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미술의 이해 (독서>책소개)/3.미술관여행

나의 일본 미술 순례 1 서경석

동방박사님 2022. 8. 10.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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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1992년 출간되어 30여 년 동안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저자 서경식(도쿄경제대학 명예교수)이 드디어 ‘나고 자란’ 일본의 미술을 찾아 떠났다. 이번 순례 코스는 ‘근대’라는 시대를 향한 시간 여행이기도 하다. 책의 배경인 1920~1945년 무렵은 역병(스페인 독감과 결핵)과 세계대전의 암운이 드리워진 시대였다. 서경식이 소개하는 그림은 이미 100년에 가까워지는 세월에 풍화된 듯 어두침침하고 죽음의 기운마저 어른거리지만, 이상한 생기로 번쩍인다. 바로 코로나 팬데믹과 전쟁, 폭력이 끊이지 않는 지금 우리 시대와 꼭 닮았기 때문이다.
그는 묻는다. “이 어두운 시대에 미술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카무라 쓰네, 사에키 유조, 세키네 쇼지, 아이미쓰, 오기와라 로쿠잔, 노다 히데오, 마쓰모토 슌스케. 분명 우리에겐 낯선 이름이다. 하지만 서경식은 ‘편애’하는 예술가라고 소개한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던 자신은 미각과 음감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침윤’된 미의식을 지닐 수밖에 없었다고, 그래서 일본미술에 애증이 뒤섞인 굴절된 마음을 품는다고 고백하면서. 그가 고른 일곱 미술가는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들이었다. 이른바 일본미술계의 ‘선한 계보’를 체현해 온 ‘이단자들’이다. 과감한 개혁자이기도, 비극적인 패배자이기도 했다.
그는 묻는다. “조선 민족의 일원인 내가 왜, 그리고 어떻게 이들을 사랑하게 되었을까? 이들의 작품에서 내가 느낀 매력을 ‘조국’의 사람들과도 과연 공유 가능할까?”

여섯 명의 화가와 한 명의 조각가가 살아 온 삶과 작품을 바라보면 ‘근대 일본’이라는 문제가 또렷하게 떠오른다. 그 어려운 문제와 온몸으로 격투하다가 요절한 이들이기 때문이다. 난문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의해 ‘근대’로 끌려 들어갔던 우리에게 한층 더 복잡한 ‘응용 문제’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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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책머리에
죽음을 들고 평온한 남자 ―나카무라 쓰네, 〈두개골을 든 자화상〉
저리도 격렬하게 아름다운 노랑, 빨강, 검정이라니 ―사에키 유조, 〈러시아 소녀〉
열아홉 소년이 그린 ‘비애’ ―세키네 쇼지, 〈신앙의 슬픔〉
‘검은 손’ 그리고 응시하는 ‘눈’ -아이미쓰, 〈눈이 있는 풍경〉
고투는 미다! ―오기와라 로쿠잔, 〈갱부〉
들꽃의 조용한 에너지 ―노다 히데오, 〈노지리 호숫가의 꽃〉
변경에서 태어난 근대적 자아 ―마쓰모토 슌스케, 〈의사당이 있는 풍경〉
후기
옮긴이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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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서경식 (徐京植)
 
1951년 일본 교토에서 재일조선인 2세로 태어났다. 와세다대학 불문과를 졸업하고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구속된 형 서승, 서준식의 구명과 한국의 민주화를 위한 운동을 펼쳤다. 이때의 체험과 사유는 이후 저술과 강연, 사회 운동으로 이어졌다. 성장기의 독서 편력과 사색을 담은 『소년의 눈물』로 1995년 ‘일본에세이스트클럽상’을,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로 2000년 ‘마...

역 : 최재혁

 
책을 쓰고 옮기고 만든다. 도쿄예술대학에서 동아시아 근대미술사를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저로 『아트, 도쿄』, 『美術の日本近現代史?制度· 言說· 造型』이 있다. 2012년부터 서경식의 미술 관련 서적 『나의 조선미술 순례』, 『나의 이탈리아 인문 기행』, 『나의 영국 인문 기행』을 옮겼다. 그 밖의 번역서로 『베르메르, 매혹의 비밀을 풀다』, 『무서운 그림 2』,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 했을까?한가함과 ...
 

책 속으로

37년의 짧은 생애였다. 메이지 시대 군인 집안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불치의 시대병에 걸렸던 나카무라 쓰네는 차례차례 가족을 잃고 혼자가 되었다. 그림만이 삶의 증거였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시대, 서양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신사조와 신문화의 빛을 탐닉하듯
쬘 수밖에 없었던 화가. 단 한 번, 온몸이 불타오르는 사랑에 빠졌지만 이 역시 허무하게 잃었고, 인생의 막바지에 해골을 품고 있는 자기 자신을 남기고 떠났다.
---「죽음을 들고 평온한 남자_나카무라 쓰네, 〈두개골을 든 자화상〉」중에서

그는 자신에게 중요한 모티프, 예컨대 파리의 광고판이나 벽에 온통 마음을 사로잡혔던, 말 그대로 그림에 ‘미친’ 자였다. 야마다 신이치가 회상하기를, 사에키는 젊은 시절부터 좋은 모티프를 만나 예술적 흥분을 느끼면 갑작스런 변의를 느끼곤 했다. 그럴 때면 “바바야!(똥이야!)”라고 오사카 사투리로 외치며 가까운 풀숲으로 뛰어들어가 일을 보았다고 한다. 예술적 흥분이 신체와도 직결했다고 말해도 좋을까. 정말이지 ‘그림에 미친 화가’다, 운 에피소드다.
---「저리도 격렬하게 아름다운 노랑, 빨강, 검정이라니_사에키 유조, 〈러시아 소녀〉」중에서

