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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3분 진료, 폭증하는 검사, 필수 의료 붕괴…
자본주의와 기술 중독, 국가의 방치가 만든 익숙해진 풍경들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입니다. _주영수(국립중앙의료원장)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서 저자 김현아 교수는 의사로서, 교수로서, 의료 정책 연구자로서 한국 의료 시스템을 진단하고 문제점을 고발한다. 수많은 환자가 한국 의료 현실에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의사와 병원에 대한 불신은 커져간다. 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구조를 알아내는 건 쉽지 않다.
이 책에서는 표면적인 문제 현상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러한 문제가 생겨난 구조를 추적한다. 통제된 의료수가는 수익이 되는 의료 행위를 유도하고, 그 과정에서 첨단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은 강해진다. 이 상황을 통제하고 개선해야 하는 정부도 현실을 방치하고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믿을 수 있는 의료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프롤로그_ 우리는 어쩌다 아픈 몸을 시장에 맡기게 되었나
어느 환자의 하루/ 어느 의사의 하루/ 기술 중독과 인간 소외
1 검사 공화국 대한민국
검사, 더 많은 검사
그눔의 검사, 다 해봤자예유/ 의사가 무슨 필요?/ 검사 셔틀
죽음 비즈니스
종교가 된 의료/ 병을 만드는 검사들/ 가짜병과 공포 마케팅/ 아는 게 병/ 슬기로운 건강검진
유전자 보난자
나는 네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 있어/ 유전체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아우라와 최면/ 과대 선전/ 검사는 어떻게 당신을 기만하는가/ 의사도 해석하지 못하는 검사/ 선생님은 검사를 너무 적게 처방했습니다
2 기술 중독에 빠진 현대 의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퇴행성 관절염 이야기
당신은 얼마나 잘 속는 사람인가요?/ 연골이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인보사 사태로 보는 대한민국 바이오의 현주소/ 검증이 왜 필요하지? 매직인데
로봇,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왓슨, 의대에 가다/ 수술은 로봇에게, 책임은 의사에게/ 로봇은 왜 대세가 되고 있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 한국에서 일어날 일/ 로봇 수술 3000례 돌파!
멋진 신세계
나는 너보다 왓슨을 믿어/ AI야, AI야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줘/ 기술 중독 시대의 슬기로운 의료 이용
3 약값 괴담
혁신과 협박
할머니를 패자/ 한 해에 5000퍼센트 넘게 오른 약값/ 끝나지 않는 논쟁, 신약의 가격?혁신이라는 이름의 협박/ 재정 독성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완치와 치료의 차이/ 기적의 약/ 침소봉대와 희망 고문/ 하수인들
4 의사들이 왜 이래? ? 전문가는 어떻게 죽어가는가
대한민국 의사들의 초상화
의사들은 어쩌다 이렇게 욕을 먹게 되었나/ 좀스러운 내과, 무식한 외과/ 극우파 의사
의료 페미니즘
남과 여/ 경제학자와 미치광이/ 여성 소거
하얀 거탑_ 대학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
당신은 교수에게 진료받고 계십니까?/ 가짜 논문, 가짜 상아탑/ 그 연구, 왜 하셨어요?/무한 평가와 무한 줄 세우기
5 사기업이 된 병원들
공공의료? 공공 염불?
