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역사이야기 (책소개)/2.서울이야기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

동방박사님 2022. 12. 26. 22:20
728x90

목차

제1부 [山] 산, 도성의 기를 품다

1. 안산
무악 궁궐터|도성 사람들이 백로처럼 모여 관전한 무악 전투|안산 봉수대|사라진 천연 연못 서지의 빛과 그림자|봉원사에서 인생을 돌아보다|무악재에 출몰하던 호랑이

2. 인왕산
왕기가 서린 땅|안평대군의 한이 서린 곳|세상을 피해 그윽하게 숨어 살던 화가|백세청풍, 그 이름이 무색하다|고향의 대나무를 그리워하는 척화신 김상헌|눈 오는 밤 홀로 앉아|인왕산 기슭에서 꽃피운 위항문학|세심대에 오른 정조|이항복의 집터에서|다산 정약용의 세검정 추억

3. 북악산
운무에 싸인 북쪽 주산|이항복이 은둔한 도심 한복판의 백사실|삼청동에 살던 연암, 인생의 덧없음을 읊다|숨어지낼 운명을 지닌 바위, 대은암

4. 낙산
인평대군의 우애를 기리다|계곡의 아름다운 집, 기재|영혼을 그리는 화가 강세황|세계인을 꿈꾸던 청백리 이수광

5. 남산
남산의 봉화|남산에서 처음 만난 박제가와 이덕무|애국가에 등장하는 소나무는 어디로 갔을까?|대동법에 목숨 건 조선의 경제학자 김육

제2부 [城] 성문에서 길을 묻다

1. 숭례문과 광희문
관악산의 화기를 잠재우는 연못|숭례문에서 헌괵례를 거행하다|불길한 운명을 타고난 남소문|도성의 하수도 광희문

2. 흥인지문과 혜화문
낙산 아래 철옹성 흥인지문|동대문 주막에서 죽은 시인|혜화동 고개 동소문로 이야기|소신을 굽히지 않는 삶|혜화문 안 성균관 유생들

3. 숙정문과 창의문
도성의 음기를 품은 숙정문|의로움을 만천하에 드러내다|석파정과 선바위에 얽힌 이야기|홍지문과 탕춘대

4. 돈의문과 소의문
잠룡이 머무르는 곳|돈의문과 서전문은 다른가?|소의문 이야기|염천교 강희맹의 집

제3부 [都] 도성에 담긴 한양

1. 도성의 서쪽
도성 밖 아이들의 무덤|독립문 주변의 도시 속 삶|새문동의 왕기를 누르기 위한 경희궁

2. 경복궁 주변
영조의 잠저 창의궁|경복궁 서쪽 영추문 밖 백송|한양의 설계자 정도전의 허망한 최후|경복궁 동쪽 가회동 다리의 살생부

3. 북촌
산과 물과 인심이 맑은 삼청동|안국동의 두 왕비와 재동의 백송|대원군 정치의 중심 운현궁|제생원과 연암의 말년 집터|흐르는 시냇물을 베개 삼아

4. 종로
죄인들을 처단하던 무교동|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이는 거리|만인이 짓밟고 다니게 하라|종로 시전으로 유명했던 공평동|도성의 소방서 금화도감|시전 상인들의 뒷골목 피맛길

5. 청계천
도심을 가로지르는 물줄기|숙종과 장희빈의 수표교 만남|정월 대보름 수표교 다리밟기 풍경|맹인들을 위한 관청 명통시|청계천 다리를 오가던 전기수|연꽃이 피는 연지동 연못

6. 명동, 충무로, 을지로
대나무로 난간으로 꾸민 화원|을지로에 살았던 조선 최고의 역관|허균과 이순신이 한동네에서 살다|중종반정의 주역 훈련방

7. 남산 아래 동네
묵동에 살던 조선의 이태백|인정받지 못한 시인의 슬픔|어진 선비가 살던 마을

8. 도성의 동쪽
한 맺힌 봉우리에 오르다|안암동과 종암동의 명품 돌|도성 십 리 밖에 있는 왕십리|여승이 된 공주

제4부 [江] 물길 따라 마음 따라

1. 광나루
한강을 사이에 두고 고구려와 백제가 자웅을 겨루다|단종,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다|서거정이 꿈꾸던 강호의 여유로운 삶

