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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기후는 어떻게 인류를 만들었고,
우리는 어떤 기후를 살아갈 것인가?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엮은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
20여 년간 한반도 고기후를 연구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가 인류의 진화에서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까지 기후가 어떻게 인류와 문명을 만들어왔는지 지구 역사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여타의 책과 달리 외국의 사례를 차용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하나로 엮은 새로운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와 이동, 인류의 한반도 유입, 농경 문화의 전파, 송국리 문화의 일본 전파, 홍경래의 난 등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기후가 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왔다고 주장한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후가 엮어온 과거를 보여주는 이 책은 지구 온난화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모두가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어떤 기후를 살아갈 것인가?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엮은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
20여 년간 한반도 고기후를 연구한 서울대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가 인류의 진화에서 조선 왕조의 흥망성쇠까지 기후가 어떻게 인류와 문명을 만들어왔는지 지구 역사의 맥락에서 입체적으로 조망한다. 여타의 책과 달리 외국의 사례를 차용하지 않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하나로 엮은 새로운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와 이동, 인류의 한반도 유입, 농경 문화의 전파, 송국리 문화의 일본 전파, 홍경래의 난 등 구체적인 사례들을 통해 저자는 기후가 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해왔다고 주장한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는 점에서 기후가 엮어온 과거를 보여주는 이 책은 지구 온난화의 위협이 현실로 다가온 지금, 모두가 한 번쯤은 관심을 가져야 할 필독서라 할 수 있다.
목차
프롤로그
1부 빙하기와 인간
1장 기후 변화, 인류의 진화를 추동하다 - 기후 변화와 인류의 이동
2장 빙하기란 무엇인가 - 제4기의 기후 변화
3장 지구에 엄청난 추위가 밀려들다 - 최종빙기 최성기
2부 변화와 교란
4장 빠르게 따뜻해지는 지구 - 만빙기의 변화
5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해안선 - 홀로세 해수면 변동과 한반도 신석기인의 흔적
6장 거대 동물이 갑자기 사라지다 - 대형 포유류 멸종 미스터리
7장 자연을 길들이다 - 농경의 시작
3부 기후 변동과 인간의 대응
8장 대홍수와 함께 다시 찾아온 강추위 - 8.2ka 이벤트
9장 생태계가 풍요로워지다 - 홀로세 기후최적기
10장 흑점 수 변동이 가져온 파장 - 태양 활동의 변화와 홀로세 기후
11장 가뭄과 고대인의 수난 - 홀로세 후기의 대가뭄과 고대 사회의 대응
12장 작은 기후 변화가 인간 사회를 뒤흔들다 - 중세 온난기와 소빙기
4부 기후 변화와 미래
13장 지구 온난화는 허구인가? - 온실 기체와 기온 상승
14장 지구를 위협하는 변화의 증후들 - 무엇이 기후 변화를 추동하는가?
에필로그
감사의 글
참고문헌
이미지 출처
찾아보기
책 속으로
기후 변화는 오랫동안 인류의 발전을 저해해온 걸림돌이었다. 인류는 과거 이 방해물이 나타날 때마다 우회해야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우리는 산업혁명 이후 축적된 과학 기술 덕분에 기후 변화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이룩한 발전의 긍정적 성과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채 무분별한 욕심에 휘둘리면서 기후 변화의 보폭을 키우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지구 온난화라는 걸림돌을 차근차근 치워나가야 한다. 이를 소홀히 해 지구의 자정 능력까지 무력화되면 우회로까지 막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수 있다. --- p.5-6
만주의 수렵·채집민 중 일부가 대략 3만 년 전에서 2만 5000년 전 사이에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남하는 아마도 당시 차가워진 기후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만 9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산소동위원소층서2(MIS2) 시기의 시작이다. 그 후 2만 4000년 전에서 1만 9000년 전 사이 지구의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 … 러시아 악마문 동굴에서 발굴된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정보는 과거 한반도에서 살아가던 수렵·채집민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악마문 동굴은 북중국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온 수렵·채집민이 살았던 신석기 주거지로,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해안에 위치한다. MIS2 시기 들어 기후가 한랭·건조해지자 북중국의 수렵·채집민들은 따뜻한 해안을 향해 대거 남동진했다. 그중 일부가 연해주 지역과 한반도로 들어와 구석기 수렵·채집 사회를 구성하였고 훗날 한민족의 바탕이 되었다. --- p. 29-30