팬데믹이 쏘아 올린 화두, 공공의료/ 젠트리피케이션/ 퇴출 1순위_ 공공병원/ 팬데믹 와중의 임금 체불/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회사인가, 병원인가
무릎 꿇은 병원장/ 그 병원 주인이 누구야?/ 네 자리에 올 사람 많아!/ 대한민국의 필수 의료 의사들은 조용한 사직 중?/ 자본주의보다 먼저 마비되는 것
6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의료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일
인간이 소외된 대한민국 의료/ 왜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분 진료 못 없애나, 안 없애나?_ 적선과 동냥
고혈압도 대학 병원에서, 무너진 의료 전달 시스템의 문제
큰 병원 갈래요/ 이제 제게는 안 오셔도 됩니다/ 크게, 더 크게_ 공룡이 된 병원들/ 병원은 사기업인가
에필로그_ 세상이 바뀌어야 의료도 바뀐다
대혼돈의 다중 진실 시대/ 그 약 먹어야 해, 말아야 해?/ 우리는 너무 불안해하며 산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인간을 소환하다
어느 환자의 하루/ 어느 의사의 하루/ 기술 중독과 인간 소외
1 검사 공화국 대한민국
검사, 더 많은 검사
그눔의 검사, 다 해봤자예유/ 의사가 무슨 필요?/ 검사 셔틀
죽음 비즈니스
종교가 된 의료/ 병을 만드는 검사들/ 가짜병과 공포 마케팅/ 아는 게 병/ 슬기로운 건강검진
유전자 보난자
나는 네가 어떻게 죽을지 알고 있어/ 유전체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 아우라와 최면/ 과대 선전/ 검사는 어떻게 당신을 기만하는가/ 의사도 해석하지 못하는 검사/ 선생님은 검사를 너무 적게 처방했습니다
2 기술 중독에 빠진 현대 의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퇴행성 관절염 이야기
당신은 얼마나 잘 속는 사람인가요?/ 연골이 없어서 아픈 것이 아닙니다/ 인보사 사태로 보는 대한민국 바이오의 현주소/ 검증이 왜 필요하지? 매직인데
로봇,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세요
왓슨, 의대에 가다/ 수술은 로봇에게, 책임은 의사에게/ 로봇은 왜 대세가 되고 있나/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 한국에서 일어날 일/ 로봇 수술 3000례 돌파!
멋진 신세계
나는 너보다 왓슨을 믿어/ AI야, AI야 더 많은 돈을 벌게 해줘/ 기술 중독 시대의 슬기로운 의료 이용
3 약값 괴담
혁신과 협박
할머니를 패자/ 한 해에 5000퍼센트 넘게 오른 약값/ 끝나지 않는 논쟁, 신약의 가격?혁신이라는 이름의 협박/ 재정 독성
나는 얼마나 더 살 수 있나요?
완치와 치료의 차이/ 기적의 약/ 침소봉대와 희망 고문/ 하수인들
4 의사들이 왜 이래? ? 전문가는 어떻게 죽어가는가
대한민국 의사들의 초상화
의사들은 어쩌다 이렇게 욕을 먹게 되었나/ 좀스러운 내과, 무식한 외과/ 극우파 의사
의료 페미니즘
남과 여/ 경제학자와 미치광이/ 여성 소거
하얀 거탑_ 대학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
당신은 교수에게 진료받고 계십니까?/ 가짜 논문, 가짜 상아탑/ 그 연구, 왜 하셨어요?/무한 평가와 무한 줄 세우기
5 사기업이 된 병원들
공공의료? 공공 염불?
팬데믹이 쏘아 올린 화두, 공공의료/ 젠트리피케이션/ 퇴출 1순위_ 공공병원/ 팬데믹 와중의 임금 체불/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회사인가, 병원인가
무릎 꿇은 병원장/ 그 병원 주인이 누구야?/ 네 자리에 올 사람 많아!/ 대한민국의 필수 의료 의사들은 조용한 사직 중?/ 자본주의보다 먼저 마비되는 것
6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의료는 인간이 인간을 대하는 일
인간이 소외된 대한민국 의료/ 왜 정책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3분 진료 못 없애나, 안 없애나?_ 적선과 동냥
고혈압도 대학 병원에서, 무너진 의료 전달 시스템의 문제
큰 병원 갈래요/ 이제 제게는 안 오셔도 됩니다/ 크게, 더 크게_ 공룡이 된 병원들/ 병원은 사기업인가
에필로그_ 세상이 바뀌어야 의료도 바뀐다
대혼돈의 다중 진실 시대/ 그 약 먹어야 해, 말아야 해?/ 우리는 너무 불안해하며 산다/ 죽음을 받아들임으로 인간을 소환하다
책 속으로
불필요한 검사로 인한 의료 재원의 낭비는 아직까지 정책적으로 제대로 다루어진 적이 없는 영역이다. 많은 환자가 도대체 병원에 가면 검사 말고 하는 게 뭐냐는 불만을 토로한 지 오래된 것을 감안하면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기공명영상(MRI)과 같은 고가 검사는 여러 건 찍으면 경제적 부담이 바로 체감되기 때문에 쉽게 논란을 불러일으키지만, 건당 수가가 그다지 높지 않은 검사실 검사들은 가랑비에 옷이 다 젖듯, 보일 듯 말 듯 의료 재정을 좀먹는다. 내 전문 영역에서의 예를 살피면 ‘항핵 항체 검사’가 그런 경우이다.