2. 잠실나루
16세기 조선은 시인의 나라|한강의 사라진 섬, 저자도|두 임금의 말 못할 사연을 간직한 낙천정|유교와 불교를 넘어 시로 통하다|강호 시인들의 천국 봉은사|봉은사가 품은 노학자의 고단한 삶

3. 두모포
아들을 향해 화살을 쏜 임금|비만 오면 잠기는 뚝섬|궁녀 천 명과 함께 놀이 나간 연산군|누이를 떠나보내는 슬픔|가문의 영광 독서당에 오르다|협곡에 배를 띄우고 떠나는 선비를 배웅하다

4. 동작나루와 노들나루
남도로 가는 가장 빠른 길|석 달 사이에 충신에서 역적이 된 윤휴|부모에 대한 효심이 낳은 정자|노량강 언덕 위에서 썰매 타던 이야기|효종의 한과 정조의 능행길

5. 마포
한양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던 만초천|마포의 기인 토정 이지함이 꿈꾸던 세상|마포를 대표하는 시인 권필|비가 와서 기쁜 정자 희우정|밤섬에 뿌리내린 서명응 가문의 실사구시 정신

6. 양화나루와 난지도
선유도의 절경에 부는 피바람|정적을 죽이고 호사스러움을 얻다|양화나루를 사이에 둔 정조와 정순왕후의 신경전|소요당에서의 절치부심|난지도를 배경으로 한 중용의 삶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김용관
 
1965년 서울에서 태어나 인천에서 대학을 다녔다. 몇몇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하다 출판사로 옮겨 여러 권의 책을 기획했으며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했다. <월간 중앙>에 조선 역사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한경리쿠르트>에 조선 군주의 리더십에 관한 글을 연재했으며 김만중이란 필명으로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충격적인 성 스캔들 사건을 엮은 <조선을 뒤흔든 성 스캔들>을 출간했다. 저서에 자본주의의 역사를...
 

YES24 리뷰

우리들의 시간은 한 공간 위에 쌓인다
김희조 (인문 MD /rarity@yes24.com) | 2012-07-04
역사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는 매일 거니는 산책로 어귀의 이름 모를 정자부터 여행길에 우연히 들른 작은 박물관의 깨알 같은 설명 자료에 이르기까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아버지와 같이 문화재를 보러 가거나 함께 TV를 보다가 역사 인물이 등장하면, 그를 둘러싼 전후좌우 뒷이야기가 굴비 엮듯 줄줄이 따라 나와 무척 재미있다.

어딘가 아버지를 닮았을지도 모르는 나 역시 오래된 공간과 해묵은 이야기들이 좋았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같은 장소를 거쳐 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이 한 공간 위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는 것이, 그들의 희로애락이 한 곳에 서려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고 궁금할 따름이다.

시간을 거슬러 조선 후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 '닥터 진'을 보면 당시 한양의 산과 강, 성곽과 마을이 오늘의 서울 모습과 오버랩 된다. 같은 공간 안에서 명멸했던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는 여전하겠지만 CG 처리할 만큼 상전벽해 되어 버린 서울의 겉모습은 왠지 안타까웠다. 그러다 얼마 전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때문에 때아닌 질투심에 사로잡혔다. 유럽으로 건너간 또 다른 시간 여행 속에 헤밍웨이,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같은 예술가들이 살아 숨쉬고 있는 1920년대 파리의 모습은 10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의 그 모습과 다름 없었다. 변치 않는 공간에 대한 이 부러움은 지나친 낭만일까.

문득 집어든 이 책은 내가 살고 있는 이 공간이 박물관에 갇힌 역사가 아닌 살아있는 역사의 장소임을 새삼 일깨워줬다. 서울의 산과 강, 성곽과 마을을 따라 걸으며 옛 한양의 흔적을 돌아보고, 회색 빌딩과 아스팔트가 덮어버리고 복개도로가 놓이면서 땅 속 깊이 사라진 기억을 하나하나씩 들춰낸다.

'이괄의 난'이 벌어졌던 무악산, 천년 사찰 봉원사, 옛 연희궁 자리였던 연세대 캠퍼스, 천혜의 절경을 뽐냈던 난지도, 수많은 배가 드나들었던 광나루, 마포나루 등 한양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장소를 직접 탐방하며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종횡무진 풀어낸다. 600년 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가며 씨줄과 날줄로 얽힌 사연을 끝도 없이 만들어 냈을지 생각만해도 까마득하다.

