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전쟁교훈여행 (2010~) <여행지> 185

제주4.3평화기념관 전시실 (1)

제주4.3평화기념관 4.3의 역사를 담는 그릇을 모티브로 디자인 된 기념관은 4.3의 역사적 진실을 시간의 흐름을 따라 구성한 살설 전시실과 평화.인권 민주주의를 주제로 연중 전시가 개최되는 기획전시실, 개가지료실과 아카이브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의 동굴로 가다 제주도는 아름다운 섬이다.세계에서 유일하게 유네스코 자연과학 분야에서 3관왕을 달성할 정도로 보기드문 풍광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 찬란한 풍광 이면에 한과 눈물로 점철된 역사가 있다. 제주인들은 70여 년 전, 해방공간에서 남북 분단을 막으려고 온몸으로 나섰다가 참혹한 희생을 치렀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반세기동안 '없었던 역사' 처럼 그 진실이 은폐됐다. 바다로 둘러싸인 고립된 섬 제주도는 한때 거대한 감옥이자 학살터였지만, 그 후 오랫동..

자유수호평화박물관(2022.1.15.이모조모)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잊혀져 가는 6.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유엔참전국과 우호증진을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6.25전쟁 참전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 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경기의 소금강으로 잘 알려진 "소요산'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및 등산 등 여가를 함께 즐길수 있다. 소요산 소개 소요(逍遙)는 '유유자적하다', '한가롭게 걸어다니다', '여기저기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 등이 이 산에서 '소요'했다 하여 소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있으나, 근거가 없는 야사이다. 오대산 소금강처럼 소요산도 산세가 수려해 경기도의 소금강이라고도 불린다. 산세가 웅장하진 않지만, 뾰족한 기암..

주한미군 주둔 (동두천 - 미군장비)

주한미군 주둔과 동두천 동두천시는 1951년부터 미군(미 보병 제24사단 휴양소 미 보병 제3사단 6연대, 미 보병 제25사단 24연대)이 주둔하기 시작하였으며 1952년부터 1970년대까지 미 제7사단이 장기 주둔하였던 지역이다. 동두천시에는 혀내 미 제2사단 캠프 케이시 (Camp Casey) 중심으로 캠프 호비(Camp Hovey), 캠프 님블(Camp Nimble), 캠프 모빌(Camp Mobile), 그리고 짐볼스 훈련장(Gimbols) 등 6개 구역으로 미군부대가 주둔해 왔으며 현재 캠프 님블과 캠프 캐슬의 일부, 짐볼스 훈련장만이 반환된 상태이다 동두천과 미군공여지 동두천 도시 전체 면적의 절반에 가까운 면적이 미군공여지이다. 미군공여지란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에게 공여해 미군이 사용권을 가지..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실내전시관 (6.25 한국전쟁)

전쟁이전의 남한 (아래사진 참조)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패망과 함께 한반도의 북쪽은 소련군이 남쪽은 미군이 일본의 항복을 접수하게 되었다. 미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는 9월7일 남한에 진주한 후 군정을 실시하면서 소련과 한반도 문제를 협의. 처리하기 위한 회담의 개최를 모색하였다. 미국은 유엔을 통해 한국문제를 해결하려 했으나 소련의 반대로 평화적 정부수립에 난항을 겪는다. 결국 1948년 남한 안에서만 총선거가 실시되어 제헌국회가 열리고, 이승만대통령을 초대대통령으로 하는 대한민국정부수립을 대외에 선포하게 되었고 유엔 총회에서 이를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하였다. 북한은 소련군 철수 이후 맘한내 미군의 철수를 요구하였고 미국은 한국정부가 요구한 무기지원에도 응하지 않은 채 1949년 ..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옥외 전시관 (6.25 사용무기)

자유수호평화박물관 소개 잊혀져 가는 6.25전쟁에 대한 이해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하여 희생하신 분들의 뜻을 기리고 유엔참전국과 우호증진을 위해 건립된 박물관으로 "6.25전쟁 참전22개국 유엔군 활약상"과 관련 유물 및 자료를 전시하고 있으며, 경기의 소금강으로 잘 알려진 "소요산' 내에 박물관이 위치하고 있어 관광및 등산 등 여가를 함께 즐길수 있다. 건립취지문 오늘날 대한민국이 있기 까지에는 수없이 많은 외세의 침략으로 나라가 위태로울 때마다 우리 민족의 불굴의 정신과 생명을 아끼지 않는 선열들의 값진 희생이 있었습니다. 1950년 6월25일 북한의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은 북한의 적화통일 야욕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강대국의 이해 관계로 말미암아 벌어진 우리 민족 최대의 비극이었지만, ..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노르웨이 참전 기념비