--- p.25~26, 「1. 검사 공화국 대한민국」 중에서
10여 년 전 미국 학회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는 유레카를 체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은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서 키우는 원숭이에 대한 연구 결과였는데 부자나라답게 미국 국립보건원은 한 마리당 1억 원 정도는 들여야 데이터를 낼 수 있는 원숭이들을 대량 사육하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원숭이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시면 모든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어 자기 연구 분야에 해당하는 장기를 떼어 간다. 이렇게 해서 얻은 원숭이의 무릎 사진을 한 컷 보여주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 관절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았다. 자연 서식지에서 원숭이들의 수명이 4~5년인데 비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 먹이 걱정도 없기 때문에 그보다 두세 배 정도를 더 산다. 퇴행성 관절염도 그런 것이라는 깨달음이 번뜩 들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석기 시대에 약 20세였던 것이 20세기 초반 40세 정도로 늘기까지 수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100년도 안 되어 인류의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더 늘어버렸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의 무릎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거였다. 수만 년 진화의 역사를 역행해서 무릎 연골에 무슨 마술을 부려서 관절염을 고치겠다고 연구비를 신청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러고 몇번은 완전히 다른 연구 과제를 써서 냈다가 연거푸 미역국을 먹고, 신념은 멀고 먹고사는 건 당장인지라 할 수 없이 다시 “손상된 연골을 회복시켜”로 복귀해서 연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 p.75-76, 「2. 기술 중독에 빠진 현대 의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중에서
급기야 공적 보험하에 환자들에게 개인 부담금을 물리지 않는 의료 시스템을 자랑하는 영국에서는 소발디의 급여를 제한하기로 결정했고, 이 결정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빚었다. 영국은 간 기능이 소실되고 기대 여명이 짧은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급여를 인정했고 그다음으로 간 질환이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들에게 순차적으로 급여를 인정해 전체 5000여 명이 혜택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만 1억 5000만 파운드의 재정이 소요되었는데 영국의 C형 간염 보균자 수가 21만 명으로 추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영국 정부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신약의 높은 가격은 치료약이 없을 때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환자들의 고통이 어떤 면에서는 더 증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억 원이라는 돈을 충당할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는 현실은 치료제가 전혀 없을 때의 고통보다 더 나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약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불거졌다.
--- p.124, 「3. 약값 괴담」 중에서
실제로 요즘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의 경우 환자들의 검체를 모아 유전자를 추출하고 기계를 돌려 대량으로 발현 양상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아예 가설이 필요 없는 연구가 많다. 내가 20여 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험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런 식의 연구는 “영혼이 없는 낚시질”이라고 비아냥을 들었는데, 이제는 낚시질이 연구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가설과 검증을 몰아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연구 논문은 점점 재미가 없어져간다. 그저 이러저러한 데이터들을 주욱 늘어놓는 수준일 뿐 “왜, 어떻게”라는 진리 추구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취급하는 것은 자본을 가진 집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그 결과로 빅데이터에서 도출되는 정보는 이들의 손에 들어가 개인으로서는 알 수도 없는 과정으로 프로세스되어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점점 무용한(irrelevant) 존재가 되어 주요 의사 결정자들로부터 고립된 얼굴 없는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공공선과 진리 추구를 위한 연구의 길이 자본에 부역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징후이다.
--- p.187-188, 「4. 의사들이 왜 이래」 중에서
영리 병원과 의료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반대는 항상 거세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면이 많을 것 같다. 사실 나도 한동안 그랬는데,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병원이 얼마나 되는지 항상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들에서 대놓고 ‘진료 수입’, ‘성장률’ 등 기업이나 상인의 언어를 구사하며 교수들의 실적을 영업사원처럼 평가하는 현상이 이미 만연한데, 도대체 어떻게 영리 추구를 막아보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엄밀한 의미에서 비영리 병원이란 병원 경영에서 창출된 이익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한민국 병원들 중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아할 뿐이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시설 확충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병원의 수입이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대로 감사한 적이 있기나 할까?
