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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감수성과 삶의 방식이 출현한 20세기 초를 주목하라!
『내 곁의 키치』, 『인공낙원을 거닐다』 등 저서를 통해 일상의 사물, 공간, 이미지 등의 의미를 탐구해 온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100년 전 근대 세계의 시간 여행자가 되어 돌아왔다. 시간 여행의 주요 시공간은 일제강점기의 이 땅이다. 흔히 일제강점기라 하면 일제의 수탈기 혹은 모던보이/모던걸이 활보하는 낭만적 시대로 이해하곤 한다. 저자는 그러한 일반의 시선에서 벗어나 20세기 초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감각과 감수성, 삶의 방식과 모습들이 처음으로 이 땅에 출현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유입과 그것이 작동하는 모습, 근대적 합리성 이면의 허영과 잘못된 신화 등을 읽어 낸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감각과 감수성을 넘어설 가능성을 찾는다.
책은 시계, 투시법, 미인대회, 우량아선발대회,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 등 일곱 가지 근대적 문화와 산물을 더께 앉은 먼지를 걷어내고 바라보며, 100년 전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다르며 또 닮아 있는가 드러낸다. 또한 100년 전 사람들은 왜 근대 산물에 열광했을까? 열광의 결과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삶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오늘날, 우리가 감수하는 고달픔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감수성과 삶의 방식이 출현한 20세기 초를 주목하라!
『내 곁의 키치』, 『인공낙원을 거닐다』 등 저서를 통해 일상의 사물, 공간, 이미지 등의 의미를 탐구해 온 오창섭 건국대 디자인학부 교수가 100년 전 근대 세계의 시간 여행자가 되어 돌아왔다. 시간 여행의 주요 시공간은 일제강점기의 이 땅이다. 흔히 일제강점기라 하면 일제의 수탈기 혹은 모던보이/모던걸이 활보하는 낭만적 시대로 이해하곤 한다. 저자는 그러한 일반의 시선에서 벗어나 20세기 초는 오늘을 사는 우리의 감각과 감수성, 삶의 방식과 모습들이 처음으로 이 땅에 출현했던 시기라는 점에서 새롭게 주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의 유입과 그것이 작동하는 모습, 근대적 합리성 이면의 허영과 잘못된 신화 등을 읽어 낸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감각과 감수성을 넘어설 가능성을 찾는다.
책은 시계, 투시법, 미인대회, 우량아선발대회,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 등 일곱 가지 근대적 문화와 산물을 더께 앉은 먼지를 걷어내고 바라보며, 100년 전 세상은 지금과 얼마나 다르며 또 닮아 있는가 드러낸다. 또한 100년 전 사람들은 왜 근대 산물에 열광했을까? 열광의 결과란 무엇이었는가?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삶을 위한 경쟁이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오늘날, 우리가 감수하는 고달픔은 어디에서 기인하는지 생각해 보게 한다
목차
1. 시계: 제국의 시간을 넘어 시간의 제국으로
시간 여행자의 물음
기차를 타고 온 근대적 시간
시간 기계
오만, 그리고 편견
근대를 가르치는 스승
손목시계, 제국의 점령군
2. 투시법: 외눈박이 근대의 차가운 시선
유령들에 둘러싸인 눈
관찰하는 지식
앎과 경험, 그리고 보는 방식의 변증법
투시법을 장착한 눈
마법의 순간
명령하는 시선, 통제받는 시선
특권을 가진 자리
3. 미인대회: 아름다운 몸의 탄생
미학적 경험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된 제2의 피부
아가씨 다리들이여 꼿꼿하고 날쌔시라!