이름 : 노르웨이 참전비 주소 : 동두천 평화로 2910번길 96-63 위치 : 소요산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내 인근관광지 : 소요산, 자유수호평화박물관. 벨기에.룩셈부르크 참전기념비 이 비는 한국전쟁 당시 야전병원에 근무했던 종업원 70명이 1972년 3월 30일 노르웨이 정부의 지대한 공헌에 보답하고자 각자 정성을 모아 건립하였다. 이 비는 노르웨이 정부가 1951~1954년까지 한국전쟁 당시 수많은 부상장병과 민간 전쟁고아를 의료사업으로 봉사하여 양국간의 우의를 증진했다. 박물관 건립에 따라 2000.12월 동두천시 하봉암동 298번지에서 소요산에 위치한 자유수호평화박물관으로 이전하였다.

자유수호평화박물관 - 베트남 참전 기념탑

기념탑의 의미 높이 솟은 팔각의 본체기단에는각군의 사령부 및 사단8개 참전부대 마크와 참전 유공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 1964년 9월22일부터 파병하여 1973년 3월23일 까지 8년8개월 전투임무를 마치고 개선 귀국할때 까지를 기리고자 기념하여 탑 높이를 8m 80cm로 하였으며, 탑 상단에는 우주속에 지국를 높이 받들고 그 위 비상하는 비둘기는, 동두천시를 대표하는 새로서 세계의 평화와 사랑을 상징하는 표상의 뜻으로 조각하였다. [2005년 9월 1일 베트남 참전 유공자회 동두천시 지회]

갑곳 선착장 강화양민 학살지

갑곳 선착장 강화양민 학살지 강화지역 민간인 학살은 한국전쟁 기간인 1951년 1·4후퇴를 전후한 시기에 강화경찰서장의 지시에 따라 ‘강화향토방위특공대’가 강화(강화도·석모도·주문도)지역 민간인 430여 명을 집단 학살한 사건이다. 당시 특공대는 민간인들이 북한 점령 시기 부역혐의자와 가족이라는 이유로 집단 학살했다. 희생자 430여 명 중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139명으로 여성이 42명(30%), 10대 미만이 14명(10%)을 차지하고 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학살을 자행한 것이다. 학살이 일어난 곳은 강화도 갑곶나루·옥림리갯벌·월곶포구·돌모루포구·철산포구·온수리·사슬재·선원 대문고개·매음리 어류정 등지이다. 당시 학살지였던 갑곶나루가 현재 갑곶선착장이다. 강화군 관계자는 “공간 부족으로 위..

강화도 산이포

산이포 사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 회,강화(강화도,석모도, 주문도)지역 민간인 희생사건 2008. 1951년 1월 3일 부터 중순에 걸쳐 양사면으로 파견나온 강화 특공대가 부역협의자 및 그 가족들을 연행하여 철사포구로 들어오던 피신 귀향자들을 전부 살해한 사시리, 강화특공대 철산파견대 대장 홍종택, 인화리 파견대장 계현성, 양사면 소년단 김종법, 한재한, 한규호, 한상식의 증언과 신청인인 김의용, 이정희 전종국, 참고인 이순희. 오옥자의 관련 진실을 통해 확인 되었다. -덕화리 김00씨의 증언 1.4후퇴 당시 산이포(천신뿔)에서 보초를 서고 있다가 개에서 배를 타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목격하였음, 당시 강화특공대가 이들에게 솔가지를 붙여 배로 던졌고, 배에 타고 있던 1백여 명의 주민들이 모두 학..