플라이스토세에 존재한 수많은 빙기 중 가장 추웠던 것이 마지막에 나타난 최종빙기였다. 최종빙기 내에서도 가장 추웠던 2만 4000~1만 8000년 전까지의 한랭기를 최종빙기 최성기라 부른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제주도 하논의 꽃가루 분석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때 기후는 매우 혹독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주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해안가의 동굴에 흩어져서 살았다. 수렵·채집이나 어로 행위가 용이하다는 점도 해안 지역의 장점이었다. 특히 강과 바다가 만나 생활 용수가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은 염하구 지역은 빙기의 인류가 가장 선호한 곳이었다. --- p.76-77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아열대종인 야생 벼가 발견된 적이 없는데,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야생 벼가 과거,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빙기에 서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소로리 볍씨가 의구심을 낳는 둘째 이유다. 야생 벼가 자연 서식하기에는 당시 한반도 환경이 너무나 척박했다. 야생 벼의 서식이 아예 불가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1만 5000년 전의 한반도 기후 환경을 고려할 때 확률적으로 그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이 시기에 아열대성 식물인 야생 벼가 한반도에서 자연 서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고생태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 p.108-109쪽
한반도에서도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절정이었던 5500~5000년 전에 조와 기장 농경이 이루어졌고, 기후가 양호했던 3500~2800년 전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두 시기에는 온화한 기후 덕에 주변에 자원이 풍부해 수렵·채집민의 정주가 가능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면서 농경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여건이 조성되었다. 먹을거리도 풍부했으므로 실패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기후의 영향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면 대부분은 수렵·채집 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했을 것이다. _ 7장 자연을 길들이다. 166-167쪽
한반도의 시기별 주거지 수를 복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략 5600년 전에 주거지 수가 빠르게 증가한 후 한동안 그 수가 유지되다가 4800년 전 즈음에 급감한다.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풍부한 자원은 정주 인구의 증가로 이어졌고, 5500년 전부터 시작된 조, 기장 위주 소규모 원시 농경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4800년 전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최적기가 끝남과 동시에 주거지 수가 급감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렵·채집민(혹은 원시 농경민)의 생업 활동이 최적기 말의 기후 악화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 p. 192
송국리 문화는 대략 3000년 전부터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2700~2400년 전에 이르면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의 기존 문화들이 대부분 송국리 문화로 대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남쪽으로의 문화 확산이 2800년 전의 기후 악화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농경민들이 기후적으로 벼농경에 유리한 지역을 찾아 이주하면서 송국리 문화 유형은 점차 남쪽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일본의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벼농사는 온난 습윤한 규슈 지역에서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p.222
최근 들어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오래전에 발생한 일들이니 기후 변화가 과거 문명에 미친 영향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가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과 성패를 좌우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안정적이던 사회에 첫 파장을 일으킨 조그만 자갈이었을 수도 있고 사회가 변화를 겪는 와중에 박차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사회 변화를 끝낸 종지부였는지도 모른다.
만주의 수렵·채집민 중 일부가 대략 3만 년 전에서 2만 5000년 전 사이에 한반도로 들어온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남하는 아마도 당시 차가워진 기후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2만 9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지기 시작했다. 바로 산소동위원소층서2(MIS2) 시기의 시작이다. 그 후 2만 4000년 전에서 1만 9000년 전 사이 지구의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 … 러시아 악마문 동굴에서 발굴된 인골의 미토콘드리아 DNA 정보는 과거 한반도에서 살아가던 수렵·채집민의 기원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악마문 동굴은 북중국에서 동쪽으로 이동해온 수렵·채집민이 살았던 신석기 주거지로, 블라디보스토크 북쪽 해안에 위치한다. MIS2 시기 들어 기후가 한랭·건조해지자 북중국의 수렵·채집민들은 따뜻한 해안을 향해 대거 남동진했다. 그중 일부가 연해주 지역과 한반도로 들어와 구석기 수렵·채집 사회를 구성하였고 훗날 한민족의 바탕이 되었다. --- p. 29-30
플라이스토세에 존재한 수많은 빙기 중 가장 추웠던 것이 마지막에 나타난 최종빙기였다. 최종빙기 내에서도 가장 추웠던 2만 4000~1만 8000년 전까지의 한랭기를 최종빙기 최성기라 부른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 제주도 하논의 꽃가루 분석 결과에서도 뚜렷하게 확인된다. 이때 기후는 매우 혹독했기 때문에 호모 사피엔스는 주로 겨울에도 비교적 따뜻한 해안가의 동굴에 흩어져서 살았다. 수렵·채집이나 어로 행위가 용이하다는 점도 해안 지역의 장점이었다. 특히 강과 바다가 만나 생활 용수가 풍부하고 생산성이 높은 염하구 지역은 빙기의 인류가 가장 선호한 곳이었다. --- p.76-77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아열대종인 야생 벼가 발견된 적이 없는데,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한반도에 현재 존재하지 않는 야생 벼가 과거, 그것도 지금보다 훨씬 추웠던 빙기에 서식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이것이 소로리 볍씨가 의구심을 낳는 둘째 이유다. 야생 벼가 자연 서식하기에는 당시 한반도 환경이 너무나 척박했다. 야생 벼의 서식이 아예 불가능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1만 5000년 전의 한반도 기후 환경을 고려할 때 확률적으로 그 가능성이 상당히 낮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 이 시기에 아열대성 식물인 야생 벼가 한반도에서 자연 서식하고 있었다는 주장은 고생태학적 측면에서 봤을 때 받아들이기 어렵다. --- p.108-109쪽