--- p.25~26, 「1. 검사 공화국 대한민국」 중에서
10여 년 전 미국 학회에서 학문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는 유레카를 체험한 적이 있었다. 당시 발표된 내용은 미국 국립 보건원(National Institute of Health, NIH)에서 키우는 원숭이에 대한 연구 결과였는데 부자나라답게 미국 국립보건원은 한 마리당 1억 원 정도는 들여야 데이터를 낼 수 있는 원숭이들을 대량 사육하면서 다양한 연구를 하고 있었다. 이 원숭이가 천수를 다하고 돌아가시면 모든 연구실의 연구원들이 달려들어 자기 연구 분야에 해당하는 장기를 떼어 간다. 이렇게 해서 얻은 원숭이의 무릎 사진을 한 컷 보여주었는데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 관절이라는 것이 거의 남아 있지를 않았다. 자연 서식지에서 원숭이들의 수명이 4~5년인데 비해, 실험실에서 사육하는 원숭이는 천적으로부터 보호받고 먹이 걱정도 없기 때문에 그보다 두세 배 정도를 더 산다. 퇴행성 관절염도 그런 것이라는 깨달음이 번뜩 들었다.
인류의 평균 수명이 석기 시대에 약 20세였던 것이 20세기 초반 40세 정도로 늘기까지 수만 년이 걸렸다. 그런데 100년도 안 되어 인류의 평균 수명은 두 배 가까이 더 늘어버렸다.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저히 적응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직립 보행을 하는 인류의 무릎은 망가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내재하고 있는 거였다. 수만 년 진화의 역사를 역행해서 무릎 연골에 무슨 마술을 부려서 관절염을 고치겠다고 연구비를 신청하는 나 자신이 우스워졌다. 그러고 몇번은 완전히 다른 연구 과제를 써서 냈다가 연거푸 미역국을 먹고, 신념은 멀고 먹고사는 건 당장인지라 할 수 없이 다시 “손상된 연골을 회복시켜”로 복귀해서 연구실을 유지할 수 있었다.
--- p.75-76, 「2. 기술 중독에 빠진 현대 의학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중에서
급기야 공적 보험하에 환자들에게 개인 부담금을 물리지 않는 의료 시스템을 자랑하는 영국에서는 소발디의 급여를 제한하기로 결정했고, 이 결정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물의를 빚었다. 영국은 간 기능이 소실되고 기대 여명이 짧은 환자들에게 우선적으로 급여를 인정했고 그다음으로 간 질환이 중증으로 진행된 환자들에게 순차적으로 급여를 인정해 전체 5000여 명이 혜택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만 1억 5000만 파운드의 재정이 소요되었는데 영국의 C형 간염 보균자 수가 21만 명으로 추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영국 정부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신약의 높은 가격은 치료약이 없을 때와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환자들의 고통이 어떤 면에서는 더 증가되었다고 볼 수 있다. 즉 1억 원이라는 돈을 충당할 능력이 있는지에 따라 생사가 결정된다는 현실은 치료제가 전혀 없을 때의 고통보다 더 나은 느낌을 주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신약에 높은 가격이 책정되는 메커니즘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불거졌다.
--- p.124, 「3. 약값 괴담」 중에서
실제로 요즘 진행되고 있는 연구들의 경우 환자들의 검체를 모아 유전자를 추출하고 기계를 돌려 대량으로 발현 양상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아예 가설이 필요 없는 연구가 많다. 내가 20여 년 전 미국에서 처음으로 실험 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런 식의 연구는 “영혼이 없는 낚시질”이라고 비아냥을 들었는데, 이제는 낚시질이 연구의 영혼이라 할 수 있는 가설과 검증을 몰아내는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런데 연구 논문은 점점 재미가 없어져간다. 그저 이러저러한 데이터들을 주욱 늘어놓는 수준일 뿐 “왜, 어떻게”라는 진리 추구의 기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은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대량의 데이터를 분석하고 취급하는 것은 자본을 가진 집단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인데, 그 결과로 빅데이터에서 도출되는 정보는 이들의 손에 들어가 개인으로서는 알 수도 없는 과정으로 프로세스되어 이들의 이익을 위해 이용된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점점 무용한(irrelevant) 존재가 되어 주요 의사 결정자들로부터 고립된 얼굴 없는 덩어리가 되어버린다. 공공선과 진리 추구를 위한 연구의 길이 자본에 부역하는 방향으로 돌아서는 징후이다.
