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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은 살아 있다 (2024) - 호남·충청 순례

동방박사님 2024. 7. 30.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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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임진왜란·정유재란 의병의 뜨거운 숨결과 함성!
호남·충청 유적지 샅샅이 훑어 그들의 ‘충(忠)과 의(義)를 생생하게 입체화’하다
고화질의 카메라와 드론으로 찍은 생생한 현장
의병 후손을 직접 만나 진행한 인터뷰
수많은 사료와 현장에서 찾아낸 놀라운 역사

“어디를 가든 의병을 기리고 선양하며 계승하려 노력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어요. 의병은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자산이자, 우리 미래를 지켜주는 강력한 방어 시스템임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의병은 현재진행형이었고, 생생하게 살아 있는 정의로운 역사더군요.”

의병의 뜨거운 숨결과 함성, 그리고 오늘날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꿈틀대는 의병 정신을 직접 발로 뛰어다니며 조명한 『의병은 살아 있다_호남·충청 순례』가 출간되었다.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에서는 임진왜란 전황을 바꾼 의병과 수군의 역할에 대해, 2부에서는 송제민, 황진, 고경명, 조헌, 영규대사, 김천일 같은 쟁쟁한 임진왜란 의병을 조명한다. 3부 정유재란 편에서는 왜군이 호남을 철저하게 유린했던 상황과 김덕령과 홍가신, 이영남과 류형 등의 활약을 덧붙였다. 특히 이름이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의병장, 의병을 돕느라 군량과 무기를 댄 우국지사도 적극적으로 소개하며 이슬처럼 사라져 간 의병들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송제민, 황진, 최경회 등에 대한 글도 이채롭다. 4부는 강항의 『간양록』 등 전쟁 중에 쓰인 일기 세 편에 대한 글이다.

의병은 참혹했던 미증유의 국난을 맞아 절대 열세임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일어난 자발적인 봉기이다. 저자 임도혁은 이 한 권의 책에 그들의 ‘충(忠)’과 ‘의(義)’를 500년 전 과거에서 불러내 현재와 연결했고, 미래까지 연계해 독자가 입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그 덕분에 우리는 이 땅을 지켜낸 의병의 활약을 고스란히 마주할 수 있다. 호남·충청에 이어 영남 의병, 중부·이북 의병에 대해서도 집필할 계획이다.

목차

서문
추천사

1부 의병과 수군

1 의병과 임진왜란
2 의병과 이순신

2부 임진왜란

1 임진왜란의 비극
2 송제민과 거북선
3 황진과 파괴된 비석들
4 고경명과 복수의병장
5 조헌
6 영규대사
7 김천일과 2차 진주성전투
8 최경회
9 논개
10 기억해야 할 임진 의병들

3부 정유재란

1 정유재란의 참상
2 김덕령과 홍가신
3 이영남과 류형
4 기억해야 할 정유 의병들

4부 호남의 난중일기

1 안의·손홍록 『수직상체일기』
2 노인 『금계일기』
3 강항 『간양록』
 

저자 소개 

저 : 임도혁
30년간 몸담은 언론사를 퇴직한 뒤 평소 꿈꿔왔던 국내 여행에 나섰다. 말이 여행이지 문화유적지 답사였다. 박물관, 서원과 향교, 사찰, 성(城), 고택, 묘와 비석, 기념관 등 전국 곳곳의 유적지를 샅샅이 누비고 다녔을 만큼 역사에 관심이 많다. 좋은 역사책이란 ‘현장성과 입체성’이 살아 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신문기자 출신답게 직접 현장을 발로 뛰며, 관계자를 만나고, 고화질 카메라와 드론으로 영상을 ...

책 속으로

개전 초기 밀리기만 하던 육지의 전쟁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무력한 관군의 공백을 의병이 메우기 시작한 것이 계기였다. 4월 하순 곽재우를 시작으로 전국에서 100여 개에 이르는 의병부대가 들고 일어났다. 의병장들은 그들의 목숨은 물론 재산까지 아낌없이 내놓아 의병 규합에 필요한 병기나 군량을 직접 충당해 가며 싸웠다.
--- p.29

승병은 스님들로 이루어진 군대를 말한다. 살생을 금하는 불교에서 승병이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기허 영규대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 국토가 유린되자, 3일 동안 통곡한 뒤 분연히 떨쳐 일어났다. 임진왜란 최초의 의승병이다. 그는 조헌의 의병과 합세하여 청주성을 탈환하고, 2차 금산성전투에서 전사했다. 보통 임진왜란 의승장 하면 서산대사 휴정과 사명대사 유정을 떠올리지만 그 전에 공주의 의승장 영규가 있었다. 영규대사의 봉기는 전국에서 잇따라 의승병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었다.
--- p.131~132

조선인의 코를 잘라 일본으로 가져간 왜군의 악랄한 만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칠천량해전 한 달 뒤부터이다. 1597년 8월 도요토미가 정유재란 때 조선으로 출병한 장수에게 군령을 내렸다. 왜군은 명령에 따라 남녀노소, 승려, 노비 등을 가리지 않고 코를 베서 1,000개씩 광주리에 담아 소금이나 석회로 절여 본국으로 보냈다. 당시 왜군은 호남 지역을 대대적으로 공략하고 있었기에 호남이 큰 피해를 입었다. 코 절취 수는 약 10만에 이르는 것으로 역사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정유재란이 임진왜란보다 더 잔혹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살육이 대대적으로 자행되기도 했지만 코 베기가 한몫하기 때문이다.
--- p.204~205

