
출판사 리뷰
제주할망이 풀어내고 정리한 본래의 제주신화
신화(神話)는 신성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적, 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라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들, 즉 신들이 세계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질서와 제도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러다 보니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지곤 한다. 많은 이들이 신화와 전설, 민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신들은 거의 잊힌 존재 또는 텍스트 속에 갇힌 존재가 되었으며 제우스나 비너스 같은 이국의 신들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전 신화가 대부분인 우리 신화가 제대로 기록될 기회를 얻기 전에 그 의미와 가치가 폄하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꿈과 이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어 삶의 지침으로 삼던 우리 신화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흔적조차 희미해진 우리 신화의 원형이 이 나라의 끝자락인 제주도에 남아 있다. 이는 제주도가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된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아이러니다. 흔히 일만 팔천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며 신화에 뿌리를 둔 무속신앙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집안과 마을을 지키는 신들을 위하고 신화에 기반한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게 생활화되어 있으며, 큰굿이 벌어질 때는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들고 신당을 찾아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치성을 드린다. 하지만 제주에서조차 이제 신화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을 공동체 단위로 돌아가던 생활이 각 개인, 개별 가족 중심의 삶으로 대체되며 신당을 관리하고 굿판을 주도하던 공동체의 힘과 역할이 축소되고, 신화의 전승 주체인 무당의 계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이 모든 것을 미신과 시대에 낙후된 것으로 치부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널리 알리고 보전하는 데 평생 힘써온 저자 김순이는 더 늦기 전에 제주신화가 온전히 기록되어야 함을 절감했다. 제주신화에는 고대 한국신화의 기본형이 유지되고 있기에, 제주신화가 사라짐으로써 우리 신화의 근본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제주어로 구전되어 오면서 제주신화는 이미 많은 부분 왜곡되거나 첨삭되며 원형이 훼손되었다. 특히 원시 고구려어, 고려시대 몽골어, 조선시대 중세 언어에 동남아 언어까지 뒤섞인 제주어로 굿판에서 불리는 무가(巫歌)는 제주 토박이라도 확연히 알아들을 수 없다. 제주어에 통달하고 신화를 두루 꿰찬 실력이 아니고서는 엉뚱한 풀이, 황당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어, 확실하게 인정받는 ‘제주신화의 정본’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제주할망이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
저자는 2000년부터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제주어를 현대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제주신화로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는 제주 토박이로 제주 각 지역의 고유어까지 환히 꿰뚫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저자가 오랜 세월 굿판에 드나들며 현장에서 경험하고, 훼손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로써 제주신화, 그리고 한국신화 연구자들을 위한 훌륭한 기본 자료가 마련되었다. 나아가 저자는 신화를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와 상징을 밝히고 전설, 민담, 설화와 구분되는 신화의 특징을 요약, 정리함으로써 신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혔다.
신들의 내력담이 읊어지고 신에게 바치는 찬가가 울려 퍼지는 굿판이 제주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장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저자는 굿을 미신(迷信)이 아니라 미신(美信)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가슴속 한을 풀고, 가족과 친족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마을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는 굿판이야말로 음악, 미술, 무용, 연극의 요소가 버무려진 종합예술의 마당이다. 이러한 굿판의 기본 텍스트인 제주신화는 현대어로 옮겨졌을지라도 건조하고 딱딱한 글로 바뀐 것은 아니다. 마치 우거진 팽나무 아래서, 올망졸망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 그 앞을 지나가던 이들에게 들려주는 ‘할망’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제주어에서 ‘할망’, ‘하르방’은 나이가 들어 육신이 늙은 사람을 지칭하는 한편, 지혜로운 자, 덕을 구현하는 자, 자애로운 존재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에게 붙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신화를 전하며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저자 김순이도 그러므로 할망이다. 이 제주할망은 구송(口誦)으로 전해온 신화의 느낌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과 제주어의 멋을 더해 노래했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물론 부수적인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덕분에 진정한 신화 읽기가 가능해졌다. 즉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마주해 주저앉거나 도망가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를 간고한 현재의 나의 삶에 비추어 보며 위로 받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제주신화는 나누고 베푸는 삶, 공동체를 위하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거친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제주여성들을 강인하게 만든 것도 바로 제주신화다. 신화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가르침을 전하는 김순이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자 큰 어른이며, 살아 있는 제주할망이다.
신화(神話)는 신성한 존재에 관한 이야기다. 역사적, 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라 신비롭고 초월적인 존재들, 즉 신들이 세계를 어떻게 창조했는지, 질서와 제도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대해 말한다. 그러다 보니 현대를 사는 우리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로 느껴지곤 한다. 많은 이들이 신화와 전설, 민담의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민족의 신들은 거의 잊힌 존재 또는 텍스트 속에 갇힌 존재가 되었으며 제우스나 비너스 같은 이국의 신들이 오히려 더 친숙하게 여겨지고 있다. 이는 입에서 입으로 전승되는 구전 신화가 대부분인 우리 신화가 제대로 기록될 기회를 얻기 전에 그 의미와 가치가 폄하되는 시대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우리 민족 공동체의 꿈과 이상, 세계관이 반영되어 있어 삶의 지침으로 삼던 우리 신화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로 전락해버렸다.
