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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등장까지, 그 100년의 중국사
21세기 입구에서 20세기 중국사를 되돌아보다!
『20세기 중국사: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탄생까지』는 현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와 중국의 미래를 역사가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20세기 초입의 1901년,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건 의화단 운동은 외국 군대에게 철저히 탄압당하고, 중국은 서구 열강에 반식민지화 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01년,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중국인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이 양극단에 위치하는 두 사건 사이의 100년 동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20세기 중국의 모습을 마오쩌둥의 연설, 문화 혁명, 톈안먼 사건 등 현대 중국에서 발생한 주요 사회적 사건들에 의해 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방여된 연속극, 영화, 중국 관련 외국 인터넷 자료, 사진, 전단지, 지하 간행물 등을 폭넓게 검토한다. 이러한 자료들만으로도 독자들은 20세기 중국사의 흐름을 한결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목적은 대포의 굉음이나 귓전을 때리는 구호 속에서 발생한 혼돈, 전쟁과 수많은 혁명의 와중에 주도되었던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은 근대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선 중국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지,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모습을 예측하며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한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 현대사 자료를 충분하게 제시하며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충실한 20세기 중국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입구에서 20세기 중국사를 되돌아보다!
『20세기 중국사: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탄생까지』는 현대 중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련의 변화와 중국의 미래를 역사가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20세기 초입의 1901년,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건 의화단 운동은 외국 군대에게 철저히 탄압당하고, 중국은 서구 열강에 반식민지화 되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01년,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중국인들은 거리로 뛰어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이 양극단에 위치하는 두 사건 사이의 100년 동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20세기 중국의 모습을 마오쩌둥의 연설, 문화 혁명, 톈안먼 사건 등 현대 중국에서 발생한 주요 사회적 사건들에 의해 볼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 방여된 연속극, 영화, 중국 관련 외국 인터넷 자료, 사진, 전단지, 지하 간행물 등을 폭넓게 검토한다. 이러한 자료들만으로도 독자들은 20세기 중국사의 흐름을 한결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책의 목적은 대포의 굉음이나 귓전을 때리는 구호 속에서 발생한 혼돈, 전쟁과 수많은 혁명의 와중에 주도되었던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은 근대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는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선 중국의 미래는 과연 어떠할 것인지, 결코 단선적이지 않은 모습을 예측하며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한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 현대사 자료를 충분하게 제시하며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충실한 20세기 중국사 입문서라고 할 수 있다.
목차
옮긴이 서문
서론
1장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열쇠
2장 청 제국의 몰락: 1898~1911
3장 유구한 전통 중국의 질식 시대: 1912~1927
4장 중국 해안 지방의 발전: 1912~1927
5장 유산된 혁명: 1927~1937
6장 무력 항쟁: 1937~1949
7장 소련 모델을 추구한 시기: 1949~1957
8장 유토피아의 제국: 1958~1976
9장 마오쩌둥주의의 해체: 1976~2002
10장 21세기 벽두에 선 중국
에필로그 -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부록
연표 | 중국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 | 쏭(宋)씨 가문
참고문헌
지은이 주
찾아보기
서론
1장 중국사를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열쇠
2장 청 제국의 몰락: 1898~1911
3장 유구한 전통 중국의 질식 시대: 1912~1927
4장 중국 해안 지방의 발전: 1912~1927
5장 유산된 혁명: 1927~1937
6장 무력 항쟁: 1937~1949
7장 소련 모델을 추구한 시기: 1949~1957
8장 유토피아의 제국: 1958~1976
9장 마오쩌둥주의의 해체: 1976~2002
10장 21세기 벽두에 선 중국