도시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파묻힌 아픈 역사도 탐색한다. 강남 개발 과정에서 육지가 되어 버린 잠실섬과 사라진 저자도 이야기는 짠하다. 성곽길을 따라 돌면서 숭례문에서 시작해 흥인지문과 숙정문을 거쳐 돈의문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개발이 아니라 한참 복원이 진행 중인 성곽과 성문에 얽힌 역사도 소개한다.

우연히 거니는 서울의 골목길에서 역사책보다 더 강렬한 역사가 되살아날 수도 있다. 아름다웠던 한양의 풍광을 지금의 모습과 비교하면서 서울이 기억하고 있는 그때의 시간을 나도 기억해 본다.
 

책 속으로

인왕산 서편 수성동이 이상 세계를 꿈군 예술가 안평대군의 공간이었다면 인왕산 동편 무계동은 안평대군의 정치적 야망이 꿈틀거렸던 공간이다. 창의문을 지나 세검정 쪽으로 가다 왼편 부암동 동사무소 골목을 올라가다 보면 안평대군이 머무르던 무계정사 터가 나온다. 하지만 막상 찾아가 보면 기대와는 달리 그냥 근대소설가로 유명한 현진건의 집터, 아니 그 폐허라고 명명함이 옳을 듯하다. ---p. 54

이날 세심대에 오른 정조는 이렇게 말한다. “이 터는 선희궁(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이 있는 자리다.” 오늘날 서울 농학교 뒤편으로 짐작되는 세심대 부근에는 아직도 ‘후천’이란 글이 바위에 새겨져 있다. ‘왕후의 샘물’이란 뜻이다.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와 관련된 지역에는 항상 이렇게 ‘우물 천’이 표시돼 있는데, 궁궐에서 물을 긷던 무수리 출신인 어머니를 추억하며 새긴 글자로 보인다. ---p. 82

이런 숭례문 연못이 언제 메워졌는지는 알 수 없다. 세조 때 한명회는 도성에 화마가 끊이질 않자 한양으로 천도할 때 관악산의 화기를 누르고자 팠던 남지를 메운 탓이라 여기고, 이를 복구하길 청한다는 상소를 올린다. 이를 보면 숭례문 연못은 다시 팠다가 메우길 반복한 듯 하다. 1896년 《독립신문》에는 “고니를 남지에 놓아주어 고니가 물고기와 함께 그곳에서 쉬었다”라는 글도 보인다. 그렇다면 백 년 전에는 숭례문에 연못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p. 159

《한경지략》에는 “우암의 옛집이 송동에 있는데 석벽에 자신이 쓴 ‘증주벽립’이란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그 글자는 지금도 실제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곳을 찾기란 쉽지가 않다. 한 시간 동안 명륜동 1가 일대의 모든 집 담벼락을 뒤지고 다닌 끝에야 겨우 찾았다. 연립주택 담벼락에 박힌 바위의 구석진 곳에 마치 우암의 고집처럼 굳건하게 글자를 드러내고 있었다. ---p. 185

청계천은 한양의 정신적 기둥은 북악산과 인왕산의 샘에서 흐르기 시작한 물줄기다. 이 물이 한양 사람들의 식수원이 되고 그들이 배설한 오물은 천변을 따라 청계천으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이 더러운 물은 다시 한강으로 흐른다. 깨끗한 물은 이렇게 인간을 거쳐 가며 더러워진다. 그 온갖 더러운 것이 모인 장소가 청계천 하류다. 그래서 조선 땅에서 부와 권력을 움켜쥔 사람들은 북악산이나 인왕산 주변의 정기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살았다. ---p. 291

아름다운 저자도를 한눈에 볼 수 있었으며, 두 임금의 말 못할 사연을 간직한 낙천정은 오늘날 안타깝게도 숨은그림찾기보다 더 찾기 어려운 정자가 됐다. 놀이터 한편으로 볼품없이 자리한 낙천정은 서울시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됐지만 지역주민조차도 그 사실을 잘 모른다. 원래 위치도 그곳이 아니었다. 낙천정이 있던 곳은 모양새가 시루를 엎어놓은 높은 언덕과 같다 하여 ‘대산’이라 불리던 야산이었다. 그러나 재개발에 밀려 이곳 놀이터 옆에 버려진 듯 놓이게 됐다.
---p. 368
 