미인투표
비만, 건강에서 비정상으로
4. 우량아선발대회: 어린이의 발견과 계몽이라는 이름의 신화
호명된 어린이
세 가지 시선에 담긴 세 가지 욕망
기계, 혹은 전쟁터
아동예찬
신화 너머 신화
5. 문화주택: 스위트 홈의 이미지, 행복의 소품들
새우잠을 자더라도
문화주택
즐거운 나의 집
스위트 홈을 위한 소품들
6. 백화점: 거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유혹
백화점을 백화점이게 하는 것
예언자 아케이드
백화점, 식민지 경성을 점령하다
나르키소스의 거울
소비하는 주체, 혹은 자본주의의 신민
나는 훔친다, 고로 존재한다
7. 기차: 미끈한 근대의 비정한 질주
서울역과 근대 체험
비정한 근대
매끈한 기계 이미지
질주, 그리고 전통의 죽음
아직 오지 않은 근대
시간 여행자의 물음
기차를 타고 온 근대적 시간
시간 기계
오만, 그리고 편견
근대를 가르치는 스승
손목시계, 제국의 점령군
2. 투시법: 외눈박이 근대의 차가운 시선
유령들에 둘러싸인 눈
관찰하는 지식
앎과 경험, 그리고 보는 방식의 변증법
투시법을 장착한 눈
마법의 순간
명령하는 시선, 통제받는 시선
특권을 가진 자리
3. 미인대회: 아름다운 몸의 탄생
미학적 경험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된 제2의 피부
아가씨 다리들이여 꼿꼿하고 날쌔시라!
미인투표
비만, 건강에서 비정상으로
4. 우량아선발대회: 어린이의 발견과 계몽이라는 이름의 신화
호명된 어린이
세 가지 시선에 담긴 세 가지 욕망
기계, 혹은 전쟁터
아동예찬
신화 너머 신화
5. 문화주택: 스위트 홈의 이미지, 행복의 소품들
새우잠을 자더라도
문화주택
즐거운 나의 집
스위트 홈을 위한 소품들
6. 백화점: 거부할 수 없는 자본주의의 유혹
백화점을 백화점이게 하는 것
예언자 아케이드
백화점, 식민지 경성을 점령하다
나르키소스의 거울
소비하는 주체, 혹은 자본주의의 신민
나는 훔친다, 고로 존재한다
7. 기차: 미끈한 근대의 비정한 질주
서울역과 근대 체험
비정한 근대
매끈한 기계 이미지
질주, 그리고 전통의 죽음
아직 오지 않은 근대
저자 소개
책 속으로
20여 년 전, 어느 날이었다. 나는 도서관의 빛바랜 신문 속에서 광고 하나를 만났다. 그것은 1925년에 제작된 밀크캐러멜 광고였다. 우산을 들고서 캐러멜을 먹고 있는 인물 위로 “볕이 난다 한 갑, 비가 온다 두 갑, 먹으면 살찌는 밀크캐러멜”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쓰여진 광고! 광고는 대범하게도 ‘이 캐러멜은 먹으면 살이 찝니다. 그러니 구매하십시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매일같이 살빼기 전쟁을 벌이고 있는 현재의 시선으로 보면 참으로 당혹스러운 내용이 아닐 수 없다. 광고의 이미지는 한동안 하나의 의문부호로 남아 주위를 맴돌았다.
--- 「머리말」중에서
1927년 6월호 『신문춘추』에도 유사한 인식을 담은 삽화가 등장한다. 안석주가 그린 「모던걸의 장신운동」이라는 이 삽화에는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고, 손목에는 시계를 차고 있는 여성들의 과시적 몸짓이 유머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은 당시 손목시계가 여성의 물건이고, 장식품의 일종이었으며, 사회에서 신여성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여성의 물건이라는 인식은 점차 흐려졌다. 손목시계가 대중화된 것, 특히 남성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군사적 맥락에서의 요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는 그러한 필요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내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그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세기 전후로 일본은 여러 전쟁의 주인공이었다. 전쟁에 참여한 소수의 군인들, 특히 하사관 이상의 군인들은 회중시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회중시계를 사용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그것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군 하사관들은 회중시계를 손목에 찰 수 있도록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 「시계」중에서
뚱뚱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매체를 통해 확산되었다. 1935년 9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뚱뚱보는 선생 될 자격 없다」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기사는 뚱뚱한 여자 교사들을 엄금하기로 했다는 미국 뉴욕 교육국의 발표를 소개하고 있다. 뉴욕 교육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뚱뚱한 여자는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병리학적으로도 불건전한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내용은 의사들의 연구로 밝혀졌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 「미인대회」중에서
서울역의 전신 ‘남대문 정차장’
일본 건축가 쓰카모토 야스시의 설계로 건축된 경성역