--- p.187-188, 「4. 의사들이 왜 이래」 중에서
영리 병원과 의료 민영화에 대한 사회적 반대는 항상 거세지만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운 면이 많을 것 같다. 사실 나도 한동안 그랬는데, 도대체 대한민국에서 영리를 추구하지 않는 병원이 얼마나 되는지 항상 궁금했기 때문이다. 대학병원들에서 대놓고 ‘진료 수입’, ‘성장률’ 등 기업이나 상인의 언어를 구사하며 교수들의 실적을 영업사원처럼 평가하는 현상이 이미 만연한데, 도대체 어떻게 영리 추구를 막아보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엄밀한 의미에서 비영리 병원이란 병원 경영에서 창출된 이익을 개인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대한민국 병원들 중 이것이 제대로 지켜지는 곳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아할 뿐이었다. 개인의 이익이 아닌 시설 확충 등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어야 한다는 병원의 수입이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제대로 감사한 적이 있기나 할까?
--- p.207, 「5. 사기업이 된 병원들」 중에서
출판사 리뷰
3분 진료, 폭증하는 검사, 필수 의료 붕괴…
자본주의와 기술 중독, 국가의 방치가 만든 익숙해진 풍경들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도대체 병원에 가면 검사 말고 하는 게 뭐냐?
병원 다니면서 생긴 불만에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 가서 오랜 시간 대기하다가 의사 앞에 앉으면 3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이 같은 현실에 붙은 이름이 ‘3분 진료’다. 그러면 환자는 병원 가서 진료 말고 무엇을 하나? 검사를 한다. 이 검사 저 검사 하다 보면 병원에서 잡아먹는 돈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근 병원에 가본 환자라면 이런 불만을 한 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의 배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료수가가 낮아서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보아야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고, 부족한 수익을 검사로 보충한다. 병원에서는 우수성이 검증되지 않는 첨단 의료 기기들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다른 한편에서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늘도 현장을 떠난다. 얼마 전 ‘조용한 사직’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조용한 사직’ 중이었다.
우리가 병원이나 뉴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의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에 결함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징후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자본 종속, 기술 중독, 병원의 과도한 수익 추구, 정부의 방치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현재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차근차근 진단한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가려면 일방적이고 평면적인 비난은 지양하고 문제의 배경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주체가 보이고 지금보다는 나은 대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검사 공화국에서 첨단 기술 중독까지,
누가 고비용 의료 행위를 조장하는가?
김현아 교수 연구팀이 ‘BMJ open’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대비 진찰료가 낮고, 그에 반해 검사료 수준은 높았다. 즉 낮은 진찰료를 보상받기 위해 검사 수를 늘리거나 비싼 검사를 시행하고, 불필요한 투약까지 늘리는 행태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3분 진료’ 원인은 최저 수준 진찰료… 과잉 검사·투약으로도 이어져”).
고가 검사에 해당하는 영상 검사들을 보면 그러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찰료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뇌 컴퓨터 단층 촬영(CT) 검사 수가는 8.6배인데, 이 비율이 미국의 경우 2.1배, 프랑스 5.8배, 캐나다 3.9배이다. 진찰료와 검사비 차이가 너무 심하다. 이걸 보면 우리나라의 CT 촬영 건수가 인구 대비 OECD 최고 수준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료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진료 시간만으로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부실한 진료를 각종 검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 외에 병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을 고비용 의료로 몰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로봇 수술과 인공지능 왓슨을 사례로 들면서 첨단 기술이 어떻게 대세가 되어가는지 보여준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로봇 복강경 수술이 기존의 복강경 수술에 비해 의학적으로 뚜렷하게 우수하지 않다. 그런데 기존 복강경 수술 수가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기기 회사와 병원은 열 배까지 수술비를 더 받을 수 있는 로봇 수술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로봇 수술의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왓슨 인공지능은 암 진단에 탁월하다고 홍보됐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병원이라는, 왓슨의 후광효과를 이용한 마케팅은 환자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단순히 병원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항변한다. 정부에서는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대가로 병원들의 이러한 행태를 방치한다.