한반도에서도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절정이었던 5500~5000년 전에 조와 기장 농경이 이루어졌고, 기후가 양호했던 3500~2800년 전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두 시기에는 온화한 기후 덕에 주변에 자원이 풍부해 수렵·채집민의 정주가 가능했다. 한곳에 오래 머무를 수 있게 되면서 농경이라는 새로운 실험을 시도할 여건이 조성되었다. 먹을거리도 풍부했으므로 실패에 대한 부담도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기후의 영향으로 먹을거리가 부족한 상황이었다면 대부분은 수렵·채집 활동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립했을 것이다. _ 7장 자연을 길들이다. 166-167쪽
한반도의 시기별 주거지 수를 복원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대략 5600년 전에 주거지 수가 빠르게 증가한 후 한동안 그 수가 유지되다가 4800년 전 즈음에 급감한다.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풍부한 자원은 정주 인구의 증가로 이어졌고, 5500년 전부터 시작된 조, 기장 위주 소규모 원시 농경의 기반이 되었다. 그러나 4800년 전 한반도의 홀로세 기후최적기가 끝남과 동시에 주거지 수가 급감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수렵·채집민(혹은 원시 농경민)의 생업 활동이 최적기 말의 기후 악화에 타격을 받은 것이다. --- p. 192
송국리 문화는 대략 3000년 전부터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다. 이후 2700~2400년 전에 이르면 전라도와 경상도 서부의 기존 문화들이 대부분 송국리 문화로 대체되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러한 남쪽으로의 문화 확산이 2800년 전의 기후 악화와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 농경민들이 기후적으로 벼농경에 유리한 지역을 찾아 이주하면서 송국리 문화 유형은 점차 남쪽으로 전달되었을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아예 바다를 건너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일본의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벼농사는 온난 습윤한 규슈 지역에서 훨씬 수월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다. --- p.222
최근 들어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오래전에 발생한 일들이니 기후 변화가 과거 문명에 미친 영향을 밝히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후가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과 성패를 좌우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안정적이던 사회에 첫 파장을 일으킨 조그만 자갈이었을 수도 있고 사회가 변화를 겪는 와중에 박차 역할을 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지지부진하게 이어지던 사회 변화를 끝낸 종지부였는지도 모른다.
--- p.265
출판사 리뷰
과거는 언제나 현재라는 찰나를 거쳐 미래로 흘러든다. 미래는 과거의 관성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다. 지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더워졌다 차가워졌다 하는 변화를 수없이 겪어왔다. 기상학자들과 생물학자들이 이러한 지구의 변화에 공연히 호들갑을 떤다고 비아냥거리는 학자들이 일부 있는데, 이 책은 그들의 몽매한 주장에 뇌동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지리학자인 저자는 인류의 진화와 이동은 물론, 지구의 공전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변동으로 인한 물리적 환경의 변화, 그리고 흑점 수 변동과 같은 태양 활동과 생물 다양성의 등락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후 변화 현상을 천문학, 지질학에서 생물학, 인류학에 이르는 통섭적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분석한다. 기후 변화 문제를 지구 역사의 맥락에서 바라보는 명징하고 입체적인 이 책은 기후 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필독서다. _ 최재천(이화여자대학교 에코과학부 석좌교수)
인류의 다양한 역사를 간단히 기후 탓으로 돌려버리는 책과는 차원이 다른 이 책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슥슥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공부하듯 차근차근 읽어내면 태양의 흑점 수와 지구의 자전축과 바닷물이 수십만 년 전의 고인류와 수천 년 전의 선사시대 사람, 수백 년 전의 조선 시대 사람의 삶을 어떻게 엮어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고, 먼 옛날의 인류를 공부하는 내게는 곳곳에서 영감을 주는 책이다. _ 이상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기후 변화의 시대,
기후의 힘에 맞서온 인류 역사를 탐색하다
지구 위 모든 생명의 삶은 언제나 기후에 좌우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기후의 힘과 싸워나간다는 것이었다. 기후는 지구가 생성된 이래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구 공전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 태양 흑점 수의 변동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기후는 변화되었고, 화산 폭발과 해수의 이동 등 지표 활동으로도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기후는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방향 역시 결정한다.