초기 서울역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이들은 서구적 표정을 한 서울역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근대도시 서울이라는 곳에 도착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기하학적인 국제주의 양식이 아닌 중세풍의 외양을 취하고 있었지만 당시 서울역은 근대를 가장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자 건축물로 경험되었다. 만일 그 건물이 르네상스 양식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나 중세의 양식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근대의 이미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는 ‘근대’가 곧 ‘서구’였고, ‘서구’가 곧 ‘근대’였던 우리 근대 경험의 고유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머리말」중에서
1927년 6월호 『신문춘추』에도 유사한 인식을 담은 삽화가 등장한다. 안석주가 그린 「모던걸의 장신운동」이라는 이 삽화에는 손가락에는 반지를 끼고, 손목에는 시계를 차고 있는 여성들의 과시적 몸짓이 유머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그림은 당시 손목시계가 여성의 물건이고, 장식품의 일종이었으며, 사회에서 신여성임을 증명하는 표식이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하지만 손목시계가 여성의 물건이라는 인식은 점차 흐려졌다. 손목시계가 대중화된 것, 특히 남성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 군사적 맥락에서의 요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군대는 그러한 필요를 적극적으로 생산해 내었다. 일본의 경우를 보면 그 내용을 명확히 알 수 있다. 20세기 전후로 일본은 여러 전쟁의 주인공이었다. 전쟁에 참여한 소수의 군인들, 특히 하사관 이상의 군인들은 회중시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전쟁터에서 회중시계를 사용하는 것은 불편한 일이었다. 호주머니에서 꺼내, 시간을 확인한 후, 그것을 다시 호주머니에 넣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일본군 하사관들은 회중시계를 손목에 찰 수 있도록 개조하여 사용하였다.
--- 「시계」중에서
뚱뚱한 여성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매체를 통해 확산되었다. 1935년 9월 5일자 『동아일보』에는 「뚱뚱보는 선생 될 자격 없다」라는 기사가 등장한다. 기사는 뚱뚱한 여자 교사들을 엄금하기로 했다는 미국 뉴욕 교육국의 발표를 소개하고 있다. 뉴욕 교육국이 이러한 결정을 내린 것은 “뚱뚱한 여자는 정신적으로만이 아니라 병리학적으로도 불건전한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 내용은 의사들의 연구로 밝혀졌다고 기사는 쓰고 있다.
--- 「미인대회」중에서
서울역의 전신 ‘남대문 정차장’
일본 건축가 쓰카모토 야스시의 설계로 건축된 경성역
초기 서울역은 단순한 역사가 아니었다.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오는 이들은 서구적 표정을 한 서울역의 모습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근대도시 서울이라는 곳에 도착하였음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기하학적인 국제주의 양식이 아닌 중세풍의 외양을 취하고 있었지만 당시 서울역은 근대를 가장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자 건축물로 경험되었다. 만일 그 건물이 르네상스 양식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나 중세의 양식이었다 하더라도 당시 사람들은 그것을 근대의 이미지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이는 ‘근대’가 곧 ‘서구’였고, ‘서구’가 곧 ‘근대’였던 우리 근대 경험의 고유성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 「기차」중에서
출판사 리뷰
시계, 문화주택, 백화점, 기차는 20세기 초의 스마트폰
100년 전 들어온 근대 장치들의 이상과 현실은?
1923년 12월 22일자 신문에 실린 양화점(洋靴店) 광고를 보자. “시대의 요구에 적합한 이상적 실용품은 청년양화점”이란 홍보문구의 배경 이미지로 벌판을 질주하는 기차가 그려져 있다. 당시 기차는 바로 ‘시대의 요구’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기차가 조선 땅에서 처음 달리기 시작한 건 1899년이었다. 기차가 처음부터 이 땅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 정부 관리들조차도 기차의 정해진 발차시간에 불만을 터뜨리며 ‘어서 출발하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기차를 도입한 이들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시간을 지키지 않는 조선인’은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기차는 적절하고 강력한 계몽 수단이었다. 개통 후 30여 년 뒤, ‘청년양화점’ 광고에서 의미하는 기차의 이미지를 보면, 계몽은 그 전에 이미 충분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기차역 시간표는 이 땅에 처음으로 시계라는 ‘장치’를 선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100년 전 사람들과 달리 기계적인 시간을 지키는 삶이 옳고 당연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며 시간에 맞춰 생활한다. 하지만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시계의 리듬에 몸을 맞추어 살던 이들이 아니다. 이 땅에 시계는 처음에는 기차역 시간표의 모습으로 들어와 여성의 장신구, 과시적 문명의 기계로, 그리고 사이렌 소리, 새마을운동 노래 등으로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계몽은 무자비한 것이었다.