의사들은 뭐 하고 정부는 뭐 했나?
환자들은 알 수 없는 병원 돌아가는 이야기
상황이 이렇다면 환자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의사는 뭐 했는지, 정부는 뭐 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봉직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신의 수입을 병원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입장이 되는 의사가 대다수인데, 이 경우 ‘진료 활성화’를 부르짖는 병원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이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물론 더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는 보상이 따라간다. 의대 증원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특히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극심했던 것은, 이미 자영업자로 무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유행에 대응하면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실태를 깨달았다. 의료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공공의료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공공의료원이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뉴스를 자주 만나는데, 이는 공공의료원의 운영 취지를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일이다. 요새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공공의료원을 이전해 공공의료원을 이용해야 할 취약 계층이 방문하기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4조 원을 들여 공공의료 기관을 선진국 수준인 3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려는 움직임이 극심한 조세저항에 직면하는 현실에서는 의료보험과 별도의 예산을 투여해서 공공의료를 재정비해야 하지만, 실제로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사회복지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동안 보건의료 예산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날카로운 분석과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다
저자인 김현아 교수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자본에 종속된 병원, 수익에 눈이 먼 제약회사 및 의료 기업, 전문성을 잃어가는 의사, 왜곡된 시스템을 방치하는 정부,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큰 병원만 선호하는 환자 등 의료 시스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체를 포괄한다. 모두 나름의 입장과 논리는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만 앞세우다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고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큰 틀에서 문제를 살펴보아야 제대로 된 해결책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의료가 무엇인지, 의학이 추구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삶이 끝나가도 병원에 가면 해결책이 있으리라 믿게 되었고, 죽음을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하는 재앙으로 여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 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이다”. 또한 완벽한 건강 상태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나 질병과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의 구호 아래 수많은 검사들을 행하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 소견 속에서 걱정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죽음과 질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불만이 쌓인 환자들이 많을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이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자본주의와 기술 중독, 국가의 방치가 만든 익숙해진 풍경들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도대체 병원에 가면 검사 말고 하는 게 뭐냐?
병원 다니면서 생긴 불만에는 이유가 있다
병원에 가서 오랜 시간 대기하다가 의사 앞에 앉으면 3분 이상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다. 이 같은 현실에 붙은 이름이 ‘3분 진료’다. 그러면 환자는 병원 가서 진료 말고 무엇을 하나? 검사를 한다. 이 검사 저 검사 하다 보면 병원에서 잡아먹는 돈은 눈덩이처럼 커진다. 최근 병원에 가본 환자라면 이런 불만을 한 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에 따르면 지금과 같은 상황의 배후에는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기본적인 의료수가가 낮아서 의사들은 더 많은 환자를 보아야 손해를 보지 않을 수 있고, 부족한 수익을 검사로 보충한다. 병원에서는 우수성이 검증되지 않는 첨단 의료 기기들을 자본의 논리에 따라 대대적으로 홍보한다. 다른 한편에서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늘도 현장을 떠난다. 얼마 전 ‘조용한 사직’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는데, 우리나라 필수 의료 의사들은 오래전부터 ‘조용한 사직’ 중이었다.
우리가 병원이나 뉴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문제들은 따로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의료 시스템이라는 거대한 구조에 결함이 생기면서 나타나는 개별적인 징후이다. 이 책에서는 크게 자본 종속, 기술 중독, 병원의 과도한 수익 추구, 정부의 방치를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현재 의료 시스템의 문제를 차근차근 진단한다. 결국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문제 해결에 가까이 가려면 일방적이고 평면적인 비난은 지양하고 문제의 배경에서 작동하는 메커니즘을 큰 틀에서 이해해야 한다.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면 가장 큰 책임을 가진 주체가 보이고 지금보다는 나은 대안을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검사 공화국에서 첨단 기술 중독까지,
누가 고비용 의료 행위를 조장하는가?