이 책은 제4기의 기후 변화가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작으로 홀로세 이후까지의 기후 역사를 탐색함으로써 한반도의 과거 기후와 환경 변화를 살펴보고 그 변화가 고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본다. 기후의 변화라는 커다란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전 세계에서 보고된 고환경 자료를 선별해 정리한 뒤 기후 변화가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전 세계의 고기후 자료를 활용해 한반도의 환경사를 복원하고 한반도의 인구 유입부터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까지 기후가 한반도 문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독자들은 장기적 기후의 변화와 흐름, 인류의 이동과 한반도의 인간 거주 역사, 농경의 기원과 전파, 한반도의 과거 기후 변화와 고대 사회의 성쇠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는 대륙과 해양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기후 변화 과정이 복잡했다. 과거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환경 변화와 인간 사회의 대응은 미래의 기후를 우려하는 전 세계인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엮은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
이 책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국내 고기후학, 고환경학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자로 오래전부터 전 세계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기후 복원과 과거의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에 관해 연구해왔다. 이 책은 한반도 기후의 역사를 복원하고,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 문명의 역사를 기후의 관점에서 해석한 유일무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적 범위는 주로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된 이후다. 구체적으로 2만 년 전 시작된 최종빙기 최성기 이후가 주된 배경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전 세계에서 보고된 과거 환경 변화 자료를 선별해 정리했고, 제주도 하논 분화구뿐 아니라 전라남도 비금도와 광양의 습지 퇴적물 자료, 여러 지역의 선사시대 주거지 유적 및 유물 등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한반도의 전체적인 환경사를 복원했다.
한반도는 해양 기후와 대륙 기후가 교차하는 곳이며, 사회적으로도 인구 밀도가 높아 미래의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하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환경사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 다가오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기후와 세계 문명의 흥망,
환경결정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기후 변화는 문명의 흥망과 깊은 관계에 있다. 4200년 전 지구에는 갑작스러운 추위와 대가뭄이 닥쳤다. 이를 4.2ka 이벤트라 한다. 이상 기후는 3900년 전까지 300년간 이어졌다.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왕국, 이집트 고왕국, 인더스 문명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중국의 량주 문화와 룽산 문화도 이때의 기후 변화로 크게 쇠퇴했다. 한반도에서도 당시 주거지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후 1000년 동안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2800년~2700년의 2.8ka 이벤트는 송국리 문화의 쇠퇴를 불러왔다.
3200년 전의 서남아시아 청동기 문명, 1300년 전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문명, 1100년 전의 멕시코 마야 문명과 미국 남서부의 아나사지 문명, 800년 전의 안데스 티와나쿠 문명, 550년 전 동남아시아의 앙코르 문명 등도 가뭄 탓에 쇠퇴했다.
환경결정론은 한때 비과학적 편견으로 가득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리학뿐 아니라 인류학과 역사학계에서도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기후가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과 성패를 좌우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한반도 최초의 인류를 만나다
호모 사피엔스는 13만~11만 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일부는 북쪽으로, 일부는 동쪽으로 움직였다. 동쪽으로 이동한 그들은 낮은 해수면 덕에 아시아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순다랜드에 6만~4만 5000년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순다랜드 북부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시베리아, 중국 북부, 만주 등에 정착했다. 이들 중 만주의 수렵채집민 일부가 3만~2만 5000년 전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초기 한반도 정착민들을 움직인 것은 차가워진 기후였다. 2만 9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졌고, 2만 4000년~1만 9000년 전 사이에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 북중국의 수렵채집민은 이 시기 따듯한 해안을 찾아 대거 남쪽으로 이동했고, 일부가 연해주와 한반도로 들어와 구석기 문화를 구성하고, 훗날 한민족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당시는 해수면이 하강해 서해가 대부분 뭍으로 드러나 있었고, 동해는 호수와 같았다. 따라서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원래는 순다랜드에서 이동해왔으므로, 한민족은 남쪽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이주해온 사람들이 혼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쌀밥을 먹었을까?