“어떤 소년이 몽둥이를 가지고 철도 위에서 놀다가 철도 위에 몽둥이를 하나 남겨 두었다. 일본인들은 소년을 붙들어서 총살시켰다. 이 범죄자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다.”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이 같은 증언은 근대가 우리에게 가한 폭력의 한 단면이다.
투시법이 서당을 몰아냈다!
양주삼 가족이 흰옷을 입지 않는 까닭은?
100년 전 세상의 사람, 사건, 사실을 하나로 엮어 읽는 흥미로운 인문학적 성찰
1919년에 조선으로 온 영국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서당 풍경(The School-old Style)」을 보자. 김홍도의 것보다 더 생동감 있어 보이는 당시 서당 풍경은 옹기종기 자유롭게 앉아 책 읽는 아이들의 소리로 들썩이는 듯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근대 학교, 공장, 도시를 표현한 사진이나 그림은 이와 다르다. 일정한 방향으로 도열한 학생, 노동자, 건물과 가로수는 소위 투시법(원근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총독부는 시정 2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엽서에 근대 학교와 전통 서당 사진을 한 장에 담아 보여준다. 총독부의 엽서에는 ‘질서’와 ‘무질서’를 대비시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한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근대의 장치가 일제의 강요를 통해서만 이 땅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소위 개화된 지식인들은 ‘문화주택’으로 지칭된 서양식 주택 속에 피아노가 있는 서양식 스위트 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1930년에 감리교의 초대 총리사 지위에 오른 양주삼은 흰옷을 입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경제적이지 못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시 미국 유학파로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은 1921년에 「오락은 화평의 근본」이라는 칼럼에서 행복한 가정의 취미생활로 피아노, 화단, 풍경화 등을 꼽았다.
“어느 가정에든지 때로 피아노 소리가 울려 나오거나 미릿따운 풍경화가 한 장이 걸려 있다 하면 그 가정의 단란하고 평화로운 소식은 반드시 그 한 곡조 울림과 한 폭 그림에서 얻어듣고 볼 수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김활란과 같은 인식은 신문 만화에서도 발견된다. 1931년 동아일보 ‘작금의 사회상’이라는 만화에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부자계급’의 문화주택과 부부의 고성과 아이 우는 소리가 뒤엉킨 ‘프롤레타리아’의 오두막집이 대조를 이룬다. 전자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후자는 싸늘히 식어 있다. 심지어 문화주택에서 버린 하수는 배수관을 타고 오두막 앞에서 배출되고 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문화주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멀었다. 당시 신문에는 토막집 강제 이전과 철거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토막 소제(掃除) 선풍”이란 표현도 보인다. “경성부에서는 계획대로 신당리 내에 산재한 토막 200여 호를 모조리 십일 내에 동소문 밖 정릉리로 철거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기사 내용은 1980년대를 전후한 서울 재개발과 수도권 신도시 열풍으로 반복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진보보다는 반복을 속성으로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같은 반성적 물음을 예기치 않게 던지며 근대라는 텍스트의 현재성을 환기시키곤 한다.
『근대의 역습』은 잘 알려진 역사보다는 신문 사회면에 스치듯 등장한 사람, 사건, 사실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우리 근대 풍경 이면의 진실을 읽어 낸다.책은 주제별로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시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현대의 감수성, 다시 말해 근대적 시간 제국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2장은 전통적 주체가 근대적 시각체제라고 할 수 있는 투시법적 지각방식을 어떻게 내면화하였는지, 그러한 지각방식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었고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장은 몸에 대한 지각방식의 변화를 토대로, 아름다운 몸에 대한 오늘날의 기준이 형성된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4장은 어린이의 발견이 삶의 공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5장의 주제는 문화주택이다. 여기서는 현대인이 꿈꾸는 스위트 홈의 이미지와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루었다. 6장은 백화점을 통해 자본주의의 논리에 길들여져 갔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7장은 근대의 비정함을 다루고 있다. 근대가 어떻게 일상 삶의 주체들을 길들였는지, 더 나아가 근대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차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이 깜짝 놀랄 만큼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우리를 디자인하는 오늘의 장치들’을 주목하게 한다. 스마트폰, 신용카드, 선거제도, 아파트, 고용 시스템 등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장치들을 보자. 흔히 우리는 편리한 삶을 위해 그러한 장치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과연 우리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로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런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장치들의 욕망에 따라 우리가 변해 가는 것은 아닐까?
