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선시대사 이해 (책소개)/3.조선의전쟁

임진왜란 365 일 숨은 영웅들

동방박사님 2022. 1. 2.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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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직 나라 있는 줄 알았지 내 몸 있는 줄 몰랐다”
임진란몸을죽여나라를 구하려 했던 재지사족과 민초들의 우국충정!
격변의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소설


역사라는 거대한 수레를 움직이는 중심에는 언제나 인물人物이 있었다. 인물들의 정신이나 행적은 갖가지 기록에 의해 후세에 전해진다. 그러나 일부 위정자들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모래에 쓴 글씨처럼 지워지거나 묻혀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임진년 전란을 통해 보여준 경상우도 의병들의 창의정신과 선비정신은 더더욱 그랬다. 어느 해 봄 경상우도 의병도대장義兵都大將 김면과 의병들의 전투지인 거창 우척현과 고령군 낙동강 변의 개산포(개경포)와 무계 나루터 등을 찾았다.

거창 우척현과 무계 나루터엔 그 어떤 승전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개산포 강 옆 깎아지른 절벽 위엔 이곳이 전적지임을 알리는 작은 표지석이 퇴색된 채 쓸쓸히 서 있었다.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의병들은 무엇을 꿈꾸었을까? 또 그들이 세상을 향해 외친 소리는 무엇이었을까? 역사 속에 묻힌 영웅들을 만나 그날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들의 모습은 현실의 거울이고 스승이기 때문이다.

의병도대장과 병마절도사로서 5천여 명의 의병과 1만 5천여 명의 관군을 지휘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무겁게 여겨 피난지를 떠돌던 가족이 격전지 10여 리 밖에서 문전걸식해도 한 번도 찾지 않은 김면의 선공후사先公後私 정신과 타고난 신분에 따른 특혜를 내던지고 백성과 함께 죽음의 길에 들어선 의병장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다. 임란 400년이 지난 지금 의병들의 정신은 우리에게 무엇이고, 또 우리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목차

글머리에

낙동강 인근 7인의 선비 ‘낙강칠현’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 하겠는가
재지 사족과 민초들 창의의 깃발
조선 관군의 연전연패와 선조의 파천
말로만 듣던 왜군과 조총을 마주하다
의병 거점을 고령에서 거창으로 옮기다
지혜와 용력을 지닌 자 모두 일어나라
‘합천의 호랑이’ 정인홍과 의기를 투합하다
팔만대장경을 사수하라
왜선을 수장시킨 첫 승전 개산포
피로 물든 천년 법보종찰 해인사
대장부 죽음을 본 무계의 강물은 말없이 흘러만 갔다

경상감사 김수와 곽재우의 갈등을 수습하다
산척의 충정이 빛난 우척현 전투
지례 관아에 치솟은 화염과 비명
명장의 길을 열어준 사랑암 전투
밀고 밀린 성주성 격전
힘겨운 삶이 꽃이 된 전장
진주성의 ‘별’이 떨어지다
꽃은 져도 그 아름다움과 향기는 남는다
의병도대장직에 오르다
마침내 손잡은 영·호남 의병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되다
오직 나라 있는 줄만 알았지 내 몸 있는 줄 몰랐다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김중열 (金重烈)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에서 국문학과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다. 현재 서울신문사로 기자로 재직 중이며, 사단법인 임진란정신문화선양회 이사를 맡고 있다.
 
 

책 속으로

왜적이 쳐들어왔다는 소문에 마을은 삵을 만난 닭처럼 어수선했고 소문은 바람을 탄 연기처럼 인근 마을로 번져갔다.
한 시진(2시간)이 지났을까. 김면의 가노 등 700여 명과 친족인 김연金演, 김양金瀁, 김함金涵, 김급金汲, 김성金誠 등 15명이 한걸음에 달려왔고 원근에서 흑립을 쓴 유생과 초립을 쓴 장정, 무명 수건을 이마에 동여맨 노인들이 앞을 다투듯 모여들었다.
“이보게, 갑자기 난리라도 일어난 건가?”
웅성거림은 마당을 지나 담장을 넘었다.
“대감마님 나오시네. 모두 조용히 하시게.”
모두의 눈길이 김면에게 쏠렸다.
김면이 먼저 입을 뗐다.
“지금 왜적이 부산에 상륙하여 경상좌도를 휩쓸며 올라오고 있어 이곳 경상우도도 조만간 왜적이 들이닥치면 온전할 수 없을 것이다. 해서 우리 모두 힘을 모아 왜적에 맞서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왜적을 피한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君有急而臣不死 나라가 위급한데 목숨을 바치지 않는다면
烏在其讀聖人書也 어찌 성현의 글을 읽었다고 하겠는가
- 松庵先生實錄(송암선생실록)

