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전쟁연구 (책소개)/1.세계전쟁사

100년전쟁 1337~1453

동방박사님 2021. 12. 11.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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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백년전쟁 이야기
21세기에 돌아보는 왕좌의 게임

“이보다 쉽고, 재밌고, 정확하게 백년전쟁을 풀어쓸 순 없다.”

왕위 계승권을 놓고 시작되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근대 국가의 맹아를 잉태시킨 백년전쟁.
숭고한 기사도 정신과 피비린내 가득한 전장이 혼재한 백년의 대서사시가 21세기에 되살아난다.


프랑스 왕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며 백년전쟁의 서막을 연 에드워드 3세,
몸은 허약했지만 뛰어난 지성과 통찰력으로 전쟁을 슬기롭게 헤쳐나간 샤를 5세,
프랑스 정복을 눈앞에 두었지만 죽음 앞에 결국 무릎 꿇은 헨리 5세,
명실 공히 백년전쟁 최고의 스타 잔 다르크.
유럽 중세사에서 가장 다채로운 빛을 발했던 인물들이 21세기에 되살아나, 중세 유럽의 패권을 두고 벌어진 파란만장한 무용담을 생생하게 들려준다.

 목차

1장 전쟁의 서막 1328~1340년
2장 크레시 전투 1340~1350년
3장 푸아티에 전투와 흑태자 1350~1360년
4장 현명왕 샤를 1360~1380년
5장 잃어버린 평화 1380~1399년
6장 잉글랜드의 기회 1399~1413년
7장 헨리 5세와 아쟁쿠르 전투 1413~1422년
8장 프랑스 섭정 베드퍼드 공작 1422~1429년
9장 오를레앙의 마녀 1429~1435년
10장 비보 1435~1450년
11장 암울한 싸움 1450~1453년

에필로그
감사의 말
통화 단위에 대한 간략한 설명
백년전쟁 연표
선별 참고 문헌
찾아보기
 

저자 소개 (2명)

저 : 데즈먼드 수어드 (Desmond Seward)
 
데즈먼드 수어드는 오랫동안 보르도에 자리 잡고 살아온 아일랜드 가문 출신으로, 파리에서 태어나 앰플포스와 케임브리지에서 수학했다. 아키텐의 엘레오노르와 앙리 4세, 헨리 5세, 사보나롤라 등을 다룬 여러 권의 전기를 저술했다. 그 외에도 『프랑스의 부르봉 국왕들』, 『마지막 흰 장미: 튜더 왕조의 비밀 전쟁』, 『나폴레옹과 히틀러』, 『장미전쟁』, 『리처드 3세: 잉글랜드의 검은 전설』, 『춤추는 태양: 기적의 ...
 
역 : 최파일
 
서울대학교에서 언론정보학과 서양사학을 전공했다. 역사책 읽기 모임 ‘헤로도토스 클럽’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해외의 좋은 책들을 기획, 번역하고 있다. 축구와 셜록 홈스의 열렬한 팬이며, 제1차 세계대전 문학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옮긴 책으로 『백년전쟁 1337~1453』 『마오의 대기근』 『내추럴 히스토리』 『제1차세계대전』 『인류의 대항해』 『시계와 문명』 『왜 서양이 지배하는가』 ...
 

책 속으로

서유럽 국가가 다른 서유럽 국가를 1세기가 넘게 조직적으로 약탈했다. 어느 저명한 역사가는 잉글랜드인들이 백년전쟁을 “에드워드 3세와 헨리 5세의 용병 군대들에 합류한 모든 이들이 함께 누린, 위험하지만 잘될 경우에는 대단히 수익성 좋은 사업”으로 여겼다고 썼다. 그는 1450년경 “전쟁에서 가장 이득을 본 이들 가운데에는 대지주 가문들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한미한 출생에 물려받은 재산이 없는 궁색한 모험가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한재산을 모았다”고 덧붙인다. 아닌 게 아니라, 각계각층의 잉글랜드인들이 수세대에 걸쳐 거금을 좇아 프랑스로 갔다. 그들의 후손들이 훗날 인도나 아프리카로 가는 것처럼 말이다. --- p.12