한반도의 벼농경 유입과 송국리 문화
지구상 최초의 농경은 1만 2000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 서남아시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최종빙기 최성기(2만 4000년~1만 8000년 전) 이후 기후가 점차 올라가는 만빙기(1만 8000년~1만 1700년 전)에 해당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초기 농경지는 반건조 기후 지역에 있다. 반건조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나무보다는 한해살이풀이 자라기 좋은 초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농경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절정이었던 5500~5000년 전에 한반도에서 조와 기장 농경이 시작되었고, 기후가 양호했던 3500~2800년 전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두 시기에는 온화한 기후 덕에 주변에 자원이 풍부해 수렵?채집민의 정주가 가능했다. 한반도의 벼농경은 중국의 양쯔강 중하류 지역에서 4000~3000년 전에 전파되었다.
한반도에 전래된 벼농경은 수도작을 기반으로 하는 송국리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송국리 문화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문명으로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3000년 전에 나타났다. 2700~2400년 전에 이르면 충청 이남 대부분 지역의 문화가 송국리 문화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송국리 문화는 2300년 전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었다.
송국리 문화의 이동과
일본 야요이 문화의 기원
송국리 문화가 사라진 동시에 한반도의 벼농경은 크게 쇠퇴했고, 원삼국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벼농경이 물러나고 수렵채집이 강화되기도 했다. 수도작을 통해 인구가 급증했다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송국리 문화의 쇠퇴 원인을 최근의 고기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광양 습지의 꽃가루 퇴적물 자료를 분석한 결과 2800~2700년 전 한반도의 기후는 갑자기 나빠졌다. 2.8ka 이벤트라고 불리는 갑작스러운 단기 가뭄이 닥친 것이다. 이때 금강 유역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으로 남하했고, 일부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 갔고, 또 일부는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일본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인구를 점차 늘려갔고, 당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몬인들을 몰아내거나 동화시켰다.
급격한 가뭄의 발생한 2.8ka 이벤트와 송국리 문화의 쇠락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분리되는 시점이 대략 2800년 전으로 나왔다. 당시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송국리 벼농경 문화인 일부가 일본의 야요이 문화를 일으켰다. 조몬인에서 기원한 아이누족과 류큐인을 제외한 일본인 유전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야요이인들로부터 왔으므로, 일본인들에게 한반도의 농경민이 이주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정조는 기후의 도움을 받았는가?
태양 흑점 수와 극소기의 기후
홀로세 후기의 기후 변화를 불러온 주요 요인은 태양 흑점 수의 변화와 화산 활동이다. 태양 흑점 수가 적은 시기를 극소기라고 하는데 1010년에서 1070년까지 흑점이 적었던 시기를 오르트 극소기, 1260년에서 1340년까지를 울프 극소기, 1410년에서 1540년까지를 스푀러 극소기, 1645년에서 1715년까지를 몬더 극소기, 1790년에서 1830년까지를 달튼 극소기로 부른다.
이 중에서 달튼 극소기 중인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이 폭발 이후 1816년 밀 가격은 유례없이 폭등했고, 캐나다 허드슨만의 연평균 기온은 5~6도 낮아졌다. 중국은 3년간 흉작이 이어졌고, 미국의 어느 주간지는 이 해를 ‘여름이 사라진 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에 전대미문의 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아사했다. 이를 경신대기근이라 한다. 20년 후인 1695년부터 4년 동안 을병대기근이 발생해 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시기는 몬더 극소기와 정확히 겹친다.
몬더 극소기가 끝난 뒤인 1724년 영조가 즉위한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의 재위 기간은 1776년~1800년이다. 1790년에 달튼 극소기가 시작했으니 영정조 시기는 몬더 극소기와 달튼 극소기 사이 기후가 좋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의 재위 기간인 1800년~1834년은 달튼 극소기와 거의 겹친다. 1815년에는 탐보라 화산 폭발도 일어났다. 정치적 부패와 무능도 원인이었겠지만, 당시의 혼란은 극심한 기후 변화라는 저주인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는 허구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다 보면 기후 변화의 주기성이 드러난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주기성을 들어 현재의 지구 온난화가 단순히 지구의 단순한 기후 변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류가 두려워해야 할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변화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2014년 이후 매년 연평균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과거 65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300ppm 사이였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이었고, 지금은 400ppm을 넘는다. 중국 등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가의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소의 사육 두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메탄의 농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대기오염 물질인 질소산화물 또한 심각한 문제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15년 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12년까지가 과거 1400년 동안 북반구에서 가장 더운 30년이었다. 우리나라도 2019~2020년 겨울이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듯한 겨울이었다. 따듯한 기후는 빙하의 소멸로 이어지고, 이는 해수면 상승의 주요인이다. 해수면 상승은 몇몇 섬나라의 침수뿐 아니라 기후 전반을 교란하여 예상치 못한 이상 기후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변화의 피해 정도는 소득과 계층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후 위기에서 기인한 비인간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인류는 지구의 생태계가 회복 불가의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온실 기체의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일의 가능 여부가 미래 인류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다.