에필로그 -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부록
연표 | 중국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 | 쏭(宋)씨 가문
참고문헌
지은이 주
찾아보기
책 속으로
청 제국의 당국자들은 18세기 이후 양귀비 재배와 담배를 포함한 아편의 소비를 금지했다. 중국 당국자들은 아편이 건강에 위험하다는 사실을 유럽인들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아편 밀매는 제국의 성실한 민간과 군사 관료들에게 해를 끼쳤다. 그들 관료들은 아편을 묵인하여 중국 상인들과 이익을 공유했으며, 그들 상인들은 여전히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비밀결사로서 만주족의 축출을 주장했던 삼합회(三合會)와 종종 연계되기도 했다. 따라서 아편과 청 제국의 몰락은 깊은 연관성이 있다. --- p.19
서양 강대국들은 일정 지역을 할양하여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강대국들은 외국인 조차지와 프랑스 조차지가 있었던 상하이처럼 도시 전체를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이 우습게 생각했던 일본은―예를 들어 일본은 당(唐) 왕조의 문물을 수입했다―1895년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한 후, 청 제국의 2년 예산을 집어삼켰던 전쟁배상금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중국으로부터 타이완과 군사 기지가 있는 뤼순(旅順), 그리고 상업 항구가 있는 대련(大連)이 속한 만주 남쪽의 랴오둥반도를 차지했다. 이전 시기 내내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은 이제 뒤처진 하나의 지방에 불과했다. --- p.38
1924년, 여러 군벌들 사이의 크고 작은 전쟁 발발이 가장 극심한 지점에 이르렀다. 국가는 거의 파괴 상태였다. 1916년에서 1928년 사이 열 명의 국가수반과 스물다섯 명의 관료들은 단지 군벌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을 통치하는 것에 불과했다. 외국 열강들은 특정 군벌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우페이푸는 영국의 지지를, 장쭤린은 일본, 펑위샹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영토 분할이 가속화되었다. 티베트가 독립했고, 몽골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으며, 신장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런 상황의 중압감 때문에 중국은 질식 상태였으며, 중국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재앙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 p.70
중국공산당은 당 지도자, 당 기구, 그리고 당의 군대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대장정의 모험 덕분에 그 효과가 대단했던 전설을 얻었다. 향후 1~2년 동안, 비록 왕밍이 공산당은 여전히 자신의 휘하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상황을 미루어볼 때 지도자는 당연히 마오쩌둥이었다. 이제 마오쩌둥은 자신이 마오쩌둥주의자임을 분명히 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동조합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노동자와 거의 정치화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으며, 반면 농민 계층은 상당한 혁명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력한 무장을 통해 농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홍군을 소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장차 미래가 없을지도 모를 자신의 모험주의에 국민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옌안과 매우 가까운 쑤이위안까지 쳐들어온 일본군과의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_--- p.135
리종런에게 국민당 총재직을 내준 장제스의 마지막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정부는 와해되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군은 베이징을 재탈환했다. 양쯔 강을 수비했던 여러 거점 지역의 지휘관들은 비밀리에 공산당에 가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4월 21일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양쯔 강을 건널 수 있었다. 5월 25일 아무 어려움 없이 공산당은 상하이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이 이상한 ‘해방’에 일반인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10월 중순 무렵 광둥이 함락되었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는 “이제 중국인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나머지 행정 요원, 군대와 함께 타이완으로 피신했다. --- p.159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의 꿈을 재발견한 마오쩌둥은 청년들이 오래된 것들을 파괴하고, 가족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도록 했다. 당시 한때 유행한 구호는 “모든 반란은 정당하다”였다. 이러한 호소에 움직여 봉기한 젊은이들은 사실상 몇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기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선언된 그러한 해방은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숭배라는 비인간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홍위병은 ‘마오의 광적인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오쩌둥 자신이 조성한 정치투쟁이라는 틀 속에서 마오쩌둥에 의해 조종되는 단순한 하수인들에 불과했다. --- p.218
