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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공산당의 배신 (2025) - 1943~1973년 공산당들은 어떻게 노동계급을 배신했는가?

동방박사님 2025. 2. 22.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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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공산당들은 한때 러시아 등지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쟁취하도록 이끌었다. 

공산당원의 압도 다수는 천대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대의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마음에서 입당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에게 수시로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공산당들은 점점 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닮아 갔다. 

서방에서는 기존 질서에 영합하려 했고, 동방에서는 집권당이 돼 혁명을 가로막고 탄압했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부 참여에 눈이 멀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기 일쑤였다.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을 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 이언 버철은 이 책에서 1943~1973년에 공산당들이 어떻게 노동계급을 배신했는지 살펴보고 오늘날 좌파가 얻어야 할 교훈을 제시한다.

목차
감사의 말
한국어판 머리말
들어가며

1부 1943~1953년

1장 제2차세계대전
러시아 민족주의 | 프랑스 레지스탕스 | 그리스 | 유럽의 다른 공산당들 | 영국 | 식민지
2장 세력권 대분할
프랑스의 해방 | 이탈리아 | 그리스 | 독일 | 영국 | 동유럽 | 아시아 | 미국 | 혁명이 가능했을까?
3장 밀월 기간
프랑스 | 이탈리아 | 영국
4장 스탈린과 티토의 분열
인민민주주의 | 코민포름 | 티토와의 분열 | 동유럽에서 숙청 작업 | 서유럽의 티토주의 | 티토와 혁명가들
5장 아시아의 전쟁과 혁명
베트남 | 중국 | 한국전쟁
6장 서유럽: 다시 거리로
프랑스 | 이탈리아 | 세계노동조합연맹의 분열 | 그리스 | 영국 | 유럽의 다른 나라들 | 미국 | 평화운동

2부 1953~1963년

7장 스탈린 격하와 헝가리 혁명
소련의 위기 | 흐루쇼프의 부상 | 평화공존 | 스탈린 격하 | 냉전의 종식 | 동유럽의 위기 | 동베를린 봉기 | 1956년 폴란드 | 헝가리 | 헝가리 사태의 영향 | 중국 | 안정화
8장 제국주의와 민족주의
이집트 | 이라크 | 과테말라
9장 서방 공산당의 다중심주의
프랑스 | 이탈리아 | 덴마크 | 유럽의 다른 나라들
10장 서유럽의 공산당과 계급
프랑스 | 이탈리아 | 영국 | 벨기에 총파업 | 청년 | 여성 | 농민 | 이주 노동자 | 결론

3부 1963~1973년

11장 동쪽에서 떠오른 붉은 희망?
중소 분쟁 | 문화혁명 | 중국의 외교정책 | 국제 수준에서 마오쩌둥주의 | 동유럽의 위기 | 체코슬로바키아 | 체코슬로바키아 사태의 국제적 영향 | 1970년 폴란드 | 결론
12장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
베트남 | 인도네시아 | 라틴아메리카 | 브라질 | 쿠바 | 쿠바의 외교정책 | 게릴라전 | 칠레 | 그 후 칠레에서 벌어진
13장 혁명, 서방에서 다시 의제에 오르다
프랑스 | 이탈리아 | 영국 | 아일랜드 | 스페인 | 핀란드 | 호주

4부 결론

14장 평가와 전망
15장 이론적 파산
16장 혁명적 대안
트로츠키주의의 위기 | 새로운 시작 | 동방의 혁명적 사상


저자 소개 
저 : 이언 버철 (Ian Birchall) 
영국의 사회주의자이자 역사학자로 ‘런던 사회주의 역사가 그룹’의 회원이다. 

런던의 미들섹스대학교 프랑스어학과 부교수였고, 역사 저널 《레볼루셔너리 히스토리》의 편집위원이었다.

 한국에 소개된 저서는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마르크스, 레닌, 룩셈부르크, 트로츠키, 그람시》(공저, 2015), 《혁명의 현실성: 20세기 후반 프랑스, 칠레, 포르투갈, 이란, 폴란드의 교훈》(공저, 2011)이 있고, 《전후 유럽 공...


역 : 김동욱 
노동자연대 회원으로 <노동자 연대>와 《마르크스21》에 이슬람 혐오, 난민, 이주민, 사회주의 운동 등 다양한 주제의 글을 수십 편 번역했다.
.

책 속으로
오늘날의 좌파들(흔히 희망의 원천을 찾는 데서 어려움을 크게 겪는다) 중에는 공산당 집권기를 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로 기억하며 그리움을 느끼는 개인과 집단이 있다. 