인류의 다양한 역사를 간단히 기후 탓으로 돌려버리는 책과는 차원이 다른 이 책은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슥슥 읽어낼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공부하듯 차근차근 읽어내면 태양의 흑점 수와 지구의 자전축과 바닷물이 수십만 년 전의 고인류와 수천 년 전의 선사시대 사람, 수백 년 전의 조선 시대 사람의 삶을 어떻게 엮어냈는지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고, 먼 옛날의 인류를 공부하는 내게는 곳곳에서 영감을 주는 책이다. _ 이상희(캘리포니아주립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기후 변화의 시대,
기후의 힘에 맞서온 인류 역사를 탐색하다
지구 위 모든 생명의 삶은 언제나 기후에 좌우되었다. 살아간다는 것은 기후의 힘과 싸워나간다는 것이었다. 기후는 지구가 생성된 이래 끊임없이 변화해왔다. 지구 공전 궤도와 자전축의 기울기 변화, 태양 흑점 수의 변동 등 다양한 원인에 의해 기후는 변화되었고, 화산 폭발과 해수의 이동 등 지표 활동으로도 크고 작은 변화가 나타났다. 기후는 인류의 탄생과 문명의 발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다가올 미래의 방향 역시 결정한다.
이 책은 제4기의 기후 변화가 인류의 진화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시작으로 홀로세 이후까지의 기후 역사를 탐색함으로써 한반도의 과거 기후와 환경 변화를 살펴보고 그 변화가 고대 사회에 미친 영향을 짚어본다. 기후의 변화라는 커다란 흐름을 추적하기 위해 저자는 전 세계에서 보고된 고환경 자료를 선별해 정리한 뒤 기후 변화가 인류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전 세계의 고기후 자료를 활용해 한반도의 환경사를 복원하고 한반도의 인구 유입부터 조선 후기 홍경래의 난까지 기후가 한반도 문명에 미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이라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독자들은 장기적 기후의 변화와 흐름, 인류의 이동과 한반도의 인간 거주 역사, 농경의 기원과 전파, 한반도의 과거 기후 변화와 고대 사회의 성쇠 등을 만나볼 수 있다.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는 대륙과 해양의 영향을 동시에 받아 기후 변화 과정이 복잡했다. 과거 이 지역에서 벌어졌던 환경 변화와 인간 사회의 대응은 미래의 기후를 우려하는 전 세계인에게 중요한 정보가 될 수 있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
기후와 환경, 인류의 역사를 엮은
한반도 빅히스토리의 탄생!
이 책의 저자인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는 국내 고기후학, 고환경학 분야의 독보적인 연구자로 오래전부터 전 세계뿐 아니라 한반도의 고기후 복원과 과거의 기후 변화가 인류 문명에 미친 영향에 관해 연구해왔다. 이 책은 한반도 기후의 역사를 복원하고,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한반도 문명의 역사를 기후의 관점에서 해석한 유일무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적 범위는 주로 한반도에 인류가 유입된 이후다. 구체적으로 2만 년 전 시작된 최종빙기 최성기 이후가 주된 배경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전 세계에서 보고된 과거 환경 변화 자료를 선별해 정리했고, 제주도 하논 분화구뿐 아니라 전라남도 비금도와 광양의 습지 퇴적물 자료, 여러 지역의 선사시대 주거지 유적 및 유물 등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한반도의 전체적인 환경사를 복원했다.
한반도는 해양 기후와 대륙 기후가 교차하는 곳이며, 사회적으로도 인구 밀도가 높아 미래의 자연재해에 더욱 취약하다. 이런 점에서 한반도의 환경사는 세계적으로 상당한 중요성을 지닌다. 과거를 올바로 알지 않고서는 미래를 제대로 진단하고 대비할 수 없다. 다가오는 지구 온난화의 위협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이 책의 중요성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다.
기후와 세계 문명의 흥망,
환경결정론은 여전히 유효한가?
기후 변화는 문명의 흥망과 깊은 관계에 있다. 4200년 전 지구에는 갑작스러운 추위와 대가뭄이 닥쳤다. 이를 4.2ka 이벤트라 한다. 이상 기후는 3900년 전까지 300년간 이어졌다. 메소포타미아의 아카드 왕국, 이집트 고왕국, 인더스 문명의 하라파와 모헨조다로, 중국의 량주 문화와 룽산 문화도 이때의 기후 변화로 크게 쇠퇴했다. 한반도에서도 당시 주거지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고, 이후 1000년 동안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2800년~2700년의 2.8ka 이벤트는 송국리 문화의 쇠퇴를 불러왔다.
