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역사이야기 (독서)/3.망우역사인물

이중섭 평전

동방박사님 2022. 4. 25.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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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는 산문이 아니라 시였다.”한 편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 간 천재화가 이중섭. 고은의 이 책은 일제 식민지와 한국전쟁이라는 피폐한 시대를 오직 예술가로 살아낸 ‘숙명의 비극자’ 이중섭의 생애와 예술을 기록한 책이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사과를 주면 먹지 않고 그리기부터 했던 어린 시절, 오산중학에서 스승 임용련과의 만남, 일본 유학 시절과 일본 여성 마사코와의 운명적 만남과 결혼, 전쟁과 혹독한 가난으로 인한 가족과의 이별, 피난지에서의 고통스러운 생활, 동료 예술가들과의 교제, 가난과 병고 속에서도 놓지 않았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예술적 성취 등 이중섭의 파란만장한 40년 생애가 담겨 있다.

목차

고도 농가의 아들
어머니라는 원시적 경험
어린 시절의 평양 체험
눈부신 오산 시대
중섭 예술의 첫걸음
조선적 그리고 조선적
또 하나의 고향 원산
먼저 도쿄 데이고쿠 미술학교
자기 자신의 주제와 방법
분카가쿠잉의 ‘루오’
도쿄 전람회의 데뷔
숙명의 야마모토
그들은 사랑을 만들었다
프랑스, 태양상, 기타
그녀의 순애보
화실 속의 열정
소 ? 생선 그리고……
중섭의 원산 시대
또 하나의 소재 닭
해방된 항구에서
동자 ? 동자상
한 러시아인의 예찬
공산주의와 충돌
사물의 소실점
원산 시대의 현실적 불명예
북진과 후퇴 사이에서
피난 예술가의 동해
예술에 대한 첫 회의
범일동 아카자키 창고의 피난민
부산의 자유
중섭 동중국해에 가다
순수의 서귀포 시대
게와 까마귀와 파이프와
생명의 우의
부산의 예술 군상
중선 전설 하나 둘
그 찬란한 싸구려 술
그의 첫 그룹 ‘기조전’
남덕 들의 일본 귀국
은지화의 예술
방황과 극복
중섭의 예술 도그마
중섭 에로티시즘
전설은 전설을 낳고
회화는 캔버스로만 가능한가
중섭은 화가냐 시인이냐
이데올로기 피해망상
마음속의 일본행
통영 시대의 정열
중섭 회화의 중간적 극치
1953년 겨울의 도일
도쿄에서의 만남
일본의 5일간
중섭 업적의 경이
거제도의 충동
진주의 파노라마
중섭의 미완성 예술
남덕의 편지
대구 시외의 사생
서울의 중섭 신화
1950년대
원형 광태
급성의 제작 생활
북방의 향수
스폰서 오산학교
1955년 ‘이중섭 작품전’
중섭전의 얼굴
미술의 잔치, 술의 잔치
마지막 대구 생활
대구의 이중섭전
경복여관 9호실의 드라마
드디어 성가병원
정신 이상의 거식증
삼선교 시대의 낙서
다시 한 번 명동화단
절필 〈돌아오지 않는 강〉
중섭의 만가
이중섭 연보
 

저자 소개 

저 : 고은 (高銀, 호:파옹(波翁), 본명:고은태(高銀泰), 법명:일초(一超))
 
한국의 대표적인 참여시인. 본명은 고은태로 1933년 전북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으며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작 활동을 하다가 1958년 『현대문학』에 시「봄밤의 말씀」「눈길」「천은사운」등을 추천받아 등단하였다. 1960년 첫 시집『피안감성』간행하였으며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
 

책 속으로

그는 돈을 벌려면 얼마든지 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운명에 조화되었다. 그는 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여지가 없는 전혀 다른 예술 공간에 억류된 창조적 수인(囚人)이었다. 그가 사는 세계는 반드시 고(苦)의 세계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의 세계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럼으로써 그의 예술은 고의 반대물인 상락(常樂)의 세계를 표현할 수 있었다.
--- p.354
그가 그리는 대상이 자기 자신이거나 그의 아내거나 또는 소나 개, 닭이라 하더라도 그것들을 먼저 사랑함으로써 그릴 수 있었다. 적어도 중섭에게 예술은 하나의 끊임없는 사랑, 변함없는 사랑이어야 했다. 그리고 그 예술의 주제가 되는 사물을 그런 사랑으로 반영구적으로 또는 영구적 관계로 유지하지 않으면 그의 미는 탄생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소의 애인이며 학과 사슴의 애인이며 닭의 애인이며 어린아이들과 생선의 애인이었다. 만상(萬象)의 애인으로서 그는 동양의 신선이 될 수 있었다.
--- p.221
아마도 그가 일생 동안 소를 본 사실은 목동이나 도살장 사람이나 소시장의 장꾼보다 훨씬 많았을 것이다.

송도원에 나가서 하루 내내 어떤 소만을 관찰하기도 하고 여러 마리의 소를 관찰하기도 했다. ……사물은 그것을 객체로 대하는 동안 곧 혐오감이 생기거나 싫증이 생기는 것이다. 그럴 경우 사물과 사물 관계자는 절연되어 있다. 그 절연을 어떤 인식이나 사랑, 지혜를 통해서 극복하고 사물을 자기화하는 것이 가장 깊은 철학이며 가장 높은 문학이고 예술인 것이다. 중섭은 그런 일을 해낸 것이다.

그가 사물 자체가 되거나 사물이 그의 인식 자장(磁場)에 완전히 들러붙거나 해야 그의 관찰은 깊은 피로감의 행복으로서 휴지부를 찍는 것이다.

“송도원 부근의 농부들이 날마다 나타나서 하루 해가 저물도록 소를 보고 있던 중섭을 처음에는 소도둑인 줄 알고 고발한 일도 있었대요.”

“어떤 농부는 그를 미친놈이라고 쫓기도 하고, 아마도 소도둑이나 소백정이 미쳐서 소 옆에만 나와 있을 거라는 소문이 있었대요.”
--- p.79~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