그 비장한 울림이 얼마나 큰지 사람들의 웅성거림을 덮었다.
--- p.38

정인홍이 일그러진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곽재우를 처형한다는 말입니까? 관찰사의 빗나간 행동거지가 만백성의 분노를 부른 건 자명한 일인데, 관찰사가 그걸 모르고 곽재우에게 책임을 돌리려고 하니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하루빨리 갈등을 풀지 않고 계속 싸우면 의병과 관군의 사기 저하는 물론 적을 이롭게 하는 이적행위와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김성일이 역적이라는 말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세에 역적이라? 내암의 말씀이 틀리지는 않습니다만, 송암은 이 문제를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곽재우가 분개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나 관찰사의 목을 베라고 의병들에게 통문을 돌리는 것은 패역悖逆스러운 행위로 비판받을 여지가 있습니다. 제가 미약하지만, 망우당을 한번 설득해보겠습니다. 무릇 사람이 망상을 가지면 상대방의 충심을 의심하고 어진 아내를 홀대하며 내쫓는 일이 많지요. 이는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허무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해서 스스로 깨치지 못하면 주변에서 바른 처세를 일러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고맙네, 송암이 나서준다면야….”
그날 밤 김면은 장문의 편지를 썼다.

“행재소가 막히고 멀어서 주청이 통하지 않으니 우리와 같이 초야에서 의병을 일으킨 자는 의지할 곳이 없으므로 왕명을 받고 온 사람에게 영을 받아야 명분이 바르고 말이 순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고 근왕도 할 수 있으며 체통이 서고 조리가 있을 것이네. 만약 일을 그르쳤다고 하여 목을 베어 높게 매단다면 의기는 당당해질 수는 있지만, 순리에 따라 공을 세우는 방법에는 벗어날까 저어되네. 망우당이 충성을 분발하여 한번 외치자 무수한 군중이 그림자처럼 따라나서며 물에서 공격하고 뭍에서 전진하니 흉악한 왜군이 도망쳐 낙동강우안일대洛東江右岸一帶가 편안하게 된 것은 참으로 망우당의 공이 아니겠나. 고루하고 촌스러운 말이라 하여 버리지 말고 일에 임해서는 반드시 그 순리를 생각하여 정도에서 지나친 것은 억누르고 부족한 것은 더 노력하게나.… ”
--- p.176-177

경상우도 일대 순시를 마치고 거창으로 돌아온 김면은 12월 6일 정인홍과 전라좌의병장 임계영, 전라우의병장 최경회와 성주성 3차 공격을 위해 한자리에 모였다.
김면이 먼저 말했다.
“어서 오시오, 최 장군. 엄동설한에도 원군 요청에 응해주셔서 정말 고맙소이다.”
최경회가 4척이나 되는 장검을 내려놓으며 응답했다.
“두 분의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경상도 출정은 지난번 진주성 전투 후 초유사와의 논의에 따른 것입니다. 김 장군, 먼저 도대장에 오르심을 경하드립니다. 제가 장군보다 연장이기는 하나 말씀을 편하게 해주십시오.”
“고맙습니다. 부족한 제가 소임을 다해낼지 그저 저어스러울 뿐입니다. 최 장군과 임 장군께서 많이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지난번 진주성 전투에서 큰일을 해냈다고 들었습니다.”
“가당치 않습니다. 저야 성 밖에서 소리를 지른 것밖에 없습니다. 성안 민관군의 처절한 사투가 없었다면 어찌 승리가 있었겠습니까?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고 했습니다. 호남도 우리 땅이고 영남도 우리 땅인데, 어찌 원근을 말하며 영남이 죽어가는 걸 가만히 앉아 보고만 있겠습니까.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와 임금을 위한 일, 우리 호남 의병도 당연히 힘을 합쳐야지요. … ”
--- p.288-289