3200년 전의 서남아시아 청동기 문명, 1300년 전의 멕시코 테오티우아칸 문명, 1100년 전의 멕시코 마야 문명과 미국 남서부의 아나사지 문명, 800년 전의 안데스 티와나쿠 문명, 550년 전 동남아시아의 앙코르 문명 등도 가뭄 탓에 쇠퇴했다.
환경결정론은 한때 비과학적 편견으로 가득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리학뿐 아니라 인류학과 역사학계에서도 역사의 전개에서 기후 변화의 역할을 더 적극적으로 탐색해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한다. 기후가 인간 사회의 진행 방향과 성패를 좌우한 요인 가운데 하나였음은 분명하다.
호모 사피엔스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한반도 최초의 인류를 만나다
호모 사피엔스는 13만~11만 년 전 아프리카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고, 일부는 북쪽으로, 일부는 동쪽으로 움직였다. 동쪽으로 이동한 그들은 낮은 해수면 덕에 아시아와 육지로 연결되어 있던 순다랜드에 6만~4만 5000년 전에 도착했다. 그리고 순다랜드 북부에 도착한 호모 사피엔스 중 일부가 북쪽으로 방향을 틀어 동시베리아, 중국 북부, 만주 등에 정착했다. 이들 중 만주의 수렵채집민 일부가 3만~2만 5000년 전에 한반도에 들어왔다.
초기 한반도 정착민들을 움직인 것은 차가워진 기후였다. 2만 9000년 전부터 지구의 기후는 점차 한랭해졌고, 2만 4000년~1만 9000년 전 사이에 추위는 절정에 달했다. 북중국의 수렵채집민은 이 시기 따듯한 해안을 찾아 대거 남쪽으로 이동했고, 일부가 연해주와 한반도로 들어와 구석기 문화를 구성하고, 훗날 한민족의 바탕이 된 것이다.
당시는 해수면이 하강해 서해가 대부분 뭍으로 드러나 있었고, 동해는 호수와 같았다. 따라서 남쪽에서 올라온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어차피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도 원래는 순다랜드에서 이동해왔으므로, 한민족은 남쪽에서 서로 다른 시기에 이주해온 사람들이 혼합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쌀밥을 먹었을까?
한반도의 벼농경 유입과 송국리 문화
지구상 최초의 농경은 1만 2000년 전에서 1만 년 전 사이 서남아시아 비옥한 초승달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는 최종빙기 최성기(2만 4000년~1만 8000년 전) 이후 기후가 점차 올라가는 만빙기(1만 8000년~1만 1700년 전)에 해당한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비롯해 인류 역사 대부분의 초기 농경지는 반건조 기후 지역에 있다. 반건조 지역은 강수량이 적어 나무보다는 한해살이풀이 자라기 좋은 초지로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농경 역사는 5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홀로세 기후최적기의 절정이었던 5500~5000년 전에 한반도에서 조와 기장 농경이 시작되었고, 기후가 양호했던 3500~2800년 전에 초기 벼농경 문화가 빠르게 성장했다. 이 두 시기에는 온화한 기후 덕에 주변에 자원이 풍부해 수렵?채집민의 정주가 가능했다. 한반도의 벼농경은 중국의 양쯔강 중하류 지역에서 4000~3000년 전에 전파되었다.
한반도에 전래된 벼농경은 수도작을 기반으로 하는 송국리 문화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송국리 문화는 우리나라 선사시대의 대표적인 문명으로 금강 중하류를 중심으로 3000년 전에 나타났다. 2700~2400년 전에 이르면 충청 이남 대부분 지역의 문화가 송국리 문화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송국리 문화는 2300년 전 갑작스럽게 종적을 감추었다.
송국리 문화의 이동과
일본 야요이 문화의 기원
송국리 문화가 사라진 동시에 한반도의 벼농경은 크게 쇠퇴했고, 원삼국 시대가 시작되기 전까지 일시적으로 벼농경이 물러나고 수렵채집이 강화되기도 했다. 수도작을 통해 인구가 급증했다가 이렇게 한순간에 사라진 것은 동아시아 전체에서도 매우 드문 사례다.
오랫동안 수수께끼였던 송국리 문화의 쇠퇴 원인을 최근의 고기후 자료에서 찾을 수 있다. 광양 습지의 꽃가루 퇴적물 자료를 분석한 결과 2800~2700년 전 한반도의 기후는 갑자기 나빠졌다. 2.8ka 이벤트라고 불리는 갑작스러운 단기 가뭄이 닥친 것이다. 이때 금강 유역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전라도와 경상도 지역으로 남하했고, 일부는 바다 건너 제주도에 갔고, 또 일부는 일본 규슈 일대에 도착해 야요이 시대를 열었다. 일본의 송국리 문화인들은 높은 생산성을 바탕으로 인구를 점차 늘려갔고, 당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조몬인들을 몰아내거나 동화시켰다.