안의와 손홍록은 가솔 30여 명과 수십 마리의 말을 데리고 전주로 달려 갔다. 이때 안의 나이는 64세, 손홍록 나이는 58세였다. 적지 않은 고령의 노인이었다. 이들은 실록을 숨길 만한 장소를 고민하던 중 정읍 내장산 은적암이 적격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상자에 담겨 있던 『조선왕조실록』과 『고려사』 등 서책을 수십 마리의 우마에 싣거나 사람이 직접 멨다. 어진은 장식물 등을 제거해 가볍게 한 뒤 눈에 띄지 않도록 보통 물건처럼 위장했다. 둘은 잔뜩 긴장한 채 비장한 심정으로 전주에서 출발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전주사고에서 내장산까지 쉬지 않고 약 125리를 하루 만에 이동했다.
--- p.260

강항은 1598년부터 교토의 후시미성에서 2년여 억류 생활을 하는 동안 지식인들과 교제하면서 다쓰노 성주였던 아카마츠 히로미치, 후지와라 세이카 등에게 유학을 가르쳤다. 특히 세이카는 일본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인물. 세이카는 1590년 조선통신사 종사관으로 온 허성을 만나면서 주자학에 관심을 가졌고 강항과의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대한 깊이를 더해간다. 세이카와 그의 제자들은 일본에 성리학을 전파시켜 점차 뿌리내리게 한다.
--- p.299~300

출판사 리뷰

“의병은 단절된 과거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
직접 방문 후 현장감 전달, 사료에 근거한 서술, 의병 후손과의 인터뷰
시·공간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의병 정신을 되살린다

임진왜란 초기, 충주에서 신립의 조선군을 격파한 왜군은 거침없이 진격하여 평양성까지 도달한다. 임금은 의주까지 도망가고, 조선은 백척간두에 몰렸을 때 전국 각지에서 2만여 명의 의병이 충의(忠義)의 깃발을 높이 들고 일어난다. 바다에서는 이순신 장군, 육지에서는 의병이 왜군을 격퇴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당시 의병과 수군 간, 의병과 관군 간의 활약을 그물의 씨줄과 날줄처럼 유기적으로 구성하여 공간적 접점을 찾는다. 한편으로는 의병과 그들의 후손 간의 시간적 접점을 찾아내 연결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추모식에 참석해 행사를 스케치하고, 후손이나 관련 인사를 만나는 등 책을 ‘2D’가 아닌 ‘3D’로 입체화하는 데 힘썼다. 그러다 보니 후손들이 진행하는 전적지 성역화나 선양 사업 등의 향후 계획도 알게 되어 책에서 소개한다. 이는 모두 저자가 직접 발로 뛰며 곳곳을 누빈 땀의 결과이다. 게다가 DSLR 카메라 2대와 드론까지 동원해 ‘현장’을 생생하게 사진으로 담았다.

예시로 이 책의 4부 1장 ‘안의·손홍록 『수직상체일기』’ 편을 보자. 두 선비 안의와 손홍록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에게서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냈다. 저자는 두 사람의 무덤을 시작으로 사당, 전주 경기전과 실록각, 실록 이안처인 내장산까지 관련 유적지를 샅샅이 훑는다. 나아가 오늘날 ‘문화재지킴이의 날’이 어떻게 제정됐고, ‘안의·손홍록 선생 선양 모임’이 왜 만들어졌는지 언급한다. 또 서울대 규장각에 있던 『조선왕조실록』 태백산본을 1985년 왜 부산역사기록관으로 이관시켰는지도 설명한다. 두 선비 덕에 임진왜란 이전 실록이 몽땅 사라지는 위기에서 벗어나 오늘날 온전한 형태의 500년 실록을 접할 수 있게 되었으며, UNESCO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기에 이른 의의를 적었다. 게다가 실록 이안 과정에 대한 논란을 정리하기 위해 관련 학자를 만나 인터뷰도 실었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는 끈을 찾아내 ‘입체적인 책’을 쓰려는 의도”라고 설명한다.

왜군의 잔혹과 일제의 만행을 일깨우면서
통쾌한 감동과 흥미롭고 긴장감 넘치는 읽을거리가 가득!

책은 왜군의 참혹한 만행에 맞서 싸운 영웅들의 흥미진진하면서 긴장감 넘치는 일화를 소개한다. 이치대첩의 영웅 황진 편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파괴된 여러 항일 관련 비석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권율장군비, 조헌순의비, 고경명순절비, 사명대사비 등 일제가 고의로 부수고 훼손한 비석들을 보노라면 절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저자는 우리가 잘 모르는 사연도 소개한다. ‘칠백의총’에는 당시 영규대사가 이끈 승병 800명의 순국은 제외돼 있으며, 이들에 대한 현양사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불교계 입장을 실었다. 그래서 ‘천오백의총’으로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 이르러서는 사실관계를 규명해 바로잡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임진왜란 최대의 비극인 제2차 진주성전투와 남원성전투, ‘국민 연인’ 논개 담론의 확대재생산 과정, 정반대의 운명으로 갈라진 두 사내 김덕령과 홍가신,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가 비밀리에 탈출해 명나라를 거쳐 2년여 만에 귀국한 선비 등 책 곳곳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전쟁 한복판에 뛰어든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다.

“AI(인공지능)가 그럴싸하게 가공한 것부터 온갖 정보가 흘러 다니는 시대지만, 이 책에는 앉아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정보와 통찰이 담겨 있다고 믿어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전국 곳곳의 흔적을 직접 찾아다니며 보고 듣고 느끼고, 사료를 뒤져 얻어낸 결과물이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저자 임도혁은 “의병의 숭고한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어떤 깨달음이 함께할 것이라고 믿는다”라며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의 행적을 더 찾아내고 기리고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