3월 열하루.
햇살은 온 누리에 내려앉아 따사로움이 더했다.
김면이 축 처진 목소리로 말했다.
“이보게 의자, 김회를 불러오시게.”
“예, 장군.”
잠시 뒤 김회가 군막으로 들어왔다.
“형님, 찾으셨습니까?”
“회야, 너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나 나는 천명이 다해 여기가 끝인 것 같구나. 너는 더 힘쓰라. 왜군을 토멸하여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내가 없더라도 목숨을 다해 저 도적들을 모조리 몰아내야 하느니라. 그리고 너도 이 전란에서 보고 느낀 것이 많으리라 생각한다. 해서 너에게 한 가지 부탁이 있다.”
“형님, 부탁이라뇨?”
“그렇다. 국가의 잘못으로 힘없는 백성이 참상을 겪고 있으니 이는 우리 사족들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전란이 끝나면 묵은 제도를 개혁하여 새롭게 할 경장更張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하여 내 떠나기 전에 가노들에게 토지와 집을 내주어 희망을 갖고 살길을 잡도록 해주고 싶구나. 당장 노비 문서를 없애 양민으로 속환하는 것이 어렵겠지만, 네가 나 대신 이 일을 처리해주면 좋겠구나. 너 또한 큰 용기를 가져야 할 텐데 들어주겠느냐?”
“저 역시 이제사 깨닫습니다. 이 세상에 자신이 원하는 신분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선대와 부모가 노비라 하여 그 후대와 자식마저 노비가 된다는 것은 저주詛呪라는 것을 말입니다. 언젠가는 형님 생각대로 하겠지만, 지금 급한 건 형님이 일어나셔야 합니다”.
“아니다. 회야, 난 이제…. 아버님이 있는 그곳으로, 병도 고통도 없는 그곳으로 가야….”
“형니임! 흑흑!”
김면이 김회의 손을 잡았다.
“아서라, 만사萬事가 끝났다. 내 언젠가는 가야 할 길 조금 일찍 떠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장졸들의 군공軍功을 기록한 것인데, 네가 잘 간수해라. 그 공이 잊혀서는 안 될 일이기에…. 공을 세우고도 이름이 알려지면 시기猜忌가 분명히 있을 것이니 물러나 조심하고 또 근신해야 한다. 그것이 하늘의 이치고 너를 지키는 일이니.”
“예, 형님. 명심하겠습니다.”
“내 뜻을 알아주니 고맙구나. 지금 참모들에게 내가 찾는다고 하거라”.
일각쯤 후 참모들이 한걸음에 달려왔다.
김면이 김회의 손을 잡고 상반신을 겨우 일으켰다.
조군 조종도가 손수 들고 온 약사발을 내려놓으며 침통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가 공을 받들어 힘을 다해 흉적을 동서로, 남북으로 칠 때마다 승전했는데, 오늘 공이 뜻하지 않게 몸을 뉘니 우리는 장차 어디로 돌아가며 국란國亂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 약을 드시고 부디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이 말을 들은 김면이 전신에 힘을 주며 일어났다.
“내 삼가 성은을 받아 일어서 오직 나라 있는 줄만 알았지, 내 몸 있는 줄을 몰랐네.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려 하는데 하늘이 무심하도다. 나와 그대들은 몸과 마음을 나라에 바치기로 맹서하여 왜적을 진멸殄滅하고 영남을 보전해서 조금이라도 임금의 은혜에 보답하려고 했는데, 지금 내 명命이 불행하게도 이제 마치려 하니…. 천운天運이구려.”
김면이 가팔라진 호흡을 진정시키려는 듯 숨을 연거푸 들이마시고 내쉬며 말을 겨우 이었다.
“다만 선산의 적을 평정하지 못하면 황천에서도 눈을 감지 못할까 싶소. 내가 죽거든 죽음을 알리지 말고 어두워지면 조용히 신창新倉(거창 웅양면)으로 옮겨서 발상發喪해주길 부탁하오.”
김면이 죽음을 비밀에 부치고 운구하라고 한 것은 병사들의 사기가 떨어지고 적의 기습을 우려한 것이다.
--- p.333-335
 

추천평

김중열의 『임진왜란 365일, 숨은 영웅들』은 400여 년 전 임진왜란 막바지의 전쟁터 한가운데로 우리를 데려간다. 그는 현직기자의 올곧은 눈으로 역사의 갈피에 묻힌 조각 사료들을 발굴해 우리가 모르는 임진왜란의 이면을 생생하게 복원해낸다. 역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영웅들과 민초들의 삶과 죽음이 오늘의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 이정명 (소설가)

모든 현재는 지나온 역사의 산물이지만 우리는 이 간명한 진리를 자주 잊는다. 그 역사적 사건이 수백 년 전의 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렇다고 해서 이 진리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망각의 먼지가 켜켜이 쌓인 역사적 장면을 한 장씩 넘기면서 임진왜란 속에 숨은 영웅들을 되살리는 것은 결코 과거를 위한 것이 아니다. 여기에 소환한 과거를 통해 현재를 성찰하기 위한 것이다. 이 길만이 우리를 올바른 미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히 과거를 재생한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와 미래를 비추는 역사다.
-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