출판사 리뷰

서울 속 한양을 따라 걸으며
잊혀진 수도의 역사를 복원하다
산, 성문, 마을, 강을 따라 이어지는 ‘서울 속 성곽 도시’ 한양의 스토리텔링

사라진 서울 속 한양의 역사를 복원하다


《서울, 한양의 기억을 걷다》는 서울의 산과 성곽과 마을과 강을 따라 걸으며 옛 한양의 흔적을 복원한 인문·역사·지리서다. 600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많은 사람이 한양을 거쳐 갔다. 그들은 마치 퇴적암처럼 층층이 쌓여 오늘날 서울의 스토리텔링을 이루고 있다. 같은 공간을 거쳐 간 조선의 왕, 지식인, 예술가와 그들의 발자취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있는 서울은 그 자체로 매우 광범위하고 복합적이며, 입체적이다. 저자는 이러한 땅과 인간에 얽힌 다양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땅과 인물에 얽힌 한양의 스토리텔링을 펼친다.

서울의 산과 성곽, 마을, 강에 얽힌 인문·역사 스토리텔링

저자는 한양 도성을 둘러싸고 있는 안산, 인왕산, 북악산, 낙산, 남산을 시작으로 서울의 성곽, 마을, 강으로 이어지는 한양의 역사를 하나하나 탐색해간다.
1부에서는 도성을 둘러싼 산을 다룬다. 도성을 빙 둘러싼 북악산, 인왕산, 안산, 남산, 낙산은 저마다 독특한 스토리를 담고 있다. 말안장을 닮았다 해서 안산이라 불린 무악산에서 벌어진 ‘이괄의 난’(p22)에서부터 시작해 천년 사찰인 봉원사(p36), ‘하늘 사이에 걸린 고개’라 불릴 정도로 험준했던 무악재(p29) 등 산 주변의 다양한 역사 현장을 사서에 기록된 역사와 인물을 통해 복원하고 있다. 방대한 조선의 역사에 걸맞게 등장하는 조선의 왕과 명사들도 다양한데, 저자는 《조선왕조실록》뿐만 아니라 그들이 지은 문학작품과 야사를 함께 소개해 단편적인 역사 지식이 아닌 살아 있는 역사 스토리텔링을 선보인다. 이 책이 단순히 한양의 지리적 요소만을 일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종합적인 인문·역사서로 분류되는 이유다.
2부에서는 도성의 성곽을 다룬다. 성곽은 1부에서 다룬 산과 연계된다. 성곽 도시 한양은 주위를 둘러싼 산들을 따라 성곽을 쌓고 사대문과 사소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저자는 숭례문(남대문)에서 시작해 광희문, 흥인지문(동대문)과 숙정문(북대문)을 거쳐 돈의문(서대문), 소의문(서소문) 터에 이르기까지 멸실되거나 현재 복원이 진행 중인 성곽길을 돌며 성곽의 옛 모습과 함께 이인좌의 난(p161), 미신에 집착한 세종대왕(p182), 인조반정(p198) 등 성문에 얽힌 역사를 소개한다. 저자는 서울 성곽이야말로 한양이라는 도시를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강조한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시가 추진하는 서울 성곽 복원 사업은 매우 고무적이다. 선조들이 남긴 위대한 자산인 한양 도성을 100년 만에 시민의 품에 온전히 돌려주는 사업이기 때문이다. 201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준비하는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할 성문에 얽힌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들이 2부에서 펼쳐진다.
3부에서는 도성 안에 있는 마을을 다룬다. 도성 밖 서쪽 아현동을 시작으로 경복궁 주변, 북촌을 거쳐, 다시 중심가인 종로통, 청계천, 명동과 충무로, 을지로로 이어진다. 그다음으로는 남산 아래 동네와 왕십리 등 도성의 동쪽을 훑어본다. 이를 통해 한양 사람들이 살아온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특히 벌열 가문들이 세거한 북촌과 권력에서 밀려난 선비들이 많이 살았던 남촌의 삶을 대비해 볼 것을 주문한다. 특히 이덕무 등 남산골에 살던 배고픈 지식인의 삶(p141)에서 만개하지 못한 실학사상의 안타까움과 함께 권력 투쟁에 밀려 기회를 엿봐야 했던 선비들의 한을 느낄 수 있다. 숭례문을 사이에 두고 경계인의 삶을 살았던 그들의 모습에서 땅을 닮은 삶이란 어떤 것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
4부에서는 한강의 물길을 따라 동에서 서로 이동하며 각각의 나루터에서 만나고 헤어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강은 크게 동쪽의 동호와 서쪽의 서호로 나뉜다. 저자는 직관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한강에 놓인 다리 여섯 곳을 중심으로 과거에 있었던 나루터와 정자, 섬 등을 살펴본다.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이자 동호에서 가장 큰 나루터였던 광나루를 비롯해 오늘날 강서구, 난지도에 이르는 구간을 순차적으로 돌아본다. 1631년 겨울 노량강 언덕 위에서 썰매 타던 이야기(p403), 정조의 능행길에 놓인 한강 배다리(p410), 조선의 사상가이자 기인의 삶을 살았던 토정 이지함(p420)에 얽힌 이야기 등이 흥미롭다. 저자는 도시 개발에 따른 한강의 변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제기하기도 한다. 1970년대 초 강남 개발에서 시작된 공유수면 매립 사업으로 섬에서 육지가 된 잠실섬과 사라진 저자도의 이야기는 개발이 가져다준 득과 실을 생각해보게 한다(p360). 개발의 대가로 얻은 잠실 아파트 단지 308만 평은 한강의 물줄기를 바꾸어 놓으며 그림 같은 동호의 풍경을 다시는 볼 수 없게 했다.
한강의 절경이었던 선유봉과 잠두봉(p438), 그리고 오리가 떠있는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압도 혹은 꽃과 풀이 많다고 해서 중초도라 불리던 난지도(p454)의 풍광 역시 서호에서 손꼽히는 명소였지만 지금은 당시 그려진 그림으로나마 어렴풋이 짐작해볼 수 있을 뿐이다. 서호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었던 잠두봉(절두산)을 무대로 벌어진 천주교 박해(p442)의 역사도 기억해야 할 대목이다.