『근대의 역습』은 현재의 삶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초로 우리를 안내한 후 “온갖 디지털 장치들이 감시에 대한 욕망, 통제에 대한 욕망, 자본에 대한 욕망을 편리한 삶, 안전한 삶, 스마트한 삶이라는 구호로 가린” 오늘의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100년간의 시간 여행이다.
100년 전 들어온 근대 장치들의 이상과 현실은?
1923년 12월 22일자 신문에 실린 양화점(洋靴店) 광고를 보자. “시대의 요구에 적합한 이상적 실용품은 청년양화점”이란 홍보문구의 배경 이미지로 벌판을 질주하는 기차가 그려져 있다. 당시 기차는 바로 ‘시대의 요구’의 상징물이었던 것이다. 기차가 조선 땅에서 처음 달리기 시작한 건 1899년이었다. 기차가 처음부터 이 땅에서 환영받은 것은 아니었다. 대한제국 정부 관리들조차도 기차의 정해진 발차시간에 불만을 터뜨리며 ‘어서 출발하라’고 떼를 쓰기도 했다고 한다. 기차를 도입한 이들이 보기에 ‘무질서하고 시간을 지키지 않는 조선인’은 계몽되어야 할 대상이었고, 기차는 적절하고 강력한 계몽 수단이었다. 개통 후 30여 년 뒤, ‘청년양화점’ 광고에서 의미하는 기차의 이미지를 보면, 계몽은 그 전에 이미 충분히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기차역 시간표는 이 땅에 처음으로 시계라는 ‘장치’를 선보인 것이다. 오늘날의 우리들은 100년 전 사람들과 달리 기계적인 시간을 지키는 삶이 옳고 당연함을 의심하지 않는다.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며 시간에 맞춰 생활한다. 하지만 100년 전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시계의 리듬에 몸을 맞추어 살던 이들이 아니다. 이 땅에 시계는 처음에는 기차역 시간표의 모습으로 들어와 여성의 장신구, 과시적 문명의 기계로, 그리고 사이렌 소리, 새마을운동 노래 등으로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계몽은 무자비한 것이었다.
“어떤 소년이 몽둥이를 가지고 철도 위에서 놀다가 철도 위에 몽둥이를 하나 남겨 두었다. 일본인들은 소년을 붙들어서 총살시켰다. 이 범죄자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었다.”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독립운동가 이상설의 이 같은 증언은 근대가 우리에게 가한 폭력의 한 단면이다.
투시법이 서당을 몰아냈다!
양주삼 가족이 흰옷을 입지 않는 까닭은?
100년 전 세상의 사람, 사건, 사실을 하나로 엮어 읽는 흥미로운 인문학적 성찰
1919년에 조선으로 온 영국의 여성 화가 엘리자베스 키스가 그린 「서당 풍경(The School-old Style)」을 보자. 김홍도의 것보다 더 생동감 있어 보이는 당시 서당 풍경은 옹기종기 자유롭게 앉아 책 읽는 아이들의 소리로 들썩이는 듯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근대 학교, 공장, 도시를 표현한 사진이나 그림은 이와 다르다. 일정한 방향으로 도열한 학생, 노동자, 건물과 가로수는 소위 투시법(원근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조선총독부는 시정 2주년을 기념해 발행한 엽서에 근대 학교와 전통 서당 사진을 한 장에 담아 보여준다. 총독부의 엽서에는 ‘질서’와 ‘무질서’를 대비시켜 자신들의 정당성을 확인받고자 한 의도가 드러나 있다.