그런데 흔적조차 희미해진 우리 신화의 원형이 이 나라의 끝자락인 제주도에 남아 있다. 이는 제주도가 오랜 세월 동안 고립된 공간이었기에 가능한 아이러니다. 흔히 일만 팔천 신들의 고향이라 불리며 신화에 뿌리를 둔 무속신앙이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제주도에서는 집안과 마을을 지키는 신들을 위하고 신화에 기반한 금기 사항을 철저히 지키는 게 생활화되어 있으며, 큰굿이 벌어질 때는 정성껏 마련한 제물을 들고 신당을 찾아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치성을 드린다. 하지만 제주에서조차 이제 신화의 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을 공동체 단위로 돌아가던 생활이 각 개인, 개별 가족 중심의 삶으로 대체되며 신당을 관리하고 굿판을 주도하던 공동체의 힘과 역할이 축소되고, 신화의 전승 주체인 무당의 계승자가 나오지 않고 있어서다. 이 모든 것을 미신과 시대에 낙후된 것으로 치부한 것도 큰 몫을 차지한다.
제주 출신으로 제주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널리 알리고 보전하는 데 평생 힘써온 저자 김순이는 더 늦기 전에 제주신화가 온전히 기록되어야 함을 절감했다. 제주신화에는 고대 한국신화의 기본형이 유지되고 있기에, 제주신화가 사라짐으로써 우리 신화의 근본을 영영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사실 장구한 세월에 걸쳐 제주어로 구전되어 오면서 제주신화는 이미 많은 부분 왜곡되거나 첨삭되며 원형이 훼손되었다. 특히 원시 고구려어, 고려시대 몽골어, 조선시대 중세 언어에 동남아 언어까지 뒤섞인 제주어로 굿판에서 불리는 무가(巫歌)는 제주 토박이라도 확연히 알아들을 수 없다. 제주어에 통달하고 신화를 두루 꿰찬 실력이 아니고서는 엉뚱한 풀이, 황당한 해석이 나올 수밖에 없어, 확실하게 인정받는 ‘제주신화의 정본’은 사실상 없는 실정이다.
제주할망이 들려주는 신들의 이야기
저자는 2000년부터 무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낯선 제주어를 현대 우리말로 바꾸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제주신화로 기록하는 일을 시작했다. 이는 제주 토박이로 제주 각 지역의 고유어까지 환히 꿰뚫고 있으며, 국문학을 전공한 시인이자 민속학자인 저자가 오랜 세월 굿판에 드나들며 현장에서 경험하고, 훼손된 원형을 복구하려는 지난한 학문적 노력을 기울였기에 해낼 수 있는 일이다. 이로써 제주신화, 그리고 한국신화 연구자들을 위한 훌륭한 기본 자료가 마련되었다. 나아가 저자는 신화를 그저 현대어로 옮기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의미와 상징을 밝히고 전설, 민담, 설화와 구분되는 신화의 특징을 요약, 정리함으로써 신화 세계를 활짝 열어젖히고 그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혔다.
신들의 내력담이 읊어지고 신에게 바치는 찬가가 울려 퍼지는 굿판이 제주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정화시키는 장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한 저자는 굿을 미신(迷信)이 아니라 미신(美信)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의 가슴속 한을 풀고, 가족과 친족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마을의 화합과 상생을 도모하는 굿판이야말로 음악, 미술, 무용, 연극의 요소가 버무려진 종합예술의 마당이다. 이러한 굿판의 기본 텍스트인 제주신화는 현대어로 옮겨졌을지라도 건조하고 딱딱한 글로 바뀐 것은 아니다. 마치 우거진 팽나무 아래서, 올망졸망 아이들과 마을 아낙들, 그 앞을 지나가던 이들에게 들려주는 ‘할망’의 이야기처럼 친근하다. 제주어에서 ‘할망’, ‘하르방’은 나이가 들어 육신이 늙은 사람을 지칭하는 한편, 지혜로운 자, 덕을 구현하는 자, 자애로운 존재로 신앙의 대상이 되는 신에게 붙이는 호칭이기도 하다. 신화를 전하며 깨달음을 얻게 해주는 저자 김순이도 그러므로 할망이다. 이 제주할망은 구송(口誦)으로 전해온 신화의 느낌을 최대한 해치지 않으면서 아름답고 순수한 우리말과 제주어의 멋을 더해 노래했기에,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은 물론 부수적인 인물들까지 생생하게 살아났다. 그 덕분에 진정한 신화 읽기가 가능해졌다. 즉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마주해 주저앉거나 도망가지 않는 신들의 이야기를 간고한 현재의 나의 삶에 비추어 보며 위로 받고 용기와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제주신화는 나누고 베푸는 삶, 공동체를 위하는 삶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함으로써 함께 살아가는 것이 잘 사는 길, 사람답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척박한 땅을 일구고 거친 바다에 의지해 살아온 제주여성들을 강인하게 만든 것도 바로 제주신화다. 신화를 통해 오늘을 살아가는 가르침을 전하는 김순이는 이 시대의 이야기꾼이자 큰 어른이며, 살아 있는 제주할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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