애처로운 심정으로 이 그림을 응시했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천재’란 그림의 기량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열여섯에 이미 ‘죽음’을 떠올리고, 작품으로 형상화했던 세키네 쇼지. 오래 살지 못했던 것도 어떤 의미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열아홉 소년이 그린 ‘비애’_세키네 쇼지, 〈신앙의 슬픔〉」중에서

아이미쓰는 위에서 말한 전쟁기의 화가와는 달리 전쟁화를 그리지 않았다. 차라리 ‘그릴 수 없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조각가 이데 노리오井手則雄의 회상에 따르면, 어느 날 모임에서 화가 후루사와 이와미古?岩美가 “요즘은 군부에 협력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해.”라고 말했을 때, 아이미쓰는 히로시마 사투리로 “아무리 그리 말해도 나는 전쟁화는 못 그려, 어쩌면 좋지?”라고 울먹였다고 한다.
---「‘검은 손’, 그리고 응시하는 ‘눈’_아이미쓰, 〈눈이 있는 풍경〉」중에서

〈갱부〉는 근대 일본 조각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그’와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였는지 확실히 떠오르진 않는다. 하지만 이 조각상은 내 청춘시대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보고 있으면 내 젊은 날의 동경이랄까 패기, 야심, 좌절감 같은 당시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난다.
---「고투는 미다!_오기와라 로쿠잔, 〈갱부〉」중에서

규슈 구마모토 출신의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 두 개의 ‘조국’을 가졌고 그 두 조국이 전쟁을 벌였던 기구한 운명에 사로잡혔던 사람. 그리고 1920~1930년대 미국에서 등장했던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했던 노다 히데오가 ‘아슬아슬한 반전평화운동’에 투신했다고 해서 그것이 화가의 길에서 ‘일탈’한 것이라고는 말할 수 없으리라. 한 시대를 성실히 살아나간 사람이 불가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운명과도 다름없었다. 반복하는 말이겠지만 노다 히데오의 장점은 이러한 시대 상황 속에서도 비장한 듯 소리 높여 외치는 것이 아니라, 최후의 순간까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어디까지나 낙관적으로 이야기를 건넸다는 점에 있다. 일본의 근대화가 중에서도 드물고 귀중한 존재였다고 말할 수 있다.
---「들꽃의 조용한 에너지_노다 히데오, 〈노지리 호숫가의 꽃〉」중에서

그에게는 ‘청력을 잃었다는’ 핸디캡(오히려 ‘특징’이라고 말해야만 할지도 모르겠지만)이 있었다. 민중으로부터 떨어진 위치에서 주로 책과 화집을 통해 얻은 지식과 관심을 기초로 자신의 예술적 경지를 개척한 화가였다. 사상의 근저에는 서양 문명을 향한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고, ‘자유와 개인의 존엄’ 같은 서양식 개념도 흐르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슌스케는 예컨대 같은 도호쿠 지방 후쿠시마 출신이자 빈농 가정에서 자라났던 세키네 쇼지와는 대조적이다. 일본의 집단주의적 문화 풍토 속에서, 특히 전쟁과 전체주의 시대에 자신이 선 위치를 지키면서 주체성을 관철하는 어려운 행위는 고독을 동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 추측이지만 슌스케의 작품 아래에서 통주저음처럼 깔려 흐르는 ‘적막함’의 이유는 바로 ‘홀로 선 자의 고독’은 아니었을까.
---「변경에서 태어난 근대적 자아_마쓰모토 슌스케, 〈의사당이 있는 풍경〉」중에서
 

출판사 리뷰

『나의 서양미술 순례』, 『나의 조선미술 순례』, 그리고 비로소 시작된 ‘미술순례’의 최종장!

30여 년 전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로 시작했던 서경식의 미술 순례가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에서 ‘조국’을 경유하여 드디어 나고 자란 곳, 일본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는다. 서경식은 오랫동안 쓰고 싶었으나 회피해 온 영역인 일본미술을 향해 “단순히 친근하다고 말하고 끝내 버릴 수 없는”“애증 섞인 굴절된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가장 친근한 대상이 ‘침윤’이라는(혹은 침식당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띤 말로 표현되는 사정은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 ‘나’라는 존재는 일본어라는 ‘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언급을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일본미술 순례』는 서경식이 처해온 언어 감각의 분열이 미적 감각에 적용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본 근대 미술의 이단자들, 그 선한 계보를 찾아서

서경식은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단자’를 소개한다. 왜 그는 한국에서 친구나 지인이 찾아오면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미술가의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느낀 매력을 ‘조국’의 사람과도 과연 공유 가능할지 궁금했을까. 근대라는 시대, 수십 년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조선인이라는 존재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 종주국의 미의식에 침투당한 사람들이라는 의미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진정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존재가 무엇에 침식당했고 또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미의식’의 수준으로까지 파고 들어가 똑바로 응시하기를 촉구한다.

팬데믹 상황에서 미술을 다시 들여다 본다-역병과 전쟁, 현대의 자화상

미술관이 문을 닫고 도쿄에서 지방으로 가는 여행도 불가능한 시기, 서경식은 처음 기획했던 방문기 형식의 집필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도리어 팬데믹 상황에서 미술을 다시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대부분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짧은 시기 동안만 활동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시작해서 일본이 패전에 이르는 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평생 ‘일본 근대미술’이라는 어려운 문제와 온몸으로 격투하다가 불행하게 요절한 이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역시 전쟁과 역병(주로 결핵)과 전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서경식은 역병의 참화 속에서 왜 뛰어난 예술이 생겨났는지 질문하고 죽음의 의미(바꿔 말하면 삶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찾는다. 코로나19가 2년 이상 맹위를 떨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일본미술을 통해 전쟁, 근대, 죽음의 의미를 재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