근대의 장치가 일제의 강요를 통해서만 이 땅에 정착한 것은 아니다. 소위 개화된 지식인들은 ‘문화주택’으로 지칭된 서양식 주택 속에 피아노가 있는 서양식 스위트 홈의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1930년에 감리교의 초대 총리사 지위에 오른 양주삼은 흰옷을 입지 않았다. 그 이유를 그는 경제적이지 못하고 재미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역시 미국 유학파로 이화여대 총장을 역임한 김활란은 1921년에 「오락은 화평의 근본」이라는 칼럼에서 행복한 가정의 취미생활로 피아노, 화단, 풍경화 등을 꼽았다.
“어느 가정에든지 때로 피아노 소리가 울려 나오거나 미릿따운 풍경화가 한 장이 걸려 있다 하면 그 가정의 단란하고 평화로운 소식은 반드시 그 한 곡조 울림과 한 폭 그림에서 얻어듣고 볼 수가 있을 것이라 합니다.”
김활란과 같은 인식은 신문 만화에서도 발견된다. 1931년 동아일보 ‘작금의 사회상’이라는 만화에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는 ‘부자계급’의 문화주택과 부부의 고성과 아이 우는 소리가 뒤엉킨 ‘프롤레타리아’의 오두막집이 대조를 이룬다. 전자의 굴뚝에선 연기가 피어오르지만 후자는 싸늘히 식어 있다. 심지어 문화주택에서 버린 하수는 배수관을 타고 오두막 앞에서 배출되고 있다.
당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문화주택은 선망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멀었다. 당시 신문에는 토막집 강제 이전과 철거에 대한 기사가 끊이지 않았다. “토막 소제(掃除) 선풍”이란 표현도 보인다. “경성부에서는 계획대로 신당리 내에 산재한 토막 200여 호를 모조리 십일 내에 동소문 밖 정릉리로 철거하라고 명령하였다”는 기사 내용은 1980년대를 전후한 서울 재개발과 수도권 신도시 열풍으로 반복되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어쩌면 역사는 그렇게 진보보다는 반복을 속성으로 하는 것일까? 저자는 이 같은 반성적 물음을 예기치 않게 던지며 근대라는 텍스트의 현재성을 환기시키곤 한다.
『근대의 역습』은 잘 알려진 역사보다는 신문 사회면에 스치듯 등장한 사람, 사건, 사실을 치밀하게 재구성하여 우리 근대 풍경 이면의 진실을 읽어 낸다.책은 주제별로 일곱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1장에서는 시계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현대의 감수성, 다시 말해 근대적 시간 제국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2장은 전통적 주체가 근대적 시각체제라고 할 수 있는 투시법적 지각방식을 어떻게 내면화하였는지, 그러한 지각방식이 어떻게 세계를 바라보게 만들었고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3장은 몸에 대한 지각방식의 변화를 토대로, 아름다운 몸에 대한 오늘날의 기준이 형성된 경로를 탐색하고 있다. 4장은 어린이의 발견이 삶의 공간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5장의 주제는 문화주택이다. 여기서는 현대인이 꿈꾸는 스위트 홈의 이미지와 그곳에서의 구체적인 삶의 내용이 어떻게 탄생하였는지를 다루었다. 6장은 백화점을 통해 자본주의의 논리에 길들여져 갔던 당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7장은 근대의 비정함을 다루고 있다. 근대가 어떻게 일상 삶의 주체들을 길들였는지, 더 나아가 근대가 함의하고 있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기차를 매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은 ‘우리를 디자인한 근대의 장치들’이 깜짝 놀랄 만큼 여전한 모습으로 우리의 삶 속에서 작동하고 있음을 깨닫게 해 준다. 또한 ‘우리를 디자인하는 오늘의 장치들’을 주목하게 한다. 스마트폰, 신용카드, 선거제도, 아파트, 고용 시스템 등 우리 삶의 방식을 바꾸는 장치들을 보자. 흔히 우리는 편리한 삶을 위해 그러한 장치들을 이용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들은 과연 우리 스스로의 필요와 의지로 욕망의 대상이 되었을까? 그런 듯 보이지만 실은 그 장치들의 욕망에 따라 우리가 변해 가는 것은 아닐까?
『근대의 역습』은 현재의 삶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20세기 초로 우리를 안내한 후 “온갖 디지털 장치들이 감시에 대한 욕망, 통제에 대한 욕망, 자본에 대한 욕망을 편리한 삶, 안전한 삶, 스마트한 삶이라는 구호로 가린” 오늘의 이곳으로 되돌아오는 100년간의 시간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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