김현아 교수 연구팀이 ‘BMJ open’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최저임금 대비 진찰료가 낮고, 그에 반해 검사료 수준은 높았다. 즉 낮은 진찰료를 보상받기 위해 검사 수를 늘리거나 비싼 검사를 시행하고, 불필요한 투약까지 늘리는 행태가 일반화되었다는 것이다(『경향신문』, “‘3분 진료’ 원인은 최저 수준 진찰료… 과잉 검사·투약으로도 이어져”).
고가 검사에 해당하는 영상 검사들을 보면 그러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난다. 진찰료와 비교했을 때 우리나라 뇌 컴퓨터 단층 촬영(CT) 검사 수가는 8.6배인데, 이 비율이 미국의 경우 2.1배, 프랑스 5.8배, 캐나다 3.9배이다. 진찰료와 검사비 차이가 너무 심하다. 이걸 보면 우리나라의 CT 촬영 건수가 인구 대비 OECD 최고 수준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료에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다 보니 진료 시간만으로 의사는 환자를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고, 부실한 진료를 각종 검사가 대신하고 있다.
그 외에 병원은 다양한 방식으로 환자들을 고비용 의료로 몰아가고 있다. 이 책에서는 로봇 수술과 인공지능 왓슨을 사례로 들면서 첨단 기술이 어떻게 대세가 되어가는지 보여준다. 여러 연구 결과를 보면 로봇 복강경 수술이 기존의 복강경 수술에 비해 의학적으로 뚜렷하게 우수하지 않다. 그런데 기존 복강경 수술 수가는 원가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의료기기 회사와 병원은 열 배까지 수술비를 더 받을 수 있는 로봇 수술을 공격적으로 홍보하고, 로봇 수술의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왓슨 인공지능은 암 진단에 탁월하다고 홍보됐지만,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첨단 기술을 활용하는 병원이라는, 왓슨의 후광효과를 이용한 마케팅은 환자들을 현혹한다.
이들은 단순히 병원이 과도하게 이윤을 추구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 같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방식으로 운영해서는 수지타산을 맞출 수 없다고 항변한다. 정부에서는 의료수가를 통제하는 대가로 병원들의 이러한 행태를 방치한다.
의사들은 뭐 하고 정부는 뭐 했나?
환자들은 알 수 없는 병원 돌아가는 이야기
상황이 이렇다면 환자들은 이 지경이 되도록 의사는 뭐 했는지, 정부는 뭐 했는지 묻고 싶을 것이다. 이미 우리나라의 의사들은 봉직의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자신의 수입을 병원의 처분에 맡겨야 하는 입장이 되는 의사가 대다수인데, 이 경우 ‘진료 활성화’를 부르짖는 병원의 의지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더 많은 환자를 보고 더 많이 자신을 착취하게 된다. 물론 더 많은 환자를 보는 의사에게는 보상이 따라간다. 의대 증원 정책이 발표되었을 때 특히 젊은 의사들을 중심으로 반발이 극심했던 것은, 이미 자영업자로 무한 경쟁에 내몰려야 하는 상황이 더 악화될 것을 감지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유행에 대응하면서, 국민들은 우리나라 공공의료 실태를 깨달았다. 의료 접근성 면에서 세계 최고라고 자부했지만, 정작 공공의료 부분에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수준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공공의료원이 적자를 면치 못한다는 뉴스를 자주 만나는데, 이는 공공의료원의 운영 취지를 생각했을 때 당연한 일이다. 요새는 버스도 잘 다니지 않는 곳에 공공의료원을 이전해 공공의료원을 이용해야 할 취약 계층이 방문하기 더 어려운 경우가 많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4조 원을 들여 공공의료 기관을 선진국 수준인 30퍼센트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도 세웠지만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다. 건강보험료를 올리려는 움직임이 극심한 조세저항에 직면하는 현실에서는 의료보험과 별도의 예산을 투여해서 공공의료를 재정비해야 하지만, 실제로 보건복지부 예산에서 사회복지 예산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동안 보건의료 예산은 제자리걸음이었다.