스토리가 사라지면 도시도 사라진다

저자는 이 책을 쓰기 위해 직접 서울 속 한양을 걸으며 사진을 찍고 자료를 수집했다. 저자가 만난 한양은 하천과 개천이 많아 어느 곳을 가나 물을 볼 수 있는 곳이었다. 서울의 다리가 한강의 남북을 잇는 역할을 한다면 한양의 다리는 청계천의 남북을 잇는 역할을 했다. 물길이 닿은 곳마다 절경을 이루었으며 시인·묵객들의 붓끝에서는 시와 그림이 탄생했다. 저자도에서 봉원사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절경은 선비들에게 최고의 독서 환경을 제공한 독서당을 품었고, 봉원사에 모인 시인들은 유교와 불교를 넘어 시로 교류했다. 강을 따라 문사철이 도도하게 흐르던 조선은 말 그대로 시인의 천국이었다.
이렇듯 한양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진 문학과 철학의 도시였다. 그런 한양이 변한 것은 사라진 저자도로 대변되는 토목 개발의 시대를 거치면서다. 더 이상 시를 읽지 않는 시대, 시를 원치 않는 시대는 땅을 바꿨다. 시적 풍경은 메워졌고, 선조들이 자연 속에서 느끼던 풍류는 이제 다시 볼 수 없다.
저자는 한양이라는 공간의 변화는 바로 우리네 삶이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선행지표임을 강조한다. 오늘날 끝을 모르는 무한 경쟁사회는 과거 개발 독재시대의 토목 개발 사업과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하천이 필요하지 않은 도시에는 복개된 도로가 뚫렸고 허물어진 성곽 터 위로는 고가도로가 설치됐다.
저자는 이제 변화한 시대에 주목하자고 말한다. 서울시가 지하에 묻힌 문화재를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해 제대로 된 청계천 복원 사업을 추진하고, 도시를 둘러싼 성곽을 복원 가능한 범위까지 다시 살려놓는 일에 입장서는 것은 매우 환영할만한 일이다. 이렇듯 과거의 문화 공간을 복원하려는 것은 사람들이 더 이상 역사를 책이나 혹은 유리관 안에 전시된 유물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도심을 걸어 다니며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 안에서 느끼고자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이 그동안 기억상실증에 걸린 서울을 우리의 삶 속에 되돌리고 세계적인 문화 도시로 자리매김하는 데 작은 힘을 보탤 수 있다면, 분명 서울의 과거와 미래를 모두 확보하는 일이자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하고 중요한 역사가 될 것이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고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
- 조지 오웰