루티에들은 브레티니조약 이후에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잉글랜드인, 가스코뉴인, 독일인은 자신들이 먹고살 게 필요하다고 말하며” 요새에서 철수하기를 거부하고 보호비를 뜯어냈으며, 그 지역의 단물을 다 빨아먹고 난 뒤에는 새로운 성으로 옮겨가 그곳을 접수했다. 그들은 잉글랜드인들의 발명품, 즉 슈보시와 파티스를 실천하고 있었을 뿐이다. 자유부대들은 더 큰 단위?그랜드컴퍼니Grand Companies?를 이루면서 더 위험해졌는데, 그랜드컴퍼니에서는 민족별로 루트routes(부대)가 나뉘었다. 1361년 한 그랜드컴퍼니는 론강 유역을 달려 아비뇽으로 가서 사실상 교황을 인질로 잡고 몸값을 요구했고, 유독 악질적이었던 또 다른 집단으로 ‘늦게 온 자들’이란 뜻의 타르드브뉘Tard-Venus는 리옹을 공포로 몰아넣었다. --- p.143~144

1396년 리처드는 17만 파운드의 지참금을 받고 샤를 6세의 아홉 살짜리 딸 이사벨과의 혼사를 밀어붙였었다. 앞선 시대의 금란장Field of the Cloth of Gold이라 할 칼레 인근에서 거행된 결혼식에서그는 샤를과의 만남에 깊이 감동을 받은 모양인지 아비뇽에 복종하고 로마의 우르바누스 교황 퇴위에 노력하도록 잉글랜드 교회를 설득하겠노라고 약속하는 끔찍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이 약속이 리처드의 백성들에게 야기한 충격과 공포를 역사가들은 분명 과소평가했을 것이다. 일부 잉글랜드 성직자들은 “우리 국왕은 프랑스인이 되었다. 그는 우리를 오욕에 빠뜨리고 파멸시키려고 작정했지만 절대 그렇게는 안 될 것이다!”라고 중얼거렸다. 평범한 런던 시민들은 리처드가 “프랑스인의 심장을 가졌다”고 불만
을 표했다. --- p.189~190

아르마냐크파의 공포정치를 기억하는 모든 파리 시민들은 도팽의 귀환에 분명히 뒤따를 학살을 두려워했고, 앵글로-부르고뉴 프랑스의 모든 도시에는 이런 두려움이 퍼져 있었다. 심지어 랭커스터가에게 점령되기 전에도 파리 부르주아는 도팽과 “아르마냐크파를 자처하는 자들”의 포로가 되느니 잉글랜드인의 포로가 되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나중에 파리 부르주아는 아르마냐크파의 전역을 묘사하면서 그들이 “어떤 사람이나 악마가 저지를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쁜 범죄들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노트르담 성당의 관리 위원으로 추정되는 이 합리적이고 점잖은 관찰자는 “사라센보다 더 나쁜”이나 “고삐 풀린 악마들” 같은 표현을 사용한다.
--- p.273
 

출판사 리뷰

‘백년전쟁’은 19세기 후반이 돼서야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말로 100년 넘게 이어진 일련의 전쟁들을 하나로 묶은 것이다. 1337년 프랑스의 필리프 6세가 당시 프랑스 왕위를 주장하던 에드워드 3세에게서 잉글랜드가 보유하고 있던 기옌 공국을 ‘몰수’하면서 시작된 이 일련의 전쟁들은 1453년 잉글랜드가 결국 기옌의 보르도를 상실하면서 끝났다. 일련의 전쟁이란 슬라위스 해전(1340년), 크레시 전투(1346년), 푸아티에 전투(1356년), 아쟁쿠르 전투(1415년), 잔다르크의 등장(1429년), 카스티용 전투(1453년)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