급격한 가뭄의 발생한 2.8ka 이벤트와 송국리 문화의 쇠락
최근 유전자 분석 결과에서도 한국인과 일본인이 분리되는 시점이 대략 2800년 전으로 나왔다. 당시의 갑작스러운 기후 변화가 송국리 벼농경 문화인 일부가 일본의 야요이 문화를 일으켰다. 조몬인에서 기원한 아이누족과 류큐인을 제외한 일본인 유전자의 80퍼센트 이상이 야요이인들로부터 왔으므로, 일본인들에게 한반도의 농경민이 이주한 사건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영정조는 기후의 도움을 받았는가?
태양 흑점 수와 극소기의 기후
홀로세 후기의 기후 변화를 불러온 주요 요인은 태양 흑점 수의 변화와 화산 활동이다. 태양 흑점 수가 적은 시기를 극소기라고 하는데 1010년에서 1070년까지 흑점이 적었던 시기를 오르트 극소기, 1260년에서 1340년까지를 울프 극소기, 1410년에서 1540년까지를 스푀러 극소기, 1645년에서 1715년까지를 몬더 극소기, 1790년에서 1830년까지를 달튼 극소기로 부른다.
이 중에서 달튼 극소기 중인 1815년 인도네시아 탐보라 화산이 폭발했다. 이 폭발 이후 1816년 밀 가격은 유례없이 폭등했고, 캐나다 허드슨만의 연평균 기온은 5~6도 낮아졌다. 중국은 3년간 흉작이 이어졌고, 미국의 어느 주간지는 이 해를 ‘여름이 사라진 해’라고 불렀다.
우리나라에서는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에 전대미문의 대기근이 발생해 수많은 사람이 아사했다. 이를 경신대기근이라 한다. 20년 후인 1695년부터 4년 동안 을병대기근이 발생해 또 많은 피해를 입었다. 이 시기는 몬더 극소기와 정확히 겹친다.
몬더 극소기가 끝난 뒤인 1724년 영조가 즉위한다. 영조의 뒤를 이은 정조의 재위 기간은 1776년~1800년이다. 1790년에 달튼 극소기가 시작했으니 영정조 시기는 몬더 극소기와 달튼 극소기 사이 기후가 좋았던 시기와 일치한다.
정조의 뒤를 이은 순조의 재위 기간인 1800년~1834년은 달튼 극소기와 거의 겹친다. 1815년에는 탐보라 화산 폭발도 일어났다. 정치적 부패와 무능도 원인이었겠지만, 당시의 혼란은 극심한 기후 변화라는 저주인지도 모른다.
지구 온난화는 허구가 아니다
과거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과거의 기후를 복원하다 보면 기후 변화의 주기성이 드러난다. 몇몇 사람들은 이러한 주기성을 들어 현재의 지구 온난화가 단순히 지구의 단순한 기후 변화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류가 두려워해야 할 현재의 지구 온난화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변화다. 전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 2014년 이후 매년 연평균 최고 기온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과거 65만 년 동안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180~300ppm 사이였다. 산업혁명 이전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280ppm이었고, 지금은 400ppm을 넘는다. 중국 등 인구가 많은 개발도상국가의 생활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소의 사육 두수가 급증하는 바람에 메탄의 농도 또한 높아지고 있다. 대기오염 물질인 질소산화물 또한 심각한 문제다.
지구 온난화의 속도는 시간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2015년 IPCC의 보고서에 따르면 1983년부터 2012년까지가 과거 1400년 동안 북반구에서 가장 더운 30년이었다. 우리나라도 2019~2020년 겨울이 전국 기상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따듯한 겨울이었다. 따듯한 기후는 빙하의 소멸로 이어지고, 이는 해수면 상승의 주요인이다. 해수면 상승은 몇몇 섬나라의 침수뿐 아니라 기후 전반을 교란하여 예상치 못한 이상 기후로 이어질 수 있다.
기후 변화의 피해 정도는 소득과 계층에 따라 다를 것이다. 기후 위기에서 기인한 비인간화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지구 온난화의 속도를 늦추어야 한다. 인류는 지구의 생태계가 회복 불가의 임계점에 다다르기 전에 온실 기체의 증가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 일의 가능 여부가 미래 인류의 생존을 결정할 것이다.
'33.과학의 이해 (독서>책소개) > 1.기후환경문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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