심지어는 사회주의적 면모가 있다는 척조차 하지 않는 푸틴의 러시아를 흠모하는 듯한 이들도 있다.
--- p.14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초기 몇 년 동안 거둔 성취가 중요한 이유는 훗날 이 조직이 변질되는 것을 비판하는 데 필요한 최상의 관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 p.17

1934년에 시작된 민중전선 전략은 국제 공산당 운동의 진화 과정에서 중요한 단계였다. 

민중전선은 파시즘에 맞서는 투쟁과 자본주의에 맞서는 투쟁이 별개일 수 있다고 보는 잘못된 전제를 기초로 했고, 파시즘의 확산과 제2차세계대전의 발발을 막지 못했다. … 

그래도 민중전선은 공산당 건설에는 도움이 됐다. 

민중전선 덕분에 공산당들은 인터내셔널의 지부가 아니라 해당 나라의 독자적 정당 행세를 할 수 있었다.
--- p.18~19

소련과 서방 사이 핵무기 경쟁이 (거의) 교착 상태에 이르게 되면서 국제 공산당 운동이 소련 방어에서 하는 구실은 이제는 의미가 사라졌다. 

물론 공산당들은 여전히 [소련에] 유용한 홍보 활동을 하고 있지만, 투쟁을 이끌어도 그만 억눌러도 그만이게 됐다. 대량 살상 위협에 의존하는 강대국은 대중 동원의 정치에 관심이 없는 법이다.
--- p.21

‘사회주의’를 자처하는 나라들이 있어도 국제주의가 강화되지는 않았다. 

소련과 유고슬라비아의 관계, 그다음에는 소련과 중국의 관계가 험악해지면서 [국제 공산당 운동이라는] 단일 운동은 완전히 쪼개져 버렸고, 외국 강대국의 힘을 얻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는 [소련 말고도] 다른 선택지가 꽤 많이 생겼다.
--- p.21~22

공산당들은 점점 더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닮아 가게 됐다. … 

1950년대 중반에 사회주의로 가는 의회적 길과 부르주아 정계의 주류에 통합되는 것은 전 세계 공산당들의 장기 전략이었다. 

세계 공산당들이 대부분 1968년 소련의 체코슬로바키아 개입을 규탄한 것은 그런 변화를 아주 극적으로 보여 준 일이었다.
--- p.22

전후 프랑스 공산당은 생산을 독려해 프랑스 경제의 복구를 돕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여겼다. 

주요 노동조합인 노동조합총연맹에서 공산당원들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것이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도움이 됐다. 

프랑스 공산당의 이런 관점은 [사무총장] 토레즈가 1945년 7월 와지에에서 광원들에게 한 연설의 일부에 잘 표현돼 있다. … 

“저는 얼마 전에 에스카펠 탄광에서 일하는 젊은이 열대여섯 명이 6시에 작업을 마쳐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들었습니다. 춤을 추러 간다면서 말이죠. 이는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 p.48~49

1945년 9월 영국군이 인도차이나에 상륙했다. 포츠담회담에서 영국이 차지하기로 된 지역을 접수하기 위해서였다. 

영국군은 고법 전차 차고 노동자들이 이끄는 무장봉기에 부딪혔다. … 

가난한 교외 지역이 저항 세력의 손에 들어갔고, 많은 프랑스 식민 지배자들이 처형당했다. 

영국·프랑스 군대가 ‘질서’를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인도차이나 공산당이 통제하는 베트민(베트남독립동맹)이 자진해서 협상에 나서고 투쟁의 자제를 촉구했기 때문이다. …

 인도차이나 공산당은 프랑스군의 재주둔과 베트남의 프랑스연합 귀속을 허용하는 1946년 3월 6일 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그에 앞서 트로츠키주의 반대파의 지도자인 따투터우와 쩐반타오 등을 살해해야 했다.
--- p.60~62

스탈린과 티토의 분열은 공산당 운동에서 소련이 차지하는 우위에 기대어 지위와 정통성을 유지하던 [소련] 관료들에게 매우 중요했다. 

이런 이유로, 매우 표독스럽고 신경질적인 반응이 코민포름의 출판물을 장식했다. 

1949년 9월 1일 코민포름의 신문 〈영속적 평화를 위해, 인민민주주의를 위해〉는 “파시스트 짐승이 미쳐 날뛰다”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반소련·반마르크스주의의 길을 택한 유고슬라비아의 부르주아 민족주의 티토 패거리는 그 반공주의의 논리적 결론에 이르렀다. 바로 파시즘이다.
--- p.82~83

한국전쟁에서 가장 충격적인 점은 그것이 어떻게 시작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끝났는지일 것이다. 