강화도 UN 8240 을지 타이거여단 충혼비 (교동도)

유격군 충혼 전적비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1950년 6.25남친전쟁에서 서울이 3일 만에 함락되고 인천상륙작전으로 수도 탈환후 1951년 1.4후퇴 때에 북한 지역과 38도선 접경지대에 거주하면서 치안대, 청년단, 학도호국대 등으로 반공결사대를 조직하여 공비소탕과 치안사업에 헌신한 청년방위군 등은 육군 ' 을지 제2병단" 으로 편성된 후, 극동군사사령부 주한연락처 (제8240부대)에 예속, 이후" 타이거여단"으로 개편된 반공유격대원으로 북한 연안일대와 적지내륙 등지에서 첩보전을 수행하며 도서지역 및 해상 방어 작전에서 유격전을 전개 하였다. 한편, KLO부대는 1950년 9월14일 인천 팔미도 등대를 점령하여 함정 261척이 안전하게 수로에 진입하게 하는등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강원도 화천 (꺼먹다리)

화천(華川) 꺼먹다리 : 국가등록문화재 꺼먹다리는 1940년대 화천댐과 화천수력발전소를 건설하면서 세운 폭 4.5m, 길이 204,84m의 다리이다. 철근콘크리트로 만든 기둥 위에 철골 구조물로 뼈대를 세우고 마지막으로 나무를 올려 완성하였다. 다리에 사용한 나무는 네모난 모양으로 깍은후 대각선으로 놓았으며, 부식을 막기 위해 콜타르를 칠하였다. 이콜타르의 색이 검어서 다리도 전체적으로 검은색을 띠므로 '거먹다리'라는 이음이 붙었다. 한국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지만 꺼먹다리가 남과 북을 연결하는 중요한 다리였기 때문에 남과 북이 다리를 폭파하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래서 꺼먹 다리에 총알의 흔적은 많이 남아 있지만 원래의 모습이 잘 보존 되었다. 꺼먹다리는 2017년부터 2019년까지 보수공사를 ..

강원도 화천 수력발전소

화천수력발전소 일제강점기인 1939년 7월 한강 유역의 전원개발을 위해 당시의 한강수력전기주식회사에 의하여 총 설비용량 10만8000㎾, 총 저수량 10억2000만㎥의 댐수로식 발전소를 착공, 1944년 5월에 2만7000㎾용량의 제1호기가 준공되었다. 이어 같은 해 10월에는 제2호기가 준공되었으며 제3호기는 기기설치 도중에, 제4호기는 기초공사 완료 후에 각각 광복을 맞이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다. 그러나 이 발전소는 38도선 이북에 위치함으로써 민족의 수난과 더불어 운명을 같이해야 했다. 1946년 5·14단전 후 우리는 심각한 전력난에 허덕이고 있었는데 북한은 일부 시설만을 가동하여 38도선 이북의 강원도 북부지역에만 전력을 공급하였다. 그 뒤 시설이 불필요하여 제2호 발전기를 규모와 낙차가 비슷한 ..

아이스크림 고지전투 전시

1. 개요 1951년 12월 25일 강원도 양구군 북방 어은산 일대의 중공군 63군 예하 204사단이 제7보병사단 3연대가 점령중인 1090(북)고지 일대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시작되어 1952년 10월까지 이어진 고지전으로, 훗날 전투 시작일을 본따 크리스마스 혹은 1090 고지 전투로 명명되었다. 참고로 이 일대의 1090 고지는 남북으로 둘 가량이었으며, 전투가 집중된 고지는 최북단에 위치한 1090(북) 쪽이었다. 또한 1090(북) 고지는 이 전투를 계기로 크리스마스 고지로 별칭되게 된다. 2. 전투 전 상황 1951년 가을에 벌어진 백석산 전투로 인해 전선은 어은산까지 북상했고, 그 결과 중공군 204사단 612연대는 어은산의 890고지, 1218고지, 984고지를 점령하고 주저항선을 형성하고..

강원도 철원군 (아이스크림 고지)전망대

아이스크림 고지 삽슬봉의 별명으로, 드넓은 재송편의 한 가운데 솟아있는 해발 219m의 얕은 산이지만, 입지적 이점이 많아 6.25전쟁 때는 피아간의 처절한 쟁탈전과 포격이 극심했고 산이 마치 아이스크림 녹듯 흘러내렸다하여 아이스크림 고지라 불린다. 예전에 이 산밑에 삽송리(揷松里 또는 森松里)라는 마을이 있어서 이 산을 삽송봉(揷松峰 : 삽슬봉은 삽송봉의 구전변형체)으로 불렀고, 또 그 모양이 흡사 투구 같다해서 투구봉으로도 불린다. 또한, 삽슬봉은 고려시대에 산정상에 봉수대(烽燧臺)를 만들어 북쪽의 평강의 진촌산 봉수대와 남쪽의 할미산(구수봉) 봉수대를 연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