마오쩌둥을 암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린뱌오가 대담하게 마련한 ‘571공정기요’라는 음모를 중국이 발표한 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혹은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노선상의 심각한 대립을 염두에 둔다면, 그 계획부터가 잘못되었으며 단지 구상에 그쳤던 음모를 린뱌오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악마의 화신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나는 항상 둘로 분열된다.” 마오쩌둥은 정적을 필요로 했으며, 심지어 그는 정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그가 정적을 일부러 만들었을 경우, 그들은 자신이 마오쩌둥의 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해 방어할 틈도 없었기 때문에 마오쩌둥은 그들을 그만큼 제거하기가 쉬웠다. --- p.229
1989년 6월 4일의 대학살은 예상치 못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급속히 변모했다. (…) 권력층은 사후(事後) 발생한 탄압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1989년부터 진행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 2년 뒤 일어난 소련의 분할, 그리고 그러한 사태로 빚어진 불행과 혼란 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을 신뢰했으며, 나머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던 것처럼 보였다. 대학살 사건의 상처가 존재했지만, 그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변해버린 ‘과도한 행위’의 책임자를 가려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 p.268
1911년의 공화 혁명으로 무능력하고 고답적이며 억압적인 제국은 몰락했다. 사회 기반이 없었던 공화 혁명은 ‘군벌’의 전쟁이라는 무질서에 봉착했다. 그러나 상하이와 그 밖의 몇몇 해안 지역 도시의 자본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젊은이들을 유럽의 전장(戰場)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벌여야 했던 제국주의 세력의 아시아에서의 후퇴, 당시 중국의 기본 화폐였던 은의 재평가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공장 설비를 갖추었다. 그 시기가 바로 1917년과 1923년 사이, 중국 부르주아의 황금 시기였다. 또한 그것은 1919년 5.4운동이 전개된 시기였다. 5.4운동은 전통 지식인을 계승한 당시 지식인들이 주도한 일종의 문화 혁명으로서, 사상과 정치 생활의 근대화를 이상으로 내걸었지만, 그것을 강제로 이식할 실질적인 힘은 갖지 못했다. 1930년대 세계적으로 공황이 닥치자, 모든 사람들은 보호자 역할을 하는 국가의 공백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그러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민당의 모호한 노력은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침공으로 무력화되었다. 어쩌면 중국의 자본주의는 회복기를 맞이하자마자 바로 숨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 p.279
나날이 첨예화되고 있는 중국의 사회 위기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일련의 치명적인 결과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호랑이에 올라타서도 떨어지지 않는 기교를 배워야 한다. 신세대 권력자들은 바로 앞 세대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지만, 1949년~1980년대에 중국을 통치한 정치 지도자들과는 달리 어떠한 위엄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최소한의 카리스마도 없는 순수한 기술관료에 불과하다. 베이징 서커스단의 마술처럼, 중국의 정치인들은 아무런 생명 보조선도 없이 그들의 정치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 p.282
현재 중국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점과 관련해서 현재 공산당 지도자들은 모든 사물에 대한 ‘정명(正名)’의 필요성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지적해야 할 것이다. 시장이란 자본주의와 동체이며, 사회주의는 대규모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인 사유 재산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 사회주의’라는 명칭은 일종의 모호한 모순어법이다. (…)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이 실패한 바로 그곳에서 성공을 거둔 일종의 국민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정통성을 기만적인 혁명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의 성공과, 일부 오류가 있었지만 경제 발전 영역에서의 성공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 p.293
한때 ‘나라의 주인’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그런 명목으로 중국공산당 독재 행사의 근거가 되기도 했던 노동자들은 적어도 대약진 운동 시기까지 그들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특권이라 할 수 있던 그와 같은 명목을 경제개혁 이래 상실하고 말았다. 이처럼 자신들의 황금시대를 잃어버린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결정지었으며 여러 가지를 보장해주었던 단위가 서서히 해체됨에 따라, 고용 불안과 사회보장 제도의 후퇴에 맞닥뜨렸다.