날카로운 분석과 인문학적 통찰을 통해 해결책을 모색하다
저자인 김현아 교수가 이 책에서 비판하는 대상은 그야말로 전방위적이다. 자본에 종속된 병원, 수익에 눈이 먼 제약회사 및 의료 기업, 전문성을 잃어가는 의사, 왜곡된 시스템을 방치하는 정부,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큰 병원만 선호하는 환자 등 의료 시스템과 관련된 거의 모든 주체를 포괄한다. 모두 나름의 입장과 논리는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만 앞세우다가 누구도 만족하지 못하는 시스템으로 고착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큰 틀에서 문제를 살펴보아야 제대로 된 해결책에 가까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근본적으로 의료가 무엇인지, 의학이 추구해야 하는 바가 무엇인지 질문해야만 답할 수 있는 문제도 있다. 의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은 삶이 끝나가도 병원에 가면 해결책이 있으리라 믿게 되었고, 죽음을 피할 수 있고 피해야만 하는 재앙으로 여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죽음에 대한 철학이 없어진 현대인들을 포섭한 신흥 종교는 의료 산업이다. 병원은 신전이고 교리는 자본주의이다”. 또한 완벽한 건강 상태에 대한 무의미한 집착이 자리 잡으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애나 질병과 함께 잘 살아볼 수 있는 가능성도 줄어들고 있다. 그 결과 현대인들은 ‘조기 진단’, ‘조기 치료’의 구호 아래 수많은 검사들을 행하고 의미도 알 수 없는 수많은 이상 소견 속에서 걱정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죽음과 질병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해야만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다는 뜻이다.
병원에 다니면서 불만이 쌓인 환자들이 많을 것이다.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는지 제대로 파악한다면 병원을 현명하게 이용할 수도 있을지 모른다.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이 추천사에서 말한 것처럼, 이 책을 통해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추천평
김현아 교수의 『의료 비즈니스의 시대』는 통상적인 구분으로는 어느 분야에 속하는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책입니다. 내과 의사로서 평생 겪어온 진료 현장의 경험과 고민들을 풍부하게 서술하면서, 우리나라 전체 보건의료 시스템 또한 그 어느 전문가보다 깊고 넓게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는 국가가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경우 자본은 아주 쉽게 의료를 잠식하고, 현대 의료가 인간 소외를 가속화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공공의료기관들이 충분한 재정 지원 없이는 공공성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분하게 설명합니다. 그럼으로써 문제 해결 방안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의료인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자신이 처해 있는 의료 환경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만한 책입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 주영수 (국립중앙의료원 원장)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서 의사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다. 의사는 돈만 밝히고 자기 집단의 이해관계만 신경 쓰는 집단으로 매도한다. 그럴 만도 하다. 몸에 이상이 있어 의사를 찾아가면 대개는 건성으로 대한다. 의료보험 대상이 아닌 치료를 받도록 은근히 압박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가끔 도대체 의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곤 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의사는 최고 엘리트다. 최고의 전문성과 윤리성이 요구되는 집단이다. 학업 성적만 우수한 것이 아니라 장시간에 걸친 전문 교육과 고된 훈련을 거친 사람들이다. 어느 사회를 가나 존경의 대상이고 또 그래야 한다. 그런데 자기가 속한 사회가 자신들을 집단적으로 불신하고 매도하는 것을 보면 의사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러니까, ‘생각이 있는’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현아 선생의 책에서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 보았다. 한편으로 선망과 존경과 질시의 대상이고 다른 한편에선 조롱과 매도의 대상인 한국의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에 좌절하고, 무엇에 체념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항의하고, 무엇을 지켜내려고 바득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지를 나는 이 책에서 엿보았다. 우리 의료 현장의 자기 성찰이자 양심 고백이자 내부 고발이다.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그러니까, ‘생각이 있는’ 의사는 무슨 생각을 할까? 김현아 선생의 책에서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일부 보았다. 한편으로 선망과 존경과 질시의 대상이고 다른 한편에선 조롱과 매도의 대상인 한국의 의사들이 의료 현장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엇에 좌절하고, 무엇에 체념하고, 무엇에 분노하고, 무엇에 항의하고, 무엇을 지켜내려고 바득대며 하루하루를 보내는지를 나는 이 책에서 엿보았다. 우리 의료 현장의 자기 성찰이자 양심 고백이자 내부 고발이다.
-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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