1952년 말이 되자 아무도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 양측 모두에게 분명해졌다. 

더군다나 동방과 서방의 관계에서 ‘해빙’을 향한 첫 움직임이 일어났다. 

휴전회담이 얼마간 질질 끌었지만, 한국전쟁은 1953년 7월에 끝났다. 

이것은 한국전쟁을 시작한 것과 마찬가지로 끝낼 수 있었던 것도 미국과 소련이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한국전쟁은 1965년에 시작한 베트남전쟁과는 뚜렷한 차이가 있다. 

베트남전쟁에 대해, 미국과 소련은 둘 다 전쟁을 난처하게 여겼고 전쟁이 실제로 끝나기 수년 전부터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고 있었다. 

베트남인들은 전쟁의 주인공이었던 반면, 한반도 주민들은 전쟁의 피해자였다.
--- p.101~102

당대회에서 흐루쇼프는 두 가지 연설을 했다. 

첫째 연설인 공개 연설에서는 “개인숭배”를 비난했지만, 스탈린을 분명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둘째 연설인 소위 ‘비밀 연설’에서는 스탈린의 범죄들을 상세히 이야기했다.

 중대한 법률 위반 행위, 볼셰비키 지도자 살해, 제2차세계대전 중에 저지른 범죄적 책임 방기 행위, 자기 찬양, 역사 왜곡 등 뽑아 쓸 소재가 많았기에 연설은 길었다. … 

그렇지만 흐루쇼프는 표현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이며 연설했고, 비판의 한계도 분명히 했다. 

흐루쇼프 자신이 스탈린이 만든 체제의 상속인이었고, 기본적으로 그 체제를 바꾸거나 그것에 도전할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 p.141

서유럽 공산당들 사이에서 발전한 다중심주의는 결국 이 당들이 소련에 묶여 있던 연계 일부를 끊을 수 있게 하는 지점에 도달했는데, 

이는 공산당들이 의회·노조·지방자치단체에서 선거 정치를 펼치며 자국 정치 생활의 제도 내에서 할 자체의 역할을 만들어 내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만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적어도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공산당이 노동계급 내에(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특정한 부문 내에) 실질적 영향력이 있었음을 뜻한다.

 그렇지만 이는 부정적 영향력이었다. 

공산당들은 투쟁을 억제할 수는 있었지만, 어떤 투쟁을 이끌어 전진시킬 수 있었을지는 의심스럽다(설사 그러기를 원했더라도).
--- p.229~230

1970년대 초 공산주의 진영의 모습은 1950년대 초와 매우 달랐다(사실 하나의 진영이라고 말하는 것조차 거의 불가능했다). 

1950년에는 공산당들이 모두 한목소리를 냈고 티토 같은 이단자는 교황청이 이단자를 파문하듯이 소련에게 파문당했다.

 그러나 1970년대에는 소련 공산당과 경쟁하는 공산당이 6개나 됐고, 모두 자신이 정설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

 이제 다중심주의가 걷잡을 수 없이 전개되고 있었다. 이것이 서방과 저개발국에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중소 분쟁과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은 거대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공산당들이 동일시할 곳, 조언을 구할 확고한 지도부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것이었다. 

구식 스탈린주의는 빠르게 성가시고 곤란한 것이 되고 있었다. 사회민주주의로의 이행은 거의 완성됐다.
--- p.259

[칠레에서 1973년 9월 11일] 쿠데타가 일어나기 몇 달 전 노동계급의 자체 조직화 수준이 급등했는데, 특히 산티아고에서 코르돈이라는 형태의 조직이 생겨났다. 

코르돈은 노동조합원들의 지역 위원회였고 노동조합 구조 내에서 활동했지만, 독립적으로 조직됐다. 

그렇지만 아옌데는 노동자들을 동원하거나 무장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의 전략은 시종일관 우파를 정부에 끌어들이는 것, 즉 군부 지도자들을 입각시키고 기독교민주당의 지지를 얻으려 애쓰는 것이었다. 

칠레 공산당은 아옌데의 이 합헌주의 전략을 어떤 경우에도 시종일관 지지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은 군부의 위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함으로써 노동계급을 정치적으로 무장해제시키는 데 일조했다.
--- p.297

스탈린은 이미 1930년 16차 소련 공산당 당대회에서 연설하며 마르크스주의를 완전히 내버리는 데로 나아가는 길을 닦았다.

 그는 ‘변증법’으로 보면 경찰국가와 소비에트 민주주의가 같다고 말했다. 