서양 강대국들은 일정 지역을 할양하여 자신들의 영향권 아래 두었다. 불평등조약을 강제한 강대국들은 외국인 조차지와 프랑스 조차지가 있었던 상하이처럼 도시 전체를 자신들의 통제 아래 두었다. 홍콩과 마카오는 식민지로 전락했다. 중국이 우습게 생각했던 일본은―예를 들어 일본은 당(唐) 왕조의 문물을 수입했다―1895년 전쟁에서 손쉽게 승리한 후, 청 제국의 2년 예산을 집어삼켰던 전쟁배상금에 대한 일언반구도 없이, 중국으로부터 타이완과 군사 기지가 있는 뤼순(旅順), 그리고 상업 항구가 있는 대련(大連)이 속한 만주 남쪽의 랴오둥반도를 차지했다. 이전 시기 내내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던 중국은 이제 뒤처진 하나의 지방에 불과했다. --- p.38
1924년, 여러 군벌들 사이의 크고 작은 전쟁 발발이 가장 극심한 지점에 이르렀다. 국가는 거의 파괴 상태였다. 1916년에서 1928년 사이 열 명의 국가수반과 스물다섯 명의 관료들은 단지 군벌이 장악하고 있던 지역을 통치하는 것에 불과했다. 외국 열강들은 특정 군벌을 지지했다. 예를 들어 우페이푸는 영국의 지지를, 장쭤린은 일본, 펑위샹은 러시아의 지원을 받았다. 영토 분할이 가속화되었다. 티베트가 독립했고, 몽골은 소련의 위성국가가 되었으며, 신장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나 있었다. 이런 상황의 중압감 때문에 중국은 질식 상태였으며, 중국 역사에서 전통적으로 등장하는 여러 재앙들이 최고조에 달했다. --- p.70
중국공산당은 당 지도자, 당 기구, 그리고 당의 군대를 유지하게 되었으며, 대장정의 모험 덕분에 그 효과가 대단했던 전설을 얻었다. 향후 1~2년 동안, 비록 왕밍이 공산당은 여전히 자신의 휘하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모든 상황을 미루어볼 때 지도자는 당연히 마오쩌둥이었다. 이제 마오쩌둥은 자신이 마오쩌둥주의자임을 분명히 했으며, 자신의 경험을 이론화하기 시작했다. 그는 노동조합 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노동자와 거의 정치화되지 않은 노동자들의 세계를 무시할 수 없으며, 반면 농민 계층은 상당한 혁명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강력한 무장을 통해 농민들에게 신뢰를 줄 수 있는 홍군을 소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점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그는 장차 미래가 없을지도 모를 자신의 모험주의에 국민적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해, 옌안과 매우 가까운 쑤이위안까지 쳐들어온 일본군과의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_--- p.135
리종런에게 국민당 총재직을 내준 장제스의 마지막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민당 정부는 와해되었다. 1949년 1월 31일 공산당 군은 베이징을 재탈환했다. 양쯔 강을 수비했던 여러 거점 지역의 지휘관들은 비밀리에 공산당에 가담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4월 21일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양쯔 강을 건널 수 있었다. 5월 25일 아무 어려움 없이 공산당은 상하이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이 이상한 ‘해방’에 일반인들은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10월 중순 무렵 광둥이 함락되었다. 1949년 10월 1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서 마오쩌둥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을 선포했다. 그는 “이제 중국인은 더 이상 노예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제스는 자신의 나머지 행정 요원, 군대와 함께 타이완으로 피신했다. --- p.159
자신의 스무 살 시절의 꿈을 재발견한 마오쩌둥은 청년들이 오래된 것들을 파괴하고, 가족과 학교, 그리고 사회의 모든 장벽을 무너뜨리도록 했다. 당시 한때 유행한 구호는 “모든 반란은 정당하다”였다. 이러한 호소에 움직여 봉기한 젊은이들은 사실상 몇 달 동안 자유를 만끽할 수 있는 시기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연하게 선언된 그러한 해방은 마오쩌둥에 대한 우상숭배라는 비인간적인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홍위병은 ‘마오의 광적인 신봉자들’이었다. 그들은 마오쩌둥 자신이 조성한 정치투쟁이라는 틀 속에서 마오쩌둥에 의해 조종되는 단순한 하수인들에 불과했다. --- p.218
마오쩌둥을 암살하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린뱌오가 대담하게 마련한 ‘571공정기요’라는 음모를 중국이 발표한 대로 받아들여야만 할까? 혹은 실제로 두 사람 사이에 존재했던 노선상의 심각한 대립을 염두에 둔다면, 그 계획부터가 잘못되었으며 단지 구상에 그쳤던 음모를 린뱌오에게 뒤집어씌워 그를 악마의 화신으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하나는 항상 둘로 분열된다.” 마오쩌둥은 정적을 필요로 했으며, 심지어 그는 정적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특히 그가 정적을 일부러 만들었을 경우, 그들은 자신이 마오쩌둥의 적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해 방어할 틈도 없었기 때문에 마오쩌둥은 그들을 그만큼 제거하기가 쉬웠다. --- p.229