“우리는 국가의 고사(枯死)를 주장하지만, 그럼에도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오늘날까지 존재한 국가권력 중 가장 튼튼하고 강력한 형태라는 것 또한 옳다고 여깁니다. 

국가권력의 고사로 나아가는 조건을 마련하기 위해 국가권력을 계속 발전시켜 나가는 것, 이것이 마르크스주의의 공식입니다. 

‘모순’이라고요? 예, ‘모순’입니다. 

그렇지만 모순은 사활적으로 중요하며 마르크스주의 변증법을 온전히 반영하는 것입니다.

” 이제부터는 거의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의회적 길이나 반독점 동맹 등의 전략은 모두 국가와 그것이 현대 사회에서 하는 구실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내버리는 것을 뜻한다.
--- p.367

스탈린주의는 패배의 산물이다. 스탈린주의는 러시아 혁명 뒤에 유럽 노동계급이 패배한 상황에서 생겨났고, 제2차세계대전에 뒤이어 일어난 혁명적 물결이 패배한 상황에서 성장하고 번영했다. 

억압받는 자들이 승리할 때마다 스탈린주의는 타격을 입는다. … 

그렇지만 스탈린주의는 회복 탄력성이 어마어마하다. 

이 모든 타격은 스탈린주의가 공산당 운동을 장악하는 힘이 되살아나는 데 도움이 된다. 

스탈린주의는 저절로 사멸하지 않을 것이다(설령 그런다 해도 그때는 이미 재앙이 인류 전체를 에워싼 뒤일 것이다). 오직 혁명적 대안을 건설해야만 스탈린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
--- p.379~380

출판사 리뷰
공산당의 기원은 20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1차세계대전이 몰고 온 애국주의 광풍에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부분 굴복해 국제주의를 버리고 자국 정부를 지지하면서 제2인터내셔널이 수치스럽게 붕괴했다. 

그 잿더미 속에서 떠오른 새 세대 혁명 투사들이 각국에서 공산당을 건설하고 제3인터내셔널(공산주의인터내셔널, 즉 코민테른)을 수립했다. 

공산당들은 한때 러시아 등지에서 노동계급이 권력을 쟁취하도록 이끌었다. 

공산당원의 압도 다수는 천대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의 대의에 진심으로 헌신하는 마음에서 입당한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기존 질서의 수호자들에게 수시로 박해를 당했다.

그러나 제2차세계대전 이후 공산당들은 점점 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닮아 갔다. 

서방에서는 기존 질서에 영합하려 했고, 동방에서는 집권당이 돼 혁명을 가로막고 탄압했으며,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정부 참여에 눈이 멀어 노동계급을 배신하기 일쑤였다. 

이 책은 1946년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에서, 1953년 베를린에서, 1956년 헝가리에서,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와 프랑스에서, 1969년 이탈리아에서, 1973년 칠레에서, 마오쩌둥 시대 중국에서 공산당이 어떤 구실을 했는지 살펴본다.

희망과 배신이 뒤엉킨 공산당의 역사

1989~1991년 소련과 동구권이 붕괴하자 그 사회 체제를 합리화하고 지지하던 전 세계의 공산당들도 급속히 쇠퇴·해산하면서 소멸하는 듯했지만, 오늘날에는 격화하는 미·중 갈등을 배경으로 (중국·북한·쿠바 바깥에서도)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경쟁하며 소생하고 있다. 

지은이 이언 버철이 한국어판 머리말에 썼듯이 “오늘날의 좌파들(흔히 희망의 원천을 찾는 데서 어려움을 크게 겪는다) 중에는 공산당 집권기를 공산주의가 어느 정도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로 기억하며 그리움을 느끼는 개인과 집단이 있다.

 심지어는 사회주의적 면모가 있다는 척조차 하지 않는 푸틴의 러시아를 흠모하는 듯한 이들도 있다.”

그러나 희망과 배신이 뒤엉킨 과거 공산당의 역사를 “그저 잊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할 것이다.

역사는 결코 되풀이되지 않지만,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얻을 것이 상당히 많다.

과거의 독특한 과정들을 탐구함으로써 우리는 미래의 독특한 과정들에 대처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 공산당들이 서유럽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아직 건재했고 사회민주주의와 만만찮게 경쟁했으며 유러코뮤니즘으로 진화해 가던 과정을 다룬 이 책이 그런 과제에 도움이 될 것이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사회민주당들의 배신의 역사를 살펴봤던 지은이의 또 다른 책 『서구 사회민주주의의 배신 1944~1985』와 함께 읽기를 추천한다.

* 출처 : 예스24 <https://www.yes24.com/Product/Goods/1417989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