1989년 6월 4일의 대학살은 예상치 못한 우발적인 사건으로 급속히 변모했다. (…) 권력층은 사후(事後) 발생한 탄압에 대한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1989년부터 진행된 동유럽 사회주의의 몰락, 2년 뒤 일어난 소련의 분할, 그리고 그러한 사태로 빚어진 불행과 혼란 등을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해석했다. (…)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방식을 신뢰했으며, 나머지 다른 사람들 역시 그랬던 것처럼 보였다. 대학살 사건의 상처가 존재했지만, 그것은 극히 부분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한 우발적 사건으로 변해버린 ‘과도한 행위’의 책임자를 가려 희생양으로 삼는 것이었다. --- p.268
1911년의 공화 혁명으로 무능력하고 고답적이며 억압적인 제국은 몰락했다. 사회 기반이 없었던 공화 혁명은 ‘군벌’의 전쟁이라는 무질서에 봉착했다. 그러나 상하이와 그 밖의 몇몇 해안 지역 도시의 자본가들은 제1차 세계대전, 젊은이들을 유럽의 전장(戰場)으로 끌어들여 전쟁을 벌여야 했던 제국주의 세력의 아시아에서의 후퇴, 당시 중국의 기본 화폐였던 은의 재평가 기회를 이용하여 자신들의 공장 설비를 갖추었다. 그 시기가 바로 1917년과 1923년 사이, 중국 부르주아의 황금 시기였다. 또한 그것은 1919년 5.4운동이 전개된 시기였다. 5.4운동은 전통 지식인을 계승한 당시 지식인들이 주도한 일종의 문화 혁명으로서, 사상과 정치 생활의 근대화를 이상으로 내걸었지만, 그것을 강제로 이식할 실질적인 힘은 갖지 못했다. 1930년대 세계적으로 공황이 닥치자, 모든 사람들은 보호자 역할을 하는 국가의 공백을 절실하게 느꼈으며, 그러한 국가를 만들기 위한 국민당의 모호한 노력은 1931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침공으로 무력화되었다. 어쩌면 중국의 자본주의는 회복기를 맞이하자마자 바로 숨을 거두었다고 할 수 있다. --- p.279
나날이 첨예화되고 있는 중국의 사회 위기는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연결될 수 있다. 따라서 일련의 치명적인 결과가 등장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호랑이에 올라타서도 떨어지지 않는 기교를 배워야 한다. 신세대 권력자들은 바로 앞 세대보다 더 많은 권한을 갖고 있지만, 1949년~1980년대에 중국을 통치한 정치 지도자들과는 달리 어떠한 위엄도 갖추지 못했다. 그들은 최소한의 카리스마도 없는 순수한 기술관료에 불과하다. 베이징 서커스단의 마술처럼, 중국의 정치인들은 아무런 생명 보조선도 없이 그들의 정치 수완을 발휘하고 있다. --- p.282
현재 중국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이 점과 관련해서 현재 공산당 지도자들은 모든 사물에 대한 ‘정명(正名)’의 필요성을 강조한 공자의 가르침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어쩔 수 없이 지적해야 할 것이다. 시장이란 자본주의와 동체이며, 사회주의는 대규모 생산수단에 대한 집단화를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인 사유 재산과 양립하기 어렵기 때문에, ‘시장 사회주의’라는 명칭은 일종의 모호한 모순어법이다. (…) 중국공산당은 국민당이 실패한 바로 그곳에서 성공을 거둔 일종의 국민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공산당은 자신의 정통성을 기만적인 혁명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국제무대에서의 성공과, 일부 오류가 있었지만 경제 발전 영역에서의 성공으로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 p.293
한때 ‘나라의 주인’으로 추앙을 받았으며, 그런 명목으로 중국공산당 독재 행사의 근거가 되기도 했던 노동자들은 적어도 대약진 운동 시기까지 그들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된 여러 특권이라 할 수 있던 그와 같은 명목을 경제개혁 이래 상실하고 말았다. 이처럼 자신들의 황금시대를 잃어버린 이후,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결정지었으며 여러 가지를 보장해주었던 단위가 서서히 해체됨에 따라, 고용 불안과 사회보장 제도의 후퇴에 맞닥뜨렸다.
--- p.313
출판사 리뷰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등장까지, 그 100년의 중국사
20세기 벽두인 1901년,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건 의화단 운동은 외국 군대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고 중국은 서구 열강의 반(半)식민지화로 내몰렸다. 진시황이 건설한 중화제국이 2000년 만에 몰락한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01년 7월 13일,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수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중국이 강대국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양극단에 위치하는 두 사건 사이의 100년 동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세기 중국사 -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탄생까지」는 청나라 말기 중화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신해혁명, 대장정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을 거쳐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중국인들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담아냈다.
21세기의 입구에서 20세기 중국사를 되돌아보다
저자 알랭 루는 20세기 중국사를 한 편의 드라마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기술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의 서론에서 “앞으로의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 옹호자들의 장밋빛인가, 자유분방한 자유주의자들의 백색인가,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와 같은 여러 집단의 흑색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듯이, 그는 21세기의 입구에서 미래를 향해 선 채로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저자가 예측하는 중국의 21세기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지난 100년 동안 근대화 과정에서 숱한 실패를 겪었던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러한 흐름은 21세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이러한 ‘강대국 중국의 이면’도 놓치지 않는다. 지역, 도농, 계층 간 갈등이나 부정부패와 자원 낭비처럼 중국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요소들도 세세하게 언급한다.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자료와 해설이 돋보이는 20세기 중국사 입문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중국 현대사 자료들과 그에 대한 충분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문헌 자료를 포함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료를 본문의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중국 현대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또한 현대사 관련 문서, 그림, 사진, 통계 등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을 책 뒤에 부록으로 따로 묶었다. 독자는 그 자료들만으로도 20세기 중국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근현대사 연표와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도 유용한 참고 자료이다. 덧붙여 한국어판에는 원서에 없는 현대사 관련 사진을 100컷 이상 찾아 넣음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 현대사 자료의 해제 성격을 겸비한 군더더기 없는 충실한 20세기 중국사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았던 중국의 근대화 과정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목적은 대포의 굉음이나 귓전을 때리는 구호 속에서 발생한 혼돈, 전쟁과 수많은 혁명의 와중에 주도되었던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은 근대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오랫동안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으나 서구 제국주의 열강 앞에 힘없이 무너져버린 중화 제국이 거대한 혼돈과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과 고통을 딛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선 오늘날까지를 다루고 있다. 일반 대중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니만큼 중국 현대사를 주요 시기별로 구분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위주로 충실하게 서술해나간다. 특기할 것은 서술의 초점이 주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세 분야의 역사가 곧 중국 현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현대 중국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본문은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기는 주로 정치 경제적으로 주요한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다. 저자는 먼저 중국사에 입문하기 전 알아두어야 할 전근대 중국의 특징을 소개하고, 이어 18세기 말부터 위기를 맞은 청 제국이 1911년 마침내 최후를 맞기까지의 상황을 서술한다. 다음으로 쑨원의 공화국 선포에도 불구하고 군사주의의 팽창으로 근대의 맹아가 질식하여 중국이 절망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보수주의로 기운 난징 정부가 중국의 근대화를 중단시키고 불화를 심화시키는 상황과, 일본이 침략하기 전 이미 좌절된 국민 혁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책의 중반부터는 1937~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중국 전역에서 지속된 전투와, 1946~49년까지 국민당과 공산당이 벌인 전면전에 대해 서술한다. 뒤이어 일본군의 침략에 중국이 짓밟히며 장제스가 쌓아올린 국민당의 권위가 추락하고 마침내 공산당이 국민당에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 다음으로 민국 시기와 단절하고 기본적인 개혁을 시작하며 사회주의 진영으로 들어간 중국이 소련 모델의 실험이 실패한 뒤 새로운 중국적 방식을 모색하는 시기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유토피아적 비전에 입각한 정책을 시도하는 마오쩌둥의 시대가 그려진다.
책의 후반부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덩샤오핑이 사회의 역동성에 기반을 두고 마오쩌둥 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새롭게 거듭난 중국과 국가의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자는 21세기에 중국은 분명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중국인들은 굴욕의 상태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치는 보수적이고, 추악한 자본주의적 양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엄청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거대한 모순과 폐쇄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21세기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20세기 벽두인 1901년, ‘부청멸양(扶淸滅洋)’의 기치를 내건 의화단 운동은 외국 군대에 의해 철저히 진압되고 중국은 서구 열강의 반(半)식민지화로 내몰렸다. 진시황이 건설한 중화제국이 2000년 만에 몰락한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100년이 지난 2001년 7월 13일, 베이징이 200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었다는 뉴스가 전해지자 수천만 명의 중국인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기쁨을 만끽했다. 중국이 강대국 반열에 올랐음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이 양극단에 위치하는 두 사건 사이의 100년 동안 중국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세기 중국사 - 제국의 몰락에서 강대국의 탄생까지」는 청나라 말기 중화제국이 몰락하기 시작하는 무렵부터 신해혁명, 대장정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탄생, 대약진 운동과 문화 대혁명을 거쳐 개혁개방의 길로 나아가 강대국의 반열에 오르기까지, 지난 100년간 중국인들이 겪었던 파란만장한 역사의 현장을 담아냈다.
21세기의 입구에서 20세기 중국사를 되돌아보다
저자 알랭 루는 20세기 중국사를 한 편의 드라마나 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기술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는다. 이 책의 서론에서 “앞으로의 중국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 체제 옹호자들의 장밋빛인가, 자유분방한 자유주의자들의 백색인가, 그렇지 않으면 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마피아와 같은 여러 집단의 흑색인가?”라고 문제를 제기했듯이, 그는 21세기의 입구에서 미래를 향해 선 채로 지난 100년을 되돌아보고 있다. 저자가 예측하는 중국의 21세기는 결코 단선적이지 않다. 지난 100년 동안 근대화 과정에서 숱한 실패를 겪었던 중국이 1978년 개혁개방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고, 그러한 흐름은 21세기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그러나 이러한 ‘강대국 중국의 이면’도 놓치지 않는다. 지역, 도농, 계층 간 갈등이나 부정부패와 자원 낭비처럼 중국의 발목을 붙잡을 수 있는 요소들도 세세하게 언급한다. 21세기 중국의 빛과 그림자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풍부한 자료와 해설이 돋보이는 20세기 중국사 입문서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한 중국 현대사 자료들과 그에 대한 충분한 해설이 곁들여져 있다는 것이다. 문헌 자료를 포함하여 일반 독자들이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사료를 본문의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중국 현대사 이해의 폭을 넓히고 있다. 또한 현대사 관련 문서, 그림, 사진, 통계 등과 그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분석을 책 뒤에 부록으로 따로 묶었다. 독자는 그 자료들만으로도 20세기 중국사의 흐름을 어느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근현대사 연표와 20세기부터 현재까지 중국의 주요 정치 지도자들의 약력도 유용한 참고 자료이다. 덧붙여 한국어판에는 원서에 없는 현대사 관련 사진을 100컷 이상 찾아 넣음으로써 독자의 이해를 도우려 했다. 따라서 이 책은 중국 현대사 자료의 해제 성격을 겸비한 군더더기 없는 충실한 20세기 중국사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았던 중국의 근대화 과정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의 목적은 대포의 굉음이나 귓전을 때리는 구호 속에서 발생한 혼돈, 전쟁과 수많은 혁명의 와중에 주도되었던 고통스럽고도 우여곡절 많은 근대화 과정”을 살피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오랫동안 세계 문명의 중심지였으나 서구 제국주의 열강 앞에 힘없이 무너져버린 중화 제국이 거대한 혼돈과 모순의 소용돌이 속에서 좌절과 고통을 딛고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 초강대국 반열에 올라선 오늘날까지를 다루고 있다. 일반 대중 독자들을 위해 쓰인 책이니만큼 중국 현대사를 주요 시기별로 구분하여 핵심적인 내용을 위주로 충실하게 서술해나간다. 특기할 것은 서술의 초점이 주로 정치, 경제, 사회 분야에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이 세 분야의 역사가 곧 중국 현대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점을 말해준다.
현대 중국의 황혼에서 새벽까지
본문은 총 10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기는 주로 정치 경제적으로 주요한 전환이 이루어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구분되어 있다. 저자는 먼저 중국사에 입문하기 전 알아두어야 할 전근대 중국의 특징을 소개하고, 이어 18세기 말부터 위기를 맞은 청 제국이 1911년 마침내 최후를 맞기까지의 상황을 서술한다. 다음으로 쑨원의 공화국 선포에도 불구하고 군사주의의 팽창으로 근대의 맹아가 질식하여 중국이 절망에 빠지는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보수주의로 기운 난징 정부가 중국의 근대화를 중단시키고 불화를 심화시키는 상황과, 일본이 침략하기 전 이미 좌절된 국민 혁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책의 중반부터는 1937~49년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까지 중국 전역에서 지속된 전투와, 1946~49년까지 국민당과 공산당이 벌인 전면전에 대해 서술한다. 뒤이어 일본군의 침략에 중국이 짓밟히며 장제스가 쌓아올린 국민당의 권위가 추락하고 마침내 공산당이 국민당에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한다. 다음으로 민국 시기와 단절하고 기본적인 개혁을 시작하며 사회주의 진영으로 들어간 중국이 소련 모델의 실험이 실패한 뒤 새로운 중국적 방식을 모색하는 시기에 대한 서술이 이어진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자신의 유토피아적 비전에 입각한 정책을 시도하는 마오쩌둥의 시대가 그려진다.
책의 후반부는 마오쩌둥이 사망한 뒤 덩샤오핑이 사회의 역동성에 기반을 두고 마오쩌둥 체제를 점진적으로 해체하기 시작하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이후 새롭게 거듭난 중국과 국가의 주요 정책 방향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저자는 21세기에 중국은 분명 강대국으로 발돋움했으며 중국인들은 굴욕의 상태에서 벗어나 민족적 자긍심을 회복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편으로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주장한다. 또한 정치는 보수적이고, 추악한 자본주의적 양상이 증가하고 있으며, 엄청난 경제 성장의 이면에는 거대한 모순과 폐쇄성이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서는 21세기 중국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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